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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6)
글쓴이 하르팔 브라르 E-mail send mail 번호 158
날짜 2010-02-21 조회수 2470 추천수 142
파일  1266685899_tro.hwp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











제 3장










혁명이론:





  레닌의 혁명이론 대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




















“혁명적 이론없이 혁명운동은 있을 수 없다”(레닌)





“전위 투사의 역할은 가장 선진적인 이론에 의해 인도되는 당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레닌)





“... 실천은 그 길이 혁명적 이론에 의해 밝혀지지 않는다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릴 수밖에 없다.”(스탈린)





러시아 혁명의 성격에 대한 볼세비키들, 멘세비키들 그리고 뜨로츠끼 사이의 차이들















러시아 혁명의 성격에 대한 멘세비키의 입장










멘세비키(개량주의적 사회주의자들)는 러시아에서 다가오는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이며 그리고 그것의 부르주아-민주주의적 성격의 관점에서 혁명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 의해 지도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농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수립해서는 안 되며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관계를 수립해야만 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술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돕는 것이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지도력을 떠맡아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혁명적 열정의 활발한 표현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놀라게 하여 전제의 품으로 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떠한 혁명적 임시정부에도 참여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부르주아 정부에 결합함에 있어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범해진 오류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최후까지 수행하는 것을 강제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압력을 행사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멘세비키들은 주장하기를 프롤레타리아트는 종속적인 역할―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부속물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지도적인 역할을 해서는 안 되고 농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수립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부르주아 계급들이 혁명으로부터 뒷걸음질치게 하여 혁명을 일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레닌주의적-볼세비키적 입장










다른 한편으로 볼세비키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임박한 혁명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완전한 승리에 이해를 가지고 있는 계급은 우선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라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혁명의 승리는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스스로를 조직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그리고 근로 대중들에 대한 정치적 지도력에서 경험을 얻고 그리하여 부르주아 혁명의 단계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보다 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완전한 승리에 이해관계가 있었는데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은 부르주아지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것이기”(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지도력을 떠맡아야만 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 단독으로는, 의지할 수 있는 동맹의 도움과 능동적 참여 없이는,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을 지도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수행한다는 자신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1). 이 믿을 수 있는 동맹은 볼세비키들이 주장하기를, 농민층에 다름 아니었다. 농민층은 혁명의 성공에 이해가 걸려 있었는데 왜냐하면 오직 이러한 결과만이 농민층으로 하여금 지주계급에 대한 원한을 풀고 그들의 토지에 대한 소유를 획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은 말로 러시아 농민층의 역할―다가오는 혁명에서 그것의 계급적 입장에 의해 그것에 할당된 역할―을 다루었다:










“농민층은 소부르주아적 요소들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반(半)프롤레타리아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점은 그것을 불안정하게 하고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엄격히 계급적인 당에 결합하도록 강제한다. 그러나 농민층의 불안정성은 부르주아지의 불안정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오늘날 농민층은 사적 소유의 절대적 보전에 이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적 소유의 주요한 형태들의 하나인 지주소유 토지의 몰수에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농민층이 사회주의자가 되거나 혹은 소부르주아임을 멈추게 하지는 않지만, 농민층은 민주주의 혁명의 진심어린 그리고 가장 급진적인 지지자가 될 수 있다. 농민층은 불가피하게 이렇게 될 것인데 단, 농민층을 일깨우는 혁명적 사건들의 진행이 부르주아지의 배신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에 의해 너무 빨리 중단되지 않는다는 경우에서이다. 이러한 조건에 종속되어, 농민층은 불가피하게 혁명과 공화국의 요새가 될 것인데, 왜냐하면 단지 완전히 승리하는 혁명만이 농민층에게 농업개혁의 범위에서의 모든 것을―농민들이 열망하고, 그들이 꿈꾸고 있고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줄 수 있기 때문이다.”(��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더구나 볼세비키들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고립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이 배신적이고 불안정한 계급의 고립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력 하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문제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볼세비키의 전술이 “부르주아 계급들로 하여금 혁명으로부터 뒷걸음질쳐서 혁명을 일소할 것”이라는 멘세비키의 반대를 다루면서 그리고 이러한 반대를 “혁명을 배반하는 전술”로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 계급들의 비참한 부속물로 전환시키는 전술”로서 거부하면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성공적인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층의 역할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으로부터 뒷걸음질친다면 혁명이 일소될 것이라고 말할 것을 꿈꾸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상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으로부터 뒷걸음질칠 때만 그리고 농민층의 대중들이 프롤레타리아트 편에서 능동적 혁명가들로서 나설 때만, 그것의 실제적 승리를 가져오기 시작할 것이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시기에서 가능한 가장 광범한 혁명적 승리를 실제로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관되게 결말에까지 수행될 수 있기 위하여, 우리의 민주주의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불가피한 우유부단함을 마비시킬 수 있는, 즉, 바로 ‘그것으로 하여금 혁명으로부터 뒷걸음질치도록 할 수 있는’ 그런 세력에 의존해야만 한다.”(��두 가지 전술 ...��)










볼세비키들에 따르면, 짜리즘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혁명적 독재가 될 임시정부의 수립을 결과할 것이다. 짜리즘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보증하고, 힘으로써 전제의 저항을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불안정을 중립화하고, 농업의 그리고 다른 민주적 개혁들을 수행하고 그리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 이러한 정부의 기능일 것이다. 맑스로부터 “혁명 후의 모든 국가의 임시적 조직은 독재를 요구하며 그것도 정력적인 독재를 요구한다”는 유명한 테제를 인용하면서, 레닌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짜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혁명적 독재이다. ...”





“그리고 이러한 승리는 바로 독재가 될 것인데 즉, 불가피하게 군사적 힘에, 대중들의 무장에, 봉기에 의존할 것이고 이런 저런 종류의 ‘합법적으로’ 혹은 ‘평화적’ 방식으로 수립된 기구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재가 될 수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에게 긴급하고도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변화들의 실현이 지주들과 대부르주아지 그리고 짜리즘의 절망적인 저항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가 없다면 저항을 분쇄하고 반혁명적 시도들을 격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사회주의적 독재가 아니라 민주적 독재일 것이다. 자본주의 기초에 영향을 주는 것은 (혁명적 발전의 일련의 중간 단계들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두 가지 전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볼세비키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완성의 지점에서 멈추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사이에서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은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민주적 과제들의 달성에 이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다른 피착취 대중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볼세비키들에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공화국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었고 목적, 즉, 사회주의 공화국을 향한 수단이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은 사회주의 공화국의 방향으로 향하는 필요하고 필수적인 단계―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수립을 향한 그것의 계속적인 그리고 굽힐 수 없는 행진에서 혁명운동의 발전의 필수적인 중간 단계―였다. 그러나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주의 혁명의 국면에서 전체 인민의, 특히 농민층의 선두에 설 때만, 그리고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시기에서 모든 근로자와 피착취자의 선두에 설 때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책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범위와 프롤레타리아 당의 과제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시기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전략과 전술을 찬란하게 요약했고 부르주아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간의 관계의 문제에 대해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단호하게 다루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힘으로 전제의 저항을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농민층의 대중들과 동맹함에 의해 민주주의 혁명을 끝까지 수행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힘으로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하고 농민층과 소부르주아지의 불안정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인민의 반(半)프롤레타리아적인 요소들의 대중과 동맹함에 의해,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해야만 한다. 이러한 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들인데 이에 대해 신이스크라주의자들(멘세비키들―하르팔 브라르)은 언제나 혁명의 범위에 대한 그들의 주장과 결의들에서 매우 협소하게 제기한다.”










그리고 나아가:










“전 인민의, 특히 농민층의 선두에서―완전한 자유를 위하여, 일관된 민주주의 혁명을 위하여, 공화국을 위하여! 모든 근로자와 피착취자의 선두에서―사회주의를 위하여! 이러한 것이 실천 상에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책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것이 혁명의 기간에 노동자 당의 모든 전술적 문제들, 모든 실천적 조치의 해결에 스며들고 결정해야만 하는 계급적 구호이다.”(��두 가지 전술 ...��)










이것이 중단되지 않는 혁명의 이론―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전화의 이론―이다.















