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편집부

[편집자 주: 우리 연구소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는 일본의 <활동가 집단 사상운동>(1969년 창립)의 대표이신 타케이 테루오(武井昭夫) 선생께서 지난 9월 2일, 83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고인의 뜻에 따라 별도의 장례식은 치러지지 않았고, 일본 언론들도 운명 후 약 열흘이 지난 후에야 소식을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연구소는 9월 20일에 선생의 타계를 통보 받았다.)

선생의 생전의 활동과 관련해서는, ��사회평론�� 제163호(2010년 가을)의 “특집: 동지․타케이 테루오(武井昭夫)의 작업에서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중에 “국제주의를 관철한 ‘운동족’의 생애(國際主義を貫した‘運動族’の生涯)”라는, 히로노 쑈지(廣野省三) <활동가집단 사상운동 상임운영위원회책임자>의 글이 도착해 있으나, 시간 관계상 이번 호에는 번역․게재하지 못했다. 다음 호에 번역․게재할 것을 약속한다.

이 글은 애초 ��사상운동�� 제445호(1991년 11월 15일 자)에 발표되었고, ��타케이 테루오의 1980-1993 상황론집: 사회주의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에 실린 논설문 중 하나(pp. 425-433)이다. 독자들은 당시 쏘련 붕괴와 관련된 생생한 평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쏘련 붕괴를 단지 그 내부의 문제점에 기인한 것이라고 추상적으로 재단해버리는 청산주의에 반대하며, 이 문제를 둘러싼 사회주의의 내부적 국가 운용 문제 및 사회주의를 포위하고 있던 자본주의 제 국가들과의 관계, 특히 이데올로기 문제 등을 간략하게 논증하고 있다. 향후 사회주의적 전망을 밝혀나가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평가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고인을 잃은 일본의 동지들과 유족께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우리는 1985년 시작된 쏘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사회주의의 자기개조운동, 즉 보다 현대적이고 충실한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진을 목표로 한 자기쇄신 운동으로서 파악하고, 그 성공을 기원, 연대해 왔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착수되었어야 할 이 실험은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자본주의화를 추진하는 세력이 민중의 동요를 이용하여 그 불만을 증폭시키면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노선 그 자체를 사회주의의 부정과 파괴의 방향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우리들은 이러한 과정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 작업은 다음의 세 가지의 관점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문제를 자본주의와의 관계에서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것,

둘째, 문제를 자본주의의 역사와 사회주의의 역사, 그 상호 대립과 항쟁 속에서 파악할 것,

셋째, 문제를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입장에서 파악할 것.

사회주의 공동체가 경험한 패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쏘련과 동유럽에서는 지금, 사회주의의 자기혁신의 실패와 자본주의화의 위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경향을 두고, 곧바로 사회주의가 패배했고 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증명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의 이념과 그 역사적 역할을 부정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 하에서 생활하는 우리가 획득해온 권리들에는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임팩트와 사회주의 존재, 그 발전의 역사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반파시즘 투쟁, 반제민족해방 투쟁의 성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 공동체가 경험한 패배를 설명하고 교훈으로 삼아가기 위한 하나의 관점으로서, 국유화에 의해 실현된 사회주의적 소유의 내실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없었다는 점을 기본으로 삼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주의 경제론으로부터의 분석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 발전의 실현을 방해한 대상황(大狀況)과의 관련도 동시에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빼놓고 역사를 재단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 역사의 청산주의적 평가로 귀결된다. 쏘련 국내의 논의에서도 이러한 의미에서 중대한 결함이었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정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도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사회주의의 개혁으로서, 전국민의 의지를 재통일하는 운동으로서 추진해나가기 위해서는 당의 쇄신과 운동을 통해 통일된 이론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노동자․농민의 생산현장부터의 운동으로서 진행해가는 과정이 추진되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로부터’의 결정이 주가 되었으며, 그것은 대중매체를 통하여 추진되었다. 당중앙위원회의 의지의 통일조차 불충분한 채였으며, 게다가 그 기본사상에도 자본주의에의 굴복과 전환의 이론이 혼재되어 있었다. 8월 ‘쿠데타’도, 그것을 계기로 한 ‘역(逆) 쿠데타’도, ‘위로부터’의 자본주의화에 지나지 않는 플랜을 가진 그룹 내의 대응의 차이점, 그것에 기인한 권력 투쟁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쏘련에서 진행되는 사태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회주의 경제와 그 해체과정으로 파악하는 ‘해설’이 매스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쏘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근본은, 사회주의 제도의 개혁을 내건 개혁이 실은 그 파괴에 다름 아니었으며, 또한, 전망이 없는 정책의 당연한 결과로서 초래되어온 것이라는 것이었다. 개혁의 주도권이, 환상(幻想)되고 있던 “풍요로운 소비생활”이 자본주의의 부활을 향하자마자 곧바로 출현한 자본주의 지향파에 의해 장악되고 나서는 대다수의 쏘련국민의 생활은 오히려 훨씬 큰 곤궁에 봉착했다.

