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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기타 >
제목 회원마당 : 독자편지
글쓴이 이병진, 최상철 E-mail send mail 번호 425
날짜 2011-11-17 조회수 2285 추천수 115
파일  1321461286_이병진 최상철 편지.hwp

  






























이병진 최상철 편지





    















가을의 밤이 깊어갑니다. 갇힌자의 억눌림을 곱씹으며 가을 밤을 보냅니다.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고 계시죠? ≪정세와 노동≫ 9월호를 받지 못했어요.1) 어디 아프거나 하진 않으시죠?





지난 달에 한상렬 목사님의 부인이신 이강실 목사님이 오셨어요. 갑자기 그날 아침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도 이강실 목사님께서는 제가 실망할까봐 면회를 오셨습니다. 그런 사실을 지난 주에 알았습니다. 이강실 목사님은 한상렬 목사님께서 저와 가족들의 걱정을 많이 하신다는 인사 말씀도 전해 주셨지요. 민족 분단의 상처를 가슴아파하시며 “한몸평화 통일평화”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두 분 목사님의 깊은 사랑을 최상철 동지와 나누고 싶습니다.





대전교도소에 계시는 장민호 선생님과 편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소식 들으셨겠지만 부당한 징벌에 대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교도소장이 서면으로 사과를 하겠답니다. 불의를 보면 타협하지 않으시는 장민호 선생님께 지지와 연대의 인사를 드렸는데 “고맙다”는 답을 보내주시네요. 장민호 선생님은 “분단시대에 태어나 조국통일의 큰 길에서 만났으니 귀중한 인연”이라며 소중한 만남의 의의를 말씀하였습니다.





전주 고백교회의 심병훈 집사님께서 인터넷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저와 최상철 동지와의 편지 대화를 모두 읽으셨답니다. 감동적이었고 위로를 받으셨답니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어둠의 세력 앞에 절망하고 있을 때 한결 같이 지지와 용기를 갖게 해준 최상철 동지와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동지들이 만들어낸 감동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병훈 집사님께서는 전북지역의 통일원로(장기수) 선생님들과 교류하면서 지역의 진보활동에 관심갖고 계신 분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앞으로 저에 관한 약력, 사상, 글, 사진 등을 모아서 홍보자료를 만들고 전주 지역의 통일운동 단체와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하십니다.





최상철 동지! 동지의 신념과 믿음이 이와 같은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 감옥에 왔을 때는 너무나 감옥의 벽이 높아 절망에 빠졌답니다. 그러나 진실의 힘이 철옹성 같은 저 높은 감옥의 벽을 부수었습니다. 밖에서 동지들이 외치는 연대와 지지의 함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 동지께서 지적하셨지요. “(우리는)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모두 함께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이렇게 한 걸음씩 전진하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최 동지! 오늘은 난생 처음 딸아이와 똑같은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의 편지를 받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마치 제 딸아이에게서 받는 편지 같았습니다. “노란 은행잎의 가을 편지를 드립니다.”로 시작하는 편지글은 노란색 색종이에 또박또박 정성스러운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편지 내용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이 땅에는 양심수가 있어 교도소에서 고생하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저는 아빠를 알게 된 후 감옥과 양심수가 어떤 곳이고 무엇을 했던 분인가를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이병진 선생님! 아직도 6년이란 시간을 견뎌내야 우리가 사는 사회로 오실 수 있다니 너무해요. 하지만 그 기한을 다 채우실라구요. 시절이 좋아 그 전에 뵙게 될 것을 믿습니다. 가을 편지 은행잎에 띄워드립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읽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 주었던 만경대 학생 소년 궁전 어린이들이나 오늘 저에게 편지를 보내준 어린이들은 제 딸이고 아들입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어깨동무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너무나 간절하고 절실합니다.