뜨로츠끼의 입장: 그의 ‘영구혁명’ 이론










뜨로츠끼는 볼세비키의 입장과 멘세비키의 입장에서 볼 때 형식적으로 다른 ‘중간의’ 입장을 점했으나 본질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모든 실천적 목적에서 볼 때 후자의 입장에 더 가까웠다. 그는 러시아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자본가들)에 대한 볼세비키의 평가에 동의했고 그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동시에 그는 농민층에 대한 멘세비키의 평가에 완전히 동의했다. 그리하여 그는 농민층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가 주장하기를, 농민층은 의지할 수 있는 동맹이 될 수 없었다. 농민층의 자연발생적인 운동과 봉기는 짜르 절대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노동계급을 도울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전제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혁명적 노동계급의 혁명적 동맹자의 역할을 하는 농민층과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뜨로츠끼에 따르면 짜리즘은 노동자의 운동에 의해서만 대체될 수 있었다. 결코 그것은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결합된 독재에 의해 대체될 수 없었다. 그리고 권력에 도달하면, 농민의 소유를 포함한 사적 소유를 공격하는 것이 노동자 정부의 기능이 될 것이었다. 사적 소유에 대한 공격에 의해 노동자 정부는 인민의 대다수 즉, 농민층과 불화하고 그들의 적대와 저항(뜨로츠끼에게 감사한다)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농민층의 저항은 노동자 정부의 존재 자체를 위험하게 할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정부는 산업적으로 선진적인 유럽 나라들의 노동계급이 그들 ‘자신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무자비한 투쟁을 하도록, 권력을 장악하도록, 그리고 사회주의를 수립하도록 자극할 것이다. 그리고 차례로 선진적인 서유럽의 나라들의 승리한 노동계급이 농민층의 저항을 힘으로 분쇄하기 위해 러시아의 노동자 정부를 도우러 올 것이다. 뜨로츠끼는 이 이론을 ‘영구혁명’의 이론이라 불렀고 그것은 레닌과 뜨로츠끼 사이에 첨예한 논쟁의 원인과 주제였다.





뜨로츠끼에 대해 강조되어야만 하는 것 하나는 그가 부정확하고 기회주의적인 자세를 취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그것을 초‘좌익적’이고 초‘혁명적’인 수사들로 덮어 가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러시아 혁명의 첫 번째 단계를 임의로 건너뛰는 것을 찬성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수립에 필요한 전제조건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독재의 수립을 반대했다. 왜? 왜냐하면 그가 주장하기를 “우리는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제국주의는 부르주아 국가를 낡은 정권에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을 부르주아 국가에 대립시키기” 때문이다. (뜨로츠끼, ��우리의 혁명��, 1906년)





위에서 언급된 것의 관점에서 떠오르는 두 가지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뜨로츠끼의 농민층에 대한 적대와 신념의 결여; 농민층이 혁명의 발전에서 일정 단계에서 할 수 있는 혁명적 역할에 대해 그가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





(2) 그가 농민층의 혁명적 역할을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으로부터 이어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를 뛰어넘어서 사회주의를 곧바로 수립하려는 그의 주관적인 소망. 그리하여 짜리즘을 대체하는 노동자 정부라는 요구가 나온다. 실천 상에서 그것이 도달하는 것은 혁명의 첫 번째 단계가 짜르에 반대하는 러시아 인민의 대다수 특히 농민층이 아니라 단지 짜르에 반대하고 농민층을 포함하는 “부르주아 국가”에 반대하는 노동계급(러시아 인민의 매우 작은 소수를 구성하는)만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영구혁명’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구적인 반혁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농민층이 할 수 있고 실제로 했던 혁명적 역할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고, 러시아 노동계급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믿을 수 있는 동맹을 빼앗고 농민층을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도구로 전환시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뜨로츠끼는 후에 혁명이 스탈린에 의해 배반되었다고 주장하려 했다. 우선 우리는, 뜨로츠끼가 그의 길을 갔다면, 그의 ‘영구혁명’이론이 실천되었다면, 어떠한 혁명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배반’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지 말할 뿐이다. 왜냐하면 러시아 농민층에 의해 수행된 혁명적 역할이 없었다면 러시아에 어떤 혁명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그의 ��혁명의 두 가지 노선들��(1915년)에서 ‘영구혁명’이론을 거부하는데 거기서 다음과 같이 썼다:










“뜨로츠끼는 1905년의 그의 ‘독창적인’ 이론을 반복하고 있고 10년의 전 기간 동안 왜 실제 삶이 그의 아름다운 이론을 지나쳐 버렸는지에 대해 멈추어서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나아가:










“뜨로츠끼는 농민층의 역할에 대한 ‘거부’에 의해 농민층을 일깨우는 것을 거부하는 러시아의 자유주의적 노동 정치가들을 사실상 돕고 있다.”










농민층의 역할에 대한 레닌의 평가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데에 단지 2년이 걸렸다.





농민층의 역할에 대한 뜨로츠끼의 평가와 혁명적 세력으로서 농민층에 대한 그의 이어지는 거부 그리고 최종적으로 혁명의 발전에서 단계들에 대한 그의 거부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뜨로츠끼주의자들이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NLF)과 그것의 강령을 공격하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NLF의 강령을 부르주아적 강령으로 성격지우고 기각하고 그것에 대해 한 무더기의 욕을 하는 것은 혹은 그들이 그것의 반제국주의적인 혁명적 성격을 보지 못하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60년 동안이나 스스로 실제 삶으로부터 배우기를 거부하고 있고 “실제 삶이 이 아름다운 이론”, ‘영구혁명’이라는 이론을 “지나쳐 버렸는지” “멈추어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조만간에 이것에 대해 다룰 것이다.





‘영구혁명’이라는 이론은 뜨로츠끼로 하여금 1906년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했고 그것을 그는 1922년에 반복하려 했다:










“유럽 프롤레타리아트 측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국가적 지원이 없다면,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스스로 권력의 자리를 유지하고 그것의 일시적 지배를 안정적인 사회주의 독재로 전환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뜨로츠끼, ��우리의 혁명��, 1906년��)










뜨로츠끼는 1906년에 위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 입장으로부터 그는 결코 떠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은, 서유럽 나라들의 승리한 노동계급의 도움이 없다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유럽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함에 있어 성공적이지 않다면 혹자는 무엇을 해야만 했는가? 서유럽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이 희미해지면서(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유럽 혁명의 실패의 이유들로 들어갈 수 없다) 국제적 독점자본에 대한 완전한 항복정책을 때때로 바꾸어 가면서 절망적인 모험주의 정책을 옹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 혁명의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 그의 그릇되고 완전히 기회주의적인 입장의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결과였다. 뜨로츠끼가 그러했듯이 누군가 러시아 혁명이 유럽의 사회혁명의 지지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그는 단지 유럽의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데 실패할 경우에 다음의 결론들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어떤 모험주의의 종류에 의해 사회 혁명이 서유럽 나라들로 ‘수출되어야’만 한다는 것;





둘―국제적인 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완전한 항복. 뜨로츠끼는 이들 결론들에 도달했고 때때로 그것들을 옹호했다. 항복주의와 손을 잡는 모험주의, 그것 두 가지는 대중에 대한 신뢰의 부족과 반동들에 대한 과대평가로부터 솟아나오는데 이것이 뜨로츠끼주의의 본질이다.





그의 ‘영구혁명’ 이론 때문에―농민층의 역할에 대한 부정 때문에,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달성하는 데 있어 노동 인민의 광범한 대중들을 이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능력에 대한 신뢰의 결여 때문에, 사회주의의 승리는 “유럽의 가장 중요한 나라들에서의” 동시적인 혁명의 경우에만 가능성이 있다는 그것의 종교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반맑스주의적인 믿음 때문에―뜨로츠끼는 10월 혁명의 독특한 특징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10월 혁명의 이들 독특한 특징들을 다루는 것, 그리고 이들 독특한 특징들의 관점에서 레닌주의와 뜨로츠끼주의의 각각의(화해할 수 없는) 입장들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10월 혁명의 독특한 특징들










10월 혁명의 독특한 특징들은 무엇인가?





10월 혁명은, 그것의 이해가 혁명의 민족적 그리고 국제적 중요성의 이해의 전제조건이 되는 두 가지 독특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 이 두 독특한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노동하는 농민층 즉, 노동계급에 의해 지도되고 있는 농민층 간의 동맹에 기초하여 러시아에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





(2)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단 하나의 나라에서―그리고 그것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당시에 후진적인 나라에서―수립되게 되었는데 반면에 자본주의는 다른 나라들에서 보전되고 있었고 그중의 일부는 자본주의적으로 매우 발달된 나라였다.





이들 두 개의 특징들은 우리에게 최대로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10월 혁명의 본질,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이론과 그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찬란한 적용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의 완전한 기회주의적 성격을 또한 폭로한다.





그러면 이들 특징들을 간략하게 검토해보자.





