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세
현장
이론
기타
 
지난호보기
월간지/단행물
구독신청
세미나신청
토요노동대학신청
1
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쟁점들
글쓴이 문영찬|편집위원 E-mail send mail 번호 164
날짜 2010-04-20 조회수 2632 추천수 115
파일  1271730168_국독자.hwp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쟁점들











1. 머리말










세계 대공황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고 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하다가도 두바이 신화의 붕괴, 남유럽의 재정위기, 그리스의 총파업 등 세계정세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운동이 사회주의 전망에 대한 고민이 핵심적 과제였다면, 즉, 쏘련 붕괴의 원인과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의 문제가 주된 과제였다면 지금 전개되는 세계대공황은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일정하게 쟁점의 이동을 의미한다. 즉, 지금까지는 사회주의론이 운동의 전진을 위해 핵심적이었다면 이제는 그에 더해서 전략, 전술의 수립을 위한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과학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것이다.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서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 분석은 레닌의 ��제국주의론�� 그리고 쏘련의 ‘전반적 위기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지배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쏘련의 붕괴 후에 청산주의 바람이 드세면서 이러한 분석틀 또한 실종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분석틀이 교조주의니, 쏘련 추종주의니, 스탈린주의니 하는 비난과 함께 땅에 묻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사회변혁의 전략을 세우기 위한 과학적 토대로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은 20세기 사회주의에서 올바랐던 입장들과 이론틀을 복구할 것을 요구한다. 20세기 사회주의에 있어서 잘못되었던 것은 비판되고 버려져야 하지만 올바랐던 것은 더욱 소중이 보듬어져야 하고 지금의 상황에 맞게 발전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세계정세 자체에 대한 예민한 관찰과 분석이 요구되지만 현실적으로 변혁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는 일국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회구성체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은 필수이다. 20세기 사회주의에 있어서 스탈린의 탄핵 이후 수정주의가 쏘련에서 지배적이 되면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잘못된 관점이 팽배했다. 그리하여 국가의 개입이 마치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여는 듯한 착각을 하고 이를 합리화하여 자본주의의 적응성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편향들, 오류들을 바로잡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과학성을 가다듬는 것은 전략문제의 해결의 전제로서 중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제국주의론, 전반적 위기론을 검토하고 그것들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의 관계를 추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제국주의론, 전반적 위기론 그리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관계










1) ��제국주의론��의 역사적 위치










20세기 자본주의는 19세기 자본주의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즉, 생산관계의 차원에서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전화되었던 것이다. 경쟁의 독점으로의 전화! 이것이 20세기 자본주의의 핵심적 지표였다. 그리고 이를 정리한 것이 바로 레닌의 ��제국주의론��이었다. 독점자본주의는 자유경쟁 자본주의와 달리 자본의 집적, 집중이라는 자본주의 축적의 고유한 경향의 결과 소수의 수중으로 자본이 집중되면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독점자본주의는 ‘자유’가 아닌 ‘지배’를 원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반동을 필연화했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파시즘이었던 것이다. 상부구조에서 이렇게 반동으로 전화하는 것과 함께 토대에서는 비독점자본에 대한 수탈, 소생산자에 대한 수탈, 노동자에 대한 착취 등 사회 전체를 독점자본의 독점이윤을 위한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인 생산의 무정부성이 나타나는 결과 한 부분을 넘어, 국가적 차원,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무정부성의 결과 나타나는 불균등 발전이 제국주의 간의 대립을 낳았고 이는 결국 제국주의 전쟁으로 귀결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에 대해 레닌은 ‘사멸하는 자본주의’라고 간명하게 정의하였고 이를 통해 제국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의 전망을 수립했다. 이렇게 독점단계의 자본주의를 제국주의로 정의하고 이행의 전망을 밝히는 것을 통해 레닌은 20세기 현대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2) 전반적 위기론










