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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음악의 반란자 (10)
글쓴이 한스 아이슬러 E-mail send mail 번호 157
날짜 2010-02-21 조회수 3127 추천수 110
파일  1266684735_아이슬러.hwp

  













음악의 반란자











이번 연재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취해지는 파쇼적인 조치는 한 둘이 아니지만 음악계에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성과마저 하나 둘 잠식당하고 있다. 졸지에 해고를 당한 국립오페라 합창단 단원들을 몰아내고1) 그 자리를 ‘최고의 성악가’들로 채워 재탄생한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로, 거의 연주하지 않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를 의욕적으로 공연하였다. 소위 비평가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도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면 아프리카로 가라던 휴머니스트 정명훈은 고귀한 인류애를 발휘하여 그 오페라를 대지진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로 인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티 인민들을 위해 공연하여 구호성금을 전한다고 한다. 또 한편에서는 ‘친북’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작곡가 윤이상에 대한 기념사업에는 정권 교체 이후 제동이 걸린 모양이다. “윤이상음악당”으로 건립되려던 것은 “통영국제음악당”으로 명칭이 바뀌고 있는 모양이며, 각종 사업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고 한다. 윤이상의 친필악보는 문화재등록이 추진되었던 것이나 이조차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정확한 사실은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여기서도 국정원이 대활약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친일파 안익태의 곡이 애국가인 나라에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느냐마는, 사회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인 윤이상에게도 이럴 지니 사회주의자이자 월북 음악가인 김순남 같은 이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기대를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직도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거론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있음은 물론이다. 한스 아이슬러는 군사파쇼시대 같았으면 거론조차 할 수 없었던 인물이다. 이제는 구쏘련과 동유럽 등의 사회주의 문화유산에 대한 가시적인 폭력탄압은 사라졌지만 이데올로기적인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동독을 선택한 음악가 아이슬러의 글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감정이입이 담겨있는 것임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동안 연재를 읽었던 이들은 내심 과거의 동독 작곡가 아이슬러의 글이 현재 한국 노동자계급에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이번 연재가 어느 정도 제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세와 노동��, 2009년 4월호에서 소개한 「노동자의 노래가 탄생하다」와 2009년 10월호의 「에스빠냐 국제여단을 위한 콘써트에 관해」 같은 글들에서 생생한 투쟁의 현장을 보여준 바 있지만 이번 연재에서는 실제 노동자 관현악단을 위한 이론적인 기초작업이 담겨있다. 현학적인 내용과 궤를 달리하는 내용이며 여러 실천적인 지침을 줄 것이며 실제 노동자 문예창작과정에서 많은 토론거리를 줄 것이다. 물론 1930년대 초반 독일과 2010년의 한국은 다른 조건에 있다. 당시 독일에서는 노동자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다수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현재의 한국에서는 그러한 기반이 상당히 열악하기에 차분히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아이슬러의 이번 글은 라디오와 축음기의 발명과 보급이라는 전대미문의 기술적 진보로 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진과 영상과 음악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특정한 작품 원본을 소유하거나, 특정 연주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적 발전으로 등장한 이러한 현상을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의 붕괴’라고 기술한 바 있다. 흔히들 ‘아우라가 있는 예술’이라는 식으로 아우라 개념을 쓰는 것은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이라면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우라의 붕괴는 분명한 기술적인 진보이다. 아우라의 붕괴 그 자체를 아쉬워하고 아우라의 복원을 신성히 하는 이들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의 소부르주아적인 관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복제라는 진보가 첨단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대의 과제는, 그러한 기술적 진보에 걸맞는 예술의 사명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녹음결과물에 대한 파일 복제조차 제한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며 명백한 국가폭력이다. 일각에서는 그러면 음악하는 이들은 다 굶어죽으라는 이야기 아니냐고 할 것이다. 이를테면 ‘정보재 가치 논쟁’ 중에 조원희 교수가 언급한 내용을 보자. “채소장은 아마도 최근 음악파일의 무단 복제로 인해 음반산업 전체가 위축되고 시장에 다양한 음악이 공급되지 못하는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2) 그러나 현 대중음악계가 소위 ‘아이돌 그룹’들의 잔치로 변하고 있는 것은 음반이 팔리고 안 팔리고 이전에 대형기획사들(SM, JYP, DSP 등)이라는 거대 자본이 대중음악계를 완전히 장악해버렸고, 이들이 자신들의 투자에 대한 이윤을 제대로 뽑아내기 위해 육성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텔레비전을 점령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다. 게다가 음반판매로 수익을 얻는 음악인은 그 이전에도 소수였다. 수많은 대중음악인들이 '판'을 내지만 묻히기 일쑤이고 그나마 '팔리는' 음악인도 소속사의 횡포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일부 인디밴드들은 아예 음원을 공개하거나 자신들이 직접 연주한 영상을 인터넷상에 공유한다.3) 이런 이들은 대부분 자기 돈을 들여 음악을 하고 이렇게 해서라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잘나가는 대중음악인들이라면 이것들은 그냥 공개할 것이 아니라 음반이나 DVD 등으로 제작해 팔아야 하는 것이다. 음반을 팔거나 저작권료로 생활하는 이들은 그 이전에도 극소수였다.





