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음악운동의 전진
1931
노동자 음악운동은 이제 계획된 실험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노동자 음악운동의 주요한 단체인 <독일노동자합창연합>(Deutsher Arbeitersängerbund, DASB)1)이 노동자음악 운동 대오의 편협한 개량주의 지도부에 대한 혁명적인 저항을 조직한 순간에, 이러한 새롭고 비옥한 단계는 이미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전진의 장애물은 음악에 대한 그릇된 관념과 이것들과 투쟁하는 데 있어 곤란함이다. 무정부적인 부르주아 음악 비즈니스는 음악 물신숭배(fetishism)를 생산한다. 그 결과 다수의 인민 대중은 가장 어리석고, 가장 위험하고, 무엇보다도 최면적인 형태로써만 음악을 수용할 수 있다. 더욱이 기술적 장치—레코드 재생기2)와 라디오—3)는 대규모로 그러한 현실도피를 조직화한다. 개량주의자들은 이러한 측면을 변혁하려는 욕구가 전혀 없다. 그들은 다만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고결해진다는 원칙으로 보다 고결한 외투를 덮은 마취적인 가능성을 입히는 데 노력할 뿐이다.
노동자 음악운동이 달성한 전진은 전적으로 <독일노동자합창연합>의 혁명적인 저항에서 유래한다. <맑스주의노동자학교>4)의 유물론적 음악 입문 수업 이후에 자발적으로 동아리가 만들어져 노동자 계급 임원뿐만 아니라 여러 좌익 음악학자와 음악이론가들이 참여하였고, 변증법적인 유물론을 음악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르주아 진영의 여러 전문가들 또한 혁명적인 노동자들의 편으로 넘어왔다. 칼 랑클5)과 더불어 요제프 슈미트6) 블라디미르 포겔7), 에른스트 헤르만 메이어8)와 같은 작곡가와 지휘자들 및 다른 이들을 말해야 한다.
전진에 관해 말하자면, 듣기 위한 음악과 연주하기 위한 음악에 차이를 두어야만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러한 정식화에 도달하면서 합창에 관한 상투적인 견해와 결별했다. 이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는데 합창단이 잘 부른 작품은 청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수들을 단순한 해석자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노동자 계급 가수를 혁명화하는 문제를 끄집어낼 것을 강요받았는데, <독일노동자합창연합>의 가수들이 여러 혁명 가요를 불렀음에도 정치적으로는 개량주의자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은 ��조처��9)였다.
선전선동 소조의 활동은 “진지한” 합창곡과 시사적인 투쟁가들 간의 거대한 모순을 폭로해냈다. 우리는 지금 노동자 합창 운동이 지난 10년간 단 하나의 투쟁가도 생산해내지 못한 비상 상황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중들은 콘써트 청자들과 같은 처지를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투쟁가를 듣기만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투쟁가의 활동적인 효과는 인민이 스스로 그것을 부를 때만 달성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피히테 협회10)의 실업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작은 선전선동 합창단을 조직해 대규모 집회에서 청중들에게 새로운 투쟁가를 가르쳤다.
혁명적인 음악의 양식과 관련하여 우리는 아래와 같이 정식화하였다. 양식 즉, 음조(tone)을 조직하는 방법은 음악의 목적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청중이 부르기 위한 투쟁가는 이론적인 내용을 갖춘 합창곡과 다르게 구성해야 한다. 우리의 미적 기준은 경직된 것이 아니기에 작곡할 때에는 곡을 쓰는 혁명적인 목적을 고려한다.
우리는 심화된 경험을 통해 콘써트 형식을 거부하게 되었다. 콘써트 형식은 부르주아지의 신시대에 나타났고 혁명적인 노동자 계급의 목적을 위해서는 쓸모가 없다. 이는 단지 입장을 보류한 즐거움을 제공할 뿐이며 청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향후 몇 년 간에 실제적인 실험에 교육극의 착상을 심화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될 것이다.
