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 담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 중의 하나는 “어떤 시대의 지배적인 관념(Ideen)은 언제나 단지 지배계급의 관념”¹⁾이라는 맑스의 언명이다. 이렇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이유를 맑스는 주요하게 이렇게 설명한다.

물질적 생산을 위한 수단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계급은 그와 동시에 정신적 생산을 위한 수단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또한 정신적 생산을 위한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에 종속되어 있다. 지배적 사상이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의 관념적 표현, 사상의 형태로 표현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것은 실로 하나의 계급을 지배계급이게 하는 관계의 관념적 표현, 따라서 이 계급의 지배의 사상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²⁾

실로 그대로이다. 현 대선과정은 그 인적 대세 자체를 지배계급이 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그 담론․이념․사상 일체까지도 그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인적 대립구도뿐만 아니라 그 사상적․정치적 대립구도 또한 철저하게 독점자본 대(對) 독점자본, 혹은, 보다 절실히 표현하자면, 신자유주의 대 신자유주의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정치적 표현이 바로 이명박 현상, 혹은 ‘이명박 대세론’이다. ‘경제’ 담론이 대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의 표현만을 빌리자면, 물론 ‘거짓 경제’ 담론이다.

그러나 정동영이나 이회창, 문국현, 이인제, 등등등, 독점자본의 정치적 대표자들은 물론, 민주노동당의 권영길이나 한국사회당의 금민 등도 그 ‘거짓 경제’ 담론의 실체를 폭로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독점자본의 대표자들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권영길이나 금민 역시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 혹은 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 그리고 기껏 공허한 민중주의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러한 의미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이나 ‘이명박 현상’을 적극적․전투적으로 대세여론화시키고 있는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뿐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 대선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모든 정치․사회세력들이 너나없이 모두가 ‘거짓 경제’ 담론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의 사상․이념 중에서도 이번에 특히 ‘경제’ 담론이 대선과정을 지배하고 이명박이 대세를 휘어잡게 된 배경 또는 직접적 원인은 물론 지난 10년간, 그러니까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의 노동자․민중의 빈곤화, 혹은 그 심화이다. 그 빈곤의 심화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물론 그 자체 근거 없는 환상이었던) 기대가 실망을 넘어 환멸․분노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이, 한편에서는 ‘경제 파탄’이니, “좌파정권”이니, “잃어버린 10년”이니 하는 선동적 슬로건으로 규정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대선이 “경제를 살리고, 사회를 통합해 세계일류국가로 나아가야 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하느니, “말 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느니 하면서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³⁾

그리고 이명박은 그렇게 소위 ‘개혁세력’의 10년 집권 하에서 생활의 파탄, 곤궁화를 겪어온 대중 앞에 나타난 ‘자수성가한․능력 있는 경영자’, 과감하게 덮여 있던 청계천의 시멘트를 걷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만든 서울시장, 과감하게 서울의 시내버스 노선을 ‘전면’ 개편하고 환승제를 도입한 서울시장인 것이다. 바로 그때에 바로 그렇게 ‘과단성 있고 실천력 있는 이명박’이 나타나 “함께가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일류국가로”를 외치고 “일류국가로 가는 첫걸음은 경제살리기”라고 외칠 때, 대중의 환상은 그것이 부질없는 환상임을 경험을 통해 다시 절실히 깨닫기 전까지는 깨지지 않는 것으로 된 것이다. ― 많은 사람이 마음 한 구석에는 지난 소위 ‘IMF 사태’ 때 현대건설의 사실상의 부도에 이명박의 책임이 없지 않고, 이른바 ‘BBK 사건’ 등이 필시 ‘사기꾼 대(對) 사기꾼’의 게임일 것이며, 그의 전력에 미루어 보더라도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미루어 보더라도, 그는 한낱 토목자본의 화신으로서 청계천 역시 그것이 덮여 있었으니까 그 덮개를 뜯어냈지 열려 있었더라면 시멘트 더미로 덮고도 남았을 위인이라는 것, 등등의 진한 의혹을 품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업보, 그리고 권력을 잡는다는 것의 의미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역시 곤고의 생활을 강요받은 노동자․농민 등 민중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입장, 그러니까 이른바 ‘범여권’의 입장에서는 이명박이나 한나라당 등이 “경제파탄”이니, “잃어버린 10년”이니, “경제살리기”니 하며 나오고, 그것이 또 수많은 유권자 대중에게 먹혀서 정권상실을 눈앞에 둔 현실이 엄청나게 억울하고 분통터질 일일 것이다. 그들의 관점, 따라서 독점자본의 또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경제를 망친 것’은 한나라당이고, ‘경제를 살린 것’은 자신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그러한 억울함과 분통은 정동영(대통합민주신당)의 12월 4일 주요 일간지 1면 하단 통광고 ― “12월 3일은 IMF 국치일입니다”로 시작하여, “IMF를 불러 온 주범세력이 다시, 대한민국의 경제를 말하고 있습니다”며, “누가 IMF를 불러 왔습니까?”, “누가 IMF를 극복했습니까?” 하고 묻는 광고에 잘 묻어나 있다. 그리하여 정동영 등은 한나라당이나 이명박이 “경제살리기” 운운하는 것을 가리켜, “거짓 경제”, “나쁜 경제”라고 맞받아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그러니까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 ‘한국경제’, 즉 한국자본주의는, 소위 ‘IMF 사태’ 혹은 외환위기라는 ‘위기를 극복’하여 외환준비금이 2,600억 달러를 넘어 주체하기 어려운 크기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 경제규모도 집권 당시의 그것의 두 배를 훨씬 넘어 소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고, 재벌들은 공룡처럼 비대해져 있다.

