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들이 참 많다, 공허한 말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봐도, 이 사회에서 ‘진보’라 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참 다양하다. 누구는 ‘고장난 자본주의’를 고쳐야 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복지국가’를 실현해야 한다고 하고, 어느 한쪽에서는 앞의 모든 예들을 비아냥대며 ‘아무것도 모르는 한심한 자들’이라고 이죽거린다.

혼란스럽다. 무엇이 옳은 걸까? 분명 이 사회는 무언가 부조리하고,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은 학습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그럼 과연 ‘무엇’을 지향하며 싸워야 하는 것일까? 또 개별적인 투쟁의 여러 의제들은 어떤 큰 틀 속에서 고민되고 해결해야 할까?

얼마 전 쌍용자동차, 대우자판, 한진중공업, 발레오공조코리아 4사의 노동조합이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투쟁을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 잠시나마 함께 할 시간이 있었다.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 그것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의지를 대중에게 알려내고, 각 주요 거점에서 투쟁을 벌여나가는 중요한 싸움의 한 중간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야 5당의 주요인사가 그 투쟁의 구호가 적힌 플랭카드 앞에서 버젓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중 모 당의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분명한 적이었음에도,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고, MB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물론, 투쟁의 주체인 동지들의 모습은 그 뒤 언저리에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고 말이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왜? 왜 저들이 마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저기 서 있는 것이며, 왜 금속노조는 보다 힘있는 투쟁을 벌이기보다, 저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 속에는 보다 진지하고 전술적인 계획들을 가지고 있을지는......

물론 현실적인 조건속에서 선택한 전술일 수 있고, 그렇게라도 사회적 타살을 막아내고 싶은 마음도 알고 있다. 부정하진 않는다. 그런데, 그 속에는 ‘무언가’가 빠져있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느낄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했던 많은 이들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2. 노동자 교양 정치학?...!

그 4사 투쟁이 있기 전, 7주간의 강좌가 시작되었다. 제목은 <노동자 교양 정치학>이라고 한다. 솔직히 설레는 마음이었다. 채만수 소장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마음도 있었겠으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향해 싸워야 하느냐는 답을 좀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었겠다.

강의의 내용은 방대하지만, 단호하고 명쾌했다. ‘국가에 대한 문제’로 시작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 민족모순과 계급모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노동자계급 운동의 독자성, 제국주의와 노동자 계급 운동의 분열, 20세기 사회주의,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과 과제를 이야기 하였다. 채만수 소장님의 강의와 질의응답(그리고 뒤풀이까지!)으로 진행되었으며, 강의 내용에 비하여 무겁지 않은 분위기가 계속 되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지식으로는 강의의 내용을 제대로 되짚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과, 여타의 많은 논쟁의 지점에 대한 뚜렷한 입장,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대한 당위성 정도의 내용은 매우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소장님께서 노동자 계급 운동의 독자성을 말씀하시며 예로 들었던, ‘레슬러와 복서의 세기의 대결’이 특히나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라운드 기술이 장점인 레슬러와 입식타격이 장점인 복서가 결국은 자신의 방식대로 싸웠다. 그런 것처럼 노동자 계급의 싸움의 원칙을 견지하고 저들과 싸워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 허나 그것은 대중공간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대중 공간에서 우리의 방식으로 잘(?) 싸워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질의 응답시간과 뒤풀이에서의 내용은 주로 현실의 투쟁에서 이 내용들이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였다. 아무래도 현장 활동가들이 많이 있다보니 그런 듯하였다. 소장님의 대답은, 참 명확했다.

나도 질문을 해 보았다.

나: 소장님, 대중 공간에서 함께 투쟁하는 것과, 이론적 오류와의 논쟁이 어느 선까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장님: 둘 다 열심히 해야지요. 허허허......

뒤풀이에서의 대화 중 한 대목이었다. 우문(愚問)이었던 건가...하는 고민은 계속된다.

#3. 강의가 남긴 것......

물론 강의의 근거들을 모두 섭렵하지는 않았지만, 강의의 내용에 동의한다. 그리고 채만수 선생님의 말에는 주저함이나 애매하게 뭉게는 표현이 없이 단호하다. 그런데 역시 투쟁은 무겁다. 왜? 강의의 내용이 결국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실현해야 하는 것이고, 현실의 여러 조건 속에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물론 많은 이들은 그것에 훌륭히 복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대중 투쟁의 공간에서 강의내용과 같은 내용들을 묵묵히 실천하면서 내용의 당위성을 설득해 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단순히 내용적인 것들을 가지고 설득하고, 사투를 벌이는 것만으로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어렵다. 하긴......그렇게 쉬운 것이었으면 진작에 세상은 바뀌어있었겠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빨리 갈 수 없기 때문에 대의(大義)라는 것’ 이니깐 말이다.

다만, 적어도 투쟁에 있어서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오류들에 대한 비판과, 투쟁에 있어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본 강의 이후에 나올 책을 더 기대해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4. 결론 (‘무언가’에 대하여......)

4사 투쟁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물론 강의 이후의 나의 생각이다.

“그래 국회의원의 힘으로라도 사회적 타살이 중지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투쟁의 힘으로서만 그것은 강제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가 책임져라’라는 ‘구호’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국가란 계급지배의 도구 아닌가? 국가가 정상적이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는 사회적 타살의 공범이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에게 오롯이 그 투쟁의 공을 넘기지 말고, 먼저 노동자 계급의 주체적인 투쟁이 먼저이다. 그리고 그 투쟁의 성과들을 노동자계급의 것으로 하기 위해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정치적 참모부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