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쏘련 붕괴후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세계사적으로 많은 변동이 있었고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노동자와 민중을 질식시키더니 그러한 세계사적 모순이 대공황으로 폭발되어 계급투쟁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고 이는 동북아의 긴장과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사상적 영향력을 상실했던 사회주의 세력은 서서히 자신들을 정비해가고 있다. 그 선두에는 그리스공산당이 있는데 쏘련 붕괴의 원인을 해명하고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 속에서 세계혁명의 조건을 분석하고 그 전망을 찾는 것은 의미있는 것이다.

한편 국내적으로 보면 사상적 혼란이 극심하다. 뜨로츠키주의, 자율주의, 청산주의, 기본소득론 등 과학적 사회주의의 기풍은 사라지고 온갖 사이비 이론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8,90년대와 전혀 다른 운동의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은 의식적 운동이고 사상을 핵으로 하여 전개된다. 8,90년대는 맑스-레닌주의라는 사상적 공통분모가 있었고 그를 기초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힘을 결집시켜서 당을 건설하는 것이 주된 것이었다면 지금은 극단적인 사상적 혼란 가운데에서 당을 건설해야만 하는 조건이다. 또한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면면을 보면 그 절대적 역량이 줄어든 가운데 그나마 활동하는 조직들도 전위노선에 따라서 활동하는 것은 드물다. 심지어 부르주아 당까지 포함하여 모든 당은 전위당이라는 천박하고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는 운동에서 과학이 실종되었다는 것이며 전위조직노선이 청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사회주의 운동에서 정파들을 보면 정치조직으로는 자신을 정립하고 있으나 전위조직의 수준에는 까마득히 못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8,90년대의 운동이 달성했던 전위조직운동의 성과를 음미하고 그 한계와 오류까지 짚는 것은 의미가 있다. 사실 80년대 운동의 부활은 전위조직운동의 추구과정에서 비롯되었다. 80년대 초반의 암흑기에 이미 비합법단위들의 활동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비합법조직들은 안기부의 침탈로 붕괴되었지만 곧 다른 비합법조직들이 건설되고 확대되는 양상을 띠었다. 이들 비합법조직들은 붕괴의 원인을 반성하면서 서서히 자신들을 전위조직으로 상승시켜갔다. 예를 들면 MC-MT논쟁, 민추위, NL-CA논쟁 등이 80년대 초반의 대표적인 운동 상의 논쟁이며 조직노선의 출현이었다. 이들은 한편으로 전술상의 논쟁이었으면서도 그러한 실천을 추진하기 위해 조직노선으로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편지｣ 등을 참고하면서 자생적인 전위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비합법전위조직이 사상적 구심으로서 강고하게 활동했었기에 80년대 운동의 부활이 가능했던 것이다.

사노맹(<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이 원래의 명칭이다)은 바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정점에 있는 조직이었다. 사노맹의 맥은 MT-민추위-CA-노동자해방투쟁동맹-사노맹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 맥의 특징은 혁명적 전술을 구사하면서 조직노선에서 NL경향과 달리 강고한 전위조직노선을 추구한 것이었다. NL경향이 전위조직의 건설을 먼 미래의 일로 돌리고 산개론 등을 펼쳤다면 사노맹으로 이어진 맥은 전위조직의 건설을 당면한 긴급한 과제로 설정하고 의식적으로 그 결성을 시도하고 성공하기도 했던 것이다.

80년대의 전위조직운동 이전에는 60년대의 통혁당, 70년대의 남민전 등이 있다. 이들 조직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구사회주의 운동의 맥을 이어 결성되었던 전위조직이었다. 따라서 구사회주의운동의 맥이 단절됨에 따라 또 정보기관의 침탈에 의해 맥이 끊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은 70년대와 80년대에 새롭게 성장하는 운동가들에게 많은 정치적, 조직적 영향을 미쳤고 이들을 거름삼아 80년대의 전위조직운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한국사회주의 운동의 전위조직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사노맹을 초점으로 전위조직이 과연 무엇인지, 전위노선이 어떻게 구체화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 글은 사노맹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노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사노맹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의 몫이고 나아가 현재 그리고 이후 사회주의 전위조직운동을 하려는 사람 모두의 몫이다. 이 글에서는 단지 사노맹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전위노선이 과연 무엇인지를 추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왜냐하면 지금 시기 우리 사회주의 운동에서 전위노선은 희석화될 대로 희석화되었고 건강한 전위적 기풍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위노선을 사상적으로 복구하고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전위조직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2. 사노맹의 사상노선에 대한 평가