그러나 어쩌랴?! 실업과 비정규직화 등등 빈곤화로 내몰린 노동자들이나 더욱더 파탄을 맡고 있는 소농민들뿐 아니라 재벌 등 독점자본들 역시 대개는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을!

재벌 등의 독점자본이 노무현 정권, 혹은 범여권에 등을 돌리는 것은 사실은 탐욕에 어두워진 그들의 근시안 때문이다. 독점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정책적․제도적 지원은 물론, 더 나아가서 노동자․민중의, 그 운동의 상층부 상당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효과적으로 매수할 능력이 있는, 그리하여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상대적으로 무기력화 시킬 능력이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야말로 객관적으로는 재벌 등 독점자본의 이익에 가장 효율적으로 봉사해온 정권이다. 그러나 탐욕에 눈이 어두운 독점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독점자본의 전통적인 정치적 대표자가 집권했을 때에 기대되는 보다 더 노골적인 지원, 보다 더 강압적인 노동자․민중억압일 터이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어떤 경천동지할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한, 이른바 ‘개혁세력’ 혹은 ‘범여권’이 정권을 상실하는 것은 사실상 기정사실로 보이고, 이 권력상실은 바로 그들 자신의 자업자득, 업보이다. 자신들을 그토록 열렬히 지지해준 세력의 기대―물론 환상―를 저버리고 그들을 짓밟으면서 철저히 신자유주의로 질주한, 철저히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한 업보 말이다.

그러나, 극히 중요한 문제인데, 저들의 신자유주의(노무현의 표현으로는, ‘좌파 신자유주의’), 저들의 독점자본에의 봉사를 저들의 ‘선택’에 의한 것으로 보면서 ‘저들에게는 다른 대안, 민중적 대안이 있을 수 있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 역시 저들의 집권을 지지한 ‘기대’와 마찬가지의 환상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계급지배의 도구로서의 국가의 본질․기능에 대한 철저한 무지로 인한 것이다. 저들이 소위 집권했을 때, 즉 부르주아 국가, 독점부르주아 국가의 인적 담당자로서 나섰을 때, 그들의 절대적 임무는 이미 노동자․민중을 억압하면서 독점자본에 봉사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고, 신자유주의정책을 기획․수행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그들의 제반 ‘개혁’은 신자유주의 개혁일 수밖에 없도록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들 ‘개혁세력’의 핵심부 상당 부분은 적어도 지난 1980년대 중․후반에는 당시 힘차게 부활하던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고,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것의 계급적 성격이 무엇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아니, 이미 ‘민주’니 ‘개혁’이니 하면서 부르주아 정객으로 나설 때, 아니 그렇게 나서려 할 때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려 나선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권력의 담당자로서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 그것은 바로 애국이며, 그들이 권력을 잡는다고 하는 것의 기본적 의의이다. 저들은 그것을 알고 있고, 그러한 한에서 저들의 행로는 악의적인 것이며, 만일 그것을 몰랐다면, 즉 선의라면, 그것은 단지 그들이 사회과학에 백치임을 말할 뿐이다.

