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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기타 >
제목 독자편지
글쓴이 김수남, 이병진, 최상철 E-mail send mail 번호 419
날짜 2011-10-24 조회수 2378 추천수 84
파일  1319387649_편지.hwp

  

























회원마당 : 독자편지





김수남 동지의 편지




















환절기에 채소장님 건강하신지요. 가내 균안하시고 ≪정세와 노동≫ 성원 모두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생(小生) 김수남 작일(昨日)(9月 22日 11시) 형사고 법정 303실에서 1심대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5년 확정되었습니다. 대법 항고는 포기할까 합니다. 정치적 재판 항고가 무의미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채소장님께서 잊지 않고 늘 배려해주신 데 감사합니다.





9月 16. 14시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철거 기자회견문을 별첨하오니 두서 없는 글이지만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을 보아 한번 뵙겠습니다.










201. 9. 23





김수남(金壽南) 배(拜)










이병진 최상철 편지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추석 휴일 동안에 ≪노동사회과학≫에 기고할 글을 완성하려고 하였는데 아직 끝내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서둘러 보내드리겠습니다. 논문은 “인도에서의 무장게릴라 투쟁 ―짜띠스가르(Chhattisgarh) 주(State) 사례―”입니다. 지금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일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무엇인지 기술하려 합니다. 준비하고 계신 ≪노동사회과학≫ 5호 기획의도에 부담을 드릴까봐 걱정입니다. 논문이 완성되면 곧 이어 ≪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 번역도 재개하려 합니다. 논문을 쓰면서 가능할까 스스로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자료의 제한을 걱정했는데 주어진 자료들을 여러번 자꾸 읽어보니 인도의 상황이 생생히 잡히면서 자신감도 생깁니다. 빨리 완성본을 최 동지께 보여드리고 최 동지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내일은 이강실 목사님께서 면회 올 예정입니다. 이강실 목사님께서 한상렬 목사님의 법정진술서를 책으로 만든 ≪한몸평화 통일평화≫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책을 감명 깊게 읽고 감사의 편지를 드렸는데 직접 찾아와 주신다니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한상렬 목사님의 북녘 조국 순례 이야기를 보면서 저의 북녘 방문의 의미와 기억들을 생생히 떠올렸답니다. 최 동지와 그때의 경험들과 일들을 공유하고 싶은데 최근에 공안 정국의 칼바람이 난무하기 때문에 위축이 되는군요.





한상렬 목사님께서 법정의 모두 진술서에서 “사랑하는 남녘 동포 여러분들이 꼭 이해해야 할 일은 북녘은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장 절절하게 평화를 희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저 역시 직접 북녘에 가서 북의 동포들을 만났을 때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우리가 북의 동포들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방문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저의 학문적 밑바탕에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포위된 우리 사회의 왜곡되고 편향된 의식과 인식틀을 바르게 되돌리려는 문제의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감옥에 잡혀와서 많이 흔들렸는데 최 동지를 통해서 많이 성찰하였고,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깨우치면서 확고하고 단단한 신념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논문 집필에 집중하느라 오늘은 짧게 편지를 드립니다. 논문 완성 소식과 함께 곧 편지 드리겠습니다.










이병진 올림





2011년 9월 13일















동지 최상철에게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산을 쓰고 비오는 거리를 마음껏 걷고 싶습니다. 사방이 감시와 통제이고 막혀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밖을 볼 수 있는 창문까지 방충망으로 막힌 감옥에서 ‘우적 우적’ 애리는 빗방울 소리가 제 마음처럼 처량합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드리네요. 잠시 제 자신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전쟁터 같은 초긴장 된 감옥 생활에서 수치심에 짓눌리고 자존심까지 짓밟히는 데도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점점 폭력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무척 괴롭습니다.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더군요. 많은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야수와 같은 폭력과 기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박탈되어가는데 삶에 희망이 있는 것일까?





이제는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희미해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의미조차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통제받는 대상으로 폭력에 길들여져 벌거벗겨져 살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인간인 줄 알고 착각하였구나. 우아하게 또는 지성인처럼 문명을 생각했어요. 이제 그런 미련을 모두 떠나 보냅니다.





