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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기타 >
제목 서평: ≪노동사회과학 제 4호, 20세기 사회주의와 반혁명≫
글쓴이 천연옥|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407
날짜 2011-09-21 조회수 1844 추천수 106
파일  1316612278_r.hwp

  













노동운동의 정치적

























노동운동의 정치적, 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노력은 월간지 ≪정세와 노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노동사회과학≫은 당면 정세에서 꼭 필요한 이론적 쟁점을 좀 더 심화된 형태로 다루고 있다.





2011년 메이데이에 맞춰 발행된 4호는 특집 <2차 세계 대전 후 수정주의의 등장과 노동자계급의 후퇴>라는 제목으로 다섯 개의 글들을 싣고 있는데, 이 특집을  통해 지나간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새로운 전망을 세우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사회구성체 논쟁을 복원하려고 노력한 논자 중의 한 분인 문영찬의 <한국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 노동자 문화를 계급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글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던 최상철, 박현욱의 대담 <노동자 문예 창작 과정에서 형식의 문제>,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수정주의 이론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자율주의에 대한 비판 글인 박석삼의 <다중 물신론 비판>,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정신을 이론적으로 담아내고 다른 나라의 운동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노력의 한 표현으로 벨기에 노동자당의 강령적 문서 <충격 2002-2006 : 우리의 사상적 방향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특집의 글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 글인 채만수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지배와 노동자계급의 후퇴>는 남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원인이 자본주의의 전반적위기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파산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 현 발전단계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위기와 그 전개양상을 그러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설명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 자체가, 현대 자본주의와 그 위기에 대한 시각과 분석의 과학성 여부의 문제일 뿐 아니라 (독점)부르주아지와 노동자계급 간의 치열한 이데올로기 투쟁, 치열한 계급투쟁의 표현이라고 한다. 뜨로츠키주의자 등의 반쏘·반스딸린주의는 20세기 사회주의를 청산주의 관점에서 평가하면서 제국주의자들이 제 3세계의 수많은 반제국주의 정치지도자들을 악마화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그들, 독점자본의 선전기구들, 대중 이데올로기 조작과 지배에 사실상 백기를 들고 있으며, 이 또한 노동자계급운동의 후퇴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오늘날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한국을 포함하여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사실상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이념적 포로로 잡혀 있고, 이점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후퇴의 본질적 표현이라고 한다.





두 번째 글인 문영찬의 <쏘련 수정주의의 등장과 중-쏘 논쟁>은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레닌의 지도에 의해 이루어진 러시아혁명이 스딸린의 반혁명에 의해서 무너졌으며 쏘련의 붕괴는 환영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는 객관적 역사의 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쏘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흐루쉬쵸프에 의해 이론적이고 정치적 조류로 등장한 수정주의에 의해 촉발된 중쏘논쟁, 그리고 이 논쟁의 쟁점인 평화공존 노선, 스딸린에 대한 평가, 전쟁과 평화, 유고슬라비아문제, 이행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신식민주의와 민족해방문제, 평화적 이행과 수정주의에 대해 중국과 쏘련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결론에서 사회주의는 하나의 이행기이며, 중쏘논쟁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가르쳤으며,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문제는 통일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과 세계 변혁과 일국 혁명의 관계에 대해 철저한 통일적 관점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세 번째 글인 백철현의 <유로꼬뮤니즘의 배반과 타락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이 움켜쥘 정치적 결론은 무엇인가?>에서 유로꼬뮤니즘이 사회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집권에 실패하고 대중적 영향력을 상실했지만 그 이데올로기는 한국을 비롯한 현재의 모든 나라의 공산당들, 노동자계급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유로꼬뮤니즘을 비판해야 한다고 한다. 유로꼬뮤니즘 비판은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인민전선 전략전술에 대한 평가, 기존 공산당의 우경적인 노선과 실천에서의 우경화 등에 대한 평가의 문제를 담고 있고, 이러한 평가 속에서 유로꼬뮤니즘의 정치적 타락의 원천이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태도에 있음을 밝힘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전위당 노선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유로꼬뮤니즘 비판은 한국 사회에 팽배한 개량주의 세력들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한국에서 전위정당을 건설하려고 시도하는 급진적 정치세력의 몰역사성, 몰과학성,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고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을 폐기하고 사회주의로의 평화로운 이행과 부르주아 국가 기구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개조해서 사용한다는 유로꼬뮤니즘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기원이 그람시의 ≪옥중수고≫의 진지전 개념에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비판하고, 꼬뮌테른의 인민전선이 유로꼬뮤니즘의 원조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유로꼬뮤니즘의 직접적인 원인은 쏘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의 흐루쉬쵸프의 수정주의에서 찾는다. 백철현은 “유로꼬뮤니즘의 사상적, 실천적 배반사로부터 우리는 다시 한번 맑스-레닌주의의 핵심사상인 전위당 노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을 확고하게 움켜쥐어야 한다는 분명한 정치적 교훈을 얻게 되었다. 노동자계급이여! 유로꼬뮤니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굳세게 정치적으로 전진하자!”라며 글을 끝맺고 있다.





