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이번주는 4.27 재보선 선거가 있었고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을 마치고 오늘 방한을 하였습니다. 빠른 정세의 변화와 흐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재보선 선거의 결과에는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민심이 잘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과 실망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민들의 기대와 바람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발전되어 역사의 진보를 견인하는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에 부모님과 동생이 다녀간 이후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일상적인 면회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에 속에 담아둔 말은 할 수도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편지 역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합니다. 직접 얼굴을 보니 표정과 느낌이 생생이 전해지므로 쉽게 공감할 수 있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요.

나는 그대로이고 의식과 생각 가치관이 변화하지 않았는데, 나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태도와 시각들에서 많은 변화를 보고 충격이 컸습니다. 장기 징역을 마치고 출소하면 현실과의 괴리감이 더 클 것 같은 예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의 가치와 생각들이 가족들에게조차 비현실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면서 매우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왜 우리들은 이상을 꿈꾸고 그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노력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무시하고 오직 주어진 현실에 잘 따라가는 삶만을 인정하려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스스로 묻게 되더군요. 그래서 내면 깊숙이 더 들어가게 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입니다.

요 며칠 깊은 고민을 하면서 문득 스스로가 ‘가볍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갇혀있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박탈감 때문에 차분하게 행동하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옥의 조건 즉, 불평등하고 구조적으로 제약받고 있는 조건을 무시하고 남을 설득하려는 것 자체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부한 것으로 보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득하고 설명하고 그래서 평가받으려는 것은 별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최 동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털어 놓고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속에 묻어둔 말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최 동지와 함께 현재와 미래의 “희망”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 치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실력을 키우고 기초를 튼튼히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인도 독립투쟁의 역사 번역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의지와 결의를 다짐합니다.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지만 최 동지와 노사과연 동지들의 지혜와 힘을 모으면 우리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넘어져서) 부러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춤추기를 배울 수 없다”라고 하셨지요. 우리 주저하지 말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힘있게 시작하는 거에요. 저는 이미 시작을 했습니다. 비록 ‘번역’ 일이지만 저에게는 전투입니다. 전투에서 이겨야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동지 최상철을 생각합니다.

이병진 올림. 2011. 4. 28.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어린이날인 오늘 날씨가 화창합니다. 잊으려 애쓰지만 아이들 생각에 먼 하늘을 자꾸 바라봅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아이들과 생이별을 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립고 보고 싶군요. 아빠 없이 크는 아이들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하고 보상해주어야 할지 막막한 가슴입니다. 이렇게 5월을 맞이합니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이 서로 화해하길 바랐는데 냉랭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5월 4일자 ≪한겨레≫ 신문을 보니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구속되고¹⁾, 농협의 전산망 해킹도 이북의 소행이라고 검찰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살벌한 기운마저 느껴지네요. 요즘에 느끼는 바이지만, 남과 북의 갈등과 대립의 불신이 너무도 깊고 크다는 것을 봅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며칠 전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중국이 이북의 나진 선봉 지역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50년 동안 항구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중국이 나진·선봉항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깊은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동북아 지역에서의 중국의 전략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한 미군의 성격이 ‘전략적 유연성’ 개념으로 바뀌면서 활동성이 높아지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진·선봉 지역을 개발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전략도 크게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일본은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발전전략을 세우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명치유신의 국가발전 모델로는 더 이상 전망이 없다는 것을 본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의 확보와 자원의 공급처를 찾아야 합니다. 섬나라인 일본의 특성상 대륙으로의 진출이 숙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의 하나인 나진·선봉 지역을 중국이 선점하는데 눈뜨고 보고 있으니 심각한 고민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진해일 피해와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후유증도 복구를 해야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외교적 견제도 한계가 있을 거에요. 바로 중국이 이 기회를 포착하여 전격적으로 나진·선봉 지역을 선점하여 일본을 압박하고 미국을 견제하려는 것이 아닐까라고 추론합니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우리나라는 중국의 힘에 동의하거나 반대로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시각에서 먼 안목으로 동북아의 정세변화를 예상한다면 감정과 이념적 편향에서 벗어나 냉철하고 객관적 시각과 안목에서 정세를 분석하고 파악하고 이에 대비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일본은 남방의 해양으로 진출하느냐 대륙으로 진출하느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대륙진출은 어려울 것이고 남방의 해양축으로 활로를 찾겠지요. 그런데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은 사실상 중국의 영향력 때문에 큰 이익이 없고, 결국 인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2009년 4월에 동경대의 역사학과 교수인 미즈시마 교수님의 초청으로 동경대에서 1주일 정도 지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경북대 동아시아 연구소 연구원 자격으로 체류하면서 일본과 한국의 인도연구자들의 교류와 공동연구를 위한 방안들에 관해서 일본 학자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때 일본이 인도에 매우 큰 관심이 있음을 알았지요. 일본은 인도 관련 연구자들이 500 명가량 된다는 말을 듣고 부러우면서도 놀랐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도 엄청 많았습니다. 한국에는 인도 연구자들이 20~30명에 불과합니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지속된다면 한국의 기업들도 대륙진출의 꿈을 접고 인도로 진출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일본과 경쟁하게 되겠지요. 현재 몇몇 대기업이 순발력을 발휘해서 일본보다는 조금 앞선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그건 제조업기반이 워낙 취약한 인도의 특수성 때문에 잠시 반짝하는 특수일 뿐 중장기적인 접근 전략이 없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인도에서 한국기업은 일본에게 밀리고 말 것입니다.