최 동지! 우리는 너무나 북녘의 동포들을 잘못 알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을 직접 만나면 오랜 기간 미국으로부터의 전쟁위협과 공포로 힘들게 살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그러면서도 근면하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포이고 이웃, 같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보수 지배세력은 대한민국체제를 위협하는 불온한 사람으로 낙인찍어 “간첩” 딱지를 붙이고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게 아닙니다.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아들, 딸을 볼 때마다,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야겠다, 힘을 내자, 용기 갖자라고 수십 번 다짐합니다.





조만간 6자 회담을 위한 제2차 북미회담이 예견됩니다. 미국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공고화하기 위한 “억지(deterrence)” 전략으로 접근하려 할 것이고 이북은 구걸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올 것입니다. 북미회담의 전망을 예측하기란 어렵습니다만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현재 미국의 군사력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선, 아프가니스탄-알카에다-소말리아 전선, 이북-이란 전선으로 넓게 전개되어 어느 한 곳에서 직접적인 군사작전을 벌이기에는 무리입니다. 세계경제 위기와 맞물린 미국 경제의 침체도 미국의 군사작전 전략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걱정하는 점은 미국 패권 전략의 중심축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되면서 한·미 군사동맹이 전술적 차원이 아니라 전략적 차원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중국, 러시아, 일본, 이북 관계가 복잡하고 첨예해질 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1차 대전 직전의 발칸반도처럼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간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민감한 시기에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를 폭파시킨 일은 성급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파장은 매우 거셀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 동지. 마음은 무겁지만 감옥에서 빨리 나오라는 저 밝고 순수한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포기하면 안되겠지요! 우리 더욱 힘내요.










사랑하는 나의 동지 최상철을 생각하며 전주교도소에서





이병진 올림





2011. 10. 10.















최상철 동지가 직접 면회를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편지로만 만났는데 직접 얼굴을 보니 너무 감격스럽군요. 면회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만나서 많이 기쁘고 반갑습니다. 깊이 사색하는 최상철 동지의 글에서 삶의 연륜(年輪)을 느꼈는데 무척 젊어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온화하고 편안한 모습의 최 동지가 인상에 남습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채만수 소장님, 권정기 편집출판위원장님, 문영찬, 강성윤, 김해인, 손미아, 임덕영, 전성식 편집위원님께도 고마움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장소변경접견으로 최상철 동지와 만날 수 있었던 데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지지와 연대의 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동지들께 경의(敬意)를 표합니다.





보내주신 책은 지난 주에 잘 받았습니다. B. R. 톰린스가 쓰고 이옥순 교수가 옮긴 ≪인도경제사-탈식민지의 경제학≫ 그리고 E.M.S. 남부디리파드가 쓰고 정호영님이 옮긴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 그리고 대외 경제 연구원에서 발간한 ≪인도의 대외 경제정책과 한·인도 경제협력 강화방안≫입니다. 정호영님이 번역하신 책은 제가 번역하고 있는 ≪인도독립운동사≫의 저자 E.M.S. 남부디리파드의 책입니다. 번역에 많은 참고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정호영님께서 책의 서문에 “≪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월간지 ≪정세와 노동≫에 연재되고 있다”고 친절하게 소개해 주셨답니다. 정호영님의 관심에 고맙고 그만큼 번역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인도공산당(맑스주의)에서 발행하는 잡지 the Marxist도 잘 도착했습니다. 잡지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귀한 자료들을 선뜻 보내주시다니 …… 연구소의 소중한 자산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목차 색인을 만들고 살펴보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즐거웠습니다. 잡지의 창간호(1983년)부터 2010년도까지 발행된 방대한 분량과 긴 기간의 자료들입니다. 쏘비에뜨 공화국연방(USSR)이 해체되기 전후에 긴박하게 돌아갔던 인도의 국내정세와 국제정세 그리고 인도 맑스주의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있는 소중한 자료들입니다. 인도 정치사를 깊이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인도 정치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인도 관련 저널들과 1차 자료를 받아 볼 수 있을지 누가 상상이나 해보았겠습니까. 불과 십여년전의 감옥에서는 집필이 불가능하였답니다. 서신은 검열을 받은 후 제한적으로만 허용되었습니다. 우리의 민주화 투사들이 그런 것들과 맞서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하였기 때문에 그 성과로 제가 이런 혜택을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부당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고 싸워나가서 후배님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감옥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학술연구에 집중하는 일이 저의 투쟁 방법입니다.





