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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정신 98호] 쏘련에 관한 거짓과 진실/이리나 말렌코와의 간담회에 관한 비평
글쓴이 보스코프스키 E-mail send mail 번호 3096
날짜 2013-11-24 조회수 2017 추천수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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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에 관한 거짓과 진실

― 이리나 말렌코와의 간담회에 관한 비평 ―







지금 “당장이라도 사회주의로 돌아가고 싶다”



소련에서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안전, 평화, 조용함이다. 왜냐면 소련에서는 범죄가 없었고 걱정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범죄도 없고 실업이라는 것도 모든 사람들이 완전하게 고용될 수 있어서 없고, 홈리스도 없다. 주택 보조가 다 되기 때문이다. ... 지금 사회주의로 돌아갈 수 있으면 ... 당장이라도 사회주의로 돌아가고 싶다.



지난 8월 2일, 레디앙과 노동당이, 쏘련의 실상을 알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이리나 말렌코(이하 이리나)와 “소비에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쏘련은 지옥이었는가?(이하 간담회)”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진행했다. 언어의 차이,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많은 내용이 다뤄지진 않았지만, 단편적으로나마 쏘련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의 운동진영, 특히 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진영 내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점이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인 점에 비추어 봤을 때, 그리고 이로 인해 사상적, 조직적 분열을 겪고 있는 것에 비춰 봤을 때 간담회의 내용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그동안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사회는 철저하게 왜곡된 채로 전해져 왔다. 온갖 제국주의 선전기구들에 의해 진실은 가려지고 말도 안 되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덧씌워져 그야말로 악의 소굴, 지옥, 철저하게 부정해야 할 대상, 심지어 운동 세력이 나서서 반대하고 싸워야 할 대상으로까지 인식되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반공 이데올로기에 반북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서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왜곡에 왜곡이 중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되는 사이, 운동 진영의 태반은 변혁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과거를 청산했으며, 자본가계급의 품으로 투항해 갔다. 그나마 운동을 하고 있다고 자임하는 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니 ‘자율주의’니 하는 소부르주아적 청산주의로 나아가거나 자본주의의 개량이라는 우익 기회주의로 경도되었다. ‘변혁’을 내세우는 진영 내에서조차 혁명적 사상인 맑스-레닌주의가 밀려나고 뜨로츠끼주의라는 종파주의,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대반동, 대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자신이 가져야 할 운동의 미래와 전망을 상실한 채 개별적으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지난한 싸움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쏘련의 실상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전망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으로써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청산주의와 개량주의, 종파주의를 청산하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사상인 맑스-레닌주의를 다시 세워내는, 그래서 맑스-레닌주의를 중심으로 사상적, 조직적 분열을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해방 사업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간담회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간담회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주최 당사자가 레디앙과 노동당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레디앙과 노동당은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를 철저하게 부정해왔다. 맑스-레닌주의를 얘기하거나 20세기 사회주의의 긍정성을 얘기할라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듯 ‘구좌파’라는 식의 낙인을 찍어 현실에 존재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접근 자체를 차단해버렸다. 20세기 사회주의의 긍정성을 얘기하더라도 이들이 언급하는 국가는 유일하게 쿠바가 전부이며, 이마저도 도시환경, 의료 등 부문별, 주제별로 접근하거나 일부분에 대한 긍정 평가일 뿐 쿠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레디앙과 노동당이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은 간담회의 (영문)주제인 “소련은 지옥이었는가”라는 한 마디 말을 통해서도, 그리고 간담회 중에 나왔던 질문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비록 노동당의 경우 강령에 사회주의를 명시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내용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이 없는 사회민주주의, 즉 자본주의의 개량에 불과할 정도로 이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왜곡되어 있고 20세기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일뿐만 아니라 20세기 사회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를 자신들의 전망으로 가지고 있는 레디앙과 노동당이 쏘련 실상을 알고자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비록 한 번의 간담회로 인식이 180도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쏘련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인식,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이다.