인도의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4월 18일에 인도 마하라스트라 주의 자이타푸르 지역에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에 인도 경찰이 실탄을 쏴서 주민 1명이 사망하였습니다. (≪한겨레≫ 신문 4월 20일자) 이 사건은 경제 발전을 힘으로 다그치려는 인도 정부의 모습을 잘 드러낸 것입니다. 특히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인도와 미국의 관계 개선을 이끄는 중요한 매개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 사건의 파장이 가볍지 않습니다. 인도는 1974년 핵실험을 하여 핵기술과 관련해서 미국으로부터 통제를 받아왔습니다. 인도는 여전히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핵자주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인도와 미국이 정치적 타협으로 2008년 미국-인도 핵협정을 맺고 인도는 본격적으로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는 6곳에서 20개의 소형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여 4,780MW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데, 전체 전력 생산의 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32년까지는 63,000MW의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 한다고 합니다. (Korea Herald, 4월 20일) 엄청난 계획입니다.

자이타푸르 지역의 주민들은 2006년부터 원자력 건설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곳에 인도 원자력에너지부(the Department of Atomic Energy)의 하청을 받은 인도 원자력 회사(Nuclear Power Corporation of India Ltd.)가 1,65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6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정부가 높은 가격으로 토지를 보상하려는 데도 토지소유자들의 95%가 반대하고 있으며, 인근 지역의 어민들과 농민들까지 동참하여 매우 광범위한 반대운동으로 조직되고 있습니다. 비옥한 토지와 쾌적한 자연환경으로 망고농사와 어업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주민들이 생활터전을 잃고 쫓겨난다는 불안감에 크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하라스트라 주정부의 산업장관인 나라얀 라네(Narayan Rane: 전(前)주수상 역임)는 “외부세력”의 개입을 운운하며 마하라스트라의 낙살라이트들이 활동하는 콘칸(Konkan) 지대와 동일시하여 탄압하고 있습니다. (EPW, 2월 19일자, 11쪽) 생존을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풀뿌리조직 차원에서의 반대운동과 환경을 보호하려는 시민활동가들을 ‘외부세력’과 급진적인 낙살주의자로 몰아서 반대운동을 강경하게 탄압하려다가 무고한 주민을 경찰이 살해한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는 5개 지역의 마을 빤쨔야트(마을 자치기구)에서 주민들의 만장일치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반대했음에도 주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려는 것이고 그 배경에는 연방정부가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핵에너지 정책은 매우 강경하게 추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의 경제 발전속도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산층들의 전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도 중산층들의 달아오른 소비욕망 때문에 발전소 건설 속도를 늦추거나 소비욕구를 줄이라고 하는 식으로 통제하기는 이미 어렵다고 봅니다.

저는 인도의 변화를 보면서 발전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라는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사람들을 물질의 노예로 만드는 것에 불과한 건 아닌지…… 인도의 사례를 보면, 도시에 사는 중산층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근 농촌지역의 주민과 자연을 무참히 짓밟고 파괴하는 것에 불과할 뿐, 즉 누군가의 희생과 자연파괴를 전제로 한 욕구의 충족이 진정한 의미의 발전일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인도와 미국이 원자력 협정을 맺었지만, 인도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는 이상 미국의 핵통제력은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이북, 파키스탄, 이란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인도에서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추세와 동향은 국제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은 인도 이야기를 많이드렸습니다. “인도의 독립투쟁사” 번역본도 함께 보냅니다. 부족하지만 읽어보시고 수정·보완을 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제1장 소개글인데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제가 번역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여― 문장이 매우 어눌하고 서툽니다. 비판과 조언을 해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책을 번역하면서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을 정리해봅니다. 역사는 ‘변화’하고 다양한 방식들의 세계를 “해석”할 뿐 궁극적 진리를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상부구조가 있고 지배 피지배 관계의 계급투쟁이 역사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올바른 이해입니까? 책을 읽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는데, 맑스는 1848-50년 프랑스 혁명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인식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계급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1848-50년 혁명이 맑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앞으로 번역을 진행하면서 흥미로운 질문들이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1. 5. 5.

늘 저를 걱정해주시는 이병진 동지께.

안녕하세요. 연구소 창밖에 연보라빛 목련이 피어 봄을 알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다 지고 벌써 여름에 접어들었는지 낮에는 제법 더워지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 아마도 비가 개이면 초여름에 돌입할 것만 같습니다.

편지를 오래 기다리셨을 텐데 많이 늦었습니다. 노동절 투쟁 관련 내용들을 정리하고 편지를 씁니다. 동지께서 정신분열증에 걸릴 것 같다면서도 저의 신경쇠약을 걱정해주시니 감사하고 또 죄송스럽습니다. 조언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럴 때는 자신의 의식을 자신의 몸이 있는 곳에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물론 동지께서는 밖의 정세를 생각하고 또 가족과 다른 동지들을 생각하시느라 그러기 힘드시겠습니다만 일단 동지가 건강해야지 다른 일도 차근차근 풀려나갈 것 같습니다. 책을 전하는 문제 때문에 가족들과 오히려 더 마찰이 생기게 되는 것 같아서 안쓰럽고 너무 제 입장만 내세운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책이 급한 것은 아니니 최우선적으로는 동지의 건강을 돌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관계가 회복된다 싶으면 차근차근 진행해주세요. 몇 년이 걸리더라도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반도(혹은 조선반도) 정세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식견이 좁아 쉽사리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북미 간 대화를 위한 막후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평도 교전 이후의 극한적인 대립은 일시적으로 완화된 것 같습니다만 호전적인 남쪽의 분위기는 여전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연평도, 백령도에서는 5월말 해상사격 훈련이 예고되어 있으며 서해상에서 군사훈련은 줄을 지어 예고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4월 26일 “핵발전과 핵무기 없는 세상,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토론문을 보내드립니다. 조금이라도 현 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이 또 터졌습니다. 잠시 긴장을 늦추면 계속 새어오네요. <6·15청학연대>를 겨냥한 연행, 압수수색이 5월 4일 아침에 있었습니다. 14명이 연행되었는데 연행된 동지의 가족 중에는 임신하신 분도 있습니다. 당시의 충격이 대단했을 텐데 별 탈이 없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관련 기사를 출력해 보냅니다.