(1)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 즉,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도되고 있는 농민층 간의 동맹





동맹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이다. 도시와 시골의 노동 대중들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그들은 누구의 예비군이 될 것인가―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이 될 것인가, 부르주아지의 예비군이 될 것인가? 이 점에 혁명의 운명이, 결과가 달려 있다. 1848년과 1871년의 프랑스 혁명은 농민층이 부르주아지의 예비군이 되었기 때문에 쓰라린 종말을 맞았다. 10월 혁명은 농민층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이 되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로부터 농민이라는 예비군을 빼앗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스탈린이 말한 대로: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10월 혁명의 성격, 혹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성격, 혹은 우리의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내부 정책들의 독특한 성격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레닌주의의 문제��)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자본주의의 혁명적 타도를 위한, 그리고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달성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도되는 농민층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동맹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농민층의 역할을 ‘사소하게’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사소하게’ 과소평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성격 자체와 토대들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이론은 무엇인가? 이것이 레닌이 그것을 정식화하는 방식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근로자의 전위인 프롤레타리아트와 수많은 근로자의 비프롤레타리아적인 층(소부르주아지, 소소유자, 농민층) 혹은 이들의 다수 간의 계급동맹의 특수한 형태이다. 그것은 자본에 반대하는 동맹이고 자본의 완전한 타도, 부르주아지의 저항과 복고의 어떤 시도라도 완전히 억누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맹,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수립과 공고화를 목표로 하는 동맹이다.”(레닌)










그리고 나아가:










“만약 우리가 라틴어의, 과학적인, 철학적인 단어인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더 단순한 언어로 번역한다면, 그것은 단지 다음을 의미할 뿐이다: 특정 계급만이 즉, 일반적으로 도시 노동자들과 산업 노동자들의 그것이, 자본의 멍에의 타도를 위한 투쟁에서, 이 타도의 과정에서, 승리를 유지하고 공고화하는 투쟁에서, 새로운 사회주의적 사회체제를 창조하는 작업에서, 계급들의 완전한 폐지를 위한 전체 투쟁에서 근로자들과 피착취자들의 전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레닌)










이런 것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이론이고 10월 혁명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이론의 고전적 적용을 대표한다.” (스탈린)





그러면 이것들은 10월 혁명의 첫 번째의 특징의 성격이다.





10월혁명의 독특한 특징의 관점에서 뜨로츠끼주의의 입장은 무엇인가 즉, 뜨로츠끼의 ‘영구혁명’의 이론에 관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뜨로츠끼가 ‘짜르가 아닌 노동자의 정부’라는 구호 즉, 농민이 없는 혁명을 제기했던 1905년의 뜨로츠끼의 입장을 상세하게 언급하는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1915년의 뜨로츠끼의 입장을 길게 논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그리고 제국주의는 “낡은 정권에 대립하여 부르주아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 국가에 대립하여 세우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계속하여, 그는 그의 기사 「권력을 위한 투쟁」에서, 농민층의 역할이 쇠퇴할 수밖에 없고 농민층은 이제까지 그것에 부여되어 왔던 중요한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고 토지의 몰수라는 구호는 이전에 그것이 가졌던 중요성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레닌은 당시에 이러한 테제를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써 뜨로츠끼를 비난했다.










“뜨로츠끼는, 농민층의 역할에 대한 ‘부정’에 의해 농민들을 혁명으로 불러일으키는 것을 거절하는 러시아의 자유주의적 노동 정치가들을 사실상 돕고 있다.”










그러면 이 주제에 대한 뜨로츠끼의 후일의 저작들―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수립 후의 시기의 저작들―로 넘어가 보자. 1922년에 쓰여진 그의 책 ��1905년��에 대한 뜨로츠끼의 서문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뜨로츠끼가 그의 ‘영구혁명’ 이론에 대해 이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구혁명’ 이론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던 러시아의 혁명적 발전의 성격에 대한 견해가 저자의 마음에서 결정화된 것은 1905년 1월 9일에서 1905년 10월의 총파업 사이의 기간 동안이었다. 이 심오한 단어는 즉각적인 목표들이 성격에서 부르주아적인 러시아 혁명이 그럼에도 이들 목표들이 달성된 때에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사상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권력에 놓지 않으면 그것의 즉각적인 부르주아적 문제들을 풀 수 없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떠맡으면 스스로를 혁명의 부르주아적 한계들로 한정할 수 없었다. 반대로 바로 그것의 승리를 보증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 전위는 봉건적 소유만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 또한 깊이 침해하는 것을 그것의 지배의 바로 초기의 단계에서 강제당할 것이었다. 이 점에서 그것은(프롤레타리아트는―역자) 혁명적 투쟁의 최초의 단계 동안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지지했던 모든 부르주아적 그룹들뿐만 아니라 그것(프롤레타리아트―역자)을 권력의 자리에 놓는 데 있어 수단적이었던 농민층의 광범한 대중들과도 적대적인 충돌로 나아갈 것이었다. 노동자 정부의 입장에서의, 농민층의 압도적인 다수를 가진 후진적 나라에서의 모순은 오직 국제적 규모에서만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런 것이 뜨로츠끼의 ‘영구혁명’의 이론이다. 이런 것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관한 뜨로츠끼의 입장이다. 이것이 10월 혁명의 첫 번째의 독특한 특징의 관점에서,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 간의, 이 동맹의 지도적 세력은 프롤레타리아트이며 이것을 동맹의 기초로 하여 러시아에서 수립되게 되었다는 것의 관점에서 ‘영구혁명’ 이론에 관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동지들,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이론과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 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둘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는 것은 거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구나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이론과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 간에 놓여 있는 커다란 간극을 인식하기 위해”(스탈린) 뜨로츠끼의 서문으로부터의 위의 인용과 레닌의 글들에서의 위의 두 개의 인용을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





동지들, 이 점을 요약하도록, 즉,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이론과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 간의 비교를, 스탈린 동지의 불멸의 언어로 이야기하게 허용해달라. 스탈린 동지는 말한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기초로서 프롤레타리아트와 근로 농민층의 동맹에 대해 말한다. 뜨로츠끼는 ‘프롤레타리아 전위’와 ‘농민들의 광범한 대중들’ 간의 ‘적대적 충돌’을 본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근로대중과 피착취 대중들의 지도력에 대해 말한다. 뜨로츠끼는 ‘압도적 다수의 농민들을 가진 후진적 나라에서 노동자 정부 입장에서의 모순’을 본다.”





“레닌에 따르면 혁명은 그것의 힘을 우선적으로 러시아 자체의 노동자들과 농민들 사이로부터 끌어낸다. 뜨로츠끼에 따르면 필요한 힘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혁명이 약간 지체될 운명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 혁명을 위한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는 것인가? 뜨로츠끼는 한 줄기 희망도 보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노동자 정부의 입장에서의 모순들이 ...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우리의 혁명을 위해 단 하나의 전망만이 남는다. 자신의 모순 속에서 무위도식하고 세계혁명을 기다리면서 말라죽거나.”





“레닌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자본의 완전한 타도’와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수립과 공고화’를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와 근로 농민대중 간의 동맹에 기초하는 권력이다.”





“뜨로츠끼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광범한 농민대중과 적대적인 충돌’로 들어가는 권력이고 자신의 ‘모순들’의 해결을 오직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만 구한다.”





“‘영구혁명이론’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개념을 거부하는 잘 알려진 멘세비즘의 이론 간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내용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
“그것에 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구혁명’은 농민운동의 혁명적 가능성을 단지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영구혁명’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이론의 거부를 초래하는 농민운동에 대한 과소평가이다.”





“뜨로츠끼의 ‘영구혁명’은 멘세비즘의 변종이다.”(��레닌주의의 문제들��)










이것이 10월 혁명의 첫 번째 독특한 특징에 관해 문제가 어떠한 지에 관한 것이다. 이제 그 혁명의 두 번째의 독특한 특징으로 넘어가자.





(2) 단 하나의 나라―당시에 자본주의적으로 거의 발전하지 않은―에서 혁명의 승리와 반면에 자본주의는 다른 더 자본주의적으로 발전된 나라들에서 보전되고 있는 것.





레닌은 제국주의에 대한 그의 연구들로부터 다양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불균등한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발전의 법칙에 도달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발전은 한 자본주의 나라가 언제나 다른 나라들의 선두에 서있고 반면에 다른 나라는 그 뒤에 규칙적으로 머물러있는 것과 같은 명확한 계획에 따라서 진행되지 않는다. 반대로, 자본주의 나라들의 발전은 돌발적으로 진행되는데 일부의 발전에서 비약과 다른 나라들의 발전에서 중단이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은 그들의 예전의 지위를 고수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있었으나 뒤에 처져버린 나라들의 측에서의 ‘매우 정통적인’ 분투를 초래하고 그리고 낡은 것에 변화를 주며 새로운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비약적으로 앞서나가는 나라들의 측의 똑같이 ‘정통적인’ 분투를 초래한다. 이들 두 개의 똑같이 ‘정통적’이고 화해할 수 없는 분투들은 무장 충돌과 제국주의 간의 전쟁들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대전이 발생한 것은 이들 모순들로부터이다. 독일은 자본주의가 거의 발전하지 않은 후진적 나라에서 세계시장에서 프랑스를 제쳤고 영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예전의 지위를 고수하려는 영국과 프랑스의 ‘정통적인’ 분투와 새로운 지위를 차지하려는 독일의 똑같이 ‘정통적인’ 분투는 제국주의 간의 제 1차 세계대전을 초래했다.