스탈린 탄핵과 수정주의의 강화



이리나가 태어난 1967년부터 쏘련을 떠났던 1984년까지 쏘련은 전 사회적으로 관료주의와 수정주의가 상당히 만연해 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56년 제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 뒤에서 맑스레닌주의 핵심 원칙을 폐기하고 수정주의로 선회한 이후 쏘련은 내부적으로 관료주의가 급속히 확산되었고,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나타났던 노동자 인민의 자발성, 역동성은 사라져갔다. 수정주의, 관료주의와의 투쟁과정에서 노동자 인민의 역동성을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었던 수단인 숙청은 사라지고 쏘련 사회는 정체상태에 빠져들어 갔다. 쏘련의 사회 분위기에 대해 이리나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님 세대랑 제 세대랑 비교해보면 부모님 세대는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해 활동적이었는데 우리 세대는 수동적이었다. 아무도 학교에서 리더로 선출되길 원하지 않았고, 수동적이었다.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한다면, 이런 과정에서 공동체가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힘과 권한을 제공하는 게 어려웠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이리나가 쏘련의 붕괴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밝히고 있는 내용이지만, 동시에 이리나가 살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리나는 당시 쏘련의 분위기를 수동성으로 특징짓고 있다. 부모 세대는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해 활동적이었던 반면, 자신의 세대는 수동적이었고 리더로 나서길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공동체가 활력을 잃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소련사회의 단점을 이야기하자면 어제와 오늘 생활이 늘 똑같기 때문에 좀 지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리나의 증언은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하나는 아무리 사회주의 사회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가 발전하고 성숙하고, 그래서 더 나은 사회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사상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맑스-레닌주의로부터 이탈하여 수정주의의 길을 걷게 되는 순간 그 사회는 정체되고 수동성이 강화되며, 결국 관료주의, 권위주의가 팽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다. 계급이 존재하고 국가가 존재하며 여러 모순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찌꺼기 또한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자본주의로 회귀하려는 반동세력, 사회주의 건설에 저항하는 세력, 사회주의의 붕괴를 노리는 제국주의 세력 등 대내외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반석위에 세워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내외적으로 끊임없는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내외의 모순을 올바로 인식하고 처리할 수 있는 사상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 즉,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맑스-레닌주의에 의해 지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이탈하는 순간 언제든 곤두박질칠 수 있음을 쏘련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부모님 세대’로 지칭했던 시기, 즉 1917년 혁명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의 시기에는 쏘련의 노동자 인민들이 정치, 사회적으로 대단히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고, 그만큼 역동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1924년부터 1953년까지 쏘련의 최고 지도자는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이 어떤 인물로 알려져 있는가? 독재자, 악의 화신, ‘숙청’, 박해, 탄압, 폭력, 권위주의 등등 무수한 부정적인 평가가 뒤따르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탈린이 ‘독재’를 행하던 시기의 인민들은 폭력적으로 억압당해 있었다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쏘련 인민들이 오히려 더 정치, 사회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박정희 유신독재가 한창이던 시절에 한국의 노동자 민중들은 결코 역동적일 수 없었고 정치, 사회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수도 없었다. 그만큼 폭력적으로 억압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독재가 행해지는 사회에서 인민들이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활발하게 정치, 사회 영역에 참여하고 있는 곳은 없다. 그동안 스탈린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왜곡, 날조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리나 역시 이점을 증언하고 있다.