이러한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그 이후의 상황에 맞게 발전시킨 것이 쏘련의 ‘전반적 위기론’이었다. 이러한 전반적 위기론이 나타나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전쟁과 그 결과 탄생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 쏘련의 성립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전반적 위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란, 거대 독점자본과 금융과두제의 지배에까지 이른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전면적으로 심화 혹은 격화되고 그에 따라 정치적ㆍ사회적 위기 역시 더없이 격화됨으로써, 국가가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을 이른바 자유주의 시대의 그것, 즉 기본적으로 경제적 재생산과정의 외부에 머문다고 하는 것에 한정할 수 없게 된 상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적ㆍ경제적 위기가 극도로 격화된 나머지 “자본주의 사회의 공식적인 대표자인 국가가 생산의 지휘를 인수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상황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인 것이지요.1)










이렇듯 레닌의 ��제국주의론�� 이후의 상황은 자본주의의 체제 자체의 위기가 심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를 이론화한 것이 전반적 위기론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전반적 위기론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발전시킨 것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또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치상의 역할이 제대로 고찰되지 않았고 이러한 관점에서―금세기의 역사적 변화까지 포함한―포괄적인 이론적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론에 의해 시도되었다. 이 이론은, 그 안에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를 과도기적 자본주의로, 그리고 그 시대를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시대로 규정한 제국주의론의 한 관점을 발전시킨 것이다.’2)










이렇듯 전반적 위기론은 제국주의 전쟁과 대공황,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발전시켜 정식화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 위기론이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했던 것은 코민테른 5차 대회에서였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힐퍼딩의 조직된 자본주의론 즉, 자본주의가 생산의 무정부성에서 해방되었다는 이론이 퍼져가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코민테른은 자본주의가 전반적 위기에 있으며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라는 명칭은 자본주의의 몰락시기 혹은 위기시기라는 표현과 동등하게 사용되었다.’3)





이러한 전반적 위기의 특질은 ‘자본주의로부터의 이탈, 제국주의의 지위 약화, 자본주의의 내적인 해체과정’4)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파시즘이 성립했던 것도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가 토대를 넘어 상부구조에도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반적 위기의 극적인 표출이 바로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제국주의 전쟁은 제국주의 간 모순의 결과 발생한 것이지만 세계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전반적 위기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 위기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반적 위기는 해체, 붕괴과정을 의미하지만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금융자본 지배의 구조적 형태5)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전반적 위기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전제가 되는 이론인 것이다. 즉, ‘일반적 위기의 시작은, 자본주의의 본질이 변화하여 하나의 새로운 질을 획득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모든 특질에서 볼 때 여전히 독점자본주의이다. 그 사회경제적 본성이 변화한 것이 아닌 세계에서의 지위가 변화한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더 이상 유일한 세계체제가 아니다.’6)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바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 즉, 국가가 독점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전면적으로 개입하여 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전반적 위기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었던 것이다.7)










3)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위치










이렇듯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제국주의론과 전반적 위기론을 기초로 성립한 것이다. 전반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금융과두제의 지배체제가 국가독점자본주의였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직접적으로 국가독점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서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직접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레닌은 거기서 제국주의를 독점단계의 자본주의로 정의했고 자유경쟁에서 독점으로의 전화를 핵심적 테제로 제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레닌의 제기는 모두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개념을 구성하는 내용이 된다.





그러나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쓴 사람은 레닌이다. ��제국주의론��을 쓴 지 얼마 안 되었던 1917년 4월에 이미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독점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화하였고 많은 나라가 제반 사정에 의하여 생산과 분배의 공공연한 규제로 이행하였으며 그 중 몇 나라에서는 보편적 노동의무제가 도입되었다.”8)










그리고 1919년 8차 당대회의 강령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명시되었다.










“세계자본주의 일반의 극히 고도의 발전계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의한 자유경쟁의 교체, 생산과정에 대한 사회적 규체장치의 발전과 은행 및 자본가연합에 의한 생산물의 분배, 자본주의적 독점체의 성장과 결합된 물가상승 및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디케이트의 압력증대, 제국주의국가에 의한 노동자계급의 노예화,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ㆍ정치적 투쟁의 괄목할 만한 증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포ㆍ빈곤ㆍ파멸―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를 파산시키며, 사회경제가 한층 높은 유형으로 이행하는 것을 불가피하게 만든다.”9)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자유경쟁의 대립물로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독점자본주의가 자유경쟁의 대립으로 제기되었으나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독점자본주의 대신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과 같은 심급을 갖고 쓰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기초한 발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독점자본주의 경향의 강화는 현대 생산력의 요구에 대한 제국주의의 답10)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 위기에서 발현하였고 경제의 군사화, 국가의 시장 창출, 국가의 노자관계에의 개입 등의 특성을 띤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유경쟁에서 독점으로의 전화는 생산관계에서 구조적 변화이나 독점에서 국가독점으로 변화는 생산관계의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국가독점은 사적 독점을 폐지하거나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독점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이행의 필연성










1) 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이 국가개입을 요구한다.