은폐된 폭력은 감옥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국민은 수년 동안 재판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왔다.” (≪주간조선≫, 2069호 2011년 8월 15일 “선거판에 ‘전쟁 공포의 추억을 살려내라!”)





 





이 글을 쓴 조성관 편집위원은 상식과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국정원, 검찰, 경찰이 국가보안법의 칼날로 선량한 시민들을 얼마나 잡아들이고 있습니까. 남과 북이 화해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받지 않고 소외받지 않고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시대의 요구와 흐름을 왜곡하고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역행시키려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역사 앞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길길이 날뛰는 저들이 불쌍합니다. 그들의 폭력에 치가 떨립니다.





지금 왕재산 사건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과 가족들은 너무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용기가 없어 타협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무척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왕재산 사건 재판으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재판에서 꼭 진실이 승리하길 온힘 다해 바랍니다. 그분들께 지지와 연대의 뜻을 보냅니다.





부산의 정창화 동지께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부산지회를 몇몇 동지분들이 힘들게 만들었다는 소식 듣고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제일호 동지의 시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정창화 동지와 제일 친한 동지라며 자랑도 하시네요. 두 분의 동지애가 이곳까지 느껴집니다. 제일호 동지의 시가 제 심경을 너무나 똑같이 묘사하는 것 같아서 깊이 감동을 받습니다. 최 동지와 그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일호 동지께 허락을 받지 않아서 죄송한데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겠죠? (제일호 동지! 동지의 허락없이 시를 소개해도 용서해 주실거죠?)





오늘은 시와 함께 인사를 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1년 9월 29일















게바라를 위한 노래





제일호















철새는 날아 가버린





볼리비아 어느 시골





두발의 총성 속에 사라져간





레닌의 후예여.










평범한 의사의 삶도,





쿠바의 장관직도 버리고,





사랑도 명예도 모두 버리고





자본과 제국주의와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살다간





고독한 전사여.










안데스 산맥 깊은 곳.





인디오들의 눈물과 함께 묻혀 버린,





베트남, 쿠바에서 부활한





이십세기의 예수여.










고통과 상념 속에서도





늘 민중의 곁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실천하는 혁명가의 삶을 살다간





전 세계 민중의 눈물이여.










다시 피어나라.





민중의 가슴속에서





처절한 피 빛의 진달래로.










다시 부활하라.





착취와 억압의 그늘 속에서





혁명의 낫과 망치로.

























최상철 동지 안녕하세요





가을이 깊이 물들고 있습니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거리를 자유롭게 걷고 싶군요. 오늘은 남북관계 이야기를 드립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이북의 음악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지요. 예술도 삶을 반영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기준과 가치도 사회의 문화와 시대에 따라서 많이 다릅니다. 이북의 예술은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신뢰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개인의 기량이나 기교에 치중합니다. 이북에서는 “군중예술”이랄까요. 집단적 창작에서 감동을 줍니다.





남과 북의 문화 예술 교류가 많아지면 서로가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민족의 순수성은 북쪽이 더 잘 보존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북의 대해서 가난하고 굶주림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곳으로만 생각합니다. 막상 그곳에 가보면 그곳도 사람들이 사는 땅이고 정겨운 이웃들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활양식과 문화수준이 대단히 높습니다.





