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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기획번역> 음악의 반란자 (11)
글쓴이 한스 아이슬러 E-mail send mail 번호 162
날짜 2010-03-26 조회수 3010 추천수 138
파일  1269603580_아이슬러.hwp

  













기획번역











번역: 최상철(운영위원)










왼쪽에서 바라본 할리우드





1935















[역자주:





이번 연재에서 좌편향적 시각에서 본 할리우드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진보적인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조차 할리우드의 영화를 보고 많은 미제국주의 문화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노동조합 등에서 선전물을 만들 때 미국영화 포스터를 패러디1)를 하는 경우도 이따금 볼 수 있는데 대중들의 정서에 맞는 선전물이라는 이유로 이런 것이 합리화되는 경우도 있고 아예 별 고민이 없는 경우마저 있다. 물론 대중들의 현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민 대중의 정서에 부합하는 것이 항상 고민거리를 던져줄 것인데 항상 대중추수적인 방식으로만 진행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변혁적인 내용은 그 형식에 있어서도 진보적인 것에 담길 때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새로운 형식을 대중과 함께 학습해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아이슬러와 브레히트의 태도였고, 이는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우민화에 맞서는 이들에게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는 영상촬영에 대해 노동자들과 학습할 때 무턱대고 카메라로 찍는 것이 아니라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가장 모범적이며 대중적인 방식은 당장에 써먹을 실용적인 기술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와 표현하고자하는 내용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사회주의 현실주의의 고전들 이를테면 사회주의권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고전들은 당시에 막강한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고전들이 현실주의 고전들이 생소하게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알렉산드로 도브젠코 감독2)의 1930년작 <대지(Земла)>와 같은 작품을 들 수 있겠다. 192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쏘련의 농업집단화 과정과 그를 둘러싼 계급투쟁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 당시에 여성의 누드가 등장하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형식실험3)을 감행한 작품으로만 보일 것이다. 미술도 그렇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주류는 추상표현주의의 영향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그래서 19세기 리얼리즘 미술이 오히려 더 초현실주의적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사회주의 예술의 고전에 대해 차근차근 접근해 가는 것도 새로운 형식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환일 것이다. 또 일제시대 이후의 이 땅에서 실제로 진행되었던 투쟁과 예술운동에 대해서 다시금 치열하게 학습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4)





당시의 할리우드와 지금의 더더욱 거대한 자본의 영향력 하에 최첨단으로 무장한 할리우드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에 영화의 지위는 많은 부분 텔레비전에게 넘어갔고, 지금은 인터넷이 막강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아이폰과 같은 복합기기가 등장하는 등 기술의 발전과 매체의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더군다나 매커씨즘의 광풍이 지나간 이후의 할리우드에서는 본문에서 보이는 진보적인 가능성들이 심각한 정도로 제거되어 버렸다. 아이슬러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를 관찰하며 평이하면서도 간결하게 서술로 놓치고 있는 이면에 대해 있는 서술하고 있는데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고풍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와 미제국주의의 문화의 침투가 더욱더 전세계화 하고 있는 때에 할리우드의 감춰진 면을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 하리라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우파에게도 좌파라고 선동하는 극우들의 시대에 무엇이 당시의 할리우드 인사들을 좌측으로 몰고 갔는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아이슬러의 글은 한국의 영화계에의 이면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할 것이다. 마지막에 아이슬러가 제시하고 있는 줄거리는 실제로 영화화된다면 상당히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5)]




