모든 사회운동은 사상이 없으면 전개되기 어려운 것이다. 멀리 프랑스 혁명 또한 18세기 중후반의 계몽주의라는 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루쏘 등의 계몽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준비하는 사상적 기반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르주아 혁명은 물론 사회주의 운동과 혁명은 사상없이는 불가능하다. 맑스주의라는 사상적 기반이 있었기에 러시아 10월 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모든 운동과 달리 사회주의 운동은 의식성, 과학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맑스주의는 과거의 공상적 사회주의와 달리 과학적 사회주의를 정립하였다. 왜 과학적 사회주의라 불리는가? 그것은 이전의 공상적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지만 사회주의적 공동체의 건설 등 관념의 전개이었던데 반해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의 현실적 모순을 분석하고 나아가 혁명의 물질적 기반, 새로운 사회건설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맑스주의는 사회주의를 공상에서 과학으로 전화시켰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레닌이 정립한 전위조직노선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전위당의 건설을 주장하면서 멘세비키와 달리 느슨한 조직이 아니라 강고한 직업적 혁명가들의 조직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당시 짜르 러시아의 엄혹한 조건 속에서 단련되고 엄선된 혁명가들의 조직이 아니고서는 혁명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위조직의 존재가 단지 비합법조건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전위조직의 본질은 비합법조건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 아니다. 전위조직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강고한 의식적 인자들의 결합이라는 것을 본질로 한다.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의식적 운동이고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적 조직은 강고한 사상적 통일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상적 통일이라는 것을 기초로 하여 전위조직은 성립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위조직을 평가할 때 그 조직이 어느 정도의 사상수준에 도달했는가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사노맹을 평가할 때도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노맹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 수준이 어떠하였는가, 사노맹을 가능하게 했고 발전시켰고 나아가 소멸하게 했던 사상적 조건은 무엇인가가 사노맹의 실체를 확인하고 교훈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노맹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80년대 전위조직운동의 맥을 이었고 그 정점에 있었던 조직이다. 사노맹이라는 구체적 조직이 대두된 것은 CA그룹이 안기부에의해 침탈당하여 붕괴된 후에 재건된 노동자해방투쟁동맹에서의 논쟁이었다. 87년 당시 민중후보전술을 사상 최초로 구사했던 노동자해방투쟁동맹에서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다수파와 소수파의 전술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논쟁 속에서 쟁점이 단지 전술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넘어서서 사회주의 운동의 이해 자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 차츰 분명해졌고 그 결과 대선에서 백기완 후보가 완주를 하지 못하고 중도 사퇴하는 상황을 평가하면서 대선 이후 88년 4월 소수파는 기관지였던 ��선봉�� 편집부를 중심으로 조직분리를 단행한다. 이 때 소수파는 ‘분리선언서’를 공개 배포했는데 거기에서는 1) 전위당 건설을 일정에 올리는 것, 2)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를 부정하는 기회주의 노선에 대한 투쟁, 3) 사회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선동을 제기하였다. 바로 이 점들이 사노맹의 출발의 문제의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리선언서가 나오게 된 것은 80년대 중반까지의 운동이 의식적으로 사회주의운동을 추구하였지만 머리로는 사회주의를 꿈꾸지만 실제 정치적 수준에서는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에 머물렀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였다. 파쇼타도, 미제축출이라는 과제에 대해서는 온 몸을 던져서 투쟁하지만 대중에게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것은 한 번도 제기한 적이 없었던 지난 운동의 과정에 대한 평가가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을 넘어서는 본격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88년 분리 직후 사노맹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사상적 지표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사노맹은 약 2년에 걸친 준비기간을 거친다. 이 기간에 사노맹의 사상적 노선을 규정한 것은 ‘사노맹 출범의 역사적 의의와 사노맹 준비위의 당면임무’라는 문건이었다. 일면 TASK라 불린 이 문건은 사노맹의 강령적 문건이었다. 이 문건에서는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제기한다는 것의 정치적 의미가 생생하게 실려 있었다. 88년과 89년의 당시의 상황은 노태우 파쇼정권 치하였다. 당시 많은 장기수들이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30년, 40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상황이었다. 장기수들의 감옥생활을 묘사했던 ��녹슬은 해방구��라는 소설은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제기한다는 것이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는가를 잘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맹 준비위 시절에 그 조직원들은 TASK로써 자신들의 사상을 무장시켰다. 이 문건은 비밀문건이었는데 문건의 각 부수마다 일련번호를 붙여서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게 하였다. 실제로 89년 11월 사노맹이 공식출범하기까지 이 문건은 단 한번도 외부로 유출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사노맹 준비위의 조직성원들의 강고한 열의와 보안의식이 존재했던 것이다. 40년의 단절을 딛고 사회주의를 대중운동으로 제기한다는 과제가 주는 벅찬 희열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상적 통일이 있었기 때문에 사노맹은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면 TASK 이외에 사노맹 준비위 시절에 사노맹 준비위의 사상노선을 규정했던 주요한 문건들이 있다. 그것은 일대전환이라는 문건과 정세분석 방법론 그리고 89년에 있었던 천안문 시위에 대한 평가였다. 일대전환은 조직이 어느정도 정비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세분석 방법론은 80년대 중후반의 전술논쟁의 성과를 집약한 것으로서 정세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기초를 세운 것이었다. 그런데 천안문 시위에 대한 평가 문건은 문제가 된다. 바로 여기에 당시 사노맹 준비위의 사상적 한계가 집약되어 있다. 즉, 천안문 시위에 대한 등소평 등의 폭력진압을 지지한 것이었다. 이 당시 사노맹은 쏘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 조심스럽게 우편향을 지적하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천안문시위를 일종의 부르주아운동으로서 성격을 갖는 것이고 그에 대한 공산당의 진압은 정당한 것이었다는 인식을 했던 것이다. 물론 천안문 시위는 2010년 지금 시점에서 세계사적으로 공인된 평가가 없다. 여전히 중국공산당은 천안문 시위를 반혁명 폭란이었다고 규정하고 있고 천안문 시위를 주도했던 지도부들은 미국 등으로 망명하여 부르주아 인텔리로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천안문 시위에서 중국의 사회주의를 해체하려는 일련의 부르주아적 흐름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점들은 천안문 시위에 대한 단지 현상적인 접근일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즉, 쏘련 붕괴의 원인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고 또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본다면 천안문 시위는 단지 부르주아적 반혁명 폭란이라 볼 수는 없다. 천안문 시위가 발생했던 근본원인은 80년대에 인민공사라는 집단적 농업을 해체하여 다시 소농생산체제로 복귀시키고 또 개인의 영업활동을 열어주고 또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하여 이를 ‘사회주의 상품경제’라고 규정했던 중국사회의 80년대 상황의 모순의 결과였던 것이다. 즉, 농민이 사회주의 인민에서 다시 피수탈자로 전락하고 사회주의가 서서히 자본주의로 전환되고 있던 당시 중국 사회의 모순의 집약으로서 인민들의 불만이 천안문 시위로 폭발했던 것이다. 80년대 중국사회의 모순은 물가의 급격한 인상, 빈부격차의 확대, 민주주의의 질식, 사적 소유의 급격한 확대 등으로 중국 사회전체가 모순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중국공산당은 천안문 시위를 폭력진압하고 나서 1990년대에 도시와 공업에서 사회주의적 관계를 해체하고 자본주의를 본격 도입한다. 80년대는 농업에서 사회주의를 해체하고 90년대는 도시와 공업에서 사회주의를 해체하는 것이 일련의 흐름이었고 천안문 시위는 그 중간에서 폭발했던 민중들의 불만의 집약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노맹 준비위가 천안문 시위에 대한 폭력진압을 지지했던 것은 당시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내적인 모순과 운동, 역사에 대해 인식이 일천했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주의 운동은 논리만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것인데 세계사회주의 운동, 사회주의 진영의 역사, 특히 현대사에 대해 확고한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사노맹 준비위가 한국사회에서 40년의 단절을 딛고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제기한다는 올바른 방침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확고히 하지 못했다는 것과 관련된다. 당시의 쏘련, 중국, 그리고 이북에 대해 나아가 세계 사회주의 운동과 건설에 대해 정보가 부족하고 분석이 부족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한계로 인하여 향후 안기부의 본격 침탈이 있은 후에 사노맹의 재건이 사실상 실패했던 것이다.