그러면 어떠한 점이 독점자본주의로부터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초래하는지를 살펴보자.










‘독점자본주의는 그 고유의 독점적 지배체제를 사적 자본의 자율적인 운동에 의해서는 재생산할 수 없는 경제체제임이 명백해졌다. 독점적 지배의 원리가 관철되면 될수록 그 자신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독점자본주의는 본래부터 정치적 상부구조에 의한 개입과 보완을 필요로 하는 체제인 것이다. 이 점이 독점자본주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화하는 필연성의 첫 번째, 그리고 기본적인 근거이다.’11)










이러한 관점은 독점자본주의의 내적인 모순 자체가 국가의 개입을 요구한다는 것을 훌륭히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사적 독점자본주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사적 독점자본주의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경향 혹은 특성이 된다. 이러한 관점은 드라길레프도 동일하게 취하고 있다.










‘국가독점적 관계의 형성 및 발전의 주된 원인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내적 적대이다.’12)










이는 독점자본주의의 운동 자체가 독점을 제외한 모든 계급에 대한 수탈을 의미하고 또한 독점자본은 독점이윤을 위해 생산의 증가를 요하고 그러나 무한한 생산증대는 과잉생산을 유발하는 경향을 띰에 따라 국가의 개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점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격화된 것이 바로 전반적 위기이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외적 존재에 머물지 못하고 경제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이렇게 국가의 개입을 필연화하는 독점자본주의의 경제기구의 내적 모순에 대해 일본의 本間要一郞은 a) 독점의 독점이윤을 위한 과잉생산능력의 보유, b)독점적 초과이윤을 위한 비독점부문에 대한 수탈, c)독점적 고축적이 초래하는 만성적 자본과잉과 상대적 과잉인구, d)독점적 대기업 간의 비가격경쟁의 격화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13) 한편, 이러한 모순, 국가개입의 형성,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형성의 근본원인을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의 첨예화, 즉 증대하는 생산과정의 사회화와 자본주의적 전유 형태 사이의 모순의 첨예화는 국가독점적 형태가 형성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국가독점적 형태는 이러한 모순을 자본주의적 질서 자체 내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에 다름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경제적 및 사회적 모순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며, 궁극적으로 심화시키게 된다.’14)










바로 이러한 모순, 즉, 자본주의의 기본적 모순의 격화, 독점자본주의에 고유한 모순의 격화를 계기로 발생하는 위기에 대응하여 국가는 경제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위기론과 생산관계설(생산력설)의 대립










이와 같이 독점자본주의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화의 필연성에 대해, 내적 모순에서 발현되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으로 보는 견해와 생산력의 발전 혹은 생산력의 사회화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의 변화로서 국가개입을 바라보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먼저 생산관계설 혹은 생산력설을 살펴보자. 이러한 설의 대표적인 논자는 동독의 치샹이다. 그는 주식회사--> 국유기업--> 국가의 경제관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이를 생산력의 사회화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의 변화라고 파악한다. 그는 심지어 생산관계는 그 조응의 법칙에 따라 생산력에 ‘적응’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생산력의 사회화와 생산관계의 사회화라는 이중의 사회화론을 펼치기도 한다. 그리하여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혹은 갈등이 자본주의 내에서 일정하게 혹은 일시적으로 해소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에 대해 생산관계설이라고도 하고 생산력의 사회화에 따른 생산관계의 ‘적응’이라는 점에서 생산력설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치샹의 접근은 외견상으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대립과 모순이라는 사적 유물론의 범주를 따르고 있어 언듯 과학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대립과 모순을 왜곡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발전하는 생산력에 맞추어서 생산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이다. 즉,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전유의 사적, 자본주의적 성격이라는 모순은 자본주의 자체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내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주식회사, 국가독점, 국가의 경제관리라는 것은 바로 발전하는 생산력을 자본주의 틀 내에 묶어두기 위한 독점자본과 국가의 필사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며 다만 외견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 따름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은 그 해결을 일시적으로 가져온다. 그러나 그 해결은 주식회사 혹은 국가독점이라는 형태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공황을 통해서이다. 공황을 통해 성장하는 생산력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해결방식이다.