네 번째 글인 <일본 공산당의 변절-체제 내 ‘건설적 야당’으로의 전락의 궤적>은 일본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의 야마시타 이사오(山下勇男)가 ≪노동사회과학≫4호를 위해 특별히 집필한 글로 편집부가 번역한 것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의 노동조합운동은 그 형성기에는 일본공산당이 지도하는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가 주도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미 제국주의의 초기 점령정책은 1947년부터 48년에 걸쳐서 일본 공산당을 탄압하고 반공세력을 육성하는 것으로 바뀌고, 산별회의를 와해시키면서 일본사회당과 결탁한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가 점령당국의 후원으로 1950년에 결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일본공산당은 국정선거와 당세확장에 매몰된 40년을 지내왔고 2003년 당 강령을 개정하여 부르주아 의회당으로의 변질을 완성하였는데, 그 내용은 일련의 개량을 쌓아감으로써 ‘룰있는 자본주의’을 수립하는 ‘민주적 개혁’노선을 정식화 한 것으로 결국 혁명은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것이었으며,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자본주의의 민주적 개혁이 한계에 달한 시점에서 국민이 투표로 결정하는 것, 제국주의를 카우츠키처럼 하나의 정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다섯 번째 글인 손미아의 <제 2차 대전 후 미국의 계급투쟁―공산주의 운동과 반공주의>는 미국의 반공주의의 기원과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말살의 원인을 추적한 글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사실상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가 된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적인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쏘련이야말로 연합국이 제 2차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한 주역이었을 뿐 아니라, 대전의 결과로 동유럽이 공산화되었고, 중국에서 그리고 서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혁명의 열기가 분출하고 있었다. 식민지 인민의 반제민족해방운동이 광범하게 터져나왔는데 거기에서도 역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정세에서 제국주의의 패권을 장악한 미국은, 그 독점자본가계급은 공산주의와 대립 속에서 자본주의를 구원할 반공주의의 주역으로서 역할을 자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냉전(트루먼 독트린)과 마샬 플랜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 재건과 그 노동자계급의 포섭을 서둘렀고, 다른 한편으로 미국 내의 공산주의자들과 그 활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이것이 미국 매카시즘의 역사적 배경이었고, 이것이 미국의 공산주의 운동을 말살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미국 노동운동은 보수파 미국노동총동맹(AFL)내의 작은 분파로 설립된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건설에 미국의 공산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AFL에서 분리하자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노조들을 CIO에 가입시켰다. 그러나 루즈벨트의 뉴딜에 협조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2차 세계대전 중에 무분규협약을 맺으면서 노동자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 미국의 매카시즘은 태프트-하틀리법, 우파에 의한 좌파 노동조합의 급습과 숙청 등으로 진행되었고, 노동운동 내의 우파 자유주의자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흐름으로 정착되었다. 미국의 반공주의는 독점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운동을 억압하여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로 지속되고 있는 대공황은 세계 곳곳의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촉발시키고 있고, 미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문영찬의 <한국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은 20세기 사회주의의 평가와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 세계 체제의 현 단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한국 계급투쟁의 역사와 변혁의 성격의 전환이라는 소제목의 순서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한국사회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예속의 심화를 통한 축적의 고도화’(나는 개인적으로 이 정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정식을 제출하고 있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농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직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동맹을 기초로 할 때에만 농업의 재건이 가능하다고 한다. 당면의 1단계 사회주의 변혁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최대의 적은 예속독점자본가계급이며, 이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필수적인 반독점동맹을 결성해야 한다고 한다. 8·90년대의 운동을 넘어 전진하는 길은 프롤레타리아 전위당 건설을 성공시키는 것임을 강조하며 글을 끝맺고 있다.