불균등한 발전의 법칙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자본주의는 한 줌의 ‘선진적’ 나라들에 의한 세계 인구의 압도적 다수에 대한 식민지적 억압과 금융적 교살의 세계체제로 성장해갔다.”(레닌,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의 프랑스어판 서문, 전집 5권 p. 9)





(2)“이 ‘약탈품’은 그들의 약탈품의 분배에 관한 그들의 전쟁에 전체 세계를 끌어들이는 철저하게 무장된 둘 혹은 세 개의 강력한 세계 약탈자들(미국, 대영제국, 일본) 간에 분배된다.” (앞의 책)





(3)제국주의 전쟁들과 혁명운동들의 성장을 초래하는, 제국주의 체제내부의 재난적인 모순들의 강화 때문에 제국주의의 세계 전선은 혁명에 취약해지고 개별 나라들에서 이 전선의 파괴는 가능성이 있게 된다;





(4)이 파괴는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가? 제국주의가 약하고 혁명세력들이 이러한 파괴에 영향을 줄 만큼 충분히 강한, 제국주의의 세계 전선의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5)그리하여 자본주의가 다른 나라들에서(자본주의적 의미에서 더 발달된) 보전될 지라도 한 나라에서(심지어 자본주의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후진적 나라) 사회주의의 승리가 가능하게 된다. 레닌은 말한다:










“불균등한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발전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다. 그리하여 사회주의의 승리가 처음에는 몇몇의 혹은 단 하나의 나라에서도 가능하다. 그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그 자신의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면서, 세계의 나머지, 자본주의 세계에 반대하여 서게 되고, 자신의 대의로 다른 나라들의 피억압 계급들을 끌어들이고, 그 나라들에서 자본가들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나게 하고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 착취계급들과 그들의 국가들에 반대하여 무장력으로 나서게 한다.” “사회주의에서 민족들의 자유로운 연합은 후진적 국가들에 대한 사회주의 공화국들에 의한 다소간 길고 완강한 투쟁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레닌, 전집 5권, p. 141, 「유럽합중국 구호」)










그리고 나아가:










“자본주의의 발전은 다양한 나라들에서 극단적으로 불균등하게 진행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상품생산체제가 아니다. 이 점으로부터 사회주의는 모든 나라들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반박의 여지없이 따라 나온다. 그것은(사회주의는―역자) 처음에는 하나 혹은 몇몇의 나라들에서 승리를 얻을 것이고 반면에 다른 나라들은 당분간 부르주아적 혹은 전(前)부르주아적인 상태로 남을 것이다.”(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군사강령」)










이런 것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토대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그들이 뜨로츠끼주이자들이건, 수정주의자들이건, 혹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산업화가 높은 수준의 나라들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상인데, 그들에 따르면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특히 자본주의가 높이 발전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전혀 배제된다. 레닌은 일찍이 제 1차 대전의 시기에 기회주의적 이론에 반대하여 싸웠고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 이론에 의거하여, 기회주의자들에 대해 자신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을 대치시켰다. 무엇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을 다양한 기회주의적 이론들로부터 구별되게 하는가?





한 나라에서―심지어 그 나라가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높이 발전되지 않았을 지라도―사회주의의 승리의 가능성(possibility: 현실적 가능성―역자)과 잠재성(probability: 현실적 조건이 결여된 가능성―역자)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을, 사회주의는 한 나라에서 그리고 그것도 후진적인 나라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모든 기회주의적 이론들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다.





10월 혁명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올바름을 웅변하는 증거를 제공했고,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의 승리는 한 나라에서 특히 후진적인 나라에서 달성될 수 없다고 하는 다양한 이론들의 올바르지 못함과 기회주의적 성격을 웅변하는 증거를 제공했다. 스탈린은 말한다:










“10월 혁명의 두 번째의 독특한 특징은, 혁명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실천적 적용의 모델을 대변한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10월 혁명의 이 독특한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혁명의 국제적 성격 혹은 그것의 거대한 국제적 힘 혹은 그것의 독특한 외교 정책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스탈린, ��레닌주의의 문제들��)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그의 책 ��우리의 혁명��(1906년)에서 뜨로츠끼는 다음과 같이 썼다: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의 직접적인 국가적 지원이 없다면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스스로 권력의 자리를 유지하고 그것의 일시적 지배를 지속적인 사회주의 독재로 전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한시도 의심할 수 없다.”










이 인용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의 의미는 사회주의는 한 나라에서―이 경우에는 러시아―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의 직접적인 지원이 없다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의 의미는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의 장악 전에는 러시아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권력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론’과 하나의 나라에서, 심지어 그 나라가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높이 발전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과 어떤 공통된 점이 있는가?





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다는 것은 거의 말할 필요가 없다.





뜨로츠끼의 책 ��우리의 혁명��은 러시아 혁명의 성격을 정확하게 결정하기에 어려운 때였던 1906년에 발행되었다고, 그것은 약간의 오류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그리하여 그것은 후일의 뜨로츠끼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이 제기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뜨로츠끼의 또 다른 팜플렛, 「평화 강령」에 포함된 뜨로츠끼의 견해들을 검토해 보라. 이 팜플렛은 10월 혁명 전에 발행되었고 1924년에 뜨로츠끼의 책인 ��1917년��에서 재인쇄되었다. 이 팜플렛에서 뜨로츠끼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을 공격하고 있고 그것에 반대하여 자신의 유럽 합중국 이론을 대치시키고 있다. 뜨로츠끼는, 사회주의의 승리는, 이러한 승리가 몇몇의 주요 유럽의 국가들에서 달성되고 그리하여 유럽 합중국으로 결합될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뜨로츠끼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혁명은 독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혁명은 유럽의 다른 선진적 나라들에서 혁명이 없으면 또한 승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뜨로츠끼는 말한다:










“유럽합중국의 구호에 반대하여 제기된 유일한 다소간 구체적인 주장은 다음의 문장으로써 ��스위스 사회민주주의자��(당시의 볼세비키의 중앙기관지)에서 정식화되었다: ‘불균등한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발전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다’. 이것으로부터 ‘사회민주주의자’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가능하고 그리하여 유럽 합중국의 창출을 각각의 분리된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조건으로 만드는데 있어 어떤 문제도 없다는 결론을 끌어내었다. 상이한 나라들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불균등하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논쟁의 여지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불균등성은 그 자체가 극단적으로 불균등하다.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혹은 프랑스의 자본주의 수준은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비교하면 이들 모든 나라들은 사회혁명을 위해 성숙한 자본주의적 ‘유럽’을 대표한다. 어떤 나라도 그 스스로의 투쟁에서 다른 나라들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동시적인 국제적 행동이라는 생각을, 대기하는 국제적 정지라는 생각으로 대체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반복하는 것이 유용하고 필요한 초보적인 생각이다. 다른 나라들을 기다림이 없이, 우리는 우리의 주도권이 다른 나라들에서 투쟁에 추진력을 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우리의 민족적 토양에서 우리의 투쟁을 시작하고 계속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예를 들면 혁명적인 러시아가 보수적인 유럽에 직면하여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혹은 사회주의적 독일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고립되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적 경험의 견지에서 그리고 이론적 추리의 견지에서 희망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유럽의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동시적인 승리를 요구하는 그 똑같은 낡은 ‘영구혁명’ 이론이다.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을 배제한다. 뜨로츠끼의 ‘영구적인’ 희망없음의 이론은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과 어떤 공통점도 없다.





아마도 뜨로츠끼의 책 <1917년>으로부터의 위의 인용은 또한 뜨로츠끼의 보다 성숙한 견해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의 이후의 저작들, 러시아에서 ‘한’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 후에 쓰여진 것들을 검토해보자. 예를 들면 1922년에 쓰여진 그의 팜플렛 「평화 강령」의 새로운 판에 대한 뜨로츠끼의 후기를 들어보자. 이것이 뜨로츠끼가 이 후기에서 말하는 것이다:










“「평화강령」에서 몇 차례 반복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한 나라의 범위 내에서는 승리적인 결론으로까지 수행될 수 없다는 주장은, 우리의 쏘비에트 공화국의 거의 5년간의 경험에 의해 반박된 것으로 일부 독자들에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근거없는 것이다. 한 나라에서 그리고 그것도 후진적인 나라에서 노동자의 국가가 전 세계에 맞서서 스스로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더 선진적이고 더 문명화된 다른 나라들에서 실제적 기적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거대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서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의미에서 우리의 토대를 유지했을 지라도, 우리는 사회주의 사회를 창출한다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접근조차 못했다. ... 부르주아지가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경제적 고립에 맞서는 우리의 투쟁에서 자본주의 세계와 협정을 하도록 강제당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협정들은 잘 해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경제적 질병들의 몇몇을 누그러뜨리고 한 걸음 혹은 또 다른 몇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것을 도울 수 있지만 그러나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전진은 유럽의 가장 중요한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후에만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추가된 강조는 하르팔 브라르)










동지들, 뜨로츠끼의 팜플렛 <평화강령>에 대한 그의 후기로부터 위의 인용에 대해 스탈린이 말해야만 했던 것을 인용함에 의해 이 점에 대해 결론을 내리도록 나에게 허용해 달라:





스탈린은 말한다.










