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용 동지의 편지

채소장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강원도 원주 교도소에 이송되어 지내고 있습니다. 추운 곳이나 지금은 날씨가 봄날이라 다행이지만 겨울을 지내려하니 깜깜하네요. ㅋ.ㅋ.

서울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으니 다행입니다. 날씨가 정말 화창하지요. 오늘부터 군항제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니 한숨만 나오더군요. 일본의 대지진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는 등 망언을 하네요.

A.

진짜 화가 치밉니다.  2년 정도 남은 기간 동안 책을 보고, 정치학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명박이가 공약한 것도 백지화시켜서 TK 지역 의원들이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습니다. 에구.. 힘이 쫘~악 빠지네요.

소장님! 덕분에 많은 지식을 얻은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부족한 지식을 알려주시니 말입니다. 어느새 4월이 왔습니다. 벚꽃도 피어오르겠지요..

소식을 미리 전해드렸어야 했는데 이제야 늦게 전해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힘을 내세요. 연구소 직원¹⁾들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2011. 4. 1

원주에서. 

이병진 최상철 서신교환

이병진 동지 안녕하세요.

출소하신 건설노동자 이기호 동지를 뵈었습니다. 동지와 전주교도소에서 같이 수감되어 있던 시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동지를 보았을 때 이분은 집과 학교밖에 모르던 순진한 사람 같았고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출소하신 이후에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시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시더라구요. 동지와 저의 서신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표해주셨습니다. 이기호 동지도 음악을 좋아하시던데 록음악을 비롯한 대중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국보법으로 수감되셨다가 보석으로 출소하신 김수남 동지도 뵈었습니다. 옥중에서 받으신 ��정세와 노동��에 감사함을 표하시고 싶다고 찾아오셔서 오히려 송구스러웠습니다. 한국 사회에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분은 제가 보기엔 김수남 선생님 같은 분입니다. 스스로 ‘보수’라 칭하는 세력들이 이윤을 위해 자신의 전통을 깡그리 뭉게버리는 현실에서 김수남 선생님은 화석 같은 분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런 분이 좌파가 되는 우스꽝스런 현실이 더더욱 개탄스럽더군요.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CPI(ML)강령 번역에 대해 아래와 같은 장문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대단히 유의미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인도사회에 대해 인도ML공산당은 농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토지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제국주의 자본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반봉건, 반식민지 사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농민 내부의 반피티와 프롤레타리화 등 계급분화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고, 인도사회를 과거 일제와 유럽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당하던 반식민지였던 중국과 같은 사회성격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편향된 인식이라고 봅니다. 인도사회는 여전히 양적으로는 농민들이 다수지만 질적으로는 농민내부가 분화되고 있고, 이 분화된 농민 중에서 과잉인구가 도시로 가서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여 인도식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ML공산당은 인도 농촌이 생산력의 미발전이라 주장하는데 사실은 이미 70년대부터 인도농촌은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여 농촌 내부에서 농민분화와 과잉인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더더욱 포스코는 물론이고 인도 국내, 해외 제국주의 초국적 자본이 농촌의 토지를 매입하여 산업생산을 일구고 있습니다. 인도의 자본주의 발전은 농민의 양적인 수가 아니라 질적변화로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의 추세와 경향을 봐야 한다고 봅니다. 인도에서 제국주의 자본의 영향력도 크지만 인도 국내자본이 브릭스 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단적으로 국내에서도 쌍차를 인수하는 것에서도 볼 때 거대하게 독점화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반식민지라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물론 인도에서 여전히 토지문제의 해결은 지연되고 있고, 지주-소작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농촌에서의 사업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ML공산당은 농촌사업집중에 대해서만 말할 뿐, 도시 노동자사업에 대해서는 강령에서 거의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도사회에 대한 정체되고 구태의연한 분석이 가져온 결과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인도사회에 대해 자본주의 국가이고,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라고 주장하는 SOCIALIST UNITY CENTRE OF INDIA(COMMUNIST)의 창립자이자 이론가인 SHIBDAS GHOSH의 글을 참고해서 보는 것도 우리가 균형적으로 인도사회를 바라보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봅니다. 연구소에서는 이 글을 번역했으면, 편집자 주에서 이 글에 대한 간단한 비평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없으니 ML공산당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래 글 전체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주요 기조는 70년에 쓰여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라고 주장합니다. 인도에서 농민의 수는 다수이지만 그들 다수는 프롤레타리아이거나 반프롤레타리아라고 주장합니다. 토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어떻게 농민분화가 일어났고, 농촌에 자본주의적 관계가 침투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듯 합니다. 아마 이 부분은 ML공산당에서도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는데 '지주에 의한 자본주의 이행과정'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듯합니다. 폐일언하고, 다음의 글을 다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전면 동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도사회를 균형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라고 보기 때문에 연구소에서는 독자들을 위해서 아래의 글도 번역을 해서 소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분량이 좀 많기는 하지만...

http://www.suci-c.in/works3/agrarian/agrarian.htm

링크된 문서는 출력해서 같이 보내겠습니다. 인도의 당 운동과 관련한 논쟁을 추적하는 것은 상당히 세심한 작업을 요할 것 같습니다. 역사도 길고 사회도 워낙 복잡다단하니 더욱 더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말씀드린 책과 자료를 오늘 보내드렸습니다. 다음 번에 보내드릴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Sulekh Chandra Gupta: Agrarian Relations And Early British Rule In India —Ceded & Conqurred Provinces, Uttar Pradesh, PPH, 1995.

