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세
현장
이론
기타
 
지난호보기
월간지/단행물
구독신청
세미나신청
토요노동대학신청
1
자유게시판
제목 [노정신 99호] 보시라이 재판과 충칭모델의 정치적 의미와 한계
글쓴이 보스코프스키 E-mail send mail 번호 3093
날짜 2013-11-24 조회수 1702 추천수 707
파일  

 

보시라이 재판과 충칭모델의 정치적 의미와 한계







1.세계경제공황시기 보시라이 재판의 의미



2013년 9월 22일 보시라이(薄熙来)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부패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보시라이 사건은 2011년 11월 15일 영국인 닐 헤이우드가 충칭시 호텔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어이없게도 보시라이가 2012년 3월 15일,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개막된 다음날 충칭시 당서기에서 해임되고, 미래 10년 권력을 결정하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바로 며칠 앞둔 2012년 10월 26일에 전국인민대표 자격을 박탈당하고, 이어 2013년 9월 22일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일련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어떻게 이렇게 우연적이게도 보시라이는 중국의 핵심적인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전후의 시기를 딱 맞추어서 공직에서 뿐 아니라 당에서 물러나게 되었는가? 보시라이 재판과 중국공산당의 일정이 우연적으로만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우연에 내재하는 필연이 있었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보시라이 재판을 우연적인 ‘부패’ 문제로만 축소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번 보시라이 재판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중국공산당 내 필연적인 계급투쟁의 결과이다. 보시라이가 축출된 것은 중국공산당 내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강화하려는 ‘우파’ 개혁파와 이를 저지하고 사회주의 요소들을 유지하면서 국가주도 계획경제를 강화하려는 ‘좌파’ 사이의 모순과 갈등의 표출이다. 보시라이를 끌어내리려는 무수한 악선동은 모두 다 중국사회의 지도세력들 사이에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자본주의화에 대한 좌-우파의 투쟁을 감추기 위한 연막전에 불과하다. 중국공산당 내에서 일어난 당내 갈등의 정치적 경제적 원인은 바로 당 내에서 중국의 경제적 토대를 둘러싼 갈등과 모순의 표출인 것이다.



프레드 골드스타인(Fred Goldstein)은 보시라이가 충칭시 공산당 당서기장으로부터 축출된 것은 심화되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시장의 이용과 사회적, 경제적인 계획 및 국가개입을 결합하기를 원하고, 대중들의 요구들에 역점을 두고자 하는 중국의 전 지역과 중국공산당 내에서 성장하는 세력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보고 있다(Fred Goldstein, The struggle in China: Capitalist crisis versus planning, WWP, 2012.3.27).



중국은 오늘날 역사적으로 모순상태에 놓여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기에 자본주의적인 발전 및 제국주의적인 침투가 일어나고 있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부분이 양립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이 모순은 당장 폭발되지 않았을 뿐 거대한 충돌의 가능성을 항상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너무 많이 자본주의 쪽으로 가버렸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과 그의 정치적 후계자들은 중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장이 필요하고 자본주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소위 “시장사회주의”를 정당화했다. 이어 등장한 장쩌민(江泽民)은 “시장경제화”를 본격화하였고, 후진타오(胡錦濤), 원자바오(溫家寶)의 시대에 와서는 “조화로운 사회”와 “균형발전”에 초점을 맞추기는 했지만, 2007-2009년 세계경제공황이 발발하면서 그 여파가 중국에도 미치자, 세계자본주의에 편입시키려는 세계제국주의의 요구들에 부응하고 있다. 2012년 새로운 지도부로 등장한 시진핑(習近平)과 리쿼창(李克强)도 장쩌민의 개혁, 개방의 노선을 더욱 발전시키려고 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우파, 즉 자본주의 개혁파들이 항상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본질은 실제 국내외 자본가들과 협조하는 사회주의 중국이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극명한 모순관계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사회에 자본주의적 측면과 사회주의적인 측면이 대립물로 통일되어 있으면서 자본주의적인 측면이 사회주의적인 측면을 파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적이윤 추구욕이 아닌가? 실제로 이것이 중국에서 부패의 가장 큰 요인이다.