인도 정세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서, Front Line(vol. 28, 5월 7일 발행)온라인 기사를 몇 편 출력해 보냅니다. 자세히 검토하지는 못했지만 선거 이야기도 있어서 약간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찾아보니 인도 관련 논문파일들이 좀 있습니다. 차근차근 출력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CPI에서 출판한 A. B. Bardhan의 “Economic Growth, Development and Empowerment”와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 2006년 3월 15일에 실린 번역논문 “미국이 인도의 ‘강대국 야망’을 부추기는 이유”를 보내드립니다. 또 ≪매일 경제≫에 실린 최근 기사 두 편을 보내드립니다.  인도에서 포스코의 제철소 건설이 승인되었다는 내용이 있으니 도움이 되실 겁니다.

동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인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합니다. 좀 쉽게 접근해 보기 위해서 인도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을 몇 편 구해보았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에 책으로 접하는 것보다 영상이 아무래도 전체적인 조망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BBC에서 방영된 India with Sanjeev Bhakar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EBS에서 번역해서 <천의 얼굴 인도>라는 제목으로 2007년에 방영을 했더군요. 일단 뭄바이 편을 다룬 1편을 보았습니다. 시각이 아쉽기는 합니다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잠깐 스쳐지나갔습니다만 한국처럼 강제철거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더군요. 동지께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출옥하시는 그날을 위해 인도 관련 영상들을 지우지 않고 보관하겠습니다.

감옥에서 보내주시는 번역문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교정작업을 거쳐서 6월호부터 연재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Sub-inspector 자료는 동지가 보내주신 “마오주의자들의 폭력에 대한 사회학적 질문” 초역문에서 이 항목에 대해 정확히 번역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참고로 보내드린 것이었습니다.

≪자본론≫ 학습에 도움을 드려야 할 텐데 당장 책을 보내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연구소에는 ≪자본론≫ 보관본이 있긴 합니다만 독어 원전과 펭귄출판사 영어판 그리고 연구소에서 참고용으로 보관하고 열람해 보는 책이라 대여하기가 현재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제 책도 있습니다만 ≪자본론≫은 언제 든 참고용으로 필요한 책이라서요. 구입해서 보내드리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7월에 새로운 세미나를 개시하면서 비봉출판사판 ≪자본론≫을 공동구매를 합니다. 그러면 저렴하게 구입해서 동지께 보내드릴 수 있으니 조금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은 채만수 선생님의 ≪노동자교양경제학≫을 보시면서 개관을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자본론≫의 내용에 근거하고 있는 독립된 저작으로 연관되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동지께서 꼭 지금 보시고 싶다고 하시면 ≪자본론≫의 앞 부분만이라도 복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론지 ≪노동사회과학≫ 4호가 노동절에 맞추어 나왔습니다. 동지께 ≪정세와 노동≫ 5월호와 함께 보내드립니다. 동지께 보내드릴 원서를 더 구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한 달 정도 뒤에는 보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잔소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만 반복합니다. 우선 동지의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돌보시길 바랍니다. 김남주 시인의 “건강만세 1”을 보내드립니다.

건강만세 1  

건강 나빠지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만사가 귀찮은 것이다

머리맡에 꿀단지가 있어도

쓰디 쓴 한약 단지로 보이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연애처럼 재미있는 책도 집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먹지 않으면 죽는 줄 익히 알면서도

밥마저 웬수로 보이는 것이다

차라리 누운 채로 죽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동지여

철창 속에 얼음장 같은 마루 위에

가마니뙈기 한 장 깔고

외로이 앉아 있을 동지여

닭도 오리도 소도 고양이도 그런 곳에 갇히면

사흘이 못 가 죽고 말 것이라는

그런 풍문이 들리는 그런 곳에서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살아 있는 한

영원히 갇혀 있을 줄도 모르는 동지여

건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오 전사는

어디를 가나 싸우는 사람이라오 숙명이라오

썩은 음식과 싸우고

모자란 운동시간과 싸우고 여름이면

뼁끼통의 구더기와 싸우고

모기와 빈대와 파리와 쥐며느리와 싸우고

겨울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얼음을 깨고

추위와 싸워야 한다오 냉수마찰로

그러니 동지여

손발을 움직이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오

그것은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이적행위라오

적은 우리를 아주 없애버리고 싶었던 것이라오

체포고 뭐고 조사고 뭐고 재판이고 뭐고

투옥이고 뭐고

현장에서 드르륵 갈겨버리고 싶었던 것이라오

그렇지 못했을 뿐이라오 그것이 한이라오 그들에게는

그래서 그들은 그대를 그런 곳에 처넣고

시름시름 앓다가 병사하거나 그냥

자연사하기를 바라고 있다오

온몸이 나른하게 풀어지는 해빙의 봄이오

몸과 마음에서 긴장을 풀어놓지 마오

방심이야말로 최악의 적이라오

건강 만세 !

5월 6일

 상철 드림.

이병진 동지께.