Ebited by R. S. Sharma: Indian Society: Historical Probings —In memory of D. D. Kosabi, PPH, 1993.

3월 21일 국가보안법 사건이 또 터졌습니다. <자본주의 연구회>라는 학생단체가 대상이며 조직사건을 엮으려는 분위기입니다. 현재 3명이 구속되었고 그 외에도 수명의 관련자들이 수사대상으로 가택압수수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안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홍제동 대공분실에 달려간 학생들 51명을 전원 연행했다고 합니다. 사건이 상당히 심각합니다. 오랜 만에 터진 학생 조직사건이라는 점에서, 또 이 단체가 학습과 토론을 위주로 활동하는 단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땅에는 현실비판적인 내용을 자유롭게 학습하고 토론할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국가보안법의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 도무지 짐작하기 힘들 것 같네요.

이병진 동지와 저의 편지를 보시던 독자 한 분이 제게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다’고 애정어린 질책을 해주시더군요. 오랜 벗과 대하듯이 편하게 편지 쓰면 될 터이지만 시대가 규정하는 무거움이 저를 그렇게 자유롭게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모가 난 제 편지 내용에 불편하신 점이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불청객 황사가 지나가고 화창하게 맑게 햇살이 빛나더군요. 동지께서도 어서 빨리 청명한 봄 공기를 느낄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송경동 동지의 시로 마치겠습니다. (출처: 송경동 동지의 시집 ��꿀잠��에서)

흐르는 것들은 말하지 않는다

흐르는 것들은

제 이름을 모른다

어떤 이는 그를 탁류라 하고

어떤 이는 그를 한때의 격랑일 뿐이라 하며

또 어떤 이는 회오의 눈물

굴절과 비통의 소용돌이라고도 하겠지만

바다를 향해

지금 여울져 흐르는 것들은

저가 무엇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곳이 아무리 넓고 깊어도

머무르지 않는다

가끔 징발된 영혼들도

저만치 다시 가 물로 내린다

3월 22일 일과를 마친 저녁에

상철 드림.

※※ 제가 동지의 지난 편지를 타자로 옮기면서 장창원 목사님의 성함을 정창원으로 잘못 기록하였습니다. 동지와 장목사님께 대단한 실례를 범했습니다. 찾아보니 저와 인사를 나누었던 분이신지라 더욱 더 죄송스럽습니다. 지면으로 나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인터넷으로 공개되는 내용에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상철 동지께

올 해 들어 첫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새벽에 봄비 내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마음이 알알히 쓰려오네요. 집 생각, 아이들 생각에 봄비가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번역을 합니다. 마음이 아플때면 어느 한 가지 일에 몰두해서 밖의 일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씁니다. 사미트 카(Samit Kar) 교수의 “Maoism to Mass Assasinism” 번역을 마무리 짓고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번역을 하면서 제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인도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직접 연구하지 못하고 번역 수준에 머물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감옥 안에서 인도 관련 글을 읽는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책을 받고 감격에 겨워했던 일을 생각하면 번역도 감사한 일이죠. 보잘 것 없지만 번역글이 인도의 참 모습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상철 동지는 저에게 “경직되어 있는 이 땅과 동북아의 정세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처음 이 말을 듣고 나의 아픔과 고뇌가 응어리져 있는 문제라 몸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아팠답니다. 나의 응어리진 생채기를 치유하고 보듬어 주려는 최 동지의 깊은 배려와 애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동북아의 경직된 정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북아의 경직된 정세 변화에 제 자신이 깊숙이 맞물려있고 이 긴장과 모순이 해결되어야 제 자신도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의식과 패배감에 빠져 위축되어 있었던 거지요.

최 동지의 편지를 여러 번 읽으면서 내가 너무 과장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런데 막상 스스로를 객관화시킨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혼자 지내는 고립감과 정서적 외로움은 나약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목표와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면 쉽게 주저앉고 말아요. 저도 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욱 힘내겠습니다.

얼마 전에 최 동지와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에 관한 이야기를 최 동지의 네팔 정세에 대한 분석과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백철현 동지가 EPW 자료를 보내주었는데 “Nepal: Slipping Back into a Deadlock”(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February 12, 2011. p. 8.)이라는 글입니다.²⁾ 이 글에는 최근의 네팔정세를 소개하고 있는데 최 동지께서 예측하셨던 그대로의 흐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네팔에서는 2월 3일, 558명의 제헌의회(Constituent Assembly) 의원 중에 368명의 지지를 받은 카널(Khanal) 네팔 공산당(맑스-레닌연합)³⁾ 의장이 수상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제 1당인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의 의장인 프쉬파 카말 다얼(Pushpa Kamal Dahal)이 수상 선거에 나가지 않고 제 3당인 네팔공산당(맑스-레닌 연합)을 전략적으로 지지한 결과입니다.