만약 중국공산당이 진정 ‘부패와의 전쟁’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중국 경제 내부에서 자본주의적인 요소의 발전 과정에서 깊어지는 부패, 즉 사적이윤 추구욕을 없애는 방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공산당 내 우파들은 오히려 사적소유를 지양하고 국가주도의 계획경제를 통하여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사회서비스의 혜택을 넓히고자 했던 보시라이를 당으로부터 축출함으로써 그들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내 계급투쟁을 부채질 한 것은 2007-2008년 미국으로부터 몰아쳐온 세계공황이다. 2007-2009년 세계금융체계와 세계시장의 붕괴, 그 결과로써 이어지는 대량실업, 무모한 투기, 과잉생산, 경제혼란, 도산의 홍수, 주식시장의 소용돌이와 미래에도 계속되는 자본주의의 위기들이 중국사회에도 침투하여 중국에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모든 중국의 지도자들도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에게 자본주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끔 만들었다. 그 흐름 중의 하나로 보시라이를 비롯한 일부 좌파들이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대해 심한 회의감을 느끼면서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서 사회주의 요소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해 제국주의자들과 장쩌민, 후진타오를 비롯한 우파 개혁파들은 중국경제의 침체의 상황에 직면해서도 자신들만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본주의화를 확대하고, 사적 영역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자본가들을 위시한 세계 자본가계급이 2007-2009년 세계경제공황으로 인한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시장화에 눈독을 돌리고 있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세계자본가계급은 중국의 우파 개혁파들에게 세계공황으로 인한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사적영역을 강화하는 정책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즈음에 보시라이가 자본주의 시장 개혁에 의존하기 보다는 국가주도의 계획경제를 강화하려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고, 여기에 대해 우파인 “개혁과 개방” 분파가 보시라이를 중심으로 한 공산당 내 세력을 정치적으로 숙청함으로써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보시라이가 중국공산당 제 18차 전국대표대회 직전인 2012년 10월, 당으로부터 축출된 이유는 2013년 차세대 중국지도세력으로 부상한 시진핑과 리쿼창 등이 그들 자신들의 친 시장 개혁정책을 더욱 발전시키고 사유화를 더욱 촉진시키면서 자본주의를 향해 질주해 나가는 데에 저항세력으로 등장할 보시라이를 미리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2. 충칭모델의 정치적 의미와 한계: 중국공산당 내의 권력투쟁과 계급투쟁의 반영



보시라이 재판과정에서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보시라이를 과도하게 억압한 것은 중국공산당 내에서 계급투쟁의 반영이다. 그것은 사적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 계급과 그로 인해 빈곤의 축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계급과 민중들 사이의 계급투쟁의 하나의 반영인 것이다.



프레드 골드스타인(Fred Goldstein)은 “어떤 거대한 정치투쟁의 저변에는 계급투쟁이 있다는 것이 맑스주의 원칙”이라고 하면서, “현재 중국 모델의 체계 내에서 사회주의 정신을 부활시키고, 불평등과 싸우고, 시장자유주의를 타파하려는 보시라이와 그의 프로그램이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 그에 대한 박해는 중국에서 계급투쟁의 하나의 반영이다.”라고 주장한다(Fred Goldstein, The crisis in China: Behind the expulsion of Bo Xilai, WWP, 2012.8.3).



이러한 계급투쟁이 반영된 대표적인 사례가 보시라이의 충칭모델(重慶 Model)이다. 보시라이가 발전시킨 충칭모델이 급진적인 자본주의 개혁가들의 자본주의화에 대항해서 이루어졌고,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그에 대한 박해는 계급투쟁의 반영인 것이다.



보시라이에 대한 모든 거짓 선전에도 불구하고, 모든 중국인과 전 세계 자본가들이 명백한 사실로 알고 있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은 그가 충칭모델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진타오를 비롯한 점진주의자들로부터 원자바오와 같은 더 급진적인 자본주의적인 개혁가들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주자파(走資派)에 대항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Fred Goldstein, The crisis in China: Behind the expulsion of Bo Xilai, WWP, 2012.8.3).