오늘 오전 11시에는 강제철거와 대명건설 자본의 만행에 맞서며 7년 동안 농성 투쟁을 해오시고 42일 째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계시는 행신동 철거민의 기자회견에 들렀습니다. 사태에 책임이 있는 고양시장 최성이 민주당 소속이기에 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힘없고 빽없는 철거민의 투쟁인지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에 연대하러 온 스무 명 남짓한 동지들을 중심으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끝나고 책임있는 민주당 관계자의 면담을 요청했는데 정문을 막아선 경찰들만이 떡 버티고 있더군요. 저는 중간에 연구소에 돌아왔는데 전해들은 바로는 나중에서야 형식적인 면담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편지에 이어 인도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2회에 걸쳐 연재된 CPI(M) 강령에 대한 소감을 전합니다. 독립 이후의 인도 현대사의 전개와 이에 대한 사회·경제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기에 인도사회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는 강령입니다. 또 20세기 사회주의의 긍정적 역할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CPI(M)이 중쏘 분쟁 이후 쏘련 측에 많은 부분 의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쏘련 수정주의에 대해 명확하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연구소 권정기 동지께서는 강령에 대해(특히 5월호 연재분) 민주노동당 수준의 강령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며 실망을 토로하셨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가혹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저도 이에 대해 공감합니다. 구체적인 변혁 전략 전술에 있어 문제점이 드러나는데, 의회를 비롯한 제도권 내의 개량 외에는 상상력이 빈곤한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서벵갈, 께랄라, 뜨리뿌라 3개 주 집권에 안주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EBS에서 2007년 11월 20일에 방영한 ≪아시아테마기행≫ 12회 <인도의 향기-코친>을 보았습니다. 께랄라 주의 코친 여행기를 담은 내용인데, 께랄라 공산당사를 방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강당 앞쪽에는 낫과 망치가 선명한 붉은 깃발과 함께 맑스, 엥엘스, 레닌, 스딸린, 그리고 보통은 마오쩌둥이 걸리는 자리에 인도의 공산주의자 라나디베(B. T. Ranadive)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인상적인 모습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인도의 타지역과 달리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었고, 또 하나는 길 거리의 아이들이 관광객들에게 펜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한국에서는 미군이나 서양인들에게 “기브 미 초콜렛”을 외쳤던 것과 달리 화면에 등장한 아이는 공부를 하기 위해 펜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CPI(M)이 집권한 지역에는 문맹률도 낮고 주민 의식수준도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것을 보다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상에서 본 바로는 코친에는 대공장이 거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또 주민 다수는 농업과 어업 및 그를 이용한 1차 가공업에 종사한다고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동지께서도 CPI(M)이 집권하고 있는 지역의 경제적 낙후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다수의 노동자계급 대중을 조직화하여 인도 전역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CPI(M)이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인도 전체 사회의 사회주의적 변혁을 실제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당으로 거듭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CPI(M) 내의 노선투쟁과 좀 더 원칙적인 인도 사회주의 세력의 CPI(M)에 대한 비판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연구소 홈페이지에 “마오주의자들의 폭력에 대한 사회학적 질문”을 업로드 한 이후 제가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습니다.

“사미트 카 교수는 중국 공산당과 대비하여 인도 마오주의자들이 토지 개혁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공산당이 전국적인 권력을 장악한 중국과 소수지역에서 게릴라를 펼치는 인도의 경우를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편집자 주로 추가했어야 했는데 누락되어 댓글로 남깁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토지개혁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이 아니라 토지개혁에 대한 생각자체가 없고 따라서 강령에서조차 표현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이들은 무정형적으로 생겨난 자생적 폭력집단이며 이것이 마오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상 무관하다는 것, 여기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없어야 된다는 것, 그리고 그 기반은 도시가 아닌 농촌의 빈곤이라는 것이 본래의 주장이라 보입니다만.”

여기에 대해 제가 다시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요지는 리타 카나의 “마오주의자와의 전쟁”에서는 인도 마오주의자들이 분명한 토지 분배에 대한 이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서술했는데 이것은 사미트 카의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때문에 무엇이 정확한 사실인지 검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미트 카 교수는 마오주의자들을 갱단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도 그러한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인도의 마오주의자들의 성격을 단일한 것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인 흐름은 분명히 있지만 그 안에 무수한 분파들이 있으며 각각의 양상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칫하면 일부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침소봉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 마오주의자들의 투쟁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농촌을 기반으로 한 게릴라 투쟁 전략’은 명확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사미트 카는 그래도 양심이 있는 학자인 것 같습니다. 또 시력을 잃은 이후에도 왕성하게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점은 타의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강단 좌파들에게서 드러나는 한계점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노동절에 받은 유인물 중에 인도 포스코 제철소 건설에 맞서는 인도 오리사 주민들의 투쟁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용산의 비극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노동탄압, 인권유린, 환경파괴, 강제철거위협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국제민주연대>에서 발간한 것으로 보이는 유인물이며 동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기에 편지에 동봉하겠습니다. 또 인도 봉건제 관련한 영문자료도 동봉합니다. Harbans Mukhia와 R. S. Sharma의 것인데 단행본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인터넷 ≪조선일보≫ 기사 중에 인도의 ‘한류’에 대해 다룬 것이 있습니다.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만 동지에게는 조각조각의 단편 기사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동봉합니다.

레닌이 아끼던 쏘비에뜨 시인 제미안 베드느이의 시로 마치겠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군요.

내 노래는 순박하다

벗들아, 나는 영광을 위해,

가벼운 오락을 위해,

마음의 위안을 위해 쓰지는 않았다.

나는 부드러운 피리로

달콤한 룰라드나

휘파람새의 트레몰로를 노래하진 않았다.

내 노래는 순박하고 투박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내 노래를 썼다.

내 시는 피리가 아니다.

착취와 약탈을 일삼은 무리들과의

결정적인 전투에 당신들 모두를 내몬 나팔이었다.

나는 피투성이 격투의 마지막 전사는 아니었다.

내 노래는 순박하고 투박하다.

때문에 내 노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는다.

나는 준엄한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확고하게 나름의 길을 걸어왔다.

동지들, 나는 당신들과 함께 걸었고, 당신들과 함께 걷고 있고,

함께 걸어가리라……내가 죽을 때까지!

(출처: 이항재 옮김: ≪소련현대시선 ―사랑과 자유와 혁명의 시≫, 장백, 1989, p. 89.)