모든 소부르주아지의 꿈인 영화마을 할리우드는 로스 엔젤레스의 교외에 있다. 쌘프란씨스코에서 할리우드로 비행기로 갔을 때 날씨는 좋지 않았다. 나는 공항에서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중 하나가 “안녕하세요 한스, 쉬클러스트라쎄 4구역6)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요?” 그 남자를 보고 우리가 만났었던가 싶었는데 그는 <맑스주의노동자학교>7)에서 나의 수업에 참석했던 이였다. 당시에 그는 베를린에 있는 미국 신문의 통신원이었고 저녁에 <맑스주의노동자학교>에 갔다. 이 동지가 나의 비서인 듯이 대할 정도로 친절했기에 나는 할리우드를 왼쪽에서 바라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먼저 할리우드의 특징은 떠벌이와 음모로 가득한 작은 시골 마을이라는 것이다. 이 떠벌이 마을은 야자와 화려한 꽃들이 한복판에 있는 대서양의 장관을 끼고 자리한다. 영화스타들은 할리우드에서 몇 마일 떨어진 싼타 모니카에 산다. 여러 영화계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반동적인 캘리포니아 정부가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예술가 단진 영화관계자 뿐만이 아니라 배우, 각본가, 감독들이 그들 중 일부는 고액수입자임에도 불구하고 좌화전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일급의 카메라 기사의 수입은 주당 1500달러이고, 뛰어난 배우는 주당 400에서 1000달러를, 그리고 스타는 일년에 사십만달러까지 올라간다.8) 그들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 이는 자신들의 일에 구역질을 내기 때문이고, 단지 영화산업에 이윤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는 모든 예술의 종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유명한 남자배우는 그들9)이 자신이 공산당을 후원하기 위해 돈을 주었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 그것은 그의 생계를 앗아갈 지경이며, 그는 모든 것은 사악한 비방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만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었다. 내가 거대 영화사의 최고 각본 편집자10)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탁자에 놓인 영화각본을 봐도 괜찮은지 물었더니, 그는 얼굴이 빨개지며 안된다고 했다. 영화 예술인을 좌파가 되게 하는 것은 달갑지 않은 것이다. 결국에 영화 작가가 피와 오물로 가득 찬 그러나 또한 노동자계급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가득 찬 최고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에 살아가며,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현실과는 완전히 유리되어 있으며, 멍청하게 사기를 치는, 저속하며(kitsch) 하찮은 각본을 생산하게 하는 영화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반동적인 샌프란씨스코 정부와 영화산업은 자신들의 피고용인에 대해, 심지어 스타들에게 조차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기에 이들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정치적인 공감11)을 위장해야 했다. 그래도 자신의 공감과 연대를 실제로 보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찰리 채플린12)은 여전히 가장 유명하고 가장 명예스러운 미국 남자 배우이다. 미국인은 그를 사랑한다. 그의 새 영화에 관한 근거없는 소문이 돌고 있다.13) 반동적인 허스트14) 언론은 그가 공산주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며 채플린에 대한 공격을 황급하게 개시했다. 그는 보이코트 당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언론 매체에 자신의 작품이 공산주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부인해야 했다. 하지만 챨리 채플린의 영화는 사회적인 태도(social setting)을 두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공산주의에 우호적이다고 밝혔는데, 공산주의15) 하에서 자신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이것은 공산주의에 지지를 보내는 매우 미국적인 방식이다.) 그는 2년간 이 영화작업을 했으며 6개월 내에 마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나서 채플린은 야로슬라프 하씨크16)의 원작에 기반한 “슈베이크”17)를 피터 로어18)의 주연으로 기획하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사의 음악분과는 매우 묘한 곳이다. 대개 일반적인 영화관람객은 한 작곡가가 영화음악을 작곡한다고 상상할 것이다. 모든 제작사(factory)는 영구적으로 고용되고 정확하게 업무시간을 지키는 5~6인의 음악전문가를 두고 있다. 첫째는 군사음악 전문가이며, 둘째는 감상적인 사랑 노래 전문가, 셋째는 서곡과 간주곡(intermezzi) 교향악 작곡에 보다 숙달된 전문가, 넷째는 빈풍의 오페레타19) 전문가, 다섯째는 재즈 전문가이다. 그래서 영화에 음악이 필요하다면 모든 작곡가는 자신이 전문성을 지닌 해당 분야에서 작업해야 한다. 작곡가는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혹은 동료 음악가가 무엇을 작곡하는지 알지 못하고, 모두 단지 자신의 특정부분을 수행할 뿐이다.20) 저들은 이것이 영화 음악에서 진보적일 수 있는 합리화의 일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content)뿐만 아니라 대개는 그 음악도 저급한 것이기에, 이 고용된 작곡가들은 금새 일방적인 형식의 작업에 완전히 바보같이 되어 버린다. 이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 밖에도 말하자면 선곡하는 다음의 방법이 있다. 절대적인 음악 문외한인 스튜디오 책임자는 자신이 즉각적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만을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말하다시피 그는 뱃고동21)같은 목소리에 절대적인 음악 문외한인데도 너무 어려운 것은 죄다 거부해 버린다. 그러나 이렇게 음악적 감성이 결핍되어 있기에 힛트송만이, 즉 듣기도 전에 부를 수 있는 노래만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증하게 된다.