이제 보시라이의 충칭모델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충칭모델의 첫 번째 부분은 실물경제에서 국가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여 사유화의 진행을 막고, 사회서비스를 확대한 것이다. 충칭모델과 중국의 나머지 부분과 가장 큰 차이점은 실물경제의 부분이 정부주도하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전역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부동산 회사들이 지역정부를 통해서 농촌의 땅을 구입하고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민간회사들의 이윤이 증가하는 반면, 지역정부에게는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부동산의 사유화가 진행된 경우 주택가격과 임대가격이 증가하여 도시 노동자들의 삶이 황폐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충칭모델에서는 도시의 땅을 부동산회사들에게로 이전시키는 대신에, 충칭시 정부가 정부 소유의 회사나 투자기관을 통해 이 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새 정책으로 부동산의 이윤이 사적기업에게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정부의 금고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지역정부는 이들 땅을 담보로 해서 거대한 대출을 획득했고 이 자금을 통해 여러 개의 산업에서 몇 개의 거대 회사들을 세웠다, 그 결과, 충칭시에서는 국영부분이 중국 나머지 지역에 비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충칭모델은 사유화로 인해 노동자계급과 농민들이 황폐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지역정부의 수입이 증대함에 따라 사회서비스를 증대시켰다(Ahmet Devrim, Socialist Project, Tremor within the Chinese Communist Party, Global Research, 2012.11.8).



예를 들면, 보시라이는 충칭시 예산의 절반을 보건의료, 주택, 연금, 교육 및 다른 공공서비스를 위해 사용하였다(“One or Two Chinese Models?” Europe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Asia Centre, 2011.11). 또한 충칭시 정부는 저소득가구들을 위해 80만 채의 주택을 지어서 저소득층에게 시장가격보다 40% 낮은 가격으로 공급했다(Bloomberg Businessweek, March 22).



충칭시 정부는 저렴한 주택프로그램을 통해서 도시 노동자들에게 최근 건설된 주택의 1/3을 보급했다(Ahmet Devrim, Socialist Project, Tremor within the Chinese Communist Party, Global Research, 2012.11.8).



또한 충칭시 정부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도시-농촌 프로그램을 발전시켰는데, 그 목표는 1000만 농민들이 도시 허가서를 얻도록 허용하는 것이다(“Bo Xilai and the Chongqing Model”, East Asian Institute, Vol. 1, No. 3).



충칭모델의 두 번째 부분은 보시라이가 거대한 경찰조직을 동원해서 조직범죄를 엄단한 것이다. 보시라이는 폭력배, 부패한 당과 정부의 관리들을 일제히 단속했다(Ahmet Devrim, 같은 글).



충칭모델의 세 번째 부분은 마오 시대의 문화들 중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선전하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충칭에서 마오 시기와 자본주의 개혁 전 시기의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정치 및 문화 선전을 벌였다. 정치적으로 보시라이는 “붉은 문화(Red Culture)”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마오 시대 노래를 부르도록 격려했고, 문화혁명시기의 오페라를 공연하도록 조직했다(Fred Goldstein, China’s inner-party struggle: The Chongqing vs. Guangdong models, WWP, 2012.4.12).



그렇다면 이러한 보시라이의 충칭모델의 정치적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 충칭모델은 중국의 주도적인 지배세력이 자본주의화로 가는 흐름에 반하여 중국 내에서 사회주의적인 요소들을 발전시키려 했던 측면이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쭤예쯔(Yuezhi Zhao-영어식 표기)와 프레드 골드스타인은 보시라이가 추진했던 “충칭모델”을 중국에서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발전시키려고 했던 측면으로 보면서 충칭모델의 의의를 높이 사고 있다.



쭤예쯔는 보시라이를 둘러싼 계급투쟁을 충칭모델과 광둥모델(廣東 model) 사이의 투쟁으로 대별시키면서 충칭모델의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고 있다. 충칭모델은 모든 국가기업을 활성화하고 불평등과 투쟁하며 “붉은 문화(Red Culture)”를 활성화시킨 반면, 광둥모델은 착취를 강화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우세했던 모델이다(Yuezhi Zhao, The Struggle for Socialism in China: The Bo Xilai Saga and Beyond, Monthly Review, 2012.10).