그대신 카널(네팔공산당)과 다얼(네팔통합공산당)은 인민해방군(the People's Liberation Army)과 네팔군(the Nepal Army)과의 통합에 관한 7 가지에 대해서 합의하고, 헌법초안 작업에 협조하고 권력을 분점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인도 정부가 크게 긴장하고 있습니다. 네팔공산당(맑스-레닌 연합)은 중도 성향의 정당으로 당내에 좌파와 우파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팔통합공산당이 네팔공산당 내의 좌파 지도자인 카널을 지지하여 그가 수상이 되고, 그대신 국방부 장관직을 네팔통합공산당이 가지려 하자 네팔공산당 내의 우파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도도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네팔의 정세도 파벌주의로 요동을 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까지의 여정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EPW 2월 19일자에는 (p. 4) 인도 연방 정부의 숲과 환경부(Minister of State for Environment and Forests)에 시민단체(Mining Zone Peoples' Solidarity Group)가 보낸 항의 편지가 소개되었습니다. 인도 포스코 법인에 조건부 산업 승인을 해준 인도 정부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오리사 주정부와 포스코 인도 법인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지만 여론의 강한 반발로 연방정부가 사업 승인을 유보하였는데, 조건부 승인을 해줌으로써 포스코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도 정부는 포스코가 만드는 신항만 때문에 기존의 항만(Para deep)이 침수된다는 점과 물 부족 위기를 조건부 승인의 이유로 제시하였습니다. 아마도 포스코는 주 정부와 협의하여 댐 건설까지 내다보고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포스코가 인도의 오리사에 짓는 일괄 제철소 건설사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사업이 한국과 인도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외국인 직접투자의 자금규모에서도 최대금액인 약 12조원입니다. LG화학도 2015년 경 쯤에 구자라트 지역에 대규모 화학 플랜트 공장을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의 인도 진출이 서서히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포스코 인도 법인의 사업은 상징성을 갖고 있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반발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인도가 맺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맺은 지 1년이 지났는 데도 이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인도 관련 전문 연구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과 인도의 경제 발전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자유무역거래 수준에서의 경제 관계는 미미하거나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인도는 필요한 게 자본과 기술이고 한국은 시장(market)입니다. 현재 인도에 진출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경향을 보면 인도에 제조업 생산기지를 만들면서 자본과 기술을 간접적으로 수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핵심 소재 부품은 한국에서 수입하게 하여 간접적으로 인도 법인의 이익을 한국으로 보내는 형식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모델이 지배적인 추세로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추세가 맞다면 한국의 노동 환경도 단순 생산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문 기술직이나 고부가가치 부품소재 생산직 자리만 남을 것 같습니다.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은 일자리가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의 생각이 맞다면 사회의 안정성은 약화되고 갈등 요인이 높아질 거라 예상이 됩니다. 청년 실업문제와 88만원 세대 담론도 이런 징후의 하나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계급적 관점에서 분석해보지 않았습니다. 최상철 동지와 교류를 하면서 계급적 관점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미술가 오윤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분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의료․건강 운동단체가 인도-EU FTA에 반대하는 연대투쟁을 제안하는 소식을 접하고 제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도 인도와 관련한 일들이 깊이 있게 논의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새로운 소식을 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정세와 노동�� 2월호에서 CPI(ML) 강령을 읽었습니다. 저도 대체적으로 최 동지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인도가 반봉건 사회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저는 토지의 사적소유가 인정된다면 자본주의 사회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도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캄보디아의 비극에 미국에 의한 폭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많이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최 동지의 편지를 통해서 늘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며 지적 자극도 받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도 하면서 가슴 속에 담아 두고 숨겨두었던 것들을 꺼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최상철 동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제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종횡무진 하였습니다. 일정한 방향도 주제도 없이 쏟아 내듯이 이야기했습니다. 고립된 가운데 나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아요.

제 편지에 대해서 세세하게 호응해 주시고 공감할뿐더러 더 넓게 시야를 갖고, 세상을 보는 안목에 대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인도뿐만이 아니라 네팔, 캄보디아, 베트남의 정세도 훤히 꿰뚫어 보시는 최 동지의 폭넓은 식견과 사고에 많은 신뢰와 믿음이 생겼지요. 그러면서 제 사고의 틀을 깰 수 있었고, 무엇보다 스스로 위축되어 나약했던 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최 동지의 열정과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방황하면서 우울하게 지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요즘은 내 자신이 정말 부끄럽고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열심히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합니다.

최근에 보내주신 자료들을 읽고 가능하면 소논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현재로써는 연구소 외에 제가 글을 기고할만한 학술 연구소가 없습니다. 앞으로 학술 매체에 논문을 제출하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해보겠습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신현칠 선생님의 시 감사합니다. 어려운 역경 속에 굴하지 않고 “수목과 같이” 변함없이 의젓하게 지내야지 다짐을 합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향린교회의 조헌정 목사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편지를 최 동지께 보내드렸는데 공개해도 괜찮은지 여쭈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양해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은 없으셨습니다. 혹시라도 결례가 될 수 있을지 모르니 목사님과 전화 통화를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LP 음반은 동생에게 부탁해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생들의 상처가 깊고 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아서 동생들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신뢰를 쌓으려 노력 중입니다. 다음 소식 때 뵈요.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1. 3. 20.