오늘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된 북-미 고위급 2차 회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국가보안법 위반의 “간첩” 혐의로 감옥에 온 근본적인 이유는 북-미 관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의 주시하며 회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북-미 회담의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미국이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회담에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이북이 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개한 조건에서 미국이 이북의 핵시설을 통제하지 못하면 미국의 패권전략이 크게 위협받기 때문에 어떤식으로든 이북과의 협상을 진전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반면에 이북은 신흥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의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으며 공세적인 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그런 조짐을 포착한 일본 정부는 신임 수상이 제일 먼저 한국에 찾아와 한일 간 북핵 공조를 다짐하고 확인하였습니다. 이는 일본 정부의 기득권 세력들이 매우 딱한 입장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점점 외톨이가 될까봐 초조해합니다.





최동지! 우리는 왜 미국이 이북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핵무기가 전략 무기로써 힘을 발휘하려면 임의의 시점에 핵분열을 일으키는 기술과 그것을 전달하는 운반 기술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라늄을 농축하여 쉽게 핵분열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때 핵분열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것과 같은 폭발력을 일으키는 기폭장치가 필요한데,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농축 우라늄 뿐만이 아니라 수준높은 기폭기술도 갖고 있다는 뜻이지요. 또한 핵융합 기술은 핵분열을 일으켜 그 순간 발생하는 높은 온도와 압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핵물질을 기폭장치로 이용한다면 핵융합 실험도 가능하지요. 바로 그점이 핵실험을 금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북은 2009년 5월 25일 제 2차 핵실험을 실시하였으며 2010년 5월 12일에는 자체 기술로 핵융합 반응에 성공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정창현, ≪민족21≫, 2011년 9월호, 62쪽) 만약 이북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북의 핵기술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핵무기가 전략적 차원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그것을 목표지점에 정확히 운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미사일 기술이 이용됩니다. 특히 대륙간 탄도 미사일은 발사체를 대기권 밖으로 수직으로 쏘아 올려서 자유낙하 방식으로 목표지점을 타격합니다. 그래서 미사일 기술은 인공위성 기술과 우주항공기술 같은 최첨단 기술이 필요합니다. 결국 핵무기와 미사일은 최첨단 과학기술과 장비 그리고 인력과 자제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미국은 군사적 이유로 핵실험과 미사일 기술을 통제하지만 그 이면으로, 최첨단 과학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국, 러시아, 인도 같은 국가들은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최첨단 과학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이라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그리고 인공위성 발사 시험을 하려는 입장이고 미국은 그것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북이 미국의 압박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니까 미국이 제제를 하는 것이지요. 중국, 러시아, 인도 입장에서는 이북의 그런 태도가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최근 인도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주민보≫ 이창기 기자의 보도에 의하면(“심상치 않은 북-인도 관계강화 움직임” 2011년 9월 16일, http://jajuminbo.net 2011년 9월 17일 검색) 인도 정부는 100만 달러 상당의 콩과 밀을 이북에 지원하였다고 7월 7일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9월 13일에는 인도 외무성 동아시아 담당비서인 싼 제이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인도 정부의 선물을 박의춘 외무상에게 전달했다고 조선중앙 텔레비전이 보도하였습니다. 또한 인도 정부의 수상인 맘모한 싱(Manmohan Singh)은 10월 말에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에서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the Commonwealth heads of government)에 불참하기로 하였습니다. (Sashi Tharoor, The Korea Herald, October 15-16, 2011. page 7) 이유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인도에 우라늄 판매를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인도가 발끈한 것입니다. 조금 생뚱맞아 보이는 인도의 태도에서 미묘한 변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도의 행보를 의미깊게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와 미국은 핵협정을 맺었지만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하고 핵확산 금지조약(NPT) 가입을 거부하는 인도를 못마땅하고 불편해합니다. 이에 대한 인도 정부의 공식입장은 이렇습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국제 체제의 아파르트헤이트의 마지막 자취이다. 5개 국가들(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에게는 핵무기를 가질 권리를 부여하면서 다른 국가들이 그것을 가질 권리는 부정한다. 만약 핵무기가 악마라면 ―인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고― 그 누구도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 누구는 핵무기를 갖고 누구는 핵무기를 갖지 못한다는 도덕적, 윤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민주적인 인도에는 결핍되어 있고 “공식적으로” 핵무기들을 보유한 국가들에게만 있는 덕(virtue)이란 무엇인가?2)