한편, 1991년 쏘련이 붕괴된 사건은 사노맹 운동에 대해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많은 조직원들이 사상적 혼란을 겪고 있던 당시에 사노맹은 ‘모델로서의 사회주의가 아닌 운동으로서 사회주의’라는 테제를 제기한다. 모델 즉, 쏘련이 붕괴되었지만 그것이 사회주의 운동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며 운동으로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고 올바르다는 파악이었다. 이는 혁명적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사회주의의 본질은 억압과 착취에 맞선 운동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종의 모델인 쏘련이 붕괴되었지만 모델은 운동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 운동의 본질은 모순의 전개이고 한국사회와 세계사적인 모순을 파악하고 그에 입각하여 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이 당시의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사상적 테제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는 청산주의를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유효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사노맹은 사회주의 운동의 국제화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운동의 국제화를 통하여 쏘련의 붕괴라는 세계사적인 변동에 대처하고자 했던 것이고 이는 정확한 방침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노맹은 20세기를 규정했던 사회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진영의 대립, 즉, 진영테제가 소멸한다는 것, 미국중심의 단일체제가 성립할 것이라는 것 등을 제기하고 본격적인 자기반성과 운동의 질적 심화를 도모한다.

이러한 것이 사노맹을 규정했던 사상의 대체적인 흐름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레닌주의이다. 레닌의 삶과 사상을 통할 때만 전위조직이라는 현실적인 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노맹의 사상노선의 특징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스스로의 고민과 반성을 통해 돌파해나간다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창조적인 여러 지점들을 확보한다.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정립한 것, 정세분석의 방법론을 정립한 것, 전위조직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대중적 전위조직론을 정립한 것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계는 세계사에 대해 정보와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된 바가 없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혁명과 건설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가 절실한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사노맹의 이러한 사상적 한계는 역사적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사노맹의 정치노선에 대한 평가

사노맹의 정치노선은 전략노선으로 집약된다. 사노맹의 출범당시였던 89년은 노태우 파쇼치하였다. 당연히 파시즘의 타도가 일차적인 목적이었고 파시즘을 타도하고 미제를 축출하는 것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전화한다는 방침을 가졌다. 이것이 민족민주변혁전략(NDR)이었다. 이러한 방침은 사노맹에서 정립된 것이 아니라 사노맹의 전신이었던 노동자해방투쟁 동맹 당시에 정립된 것이었다. 당시 ‘새마을 운동’이라는 가제 하에 알려졌던 『성격과 임무』에서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정립된 것이었다. 이는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한국사회의 보편적 성격을 신식민지라는 특수성과 결합시킨 것으로서 사회구성체 논쟁을 전운동진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다. ��성격과 임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사를 담고 있고 나아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전법칙으로서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테제를 제기한다.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으로써 자본축적을 강행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예속의 심화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변혁전략으로서 변혁의 물질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이라는 범주를 제기하고 민족민주변혁의 사회주의 변혁으로의 성장전화라는 테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노선을 바탕으로 사노맹의 현실적인 정치노선이 구체화된다.