이병진 동지 안녕하세요.

이사 후 연구소에서의 일과도 어느 새 자리가 잡히고 익숙해져갑니다. 준비하고 있는 이론지 ��노동사회과학�� 제4호가 나오게 된다면 한결 여유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이론지의 부제는 “20세기 사회주의와 반혁명”입니다. 연구소의 이론지가 담당하는 일관된 이데올로기 투쟁을 이번 이론지에서도 이어갑니다.

서신 교환이라는 게 아무래도 낯을 마주대고 하는 대화보다 시간이 걸립니다만 제 편지가 동지에게 전달되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분실 사고의 우려 등으로 인해 매번 등기를 해서 보내고 해서 일반우편보다 빨리 도착할 텐데 말입니다. 아마 그쪽에서 행정적으로 서신을 제 때 전달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대적으로 동지가 제게 보내는 편지는 제 날짜에 맞게 도착하는 편입니다.

이번에도 고생하여 완성해주신 번역문과 편지 잘 받았습니다. 번역문은 타자로 옮긴 후 제가 원문과 대조하며 간단히 교정해서 지면에 소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는 인도에 관해 개략적인 지식밖에 없는지라 충분한 주석을 달지는 못합니다. 다만 간단한 오류를 바로 잡고 요청하신 부분에 대한 주석을 추가하는 것 정도로 하겠습니다. 아쉬운대로 이 글이 소개가 되면 인도 마오주의자들의 무장 투쟁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판단할 수 있는 전거를 제공하리라 생각합니다.

네팔의 현 상황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팔통합공산당(마오주의당)의 전략이 상당히 노련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지닌 기득권을 포기하고서라도 다른 분파와 연대할 근거를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인도와 제국주의자들의 반혁명 공작이 대단히 거세겠지만 네팔 혁명이 그리 쉽게 좌초하지는 않으리라 예상해봅니다. 다만 동지께서 ‘파벌주의’라 표현하신 것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합니다. 혁명을 지향하는 이들 내에도 다양한 분파가 노선 경쟁을 하며  연대․연합을 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소위 부르주아 ‘정치공학’에서 보이는 세불리기 합종연횡과는 궤를 달리 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노선인지 실천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적과 싸우는 것 그리고 운동의 노선을 두고 싸우는 것은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자기자신과의 투쟁과 같은 의미라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볼 수 있는 제한된 자료만으로 현재의 인도를 분석하셔야 하기에 항상 생생한 현실에 대해 굶주리고 목말라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히 이런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그간 바쁜 현실을 좇느라 보시지 못하셨던 고전들 그리고 기본서들을 학습하실 계획을 세우셔서 차근차근 공부해보시면 어떠실지요? 저도 고전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지 못하여 책을 읽는 데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 대단한 아쉬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신선놀음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한국과 동북아의 현 정세와 인도의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 뿐만 아니라 과거 고전을 차근차근 읽으시면서 내공을 다져가시는 것도 병행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본론�� 같은 책도 좋고 프랑스 혁명사 3부작과 같은 다른 맑스-엥엘스의 저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맑스-레닌주의 고전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만, 동지께서 원하시는 다른 인문․사회과학 고전을 차근차근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감옥에서 단테의 ��신곡�� 같은 책을 하루 10시간 읽었노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아니면 동양의 고전들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지의 싸움은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을 요하는 것이기에 한번 이야기 드려보았습니다.

동지께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라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주제넘게 떠든 것들이 오해를 사지는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근거가 취약한 가설 수준에 머무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현지에 직접 가보지 못한 상황에서 발언한 것들은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그래도 한 사람의 분석과 시각은 제한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만 동지와 토의하는 과정에서 점점 그럴듯한 형상이 갖추어질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동지의 많은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인도에 진출한 한국의 거대 자본의 행보를 보며 우려하시는 내용에 저도 공감합니다. 특히 2000년대 넘어서면서부터 한국에 소위 ‘산업공동화’라는 담론이 넓게 펴졌습니다. 주요한 생산 시설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국내에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자본론��에서 맑스가 말한 상대적 과잉인구가 되는 현상은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자본주의 운동의 필연적인 법칙으로 보입니다. 한편에서는 해외로 생산 시설이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임금 삭금을 받아들이고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대대적입니다. 반대로 해외에 진출한 한국의 대자본은 현지 국가에서 우리가 당했던 것처럼 제국주의 지배자의 모습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할 것입니다. 또 국내의 일자리는 점점 불안정화․저임금화 되고 이주 노동자의 유입도 늘어날 것입니다. 이로 인한 갈등과 모순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처럼 잠복해 있습니다. 아직까지 운동 진영에서는 소위 ‘산업공동화’론에 대해 방어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공세적인 담론과 요구를 내걸 수 있도록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자본주의 연구회>에 대한 국가보안법 탄압을 말씀드렸습니다. 체포된 3인의 동지 중 2명의 동지는 다행히도 석방되었지만 이 단체의 전 회장인 최호현 동지는 아직 저들의 손에 붙잡혀 있습니다. 최호현 동지는 묵비와 단식 투쟁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 관련 기사를 별첨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윤과 관련한 글도 별첨해 보냅니다. 김광수 동지의 글 ｢몸을 태워 현실에 발언한 화가, 오윤｣(��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 57호)입니다.