조원희 교수는 또 한편으로 ‘이들 산업의 발전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더욱 잘될 것이라는 발상을 납득하지 못한다’4)고 언급한다.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만 단적으로 쿠바의 예를 들어보자.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자본주의적인 음악산업이 거의 발전하지 못했지만 쿠바 인민은 관변음악(?)인 누에바 뜨로바5) 뿐만 아니라 룸바, 차차차, 맘보 등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즐긴다. 이들이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쿠바가 다양한 음악유산의 점이지대이기도 하지만 노동을 한 이후에 충분히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6) 물론 성실함이 돋보이는 친절한 반공주의 서적에서는 “가난한 쿠바 사람들은 돈 안드는 말레콘 방파제에 자주 가고, 거리의 공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수밖에 없다”7)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자계급은 빈곤하며 그것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도 없고 그나마 현재 있는 공적인 영역도 해체되고 있다. 거기에 공짜 음악은 대중매체와 광고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들이다. 다른 공짜 음악은 손에 꼽을 지경이고 그런 것이 있다하더라도 춤출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반면에 쿠바에서는 청소하는 여성노동자도 거리 공연이 열리는 광경에 잠시 자신의 일을 멈추고 음악을 즐길 여유가 있다. 이들은 대자본가들을 위한 사교클럽에서나 음악을 즐기고 대다수의 인민은 비참함에 시달려야 했던 혁명 이전으로 쿠바를 돌리고 싶다고 고백한다면 솔직할 것이다.





하루 종일 건설현장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던 건설노동자들이 전국건설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투쟁하여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했다. 이는 150년전의 구호를 현실화한 것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더많은 성과를 쟁취해내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건설노동자들의 문화는 혁신적으로 달라진 모양이다. 진보넷(http://jinbo.net)  속보 게시판에 2010년 1월 27일에 ‘장동지’가 올린 “[건설노조] 하루8시간노동 정착 이후 밴드 출현!”8) 이라는 글에 첨부된 영상을 보라. 전국건설노동조합의 투쟁으로 강원건설기계지부에는 JK밴드가 결성되었다.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이라는 기본 록밴드 편성에 키보드 색소폰까지 가세한 제법 대형 밴드를 노동자 동지들이 결성하였다. 이들이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중년의 남성 건설노동자들 정서에 맞는 가요를 비롯하여 투쟁가를 포괄하고 있다. 영상을 보면 속칭 ‘그룹 사운드’라 불리는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한국의 록음악(송골매 같은)에 뽕짝의 멜로디가 가미된 가요가 기묘하면서도 유쾌하게 공존하고 있다. 조원희 교수 같은 이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이 그리고 임금노예를 넘어선 사회주의가 바로 문화적 다양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될 것임을 설파하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정으로 음악의 다양성을 위하는 논자라면 음악파일을 많이 다운받는 대중들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제국주의적 문화 획일화를 비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영미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도가 빈번했던 황금기인 1960년대는 2차세계대전 이후의 장기 호황에 기초한 것이다. 이시기 대중들은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충분한 구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음반 산업은 황금기를 맞았고 젊은 대중은 능동적으로 좋아하는 음악가들을 선택했다. 당시 대중과 음악인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선 대안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반항적이었고 자유분방했으며 진보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황금기의 장밋빛 환상은 전후 장기호황이 끝나고 장기불황이 시작되면서 금이 갔다. 이 정도는 대중음악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상식일 것이다.