사노맹은 전술을 특히 중시했는데 사노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CA(제헌의회그룹)의 생성 자체가 전술논쟁과 전술적 실천을 통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사노맹에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주요 계기마다 사노맹의 전술결의라는 팜플렛을 발간하였고 또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사노맹 명의의 찌라시를 대량으로 배포하였다. 사노맹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전에 ��노동해방문학��이라는 합법월간지를 창간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적인 선전활동을 한다. 이를 통해 NL과 PD 등의 좌,우편향에 대한 투쟁을 한다. NL의 식민지반봉건론을 비판하고 PD노선이 민주주의 혁명에서는 좌편향이고 사회주의 혁명에서는 우편향이라고 통박을 한다. 박노해씨가 검거되고 ��노동해방문학��이 침탈당한 후에는 ��우리사상��이라는 무크지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대중적인 선전활동을 했다.

사노맹의 전술결의 중에서 중요한 것은 민자당 합당에 대한 것이었다. 대중적으로 영향을 상실한 파쇼세력이 살아남기 위해 노태우와 김영삼, 김종필이 연합하여 민자당을 창당한 사태에 대해 사노맹은 즉각적으로 파쇼적인 보수대연합이라고 규정하고 일종의 반혁명 연합이 창출된 것으로 파악했다. 실제로 이들 김영삼, 김대중 등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파쇼세력과 연합 혹은 정치적 동맹을 맺었기에 80년대의 가열찬 운동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리한 개량주의의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80년대 추진되었던 민족민주변혁은 유산되었고 정치적 지형은 서서히 자본가계급 전체 대 노동자와 민중의 대립으로, 즉, 사회주의 변혁 단계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사노맹의 전술론의 특징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정립했다는 것이다. 전술의 원칙으로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부정하고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게 운동의 성과를 넘겨주는 NL에 대한 사상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던 것이다. 사실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단절되었던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무엇보다 우선시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 지금 상황에서도 민주노동당의 민주당과의 민주대연합이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80년대 운동의 성과를 무(無)화시키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사노맹이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전술의 차원에서 관철시키고자 노력했던 것은 역사적 의의가 있다.

또한 사노맹의 정치노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선전선동이었다. 월간 ��노동해방문학��의 글들을 통해 제기되었던 구호였던 ‘가라 자본가세상, 쟁취하자 노동해방’이라는 구호는 한 때 대중적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리고 사노맹은 사노맹 명의의 대중 선전물을 비합법 인쇄소에서 인쇄하여 대량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인 스피커를 통해 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선동을 시도하기도 했고 또한 비디오 등 영상매체를 통해 선전을 구상하기도 했고 또 91년 5월 투쟁 당시에는 사노맹의 깃발을 들고 노동해방선봉대를 조직하여 직접적인 선동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대중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사회주의 세력이 단지 지하조직이 아니라 대중적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한다는 것이었는데 바로 이점이 안기부의 사노맹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가져오는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이 정치노선에서 전위노선이라 할 수 있다. 전략노선에서 과학적 변혁론을 정립하는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전술결의를 정립하는 것,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정립하고자 가차없는 투쟁을 전개했다는 것,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선전, 선동을 했다는 것 등이 정치노선에서 전위주의라 할 수 있다.

4. 사노맹의 조직노선에 대한 평가

사노맹은 80년대를 관통했던 전위조직운동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사노맹의 조직노선의 기본은 전위조직노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전위조직의 본질은 무엇인가? 전위조직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의 원형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찾을 수 있다. 조합주의적 정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정치를 하는 직업적 혁명가의 조직으로서 레닌은 전위조직론을 정립했다. 이는 대중조직과 구별되는 전위조직론을 정립한 것인데 레닌의 전위조직론은 멘세비키들의 조직론에 대한 투쟁을 통해 정립된 것이었다. 멘세비키들은 정치적으로 지지하기만 하면,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를 말하기만 하면 당원으로 인정하고자 했으나 레닌은 이에 반대하고 당의 한 조직에 속하여 구체적인 당적 실천을 할 결의가 되어 있는 성원만 당원으로 인정하고자 했다. 이러한 레닌의 투쟁을 통하여 정립된 전위조직론은 20세기 공산당들의 조직론의 원형이 되었는데 이것의 본질은 한 마디로 ‘사상적 통일’을 기초로 조직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강고한 사상적 통일을 기초로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과학적 노선을 따라 사회주의 혁명을 밀고 나가는 힘으로서 전위조직! 이것이 레닌주의의 전위조직론이었던 것이다. 전위조직은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한 과학적 노선으로 사상이 통일되지 않는다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고 설혹 성립된다고 해도 유지가 불가능하고 나아가 혁명의 추진력으로 기능할 수 없다.

이렇게 전위조직의 핵을 사상적 통일로 볼 때만 전위조직의 현실적 건설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전위조직은 대중조직과 달리 밑으로부터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건설되는 것이다. 과학적 노선을 정립하고 그 노선에 따라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사노맹을 포함하여 20세기의 모든 전위조직들은 위로부터 건설되었다. 중국의 예를 보아도 중국공산당은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서 1920년에 건설되었는데 창립당시 당원 수가 약 50명에 불과하였다. 왜냐하면 맑스-레닌주의 하에 조직을 건설할 수 있는 사상적 수준의 사람이 50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적 통일이 된 그 50명은 불과 30년 만에 중국을 뒤집어 엎었다. 정확한 노선이 주는 힘이었고 또 정확한 노선의 정립을 위한 치열한 사상투쟁의 결과였다.