단막 연기배우들, 이른바 엑스트라들은 영구적으로 고용되지 않는다. 할리우드와 로스 엔젤레스에는 이만이천의 실업상태의 엑스트라가 있다. 이들의 생활은 불안정하다. 이들이 생산과정에서 밀려나지 않길 원한다면 끊임없이 스튜디오와 접촉해야만 한다. 하지만 로스 앤젤레스에는 버스와 전철이 약간 있을 뿐 지하철이 없기에,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있어야만 한다. 실로 대중교통수단은 고의적으로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는 시의회는 자동자 산업왕들로부터 일정한 양보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로스 앤젤레스와 할리우드에는 150만의 거주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화를 건 직후 스튜디오에 가거나 혹은 영화 기획사와 영화사에 자주 전화를 거는 것22)은 자동차만으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당신이 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굶주려야 한다.





할리우드의 한편에서는 위험과 비참함이 반면에 다른 편에는 아마도 세계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호사스러움이 있다. 카지노, 성매매촌, 호화스러운 호텔과 모든 상상할 수 있는 종류의 유흥시설이 있다. 예를 들어, 팜 스프링즈23)는 캘리포니아 사막의 인공 오아시스로 할리우드에서 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다. 도박장으로 가득 찬 믿기 힘들 정도로 호화스러운 호텔이 이 사막에 건설되었다. 모든 종류의 쾌락과 모든 상상할 수 있는 호사스러움은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이렇게 거대 영화 기획자와 스타들이 자신들의 주말을 보낸다. 도박하고, 마시고, 성매매를 하고, 그리고 참견 잘하는 기자와 협박꾼의 시야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팜 스프링즈에 있다.





이따금 거대 영화사는 세금에 투덜거리며 언론사에 자신들이 다른 나라로 옮겨갈 것이라고 소문을 던진다. 이는 어떤 이에게 플로리다를 다른 이에겐 뉴욕을 뜻한다. 그것은 영화와 생계가 관련된 수십만의 인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뉴욕까지는 삼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기에 옮기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든다. 당연히도 영화사들은 자신들의 스타들과 약간의 스태프만을 데려갈 것이다. 미숙련 노동자, 엑스트라, 보조 미용사와, 분장사24)들이 지역에 있게 될 것이다. 흥미롭고 젊은 영화감독이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가 다음과 같은 줄거리의 영화를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영화사는 뉴욕으로 옮겨가고 생산과정에서 영구적으로 몰려난 수십만은 할리우드에서 뉴욕까지 도보로 장정을 한다. 새로운 십자군! 할리우드와 뉴욕 사이에는 광대한 사막과 얼음 덮인 봉우리의 로키산과 무시무시하고 높은 발밑의 씨에라 네바다 산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의 대부분이 장정에서 죽어야만 될 것이다. 하지만 뉴욕의 우두머리의 대문에 도착한 이들은 출발할 때와 다르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영화감독은 말했다. “그거 참 경이로운 착상이군요. 그런데 검열25)이 이를 허용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노사과연>