스탈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되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스탈린 시대에 소련 사회가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 스탈린과 소련사회가 성취한 것을 연관지어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1920~30년대 문맹률, 실업률이 많이 낮아졌고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바뀌었고 집단농장도 만들어졌고 나치에 맞서 싸워 승리한 성과도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스탈린에 대한 역할을 재조명하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 (고르바초프를 비롯해) 스탈린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소련의 권력을 잡았는데, 그 사람들의 결과와 행보(즉, 쏘련의 붕괴와 자본주의화)를 보면 왜 반대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스탈린에 관한 평가에 있어, 이리나 역시 스탈린의 숙청을 박해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 또한 이리나 자신의 증언과 모순된다. 만약 나찌에 의해 왜곡, 날조되고,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더욱 부풀려진 숙청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 사회에 사는 인민들은 아마도 숨조차 쉬지 못했을 것이고 정치,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도, 역동성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라면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것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찌 독일을 패퇴시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가? 당시에 진행된 숙청이 실제 어떠했는지를 안다면 무엇이 왜곡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탈린이 최고 지도자로 있던 시기에는 수많은 숙청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숙청이 정치적 박해 내지는 권력투쟁 과정에서 경쟁자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 암투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레닌의 표현을 빌리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 이후 당에 침투했던 ‘악당들’, 즉 출세주의자들을 숙청하는 과정이었고, 관료주의와의 투쟁이었다. 또한 사회주의 건설의 올바른 지도노선을 채택하는 과정이었고, 쏘련을 붕괴시키기 위해 사보타주하고 테러를 자행했으며 심지어 나찌 독일에 협력했던 자들을 처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숙청의 과정에 노동자 인민이 직접 참여하고 토론하고 결정했음은 물론이다. 오히려 노동자 인민에 의해 숙청이 진행됨으로써 노동자 인민의 자발성, 역동성이 살아나고 민주주의가 보다 강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흐루시초프 이후 숙청이 사라지면서 점차 역동성을 잃어갔고 사회가 정체되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간담회 참석자 중에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리나는 비록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은 아니지만, 자신의 경험과 느낌에 근거해서 명확하게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의 특징을 대조적으로 증언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지, 우리에게 ‘상식’처럼 알려진 사실과는 어떠한 모순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토론을 진행했더라면 간담회가 보다 풍부하고 깊이 있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상황과 조건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더 나은 사회로의 진보를 이끌 수 있는 올바른 지도노선은 무엇이었을지, 사회주의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모순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가야 하는지, 어떻게 노동자 인민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할지, 우리가 쏘련 사회에 대해 ‘상식’처럼 알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한 토론이 부재한 점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회주의 사회는 하루아침에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난관에 직면할 것이고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쏘련 역시 결코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과정에서 지도노선이 달라지기도 했고 수정주의로의 이탈도 있었다. 그만큼 쏘련 사회 역시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들을 보지 못하고 단선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쏘련의 진실에 대한 접근은 요원할 것이다. 한 번의 간담회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문제의식만이라도 제출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것은 단순히 쏘련만의 문제, 20세기 사회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시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쏘련에 관한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



쏘련은 어떤 사회였을까? 이리나는 이렇게 증언한다. 완전고용이 보장되어 실업이 없는 사회, 범죄가 없어 밤에도 위험하지 않은 사회, 주택보조가 되어 홈리스가 없는 사회, 무상교육, 수당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니는 사회, 노동이 의무이자 권리인 사회, 노동복지가 실현되는 사회, 모성보호가 실현되는 사회, 무상의료가 실현되는 사회, 심지어 아이들의 의복까지 국가 보조가 이루어지는 사회, 공장의 관리인을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하는 사회,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사회, 경제 계획을 노동자 인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사회, 그리고 차별이 없는 사회...