저는 평양에 머무는 동안 이북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소박한 삶을 보고 같은 동포라는 동질감을 많이 느꼈답니다. 창광 유치원에 갔는데 어린 아이들이 나를 보고 울길래 물어봤더니 ‘서울’이라는 말을 듣고 기겁을 하며 운 것입니다. 남쪽에서 이북 사람들의 머리에는 뿔이 났다고 가르치듯이, 이북 아이들은 ‘서울’ 사람들에게 잡히면 잡아먹히는 줄 알고 있는데 정말로 서울 사람을 보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유치원 선생의 도움으로 실내운동장에서 같이 뛰어 놀고 하면서 조금씩 친해졌답니다.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과 음악소조 공연을 보았습니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민족 분단의 상처와 서러움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왔지만 마음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징역생활이 안정되면 자서전을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북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저는 남한의 수구 보수 세력이 이북에 대해서 굉장한 콤플렉스 또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한반도의 정세를 고정불변하는 것으로 봅니다. 동북아의 정세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데도 눈뜬 장님입니다. 현재의 기득권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변화하는 것입니다. 청춘이 좋다고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나이가 드는 것을 막을 순 없습니다. 죽음은 필연입니다.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매순간 최선을 다했을 때 오히려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정신은 더 맑고 순결해집니다. 그런 분들에게서는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세월의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 그들은 외과적 수술로 자신을 젊어 보이게 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뿐입니다. 그들은 더 큰 공허감과 소외감에 빠집니다. 물질적 욕망과 쾌락을 맛본 사람은 그것 때문에 변화를 거부하고 집착하고 그것을 고정시키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그 기득권을 위해서 남을 짓밟고 폭력도 서슴없이 사용합니다. 물리적 힘은 일시적으로 변화의 흐름을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현상을 보고 계속해서 변화를 거부하다 비참한 파국을 맞습니다. 남한의 수구보수 세력은 이와같은 정신적 문맹에서 빨리 깨어나길 바랍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 3천” 전략은 한반도의 정세를 1990년대에 고정하였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중년의 나이를 먹은 사람이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왜 그랬을까 궁금합니다. 냉전 수구세력들이 정치적 기반을 회복하려는 정치적 의도인지, 아니면 상황인식의 오류에 의한 전략적 실패인지는 현재로써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의 파장은 엄창나게 휘몰아 칠 것입니다.





이미 그 징후가 보입니다. ≪한계레≫ 신문 10월 1일자 기사에 의하면 지난 9월 21일 베이징에서 열린 2차 남북 비핵화 회담에서 ‘북이 남에 핵연료봉을 사줄 수 있나 타진’하였답니다. 이 보도와 관련해서 정부 고위 당국자는 “2차 회담에서 북한이 구체적으로 비핵화 사전조처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요구한 것은 없었다”(≪한계레≫ 10월 3일)고 하였습니다. 다만 ‘그랜드 바겐(일괄타결안)에 대해 세부적인 질문을 해, 양측 간에 논의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깊은 내용은 알 수 없지만 6자 회담이 열리면 경제 보상의 상당부분을 맡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북은 분명히 농축우라늄 시설과 그곳에서 재처리한 핵물질의 보상을 요구할 것입니다. 협상이 지체되면 핵물질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전략적으로 남한이 이북과 미국의 협상을 지켜보았으면 오히려 미국이 몸이 닳았을 텐데, ‘통미봉남’을 막겠다는 남한의 전략으로 남한이 북·미관계에 어설프게 개입되면서 경제적 보상의 의무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 사전조치”를 요구하고 있고 이북은 비핵화 사전조치를 할 테니 사가라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오바마 대통령이라면 남측이 비핵화 사전조치를 풀지 않으면 북-미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정치적 압력을 가하겠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도 그리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북핵 문제의 매듭을 풀려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6·15 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이행하였다면 농축우라늄 시설에 대한 추가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중국과의 관계도 좋게 유지하여 미국에 대해서 정치적 공간이 넓었을 텐데 지금은 매우 좁아졌습니다. 조선 봉건 지배세력이 그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명나라에 의존하다가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겪었고 그 결과 수십만의 백성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지금 한반도의 정세도 그때처럼 절박합니다. 불안과 혼돈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병진 올림





2011. 10.3















보고 싶은 이병진 동지께.





얼마 전 동생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결혼 안 하고 결혼식에 안 가는 주의자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동생에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동지는 국가의 폭력에 하루하루 힘겨워 하시는데 저는 개인사 문제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니 영 실격인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헤르페스성 각막염에 고생했습니다. 가벼운 눈병이겠거니 했는데 뭔가 심상치 않아서 안과에 가기를 잘했다 싶더군요. 병원가는 것을 미뤘다면 꽤나 고생했었을 것 같습니다.





편지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입장에 더 많은 공유점을 찾아가게 되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간혹 동지의 편지에서 저와 다른 입장을 발견하면 굳이 각을 세워서 하나하나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니 미소마저 짓게 됩니다. 아무래도 편지만으로 동지와 소통해야 하기에 제가 좀 조급했었던 모양입니다. 동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제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해준 동지께 감사드립니다.





