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회 행사에 찾아가다

4월 18일 오후. 낮게 드리운 먹구름이 흘리는 부슬비를 맞으며 혜화동 대학로에 자리잡고 있는 흥사단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1층 내벽에 「사월혁명회」라는 글자가 A4 종이위에 커다랗게 인쇄된 행사장 안내표시가 붙어있다. 그것을 발견하고서야 일말의 안도감이 든다. 일단 맞게는 찾아왔다. 처음 접해보는 단체의 행사인데다, 처음 찾아가보는 장소여서 느끼던 위화감이 잠시 누그러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안내표시를 따라 계단을 걸어올라가 2층 현관에 서자마자 찾아오기 전에 느끼던 것보다 더 큰 당혹감이 밀려들었다.

‘혹시 괜한 곳에 찾아온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돈다. 행사장인 강당 출입문은 활짝 열려있는데 선뜻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가장 먼저 보인 건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안내데스크. 방명록도 받고 행사 시간 안내며 행사용 책자를 나눠주는 곳. 그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추측되는 연령대가 심상치 않다. 찾아오는 쪽이나 안내하는 쪽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사람이란 사람은 예외없이 그러하다. 그래서 나름 젊은 축에 속하는 분들조차 장년을 지나 초로에 접어든 것 같았다. 이때 느낀 당혹감의 정체란 이런 것이다. 나도 이제 어디서 어리다는 말을 들으면 어색한 나이인데, 순식간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된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런 주변 상황에 주눅 든 나머지 안내데스크는 들리지도 못하고 머쓱하게 지나쳐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오마나, 세상에! 100여 명 가량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강당. 그 강당이 꽉 차도록 빽빽하게 늘어놓은 수십 개의 의자 거의 전부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행사가 시작된 뒤로도 참가자는 계속 늘어나서 추가로 의자를 들여놓다 못해 결국 서서 자리를 지켰던 인원도 상당했다). 역시나 거의 전부가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내 나이에 10년을 보태도 그 이하는커녕 언저리 위인 것 같은 사람조차 찾기 힘들다. 엄청난 세대의 격차와 그 사이를 이어줄 연결고리의 부재. 그로 인해 혼자 초대받지 않은 잔칫집에 찾아가 눌러앉아있는 듯한 어색한 기분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행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덧붙이자면 이 때 앉아있던 자리는 뒤늦게 행사에 찾아오신 분을 위해 비켜드렸다. 출퇴근 지하철의 경로석을 통째로 잡고 드러누워도 이 당시 의자에 앉아있는 마음보다는 부담이 덜할 것 같다).

혁명 세대, 그 사그라들지 않는 열의를 느끼다

4월혁명으로부터 51년 후, 혁명 발발일 하루 전에 개최된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는 4월혁명정신 계승을 위한 선언식, 2부는 4월혁명의 결실을 유산시킨 군사쿠테타의 주모자 박정희가 한국 근대화의 영웅이라는 주장의 허구를 밝히는 강연이다.

행사는 진행되는 내내 참가자들의 높은 관심 및 열기와 함께 했다. 부족한 능력 탓에 이런 상투적인 문장으로 밖에 당시의 분위기를 표현하지 못해, 당시 자리를 빛내주신 혁명 선배님들과 글을 읽는 여러분께 정말 죄송스럽다는 말부터 드려야겠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추가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보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가자들의 관심과 열기는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본 행사가 마무리되고 오래도록 이어진 여운이 가시기 전까지 변함없이 뜨겁게 이어졌다.

자신에게 물어본다. 근래 참가했던 많은 강연과 행사, 집회들. 그 중 높은 집중도와 결의를 느꼈던 행사나 발언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끝나고 난 뒤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진행과정 전체를 두고 감동을 느꼈던 경험은 얼마나 되었던가? 답한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사월혁명회의 이 날 행사는 흐름 전체가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전해준 그런 것이었다고.

충격을 준 부분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당시의 발언과 상황 전부를 그려내듯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필자의 기억력이 가장 큰 한계점이라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만을 하나씩 간략히 서술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회선언과 민중의례로 1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민중의례가 선배 열사들께 바치는 묵념으로만 구성되었다는 점이 다소 의외였는데, 잠시 생각해보면 납득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4월혁명이 5.18 항쟁으로 계승되었고 다시 현재로 이어져오고 있으며 압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정신으로 함께가는 것이기는 하나, 그 관계를 반대로 계승할 수는 없을테니까.