조원희 교수가 걱정하는 한국 ‘음반사업’의 황금기를 찾자면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라 할 것이다. 출반되는 음반의 종류와 양에서 이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수십만장에서 백만장 단위로 음반을 판매하는 음악인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이 시기는 경제투쟁을 위해서조차 피비린내를 뿌려야 했던 노동현장의 현실을 딛고 마침내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일어선 노동자계급이 비로소 자신들의 재생산을 위한 최소조건을 갖춘 이후이다. 지금처럼 비정규직과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된 시기에 기본적인 구매력이 없는 노동자계급 대중 다수에게 음반을 사고, 쏘프트웨어를 사라는 훈계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인식이다. 상당한 음량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mp3에 조악한 컴퓨터 스피커에, 귀가 망가지는 이어폰, 헤드폰9)으로라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지난 연재의 역주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새로운 시대를 냉혹하게 파악하여 대중을 그릇되게 선동한 이가 바로 나치의 괴벨스였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방송과 언론, 인터넷은 자본과 권력이 장악했다. 3D 영화라는 최신기법은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가 사용해 한국에서만 천만이 넘는 관중을 동원했고 지금도 신기록을 써가고 있다. 볼 가치가 없는 영화라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아니 장기 투쟁하는 사업장의 노동자들 다수는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볼 여유조차 찾기 힘들겠지만) <아바타>는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포장하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대중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옹호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사회주의 국가의 예술은 대중에 대한 통제와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그러나 스크린 쿼터 축소와 상영관에 걸리지도 못하는 영화에 대한 언급은 온데 간데 없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 <저달이 차기도 전에>는 극장에서 상영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였다. 되물어 보자. 할리우드와 영미의 팝문화로 획일화되는 전세계문화는 과연 인민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인가? 인민은 과연 저들이 내준 선택지 중에서 어느 하나 만을 수동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이들인가? <아바타> 아니면 <타이타닉>이냐?





저들 파쇼와 제국주의자들과 싸워서 이겨내는 것은 사회주의적 과제라기보다는 민족적‧부르주아적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한국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과제조차 부르주아지 중 가장 진보적인 분파조차 자신 스스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거대한 투쟁이 이들이 기회주의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과제를 끝까지 밀고갈 수 있을 것이고 마침내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해방 세상을 열게될 것이다. 본 연재에서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관현악단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그러한 고민거리를 지니고 본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10)





노동자 관현악단을 위한 음악





1932/1933




















독일 노동자 관현악단에겐 아래의 질문과 같은 선결과제가 있다. 부르주아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가? 왜 이를테면 <에그몬트> 서곡11) 같은 곡이 프롤레타리아 관현악단 음악에는 없는가?





정교한 현대 관현악 작품을 연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혁명적인 가요와 행진곡을 연주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혁명적인 노동자 관현악단과 비혁명적인 노동자 관현악단 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것은 관례적인 연주 목록에 투쟁가가 더 포함되어 있는가 여부에 달려있는가? 노동자계급 음악가는 자본주의 사회 음악의 물질적인 생산력과 그것의 발전에 대해 명석해야만 이것과 이와 비슷한 질문에 혁명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음악발전에서 증대되는 합리화과정—음악의 생산과정과 그 재생산과정 모두에서—을 인식하기 위해 배워야만 한다. 라디오, 레코드, 유성영화12) 그리고 자동연주기(Juke box)는 거대 다수의 인민에게 최적의 음악을 제공하거나 혹은 그라모폰 레코드의 예처럼 상품으로써 녹음되어13) 소매하게 될 수도 있다. 음악 생산은 합리화과정의 결과로 점점 작아지지만 보다 높은 자격을 갖춘 전문가 집단에 제한된다. 공연사업의 위기는 새로운 기술적 발견으로 인해 낡아빠지고 유행에 뒤떨어지게 되는 생산형태의 위기이다. 직업 음악가들의 실업이 증가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전형적인 소유관계를 통한, 사회적 진보는 생산과정의 실업자들에게 불리하게 변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해, 저가격으로 음악적 즐거움을 얻을 가능성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시간과 돈의 결핍으로 또 음악 훈련의 부족으로, 노동자계급의 음악가 중에는 기교를 갖춘 연주자가 거의 없다.14) 악기를 사는 것이며, 꽤 잘 연주할만큼 배우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15) 그는 자신의 능력의 정도와 판이하게도, 더 많은 가처분 시간과 돈이 있는 부르주아 딜레땅뜨16)조차 잘 처리하지 못하는 기교를 요하는 현대 부르주아 음악뿐만 아니라 고전음악을 해석하기 위해 것을 배워야 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원시사회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원시부족이나, 물물교환 경제의 것과 자본주의의 것을 비교해보라.17)