1) 패러디라는 방식은 유효하지만 그 한계점도 있다. 이를테면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와 같은 것도 일종의 패러디로 볼 수 있을텐데 잘못 사용되는 경우에는 오히려 해롭다고 할 것이다. 지난 3월 8일 대학로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투쟁집회 공연중에 씨앤블루의 <외톨이야>를 패러디해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곡이 자본주의적 대중음악이라는 이유에서만 비롯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70년대 이후 많은 노가바는 대중가요에서 비롯한 것이다. 문제는 <외톨이야>라는 곡은 인디밴드 와이낫의 <파랑새> 표절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저작권의 관점에서 표절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또 창작이라는 것은 과거와의 명확한 단절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표절논란의 역사는 서양에서는 핸델 이전으로 거슬러 갈 정도이기도 하다(물론 이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폭력적인 지적재산권도 없었고 엄밀하게 적용되는 표절개념도 없었다). 또 쿠바의 국가는 모차르트 아리아의 ‘표절’이라는 제기가 있는데 그 곡이 에스빠냐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배경을 안다면 그런 ‘표절’은 그리 흠잡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인디밴드의 곡을 대중음악기획사의 작곡가라는 사람이 사전에 아무런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윤을 위한 상업음악을 위해 교묘하게 다른 이들의 작품을 변형하는 방식으로 표절해서 쓴다는 것은 분명히도 문제가 있는 일이다. 그런 곡을 패러디 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패러디나 노가바를 할 때에는 보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 Олександр Довженко(러시아어로는 Александр Довженко)[1894-1956]. 우끄라이나 출신의 쏘련 감독. 에이젠슈쩨인, 푸도프낀, 베르또프 등과 함께 초기 쏘련 영화계의 거장으로 꼽힌다. 언급한 <대지>이외에도 우끄라이나 1916년 우끄라이나 노동자 봉기의 패배를 다룬 1928년작 <병기고(арсенал, 한국에서는 병기고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는데, 임채희 동지는 ‘무기고’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와 같은 작품이 대표작이다. 이제는 예전에 비해 비교적 용이하게 영화를 찾아볼 수 있으니 못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바란다. 다만 DVD로 발매된 영화의 자막처리는 영어를 중역했는지 온전하지 못한데다 중간에 자막이 안나오는 부분도 있고, 영화를 해설하는 내용에도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여 다소간의 주의를 요한다.






3) 실제로 도브젠코 감독의 영상은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형식미를 보여준 것이기에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었다. 당대의 치열한 현실 속에서 탄생해야 하는 예술은 여러 논쟁을 수반한다. 그런데 별다른 논쟁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대중을 쉽게 선동할 수 있었던 작품들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유효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1930년대 이후의 80년의 계급투쟁과 기술적 진보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약간의 배경지식만 있다면 영화 <대지>는 처음에는 생소할 수는 있지만 결코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4) 최근에 나온 글 중에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기관지 ��질라라비��, 2010년 1월호에 실린, 김상목의 「공장의 불빛」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소중하고 귀중한 작업이다.






5) 2006년 4월 27일 중증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며 한강 다리를 휠체어를 버린 채 맨몸으로 건넜던 것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기는 하다. 한강 다리를 기어가고 있는 것이 이땅에서 장애인의 현실이다.






6) 역자가 번역하고 있는 영문에서는 Schicker Strasse 4로 되어있는데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에 있는 에버스발더(Eberswalde)의 한 구역인 Schicklerstraße 4로 보인다. 문맥상으로도 아이슬러를 환영한 동지는 독일에서 아이슬러의 <맑스주의노동자학교>의 수업을 들었던 인물이므로 그렇게 추정하는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아마도 그는 히틀러의 집권 후 독일에서 망명한 아이슬러보다 먼저 독일을 떠났을 것인데, 첫 인사로 그곳에서의 정황을 물어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Marxist Worker's School(영어판 선집에서는 Marxist School for Workers로 표기하고 있기도 함). 지난 2월호 연재에서 주석처리를 제대로 못하였다. 1926년 독일 공산당의 교육시설로써 설립된 기관이며 아이슬러가 그곳에서 강의하며 노동자계급의 활동가들과 교류했던 곳이다. 독일어 약자는 MASCH이다. 앞으로 연재할 내용에도 언급이 나오니 그때 좀더 부연설명을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8) 당시의 할리우드 스타들은 지금과 같은 정도의 천문한적인 출연료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으로 인해 1930년대에는 달러의 (교환)가치가 금 1온스당 20달러에서 34달러로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음에도 당시의 달러의 가치는 오늘날보다 상당히 높았고 또 생활수단도 훨씬 더 저렴했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덧붙여서 대공황기에도 문화산업을 통해 대중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기에 할리우드는 오히려 성장세를 달리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좋을 것이다. 반면에 지금 2010년의 공황기에는 문화산업마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자본주의에 체제의 유연성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






9) 문맥상 캘리포니아 주정부 관료들로 보인다.