이렇게 볼 때 생산력설 혹은 생산관계설은 사적 유물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관점은, 특히 치샹과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생산력에 적응한다는 식으로 파악할 경우 이는 자본주의 모순의 자동해결, 혹은 자본주의의 영구성의 신화를 뒷받침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관계설은 하나의 도식일 뿐이고 국가가 왜 개입하는지 그리고 그 내적 메커니즘은 어떻게 되는지를 해명하지 못한다. 앙상한 왜곡된 교조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이러한 치샹에게서는 전반적 위기론이 없다. 그에 따라 위기의 산물로서 국가의 개입이라는 점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구체성을 상실한다. 실제로 치샹이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생산(력)의 사회화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독점의 확대발전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주도하는 것이 바로 신용제도 즉, 금융과두제이다. 생산의 사회화는 치샹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독점의 강화, 금융과두제의 강화로 귀결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위기론은 국가개입의 근거를 우선적으로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에서 찾는다. 독점자본주의에서 격화되는 모순의 결과 발생하는 위기, 즉, 제국주의 전쟁, 대공황 등이 바로 국가개입을 가져오는 현실적 원인이다.





한편, 위기설과 생산관계설을 통합하려는 시도도 있다.15) 그러나 위기설 자체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개입이 발전하는 생산력을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틀 내에 머물게 하려는 제국주의의 방안이라는 점을 위기설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생산관계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다. 그러나 기존의 생산관계설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 차원에서 위기설과 생산관계설의 통합은 타당하지 않다.















4.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견해들










1)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정의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해 최초로 개념을 정립한 사람은 레닌이었다.










‘레닌은 국가가 시장을 확장하면 관련 독점체는 확실한 시장을 확보하지만, 국가권력이 보장한 확실한 시장 자체가 사적인 폭리획득의 기초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국가권력에 의한 독점이윤보장체제라고 규정한다.’16)










이러한 레닌의 견해에 대한 설명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핵심을 잘 드러내고 있다. 국가라는 경제외적 폭력을 경제에 개입시킴에 의해 독점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고 유지하기 위한 체제가 바로 국가독점자본주의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정의로 ‘국가권력을 종속시키고 있는 독점자본의 지배체제 또는 국가에 의해 보강되는 금융과두제’17)라는 정의도 있는데 역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핵심을 드러내는 정의이다.





이러한 정의는 국가권력과 독점권력 간의 관계와 그 관계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전반적 위기와 관련하여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의 전개에 대응한 독점부르주아지의 지배’18)라는 정의도 있는데 역시 일맥상통한다. 또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국가의 도움으로 사회주의로 이행을 저지하려는 금융자본의 시도’19)라는 정의도 유사하다.















2) 융합테제와 종속테제의 관계










그러면 본격적으로 국가권력가 독점권력 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지점은 국가의 개입이 광범위하고 전면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제외한다면,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와 차이가 없다. 따라서 국가의 개입이라는 것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9세기에도 부분적이지만 국가의 개입은 있었고 특히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의 시기에도 국가는 폭력적으로 생산자와 생산수단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국가의 개입이라는 것만으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것이 부족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국가권력과 독점권력과의 융합이다. 이러한 융합테제를 제기한 사람이 바로 레닌이다. 국가권력과 독점권력 간의 유착 혹은 융합이라는 유명한 테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와 독점의 융합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자본의 물질적 확대재생산의 규제, 2. 자본관계의 확대재생산을 보장하는 것, 3. 과두체의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는 것.’20)










그리하여 국가권력이 전적으로 독점의 이윤을 보장하고 지원하고 반대로 독점은 국가권력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공고화된 것이다.





그런데 2차 대전 후에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정리되면서 특히 바르가 논쟁을 거치면서 스탈린에 의해 ‘종속테제’가 제기된다. 먼저 스탈린의 테제를 인용해보자.