요컨대, 고안해낸 모든 시도와 획득해 낸 전진은 전투적인 노동자 계급과의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했고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 조직과 연관을 끊어낸 문화 조직은 필연적으로 천박해지고 소부르주아적이 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무 안이해서도 통상적인 음악의 효과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그 이상의 것을 갈망해야만 한다. 반복하여 우리의 방법을 검증하고 개선하여 음악 앞에 자리한 계급투쟁의 경이로운 임무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노사과연>
출처: Fortschritte in der Arbeitermusikbewegnung in Kampfmusik(투쟁음악에 있어 노동자 음악운동의 전진), Berlin, 1931, No. 4.
EGW Ⅲ/Ⅰ, pp. 113-115.
번역: 최상철(편집위원)
1) 원주: Deutsher Arbeitersängerbund - DAS 혹은 DASB(영어로는 German Workers' Choral Association). 1908년 설립. 독일 노동자 음악운동의 주요 조직으로 1932년에는 31만 5천에 가까운 회원을 지니고 있다. DASB에서 개량적인 연합 지도부를 축출한 혁명적인 합창단, 합창 지휘자와 작곡자는 1931년 노동가수 투쟁연합(Kampfgemeinschaft der Arbeitersänger, Fighting Association of Working Class Singers. 역자— 같은 연합으로 번역했지만 ‘계약’의 의미가 있는 Bund와 ‘공동’의 의미가 강한 Gemeinschaft에 유의해 보면 명칭에 형상화된 두 집단 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정기간행물은 ��투쟁음악(Kampfmusik)}이었다.
2) 당시까지는 분당 78회전(78 RPM. RPM은 Round Per Minute의 약자.)하는 표준 재생레코드(Standard Playing Record. 약어로 SP라고 많이 부른다. 분당 80회전 SP 레코드도 있었다.) 시대였다. SP 레코드는 플라스틱 재질이 아니라 셀락(shellac) 재질이기에 무겁고 파손 위험이 컸다. 흔히 옛날 축음기판을 돌판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또 한 면(요즘은 디지털 음원의 시대라 한 쪽 면의 재생이 끝나면 면을 뒤집어 재생해야 한다는 것이 생소할 것이다.)의 재생시간이 3~7분 가량이었기에 교향곡 전곡을 듣기 위해서는 여러 장의 레코드를 바쁘게 갈아야했다. 그 시대 이래로 대중음악의 재생시간이 대략 3분 내외인 것은 SP 레코드 시대의 기술적인 제약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1930년대 들어서면 초창기 좋지 못한 SP 레코드의 음질이 비약적으로 개선이 된다. 그런데 대공황이 심화되면서 레코드 산업도 커다란 타격을 받는다. 아이슬러의 글이 1931년에 쓰인 것임을 감안하면 대략 당시의 정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기술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연주회장에 가지 않고서도 레코드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치가 널리 생산되어 대중적으로 보급된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변화임에 틀림없다. 1936년에 출간된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barkeit)��은 주로 시각매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만 1930년대 대중매체의 획기적인 발전이라는 시대적인 배경 전반을 이해하고 독해하면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파심에서 부연하지만 벤야민이 전적으로 ‘아우라’를 찬미하고 ‘아우라’의 사라짐에 개탄하는 것으로 독해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런 방식의 해석은 것은 파시즘이 수행하는 ‘정치의 심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참고로 장시간 재생레코드(Long Playing Record. 약어로 LP.)가 개발되는 것은 1948년으로 이 때부터는 어지간한 교향곡은 면을 뒤집는 불편함이 있지만 레코드 한 장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싱글과 확장판 레코드(Extened Play) 개념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전 연재에도 언급했지만 CD가 둥장하면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과 같은 긴 교향곡도 한 장의 음반에 담길 수 있게 되었다. 음악파일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이러한 기술적인 제약성이 혁신적으로 극복되었다. 그러나 기술적인 진보가 단선적으로 음악 내용의 진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은 지금에도 그렇고 이전에도 마찬가지이다.