쏘련의 금년[1991년] GNP 성장률은 연률(年率) 마이너스 15%로 예상되고, 겨울의 식량난이 표면화되고 있다. 이것에 대하여 러시아공화국의 옐친 정권은 강압적인 방법을 통한 가격 자유화 등의 급진적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인플레이션을 가속시켜 저소득층에 가일층의 타격을 줄 것이다. 또 그간 실업이 크게 진행되어, 내년에는 그 수가 2,5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쏘련 국내에서 나오고 있다. 또 이러한 페레스트로이카의 반동적인 역전(逆轉) 속에서 여성이 획득해온 권리의 침해가 무엇보다 크게 두드러지고 있다. 실업자의 약 8할이 여성이며, 최고회의의 선출여성의원이 수 명에 지나지 않게 된 공화국도 많다. 페레스트로카 이전의 쏘련에서는 의사와 교원의 수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으며, 각급 의회에서 점하는 여성의 비율도 세계 최고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러한 상황 하에서 국민 사이에서 생활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책전환 투쟁으로까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체된 당의 재건이 불가결할 것이다. 현재,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에서는 수만 명 규모의 대중집회가 열리는 상황까지 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그러한 활동들이 강압적으로 임하는 옐친 정권을 물리치는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재편, 그것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신흥 부르주아지에 대한 구(舊)쏘련국가들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어떻게 확산되어 가는지, 주목하고 싶다.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 정책에 패배한 노동자계급

페레스트로이카가 진전되는 가운데,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도입, 그것으로서의 전환이 진행되면, 80년대의 사회주의가 안고 있던 모순들과 곤란들이 일거에 해결되고 선진 자본주의국 수준의 소비생활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국민 사이에 퍼뜨린 것은 자본주의 세계의 매스컴의 힘과 그 힘의 영향을 받아온 사회주의 세계의 매스컴 및 인텔리겐챠의 힘이었다. 돌이켜보면, 60년대 고도 경제성장 정책이 전개되었을 때, 미국과 유럽, 일본의 부르주아지는 경제정책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응하는 이데올로기 정책을 전세계적인 규모로 전개하였다. 그것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노동자․인민의 투쟁력을 마비․후퇴시키는 데에 엄청난 힘을 발휘했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것은 또한 사회주의 세계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을 끼쳐왔고, 그러한 영향이 또한 페레스트로이카의 진행과정에서도 전면적으로 발동되었다.

얼마 전부터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것이 널리 이야기되고, 그것이 오늘날 ‘사회주의의 종언’과 같은 의미의 문제로서 우리의 의식을 억누르려 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인민 사이에 침투되는 것은 부르주아적 가치관에 노동자계급의 다수가 굴복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주아지는 한시도 지배계급으로서의 과제수행과 그를 위한 강렬한 이데올로기 정책의 전개를 잊은 적이 없다.