‘“합착”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그리고 묘사적으로 국가와 독점체들의 합병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이 과정의 경제적 중요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문제의 사실은 합병 과정이 단지 합착의 과정이 아니라 독점체들에 대한 국가 기제의 장악이라는 점이다. “합착”이라는 단어는 그러므로 폐기되어야 하며 “독점체들에 대한 국가기제의 장악”이라는 말로 대체되어야 한다.’21)










이러한 스탈린의 테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스탈린은 합착 즉, 유착이라는 개념 대신 장악 혹은 종속이라는 테제를 제기한 것이다. 즉, 국가권력과 독점권력의 유착이라는 개념만으로는 부족하고 독점권력에 대한 국가권력의 종속이라는 테제를 제기한 것이다. 여기서 스탈린이 유착 혹은 합착의 개념을 폐기한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유착 현상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 대신에 종속 혹은 장악이라는 개념을 핵심개념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제기한 것이다. 스탈린은 왜 이러한 테제를 제기한 것인가? 그것은 국가와 독점의 융합이라는 현상에 접근함에 있어서 만약 국가가 독점의 우위에 서게 된다면 그것은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관계의 형성을 의미하고 그에 따라 독점자본의 지배체제라는 본질을 가리게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레닌 당시에는 국가와 독점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론적으로 충분했지만 1950년대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부터는 국가권력과 독점권력의 융합체의 본질적 관계, 나아가 그 내부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 어느 것인가를 확정하는 것이 중요한 단계가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규정해야만 새롭게 전개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의 종속테제는 매우 적절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있어서 국가독점 혹은 국가소유는 사적 소유, 사적 독점의 대립물이 아니라 사적 독점의 동맹이고 독점적 소유의 지주이다. 즉 국가적 소유가 강화된다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있어서는 독점체제의 강화와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국가독점은 사적 독점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보장하는 것을 자신의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융합테제는 종속테제에 의해 보완되어야 개량주의를 막을 수 있다. 즉, 국가권력과 독점권력 간의 융합현상만을 주목하면 마치 새로운 생산관계가 성립한 것이고 자본주의가 자신의 경제법칙을 국가를 통해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나아가서는 모순의 심화가 아니라 모순의 조절 혹은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독점체에 종속되어 있다는 본질을 확연히 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아니라 독점자본주의 모순의 격화에 대한 국가의 대응으로서 일종의 보완책이었다는 것이 명확해져야 했던 것이다.





실제로 2차 대전이후 사회민주당은 국가독점을 옹호하기도 했다. 1978년 독일 사회민주당 의장인 한스-울리히 클로제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제 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분석을 완전히 틀린 것으로 더 이상 치부해 버릴 수 없다. ...우리는 경제를 위해 다각적인 개입을 하고 있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자본주의의 복구작업을 매우 성공적으로 전개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22)










여기서 보이듯이 사회민주주의자들조차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의 대전제는 국가의 독점체에의 종속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이 1952년에 융합테제에 대한 보완으로서 종속테제를 제기한 것은 타당했다.










3) 경향론(특성론)과 단계론의 대립










이러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부딪히는 견해는 경향론(특성론)과 단계론의 대립이다. 경향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제국주의에 고유한 모순의 결과 나타나는 하나의 특성 혹은 경향으로 본다. 그리하여 독점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질적인 차이를 부정한다. 반대로 단계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사적 독점자본주의와 구분되는 새로운 단계로 평가한다. 그리고 대략 그러한 단계가 시작된 시점을 2차 대전 이후로 잡는다. 단계론은 다음과 같은 내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은 ... 결국은 1960-70년대의 부르주아 사회의 경제구조와 사회구조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다 주었으며, 이것이 20세기 초 및 그 이후 수십년간의 자본주의와의 중요한 차이를 발생시킨 것이다.. ... 과학기술혁명, ... 국가가 생산관계 체제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 자본주의적 모순의 운동 및 심화의 형태변화와 순환의 모든 부면에서의 그 불안정성의 형태 변화, ...’23)