12월 5일, BBK니, 주가조작이니, 다스니 하는 그 동안의 ‘의혹’에 대하여 검찰이 이명박의 ‘무혐의’를 선언하자 ‘개혁세력’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하여 ‘정치검찰’을 규탄하며 또 한 번의 ‘탄핵반대’ 소동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맑스나 엥겔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불쾌한 광대극”⁴⁾에 불과하고, 한나라당의 표현을 빌면, “마지막 발악”에 불과할 것이다.

한편, 이명박이 무혐의라는 검찰의 발표는 명백히 ‘애국적’이다.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한 후보가 ‘유혐의’라고 발표했을 때 올 정치적 혼란을 피하는 것은 국가의 ‘공안’을 책임지고 있는 검찰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검찰은, 오늘날 ‘범여권’이 크게 규탄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언제나 그러한 것처럼, ‘정치검찰’이다.

그런데, 집권한다는 것, 혹은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그 집권 당사자들 혹은 그 세력에는 어떤 의의를 갖는 것일까? 혹은, 그들은 왜 그토록 권력에 집착하는 것일까?

객관적으로야 어떻든, 과학적으로야 어떻든, 그것은 차치하고, 저들이 번지르르 하게 떠들어 대는 것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회와 ‘서민’ 생활의 안정․복지를 위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저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부와 안락이 따르는 권력 그 자체를 위해서이다.

이른바 ‘대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이권이 따르는 수백․수천 개의 자리가 바뀐다. 엽관제도(獵官制度)라고 한다. 고위의 정치직이나 관직만이 아니다. 공기업의 임원․간부직이나 관변단체의 간부직만이 아니다. 집권 세력은 재벌 등 독점자본의 이사, 감사 자리로도 가고, 심지어 대학, 학원재단의 이사․감사직으로도 간다. ― 바로 죽고살기로 권력을 다투는 이유이다. 실제로,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과거에는 예컨대 ‘낙하산 인사’를 규탄하던 민주투사들, 시민운동가들이 당연하다는 듯 그러한 자리들을 차고앉았다. 때로는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또 과시하면서 그러한 영광, 그러한 이권을 즐겼다.

보도에 의하면,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곧 발간될 ‘자서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386참모들의) 반주는 으레 소주였고 양주 이야기를 꺼내면 몰매라도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몇 달도 안 돼 양주가 등장하고 식사 때 1인당 10만원이 넘는 고급 호텔식당이나 레스토랑을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다.⁵⁾

[조선일보](2007. 11. 23.)의 악의적 ‘사설’ 제목처럼, “청와대 386, [어찌] 반주만 소주서 양주로 바꿨었[겠]나”? (각괄호 안은 인용자가 가필한 것.)

사실, 권력에 붙는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는, DJ에 간택되어 일찍이 평민당의 국회의원을 지낸, 저 [어둠의 자식들]의 필자 이동철 씨가 지난 1980년대 말이던가 90년대 초에 월간 [신동아]에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여 주목을 끈 적이 있다. 다만, 그 후의 그의 추한 행적으로 봐서, 그 고백이 참회―사실, 그 길을 간 사람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사실 어불성설이다―가 아니라 속물선언이어서 유감이지만.

민주노동당 (그리고 한국사회당)

그런데, (독점)부르주아 대선에서 독점부르주아와 그 이데올로기가 횡행․지배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위에서 장황하게 한 얘기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면의 낭비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노동자․민중을 대표하는, 혹은 대표한다고 되어 있는 정치세력의 태도와 행동, 주장일 것이다. 이 글의 독자들은 필시 기억하겠지만, 나는 이미 이 잡지의 지난 9월호에 “민주노동당 ― 보다 더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게 하자!”라고 썼다. 직접적으로는, 권영길 씨가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고 나서 첫날의 행사로서 당 대표를 위시한 당원 30여 명을 대동하고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을 보고, 그러한 부르주아 국가주의를 보고 그렇게 판단했고, 그렇게 썼다.