물론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가 팽배했고, 부패가 존재했으며,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통제, 성소수자 문제, 인종주의와 같은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외에도 수많은 문제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리나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듯 쏘련은 대단히 진보적인 사회였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작동하고 높은 수준의 복지가 실현되고 있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민주주의가 보장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전해진 쏘련의 실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왜곡되고 날조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왜곡되고 날조된 ‘사실’에 근거하여 쏘련이 독재국가였느니, 국가자본주의였느니 하는 비난들이 얼마나 근거 없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난들은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그들에 의한 왜곡, 날조, 거짓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세력의 거짓 선전을 ‘진보’,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강화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쏘련이 ‘완벽한’ 사회였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문제와 한계, 오류, 왜곡이 존재한다. 사실 완벽한 사회란 우리의 머릿속에나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사회주의 사회를 어떤 완벽한 상태로 이해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유토피아화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그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왜곡을 바로잡으면서 끊임없이 건설해 가는 것이다. 결코 완벽한 상태, 무결점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쏘련에 관한 진실은 여전히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쏘련 사회의 모습이라고 알려진 것은 태반이 제국주의 선전기구에 의해 조작됐거나 반공 이데올로기가 덧씌워진 것들이다. 따라서 쏘련 사회의 실상이 어떠했는지, 객관적인 사실들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쏘련 사회의 객관적인 사실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사회에 관해 ‘사실’이라고 전해지는 것을 접했을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가 중요하다.



전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자본주의 국가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을 분쇄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세력은 전 세계 최초로 세워진 노동자국가를 전복시키기 위해 간섭전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 제국주의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찌 독일이 사회주의 쏘련 국토의 대부분을 유린할 때까지 지켜만 보고 있었고, 전쟁이 끝난 후 쏘련이 붕괴할 때까지 냉전을 전개하고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공작을 통해 붕괴를 획책했다. 그리고 지금도 남아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 경제봉쇄와 전쟁 위협, 테러를 가하면서 붕괴를 획책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세력은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진영과 전쟁을 벌여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목적은 노동자계급의 전망을 거세하여 혁명적 진출을 분쇄하고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영구히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온갖 이데올로기 기구를 총동원하여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의 진실을 가리고 은폐, 조작, 날조, 왜곡을 통해 쏘련을 악마화하고 지옥으로 묘사하는 거짓 선전을 해왔던 것이다.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의 실상을 보는데 있어 언제나 제국주의 선전기구들의 눈과 귀를 통하고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이것을 인식할 때만이 거짓 속에서 진실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길을 가야 한다



1991년 쏘련이 붕괴함으로써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험은 막을 내렸다.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있지만, 제국주의 세력의 경제봉쇄와 전쟁위협, 테러, 파괴공작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쏘련 붕괴 과정,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복잡한 과정이고 아직까지도 그 원인을 분석하는 중”이라는 이리나의 말처럼, 쏘련 붕괴 과정과 원인을 파악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고, 그것은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제국주의 세력의 공세만큼은 지적해두어야 할 것 같다.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쏘련이 아무리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더라도 제국주의 세력의 파상적 공세보다 더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진영은 쏘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를 위해 물리적․이데올로기적으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총공세를 펼쳐왔다. 제국주의 세력의 공세가 쏘련 내부에 상당한 왜곡을 초래했을 것은 자명하다. 군사비지출이 급증하면서 다른 산업부문의 발전이 저해되고 사적경제가 존속하는 등 많은 왜곡을 가져왔다.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수정주의와 기회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숙청이 진행되지 않음으로써 관료주의가 확산되고 견고한 층을 형성하는 지경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결국 제국주의와의 대립 속에서 수정주의적,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되어 왔던 자들에 의해 쏘련이 붕괴하게 된 것이다.



비단 쏘련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파괴공작이 계속되고 있고, 우리 역시 언젠가는 그러한 공격을 직접 받게 될 것이다.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제국주의를 무력화시키는 투쟁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역사의 종말,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사회주의와 노동자 인민의 투쟁을 왜곡하여 노동자 인민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는 자본주의 대중매체의 거짓 선전을 낱낱이 폭로해야 한다.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는 수많은 문제점과 오류, 한계와 과제를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갔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쏘련의 실상이 설사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진실을 외면해서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렇게 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만약 우리 자신이 직접 새로운 사회를 건설했다면 어떻게 했을지,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노/정/협>



※ 모든 인용 출처: 간담회 전문 http://www.redian.org/archive/58671

인용문 중 ( )안은 인용자가 덧붙임



http://lmagit.jinbo.net/bbs/zboard.php?id=newspaper&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l1=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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