왜 노동자는 음악을 만드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겪는 어려움은 배우는 것과 사회적 지위 간의 모순을 가리킨다. 고전음악 작품은 연주가 그것을 왜곡하지 않았을 때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외에도 보통교육, 습관과 어린시절의 익힘, 시간과 돈의 소유, 감정과 지각력 같은 이해를 위한 예비조건이 있다.





이 모든 조건과 능력은 프롤레타리아트보다는 부르주아 음악 애호가들 중에서 찾기 쉬운 것들이다. 부르주아들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은 당연히도 부르주아의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의 음악가는 자신들의 총연습 시에 부르주아 음악을 연습해야 하는가? 단지 바보만이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18)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관현악단이 공연을 한다면 문제가 다르다. 모든 공연에서 조직체는 정치 연설가가 자신의 연설을 행하는 것처럼 내용과 질에 동등한 책무를 떠맡아야 한다. 고전음악을 뒤틀리고 변변치 않게 연주한다면 청중을 만족시키지 못하며 나쁜 인상을 준다. 이런 노동자 공연에 바람직하게 참가한다면 계급 연대성과 노동자가 자신들의 문화적 조직체를 지탱하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본능을 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연대성을 선전하는 것만을 성공의 유일한 기준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공연은 혁명의 길에 있어 배우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관현악단은 정당하게 “그렇다면 공연에서 어떤 것을 연주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대답은 관현악단만으로 구성된 공연은 무산계급 청중을 위해 알맞지 않다는 것이다. 과장된 관현악에 경계를 하고 이를 단지 고상한 예술이라고 간주하기 마련이다. 가사가 없는 음악은 먼저 주요한 취지를 획득하였고 자본주의 하에서 충분히 발전했다. 이른바 교향악은 전형적인 부르주아지의 작곡 양식이며 때문에 노동자는 물질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프롤레타리아 성격의 관현악 교향곡이라는 문제는 옷에 빨간 칠을 한다고 해서 다른 옷이 되지 않는 것처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19) 부르주아적인 음악 만들기는 덧없으며 만약 노동자계급 음악가가 이를 숙지하여 실제적인 결론을 끌어내면 혁명적인 작풍의 음악을 실행하기 위한 토대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와 같은 것들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노동자 관현악단은 투쟁가를 연습할 수 있는 소규모 합창단을 구성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이에 맞는 정치적 목표를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며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기본적인 견해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기본 이념이 “연대성”이라면 관현악 위원회20)와 합창단은 레퍼토리에서 이 주제에 밀접한 옛 투쟁가와 새로운 투쟁가를 골라야 한다. 다음에 공식 대표자는 혁명적인 작가와, 선전선동극단21), 노동자 사진작가 동아리와 <맑스주의 노동자 학교>22)와 협의하고, 공연의 목적을 설명해야 한다. <맑스주의 노동자 학교>에 연설자를 준비하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관현악단, 합창단, 작가, 선전선동극단과 사진가 동아리의 대표자로 구성된 소조는 연주목록을 치밀하게 짜야한다. 연주목록은 장면, 투쟁가, 합창과 관현악곡, 16mm 영화와 상연할 다큐멘터리 사진의 느슨한 시퀀스23)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결과물은 부분적으로 이미 실재하는 제재(따라서 이는 독일에서 합창 몽타쥬라고 불린다.)로서 무대에 올라야 한다. 보충적인 글과 개별적인 곡목은 특별하게 써야한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전문가 집단은 아래와 같은 음악 부분에 대한 책임을 떠맡아야하는 관현악단이 되어야 한다. 합창단과 함께 하는 투쟁가(이들은 대중과도 함께 연습해야 한다), 짧은 관현악 곡, 수반되는 영상, 연극과 영사되는 다큐멘터리 사진들.24)