동지가 보내주신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감옥에서 그렇게 소탈하고 밝은 미소를 지은 사진을 보내주셨네요. 저라면 그런 표정이 나왔을까요? 저는 사진 찍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긴 합니다. 제가 “사진 찍으면 영혼이 나간다”고 할 때면 주변에서는 유물론자 맞냐고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의사와 무관하게 그 이미지가 이리저리 퍼지고 또 왜곡되는 현실을 보면 아마도 자신의 신체와 그 이미지가 같은 곳에 있기를 바랐을 어느 부족민의 소박한 소망은 타당한 근거를 지니는 표현일 것입니다. (물론 사진에 관해서는 서로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부족민들이 있으며 이에 대해 편견을 갖고 접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더 이상 소박한 공동체에서만 머무를 수 없기에 세상과 부딪쳐야 하며 시련과 상처를 두려워만 해서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겠지요. 극우 세력들이 “간첩” 이병진의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면서 아우성쳐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동지께서 직접 자신의 사진을 보내주셨다는 것은 그만큼 더 강해져 가고 있다는 것의 반증으로 보입니다. 동지의 전진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오늘은 동지께 부끄러운 자기고백을 해야겠습니다. 그동안 자격도 없는 제가 동지의 편지에 이것저것 지적했던 것이 영 마음에 걸리네요. 대학시절에 외부 장학금을 타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탈 수 있다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행운’이었지요. 그런데 그 장학재단이 정수장학회였습니다. 파란기와집 아래 살던 박정희의 ‘정’자와 육영수의 ‘수’를 딴 정수장학회, 419를 짓밟은 516을 ‘기념’하기 위해 516장학회. 대학 1학년 말에 그것을 거부하겠다고 학과 조교 선배에게 당당히 말을 하지 못했던 과거가, 그 장학금을 받았던 결코 떳떳하지 못한 대학시절의 고백을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잘못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니죠. 동지와 더 긴밀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동지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받아 음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시기에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방북한 지휘자 정명훈의 기사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예술적 교류가 증가하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기면서도 대단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진보 언론의 보도에서 그런 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언론 ≪자주민보≫는 저와 정견이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만 다른 매체와 다른 독특한 기사들을 생산하기에 저도 참고로 자주 확인하는 편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언론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9월 17일자 하잠 기자의 기사 “정명훈, 북 오케스트라 수준 굉장히 높아”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평양국립교향악단 연주를 들어봤는데 수준이 기술적으로 볼 때 굉장히 높다”며 “북측 음악가들은 정확하고 실수가 없으며, 옛날 서울시향보다 더 잘 하는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간간이 합법적으로 접할 수 있는 북측의 음악들을 들어보면 기술적으로 대단히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통일교 재단 관련 인터넷 매체로 보이는 ≪통일 방송(구 서평방송)≫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면 그것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핏보면 이 대목에서 정명훈은 예술에 대해서 정치적 편견이 없는 예술가로 비추어집니다. 그러나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저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5년 정명훈이 서울시향 전 단원을 대상으로 실력 없는 단원은 가라는 식으로 오디션을 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명훈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게재한 기사는 대단한 아쉬움을 전합니다. 당시 세종문화회관 노조와 서울시향 단원들이 시청 광장에서 길거리 공연을 해가면서 싸웠던 것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국립오페라 합창단 해체에 맞서 싸우던 단원들에게 보였던 정명훈의 태도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기사의 불철저함은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정명훈은 철저하게 ‘기술적인 수준’이라는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과거 자신의 행태를 합리화하고 있지요. ‘대승적인 차원’에서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철저히 드러내는 것이 계급사회의 변혁언론의 임무라 생각합니다.