이렇게 단계론은 2차 대전을 분기점으로 하여 그 전과 그 이후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으며 그것이 바로 국가의 경제개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론은 국가독점적 규제체제와 경제의 국유화를 하나의 ‘결절점’으로 본다. 이러한 견해의 한 종류인 치샹의 경우 심지어 새로운 생산관계라고 정식화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단계론의 이러한 해석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우익적 편향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있어서 단계론은 그 중심에 국가독점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틀린 것이다.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중심에는 사적 독점이 있다. 그리고 국가독점은 바로 그러한 사적 독점의 강화에 봉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단계론은 당연히 스탈린의 종속테제를 부정한다. 왜냐하면 국가권력의 독점체에의 종속을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새로운 단계라고 보는 자신들의 견해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도 단계론이 우익적 편향임을 알 수 있다.





반대로 특성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제국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보는 것을 부정한다.










‘국가와 독점 간의 계속 증대되는 결속과 협력은 독점자본주의의 본질적 양상이며, 명명하기에 따라서는 단계적으로 점차 강력해지는 근본양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사적 독점의 단계와 분명히 구별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고 제국주의의 특수한 단계를 나타내는 것은 전혀 아니다.’24)










여기서 명백한 것은 국가독점은 독점자본주의의 본질적 양상이라는 것이다. 즉, 독점자본주의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경제와 관련한 국가의 새로운 역할은 독점자본주의의 총체적 본질에서, 즉 제국주의를 특징짓는 특수성―이것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한, 최후의 단계로 특징짓는다―의 총체에서 기인한다. ... 독점체가 현대 경제의 결정적인 부문을 장악하면 국가기구와 자본주의체제 전체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유기적인 결합이 창출된다. ...’25)










이 인용문은 1929년 쏘련의 학자인 흐멜니츠카야의 논문으로부터의 재인용이다. 이 시기는 경향론과 단계론 사이의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기도 전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국가와 독점의 결합의 근거와 본질을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국가개입에 앞서서 ‘독점체가 ... 결정적인 부분을 장악하면’이라는 것이 전제적인 상황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국가와 독점체의 ‘끊을 수 없는 결합’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다. 독점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경제의 전면에 나서서 독점이윤을 떠받쳐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본질인 것이고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경향론 혹은 특성론적인 접근이다.





실제로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생산관계의 변화 방향은 독점체제의 강화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가 독점체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위 생산관계 사회화라는 개념 자체가 많은 오류가 있는 것이다. 치샹의 경우 전형적인, 이러한 접근은 국가독점자본주의하에서 생산관계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생산관계는 사회화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사적 독점을 강화하는 데 봉사한다. 우익적 경향인 생산력설(생산관계설)은 국가의 경제관리, 국민경제 총괄기능을 중시하지만 그전에 신용기능(금융과두제)에 의한 국민경제 총괄기능이 존재26)하고 이것이 본질적이다.





결론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의 총체적 본질로부터 유래하는 하나의 특성인 것이고 독점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새로운 단계는 전혀 아니다. 반대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독점자본을 구원하고 떠받치기 위해 독점자본들이 국가를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4)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










한편,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관철되는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 경쟁과 독점의 모순, 기타 독점자본주의의 모순 이외에 국가독점자본주의에 고유한 모순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모순이란 국가독점자본주의가, 혹은 그 유효수요 창출정책이 결코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을 결코 지양시킬 수도, 완화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27)










이러한 언급은 국가가 경제의 전면에 나선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의 모순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독점자본주의의 잉여가치에 대한 탐욕은 국가가 만드는 시장을 넘어서 무한히 확대되기 때문에 결코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있어서 생산과 소비의 모순의 특수성이다. 이외에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성을 보면 이것이 분명해진다. 한편으로 그것은 생산력 발전에 의해 객관적으로 조건지어지며, 또한 사적 독점의 이해관계는 경제과정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더욱 강하게 요구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산력의 결정적인 양을 독점체가 소유함으로써 국가의 경제규제는 어렵게 된다. 모든 임의의 국가독점자본주의적 형태의 필연적인 속성은 일정 정도 사적 독점의 이니셔티브를 제한하는 것이다. 국가독점적 관계는 항상 사적 기업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업무에 대한 통제, 규제 및 개입을 의미한다. 이러한 한에서 독점부르주아지는 어떤 때에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조심스럽게 지지하며, 어떤 때에는 그에 반대하기도 한다. 따라서 국가독점적 형태가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결과도 생겨난다.’28)










이러한 설명은 독점이 한편으로는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반대한다는 것인데 이는 국가의 작용이 철저히 독점의 요구와 이익에 따른다는 것을 말하며 그 결과 국가독점이 불균등하게 발전하기조차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국가의 개입이 ‘계획의 기초’라는 둥 혹은 새로운 생산관계를 의미한다는 둥의 주장들이 근거가 없는 것임을 말한다.