박현욱, 최상철의 대담 <노동자 문예 창착 과정에서의 형식의 문제>는 문예 운동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고민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이다. 여기에서 박현욱은 “낯설게 하기는 <선언>이 문예창작 행위를 하면서 중요하게 사용하는 창작기법이다. 음악을 끊어서 흐름을 단지 편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등 기술적으로 ‘낯설게 하기’는 많이 활용한다. 또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것도 단순한 감정적 배설과 자기 정화의 과정을 넘어선 것이다. 즉 전망을 제시하고 교훈을 제시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법을 담아내려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중성을 지적해야 한다. 집회에 참여하는 대중은 문예전문가가 아니며, 이들을 불편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중이 편하게 향유하면서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단 선동문예이기 때문에 무대의 시연자들은 대중을 편하게 느끼게 해서 만은 안 된다는 이중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방에 이르는 진실은 불편한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집회에 참여한 대중을 불편하게 한다. 해방감으로서 카타르시스, 혁명적 낙관성과 함께 혁명의 과정에서의 고난이라는 불편함의 양측을 변증법적으로 담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 “상업문화에 익숙해진 대중의 현 상태에 절충하는 것은 변증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중이 왜 그렇게 체제내화 되었는지 질문하고, 그렇게 고정화된 현실과 형식에 대한 싸움이 문예패의 과업이다”고 한다.










박석삼의 <다중 물신론 비판>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여 형성된 촛불투쟁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택광과 조정환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조정환의 자율주의를 다중 물신론으로 규정하면서 비판하는 글이다. 그는 촛불이 다중이고 다중이어야 한다는 조정환의 주장은 황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동적이라고 한다. 그것을 밝히기 위해 조정환의 이론적 기반인 네그리의 핵심주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네그리는 “존재하는 세계가 국민국가가 각축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제국의 시대이기 때문에 국민이나 민중이 아닌 다중이라고 부른다. 더 이상 민중이 기초로서 가정되지 않으며, 더 이상 주권적인 국가구조의 권력을 잡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중앙집권적 동일성 아래 통일된 투쟁은 개방적이고 분산적인 네트워크 투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한다. 뭉치면 위계와 억압이 발생한다는 ‘과두제의 철칙’을 운운하면서 ‘중심 없는’ 네트워크질이나 하자는 것은 자본가들과 제국주의자들의 이익을 위해 네그리가 고안해낸 참으로 악의적인 요설일 뿐이라고 박석삼은 지적한다. 또한 그는 조정환이 ≪미네르바의 촛불≫을 쓴 목적이 촛불과 진보적 지식인을 이간질시키고, 촛불에 빌붙기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네그리주의와 자율주의를 끼워 팔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최근의 희망버스를 둘러싼 논의들과 흡사한 구도가 많음을 느꼈다.










벨기에 노동자당의 <충격(IMPACT) 2002-2006, 우리의 사상적 방침>은 서유럽의 아주 작은 나라 벨기에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활동하는 벨기에 노동자당의 2002년 당대회가 채택한 강령적 문서이다. IMPACT는 Internationlise(국제화하라), Modernise(현대화하라), Professionalise(직업적이 되라), Augment(증가시켜라), Communicate(교통하라), Together(함께 하라)라는 6가지 방침의 약자이다. 벨기에 노동자당은 이 방침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정신에서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을 고민하고, 현대 자본주의의 발달한 생산력의 결과물인 통신수단의 발전을 혁명운동에 활용할 것, 이것을 활용할 수 있는 젊은 당원들을 훈련하고 전문화할 것, 간부 중심의 당이 아니라 평당원이 많은 당으로 당원을 확대할 것,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소통할 것, 당원이 아니라도 발달한 자본주의에 의해 고통당하는 인민들이 여타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정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기층 민중의 다양한 대중운동과 연대할 것을 정식화하고 있다. 유럽꼬뮤니즘과 사회민주주의 등의 수정주의와 개량주의가 판치는 서유럽의 한 작은 국가에서 이렇게 맑스·레닌주의의 원칙 아래 당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위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희망적이다.










≪노동사회과학≫ 4호는 특집을 통해 모든 수정주의, 개량주의 사상의 핵심은 반쏘, 반스딸린주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현실운동에서 아주 실천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동지들 속에서 종교처럼 반쏘, 반스딸린주의가 번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지하게 이 한권의 책을 정독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현장에서 일하거나 상근자라도 노동조합 실무로 종일 회의, 교육, 집회에 참여하느라 녹초가 되어 있는 대다수의 활동가들이 읽기에 다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레닌은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 없다”고 했다. 자족적인 이론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론을 탐구하고 실천하려는 태도가 활동가의 주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끝으로 이 책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편집한 분들의 바쁘고 치열한 일상을 잘 알고 있기에, 늘 내 삶이 힘들다고 투덜거리다가도 다시 나를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더 치열한 삶을 선택하도록 자극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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