이러한 방법으로 노동자 관현악단은 일등급의 공연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의 새로운 혁명적인 음악 양식은 소설과 원작곡품을 숙달되지 않은 아마추어 연주자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꾸밀 수 있다. 개별 합창단 작곡의 특질, 장점과 단점을 고려하여 훨씬 더 멀리 나갈 수 있다. 노동자계급 음악가는 이를 자신들이 혁명적 작곡가들에게 요구해야 하는데 이는 그들도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서 배울 준비가 되어야 하며, 혁명적인 음악은 단지 텅비고 쓸데없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연의 이유는 노동자 관현악단 하나만으로는 유용한 것들을 획득하기 위한 처지에 있지 못하고, 선전선동극단이나 합창단은 기술적으로 한 측면만을 지니고 있어 저녁 공연을 다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고립적인 문화조직 모두가 협력한다면 서로를 보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협력하면 정치적인 주제가 대중에게 전달하는 혁명적인 메시지를, 독창적이며 예술적으로 효과적인 방식으로 심화시키는 대규모 집회를 위한 기술적인 조건을 준비할 수 있다. 이는 품은 의견과 습관 여럿을 혁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수많은 곤경과 고통을 뜻하며 또한 어려움과 실패로부터 제지당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길을 선택한 노동자계급 음악가는 새로운 혁명적 노동자 음악운동의 최초의 토대를 세우는 것이기에 진정으로 혁명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타이프원고, 한스 아이슬러 자료실.





아이슬러 전집(EGW) Ⅲ/Ⅰ, pp. 198-203에 독일어 원고는 보다 광범한 프랑스어 원고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제목을 지닌다. Über die DAMB in Deutshland/Les expériences du mouvement musical ouvier en Allmagne (DAMB—독일 노동자 음악운동). 이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파시즘이 독일에서 권력을 잡기 이전에 쓰인 것이지만, 1933년 12월 빠리에서 열린 음악회의에서 낭독되었다. <노사과연>






1) 국립오페라합창단 해고 단원 동지들은 투쟁 끝에 “나라오페라합창단”으로 재창단하는 아쉬운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다.






2) 조원희, ��진보평론��, 2008년 봄, pp. 252-53. (채만수, 「정보재 가치 논쟁과 경제학의 혁명」, ��정세와 노동��, 2008년 6월호, p. 71에서 재인용)






3) 한국뿐만 아니라 록 음악이 활성화되어 있는 중국 베이징의 인디 밴드도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는 모양이다. 물론 음악가와 대중들 간의 소통은 음반과 공연과 같은 공감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승환, 신해철 같은 작가주의 음악가들이 있다. 이들의 음악은 앞서 언급한 대형기획사들의 공장에서 찍어내는 음악에 비하자면 상당히 진보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음악가들은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면 최소한 손해를 보지 않는, 아니 적어도 일정한 수입을 얻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수의 선택받은 음악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힘겨운 노동으로 번 돈을 들여 판을 찍어야 하는 수많은 대중음악인을 보라. 아니 대중음악계로 눈을 돌릴 것도 없이 투쟁 현장에서 노래하는 가수는 생계의 어려움과 온갖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열렸던 문화제에서 자신의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노래를 선사했던 지민주 동지의 모습이 아련히 스쳐간다.






4) 같은 곳






5) 노파심에서 다시 말하지만 누에바 뜨로바는 그저그런 관변음악과는 궤를 달리한다.






6) (2008년 EBS에서 방영되었던 세계테마기행 <매혹의 땅 쿠바 —제 4부>를 보라.






7) 대한무역투자진행공사(KOTRA) 아바나무역관 조영수 관장의 언급 신석호의 ��김정일과 카스트로가 경제위기를 만났을 때��, 전략과 문화, 2008, p. 256. 신석호의 책은 반공주의적인 시각이 가득하지만 많은 자료를 인용하고 있어 참고서로 볼만하다.






8)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35993&page=1&s1=name&s_arg=장동지






9) 혜화동에서 투쟁하고 있는 재능교육 투쟁동지들이 듣는 음악은 낡은 차량 스피커에서 나오는 민중가요이다. 이들이 듣는 아마도 구운 CD에는 다른 곳에서 듣기 힘든 다채로운 민중가요가 나온다. 때로는 투쟁현장에서 공연이 필요할 때는 장비가 좋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거나 CD가 튀는 일이 속출한다. 그래도 이들은 질기게 끝까지 싸우고 있다.






10) 한편에서는 짧은 내용의 연재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역자의 언급이 오히려 읽는 이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도 있기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있다.






11) 원주: <에그몬트> 서곡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유명한 작품이며 동명의 괴테의 희곡에 부치는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이다.