“이리하여 뜨로츠끼는 말하는데, 현실에 대해 명백하게 죄를 짓고 있고 그의 ‘영구혁명’을 최종적인 난파로부터 구하려고 완강하게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 당신들이 좋은 대로 비비꼰다면, 우리는 사회주의 사회를 창출하는 과제를 ‘떠맏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에 접근조차’ 못했다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자본주의 세계와의 협정’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아무것도 이들 협정들로부터 나올 수 없고, 당신들이 좋은 대로 비비꼰다면,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전진’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장 중요한 유럽의 나라들’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는 가능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자, 그러면, 아직 서유럽에서 승리가 없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혁명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은 썩어 없어지든가 혹은 부르주아 국가로 타락하든가의 것이다.”





“지금 뜨로츠끼가 2년 동안이나 우리 당의 ‘타락’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작년에 뜨로츠끼가 우리나라의 ‘파멸’에 대해 예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이상한 ‘전망’이 신경제정책이 우리로 하여금 ‘사회주의 경제의 토대를 놓게’ 할 것이라는 레닌의 견해와 어떻게 화해될 수 있는가?”





“이러한 ‘영구적인’ 희망없음이 예를 들면 레닌의 다음과 같은 언급과 화해될 수 있는가:”





“사회주의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 혹은 추상적인 상 혹은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낡은 나쁜 기호들의 의견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일상의 생활로 끌어들였고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의 시기의 과제, 우리의 시대의 과제이다. 이 과제가 아무리 어려울 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이전의 과제와 비교할 때 아무리 새로울 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많은 어려움들을 수반할 지라도, 우리는―단 하루가 아니라 수년의 경과 속에서―우리 모두는 그것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충족시킬 것이고 신경제정책(NEP) 러시아는 사회주의 러시아로 전환될 것이다.”(레닌, 선집 9권, p. 381)





“이러한 ‘영구적인’ 희망없음이 예를 들면 레닌의 다음과 같은 언급과 화해될 수 있는가:”





“사실상, 모든 대규모의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권력,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있는 국가권력, 수백만의 소농 그리고 더 작은 소농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농민층에 대한 보증된 지도력, 등등―이것은 협동조합들로부터, 우리가 이전에 행상인으로 취급했던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가 지금, NEP 하에서 이렇게 취급할 권리가 있는 협동조합들만으로부터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아직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러한 건설을 위해 필요하고 충분한 모든 것이다.”(선집, 9권, p. 403)





“이러한 두 견해들이 화해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뜨로츠끼의 ‘영구혁명’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부정이고 역으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은 ‘영구혁명’ 이론의 부정이다.”





“우리의 혁명의 힘과 능력들에 대한 신념의 결여,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힘과 능력들에 대한 신념의 결여―그것이 ‘영구혁명’ 이론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구혁명’ 이론의 한 측면만이 주목되었다―농민운동의 혁명적 잠재성에 대한 신념의 결여. 지금은, 공평하게 이것이 또 다른 하나의 측면―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힘과 능력들에 대한 신념의 결여―에 의해 보충되어야만 한다.”





“뜨로츠끼의 이론과, 한 나라에서, 그리고 그것도 후진적인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서유럽의 주요한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앞선 승리가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일반적인 멘세비키 이론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실상 어떤 차이도 없다.”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은 멘세비즘의 변종이다.”










이것이 10월 혁명의 두 번째의 독특한 특징에 관해 문제들이 어떤가이다.





뜨로츠끼주의자들과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영구혁명’ 이론을 레닌주의와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속여넘기기 위해 절망적으로 시도하면서, 뜨로츠끼와의 불화는 그가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며 비록 뜨로츠끼의 이론이 1905년에는 틀렸지만 그것이 1917년에는 올바름이 입증되었다고 매우 자주 주장한다. 나아가 1917년 4월에 레닌이 뜨로츠끼의 ‘영구혁명’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포기했다고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다루는 것이 필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러면 레닌이 뜨로츠끼주의자였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이다. 맑스-레닌주의와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고 맑스-뜨로츠끼주의가 있었을 것이다. 동지들, 이리하여, 뜨로츠끼주의자들은 뜨로츠끼주의를 레닌주의와 비교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사실상 레닌주의를 뜨로츠끼주의로 대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뜨로츠끼주의가 이러한 시도를 한 첫 번째가 아니며 또한 그것은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데, 레닌주의를 유일한 프롤레타리아(!) 사상으로서의 뜨로츠끼주의로 대체하려는 이전의 모든 시도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그것도(뿐만 아니라 미래의 그것들도) 분쇄될 것이다.





뜨로츠끼주의를 레닌주의와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서 속여넘기려는 한번의 시도가 일찍이 1924년에 라덱에 의해 이루어졌다. 스탈린은, 이러한 시도의 결과로서, 라덱을 “부패한 외교관”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라덱이 말한 것이 있다:










“전쟁은, 토지와 평화를 얻으려고 분투하는 농민층과 소부르주아 정당 사이에 간극을 창출했다. 전쟁은 농민층을 노동계급의 그리고 그 전위인 볼세비키 당의 지도력 하에 놓았다.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독재가 아니라 농민층에 의존하고는 노동계급의 독재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뜨로츠끼가 1905년에 레닌에 반대하여 전개했던 것(즉, ‘영구혁명’)이 사실상 역사적 발전의 두 번째 단계임이 입증되었다.”










위의 인용에 포함된 주장들에 대한 가장 좋은 반박은 스탈린 동지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발견될 수 있다:










“여기서(즉, 라덱의 인용에서) 모든 진술은 왜곡이다. 전쟁이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독재가 아니라 농민층에 의존하는 노동계급의 독재를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실제로 1917년 2월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독재와 독특한 방식으로 뒤섞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독재의 실현이었다.”





“라덱이 온건하게 언급을 삼가고 있는 ‘영구혁명’ 이론이 1905년에 로자 룩셈부르크와 뜨로츠끼에 의해 전개되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실제로 이 이론은 파르부스와 뜨로츠끼에 의해 전개되었다. 지금은, 10개월 후에, 라덱은 스스로를 교정하고 ‘영구혁명’ 이론에 대해 파르부스를 비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공평하게 라덱은 또한 파르부스의 파트너인 뜨로츠끼를 비난해야만 한다.”





“1905년 혁명에 의해 털어졌던 ‘영구혁명’ 이론이 ‘역사적 발전의 두 번째 단계’ 즉, 10월 혁명 동안에 올바른 것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것의 전체적인 발전은 ‘영구혁명’ 이론의 파산과 그것이 레닌주의의 토대와 비교될 수 없음을 드러냈고 입증했다.”





“꿀을 바른 말과 부패한 외교술이 ‘영구혁명’ 이론과 레닌주의 사이에 놓인 크게 벌어진 간극을 감출 수는 없다.”















제 4장










1부에 대한 결론















뜨로츠끼주의―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민족해방운동의 적










이미 언급된 것의 견지에서, 동지들, 뜨로츠끼주의를 거부하고 그것을 유해한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로서 폭로하고 반대하는 것이 우리의 필수적인 의무가 된다. 이것은 제국주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노동자들에 의해 뜨로츠끼주의가 수용되는 것은 그들을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 그러한가? 그것은 왜 그러하냐면, 뜨로츠끼주의에 따르면,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전진은 ... 유럽의 가장 중요한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후에만 가능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나아가: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의 직접적인 국가적 지원이 없다면, 노동계급은 ... 스스로 권력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고 그것의 일시적 지배를 지속적인 사회주의 독재로 변형시킬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한 시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뜨로츠끼주의에 따르면, “유럽의 가장 중요한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전까지는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적으로 덜 발전한 곳에서 성공적일 수 없고 사회주의는 이들 나라에서 건설될 수 없다.





그러나 후진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을 함에서 성공적이고 그러나 그것의 성공이 “유럽의 가장 중요한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에 의해 뒤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뜨로츠끼주의는 답한다:










“ ...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즉, 1917년 전의 러시아와 같은 후진적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에 의해 뒤따르지 않는다면), 예를 들면 혁명적인 러시아(혹은 똑같은 이유로 다른 어떤 후진적 나라)가 보수적인 유럽에 직면하여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혹은 사회주의 독일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고립된 상태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적 경험의 견지에서 그리고 이론적 추론의 견지에서 희망없을 것이다.”