충칭모델에 반해서 광둥모델은 사회 발전의 주요 원동력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2007년 광둥시의 당서기인 왕양(汪洋)은 공개적으로 자원 할당에 있어서 자본주의 시장의 우위를 선전했다. 그는 작은 정부를 원했고, 더 개방을 하고 더 개혁을 하길 원했다(Wall Street Journal, March 14, in Fred Goldstein, China’s inner-party struggle:The Chongqing vs. Guangdong models, WWP, 2012.4.12)



쭤예쯔가 바라보는 충칭모델은 그 속에 “자본주의적 건설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사회주의 부활"의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쭤예쯔에 의하면, 2007-2008년 세계경제공황으로 인해서 중국에서 자본주의 재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의 부활”을 요구하는 새로운 흐름들이 생겨났고, 중국의 발전을 위해서 중국 지도세력이 자본주의적인 수출위주의 모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들이 강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언론, 지식인 지도자들, 중산층들뿐만 아니라, 과도기적인 자본, 국내 해안 수출산업들, 친자본주의 국가 관료들로 구성된 중국의 권력층의 헤게모니 집단은 중국의 발전경로를 새로 방향지우기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노력도 계속해서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로 미루어 볼 때, 쭤예쯔는 충칭 모델이 더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경로를 추구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던 모델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쭤예쯔는 보시라이가 중국공산당의 관료주의 내에서 통치를 하고, 충칭 거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시도로 마오주의 실천인 대중노선에 입각한 정치적인 소통을 활기차게 실천했는데, 그 핵심적인 개념은 “공동번영(Common Prosperity)”이었다고 한다. 쭤예쯔는 보시라이가 2011년, 어느 연설에서 “공동번영”이 공산주의적인 문화의 “진보된 방향”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충칭모델은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의 구체적인 실현과정이었던 점을 강조한다(Yuezhi Zhao, The Struggle for Socialism in China: The Bo Xilai Saga and Beyond, Monthly Review, 2012.10).



프레드 골드스타인은 “충칭모델”을 “마오주의 문화를 부활시키려는 대중적인 시도와 사회주의의 가치가 결합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프레드 골드스타인은 “충칭모델”에서 시도했던 “마오주의 문화의 부활”을 크게 강조하면서 이것은 마오에 의해 지도되고 선전된 노동자계급의 투쟁정신의 부활이라는 면에서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Fred Goldstein, China’s inner-party struggle: The Chongqing vs. Guangdong models, WWP, 2012.4.12).



반면 충칭모델의 한계에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충칭모델이 ‘사회주의의 부활’의 측면이 있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프레드 골드스타인의 견해이고, 또 하나는 충칭모델은 반(반)자본주의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인 모델이 아니고 자본주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는 아흐멧 데브림(Ahmet Devrim)의 견해이다.



프레드 골드스타인은 중국사회가 근본적으로는 사회주의 골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적인 발전과 제국주의적인 침투가 일어나고 있는 사회라고 규정하면서(Fred Goldstein, Marxism and the social character of China. WWP, 2013.6.13.), 보시라이의 충칭모델은 중국의 자본주의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Fred Goldstein, China’s inner-party struggle:The Chongqing vs. Guangdong models. WWP, 2012.4.12).



프레드 골드스타인은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선호하고 정치적 반동의 모델인 광둥모델에 비해, 충칭모델은 단지 기껏해야 미봉책에 불과하다. 충칭모델은 아직도 자본주의 시장을 중요한 동력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은 이윤의 축적을 성장한다. 충칭에는 500개의 다국적기업들 중에서 93개의 기업들이 가동되고 있다(같은 글)”라고 하면서 충칭모델에서 자본주의화가 계속 진행되었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프레드 골드스타인은 “보시라이가 마오 사망 이후 중국의 발전과정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의존도를 폐기처분하려고 시도했었다는 증거가 없다. 반대로, 그의 시야는 충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와 외국투자를 사용하는 전반적인 체계 속에 완전히 갇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 속에서, 그는 소위 "제3의 손"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국가가 대중들의 복지와 안녕을 보장하고 가장 우선적인 문제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Fred Goldstein, The ouster of Bo: A critical moment in China, WWP, 2012.3.22)”하고 하면서 보시라이와 그가 시도했던 충칭모델이 자본주의에 대한 의존도를 폐기처분하지는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프레드 골드스타인은 기본적으로 보시라이 충칭모델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상대적으로 사회주의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지지를 하는 것이다.