역자: <에그몬트> 서곡 작품 84는 괴테의 5막 비극 ��에그몬트��의 부수음악이다. <에그몬트>는 서곡을 포함하여  열곡으로 되어 있으나 곧잘 서곡만을 연주하곤 한다. 곡은 비극적인 서주를 지닌 소나타 형식이며 주부(主部) 이후에 나오는 두 개의 주제는 강인한 성격과 따뜻한 애정을 간직한 에그몬트 백작의 성격을 교묘하게 나타내고 있다. 서곡의 절정인 종결부는 에그몬트 백작이 단두대 위에 섰을 때 연주하는 “승리의 교향곡”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 현암사, 1997, p. 284.






12) 어느 것이 최초의 유성영화인지는 기록에 따라 다르지만, 1927년 미국의 <재즈 가수(The Jazz Singer)>가 관객을 위한 유성영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다수인 것 같다. 엄밀한 의미에서 무성영화 시대는 없었는데무성영화 시대에도 영화는 음악을 수반하고 있었다. 대도시 극장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소도시에서는 피아노가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였다. L. 자네티, ��영화의 이해��, 현암사, 1995, pp. 176-177.





이를테면 너무나도 유명한 에이젠슈쩨인(쎄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에이젠슈쩨인, Сергей Михайлович Эйзенштейн) 감독의 1925년작 <전함 뽀쫌낀(Броненосец «Потёмкин»)>의 경우 초기 상연시에는 극장에서 오케스트라나 피아노가 음악을 담당했었다. 우리가 오늘날 감상하고 있는 영상은 훗날에 “혁명”이라는 부제가 붙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작품 47이 배경음악으로 추가된 것이다.






13) canned form. can이 동사로 쓰일 경우 ‘통조림으로 만들다’ 외에도 속어로서 ‘녹음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canned music은 레코드 음악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14) 한편으로 한국의 민중가요‧노동가요 진영의 투사들에게도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기술적인 부족함을 이유로 김성만 동지가 작곡한 “비정규직 철폐가”의 의의에 대해 폄하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곤란한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가”를 진보적이지만 투쟁 현장의 노동자와 거리가 있는 두 명의 음악애호가에게 들려주었더니 둘 다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기술적인 완성도와 고립적인 ‘미적 체험’의 문제 이전에 실제 투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이 투쟁가요의 생동성을 느끼기는 힘든 것이다. 투쟁현장에서 농성장에서 실제 농성노동자와 거의 같은 생활을 하며 부족한 시간에 창작활동을 하고 또 노래로써 연대하는 김성만 동지의 활동과 창작은 그러한 의미에서 너무나 소중하다. 2008년 10월 26일 대학로에서 열린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제5회 이용석 열사상을 수상한 김성만 동지가 온몸으로 “비정규직 철폐가”를 부르던 장면은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이후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노동자계급 출신의 뛰어난 연주자들이 등장하였다. 이전 같았으면 음악을 할 기회도 얻지 못했던 노동자와 농민 출신의 음악가들이 음악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위대한 성과이다. 아이슬러 글의 초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을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유의하면 좋을 것이다.






15) 보통의 집 몇 채 값을 뛰어넘는 명기가 아니더라도 쓸만한 악기는 고가이다. 최근에 재미있는 기사를 볼 수 있었는데 정명훈이 후원하는 소년의 집 관현악단이 마침내 미국 카네기홀 공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년의 집은 수녀들이 주축이 된 종교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8년 11월 8일 서울역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는 기아차노동조합의 관악단 대형밴드가 등장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연주하는 곡목이 “불나비”와 같은 투쟁가도 있었지만 할리우드 영화 <씨스터 액트> 주제가인 “나 주를 따르리(I will follow him)”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당일 전야제 공연 중 가장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노동자의 딸’이라는 사회자의 소개로 무대에 올라선 소녀들이 유행하는 ‘걸그룹’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 장면이었다. 여성들이 하는 공연이었음에도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는 춤사위를 그대로 재현했고, 이를 노동자대회 전야제 때에도 봐야한다는 것은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후퇴는 노동자 문예활동의 후퇴와도 맞닿아 있다.)






16) dilettante. 예술이나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하는 이들. 이는 낭만주의적인 예술활동의 한 편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편향의 반대쪽 극단에는 기술적인 숙달을 절대시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있다.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창작과비평, 2008, p. 103. 