“the NPT is the last vestige of apartheid in the international system, granting as it does to five countries the right to be nuclear-weapons states while denying the same right to others. If nuclear weapons are evil ― and India agrees with Australia that they are ― then no one should have them. What is the moral, ethical, or legal basis for suggesting that some can and others cannot? What virtue do the “official” nuclear powers possess that democratic India lacks?”(Shashi Tharoor, The Korea Herald, “India's civilian nuclear program”, October 15-16, 2011.)










다각도에서 핵개발을 추구하려는 인도 정부는 러시아 정부와 대규모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미 프랑스 정부와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데도 타밀나두(Tamil Nadu)에 대규모 핵발전소를 짓기 위해 코단쿠람 프로젝트(Koodankulam project)를 밀어붙여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Unclear over Nuclear”, 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October 1. 2011. p. 8)





이와 같은 핵무기와 관련해서 인도와 미국 사이의 미묘한 긴장관계는 북-미 핵협상에서 인도가 이북을 측면 지원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인도 나름의 국제정치무대에서의 정치적 포석을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북과 미국 두 나라가 협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여러 국가들이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북-미 회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다만 동북아 정세가 전쟁과 같은 파괴적인 방법이 아닌 평화가 담보되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2006년 미국 안보전략(The US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2006)에 따르면 미국의 전략 목표는 “전체주의 척결(ending tyranny)”이며 독재국가로 이북, 이란, 시리아, 쿠바, 벨라루시, 버마, 짐바브웨를 지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하였습니다. 5년이 지난 현재의 관점에서 군사력에 의한 미국의 정권교체 시도는 성공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국제적인 긴장을 고조시켰을 뿐입니다. 오히려 천문학적인 군사비지출로 미국의 경제는 늪에 빠졌지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위기에 처한 미국의 경제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하려고 할 수도 있겠지만 2차 세계 대전 때처럼 미국만은 안전할 것이라는 것은 대단한 오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없는 작은 나라들에게 전쟁을 강제하는 것은 약소민족들에게 고통을 강제하는 날강도 같은 짓이며 미국도 불행해지는 일입니다. 이런 긴박한 정세 속에서 한국의 보수 지배세력들은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지배 보수세력들은 과거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하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러시아에 붙었다, 일본에 붙었다, 청나라에 붙었다 갈팡질팡 하다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그리고 그 앞전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온 국토가 짓밟히고 나라까지 빼앗겨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역사적 교훈을 똑똑히 되새기어 분별력있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모아야지 외세에 빌붙어 기득권을 유지하려 고민해서는 모두가 불행해지고 외세의 노리개가 될 뿐입니다.





최근 서울의 대형교회의 목사라는 사람이 특정 서울시장 후보를 염두에 두고 “사탄”이라며 설교시간에 떠벌렸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똥오줌도 못가리는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의 존엄을 스스로 짓밟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일부 정치인은 색깔논쟁, 사상검증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데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2차 북미고위급 회담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밤이 깊었어요. 최상철 동지께서 보내주신 편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나누어야겠습니다. 북미 회담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주의 가치와 정의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리겠습니다. 최상철 동지.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고 잘 지내세요.