2011년 5월 9일 저녁에

상철 드림

나의 동지 최상철님께

이번 주에는 최상철 동지에게서 2번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30권 이상 도서를 반입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책을 밖으로 보내고 보내주신 책을 수령하느라 어제서야 ≪노동자 교양경제학≫, ≪맑스주의 역사강의≫, ≪정세와 노동≫ 4월호를 수령하였습니다. ≪정세와 노동≫ 5월호와 ≪노동사회과학 4호 ―20세기 사회주의와 반혁명≫은 오늘 도착했다는 영치품 접수표를 받았습니다.

≪정세와 노동≫ 4월호에 실린 “마오주의자들의 폭력에 대한 사회학적 질문”의 번역글을 읽었습니다. 편집자 주를 통해서 저에 대한 연대의 뜻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글을 읽고 낯이 붉어질 정도로 창피하네요. 문장들이 말끔하지 않습니다. 문장력이 쉽게 향상되지 않습니다. 단어나 어휘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동안 소홀하였던 글쓰기와 국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습니다.

인도 맑스주의 공산당²⁾ 강령 번역을 잘 해 주셨네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는 참으로 능력있고 뛰어난 동지들이 많이 계십니다. CPI(M) 강령에 대한 최 동지와 권정기 동지의 소감에 저도 동감합니다. 특히 권정기 동지께서 “민주노동당 수준의 강령” 같다며 실망하신 점에 대해서 이해합니다. 보다 냉정히 이야기하면 CPI(M)은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의 정세에서는 CPI(M)이 인도 전체 사회의 사회주의적 변혁을 실제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부르주아 의회주의를 인정하고 선거에 의한 합법적 방법으로의 정권수립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인도는 형식적으로 연방제이지만 내용은 중앙정부의 강력한 힘으로 통치하는 중앙집권제 방식의 연방제 국가입니다. 주정부가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주정부를 운영하기에는 제약이 많을뿐더러 중앙정부가 임의로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주정부를 해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기 때문에 주정부의 힘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께랄라 인민들이 사회주의 정부를 바라기 때문에 CPI(M)을 지지하여 주정부를 구성하였지만, CPI(M)의 집권 세력들은 중앙정부와 타협하고 협조해야 현실적으로 주정부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계급적 관점에서 강경한 투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2011년 5월 12일

오늘은 5월 16일입니다. 지난 주에 번역글이 마무리되지 못하여 편지를 못 보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하셨다면 안심하십시오.

오늘은 운동시간 내내 좁은 운동장을 열심히 달려 흠뻑 땀을 흘렸습니다. 최 동지의 편지 받고 체력을 잘 유지하고 지켜야겠다고 다짐하였지요. 운동도 전쟁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하게 되네요. 그래도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까 가슴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건강은 양호한데 오랜 시간 앉은 자세로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허리가 아파요. 책상과 의자에 앉아서 연구하면 참 좋겠습니다. 가끔 허리가 아플 때는 속이 상합니다.

제 방은 2명이 사용하는 방인데 저는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제 방이 점점 연구실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책과 자료들이 감옥이 아닌 연구실로 만들어줍니다. 책과 자료들이 저의 친구들입니다.

≪노동사회과학≫ 4호와 ≪정세와 노동≫ 5월호를 오늘 받았습니다. ≪정세와 노동≫을 받아 들고 가슴이 젖어드는 연구소 동지들의 열정과 사랑을 느낍니다. 저에게 다정다감하신 권정기 동지께서 건강이 호전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염려스럽습니다. 몸이 아프시면서도 ≪정세와 노동≫ 4월호에 “리비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규탄한다”라는 글을 통해 현 시기 국제정세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 주셨습니다. 문영찬 동지의 글도 현 정세에서 매우 의미있는 글을 쓰셨습니다. 요즘 문영찬 동지의 글들을 주의 깊게 읽고 있습니다. 연구소 동지들의 도움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도 맑스주의 공산당 강령, 인도 맑스-레닌주의 공산당 강령³⁾, 인도 마오주의자들의 활동, 미국-인도 핵협정에 관한 글들이 소개되었고 인도 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인도 연구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초보적인 단계라서 인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가는 중이지만, 조금 지나면 우리의 시각에서 독창적으로 인도를 분석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지난 주에 보내주신 자료들과 소감들은 다음 편지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정세와 노동≫ 5월호와 ≪노동사회과학≫ 제 4호를 받고 반가움과 동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안부 인사를 여쭙는 편지를 보냅니다. 혹독한 시련의 시기임에도 연구소 동지들께서 ‘이론’을 무기로 갖은 난관을 혁명적 의지로 돌파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뭉클한 감동과 용기가 생깁니다.

이병진 올림

2011. 5. 16.