말을 바꾸면, 이러한 환경에서 후진적 나라에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뜨로츠끼주의의 충고는 다음과 같다: 무조건적으로 굴복하라―항복하라―당신 ‘자신의’ 부르주아지와 제국주의와 평화롭게 지내라. 왜냐하면 당신의 입장은 “희망없기” 때문이고 당신의 나라에서 “역사적 경험의 견지에서 그리고 이론적 추론의 견지에서” 당신은 “보수적인 유럽에 직면하여” 당신 자신을 유지할 수 없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한 나라의 범위 내에서는 승리적인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타 등등.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에 체현된 뜨로츠끼주의의 이러한 입장은, 그것의 실제적인 반혁명적 본질을 구성한다. 아무리 초-‘좌익적’ 수사를 한다 하더라도 뜨로츠끼주의의 이러한 반혁명적 본질을 감출 수는 없다. 뜨로츠끼주의를 제국주의의 완강한 조력자로 만드는 것은 뜨로츠끼주의의 이러한 입장이다. 그것의 충고를 후진적 나라에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따른다면 그것은 그 나라에서 자본주의의 복고를 초래할 것이고 그리하여 제국주의를 강화시킬 것이다. 제국주의의 강화의 영향은 이번에는 차례로 “유럽의 가장 중요한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뜨로츠끼주의의 충고 덕분으로, 주어진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질 수 없고 또한 사회주의 유럽에 좀 더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는 단지 제국주의의 강화일 뿐이고 제국주의가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는 것을 더 쉽게 할 뿐이다.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가 강화될 때가 아니라 약화될 때에 바로 승리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뜨로츠끼주의의 길은, ‘영구혁명’의 이론의 길은 영구적인 반동과 영구적인 반혁명을 초래한다. 그것은 영구적인 희망없음의 길이다.





뜨로츠끼의 ‘영구혁명’ 이론은, 농민의 혁명적 역할에 대한 그것의 부정 때문에, 봉건주의가 여전히 지배적인 세력인 그러한 나라들에서, 봉건주의는 오직 노동자 정부에 의해서만 대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말을 바꾸면, 뜨로츠끼주의는 혁명의 단계들을 부정한다. 그것은 인민의 민주주의 혁명 즉, 봉건주의를 종식시키지만 한번에 사회주의를 수립하지는 않는 혁명, 그것이 민주적 과제들을 달성한 후에만 사회주의가 되는 혁명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급 세력들의 필수적인 재배치가 발생하는 혁명이라는 중간 단계를 부정한다. 단계들에 의한 맑스-레닌주의 혁명 이론이면서 맑스-레닌주의적인 중단되지 않는 혁명 이론인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 이론을 뜨로츠끼주의는 부정한다. 뜨로츠끼주의는 농민층의 혁명적 역할에 대한 그것의 부정 때문에 주관적으로 혁명의 단계들2)을 뛰어넘는 것을 믿고 있고 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양면적이다: (1) 그것은 미래의 과제들을 지금 준비하고 있고, 현재의 과제들은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2) 그것은 베트남 인민의 민족해방을 위한 영웅적인 투쟁과 같은 민족해방투쟁들에 대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강령이 ‘부르주아적’이라는 구실 하에 지원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함에 있어, 뜨로츠끼주의는 피억압 나라들의 인민들에 대한 연대 운동 내에서 해체하는 세력으로서 행동을 하고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세계의 피억압 민족들 간에 이간질을 시키고 그리고 제국주의에 모든 강력한 지원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영웅적인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연대에 대한 이 나라에서의 운동과 관련한 경우이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수정주의자들과 함께, 연대 운동을 사보타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고 그리고 그들은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베트남 연대운동에 대한 완전한 역사를 쓰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 약간 다른 때에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영구혁명’ 이론의 수용이 뜨로츠끼주의자들에게 초래한 반혁명적 입장들을 드러내기 위한 몇몇의 사례들은 매우 적절할 것이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오랫동안 NLF(민족해방전선―역자)의 강령이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지지하기를 거부해왔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농민층의 혁명적 역할을 부정하는 ‘영구혁명’ 이론의 지지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베트남 혁명의 단계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주관적으로 민족 해방의 단계를 뛰어넘거나 혹은 빠뜨리고 넘어가기를 원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베트남 인민이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패배시킴에 의해 민족해방을 달성하기 전에 그리고 그들이 베트남 혁명의 민주적 과제들을 완수하기 전에 베트남의 남쪽 절반에서 사회주의가 수립되기를 바란다. 뜨로츠끼주의자들에 따르면 남베트남에서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지배는 노동자 정부에 의해서만 대체될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매우 혁명적으로 들리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반동적인 헛소리일 뿐이다. 뜨로츠끼주의자들에 의해 옹호되는 이러한 경로를 추구하는 것의 결과는 남베트남에서 사회주의를 수립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민족해방도 달성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민족의 구원을 위한 영광스러운 전투를 하고 있는 남베트남 인민의 광범한 다수는 그들이 미국의 침략을 격퇴하고 민족해방을 달성하고 인민의 민주주의적 공화국을 수립한다는 결의에 그들이 모두 동의하고 단결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회주의적 강령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통일전선의 파괴를 초래하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회주의적 강령은 미제국주의에게 가장 심오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뜨로츠끼주의자들이 NLF를 비난할 때 그들은 미제국주의에게 대단히 귀중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의 초-‘좌익적’ 수사가 도달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굴종으로 해방투쟁의 붕괴.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인도차이나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에 대해 오랫동안 산더미같은 욕설을 해왔다. 무엇 때문에 호치민 동지가 이러한 취급을 당해야 하는가? 그 답은, 그가 철저하게 혁명적 방식으로 행동했고 베트남 인민을 승리에서 승리로 이끌었고 그들이 베트남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사회주의를 수립하도록 이끌었고 그리하여 실천적으로,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가 하나의 후진적인 한 나라에서 건설될 수 없다고 하는 ‘영구혁명’ 이론의 파산과 반동적 성격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그는 쏘련에서 스탈린의 지도력 하에서 이루어졌던 것과 동일한 것을 했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이 호치민을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어디 놀라운 일인가? ‘영구혁명’이라는 패배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이들 타락한 사람들, 뜨로츠끼주의자들이 관계하는 한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자”이다.





호치민을 관료주의자라고 부르고 NLF에 대해 산더미같은 욕을 함에 의해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여기의 노동계급에게 베트남 인민의 투쟁을, 반동적인 투쟁으로서, 그리하여 지지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서 제기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연대운동이 뒤집어지고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계속하여 영국제국주의 정부와 제국주의 언론에 의해 제출된 거짓말들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투쟁 중인 베트남 인민을 미국에 대한 침략을 행하고 있는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로서 묘사하고 미국이 방어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묘사한다!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들 거짓말을 믿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쉬운 것이다:





(a) 왜냐하면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b) 제국주의의 거짓말들에 반향하는 뜨로츠끼주의자들과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의 국제주의적 의무들을 수행하는 길에 있어 주요한 장벽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영국을 포함하여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의 정신에 완전히 감화되지 않는 한, 그것이 자신의 투쟁을 민족해방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피억압민족들과 프롤레타리아들의 투쟁과 연계시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러한 투쟁에 대해 가장 깊은 형제적 원조를 전하지 않는다면, 결코 혁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진실은 아무리 자주 제기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여기서의 혁명의 날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며 반혁명적이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반혁명분자들이다. 이 진실은 아무리 자주 주장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베트남 인민의 투쟁에 적용되는 것은 또한 논리적 확장에 의해 어디에서나 피억압 인민들의 투쟁에 적용되고 뜨로츠끼주의자들은 거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더러운 작업을 한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이 도달한 완전한 타락의 깊이를 드러내기 위해, 나는 뜨로츠끼주의 조직들 중의 하나인 ‘연대’에 의해 발행된 최근의 리플렛으로부터 인용을 하고 싶다. 이 리플렛을 읽어가면 누구나 이들 뜨로츠끼주의자들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동지들, 여러분은 미리 경고를 받고 있다. 이 리플렛에 따르면,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평화를 사랑하는 베트남 인민에 대한 미제국주의에 의해 가해진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상호 간의 분쟁”이다. 그리하여, 이 리플렛의 타락한 뜨로츠끼주의 저자들은 촉구하기를, “볼세비키 좌익”은 어느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하여 베트남에서의 전쟁을 “일방적인 노력, 미국 귀신의 산물”로서 제기하는 사람들을 탄핵한다. 그리고 그 리플렛은 계속하여 단계들에 의한 맑스-레닌주의 혁명 이론을 탄핵한다: “베트남의 경험은 ... ‘두 개의 단계들’에 기초한 스탈린주의적 접근의 비열함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리고 계속하여 1945년에 “셀 수 없는 노동자들이 도살자 호치민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악한 비방을 퍼뜨린다. 이 리플렛의 뜨로츠끼주의 필자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에서) “어느 한편의 승리는 세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손해되는 것이다.” 그들의 역겨운 배반을 덮기 위해 부르주아지의 뜨로츠끼주의 대리인들은 “세계적 규모의 자기 관리의 수립”을 요구함에 의해 이 리플렛을 끝맺는다. 당신들이 실제의 뜨로츠끼주의, 위장되지 않은 반혁명적 형식의 뜨로츠끼주의에 익숙해지기 위해, 나는 이 리플렛 전체를 인용할 것을 제안한다. 동지들, 당신이 이 리플렛의 내용들에 익숙해지면 당신이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뜨로츠끼주의가 반혁명적이며 그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믿음직한 지지를 구성한다고 우리가 말할 때 우리에게 동의할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자 여기에 이 리플렛이 말하는 것이 있다:










“베트남―누구를 위한 승리?”