사노맹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사노맹이 노동자해방투쟁 동맹의 소수파로서 분리될 당시 인원은 약 200-300명이었다. 이들 중에는 전위적 수준에 미달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사노맹의 출범을 위한 준비기간이 2년을 소요한 것이었다. 강고한 사상적 수준을 확보하고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위한 필수실천을 하면서 사노맹의 준비기간이 흘렀던 것이다. 사노맹의 경우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건설이라 할 수 있다. 일명 TASK라 불리는 강령적 문건에 동의하는 것을 기초로 조직이 건설되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노맹의 사상적 통일의 핵은 TASK라 불리는 문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인식이 일천했다는 것, 그러나 그만큼 혁명에 대한 열의가 강했다는 것이 이러한 과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은 물론 사상적 통일이 요구하는 수준은 사노맹 당시와 다르다. 즉, 보다 풍부하게 사회주의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전위조직을 건설할 수 있는 사상적 통일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20세기를 관통하는 세계사적인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역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한국사회의 계급지형과 변혁전략에 대한 이해 등이 지금 시기 전위조직을 건설할 사상적 통일의 내용일 것이다. 이렇게 전위조직은 사상적 통일을 핵으로 하여 위로부터 건설된다는 것을 사노맹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노맹은 단지 전위조직노선만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사노맹은 80년대 운동의 경험을 종합하면서 ‘대중적’ 전위조직론을 세웠다. 바로 이 점에서 사노맹은 사노맹 이전에 있었던 다른 전위조직운동과 차별성을 갖는 것이었다. 대중적 전위조직론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노맹의 독창적인 노선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노맹에 고유한 것은 아니었다. 모택동의 대중노선 또한 일종의 대중적 전위조직론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로 사고한다는 것과 한국에서 전위조직론의 형태로 구체화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사노맹의 대중적 전위조직론은 전위조직이 대중적 영향력을 갖고 대중운동과 깊이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제기한 것이었고 실제로 그러한 실천을 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대중조직들에 수임자를 파견했고 또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선전‧선동했던 것이다. 안기부가 사노맹에 대해 당황했던 것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인데 사노맹이 쉽게 깨지지 않은 것은 보위투쟁의 영역을 제외하더라도 노선의 측면에서 대중적 전위조직노선이었기 때문이다. 즉, 대중과의 결합력이 있기 때문에 일부 지도부가 체포되더라도 조직이 굴러가고 재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노맹 이전 과거 전위조직들은 비합법상태로 자신의 존재를 대중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노맹은 자신의 출범을 출범선언문을 배포하여 대중적으로 알렸고 각종의 매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사노맹이 이러한 노선을 취한 것은 운동의 발전상태와 객관적 요구에 조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주의 세력이 단지 선전그룹에 머물고 자신을 은폐하는 상태에서는 발전하는 대중운동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 한국 사회의 사회주의 운동의 단계가 사회주의 세력이 대중적으로 발돋움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 이를 위해 필요로 되는 보위력과 조직구조를 갖출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이 고려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중적 전위조직노선은 당시의 운동과 조응하는 것이었고 사노맹은 빠른 속도로 조직을 성장시켜 갔다. 분리 당시 200명 수준에서 불과 3년 만에 비합법상태로 2000명이 넘는 조직원의 조직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장은 대중적 전위조직노선을 취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노맹이 성장함에 따라 조직의 구조는 변화를 거듭한다. 사회주의 운동의 조직원리의 기본은 민주집중제인데 이것이 조직의 발전에 따라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전위조직에서 민주집중제는 지도의 집중과 분권화로 요약된다. 강력한 지도의 집중이 없다면 전위조직에서 사상의 통일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곧바로 전위조직의 붕괴로 연결된다. 따라서 지도의 집중은 사상적 통일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을 위해, 즉, 지도의 집중을 위해 보고의 집중이 필요하다. 전위조직의 모든 성원들이 자신의 활동과 대중운동의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보고를 하고 이러한 순환을 통해 자신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 지도의 집중, 보고의 집중의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보고의 집중은 과거 인적 보고였다면 사노맹의 경우 조직이 커짐에 따라 문서를 통한 보고로 정착되어 갔다. 문서의 보고로 정착되어 갔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데 구두 보고가 아닌 문서를 통한 보고는 보고의 책임성이 한층 강화되어 간다는 것, 보고의 정확성과 체계성이 강화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조직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지도의 집중 그리고 그를 위한 보고의 집중이 강화되어가는 것을 기초로 사노맹의 경우 분권화가 심화되어 갔다. 