최상철 동지께

오늘은 인도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얼마전 인도의 5개 지역의 지방 선거에서 인도 국민회의당이 압승하였습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서벵갈과 께랄라 주(state)에서 맑스주의 인도 공산당(CPI(M))이 패배하였습니다. 인도 국민회의당이 2009년 중앙정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데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하여 이후 다른 지역에서 치르게 될 지방정부 선거에서도 유리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1991년 경제자유화 정책을 실시한 이후 지지부진했던 경제발전 정책을 중앙정부의 힘으로 밀어부칠 정치적 힘이 커졌습니다. 그동안 맑스주의 인도 공산당은 강력한 야당으로 자립적 민족 경제 발전 전략에 따라 다국적 기업과 외국 자본을 반대하였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로 야당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었습니다. 중앙정부는 보다 과감한 외자유치와 경제발전 제일 우선 정책을 집행하고 권위적인 방법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리사의 포스코 일괄제철소 사업은 빠르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2015년 착공을 목표로 하는 LG화학의 종합 플랜트 화학공장 설립계획도 순조로울 것 같군요. 한국의 대기업들이 인도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보입니다. 인도 인민들의 입장에서는 물밀 듯이 들어오는 외국 기업들 때문에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향상되겠지만, 그 혜택은 교육수준이 높은 중산층들에게 돌아갈 뿐 농촌지역의 빈농과 농업노동자들 그리고 도시의 빈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지고 노예적 삶을 살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주관적 생각에 불과하지만 냉전 이후 불안정했던 아시아의 정세가 차츰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북아시아의 4개 판이 맞부딪치면서 충돌하고는 했는데 이제서야 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1991년 쏘련의 해체는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미국도 당혹하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유일한 강대국이라는 사실에 한껏 고무되었지만 어떻게 새질서를 만들고 재편할지에 대해서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 일본, 인도,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세세한 조율이 미진하였습니다. 미국이 당장에 돈이 되는 걸프 전쟁에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 문제가 엉뚱하게 북핵위기를 통해서 불거져 나왔는데, 북핵문제의 본질은 이들 국가들이 미국의 핵통제력에 대항한 것이었고 이북은 거기에 떠밀려간 것입니다. 1995년도에 2차 세계대전 이후 40년간 유지한 포괄적 핵실험금지협약의 연장을 놓고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이북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복귀시키는 게 필요하니까, 극적으로 스위스 제네바합의를 이북과 미국이 체결한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때까지도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조셉 나이⁴⁾ 같은 학자는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이 점차 중요하다고 하였지만 중국, 인도, 일본과는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지가 않았습니다. 아마도 미국은 중동에서의 석유이권을 제일 먼저 챙기고 쏘련의 해체에 따른 중앙아시아의 공백을 메우고 그 기반을 공고히 한 이후 중국, 인도, 일본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을까라고 추론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중앙아시아 진출을 너무 거칠게 서두르다 보니 아랍의 근본주의자들까지 자극하여 2001년 9·11 테러를 불러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 2001년에 9·11 테러가 일어났는지 저로서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당시의 국제 정세의 흐름을 볼 때 그와 같은 엄청난 테러를 불러올 만한 일들은 없었거든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한 이해를 못했을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 특히 아시아 전략이 구체화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미국과 인도의 2007년 핵협정 체결에서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미국-일본-인도를 연결하는 대중국 압박 전략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대응이 주목됩니다. 원래 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통해 중국-러시아-인도-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동맹을 구축하여 미국에 대응하려고 했는데 미국이 인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상하이 협력기구의 작동은 어렵다고 예상됩니다. 그래서 중국은 전략을 바꾸어 창춘-지린-투먼 경제특구를 개발하여 사실상 일본의 명줄을 끊어 놓고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을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에 러시아의 정보 당국 고위인사가 이북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21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격 방중을 한 일은 이미 북·중·러 사이에 깊은 전략적 공감대를 나눈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도 일본과 연해주의 영토분쟁이 있기 때문에 일본을 견제할 필요가 있고 중국의 전략은 러시아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일본 민주당 정권이 초기에 중국에 붙었다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다시 미국에 붙었다가 했는데, 현재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중국이 일본을 얼마나 업신여겼으면 일본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승인해 주었겠습니까.

일본은 1980년에 이미 인도 지역 연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인도 진출을 미적거리는 이유는 인도보다는 만주·시베리아 지역의 자원 시장에 관심이 크다는 것이지요. 일본은 2차대전 시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워 대륙이 아닌 남방지역보다는 대륙이 더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정세가 지속되어 역학관계가 굳어진다면 6자 회담은 별 의미가 없어질 것 같습니다. 현정부의 대북압박정책이 과연 현실성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 같습니다. 지금 일본의 처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크게 듭니다.

이병진 올림

2011. 5. 22.

여름의 길목에서 이병진 동지께.

안녕하세요. 격리된 상황에서도 외부와 소통을 갈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여러 의문을 던지시며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시는 동지께 항상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동지의 편지는 열려 있는 바깥 공간에서 충분히 활동하지 못하는 저를 꾸짖는 것으로 들릴 때가 많습니다. 동지와 서신교류가 있었기에 제 활동을 객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기별이 늦었습니다만 다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지와 연대를 고민하는 바깥의 동지들이 대책모임을 위한 초동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모임의 구성이 된 것도 아니고 대략 초벌적인 상에 대한 이야기만 논의한 것입니다만 조만간 형식을 갖추게 될 것 같습니다. 시작은 미약할 수 있습니다만 동지의 노력의 결과물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임의 구성과 성격이 갖추어지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임에서는 우선적으로 동지의 사건에 대한 재규명을 하고자 합니다. 동지께서도 조력을 해주셔야 하는데 동지 사건에 대한 법률적인 부분에 대한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사건번호, 당시 담당변호사와 연락이 가능한지 등등 기본적인 사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요청드립니다.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 제 의견을 여쭈어 본 동지께 이번에는 다소 불친절하게 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사적유물론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만 서신으로 말씀드린다면 다소 도식적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적유물론에 대한 쏘련 교과서들이 입문자들을 위해서는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만 제가 볼 때는 도식화의 위험성이라는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약점입니다. 대신에 이 문제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맑스주의 서적 엥엘스의 “공산주의의 원리”, ≪공산당 선언≫과 칼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 엥엘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대해 쓴 서평 그리고 레닌의 “칼 맑스”(≪정세와 노동≫, 2007년 10월, 11월호 연재분으로)를 복사·출력해서 보내드립니다. 기본적인 책이라 동지께서 이미 보신 것들이 많겠습니다만 감옥에서 읽게 되면 달리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깊이 공부하시려면 더 많은 저작을 읽고 그것을 실제 역사적 사실과 연관지어 숙고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만 우선은 이 정도로 시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직접 원전을 대하는 것은 시간도 걸리고 번거로운 일입니다만 이럴 때는 급할수록 돌아가시는 것을 권합니다. 연구소에서 기초 철학쎄미나 교재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유물론을 다루고 있는 쏘련 흐루쇼프 시대 3권짜리 ‘교과서’인 ≪세계철학사≫를 쓰고 있습니다만, 동지는 오래도록 엄밀하게 학문을 추구하실 것이니 험한 가시밭길을 걸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내드린 것을 다 읽으시면 맑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 레닌의 ≪국가와 혁명≫, ≪제국주의론≫ 그리고 7월 하순 경 공동구매해서 보내드릴 ≪자본론≫을 읽으시면서 차근차근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동지의 생각을 정립해가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자본론≫ 총 3권 전권이 다 필요하신지 아니면 우선 1권만 필요하신지 알려주세요.)