3) 초고속 인터넷과 4세대 이동통신수단이라는 스마트 폰이 대중화되고 있는 시대에 라디오라는 매체는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가져온 혁신과 충격파는 전 사회에 미칠 정도로 대단했다.
4) 원주: <맑스주의노동자학교>(MASCH)는 1926년 독일 공산당의 교육 분과로써 설립되어 베를린에 본부를 두었다. 1931년까지 다른 26개 도시에 비슷한 교육기관이 들어섰다. 1928년부터 한스 아이슬러는 “음악과 프롤레타리아트”, “음악과 계급투쟁” 그리고 “유물론적인 음악 입문”과 같은 과목을 <맑스주의노동자학교>에서 가르쳤다.
역주: MASCH는 Marxistische Arbeiter Schule의 약자다. 한스 아이슬러 외에도 ��정세와 노동��의 표지로 두 차례 소개된 바 있는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도 <맑스주의노동자학교>의 교사로써 활동했다. <맑스주의노동자학교>에서는 문화와 지식에 있어 일체의 독점과 계급적인 특권을 타파했다. 또 교육과 노동을 결합하였으며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를 좁히려 노력하였다. 더 자세한 것은 Margaret R. Jackson의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음악대학 박사논문인 “Workers, unite! The Political songs of Hanns Eisler, 1926-1932”(2003)를 보라.
5) 원주: Karl Rankl (1896-1968). 좌익적 독일 노동자 합창 운동의 타고난 지휘자이며 쇤베르크 문하생 시절부터 아이슬러의 친구이다. 아이슬러의 노동자 계급 합창단을 위한 작곡을 대부분 지휘했다. 1933년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1968년에 사망한다.
역주: 랭클은 뛰어난 오페라 지휘와 작곡을 결합하는 Kapellmeister(보통 악장으로 번역. 교회음악에서 유래하는데 성가대와 같은 합창단의 지휘자를 가리킴.)의 전통에 영향을 받고 실제로 여러 합창단을 지휘하였다. 참고로 ��뉴 그로브 음악백과사전��과 위키페디아는 1933년이 아니라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15, Macmillan publishers, 1980. p. 585. http://en.wikipedia.org/wiki/Karl_Rankl )
6) Josef Schimidt (1904-1942) 유명한 실내악 테너 가수이자 라디오 방송이 만들어 낸 스타. 나치가 정권을 잡자 그의 음악은 모두 금지되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에서 나치에게 붙잡혔는데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스위스의 수용소에서 심장병을 얻어 사망했다.
http://de.wikipedia.org/wiki/Joseph_Schmidt
7) 원주: 블라디미르 포겔 (1896—) 모스끄바 출생으로 베를린에서 공부했고 활동했으며 그곳에서 1924년부터 작곡가와 작곡 선생의 길을 걸었다. 포겔의 노동자 계급 음악 운동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 대해 아이슬러는 역사에 부합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부르주아 음악 생활은 정체에 빠지게 하는 것이고 진정한 부흥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인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933년 포겔은 독일에서 추방되어 1935년 스위스 아스코나(Ascona)에 정착했다. 그는 현재 스위스의 주요 작곡가로 꼽히고 있다.
역주: 2009년 11월호 연재에서 등장한 ‘포겔’이 블라디미르 포겔임을 확인하였다. 필자가 지닌 영어판 선집이 출판된 것이 1978년인데 그는 1984년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한다.
8) Ernst Hermann Meyer. 2009년 11월호 연재를 참고하라.
9) 원주: Die Massnahme. 아이슬러가 음악을 담당한 브레히트의 교육극. (역자: 간단한 주석은2009년 3월호 1회 연재를 참고하고 자세한 논쟁이 궁금하다면 Inge Gellert, Gerd Koch, Florian Vassen (Hrsg.): Massnehmen: Bertolt Brecht/Hanns Eislers Lehrstück Die Massnahme, Theater der Zeit, 1998.을 보라. )
10) 피히테 협회는 오랜 전통을 지닌 독일 노동자 계급의 체육 운동 기구로 자신의 합창단과 악단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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