동지께서는 조헌정 목사님의 동의를 구하고 편지가 공개되길 바라셨을 텐데 이미 ��정세와 노동�� 3월호가 공개가 되었습니다. 3월호가 2월호보다 빨리 나와서 동지의 3월 20일자 편지는 발간 이후에 연구소에 도착했습니다. 조헌정 목사님께 누가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만 시대를 걱정하며 평화를 갈망하는 편지 내용이니 크게 개의치 않으시리라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4월호는 3월호보다 빨리 나올 예정입니다.)

동지께서 보내주시기로 한 책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채만수 소장님은 목공이 취미이시기도 한데 직접 책장을 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준비가 된다면 말씀해주세요.

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로 인해 핵의 무서움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일본 정부는 사실을 투명하게 알리는 것보다 어떻게든 감추는 길을 택했고 결과는 체르노빌 사건에 비견되는 방사능 유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핵물리학에 무지합니다만 상식적으로 처음부터 원전을 포기할 생각을 했었다면 이러한 참화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전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에는 도쿄의 전력수요라는 조건도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플루토늄과 핵무장화 계획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현재로서는 의혹의 수준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만 음모론이라고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체르노빌 사건은 쏘련 붕괴를 가속화 시킬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끼쳤습니다. 현재까지 정황으로는 후쿠시만 원전 사고도 그럴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세계적인 경제공황의 가속화와 맞물리며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태를 보며 핵전쟁이라는 참화에서 결코 안전하지 않은 이 땅의 정세가 하루 빨리 안정화되길 다시 한번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 번에 보낼 시도 저번 빠블로 네루다의 “점”처럼 짧은 시입니다. 북아일랜드 무장 투쟁 조직 IRA의 지도자인 보비 샌즈(Bobby Sands)는 대처 정권 시절 영국에 붙잡혀 감옥에 갇힙니다. 보비 샌즈는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건 66일 간의 단식투쟁 끝에 27살의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남긴 글들은 지금도 큰 울림을 전합니다.

“한 마리의 종달새를 가둘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종달새의 노래까지는 가둘 수 없다.”

3월의 마지막 날

상철 드림.

반가운 최 동지의 편지와 자료들과 책 잘 받았습니다. 연구소 일도 바쁠 텐데 저를 위해서 많은 시간과 배려를 해 주셔서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 동지의 동지애를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Maoist and other Armed Conflicts, (2010), Penguin Books.는 요즘 제가 인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어서 반가운 책이군요. 최 동지 덕분에 전투적으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읽는 속도가 책이 들어오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논문을 ��노동사회과학�� 제4호에 제출하고자 했는데 새로운 자료들과 책을 읽고 이것을 반영하기 위해서 다음 호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마오주의자와 무장투쟁(Maoist and other Armed Conflicts)��에서는 카시미르, 인도 북동쪽, 펀잡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리주의자들에 의한 무장투쟁과 계급적 이념에 기반한 마오주의자들의 투쟁을 묶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접근은 인도 정부가 마오주의자들을 분리주의자들처럼 국가안보차원에서 대응하려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인도는 분리주의자들에 대해서 가혹한 탄압과 학살을 했습니다. 카시미르와 아쌈, 나가랜드, 마니뿌르 지역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마오주의자들을 강경진압하면서 특별법을 만들어 무력에 의한 진압을 제도화하려고 합니다. 저자는 시민권과 인권차원에서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인도 오리사 지역의 포스코 프로젝트에 주민들이 저항하는 것을 사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경제구역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부족민들이 저항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07년 3월, 서벵갈의 난디그람과 2010년 4개월간 오리사에서는 포스코의 거대 제철소 건설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졌다” (p. 123).

대중적인 저서에서 공공연히 인도 포스코 제철소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운동을 언급하고 중요한 실례로 알리고 있습니다.

최 동지가 보내준 인도 관련한 ��매일경제신문�� 자료를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과 달리 경제력의 부상으로 우리의 인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실을 알겠습니다. 제가 91년도에 인도로 유학갈 때에는 주변에서 “왜 그런 후진국가에 가느냐!”며 속상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격세지감이네요. 그러나 이런 변화가 그다지 좋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인도의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인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특정 부분만 보고 호들갑을 떠는 것 같습니다.

1995년에 수출입은행이 뉴델리에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그때 통역 아르바이트일을 하면서 도왔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점은 인도에 대한 충분한 사전조사와 구체적인 계획없이 사무소부터 설치한다는 것이었지요. 인도는 은행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국책은행의 사무소개소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사무소를 열었는데 IMF가 터지자 사무소를 바로 폐쇄했지요. 장기적인 목표와 구체적 전략도 없으면서 인도에 가서 낭패를 본거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서울대가 이르면 내년에 뉴델리에 사무소를 열겠다는데 (��매일경제��, 2011. 1. 21) 과연 적실성 있는 일인지 의문이 듭니다. 대학교에서는 인도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학문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된다고 봅니다. 실적 중심으로 보여주는 식의 모습이 진정한 대학의 자세일까라는 의문이 드네요.

