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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기타 >
제목 그녀의 시끄러움을 위하여
글쓴이 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몸짓선언” 자료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417
날짜 2011-10-24 조회수 2057 추천수 104
파일  1319386576_그녀는 참 시끄럽다.hwp

  













그녀의 시끄러움을 위하여
















그녀는 참 시끄럽다.





물론 그녀의 목소리 크기보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클 거다.





그녀는 웃음소리도 참 크다.





때론 그 큰 웃음 그 큰 목소리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 시끄러움이, 쾌활함이 좋다.










처음엔 그냥 타고난 성격인 줄 알았다. 그녀의 전동휠체어에 받쳐 발목을 다치기 전까지는.





그때도 그녀는 그렇게 크게 소리쳤었다.





“싸부~~~~~우”





역시나 호들갑스럽게 괜찮은지 안 다쳤는지 마구 물어댄다. 아, 그녀가 나를 아니 우리 몸짓선언 동지들을 싸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녀도 몸짓패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서 활동하는 그녀는 중증장애인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채 열심히 춤을 추는 전장연 몸짓패 ‘바람’구성원인데 우리 몸짓선언이 그 바람의 강사로 결합했던 적이 있다.










그날도 다른 현장 몸짓패 동지들과 함께 집체문선 연습을 하던 중이었을 거다. 발목 아킬레스건 부근에 묵직한 통증이 오기 직전에 시끄러운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아... 그랬구나...





여전히 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경험이 적은 우리들. 휠체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위험을 알리거나 멀리서 본인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려면...이렇게 목소리를 키울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녀와 함께 복잡한 길을 갈 때 그녀가 연신 큰 목소리로 “지나갈께요”. “조심하세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전까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 일이 있은 후론 그토록 크게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걸음에 맞춰 가야 하는데 길은 복잡하고 성인의 시야 아래에 휠체어가 있다 보니 바쁘게 걷는 사람들이 놀라거나 황급히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요즘 스마트폰 때문에 앞을 잘 안 보고 걷는 이들도 많고...죄송하다는 말로 자신의 존재를 혹은 위험할 수 있음을 알리려는 듯 했다.















존재...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의 사촌누나가 외국에서 —어느 나라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서구권이었던 듯— 공부하다 한국에 놀러 나온 적이 있었다. 서울 구경 시켜준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노는데 그 친구의 누나가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런데 한국엔 담배 피는 여자가 없나봐. 장애인도 없는 거 같고...”





그 땐 그냥 정말 그런가보다 했다.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더 철들고 나서야 알았다. 없는 게 아니라 안보인 거였다는 사실을...





아마 지금이라면 그렇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담배 피는 여자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선 여자가 담배 피는 모습이 눈에 띄면 안 되는 거고, 장애인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이 바깥에 나와 돌아다닐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사회가 아니 정확히 말해 이 사회를 움직이는 지배세력이 장애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없는 듯 살아라”이다. 격리와 수용. 물론 그들은 이것을 ‘보호’라고 말한다. 정글과도 같은 이 각박한 사회에 소위 성치 않은 몸으로 살아가게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눈물겹도록 자애로운 그들은 장애인들에게 방구석이나 시설에 꼭꼭 처박혀 있으라고, 그 길이 살 길이라고... 말한다.










살 길... 그래... 말 그대로 살아갈 방법이다. 산다는 것, 즉 존재하고 있다는 것인데, 존재하고 있음을 감추는 길, 아니 부정하는 길이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는 길이라니... 당최 3류 신파극 대사도 아니고... 비장하게 웃음 띠며 눈물 한번 흘려주란 말인지...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6년, 한낮의 아스팔트가 숨을 턱턱 막기에 충분히 달궈질 계절인 4월 하순,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넜었다. 5시간이 걸렸다. 차를 타고 3분도 안 돼서 건너던 그곳, 걸어서도 10분 남짓이면 건너던 그 곳을 그들은 5시간 동안 목숨을 다해 기어서 건넜다. 중증장애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활동보조인제도화 요구에 대해서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거부하면서도 무려 7천억을 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던 서울시를 향해 장애인들은 바로 그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설 노들섬으로 기어가며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보였다.





살 길, 존재하는 방법은 그 존재를 감추는 게 아니라 한 시간에 10cm를 기어서 이동하는 그들 존재를 낱낱이 드러내는 것임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 시간에 10cm... 그래 이제 정말 본심을 좀 얘기해보자. 진짜 그들이 장애인에게 ‘없는 듯 처박혀 살라’고 말하는 본심 말이다. 바로 한 시간에 10cm라는 그 속도 때문 아닌가?