5. 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에 대한 개괄










1) 부하린의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










1920년 부하린은 ��과도기경제론��에서 레닌과 달리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쓰는 것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국내에서 트러스트가 확장되어 부문을 넘어 전 국가적으로 단일한 트러스트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내에서는 생산의 무정부성이 사라지고 경쟁이 소멸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이러한 부하린의 개념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작용의 극한을 추상적으로 접근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는 레닌의 이론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독점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경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독점과 경쟁의 모순적 통일이 독점자본주의인데 부하린은 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그리고 추상적으로 국가역할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이러한 부하린의 개념은 이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우익적 편향이 있는 해석의 단초라 할 수 있다.










2) 힐퍼딩의 조직자본주의론










부하린이 사회주의 진영 내의 우익적 편향이었다면 부르주아진영 내에서 조직된 자본주의 즉, 생산의 무정부성을 극복한 자본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장한 사람이 힐퍼딩이다. 1920년대의 이러한 주장은 제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이라는 자본주의에 있어서 재앙을 극복하고 상대적인 안정기를 맞이한 자본주의진영의 자신감 혹은 환상의 발로였다. 노동과정의 사회화, 실업보험 등을 말하는 힐퍼딩의 근거는 박약했고 그의 이론은 1930년대의 대공황에 의해 파산한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이후 수정되어 사회민주당들의 이론적 근거로서 쓰이기 시작한다.










3) 바르가 논쟁










바르가는 스탈린 시대의 뛰어난 이론가였다. 전반적 위기론을 선구적으로 주장했고 이는 코민테른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2차 대전 직후 서유럽과 미국에서 경제에서의 국가역할의 증대현상을 보면서 과거 종속설에서 입장을 바꾸었다. ‘국가는 생산수단의 이용을 스스로 결정하여 자본주의에 있어서 가장 곤란한 시장문제를 해결하였고 전체 경제를 의식적ㆍ계획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29)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국가가 ‘계획의 기초’를 놓는다고 보았다. 결정적으로 바르가는 스탈린의 종속테제를 부정하였고 이에 따라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바르가는 이때 자기비판을 했지만 스탈린의 사망과 탄핵 이후 그 자기비판을 번복하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였다. 바르가 논쟁은 2차 대전 후의 최초의 논쟁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국가개입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이론적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바르가는 국가개입이라는 현상을 우익적으로 해석하는 흐름의 선구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4) 치샹논쟁










바르가 논쟁이 1940년대 말의 논쟁이었다면 1950년대를 장식한 논쟁은 치샹논쟁이었다. 치샹은 과감하게 생산력의 사회화에 대한 생산관계의 ‘적응’을 주장했고 생산력의 사회화와 더불어 생산관계의 사회화 즉, 이중의 사회화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조세를 생산관계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리하여 국가가 토대로 전화되었다는 규정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치샹의 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현상에 대해 매우 도식적으로 사적 유물론의 명제를 제기한 것이었고 나아가 우익적 해석을 시도한 것이었다. 치샹 또한 스탈린의 종속테제를 거부했다. 치샹처럼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생산력에 적응하는 것으로 파악하면 자본주의 모순의 폭발 혹은 사회혁명은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치샹 논쟁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본질이 생산력의 발전에 조응한 생산관계의 문제인가 아니면 전반적 위기에 대응하는 독점의 고차적인 형태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고 할 수 있다.