사월혁명회 상임의장님의 인사 및 선언과 연대발언들이 이어졌다. 발언자 대다수가 고희를 넘기셨음이 분명하고 육체에는 비록 지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날지언정,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담긴 의지와 기백은 전혀 쇠락했음을 느낄 수 없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모순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관심들이 발언 속에 녹아났다. 4대강 난개발, 대북 긴장감 고조, 전세난, 부자감세와 서민증세, 복지문제, 국가보안법과 언론장악 등. 모든 민주적 절차와 제도, 민중 삶의 과거 회기. 그리고 특히 관심이 갔던 처절한 노동자 삶에 대한 고발. 젊은 드라마 작가의 외로운 죽음,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희귀질환발병과 그로 인한 40여 명의 죽음. 쌍용자동차 점거파업투쟁 이후 쫓겨난 해고노동자와 가족 14명의 죽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한 삶과 그로 인한 투쟁들로 인한 분노. 단순히 이야깃거리 삼은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내용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압축하여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중간에 한국청년연대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의 4월혁명계승 결의발언이 ‘끼어’있었는데, 기억에 남은 것이라고는 ‘자기 순서 끝나자 집에 가기 바쁘더라’라는 것 정도라 적당히 넘어가겠다(고심하고 이런 자리를 마련하셨을 사월혁명회 동지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아, 그래도 입이 근질거려 한마디만 달겠다. ‘혁명’을 위해 선거를 전술로 이용할 건지, ‘선거’ 득표를 위해 혁명이란 수식어가 필요한지 정도는 구별해서 사용해주시길. ‘동지’들.

1부 마지막으로 만세삼창이 있었다. 3개의 만세 중 첫 번째로 외친 ‘민주주의 만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매우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해 골간만 옮겨보자면, ‘제세민권에 따르지 않고 자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은 제국주의의 괴뢰에 불과하다. 민중의 힘으로 민중을 위한 진짜 민주적 정부를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 만세!’. 크고 높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당당하고 가슴 울리는 힘찬 만세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2부는 노사과연의 채만수 소장님의 발제로 ‘박정희 근대화론은 허구’라는 주제의 강연과 토론이 있었다. 고백하건데 강연을 듣는 1시간 가량 동안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사전에 공부한 내용을 가지고 쫓아가기 바쁜데, 이 부분을 이렇게 생략하고 가셔도 되는 건가? 앉아계신 분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지루해하지는 않을까?’

이 시건방짐이 얼마나 애송이다운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건 강연을 마친 후, 사회를 맡으신 분이 강연 중간에 받은 첫 번째 질문지를 읽은 직후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부끄러운 동시에 약간의 부러움과 슬픔이 교차했다. 투쟁하는 동지들 속에서조차 할 수 없는 말들이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며, 나의 처신을 위해 숨겨야 하는 말들이 배척받지 않고 서로 당당히 견주는 모습을 보며, 열의를 갖고 쉼 없이 발언과 경청이 이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알 수도 없이 척박한 현재만 보며 과거를 재단해왔던 내가 부끄러웠고, 그 모습이 부러웠고, 현실이 슬펐다.

행사에 참여하며 찍은 두 장의 사진을 함께 학습하는 동지들에게 보여줬다. 하나는 행사가 시작된 오후 3시, 하나는 토론조차 정리되어가던 오후 5시 반의 모습. 그 사진에 찍힌 것은 같은 시간에 나란히 찍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빈틈없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혁명 선배님들의 모습이었다. 이것 또한 이전에 본적 없는 것이었다.

증대하는 자본의 위기전가 속에서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우리의 모습을 되새기다

사월혁명회 행사가 감동을 준 것은 독자적이고 특별한 내용을 품고 있어서가 아니다. 감동을 느끼게 한 원인은, 그 자리에 모인 고령의 선배님들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몇 번이나 세대가 바뀌는 과정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현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고 분석하며 변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 혁명을 하나의 완결된 역사가 아닌, 앞으로도 지속될 변화의 시작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 전 세대의 투쟁을 단절되고 닫혀있던 과거의 사건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민중투쟁의 한 축으로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벅차오르는 희망으로 더욱 가열찬 투쟁을 결의할 수 있을까? 의문형으로 마무리된 문장처럼, 새로운 희망 주변에 불안과 불만 또한 새롭게 자라난다. 후퇴하는 운동의 원인을 과거 세대의 잘못이나 몇몇 개인의 오류 탓으로 돌린 채 자신의 현재를 바로보려하지 않는 청산주의, 역사의 주체로 직접 서기보다 대신 나서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대리주의, 미래의 변화에 대한 전망을 상실한 채, 현재 대중의 상태에 맞춰 자기 변신을 반복하며 실리 챙기기에 바쁜 대중추수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동지’들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역시나 떨쳐내기 힘든 나 자신의 갈등이 있다.

일년 후, 혹은 다음 달, 아니면 당장 내일. 우리는 언제 손쓸 길 없는 파국이 시작되도 이상하지 않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속에 있다. 또한 자본주의의 단말마보다 먼저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로서 불안한 나의 삶이 있다. 투쟁의 길은 자본주의의 운명 만큼이나 분명한, 대안 없는 유일한 선택지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늙은 거인의 숨통에 찔러 넣을 작은 비수를 가는 일조차 변변히 해내지 못하는 노동자 계급의 부정할 수 없는 현재가 있다. 힘없이 땅으로 고꾸라지는 거인의 덩치에 기가 질려 등 돌리고 도망치기 바쁜 사람들의 현실이 있다. ‘지금부터 시작하기엔 늦은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과 그럼에도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내모는 현실이 있다.

모든 불안들 속에서 그래도 하나의 위안거리를 찾는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는 내 길의 앞에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거인들의 등이 보인다는 것. 그 모습을 두 눈에 새길 둘도 없이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혁명의 정신은 혁명을 위해 계승해 나가겠다 다짐한다. 4월혁명 만세!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