수십명 혹은 1-2백명의 규모일 경우 중앙위원들이 모든 사안에 대해 직접 지도하고 관장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조직이 500명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 나아가 수천명에 이르는 경우 중앙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분권화가 조직의 발전을 위해 불가피해진다. 실제로 사노맹의 경우 분권화가 상당한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분권화의 의미는 각각의 기관이 자신의 영역에 대해 책임의 정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도권 위원회의 경우 91년 경에 이미 약 300명이 넘는 조직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는 웬만한 정파들의 조직규모를 넘는 것으로서 수도권위원회 자체가 전술지도, 조직지도, 선전선동 등 제반의 영역에서 완결적인 책임을 갖고 지도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실제로 대중적인 선전선동의 경우 이미 중앙기관의 책임이 아니라 지방위원회의 책임으로 이관되었던 것이다. 조직원의 선발도 과거에는 중앙에서 결정했다면 상당한 정도는 지방위원회로 이관되었던 것이다. 또한 재정에 있어서도 각각의 기관이 자기책임 하에 스스로 재정을 조달하는 방향으로 갔던 것도 분권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사노맹 초기에는 중앙이 일체의 자금을 모금하여 각각의 기관에 배분했다면 조직원리로서 분권화의 강화에 따라 재정 또한 각각의 기관 자체의 책임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직의 확대에 따라 분권화는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강력한 사상적 통일이 결여된 상태에서 분권화는 불가능하고 조직의 이완과 분열에 기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분권화의 전제는 강력한 사상적 통일이다. 이는 사노맹의 경우 사상적 통일의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상적 통일의 수준이 높은 만큼, 사상적 통일이 제고되는 만큼만 전위조직의 확대가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민주집중제는 사노맹에서 지도의 집중과 분권화의 강화로 구체화되었다. 물론 이는 사노맹에 고유한 것은 아니고 레닌의 일명 ‘편지’에서 정식화된 적은 있는데 이를 조직현실에 적용하여 구체화한 것은 사노맹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노맹의 전위조직노선의 정점은 당건설론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 초에 비합법조직이었던 <인천지역민주노동자 연맹>이 합법적 사회주의당 건설노선으로 전환하여 한국노동당을 창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것은 쏘련의 붕괴를 맞이하여 전위조직운동에 대한 일종의 청산주의였는데 이에 대응하여 사노맹의 당건설노선을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고 또 당시의 운동의 요구가 전위당 건설을 일정에 올릴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주체역량의 경우도 당건설을 현실적으로 사고할 만큼 성장한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노맹은 합법매체인��우리사상�� 2호에서 ｢1994년 봄까지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자｣는 문건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사노맹이 당을 어떻게 사고하는가, 당건설의 방법을 어떻게 보는가, 당건설의 조건과 요체는 무엇인가 등 당과 관련한 일체의 노선이 담겨 있었다. 그 중 중요한 것만 보면 당건설의 4가지 요건으로서 1)정치지도력을 가진 당 2)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당 3) 결속의 공고성 4) 대적(對敵) 관계의 안정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당건설의 5단계로 1) 정파간 신뢰형성 및 공동사업기반의 구축 2) 정파간 연계구축 및 공동투쟁의 시기 3) 당의 부분기관의 창설 및 공동실천의 전면화 4) 당건설을 위한 준비기관의 건설 5)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결성 등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당건설론의 제기에서 중요한 것은 당건설을 자기 정파의 확대로 보지 않고 노동자계급 전체의 정치적 역량의 결집으로 본다는 것, 각 정파 공동의 과제로 당건설을 제기한다는 것, 당건설의 요건을 최초로 정식화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문건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노동당처럼 비합법노선을 청산하고 합법주의로 전환하는 것을 반대하고 합법의 영역과 비합법의 영역에서 동시에 당건설을 추진하고 이들의 통일로서 노동자계급의 전위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실제로 한국노동당은 그 이후의 행보가 보여주는 것처럼 청산주의의 노선을 걸어갔다. 그러나 사노맹의 경우 이러한 청산주의를 강하게 반대하였기에 비록 안기부의 전면 공세에 의해 붕괴되었지만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자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노맹의 당건설론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많이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운동의 쇠퇴가 정점에 달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또 사상적 지형도 많이 바뀌었다. 90년대 초반의 경우 제 정파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맑스-레닌주의였다. 그러한 공동의 지반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공동의 실천을 제기하고 제 정파 공동의 과제로 당건설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상적 지형은 극심한 사상적 혼란을 보여주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뜨로츠키주의가 강하게 맑스-레닌주의를 부정하고 있고 또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율주의의 경우 맑스주의적 접근 자체를 부정하고 대중을 몽매로 이끌고 있다. 또 여전히 쏘련 붕괴의 영향이 강하여 청산주의가 강하고 기본소득론 등 공상적 노선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사노맹이 당건설을 제기할 때와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지금의 상황에서 당건설은 사상의 건설이라는 점을 요구한다. 제반의 극심한 사이비 이론에 대해 비판하고 사상을 건설하는 것을 통해, 그리고 쏘련 붕괴의 원인과 21세기 사회주의 전망을 세우는 것을 통해당건설에 접근해 가야 한다.