17) 아직 도래하지 않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원시공산주의 사회의 그것처럼 예술 전문가와 애호가 간의 차이가 사라질 것이다. 물론 공산주의 사회는 원시사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예술을 누리면서도 그러한 대립이 사라진 사회이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대립의 극복은 이리도 중요하다. 이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그러하고 전문가와 수동적인 대중 다수를 양산해내는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더없이 중요한 극복의 과제이다.






18) 여기서 보이는 아이슬러의 태도는 쁘롤레뜨꿀뜨에게 비판을 가했던 레닌의 태도와 상당히 닮아있다. 아이슬러가 정치적인 태도를 명확히 사회주의적으로 바꾸게 된 것은 레닌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이 크다. 프롤레타리아 예술은 기존의 문화유산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순수히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런식의 예술은 진공상태의 실험실에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쁘롤레뜨꿀뜨와 레닌의 대립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논장출판사, ��레닌의 문학예술론��, 화다, ��러시아 프로문학 운동론 1��, 연구사, ��소비에트 문화이론 연구��와 같은 관련서적을 보길 바란다.






19) 아이슬러 자신도 교향곡인 <독일교향곡> 작품 50을 작곡했다. 그러나 이는 고전파의 전통적인 4악장으로 구성된 기악 교향곡이 아니며 여기에 단지 붉은 색을 입힌 것도 물론 아니다. 이는 관현악단뿐만 아니라 독주연주자와, 연설자, 합창단이 등장하는 14개의 소부분으로 구성된 종합적이며 입체적인 작품이다. 작품중에는 농민 칸타타와 노동자 칸타타와 같은 합창곡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CD로 들을 수 녹음으로는 막스 포머(Max Pemmer)의 지휘로 1988년에 연주한 것이 있다. <Eisler: Deutsche Symphonie>, Berlin Classics, 1998, 0093262BC.






20) orchestral committee. 관현악 ‘위원회’라는 표현으로만 보아도 통상적인 관현악단이 지휘자와 악장(콘서트 마스터라고도 하며 제1바이올린 수석연주자가 담당한다.) 중심의 수직적인 위계적인 질서를 갖는데,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아이슬러는 노동자합창단 등을 운영할 때에는 노동자들과 실질적으로 토론하며 배우며 운영하였다. 연극에서 브레히트가 했던 방식을 아이슬러는 음악에서 했다라고 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21) agit-prop groups. 당시까지 독일에서는 여러 아지-프로 극단이 있었고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22) Marxist Wokers' School. 고유명사인데 실제로 어떤 기관인지 찾지 못하였다.






23) sequence. 일반적으로 순서, 차례 등을 의미하지만 영화나 매체에서 시퀀스는 대부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쓴다.






24) 여기까지 보고 도대체 이러한 대규모의 입체 예술을 어떻게 한국의 노동자 투쟁현장에서 구성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식의 충분한 기획을 갖춘 종합예술은 대기업 노조나 총연맹 정도의 단위에서나 가능할, 아니 사실 지금의 후퇴한 노동자 문예활동의 역량으로서는 이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실례를 들어보자. 투쟁사업장에서 문화제를 할 때 영상과, 노래, 시낭송 혹은 간단한 촌극이 순서대로 배열되는 경우를 손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각각의 순서는 공통의 주제를 갖고 있지만 서로 유기적인 연관이 밝혀지지 않고 따로따로 상연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미 하고 있는 문화제에서 서로 따로 상연되는 것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해보는 시도는 지금의 역량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낭송을 할 때 배경음악을 까는 것도 좋지만 실제 연주자가 직접 시낭송의 반주 이를테면 쉬운 기타 연주라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단지 이러한 시도뿐만이 아니라 문화제를 기획할 때 기획자가 판을 다 짜고 섭외한 이들이 공연하는 체제 자체를 바꾸어 가야 한다. 집회와 투쟁을 위해 수많은 회의와 토론을 진행하고 전술을 논쟁하고 있는데 문화제를 위해서도 각 단위의 역량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소모가 아니다. 새로운 노동자계급의 문예활동을 기획하고 수행하기 위한 소중한 시도이며 그 자체가 투쟁과정일 것이다. 최소한 그러한 시도가 있을 때만이 해마다 반복되는 문제가 심각한 문화제 공연이 등장하지 않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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