동지께서는 평양에 들른 경험을 말씀해주셨는데 금강산도 가보지 못한 제가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이제 외신기자도 상주하게 된 평양의 정보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알려진 편입니다. 제가 특히 궁금한 것은 북측의 농촌 공동체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입니다. 이건 학문적 호기심에서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땅과 동북아를 둘러싼 정세 또 북미 간의 막후 관계 등이 상당히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며 대체적으로 동지의 분석에 공감합니다. 다만 6·15, 10·4 정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첨언을 하고 싶습니다. 현정세에서 6·15, 10·4 선언의 내용이 전쟁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대안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는 또한 아주 낮은 수준의 합의라는 것을, 또한 국내 계급투쟁을 적당한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의도 하에서 타협적으로 나온 산물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시기 남북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과거사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그러나 국내계급 투쟁에 있어 철저하게 반동적인 행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한미FTA를 성공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노무현 정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동자 민중운동을 한다던 이들이, 6·15, 10·4를 말하면서 정권에 투항해갔는지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6·15, 10·4에 대한 우경적인 인식이 서울시장 선거와 야권대통합의 모습으로 다시 전개되고 있는 현실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노동사회과학≫ 기고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완벽하고 꼼꼼하게 다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래도 글 형태가 갖추어졌다면 글을 보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게재하려면 초벌 교정을 보아서 동지께 다시 회신드려야 할 것입니다. 동지께서 감옥에서 발표한 글 두 편을 본다면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석방추진모임 소식입니다.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 석방추진모임> 카페 http://cafe.daum.net/freelbj에 정창화 동지께서 가입하시고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회의 게시판에도 들어가고 싶다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현재 회의 게시판은 대책회의 참여자에게만 공개를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회의 때 논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에 석방추진모임에서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다른 국가보안법 관련 단체들이 사안별로 각개약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독자적인 주제로 간담회를 진행하는 것은 당장에 쉽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국가보안법 긴급대응모임 회의에 참가한 결과 확인할 수 있었던 아쉬운 현실입니다. 당분간은 내실을 다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에 석방추진모임에서는 동지가 외부에 보낸 수많은 서신을 모아 가기로 하였습니다. 동지와 저와 나눈 서신은 일정한 분량이 되면 출판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교환서신을 통해 학자이자 양심수인 이병진의 투쟁을 알려내기 위한 것이죠. 이것과는 별도로 다른 서신들도 모두 모아서 추려낸다면 또 다른 기록물로 의미를 지닐 것 같습니다. 길게 보면서 꾸준히 가는 운동 사업으로도 적당한 것 같습니다. 다만 사적인 것들을 격없이 터놓은 부분에 대해서는 동지와 상의해가면서 적당히 선별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동지의 의향이 궁금합니다.





10월 5일 대책 모임 하루 전에 동생분께서 오산 다솜교회에 들르셨더군요. 전해 듣기로는 여전히 대책모임과 거리를 두시려는 의사에는 변함이 없으시다고 합니다. 그래도 완전히 선을 긋는 것은 아니고 소통의 여지를 남기고 계시다는 것에서 앞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동지의 뜻을 가족들이 당장 따라주지 않더라도 천천히 시일을 갖고 차근차근 신뢰를 주면서 소통해 가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음료수를 남기고 가셨던데 덕분에 저도 잘 마셨습니다. 한 발짝 씩 걸어가야겠죠. 대신에 꾸준히 앞으로 가면 될 것입니다.





감옥에 계시기 때문에 소위 왕재산 사건에 대해 동지의 촉각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과잉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왕재산 사건의 피해자 가족분들을 잠시 뵐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들은 상당히 긴밀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접 발로 뛰면서 언론사 기자들까지 찾아다니는 점에서 배울 것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동지께서는 대단히 아쉬움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응하는 것은 가족대책위에 한정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동지께서 하나씩 뭉쳐지는 힘의 구심이 되어 주십시오.