｢인도, 기업형병원 100여개 증시상장｣이라는 기사는 상황인식에 너무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⁴⁾ 매일 경제의 이병문 의료전문기자는 제대로 상황을 인식하고 이런 기사를 썼는지 묻고 싶어요.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인도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이런 기사를 썼을까요? 국내 의료시장을 민영화하려는 의도를 엉뚱하게 인도의 사례를 끌어다가 여론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입니다. 이런 기사를 1면 머리기사(2011년 1월 24일)에 싣는 용기가 놀랍습니다.

인도에서 기업형 병원과 의료관광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배경은 미국의 높은 의료비 때문입니다. 미국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직원들의 산업재해에 대비하기 위해서 보험에 들어야 합니다. 이 때 미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의료비가 적은 인도 병원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환자들을 환대하기 위한 의료관광이 시작된 것입니다. 보험업과 의료계가 결탁하면서 기업형 병원이 발전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영리병원의 주식 상장을 허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는 마치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자본유치를 쉽게하면 즉, 기업형 병원을 허용하면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을” 것처럼 (A6면) 이야기합니다.

인도에서 기업형 병원이 정말로 모든 인도 국민에게 이로운가 따져보고 인도의 사례를 소개해야 하는데 한쪽 면만 일방적으로 소개하여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인도의 대도시에 존재하는 기업형 병원은 외국인과 도시의 중산층 이상의 인도인을 위한 병원이지 일반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아닙니다.

최 동지가 보내주신 엥겔스의 ｢주택문제에 대하여｣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읽고난 후 의견을 나누겠습니다.

저는 최 동지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견이 있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제가 감옥에 와서 깊이 반성하는 것은 평소에 나의 문제의식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관적인 관념에 빠지면서 스스로 갇혀버린 거에요. 감옥에 와서 그걸 깨닫고 솔직히 나 자신에 대해서 객관화시키고 오류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최 동지와 편지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어서 좀 두루뭉실하게 말씀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젠가 최 동지께서 “노예의 언어”라는 말씀을 하셨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한계를 많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최 동지께서도 그 동안 저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저에 대해서 많은 이해를 하셨을 거라 봅니다. 저는 인도라는 제3세계의 지점에서 남북관계를 관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도망쳤지요. 미국의 대북정책에 기대면서…… 결국 감옥에 오고 나서야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순수성”과 “진정성”만 갖고는 분단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현실과 부딪치며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최 동지의 말씀을 진지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약해지고 주저 앉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습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내가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극한 상황에까지 떨어져 보았습니다.

그때 1993년에 평양에 가던 심경을 떠올렸습니다. 북경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타면서 남과 북이 화해하고 통일이 되길 바랐던 나의 순수한 정신이 점점 선명히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감옥은 오랜 시간 동안 세상에 찌들면서 무뎌졌던 나의 영혼을 맑게 정화시켜서 저를 다시 소년의 시절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그런 심경들이 그 동안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는 최 동지의 말씀처럼 “보다 더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도약해야겠지요. 최 동지께서 함께 이 험한 길을 가주시겠다고 하시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최 동지의 동지애가 얼마나 깊은지 알게 합니다. 이제 저는 혼자가 아니고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맑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그 역사를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 조건에 의해 규정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피억압의 정치학(상), 채만수, p. 84��

저 역시 현재의 역사적 조건과 감옥이라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어디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소통과 연대 그리고 과학적 사상으로의 무장” 이것이 현재 저의 기본 전략입니다. 감옥이라는 철저히 통제되고 고립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객관화시켜서 흔들리지 말 것. 끊임없이 소통과 연대를 강화하여 사상적으로 무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저는 NL 진영도 PD 진영도 속해 있지도 않고 함께 겪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자유주의적 소부르주아지에 있었다고 봅니다. 최 동지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만 “입지점”을 찾기 위해 여러 고민과 모색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입장이 과학적이라고 봅니다. “민족문제에서의 몰계급성”을 극복하고 분단모순의 계급적 기초를 인식한다면 NL과 PD 진영의 편향을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전망해 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감옥에 와서 느낀 점입니다. 제 나름대로의 전망과 확신을 갖기까지는 더 연구하고 탐구해야 될 시간과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의 생각입니다.

종교에 대해서 매우 강경한 입장이시네요. 저 역시 최 동지와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감옥에 와서 종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이다보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의지하고 싶은 대상을 찾게 됩니다. 어떤 절대적인 가치나 존재에 나를 연관시키면 위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극단적으로 부정하여 세상을 놓아버리는 불교식 방법도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결국 신앙심은 무섭고 두렵고 불안한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탈출구를 찾으려는 인간의 속성상 종교는 존재하겠지요.

그런 종교의 존재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비판받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기득권 세력과 결탁하여 지배적인 세력의 한 축으로 존재해 왔다는 점입니다. 그런 위선과 기만을 거룩한 신의 이름으로 은폐하고 진실을 유린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거라고 봅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참다운 신앙의 길을 가는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분들도 있다는 점은 존중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의 탈을 쓰고 탐욕과 권력으로 약자들을 짓누르고, 그들의 비판자들을 사탄과 악으로 몰아세우는 광폭하고 음흉한 사기극은 반드시 종식켜야겠지요.