가치는 투하된 노동량. 즉 평균적 노동시간이라는 경제학적 본질을 그들도 잘 알거나 혹은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기에... 단위 시간 안에 죽기 직전까지 움직일 수 있는 노동의 속도를 계산하여 상대적 잉여가치를 최대치까지 끌어 올리며 철저히 이윤 경쟁에 목숨을 거는 저 자본주의의 본질이 도무지 저들 장애인의 속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또한 임금, 즉 가변자본부분은 노동력재생산비용, 즉 생활비이다. 투하된 노동시간 동안 만들어낸 가치의 크기에 견주어 지불해야 할 노동력재생산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터. 하기에 그들의 요구대로 존재를 감춘 채 말 잘 듣고 있어준 장애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이 사회가 만족할 만큼 자애롭다는 사실을 선전하기 위한 범위 안에서만 그들은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내 보인다.










그들에게 계산은 간단하다.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 섞여 보편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이 사회의 평균적 속도를 엄청나게 낮출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곧 그들 이윤율에 엄청난 타격일 수밖에 없기에... 차라리 안 죽을 만큼 먹고 살게 해주고 이 사회에 섞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라는 것. 그나마 그 안 죽을 만큼 먹고 살게 해주는 비용마저도 아까워 부양의무제니 뭐니 하면서 어떻게든 축소시키려하고 그렇게 나온 몇 푼 돈마저도 소위 시설이라는 곳의 폐쇄성으로 인해 눈먼 돈 취급 받으며 그들 주머니 속 쌈지돈 되기 일쑤인 현실이지만...










지난 봄 난 아주 특별한 춤 공연을 할 일이 있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몸짓선언의 춤은 기본적으로 전투적인 투쟁 춤이다. 그런 우리에게 결혼식 축하공연을 해달라고 부탁한 이들이 있었다. 적잖이 고민스러웠다. 늘 메던 머리띠를 풀고 춤을 춰야 하나... 우리 춤 중에 그나마 덜 투쟁적인 게 뭐가 있나...





그딴 고민이 머쓱하게 우리에게 결혼식 축하공연을 부탁했던 당사자들은 오롯이 투쟁현장에서 하던 그대로의 공연을 부탁했다. 그들은 그 힘들다는 탈시설 투쟁을 해내고 그 과정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중증 장애인 커플이었다.





단박에 수긍할 수 있었고 기꺼이 춤을 출 수 있었다. 그들에게 그 결혼은 그 자체로 피맺힌 투쟁의 산물이고 또한 이어져나갈 투쟁의 과정이었기에...





그 과정 만큼이나 신랑 신부의 입장 시간도 여느 결혼식 보다 길었다.





신랑은 투쟁할 때도 가장 빠르게 투쟁현장을 누비고 다니던 전동휠체어의 주인공이었단다. 반면 전동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는 신부는 투쟁현장에서 가장 느린 사람이었단다.





그런데 둘이 사랑하게 되고 나서 신랑의 전동휠체어는 조금 느려지고 신부의 걸음은 좀 더 빨라졌다고 한다. 함께 가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늘 시끄럽고 늘 웃는 그녀는 여전히 시끄럽다.





비장애인인 다른 현장 몸짓패 동지들과 함께 연합 공연을 준비할 때, 그녀는 어떤 이들보다 연습이나 모임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시끄럽지 않게 말하는 모습, 웃음기 없이 말하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다. 먼저 도착했지만 계단 때문에 연습 장소에 못 들어간 채 우리를 기다리던 그녀. 전동휠체어를 들어달라는 말. 그리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다른 여성동지에게 하는 말. 비장애인 동지들이 전동휠체어를 들어 계단 위로 올려놓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사력을 다해 온 몸으로 한 계단 한 계단씩 오르고 있는 그녀를 지켜본다.





시간과 효율을 생각한다면 몸집도 작은 그녀를 안거나 업어 계단을 오르는 편이 훨씬 빠를 터. 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안으려고도 업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12세 장애인의 알몸을 노출 시킨 채 온 몸을 닦아주며 눈물 흘리는 인간미를 과시하던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나경원이라는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분노에 치를 떨며 그 곳에 있던 모든 이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하라고 국가인권위 앞에서 일인 시위라도 하지 않을까...





허긴 장애인들에게 ‘장애우 여러분’이라고 부르며 인간미 과시하던 이명박도 분노해마지 않겠지...





“난 당신 같은 친구 둔 적 없는데 왜 당신 맘대로 날 친구라고 하냐?”고 항의 하던 한 장애인의 말이 그 여리고 정 많은 가슴에 얼마나 상처가 됐을까나? 쯧쯧...










장애인들이 위험한 세상에 위태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활동보조인제도 같은 거 꿈도 꾸지 않고 오페라 궁전 같은 거 지어서 제일 먼저 장애인들 노고부터 위로하려했던 그 감성 충만하고 자애로운 마음의 소유자들을 향해 “그런 여린 마음으로 세상 어찌 살아나가려고 하냐”고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시끄럽게 세상을 꾸짖고 호탕하게 웃고 있을 게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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