한편, 아흐멧 데브림(Ahmet Devrim)은 “충칭모델”은 반(反)자본주의 모델이거나 사회주의 모델이 아니었다고 한다. 중국의 나머지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충칭에서도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생산관계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아흐멧 데브림은 더 나아가 2007-2012년 동안 보시라이의 통치 동안에 자본주의 체제나 부르주아 권력에 대항하는 단계는 전혀 없었고, 보시라이 자신도 중국공산당의 다른 관료들과 비슷하게도 관료 부르주아라고 규정하면서, 충칭모델의 자본주의적인 특징을 지적하면서 충칭모델이 자본주의적인 개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Ahmet Devrim, Socialist Project, Tremor within the Chinese Communist Party, Global Research, 2012.11.8)





3. 문제해결의 핵심은 노동자계급에게 있다!



세계 언론들은 보시라이가 숙청을 당하고 재판정에 서게 된 것에 대해 적극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번 보시라이 재판사건은 중국공산당 우파들이 보시라이를 과도하게 억압함으로써 보시라이의 시도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보시라이가 시도했던 중국의 자본주의화에 반기를 들고 “사회주의를 부활”시키려는 노력들은 중국공산당 우파들에게는 위기를 가져다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보시라이가 맹렬하게 자본주의화로 진격해나가는 중국공산당 우파들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파의 자본주의 개혁으로 인해 중국내 자본주의 모순이 더 극대화되고, 사회주의 요소들이 더 파괴되고, 이것의 여파로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이 파괴되는 것 뿐 아니라, 중국 사회주의 혁명 정신조차 파괴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심화와 그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빈곤화가 심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모순이 점점 더 나타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 자본주의적인 사유화 발전은 중국 혁명 초기에 건설했던 사회주의 요소들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도 보시라이가 자본주의 사유화 대신에 국가주도의 계획경제정책을 추구하고 사회주의 요소들을 부활시키려고 했다는 점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이번 보시라이의 재판은 단지 한 공산당 고위간부의 부패스캔들이나 중국공산당내의 권력다툼에 관한 뒷담화의 소재가 아닌, 중국의 인민들 전체, 즉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에게 그들의 삶의 사회주의 방향으로 재조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보시라이 식 개혁의 원동력이 사상인데 그 사상 자체의 불명확함과 불철저함, 대중운동과의 결합이 아닌 위로부터의 정책수단의 한계, 중국의 일부 지역에 한정됐다는 점 등 한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제 사회주의 요소들의 파괴를 막아내고 사회주의 혁명정신을 부활시키는 것은 중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본주의적 요소의 발전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으며 역사발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더 발전해야한다는 논리는 중국에서 거대한 자본가계급의 자본의 축적과 노동자계급의 빈곤의 축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의 모순에 의해 그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중국에서도 중국사회의 성격이 자본주의의 축적의 심화와 그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빈곤화가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되고 있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중국에서 필요한 것은 극대화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투쟁이다.



중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경험했던 역사가 있다. 이제 그 역사의 오류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중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쏘련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화가 쏘련 사회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에게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역사발전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혁명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중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중국사회의 역사에서 중대한 역할과 위상을 가지고 있는 마오주의를 발전시켜 다시 한 번 사상적 무장을 해야 한다.



지금 중국에서 문제의 핵심은 중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이 계급의식으로 깨어나서 혁명정신을 부활시키는 것에 있다. 지금 중국에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개혁, 사회주의 부활이 필요하다.<노/정/협>



http://lmagit.jinbo.net/bbs/zboard.php?id=newspaper&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l1=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28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769 [노정신 99호] 보시라이 재판과 충칭모델의 정치적 의... 보스코프스키 2013-11-24 1702 707


우 156-060)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435번지 진안상가 나동 2층 (신주소: 노량진로 22길 33) 
(전화) 02-790-1917 / (팩스) 02-790-1918 / (이메일) wissk@lodong.org
Copyright 2005~2022 노동사회과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