요즘들어 국가보안법 때문에 사회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 같군요. 저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구속되고 압수수색 당하는 분들과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학습과 토론하는 학술 동아리까지 국가보안법을 갖다 들이대면 그 누가 자유롭게 학술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우울한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는 최 동지가 좋아요.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다’는 말에 신경쓰지 마세요. 지금의 시대가 그만큼 절박하고 무겁지만 우리 서로 굳게 믿고 낙관적 전망으로 이겨나가야지요. 송경동 시인이 “흐르는 것들은 말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우리의 길을 열심히 가면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도 없겠지요.

늦은 밤 감옥에서 이병진 올림

2011. 3. 29.

늘 제게 신뢰와 애정을 보내주시는 이병진 동지. 동지께서 보내주시는 신뢰에 제가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 들 때도 많습니다. 조그마한 연대의 손길도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곳에서는 아무래도 실제보다 대상을 이상화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제가 지닌 역량 내에서 동지에게 연대를 지속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지께서 번역하시기로 한 서적 A History of Indian Freedom Struggle의 사본을 입수했습니다. 동지께 보내드릴 때 제본을 하지 않고 보내서 어찌하나 걱정도 했었는데 다행스럽게 되었습니다. 초역 작업이 되시면 하나 씩 원고를 보내주십시오. 타자로 옮기는 건 다른 분께 도움을 요청하고 저는 간단히 교정을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단 출판이 가능할 정도로 교정을 보는 것까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연재를 하면서 차근차근 교정하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는 이병진 동지께서 판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번 동지의 편지에 제가 편집자 주석을 하나 빠뜨렸네요. 코뮤널리즘(communalism)에 대한 번역 문제인데 저는 이것을 원어를 살려서 번역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自)공동체 중심주의’ 정도로 옮기면 어떨까 싶습니다. 힌두-이슬람 갈등으로 하면 상황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있지만 지나친 의역이 될 것 같아서요. 더 좋은 번역어가 있다면 추천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보낸 기사 단편들이 동지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분석과 설명까지 추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로 동지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대학이 학문을 위한 백년지대계가 아니라 당장에 수입원이 될 대학생 유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기에 동지의 비판은 유효합니다. 또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은 동지와 같습니다. 굳이 토를 달자면 민영화뿐만 아니라 의료가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제가 “노예의 언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 부연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레닌이 ��제국주의론��의 서문에서 썼던 표현입니다. 인용하겠습니다.

이 팜플렛을 짜르체제의 검열을 의식하면서 썼다. 그래서 나는 단지 이론적인 —특히 경제적인— 분석에 보다 엄격하게 국한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해 불가피한 몇 가지 관찰들은 극히 조심해서, 암시적으로, 그리고 혁명가들이 합법적인 저술을 위해 펜을 쥘 때에 짜르체제 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이솝식의 —망할 놈의 이솝식의— 언어로 정식화해야 했다. 지금, 이 자유로운 시기에, 짜르 체제의 검열을 고려하여 비꼬고 억제되었으며 극심한 억압 속에서 짓눌린, 이 팜플렛의 여러 곳들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중략) 그리고 노동계급운동의 그러한 분열은 제국주의의 객관적 조건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 등등에 대해서 나는 노예의 언어로 말해야 했다.

레닌이 짜르체제의 검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 때문에 “노예의 언어”로 집필해야 했습니다. 현재 동지와 저와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라도 동지와 저와 나눈 공개서신이 문제가 되어 동지에게 또 다른 고통을 가져와서는 결코 안 될 일이기에 저는 편지를 극도로 신중하게 쓰고 있습니다. 

이제 종교 문제에 대해서 몇 마디 더하겠습니다. 동지께서 감옥이라는 극한적이며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만약 종교적인 힘이 동지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다면 저는 동지를 질책하지 않을 것이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동지께서는 세상에 대해 소통과 연대를 구하시는데, 자기 자신과 대면할 때는 사회․역사적 고려를 빼놓고 문제를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주제넘게 또 인용하겠습니다. 현재 신영복 선생의 행보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입니다만 그 분께서 자주 쓰시는 이 어구는 좋아합니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 거울에 비추지 말고 사람에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것입니다.