이병진 올림. 2011. 10. 26. 새벽에















10월 20일에 뵈었던 잠시나마 뵐 수 있었던 동지의 얼굴이 아직도 눈가에 남아 있습니다. 감옥 생활 중에도 환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신 또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신 동지의 모습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석방추진모임이 결성되고 나서 너무나 늦게 공식적인 첫 면회를 하게 된 것이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앞으로는 나머지 절반을 채워나가기 위해 전진하면 될 것입니다. 당일 전주 지역의 원로 선배님들과 면회를 같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또 동지가 발을 딛고 있는 전주지역의 동지들께서 석방추진모임과 함께 하려는 의사를 직접 확인하게 된 것도 기뻤습니다.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만나게 되는 동지들 중에 편지를 잘 읽고 있다고 또 이병진 동지가 어떤 분이냐고 물어오는 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동지에 대해서 알게 되는 분들이 늘어날수록 분명히 실질적인 전환이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고백교회 심병훈 동지께서 편지를 빠짐없이 다 읽었다는 좋은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쓴 편지에 부끄러운 부분도 있는데 하는 심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전주 시내에 한미 FTA 반대 플래카드가 주요한 길목마다 배치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고백교회에서 내건 플래카드를 반갑게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극우세력의 플래카드를 보지 못했는데 전주의 운동이 상당히 잘 조직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지 덕분에 오랜 만에 서울권을 벗어났습니다. 면회를 함께 했던 날엔 날씨도 화창하고 함께 했던 동지들은 차안에서 휴게소에서 다소 비싸게 파는 충무 김밥에 호도 과자를 먹으며 가을 소풍 가는 기분이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동했습니다. 대중교통이 아닌 차량으로 전주교도소에 가는 것은 처음이라 정확한 위치를 찾느라 약간의 헤매임이 있었습니다. 전주교도소에서 복역하셨던 이기호 동지에게 살았던 집을 못찾는다고 농이 섞인 타박을 주는 모습도 잔재미였습니다. 저는 편하게 갔지만 운전을 하시느라 김혁 동지, 장창원 동지가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또 면회 관련 실무를 준비하고 차량을 준비해 주신 <구속노동자후원회> 동지들이 여러모로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면회를 마치고나서 전주동지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 이후에 저는 먼저 광주로 향했습니다. 전주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광주에서 삼성규탄 전국순회투쟁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정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밤에 도착해서 간단히 상황에 대해서 공유를 했고 10월 21일 이른 아침 광주삼성전자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함께 하였습니다. 1인 시위를 방해하는 삼성자본과 광주 지역 경찰들의 치졸한 행각에도 피켓 시위는 굴하지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광주 공장에서는 이런 것이 거의 없었던 모양인지 피켓 시위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관리자들이 제지하려 하는 데도 다가와서 피켓 내용을 유심히 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광주 공장 노동자들도 변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광주는 거의 20년 만에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릴적 기억에 남아 있는 광주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김성환 동지도 이병진 동지에 대해 물어보시며 관심을 보여 왔다는 것을 전합니다. 





석방추진모임에서 앞으로 되도록 한 달에 한 번은 면회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울 경기에 있는 동지들이 못가면 전주 지역의 동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줄 것입니다. 많이 외로우시겠지만 그 외로움을 덜어드릴 동지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11월 10일에 양심수 후원회에서 면회를 갈 예정입니다. 지난 10월 면회에 함께 하지 못했기에 이번에 꼭 면회를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전주지역 동지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면회 때 지난번에 동지께서 아직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하신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낼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것은 숨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당당하게 꺼내놓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 세상이 간첩으로 만들어버린 동지의 사건을 보다 객관적으로 진실하게 조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왕재산 사건 관련자 동지들은 수사관들이 단식 투쟁 중에 피자를 시켜 냄새를 풍겼다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바깥에 알려왔습니다. 동지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보다 당당하게 공세적으로 싸우실 수 있길 바랍니다.





면회 때 교도소 측의 처우에 대해서 물어본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하면서 큰 문제가 없다고 하시는 동지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지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동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싸우실 수 있길 바랍니다.