최근 감옥 인권 후퇴가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병역거부로 구속된 강의석씨의 싸움도 또 양심수 후원회 소식지를 통해 알려진 ‘일심회’ 장민호 동지의 투쟁도 악화되고 있는 감옥 인권현실에 대한 처절한 외침입니다. 동지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번에 보내드린 단행본과 자료를 받았다는 내용이 편지에 없네요. ≪인도 경제사≫와 연구소에서 새로 발간한 최선웅 선생님의 단행본 세 권도 보내드렸고 또 CPI(M)의 이론지 The Marxist를 왕창 보내드렸습니다. 보낸 지가 꽤 되었는데 아직도 못 받으셨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루쉰의 글을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사회과학≫ 5호에 마오쩌둥의 “연안문예강화”에 대해 글을 준비하고 있기에 관련되는 독서이기도 합니다. 양심수 후원회 사무국장님께서 루쉰 산문집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를 주셨는데 덕분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짧은 글들 속에 전편에 넘치는 날카로운 풍자와 치열한 현실 인식 그리고 대 변혁기의 중국사회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동지께도 약간이라도 소개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책에 실린 첫 번째 글 “헛, 허허허허!”(1925)에서 중국의 옛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얻은 잔칫집에 손님들은 저마다 아이에게 ‘부자가 될 것이다’, ‘벼슬을 할 것이다’라는 덕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한 단 한 명의 손님은 죽도록 맞았습니다. “그 말은 이 아이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진실이 때로는 무척이나 불편한 것임을 밝히며 또 진실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시대에 대해서 함께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동지의 냉전 수구세력에 대한 비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루쉰은 또한 여성관에 있어서도 당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히 진보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제가 팀원으로 있는 연구소의 “노동자의 눈으로 문화읽기” 세미나에서 성매매와 이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 토론을 했었는데 그전에 루쉰을 글을 미리 읽었다면 더 풍부하게 토론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여성과 국난(1933)”에서 여성들의 사치와 음탕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 뒤집어 보기를 시도합니다. 그것은 사회 부패와 붕괴의 현상일 뿐 근본 원인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이른바 부풀어진 ‘된장녀’ 논쟁을 기억하면 이미 70년도 전에 루쉰이 이를 정확하게 지적함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매매가 여성의 책임이 아니라 ‘여성을 파는 사회’, ‘그것을 사는 사람’에 있음을 정확히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상류층 남녀들의 방탕을 보면서 ‘노동자들의 세상이 때에 맞추어 올 성 싶은 모양’이라고 예단합니다.





입센의 ≪인형의 집≫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도 루쉰의 탁견이 빛을 발합니다. 엥엘스는 1890년 6월 5일 파울 에른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시대의 입센의 희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부르주아지와 쁘띠부르주아지의 출세지향적인 여성의 다소 신경질적인 밤일(hysterischen Lukubrationen)에 대해 입센이 과연 책임을 져야 하는지, 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전혀 알고 있지 못합니다.” MEW, Bd. 37, s. 411.





여기서 ‘신경질적인 밤일’이란 ≪인형의 집≫ 3막 마지막 부분 밤에 이뤄지는 로라의 가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편지에서 엥엘스는 북유럽 여성운동에 대해 자신이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고 단서를 달고 있지만 엥엘스의 분석은 불충분해보입니다. 반면에 루쉰의 분석은 더욱 구체적이며 핵심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1924년에 발표한 글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을 보고 루쉰의 통찰력에 경외하게 됩니다. 루쉰은 입센이 노라가 집을 나간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결코 해답을 주지 않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죽은 입센은 극작가였을 뿐 사회에 해답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음을 지적하며 입센은 여기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루쉰은 집을 나간 노라에게는 선택지가 두 가지 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지적합니다. 하나는 타락하는 길, 다른 하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성의 독립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필요함을 짧은 글을 통해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 멀리 북구의 여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당대 중국의 여성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를 확장합니다. 그것은 몇몇 여성이 경제권을 얻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정확히 지적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중국 인민의 투쟁의 보편성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는 ‘책상을 하나 옮기거나 난로를 하나 바꾸려 해도 피를 흘리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피를 흘린다고 해도’ ‘꼭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밝힙니다. 그러나 좌절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거대한 채찍이 등을 후려치지 않는 한’ 중국이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음을 밝히면서 변혁의 구체적이며 물질적인 동력을 밝혀냅니다.





다소 길어졌는데 루쉰의 글로 마치겠습니다. 이 글은 예전에 제 글에서 부정확하게 인용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니체는 피로 쓴 책을 읽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피로 쓰여진 문장이란 아마 없으리라. 글은 어차피 먹으로 쓴다. 피로 쓰인 것은 핏자국 뿐이다. 핏자국은, 물론 글보다 격정적이고, 보다 직접적이며 간명하긴 하다. 그러나 빛이 바래기 쉽고 지워지기 쉽다. 문학의 힘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 중에서)





출처: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노신 산문집≫, 이욱연 편역, 도서출판 창, 1994, p. 183. 










※ 제일호 동지의 시 선물 감사합니다. 이미 저도 본 시입니다만 동지께서 소개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10월 20일 목요일에 동지를 처음으로 뵙게 될 것 같습니다. 무사히 뵐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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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 독자편지 김수남, 이병진, 최상철 2011-10-24 2378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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