그리고 간간히 보도되는 그의 ‘선거운동’을 보자면, 그렇게 “보다 더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게 하자”는 판단은 더욱 굳어지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상공회의소라고 하는 독점자본가 단체를 방문하여, “근로자들이 마음에서 우러나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 안정”이라며 “이런 면에서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⁶⁾는 보도를 보고 노동자들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선관위가 배포한 ‘선거공보’에 의거해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말하자면, 경제사회 분야 공약을 간추려보면, 그 핵심은 대략 이렇다.

◆ 민주노동당이 만듭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없는 나라

   * 공공부문 150만개, 민간 100만개 일자리 창출

   * 노동시간 축소―일자리 나눔으로 50만개 일자리 창출

   * 비정규직 특별법 시행으로 400만 명 정규직 전환

   * 노동자 전 생애 평생교육 시스템 구축

   *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 적용

   * 법정 선거일을 유급 휴일로 전환

◆ 당선 즉시 국민투표로 한미FTA를 막겠습니다

   ... (세목 생략) ...

◆ ‘5대 걱정없는 나라’로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 주택: “1가구 1주택, 택지공개념으로 집 걱정 없는 나라!”

   * 교육: “대학평준화, 입시 철폐! 사교육비 걱정없는 나라!”

   * 보육: “취학 전 무상교육, 무상보육! 보육비 걱정없는 나라!”

   * 의료: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치료비 걱정없는 나라!”

   * 노후: “기초노령연금 지급확대! 노인이 활기찬 나라!”

◆ 가계부혁명으로 신바람을 불어넣겠습니다

   * 임기내 서민소득을 7% 증가시켜 서민의 지갑에 100만원을 채워주겠습니다.

   *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통해 최고 111만 원까지 서민의 생활비 지출을 줄이겠습니다.

◆ 사람이 먼저입니다. 당신이 중심입니다

   * 여성 정책: “여성의 일할 권리, 가사․육아․간병부담을 국가 책임으로”

   * 청소년 정책: “학생인권을 존중하고 문화, 환경을 개선하겠습니다.”

   * 장애인 정책: “빈곤의 악순환을 근절하고 장애인의 자립을 보장하겠습니다.”

   * 녹색 정책: “지속 불가능한 한국사회를 극복하고 녹지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운운.]

그런데 권영길 후보 혹은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공약이, 예컨대, 이명박 후보 혹은 한나라당의 다음과 같은 공약과 어떤 계급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 2030 성공시대, 취업걱정 없는 나라. 이명박이 함께할 2030의 미래는

   *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해소

   *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육성 프로그램

   * 신혼부부 보금자리 주택공급

   * 창업 교육 프로그램

   * 미래의 엔진, 청소년 육성

   * 여성일자리 확대와 양성평등의 실현

◆ 3040 성공시대, 자녀교육 걱정없는 나라. 이명박이 함께할 3040엄마, 아빠의 미래는

   * 사교육비 절반, 맞춤형 국가 장학제도 확대

   * 영유아 보육․교육 국가책임제 실시

   * 빈곤층 자녀를 위한 드림스타트 시행

   ... 기타 생략 ...

◆ 4050 성공시대, 세계로, 미래로. 이명박이 함께할 4050의 미래는

   * 누구에게나 열린 대학, 평생학습

   * 여성 경제 활동 활성화

   * 농어촌 살리기

   *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처우 해소

   * 양극화 해소

   ... 기타 생략 ...

◆ 6080 성공시대, 우리도 청춘, 이명박이 함께할 6080의 미래는

   * 실버 산업 육성 및 지원

   *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연금제도 개혁

   * 서민 기초생활 및 사회적 약자 보호

   * 노후생활보장 및 장기요양 지원

   * 암․중증질환 안심치료

   * 실버시대 일자리 창출. [운운.]