“베트남 전쟁의 최근의 고조는 우리 시대의 현실; 노동인민에 대한 거대 세력의 정치학을 고통스럽게 묘사한다. 대규모적인 러시아와 중국의 도움으로 시작된, 사이공 정권에 반대하는 DRVN/NLF의 9주간의 낡은 공세는 동남아시아의 모습을 변경시켰다. 그 전쟁은, 그 정치적 해결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미국의 대중들의 손해가 되도록, 모스크바, 워싱턴, 베이징, 그리고 파리에서 결정되고 있는 제국주의 상호 간의 분쟁이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 영국에서 볼세비키 좌익은 우리에게 이 야만적인 분쟁의 어느 편을 들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쟁은 그들에 의해 일방적인 제국주의 노력, 미국 귀신의 산물로서 제기되어 있다. DRVN/NLF측은 타오르는 색채로 칠해져 있다: ‘... 남쪽에서 베트남인들의 승리는 세계의 다른 부분들에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커다란 자극제가 될 것이다.’(��붉은 두더지��, 1972년 5월 15일). 공산당과 같은 다른 사람들은 ‘평화’와 1954년 제네바 협정들의 이행을 요구한다. 가정은, 노동인민은 그들의 목숨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정치적 관료주의가 그들을 위해 협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정은 베트남에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 ‘지금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타락한 볼세비키들이 ‘민족해방’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하여 이 점을 극복한다. 두 경우 모두 괴물같은 위조이다.”





“이들 접근들은 다음과 같은 귀중한 것(pearls)들에 의해 예증된다: ‘...미국의 권력이라는 쟁점이 해결된 때, 우리는 NLF가 어떤 종류의 정권과 정책들을 선택할 것인지 알고 있다―그들의 상황의 논리에 의해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당분간은 또 하나의 싸움, 사회주의를 위한 실제적 싸움이다.’” (IS 32, 「워싱턴도 아니고 모스크바도 아니다―그러나 베트남은?」)





“베트남의 경험은(1936년의 스페인에서처럼) ‘두 단계들’(물론 ‘당’에 의해 지도되는)에 기초한 스탈린주의적 접근의 비참함을 보여준다. 셀 수 없는 베트남인들이 프랑스와 영국제국주의와 공모한 도살자 호치민에 의해 살해되었던 1945년의 사이공 꼬뮨을 회상하는 것이 필요한가? 거기에서 당신은 시초의 사회주의적 봉기가 볼세비키 좌익이 그렇게 히스테릭하게 지지한 바로 그 강도들에 의해 쓸어버려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956년에 응헤 안(Nghe An)지역에서 집단화에 대한 농민의 저항을 하노이가 분쇄한 것은 또한 편리하게 잊혀진다. 지금 후에, 콘툼 그리고 안 록에서 죽어가고 있는 징집당한 10대 농민들은 하노이 정권의 새로운 공세의 무정함의 증거가 된다. 도망치는 사람들과 민간의 지지의 명백한 결여는 인민이 양측의 승리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모든 볼세비키적 신비화는 무엇에 도달하는가? 그것들은 분쟁의 본질을 감추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의 양측은 제국주의적 이해를 대변한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하노이 정권의 사상적 그리고 군사적 의존은 미국에 대한 티우정권의 그것과 다르지만, 어느 한 측의 승리는 세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손해가 된다. NLF와 하노이의 승리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 제국주의를 강화시킬 것이다. ‘협상에 의한 해결’은 단순히 전쟁을 또 다른 세대로 확장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기호에 따라 제국주의를 선택하는 것을 국가 자본주의의 사회적 애국자들에게 맡긴다. 그들이 영국에서 ‘IRA에게 승리를’ 옹호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세계의 다른 부분에서 유사한 반동적인 해결들을 옹호한다. 그들의 근거는 이러한 ‘승리들’이 서구 제국주의를 약화시킨다는 것이지만 그러나 과거의 민족해방투쟁의 50년은 이러한 주장들이 거짓말임을 보여준다. 민족주의나 혹은 인종에 기초한 승리는 사회주의로의 연계가 아니고 사실상 그것들은 노동인민을 타락시키는 부르주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





“우리는 주요한 적은 집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영국정부의 베트남의 미제국주의와의 협력을 반대하는 효과적인 캠페인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것은 NLF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밀리오네어의 로우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에 반대하는 시위는 어떠한가?”
“최종적으로, 이 야만적인 분쟁의 유일한 해결은 사회주의적인 것이다: 미국과 베트남 부대들의 친교를 위하여, 그들의 조국에서 양측의 패배를 위하여, 제국주의의 배후를 계급 대 계급에 기초한 내전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위하여―즉, 세계적 규모의 자기관리의 수립을 위하여―미제국주의에 반대하고 NLF와 하노이 관료주의자들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 리플렛은 스스로 말하고 있고 반혁명적인 뜨로츠끼주의의 이 혐오스런 부분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필요하지 않다―그것은 이미 언급된 모든 것들을 확증한다3). 그러나 이 리플렛에 의해 짜여진 혼란의 망을 풀어놓기 위하여 해명의 방식으로 내가 언급하고 싶은 두 가지 점이 있다.





(1) 위의 리플렛의 저자들인 ‘연대’의 뜨로츠끼주의자들은 ��붉은 두더지��의 발행자인 국제 맑스주의 그룹(IMG)과 ��사회주의 노동자��를 만들고 있는 국제 사회주의자들(IS)과 같은 타락하고 반혁명적인 다른 뜨로츠끼주의자들을 ‘볼세비키 좌익’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반혁명적인 뜨로츠끼주의자의 부르주아적 조직들을 볼세비키 유형의 조직들이라고 속여넘기고 반혁명적인 뜨로츠끼주의를 혁명적인 볼세비즘―레닌주의―과 혼동시키려는 시도이다. 진실은 뜨로츠끼주의 조직들은 다 합쳐서 볼세비키 좌익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멘세비키 우익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2) 이 리플렛의 저자들은 IMG와 IS가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베트남 인민의 투쟁과 민족해방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으로 ��붉은 두더지��와 ��사회주의 노동자��로부터 약간의 인용을 하고 있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IMG와 IS는 민족해방을 위한 베트남 인민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된 대로 그들은 오랫동안 NLF를 탄핵해왔고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 동지에 대해 한 무더기의 욕을 해왔다. IMG의 타리크 알리 같은 사람들, 그리고 IS의 이와 같은 사람들, 사회주의 노동자 연맹 등은 종종 호치민 동지를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하는 베트남에 대한 1968년 10월 27일의 시위를 분열시켰고 미 대사관으로의 행진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들은 5만의 사람들을 하이드 파크 구석으로 주의를 돌리는 소풍에 돌렸다. 그들은 3월에 3개의 구호들, 즉, ‘미국 침략자들은 지금 베트남에서 나가라!’, ‘NLF에 승리를!’, ‘호치민이여 영원하라!’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타리크 알리는 NLF의 강령이 부르주아적이고 호치민이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자라는 것을 이유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구호에 반대했다. 우리는 그에게, 사정이 그렇다면 그가 그러한 의미의 구호들이 적힌 플래카드를 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물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가 이런 플래카드를 들었다면 시위에 모인 수천의 사람들이 그를 린치했을 것이다. 대신에 다수의 압력으로 그리고 TV카메라의 면전에서, 타리크 알리는 ‘NLF에 승리를’, ‘호치민이여 영원하라’같은 구호들을 외침에 의해 그의 위선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은 대중들의 눈을 속이고 연대운동을 성공적으로 뒤엎기 위해 이루어졌다.





이 동일한 뜨로츠끼주의자들이 갑자기 그들의 노선을 변경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만약에 그들이 그러하다면 그들은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그들의 노선을 변경하려 한다면, 그들은 뜨로츠끼주의자임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전혀 그들의 노선을 변경시키지 않았다. IS는 IS로부터의 리플렛 32페이지에서 인용대로 NLF를 ‘지지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생각하기에 NLF가 단계들이 없이 사회주의를 수립하는데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제로는 NLF에 대한 ‘지지’가 아니며 그들 자신의 과거의 행동을 설명하고 ‘영구혁명’ 이론을 최종적인 파산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한 절망적인 시도이다. 투쟁의 기간들은 NLF 강령의 절대적인 올바름과 뜨로츠끼주의 노선의 총체적인 파산을 입증했다. 지금 뜨로츠끼주의의 파산, 세월에 의한 그들 자신의 노선의 파산을 인정하고 그것을 버리는 대신에 IS의 뜨로츠끼주의자들은 NLF의 노선과 강령을 왜곡하려 하고 있다. 이 리플렛의 저자들조차도 이 왜곡을 꿰뚫어 볼 수 있고 그리하여 그들을 ‘타락한 볼세비키들’! 즉, 타락한 뜨로츠끼주의자들이라고 묘사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는 남베트남에서 수립될 것인데 그러나 베트남 인민이 민족해방의 단계를 통과하고 베트남 혁명의 민주적 과제들을 완성한 다음에야 그러하다. 뜨로츠끼주의 신사분들, 이것이 단순한 진실인데, 당신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당신들이 “엉터리같은 좌익적인 영구혁명 이론”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IMG는 또한 NLF를 지지하지 않는다. IS와 IMG는 NLF를 ‘지지’하는데 그것이 실제로 지지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것이 지지하는 것 때문인데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들은, NLF가 자신의 초기의 올바른 입장을 버리고 뜨로츠끼주의 노선을 채택했기 때문에 NLF를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주는 최근의 자료를 발행하고 있다. 이러한 엉터리같은 주장보다 더 진실로부터 떨어진 것은 없다. 그러면 IMG와 IS의 뜨로츠끼주의자들이 최근에 NLF를 명백하게 ‘지지’하는 실제적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NLF가 승리직전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올바른 강령을 추구함에 의해 그들은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패배시켰다. 그리하여 뜨로츠끼주의자들은 급하게 스스로를 베트남 인민의 임박한 총체적 승리와 연관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보타지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던 베트남 인민의 승리를 그들 자신의 것으로서, 그들의 ‘연대’ 행동들의 결과로서 제기하기 위해 급하게 서두르는 것이다.