5) 드라길레프 논쟁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해 단계론 혹은 생산관계론이 다수를 차지하던 브레즈네프 시절에 1970년대 초반에 드라길레프가 특성론을 옹호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것에 대해 단계론자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이 이른바 드라길레프 논쟁이었다. 이 논쟁에서 드라길레프 논쟁은 국가독점자본주의 성립과 전반적 위기론의 관계를 규명하고 ‘자유경쟁에서 독점으로의 전화는 생산관계의 구조적 변화이지만 독점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화는 생산관계의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경향일 뿐’이라는 견해를 제출한다. 그리고 국가독점자본주의 출현의 원인으로서 ‘제국주의의 내적인 적대’를 꼽았다. 그리고 전반적 위기는 제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이라는 시발점이 있지만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했다.















6. 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의 성과와 의의










한국에 소개된 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의 대략은 위와 같다. 1970년대까지의 논쟁의 성과가 한국에 80년대와 90년대에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이후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형태로 변신하여 작동하고 있다. 최근의 세계대공황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의 폭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리스 등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국가가 독점자본의 구원자의 위치에서 이제는 거꾸로 공황의 진원지로 전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노동자계급의 사회변혁 전략을 세우기 위해 국가독점자본주의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이론틀이다. 이 부르주아 사회의 현실적 지배자인 독점자본들의 성격, 그들의 국가와의 관계, 독점자본주의의 모순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강점과 약점 등이 정확히 파악되어야 한다.





20세기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은 내부에 논쟁들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타당한 것이었다. 이제는 이 이론들 중에서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가려내고 현대, 21세기 초인 바로 지금의 상황을 반영하여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보편적 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 나아가 각국의 변혁전략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을 각국의 특수성과 결합시켜야 한다.





남한에서 이러한 작업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재생산의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것, 즉, 신식민지적 조건에서 남한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해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의 최근의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 맞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 변혁전략의 수립에 대한 봉사일 것이다. <노사과연>






1)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p. 517






2) 융, 슐라이프슈타인, ��국가독점자본주의이론 연구��II, 돌베개, p. 261






3) P. 호프만,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 2분책, p. 19. 여기서 전반적 위기론이라는 말대신 등장하는 일반적 위기론이라는 것은 모두 영어의 general을 번역한 동의어이다. 한국에서는 전반적 위기론이라는 번역어가 지배적이지만 일반적 위기론이라 번역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글에서는 각각의 논문의 번역을 존중해서 혼용하기로 한다.






4) 드라길레프,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구�� 1분책, 벼리, p. 79






5) 드라길레프, 앞의 책, p. 74






6) 드라길레프, 앞의 책, p. 77






7)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p. 473






8) 레닌,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제 2분책, 새길,에서 재인용. p. 49






9) 드라길레프, 앞의 책, p. 89






10) 드라길레프, 앞의 책, p. 37






11) 本間要一郞,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세계, p. 126.






12) 드라길레프, 앞의 책, p. 82






13) 本間要一郞, 앞의 책, pp. 119-123






14) V.H. 누스바움,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제 2분책, 새길, p. 88






15) 島恭彦,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세계, p. 31






16) 池上惇, ��국가독점자본주의론 1��, 한울, p. 115






17) 島恭彦,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세계, p. 27






18)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p. 516






19) 오토마르 크라취,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 연구II��, 돌베개, p. 181






20) V.H. 누스바움,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론과 일반적 위기론�� 제 2분책, 새길, p. 106






21) 스탈린,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경제적 문제들, ��스탈린 선집��2, 전진, p. 260, 여기서 합착이라는 단어는 보통 유착이라고 번역되고 있다. 그리고 장악이라는 것은 종속이라는 말로 더 번역이 많이 되고 있다.






22) 클로제,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연구II��, p. 299에서 재인용






23) 출파노프,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구�� 1분책, p. 166






24) 베르너 골드슈미트,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연구 II��, 돌베개, p. 102에서 재인용






25) 흐멜리츠카야,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제 2분책, 새길,






26) 島恭彦,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세계, p. 50






27)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p. 544






28) 드라길레프, 앞의 책, p. 85






29) 島恭彦,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세계, p. 25에 요약된 견해를 인용함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162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쟁점들 문영찬|편집위원 2010-04-20 2632 115


우 156-060)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435번지 진안상가 나동 2층 (신주소: 노량진로 22길 33) 
(전화) 02-790-1917 / (팩스) 02-790-1918 / (이메일) wissk@lodong.org
Copyright 2005~2022 노동사회과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