한나라당이 침묵으로써 한미FTA를 찬성하는 데에 비해서 민주노동당이 그에 대한 반대를 명시하고 있는 것만을 제외하면, 적어도 ‘선거공보’에 명시된 한에서의 경제․사회 공약에서는 두 당, 두 후보 사이에 사실상 본질적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한미FTA를 둘러싸고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찬반의 차이는 어떤 고유한 계급본질적 차이가 아니라 구체적 상황논리의 차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얼핏 보면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당, 두 후보의 공약 간의 이러한 사실상의 무차별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그것은 명백히 민주노동당이 이 사회를, 그리고 이 사회의 문제를 계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파쇼정권 하에서처럼 외적 폭력, 강제에 의해서 계급적 관점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급적 관점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호] 3[번] 권영길,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는 제목을 가진, 명색이 민주‘노동당’의, 무려 4․6배판 16면에 달하는 선거공보에는 ‘자본가계급’이나 ‘노동자계급’이라는 언술은 물론 아예 ‘계급’이라는 단어 자체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계급의 관점을 철저히 거부하는데, 노동자계급의 관점이 부재하고 그것을 거부하는데, 어떻게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과학적인,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적인 ‘공약’․‘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만약 민주노동당이, 권영길 후보가 조금이라도 노동자계급적인 관점에서 이 사회와 그 문제를 바라보고 그러한 관점에서 대선에 임한다면, 자신(들)이 집권하면 몇 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몇 백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식의 전혀 가능성 없는 헛소리를 떠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헛소리를 떠드는 대신에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축적이 고도화될수록, 대량의 실업과 비정규직화, 빈곤화는 필연적일 뿐 아니라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속되는 한 재앙만이 있을 뿐 문제의 해결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면서, 아니 어쩌면 문제를 그렇게 접근할 수 있는 능력조차 이미 철저히 상실한 채, 수많은 노동자가 실업과 정리해고,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는 것은 “취업과 고용을 시장에 맡겨둔 결과”라거나 “국가가 나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운운하는, 혹은 “일자리공개념 제도로 해결하겠습니다” 운운하는 상투어나 늘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민주노동당은 일자리와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가진 유일한 정당” 운운하며, 먹혀들지도 않을 서투른 사기를 치고 있다.

그러면 한국사회당의 금민 후보는 조금이라도 나은가?

그는 11월 23일에 “새로운 진보, 담대한 제안 ―제17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등록하며―”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데, 거기에도 역시 ‘계급’이나 ‘노동자계급’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역시 다음과 같은 역겨운 상투어를 늘어놓고 있다.

... 시급한 과제가 있습니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편적, 적극적 복지를 통한 국민적 통합, 질 좋은 일자리의 확대와 함께 가는 좋은 성장입니다. 더 이상 고용 없는 성장, 국민 대다수를 소외시키는 성장은 안 됩니다. 더 이상 국민이면서도 국민이 아닌 사람들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저는 이를 위해 우선 복지를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 권리로 삼고자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복지는 사회적 약자를 통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건강, 주거, 교육, 노후 등을 보장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력 있는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노력입니다. 저는 국가가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운운.]

“국가가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지녀야 한다”? 국가의 계급성, 독점자본가계급성에 대한 인식은 도무지 눈곱 만큼도 없다. 게다가 그는 한술 더 떠서 이렇게까지 얘기하고 있다.

저는 노동사회혁신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 기반의 숙련 노동자를 늘리는 대안경제를 만들어내겠습니다. 복지와 교육, 고용의 선순환을 기초로 한 노동사회 혁신과 산업 재편, 사회적 일자리의 확대를 추구하는 대안경제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운운.]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노동사회혁신기금을 조성하여, 이를 바탕으로 지식 기반의 숙련 노동자를 늘리는 대안경제를 만들어내겠다”니? 결국 독점자본의 경쟁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선전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의, 따라서 한국사회당의 경쟁 이데올로기와 국가에 대한 비과학적․몰계급적 인식, 소부르주아적 환상은 그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극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화된 오늘날 약탈적인 금융자본을 통제해야 하고, 성난 파도처럼 다가오는 개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에 대한 국민적 통제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국민 모두의 돈인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를 대폭 확대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금융 시장과 대기업은 국민 모두의 이익과 조화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얘기하고 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진보의 새로운 길을 찾고, 미래를 개척하는 담대한 제안에 국민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보다 더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게” 하여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금민 후보와 한국사회당 역시 보다 더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앞장서서 가고, 모든 노력을 다하도록” 그리하여 보다 더 당당하게 그 “진보의 새로운 길을 찾고, 미래를 개척”하도록 “많은 성원과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보다 더 당당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저들이 둘러쓰고 있는 ‘노동자’, ‘사회주의’의 가면을 찢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노동자계급이 저들에게 베풀 수 있는, 그리고 베풀어야만 하는 coup de grace(온정의 일격)일 것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