5. 사노맹의 보위투쟁과 재정투쟁

전위조직은 계급사회에서, 더구나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위하지 못하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더구나 80년대 말의 파쇼의 통치 하에서 보위투쟁은 비합법전위조직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사노맹은 시작부터 보위투쟁을 겪어야 했다. 사노맹이 노동자해방투쟁 동맹의 소수파로서 분리를 할 때 은밀히 분리한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분리선언서를 배포하는 정치행위를 통해 분리를 했다. 따라서 당연히 안기부의 추적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안기부의 수사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소독(미행을 따돌리는 것)작전이 초기부터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초기에 안기부의 수사망을 따돌리는 것에 성공함으로써 사노맹은 약 2년 간에 걸친 준비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다.

안기부는 사노맹이 출범하고서 긴급하게 대응을 했는데 사회주의 세력이 대중적으로 대두하는 것은 안기부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노맹에 대한 추적이 시작되고 안기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노맹은 1989년 11월 노동자 전국대회에서 공개적으로 출범선언문을 배포했다. 자본가와의 계급전쟁을 시작한다는 것, 전세계노동자계급에게 한국에서 사회주의 조직의 출범을 보고하는 것 등이 출범선언문의 내용이었다. 이후 안기부는 사노맹의 몇몇 조직원을 검거한다. 그러나 과거의 경우 조직원 일부가 검거되면 조직 전체의 붕괴까지는 불과 몇 개월이 걸린 뿐이었지만 사노맹은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 조직원 일부가 검거되었음에도 사노맹은 더욱 더 대중적인 활동을 강화했다. 여기에서 안기부는 당황하게 되었다.

안기부의 수사망이 좁혀왔을 때 특히 출범 1년 후인 1990년 후반에 사노맹은 일제히 소개작전을 한다. 안기부의 수사망을 따돌리고 일부 노출된 조직단위를 소독한다. 이것이 출범후 1차 보위투쟁이었다. 이후 안기부는 방식을 바꾸어 사노맹의 골간을 파악하여 검거하는 작전을 편다. 이때 연락국장이었던 현정덕씨가 검거되었고 이후 몇 개월 후에 박노해, 김진주씨가 검거된다. 이와 더불어 합법매체였던 ��노동해방문학��이 침탈되었고 핵심적인 기관이었던 비밀인쇄소가 침탈된다. 이 상황은 사노맹으로서 위기의 발생을 의미했다. 당시 박노해씨는 중앙상임위원으로서 조직의 최고지도부였는데 여기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사노맹은 전혀 깨지지 않았다. 즉시 소독투쟁을 전개하고 조직전체를 소개하고 안기부의 침탈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조직 전체를 개편한다. 이것이 2차 보위투쟁이었다. 이후 약 1년간 사노맹은 조직의 안정을 이룰 수 있었고 조직활동은 확대된다. 인쇄소가 침탈된 후에도 불과 한 두달만에 비합법인쇄소를 재건했고 조직구조를 분권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서 구조적으로 보위태세를 강화했다. 기관과 기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모든 보고를 문서화하고 그러한 문서의 전달을 전문적으로 책임지는 보위기관으로서 연락부를 강화한 것이었다.

사노맹이 공식출범 후에 안기부와 3년간이나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연락부의 존재에 크게 기인한다. 사노맹이 과거의 전위조직과 다른 점은 대중적 전위조직노선을 취한 점이 크지만 거기서 비롯되는 보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위 전담부서인 연락부를 갖춘 것이었다. 연락부는 기관과 기관,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로서 강한 의식을 소유하고 또 전문적으로 훈련을 거쳐서 선발된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연락부원들이 안기부의 미행을 차단시켜 주었기에 사노맹이 3년간 버틸 수 있었고 안기부로서는 연락부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사노맹과의 투쟁에서 당황했던 것이다.

한편 사노맹은 당시로서는 첨단이었던 컴퓨터를 광범하게 사용했고 모든 문서의 전달에서 보안을 강화할 수 있었다. 또한 전자수첩 등을 사용했는데 수첩의 암호기능과 또 개인적인 암호화라는 이중의 암호기능을 통해 검거시에도 상당한 기간 시간을 벌 수 있었고 그리하여 체포된 조직원의 해당 기관이 일제히 피신하고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렇게 보위투쟁을 위해 사노맹은 당시로서는 첨단기술들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연락부를 넘어서서 사노맹은 보위투쟁을 위해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부서를 수립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보위에 대한 노력이 당시로서는 안기부에 깨지지 않는 사노맹이라는 평가를 가져왔던 것이다.

여기서 보위를 보다 엄격히 보자면 개인보위와 조직보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개인보위는 안기부의 수사망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종료된다. 수 차례의 소독투쟁을 통해 미행이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고 자신의 안가를 옮기는 것으로 개인보위는 대체로 확보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하면 활동하는 부서나 지역을 옮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직보위는 차원이 다르다. 91년 박노해씨라는 최고지도부를 검거한 안기부는 그럼에도 사노맹이 깨지지 않는 것을 보고서 수사방식을 바꾸었다. 안기부의 수사방식의 변경은 사노맹원임을 인지하고 거처까지 혹은 사무실까지 확인하고서도 체포를 하지 않고 조직전체를 손바닥 보듯이 확인할 때까지 아주 은밀한 미행을 하거나 아니면 미행조차 중단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안기부는 1년여에 걸쳐서 전국에 걸친 사노맹의 지방위원회의 비합법사무실을 인지할 수 있었고 중앙위원회가 열리는 시점을 택하여 전국의 사노맹 조직을 침탈할 수 있었다. 1992년 4월 29일 사노맹의 중앙위원회가 모처에서 열리는 시점에 안기부는 동시에 약 70명의 중앙위원과 지방위원 그리고 조직원을 체포할 수 있었다. 사노맹의 골간이 무너진 것이었다.

그러나 사노맹은 당시 대중적 기반이 있었기에 곧바로 재건될 수 있었다. 약 2-3달에 걸쳐 재건중앙이 건설되었고 활동에 들어갔다. 이러한 재건중앙의 활동은 약 2-3년 간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사노맹은 해산의 길로 접어드는데 해산의 원인은 안기부의 침탈로 인한 보위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재건중앙의 노선상의 문제였는데 본질적으로는 사상적 동요로 인한 것이었다. 안기부와의 힘겨운 보위투쟁에 대한 두려움, 비합법 생활이 주는 단조로움과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조직 전체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사노맹은 비록 붕괴되었지만 약 3년간에 걸친 안기부와의 보위투쟁은 운동진영 전체의 자산이다. 보위투쟁이라는 기술, 그리고 대중적 전위조직노선이라는 노선이 통일적으로 결합될 때 대적관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노맹이 깨진 것은 보위 문제가 컸지만 사노맹이 재건에 사실상 실패한 것은 보위의 문제라기 보다는 쏘련 붕괴의 영향으로 인한 사상적 요인이 컸다.