연구소에서 인도 관련 영문 서적이 하나 더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역시 PPH에서 출판된 N. K. Sarkar의 Social Structure and Development in Asia입니다. 오랫동안 먼지가　쌓여가는 책이 동지덕분에 숨결을 되찾고 있습니다. 또 한 인터넷 헌책방에서 인도 관련 국내서적이 보이기에 주문했습니다. 신간 단행본들을 서점에서 구입해 보내드려야 하는데 연구소 재정상 헌책을 위주로 보내드리는 점을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3세계 문화총서.4] 인도의 독립운동≫

≪[대우학술총서.인문사회과학.79] 인도사≫

≪대세계의 역사 ⑩ - 인도와 중근동 . 극동의 근대≫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세계사 편력 - 인디라 간디를 7억인도의 지도자로 이끈 네루의 옥중서간≫

≪영국의 인도 통치 정책≫

≪[GREAT AGES OF MAN:라이프인간세계사] 인도≫

≪[평단 동서문화시리즈 ⑧] 인도로 가는 길≫

≪[라이프 제2차세계대전] 중국-버마-인도≫

≪[소설가 이진우의 인도읽기] 겨울인도(Winter India)≫

≪[동아월드투어가이드 5]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이 중 ≪[동아월드투어가이드 5]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는 제가 연구소에 비치 해 놓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관광 가이드 책자가 초심자에게 해당 국가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더군요. 그놈의 30권 제한이 늘 문제네요. 혹시 당장 보시지 않아도 되는 책이나 필요없는 책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빼고 보내드리겠습니다.

책을 주문하면서 북녘의 문예 예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서적 몇 권을 같이 주문했습니다. 당장 볼 것은 아닙니다만 언젠가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그 쪽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공부하고 또 그것을 공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니 이것은 그냥 훗날의 과제로 계속 미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시대가 엄혹해진다면 이런 책을 구입 소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절로 다시 돌아갈지 모르겠습니다. 청사출판사에서 1990년에 간행된 ≪민족소설선 5≫의 편집위원 간행사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는 지난 70년대의 긴급조치 하에서 그리고 소위 5공치하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판매금지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87년 6월의 민중항쟁은 이러한 판금을 철폐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벽초 홍명희·민촌 이기영을 비롯한 월북작가들, 정지용·김기림 등의 납북작가들, 백석 같은 재북작가들의 작품을 해금하는 승리를 아울러 쟁취하였다. 또한 김학철·이은직·김석범·이희성 등 해외동포 작가들의 작품이 출판되기 시작하였고,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이기영의 ≪두만강≫과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이 간행되고 ≪피바다≫, ≪꽃파는 처녀≫ 같은 북한문학의 고전들조차 공공연히 서점가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충격적인 사태발전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실상 따지고 보면 이렇게 충격으로 느끼는 일 자체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엄혹하게 금기문화에 길들여져 왔는가, 다시 말해 반민족적 분단문화가 얼마나 철저히 내면화되어 있었는가를 반증한다고 하겠다.”

지금에서 보면 오히려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열려진 공간이 오히려 생소하게 보입니다. 끊임없는 자기검열을 강요당하는 시대이군요. 이런 책들을 소지하는 것도 지령을 받아서 그렇게 했다는 소설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현실 그 자체가 블랙코메디입니다.

국가보안법·공안탄압 관련 소식입니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 회원에 대한 공안탄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수원시민신문≫ 관련 기사를 출력해 보내드립니다. 그 외 국가보안법 관련 한 기사를 같이 보내드립니다. 

≪정세와 노동≫ 4월호에 소개된 “마오주의자들의 폭력에 대한 사회학적 질문” 번역 문제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번 연재된 번역에 문장이 어색한 것은 제 책임도 있기에 말씀드립니다. 이에는 제가 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책임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동지께서 수감 중이라는 엄혹한 조건에서 번역을 하시다 보니 밖에서 하는 것보다 좀 덜 엄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영어 실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배경지식도 많지 않아서 때로는 한 문장 번역하는데에도 몇 번이나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동지께서는 참고하실 자료가 사전을 제외하고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번역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간혹 동지께서 몇몇 문장이나 구절 혹은 단어를 빼고 번역하실 때가 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까지 살릴 필요가 없는 부수적인 부분일 때는 빼고 해도 무방합니다만, 제가 검토하면서 이 단어나 구절은 살려야 하겠다 싶은 것들이 있을 경우 제가 새로 번역해서 넣기도 했습니다. 저는 번역할 때 의미전달이 아주 힘든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직역을 하는 편입니다. (아주 엄밀하게 직역을 하시는 채만수 선생님 만큼은 아닙니다만...) 동지의 번역문에는 의역이 종종 보이는데, 의미 전달에 오해가 있겠다 싶은 부분은 제가 임의로 교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정 작업을 마감에 쫓기며 하다 보니 아무래도 어색한 문장과 같은 부분을 제대로 손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밖에 계신 분과의 작업이라면 교정본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고 원번역자와 동의를 구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동지에게 서신으로 다시 보내서 다시 회신을 받아 동의를 구하는 과정까지 진행하는 것은 저로서는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과정이 있어야 한다면 번역 발표도 상당히 늦어질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서로 간의 신뢰에 기초해서 초벌작업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간결과물을 놓고 보면 아쉬움이 크시겠지만 어디까지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진행해갔으면 합니다. 만약 단행본 출간 등 사후적으로 다시 교정을 할 일이 있다면 그때 보다 나은 문장으로 발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여담인데 어색한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니 저도 한 말씀 드리고 싶네요. 작가 조정래는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고 아직도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을 고집한다고 합니다. ≪문학동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히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컴퓨터로 글을 쓰는 작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이 채 완료가 되기도 전에 자판에 손이 먼저 나간다고 하는데 자신의 글은 문장 하나 하나가 엄밀하게 다듬어져야 하기에 그래서는 안 된다는 요지였습니다.⁵⁾ 제가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는 엄밀하게 보면 비문과 어색한 표현이 상당히 많을 텐데 자판으로 쏟아내는 글을 엄밀히 교정보지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조정래의 말이 일리는 있습니다만 여건이 안 되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문명의 이기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문장은 좀 더 신경써야겠습니다만... 조정래의 인터뷰를 보면서 동지께서 손으로 글을 쓰시는 것에 대한 고통과 노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담의 여담입니다만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우경화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세계사적 역사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후술할 여력이 될지 모르겠군요...