동지께서 제가 종교문제에 대해 강경하다고 생각하십니다만 저는 오히려 너무 유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종교를 비판할 때 양심적인 종교인이 있을 수 있고 또 종교인 중에 뛰어난 운동가가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종교인 운동가들을 볼 때 운동가 개인으로서는 오히려 제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급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비판해야 합니다. 맑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비판의 핵심은 종교가 현실의 갈등을 피안에서의 구원이라는 위안으로 해소시켜버리는 것에 대한 통렬한 공격입니다. 그런데 맑스는 종교에 대한 비판이라는 과제를 종교 그 자체와 직접 대면해서 사생결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지니고 있는 물적토대를 바꾸는 것으로 발전시킵니다. 아편은 잘못 쓰면 중독이 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 쓰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편에 의지해서만 산다면 그것은 결코 인간다운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고통을 초월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언제나 그 해답은 신앙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자신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그것을 과학적으로 추구하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개인은 나약합니다. 그러나 소통과 연대를 갈구하는 이는 더 이상 나약한 개인이 아닙니다. 이병진 동지께서 이 문제를 개인 실존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종교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고양시 행신동 철거민,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등에서 단식이라는 극한적인 방법으로 투쟁하고 있기에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그 동지들께서는 동조 단식을 조직하고 계십니다만 저는 단식이 아니라 제가 발딛고 있는 공간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연대를 하려 합니다. 이병진 동지의 고독한 투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제가 감옥에서 함께 고통을 느끼며 같이 투쟁할 수는 없지만 제 위치에서 동지와 같은 곳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정세와 노동�� 3월호, 4월호에는 CPI(M) 강령의 일부를 번역 게재합니다. 동지께서도 관심깊게 지켜보리라 예상합니다. 책 한 권과 인도 관련 기사를 담은 신문 자료 그리고 한-인도 FTA 관련 글 등을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거대한 인도 사회에 비해 너무나 파편적인 내용입니다만 동지께서는 조그마한 단서로도 밑그림을 그리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외 제가 가진 인도 관련 한국어 단행본이 세 권 더 있습니다만 힌두교 관련한 내용이나 인도 철학서 등이며 내용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 궁금하시다면 제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에스빠냐의 압제에 맞서 싸우던 필리핀의 투사 호세 리쌀[1861.6.19~1896.12.30]의 절명시로 마칩니다. 이 시는 장기수 최선웅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번역은 민용태 님이 하셨습니다.

나의 마지막 작별

잘 있거라 내 사랑하는 조국이여

태양이 감싸주는 동방의 진주여

잃어버린 에덴이여

나의 슬프고 눈물진 이 생명을

너를 위해 바치리니

이제 내 생명이 더 밝아지고 새로워지리니

나의 생명 마지막 순간까지

너 위해 즐겁게 바치리

형제들이여, 그대는 한 올의 괴로움도

망설임도 없이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아낌없이 생명을 바쳤구나

월계수 백화꽃 덮인 전나무관이거나

교수대거나 황량한 들판인들

조국과 고향을 위해 생명을 던졌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어두운 밤 지나고

동녘에서 붉은 해 떠오를 때

그 여명 속에 나는 이 생명 마치리라

그 새벽 희미한 어둠 속

작은 불빛이라도 있어야 한다면

나의 피를 흩뿌려

어둔 새벽 더욱 밝히리라

나의 어린 시절이나

젊은 혈기 넘치는 지금이나

나의 소망 오직

동방의 진주 너를 흠모하는 것

검고 눈물 걷힌 너의 눈

한 점 꾸밈도 부끄럼도 없는

티없이 맑고 부드러운 눈

동방의 진주 너를 바라보는 것이었노라

이제 나는 너를 떠나야 하는구나

모든 즐거움과 절실한 열망을 버리고

아 너를 위해 가슴 속에서 우러나

만세 만세를 부르노라

우리에게 돌아올 최후의 승리를 위해

나의 죽음은 값지리니

네게 생명을 이어주기 위해

조국의 하늘 아래 숨거두어

신비로운 대지에 영원히 잠들리니

아 행복하여라

먼 훗날 잡초 무성한 내 무덤 위에

애처로운 꽃 한 송이 피었거든

내 영혼에 입맞추듯 입맞추어다오

그러면 차가운 무덤 속

나의 눈썹 사이에

너의 따스한 입술과 부드러운 숨소리 느끼게 되리니

부드러운 달빛과 따스한 햇빛으로

나를 비춰다오

내 무덤가에 시원한 솔바람 불게 하고

따스하게 밝아오는 새 빛을 보내다오

작은 새 한 마리

내 무덤 십자가에 날아와 앉으면

내 영혼 위해 평화의 노래를 부르게 해다오

불타는 태양으로 빗방울 증발시켜

나의 함성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게 해다오

너무 이른 내 죽음을 슬퍼해다오

어느 한가한 오후

저 먼 저승의 나 위해 기도해다오

아 나의 조국

내 편히 하늘나라에 쉬도록 기도해다오

불행히 죽어간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죽어간 이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고난 속에 눈물짓는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감옥에서 고문으로 뒹구는 형제들

남편 잃은 여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내 무덤가 십자가 비석도 잊혀져 가면

삽으로 밭을 일궈

내 무덤에서 시신의 재를 거두어

조국 온 땅에

골고루 뿌려다오

내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운 나라

필리핀이여

나의 마지막 작별의 말을 들어다오

그대들 모두 두고 나 이제 형장으로 가노라

내 부모, 사랑하던 이들이여

저기 노예도 수탈도 억압도

사형과 처형도 없는 곳

누구도 나의 믿음과 사랑을 사멸할 수 없는 곳

하늘나라로 나는 가노라

잘있거라, 서러움 남아 있는

나의 조국이여

사랑하는 여인이여

어릴 적 친구들이여

이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안식에

감사하노라. 잘 있거라

내게 다정했던 나그네여

즐거움 함께했던 친구들이여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아 죽음은 곧 안식이니……

http://beta.epw.in/static_media/PDF/archives_pdf/2011/02/E021211_Nepal_Slipping_Back_into_a_Deadlock.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