한총련 간부였고 19개월 된 딸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김은혜 동지가 10월 14일 3년 6월의 실형을 받아 법정구속된 것에 또 다시 분노하게 됩니다. 김은혜 동지를 위한 대책모임이 꾸려지고 있고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동지에게 자행되고 있는 정권의 폭압성은 비단 동지 한 사람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11월 4일 국가보안법 긴급 대응모임 회의 결과를 편지에 별첨합니다.





한 무더기로 보냈던 the Marxist가 무사히 도착했음을 확인하면서 30권 제한 규정을 전주교도소 측에서 (어쩔 수 없이) 유연하게 적용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정세와 노동≫ 10월호를 보내면서 CPI(M)의 당대회 자료집 구한 것 중에 최근 것 3권을 보냈는데 그것도 무사히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동지의 논문 집필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어느 정도 논문 집필이 마무리되셨다면 초고상태라도 글을 바깥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지께서 혼자 하시기 힘든 부분은 바깥의 동지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지께 편지를 보내준 초등학교 어린이를 보면서 어떻게 그런 시적인 감수성을 듬뿍 담은 편지를 쓸 수 있었는지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읽은 이후 서정시는 버려야 할 낡은 양식이라고만 생각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조금 달리 생각하게 되었는데 소녀와 꽃을 되풀이하며 노래하는 낡은 시나 “술 읽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로 일제시대의 현실적인 농촌이 아니라 관념에 존재하는 낭만적 풍경을 미화시켜 표현한 시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서정시에도 치열한 시대 의식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는데 동지에게 편지를 보낸 어린이가 제게 다시 한 번 가르침을 줍니다. 장차 큰 일을 하게 될 어린 동지같습니다. 윤동주라는 인물은 한계가 많은 이입니다만 그 시가 일본인들에게 반향을 일으켜 일본 제국주의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평화시대를 갈망하는 모임이 조직되는 것을 보며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서정시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성과 과학이 함께 만나는 서정시가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그러한 혁명 시인이 앞으로 수없이 등장할 수 있길 바랍니다.





동지의 편지는 핵문제를 둘러싼 대결을 북미 간의 양자의 축에서만 보는 데 갇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감옥에서 해내신 동지의 분석이 감옥 밖의 많은 이들에게도 시야를 넓히는 데 크나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약간 첨언을 하자면 아마도 한국이 거듭된 실패에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는 인공위성 나로호도 군사적인 목적과 연계가 있으리라고 추정해 봅니다.