자본주의 권력은, 노동(운동)의 분야를 보더라도, 독점자본을 원호하기 위한 ‘합리화’ 공격, 쓰고 버리는 식으로 여성 노동력을 활용하고 규정하는 등의 문제에서, 억압할 수 있는 것은 억압하고, 억압할 수 없는 것은 왜곡하여 계급적 관점과 결부되지 않도록 유도하는 형태로 그 정책을 추진해왔다. 제국주의의 이러한 ‘껴안아 목 졸라 죽이는’ 정책, 또 그 강렬하면서도 교묘한 이데올로기 정책의 전개에 대해서, 현실의 사회주의 체제 측은, 그 기본적 사회제도를 확립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관료주의적 부패와 정책의 오류나 실패 때문에, 그것과 효과적으로 투쟁하지 못하고, 마침내는 제국주의(의 트로이 목마식 공격)에 의해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는데, 이 문제는, 사회주의 체제 내의 노동자계급과 그 당(黨)뿐 아니라, 전 세계의 노동자계급이 그것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서 전적으로 받아들여,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그 정책적 과정도 명확히 하여, 그것을 다음의 투쟁 속에서 해결해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패배하고 후퇴를 강요당한 노동자․인민은 앞으로 계급투쟁에서 노동자의 지배권을 아래로부터 다시 올바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최근의 일본 노동운동의 문제와 관련시켜 말하자면, 총평(總評) 해체=연합(聯合)의 형성에 의해 승리를 거둔,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기초한 노동자의 통제―이것을 타파할 힘을, 지금부터 그 기초로 되돌아가 배양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것을 쏘련과 관련시켜 말하자면, 사회주의의 사회주의적 개혁을 성공시키는 힘을 밑으로부터 만들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당의 재건을 포함한 모든 문제가 처음부터 다시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양자는 공통의 동질적인 과제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의 책무

공통의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의 경쟁에 있어서 곤란을 겪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을 뒤돌아보고 싶다. 70년대 전반기에 걸쳐, 베트남전쟁=민족해방투쟁의 승리(75년)을 필두로 세 대륙에서 민족해방투쟁이 고양되었고, 거기에 74년-75년 공황의 타격이 덧붙여져,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는 다시 심화되었다. 70년대 후반기에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제국주의의 필사적인 반격이 전개되었다. 그 사이, 서유럽 지역에서는 특히 프랑스의 5월 혁명에서부터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영국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격렬한 계급투쟁이 전개되었는데, 그것들은 전반적으로, 노동자․인민 측의 감투(敢鬪)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노동자․인민 측의 패배로 끝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예컨대 포르투갈 혁명에 대해서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나 서유럽에서도 광범위한 노동자․인민이 연대에 떨쳐일어서려 했지만, 당시 남유럽 세 나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공산당 지도부에 펴져 있던 통칭 유로코뮤니즘이라고 하는, ―나중에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본질을 노골화하면서 당을 사상적으로 해체시켜 가는― 조류는 가당찮게도 반혁명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입장에 서서, 그 포르투갈 혁명을 공격하고 고립시켜 나갔다.

이러한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운동의 총체적인 패배 속에서 레이건-대처 (다시 나중에 나카소네로 연결되는) 신보수주의 시대가 개막되고, 사회주의 국가들은 강요된 군비확장 경쟁에 대한 대응, 정치적으로 독립한 발전도상국에 대한 원조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즈음에 만약 각각의 제국주의 본국의 노동자의 투쟁이 승리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면, 그 조건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이후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는 거기에서 생겨나는 여러 곤란을 사회주의 문제로서 국민전체가 받아들이고, 그 해결 방향을 탐구해간다고 하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거기에서 볼 수 있는 현존 사회주의 국가의 당의 약점을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봐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또한 우리들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동자계급도 이 즈음에 계급투쟁에서 패배를 맛봤다. 그에 의해서, 일본자본주의는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 형 산업구조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을 제압하고, 노동자․인민이 그때까지의 투쟁으로 쟁취했던, 자본의 착취의 ‘자유’에 대한 민주적 규제를 제거했으며, 바야흐로 때가 왔다는 듯이 국내외에서 방약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를 보면, 쏘련이 사회주의적인 쇄신에 성공할 수 없었던 요인들의 일단(一端)이 우리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계급투쟁의 역량, 그 상태가 언제나 전세계의 동향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오늘날 자본의 제멋대로의 이윤추구의 폐해는 이미 인류의 생존조건조차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일부의 ‘번영’의 그늘에서 기아와 빈곤이 이 지상 전역에 확대되어 있다. 이는, 일본자본주의의 산림난벌(山林亂伐)에 기인하는, 수일전의 필리핀의 대수해(大水害)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 자신의 계급의식을 날카롭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부기] 이 보고의 요지 기록은 아사다 히로시(浅田洋) 기자가 담당했으며, 이번에 이 책에 수록하면서 보고자인 타케이가 약간 보완했다. 논지나 기술(記述)의 기본에 변경은 없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