10) chief story editor. 잘 알려진 월트 디즈니 같은 이도 각본 편집자 출신이다.






11) political sympathies. 여기서는 단순한 연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공감이나 교감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겠다.






12) 너무나 유명한 영화인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훗날 채플린과 아이슬러는 모두 매카씨즘의 희생자가 된다.






13) 원주: 아이슬러가 언급하는 채플린의 “공산주의” 영화는 <모던 타임즈>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1932년에서 36년에 생산되었고 사회문제를 다루는 채플린의 첫 번째 영화였다.(역자: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이전의 작품도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모던 타임즈> 이후의 작품은 보다 그 지향성이 명확해진다.)






14) 뉴욕에 거점을 두고 있는 대표적인 반동적인 언론 재벌로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유선 방송에도 허스트 산하 기업의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들은 사회주의에 대해 온갖 거짓으로 점철된 악선동을 벌였다. 허스트 재단이 행했던 거짓 선전의 일부는 ��정세와 노동��에 연재되었고 다른 글들과 함께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될 예정인 「쏘련 역사에 관한 거짓말」에 실려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15) 굳이 부연하자면 채플린의 언급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현실에서 존재하고 있는 쏘련을 염두해 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영미권에서 사회주의는 유럽식 사민주의, 공산주의는 쏘련과 동유럽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권을 언급하는 식으로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16) Jaroslav Hašek[1883-1923]. 체코의 저명한 작가. 러시아 혁명이후에는 볼쉐비끼가 된다. 역사적 현실에 기반하여 기지가 넘치고 해학과 풍자로 가득찬 글로 쓴 작품들을 남겼다. 1920년에는 몽골(1924년 몽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립된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갔다고 한다. http://cs.wikipedia.org/wiki/Jaroslav_Ha%C5%A1ek






17) 원주: 영화 “슈베이크”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역자: 1912년 작 ��병사 슈베이크�� 원제는 Dobrý voják Švejk a jiné podivné historky(직역하면 ‘좋은 병사 슈베이크와 이상한 이야기들’). 국내에는 학원사에서 세계문학 67, 68의 두 권으로 출간되었으나 오래전에 나온 것이라 번역본을 구하려면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헌책방을 열심히 뒤져야 한다. 브레히트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인데 ��2차대전 중의 슈베이크(Schweyk im Zweiten Weltkrieg)��는 하씨크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브레히트의 작품은 노사과연 미학 쎄미나를 통해 함께 감상한 적이 있는데 하씨크의 원작도 함께 토론하고 싶은 작품이다.






18) Peter Lorre[1904-1964].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이며 당대의 유명 배우. 자세한 내용은 http://en.wikipedia.org/wiki/Peter_Lorre#cite_note-4을 보라.






19) Viennese operetta. 오페레타는 상류계급의 유흥거리인 오페라를 보다 대중적인 것으로 가벼운 오락으로 만든 것이다. 참고로 이 무렵인 1934년 빈 국립오페라의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가 사임하는 등 오스트리아 빈 음악계에도 나치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있었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19, Macmillan publishers, 1980. pp. 726-727.






20) 여러분은 지금 ��자본론�� 1권에서 볼 수 있는 분업화가 ‘영화공장(factory)’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이는 본문에 나오는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이 연기하는 주인공 노동자 겪는 삶과 결코 다르지 않다.






21) fog horn. 사전적으로 번역하자면 무적(霧笛), 즉 항해 중인 배에게 안개를 조심하라는 뜻에서 부는 고동이다. 무적이 울릴 때는 둔탁한 저음의 거대한 금속성 뿔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2) 이 1930년대에는 집집마다 전화기가 보급되지 않았었다.






23) Palm Springs.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시이다.






24) decorators. 요즘에 분장사는 make-up artist라는 용어를 쓰고 decorator는 실내장식사에 국한해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미용사다음에 등장하기에 맥락상 분장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25) 쌍용 자동차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영화 <저달이 차기도 전에>가 극장에서 상영될 기회를 박탈당한 것도 명백한 검열을 통한 배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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