≪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 번역 연재와 관련한 말씀도 드리겠습니다. 동지께서 속도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르게 번역초고를 보내주고 계신데 교정 및 후반작업은 그것을 따라 잡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네요. 여태까지는 제가 동지와 서신 나누는 일만 하면 되었는데 교정 및 후반작업을 나눌 인력이 부족합니다. 타이핑과 같은 간단한 것들은 몇몇 동지에게 제가 그때 그때 부탁을 하고는 있는데 원문과 대조하며 번역할 작업을 나눌 이들이 부족합니다. 일단 6월호에는 서문과 1장까지만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동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점 거듭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시조 몇 편을 소개하면서 마칩니다. 출처는 2002년 개마서원에서 간행된 신현칠 선생의 옥중시조집 ≪필부(匹夫)의 상(像)≫ 2장 “딸린 목숨들” 143쪽입니다.

또 하나의 이산(離散)

이렇게도 갇히는가 묶이어 호송차에

아내는 날 잊은 듯 저만치 돌아섰네

검찰청 넓은 뜰 끝에 여인이 혼자 섰다

주) 1975년 8월 사회안전법의 감호처분(예방구금)으로 아내와 헤어질 때

가신(家臣)

옥에서 죽음 보고 가는 길 저무는데

두고 온 목숨들이 죽는다 울부짖음

좇아와 화살 꼽힌다 뽑고 그 자리를 핥는다

비정(非情)

내가 내 사는 값 누구 탓에 없건마는

날 사랑 탓 가련 인생 그 쓰라림 어찌 할까

저마다 이 세대 사는 값을 치룬다고 하여라

등불 ― 어린 아들에게

네 가슴 깊이 아비가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

그 말이 늙은 가슴에 켜주는 등불이라

아마도 아비도 너도 아닌 그 무엇 등불이라

주) 고교 2년생인 아들의 편지를 보고

자신감을 주시는 최상철 동지께

반가운 편지와 소식들 그리고 정성스럽게 복사하고 출력해주신 자료들 잘 받았습니다. 저와 연대를 고민하는 동지들의 대책모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에 놀랍고 기쁩니다. 제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스스로 반문하면서 동지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모임에서 제 사건에 대한 “재규명”을 하려는 일에 동의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을 뒤돌아보고 한계와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싶습니다. 제 사건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한다면 제 사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필요한 자료와 수사기록도 공개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공소장과 변론의 주요 내용 판결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저의 변론을 맡아주신 변호사님은 임00 변호사님입니다. 민변에서도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픈 과거를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차분하게 지켜볼 만큼 스스로 단단해졌습니다. 작년까지만 하여도 너무 경황이 없었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나의 진정성을 믿고, 중심을 잡아 일관성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약점이 많고 치부를 드러내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정치학자로서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 그러니까 전쟁의 두려움과 평화에 대한 저의 진심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제가 한 일들 모두에 대해서 올바른 것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답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오류를 찾아서 수정하고 이제부터라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8년이라는 징역은 저에게 값지고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초적인 맑스주의 서적들을 이번 기회에 심사숙고하며 읽어보겠습니다. 밖에서 읽었을 때와 감옥에서 읽는 책의 느낌과 깊이가 많이 다릅니다. 절실하고 긴장 속에서 읽기 때문에 마치 내가 그 역사적 상황에 서 있는 것처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자본론≫은 1권만 먼저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연구소 재정도 어려운데 저를 위해서 인도 관련 서적을 구입하여 보내주시려 하니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동지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과분하고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감격! 감격! 감격입니다.

저에게는 신간 단행본보다 헌책이어도 저를 위해서 애써주시는 동지들의 마음과 정성이 더 귀중하고 소중합니다. 저는 인도의 정치를 연구하면서 한국에 소개된 대중서들을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최 동지 덕분에 인도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대중서를 읽을 수 있게 되어서 기대가 됩니다. 지난번에 보내주신 ≪인도는 울퉁불퉁하다≫라는 책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중략)

≪정세와 노동≫ 4월호에 실린 “마오주의자들의 폭력에 대한 사회학적 질문” 번역 문제는 모두 저의 책임입니다. 꼼꼼하게 문장을 살펴보고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번역문은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이 작업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저 때문에 최 동지에게 누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최근에 국가보안법과 관련해서 많은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저도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강요당하는 시대”라는 최 동지의 심경과 우리 사회의 모습이 우울하게 보입니다. 이러다가 점점 우리 사회가 이성을 잃어버리고 야만의 시대로 변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됩니다.

지식인들이 위축되어 정부(권력자)의 눈치나 보면서 올바른 말을 할 수 없고 개인의 욕망과 이익에 눈이 멀어 사회는 조각조각 깨지고 분열되는 지금의 현상을 볼 때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은 숨기고 은폐시키고 화려하고 조작된 삶이 진실이라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서 나는 이방인처럼 낯설게 느껴집니다.

2011.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