현시기 민족적 단결에 기초하여 외세의 지배와 침략에 맞서야 한다는 동지의 의견은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 침략에 시름해왔고 현재까지도 이 땅에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강하게 규정하고 있기에 분명히 유의미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족모순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견지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서 보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남도 북도 조국이 아닙니다. 저는 해방된 강산에 건설된 새 노동자국가에 대해서 레닌이 ‘사회주의 조국’이라 불렀던 것처럼 내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녘의 인민에 대해서도 따뜻한 애정을 보이고 있는 동지에게 공감하면서도 황석영이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 식의 휴머니즘을 넘어서기 위해 실제 사실과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드러내는 데 일체의 족쇄가 없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요구를 걸고 힘껏 싸워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해서 기대를 갖고 계신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약간의 시각차가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나라당 나경원이 패배하며 변화를 바라는 이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원순의 당선은 노동자와 인민의 승리가 아닙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의 집권 이후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인권에서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 감옥에 계신 동지께서는 이러한 부분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지께서 지적한 바대로 이들의 집권 이전에 수많은 투사들이 피흘리며 싸워왔던 결과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김대중-노무현을 당선시켰던 이들 중 상당수가 왜 2007년에 이명박을 지지했었을까 하는가에 문제의식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IMF 이후 정리해고를 도입하면서도 노사정위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기만책을 썼던 김대중 정권에 대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합리적인 외피를 쓰고 노동자 민중을 교묘하게 탄압하며 한나라당과 대연정이라도 펼치겠다던 노무현 정권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표출된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보며 남아메리카 수많은 국가에서 이른바 시소놀이와 같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들과 맥락이 같다고 봅니다. 극우적인 인민주의(populism)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인민주의 중에 어느 쪽이 대중에 보다 영합하느냐에 따라 정권을 잡는 세력이 누가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영미 등 선진 의회주의 국가에서 보이는 양당제는 보다 발전된 형태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한국의 진보세력의 자리가 의회 내의 개혁적인 세력의 한 분파로 자리매김하는 데 그치려 하는 움직임이 그래서 그토록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대연합에 반대하는 연구소 활동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유주의자들보다 진보적이라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도했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 나치가 등장했던 것을 상기할 때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당선은 일시적인 승리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더욱 큰 패배일 수 있음을 되새겨야 합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더욱이 박원순은 삼성 등 거대 독점자본 세력의 위력에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저들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한 이입니다. 5%밖에 안 되던 박원순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것은 안철수라는 인물의 후광 때문인데 그는 합리적인 자본주의라는 포장에 적합한 인물로 그나마 자유주의를 위해 싸워왔던 김대중-노무현과 같은 투쟁의 경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시장 박원순의 당선에 들떠있는 진보진영 일각에 대해 대단히 못마땅하며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운동의 성과를 전부다 부르주아 중의 합리적 분파에 내주는 것에 대해 인식이 없이 2012년 총선·대선 승리를 외치는 이들을 우경 기회주의라고 규정합니다. 친미주의사대주의자로 규정했던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에 대해서 왜 그렇게 짝사랑을 버리지 못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을 없앨 능력도 없는 세력에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은 소수이고 미약하더라도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주체들을 규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정세와 동북아정세가 규정하는 무게 그리고 갇혀 있는 동지의 상태는 마치 폭풍우에 풍랑의 위협를 받고 있는 조각배에 탑승한 것과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그 절박한 심정을 기도로 이겨내려는 모습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신론자인 저는 기도를 하는 것보다 살아남기 위해 한 순간이라도 최선을 다해 노를 저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다시 뵙게 될 때까지 동지의 조각배가 무사히 항해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저번에 보낸 신동엽의 시는 동지에게 별로 공감을 얻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어떨까요?














신동엽










  나는 나를 죽였다.





  비 오는 날 새벽 솜바지 저고리를 입힌 채 나는





  나의 학대받는 육신을 강가에로 내몰았다.





  솜옷이 궂은비에 배어





  가랭이 사이로 물이 흐르도록 육신은





  비겁하게 항복을 하지 않았다.





  물팡개치는 홍수 속으로 물귀신 같은





  몸뚱이를 몰아쳐 넣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거대한 산맥 같은





  휩쓸려 그제사 그대로 물넝울처럼 물결에





  쓰러져 버리더라 둥둥 떠내려 가는 시체 물 속에





  주먹 같은 빗발이 학살처럼





  등허리를 까뭉갠다. 이제 통쾌하게





  뉘우침은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너무 얌전하게 나는 나를 죽였다.





  가느다란 모가지를 심줄만 남은 두 손으로





  꽉 졸라맸더니 개구리처럼 삐걱 ! 소리를 내며





  혀를 묻어 내놓더라.





  강물은 통쾌하게 사람을 죽였다.










원출처: ≪창작과 비평≫, 1970년 봄호





재출처: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작과 비평사, 1979. pp. 134-135.





(시집의 표지 작업은 제가 말씀드렸던 화가 오윤이 했습니다. 한 권 더 구하게 되면 동지께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노사과연>











1) ≪정세와 노동≫ 9월호는 발행된지 며칠 후 이병진 동지에게 다른 책과 함께 택배로 발송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10월 20일 면회에서 책을 다 잘 받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전주교도소 측에서 늑장 전달해서 발생한 일로 보인다.





2) 이병진 번역을 편지를 타자로 옮긴 최상철이 교정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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