그 이상인데, 베트남에 대한 뜨로츠끼주의 노선에서 전환은 닉슨의 중국 방문과 동시에 일어났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중국이 베트남 인민의 목숨들에 대해 베트남 문제에 대해 ‘거래’를 하기 위해 닉슨을 만나고 있다는 취지로 선전을 했다. 이것이 사회주의의 이 요새에 반대하는 그들의 매일의 선전의 요점이다. 진실은, 중국의 정부, 당 그리고 인민이 실천에서 그들이 베트남 인민의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맹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베트남 인민을 댓가로 미제국주의와 ‘거래’를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왔다는 것이다. 닉슨은 미제국주의의 약화된 위치를 인정하고 중국에 간 것이다. 미제국주의는 더 이상 중국의 존재라는 현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할 수 없다. 닉슨은 모든 종류의 ‘거래들’(모든 반동들은 그렇게 한다)을 예상했으나 그러나 그는 확실히 중국에서 단 하나도 얻지 못했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중국을 비방하고 사악한 중상을 퍼뜨리기 위해 “중국의 관료주의자들이 베트남 인민의 투쟁을 팔아버리고 있다”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악한 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뜨로츠끼주의 반혁명분자들은 NLF를 지지하는 듯이 보여야만 했다. 그래서 이것이 그 설명이다. 진실은, 오랫동안 베트남 인민의 투쟁을 침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뜨로츠끼주의 관료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의 동지들은 베트남 인민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진심어린 지원을 해왔다.





위에서 주어진 이유에 더하여, 뜨로츠끼주의에 따른다면, 사회주의의 승리는 한 나라에서, 심지어 이 나라가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선진적이라고 할지라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왜냐하면 “예를 들면, 혁명적 러시아는 보수적인 유럽에 직면하여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고 혹은 사회주의 독일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고립된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희망없기”(뜨로츠끼) 때문에, 우리는 또한 뜨로츠끼주의를 거부해야만 한다.





말을 바꾸면, 영국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수립하는 데 성공할 지라도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다른 ‘중요한 유럽 나라들’에서 그리고 아마도 미국 또한 마찬가지인데,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에 의해 이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뜨로츠끼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동시적인 세계적 규모의 사회주의의 승리이다. 이것은 불가능하고 단지 꿈에 지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한번에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레닌이 말하는 대로 처음에는 한 나라 혹은 몇몇의 나라들에서 성공적일 것이고 그리고 나서 다른 나라들에서 성공적일 것이고 최후에는 세계의 모든 곳에서 성공적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역사적 경험의 견지에서 그리고 이론적 추론의 견지에서” 세계 혁명은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혁명의 과정은 뜨로츠끼주의의 미리 생각된 계획들을 따라 진행되지 않는데, 뜨로츠끼주의는 그 자신의 파산을 인정하는 것 대신에, 어떤 혁명도 방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어떤 사회주의도 개별적인 나라들에서 건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혁명가들이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들은 ‘혁명을 배신하고 있는’ ‘배반자이고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자들’이다. 이런 것이 뜨로츠끼주의의 반동적 성격이다.





요약하자면, 동지들, 우리는 뜨로츠끼주의를 사회주의의 건설과 민족해방에 반대하는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제국주의에 대한 가장 믿음직한 지지를 구성하는 이데올로기―로서 폭로하고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계급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다가가서 그들이 스스로를 뜨로츠끼주의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대해 불관용의 정신으로 교육하는 것을 도와야만 한다. 이 이데올로기를 매장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지금의 일련의 강의들이 이것, 그것의 주요한 목표에 공헌한다면, 공산주의 노동자 연합의 우리는 약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명예로 간주할 것이다. (1부 끝) <노사과연>















번역: 편집부











1) “도시와 농촌의 소부르주아지라는 노동대중의 문제, 이들 대중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으로 획득하는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예외적인 중요성이 있다. 도시와 시골의 노동 인민들이 권력을 위한 투쟁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그들이 누구의 예비군이 될 것인가 즉, 부르주아지의 예비군이 될 것인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이 될 것인가―이 점에 혁명의 운명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견고함이 달려 있다. 1848년과 1871년의 프랑스의 혁명들은 비극적이었는데 주요하게는 농민이라는 예비군이 부르주아지의 편에 선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었다. 10월 혁명은 승리적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부르주아지로부터 그것의 농민이라는 예비군을 빼앗았고 이들 예비군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으로 획득할 수 있었고 이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도시와 시골의 노동 인민들의 광범한 대중들에 대한 유일한 지도적 세력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10월 혁명의 성격을, 혹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성격을, 혹은 우리의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독특한 특징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레닌주의의 문제들��)






2) “두 단계들, 즉, 민족적-민주적 그리고 사회주의적 혁명들을 혼동하는 것은 매우 해롭다. 마오쩌뚱 동지는 ‘한번의 타격으로 둘을 달성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비판했고 공상적인 생각은 단지 제국주의와 그 종복들에 대한 투쟁, 즉, 당시에 가장 긴급한 과제를 약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항일전쟁 동안 국민당 반동들과 그들이 고용한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일부러 중국혁명의 이들 두 단계를 혼동시켰고 ‘단일한 혁명 이론’을 선언하고 소위 어떤 공산당도 없는 ‘사회주의’를 설교했다. 이 터무니없는 이론으로 그들은 공산당을 삼키고 어떠한 혁명도 쓸어버리고 민족적-민주적 혁명의 전진을 막으려 시도했고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저항 그리고 항복의 전제로 삼았다. 이 반동적 이론은 중국혁명의 역사에 의해 오래전에 매장되었다.”(임표, 「인민전쟁의 승리여 영원하라」)






3) 557호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뜨로츠끼주의 신문 ��사회주의 조직자��는 사악하게 기뻐하면서 남아프리카 흑인 인민들의 해방을 위한 모든 투사들 중 가장 위대한 투사의 한 명인 크리스 하니에 대해, 남아프리카 파시즘의 손에 의한 그의 더러운 살인을 본따서 다음의 역겨운 기사를 싣고 있다:





“한 명의 투사 그러나 스탈린주의자”





“크리스 하니는 투사였다. 그는 트란스케이에서 가난하게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문맹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트란스발에서 수백마일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광부였다. 그는 그의 생애를 남아프리카에서 백인 인종주의 정권의 타도를 위해 바쳤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 때문에 그는 살해당했다.”





“그러나 하니는 단지 투사만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사악한 스탈린주의자였다.”





“1984년에 하니는 ANC의 무장 부대인 Umkhonto we Sizwe의 정치위원과 대표 사령관이 되었다. 그것은 ANC의 앙골라 캠프에서 폭동의 해였다. 1976년의 봉기에서 급진화된 ‘소웨토 세대’의 젊은이들은 싸우기 위해 남아프리카로 보내달라는 그들의 요구가 거절된 후에 반란을 일으켰다.”





“하니는 폭동의 진압에 대해 그리고, KGB와 증오받는 동독경찰인 슈타시에 의해 훈련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앙골라에 있는 악명높은 콰트로 감옥 캠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ANC게릴라들을 투옥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었다.”





“자유주의 언론이 이 ‘최고로 정직한 사람’에 대한 찬사로 지금은 가득차 있다는 사실은 ‘더 많이 변할수록 그들은 더욱더 그대로 남아 있다’라는 오랜 속담이 얼마나 심오하게 진실인가를 보여준다.”





“1930년대에 쏘련의 고문실, 그것의 Gulag, 그리고 스탈린의 거짓말의 지배는 자유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더 적은 죄악’이라고 옹호되고 정당화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자유주의자들, 스탈린주의자들 그리고 3세계주의자들은 만약 하니가 권력에 도달했다면 그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철의 학정을 부과하는 국가기구의 한 부분이 되었을 것임을 잊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1989년 이후조차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사이면서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의 적이 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크리스 하니가 그것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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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6)[1] 하르팔 브라르 2010-02-21 2470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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