한편 이러한 보위투쟁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위투쟁과 재정투쟁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을 보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 정보기관의 미행이 있는 것으로 판단될 시에는 기존의 안가를 버리고 새로운 안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은 모두 재정이 요구된다. 또한 그것이 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가 될 때, 예를 들어 일정한 핵심조직원에 미행이 붙은 것으로 판단될 때에는 안기부의 수사망이 조직 전체에 상당히 포괄적으로 접근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조직전체가 안기부의 수사망으로부터 일제히 탈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십군데의 거처와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은 모두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것이다. 실제로 1990년에 안기부의 수사망이 좁혀 올 때 사노맹은 조직의 소개 전에 재정투쟁을 먼저 벌였고 수억의 자금을 마련하여 조직의 보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것은 물론 대중적 전위조직노선에 따른 것이다. 과거 사노맹 이전의 전위조직들은 안기부의 수사가 좁혀 오면 ‘도피’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그에 따라 자연히 활동이 장기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노맹은 안기부의 수사망이 좁혀 오더라도 활동의 중단이 아니라 보위투쟁을 통해 맞대응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사노맹은 이러한 재정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사노맹의 공식출범 이전에 출범을 위한 재정투쟁(보급투쟁)을 하였는데 신혼비 작전이라 명명하고 수억의 자금을 모금하였다. 과거 운동진영에서 볼 수 없었던 대공업적인 재정조달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도 발생했는데 예를 들면 어떤 조직원의 경우 집에서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집안의 금붙이를 다 들고 나온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사노맹은 그 조직원을 비판하고 집안에 다시 돌려줄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같이 사노맹 조직원 전체가 재정에 대해 책임을 갖고 활동한다는 것은 과거의 조직운동에서 볼 수 없었던 것으로서 재정문제에 대한 운동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 재정투쟁의 면면을 보면 학생출신 조직원들은 재정을 상당히 모금할 수 있었던 데 반해 노동자 출신으로서 대부분 해고자였던 조직원들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때에는 모든 조직원들이 동일한 책임을 분담한 것이 아니라 일부 뛰어난 역량이 있는 사람이 상당부분의 재정을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금된 재정을 각각의 기관들에 골고루 분배하여 사무실을 마련하고 보위장치들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이것은 재정에 있어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것으로서 일종의 공산주의적 재정원칙이었다. 그러나 조직이 성장하고 확대됨에 따라 재정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공산주의적 재정원칙이 사회주의적 재정원칙으로 전환된다. 즉,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가져간다는 원칙이 도입된 것이다. 이는 사노맹의 많은 기관들이 각각 책임지고 재정을 조달한다는 것이었는데 재정에 있어서 일종의 분권화였던 것이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사노맹이 대부분의 주요 기관들에게 재정사업을 하게 하였다. 예를 들면 재정을 모금하여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을 모금하여 그것으로써 학원을 차리고 그 학원 자체가 비합법 사무실이 되는 양상이었다. 또 이와 별도로 재정사업부서가 각각의 기관에 설치되고 재정사업을 전문적으로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은 활동과 재정사업이 통일된다는 것인데 이를 통하여 사노맹은 한결 조직의 안정을 기할 수 있었고 활동력을 배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전위조직에 있어서 보위는 재정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다. 이 점은 향후 건설될 전위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의 정세에서 합법공간을 활용한다 해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비공개영역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위와 재정을 통일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조직노선으로 구체화하는 것을 통해 전위조직은 보위, 재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책임있는 정치세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

6. 결론

사노맹의 경험은 많은 영역이 있지만 전위조직노선이라는 점에서는 대체로 이와 같다. 이는 현재의 우리 운동에서 전위노선이라는 것이 실종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사상에서, 정치에서, 조직에서, 그리고 재정과 보위에서 전위노선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떠해야 하는가가 문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노맹의 경험에서 종합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 즉, 사노맹의 생성과 소멸에서 얻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교훈은 전위조직은 사상을 먹고 자라고 사상이 흔들리면 전위조직 자체가 흔들리고 나아가 소멸한다는 것이다.

사노맹이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40년의 단절을 딛고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전조직원의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30년, 40년간 감옥살이를 하는 장기수가 존재하던 상황에서 사노맹의 출범은 비상한 결의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사노맹의 사상에서 결정적 한계로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약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노맹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모토로 하였고 출범선언문에서 각국 공산당과 노동자계급에게 사노맹의 출범을 알렸지만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에 대해 일천했다. 그에 따라 쏘련의 붕괴, 중국의 자본주의화라는 세계사의 대격변, 대반동의 파고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큰 데 앞으로 건설되는 사회주의 운동, 전위조직운동은 철저하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국제적 운동이 되어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세계혁명에 기여하는 것을 통해 일국의 혁명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존하는 세계의 지배질서인 제국주의질서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을 할 때만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 전위조직운동이 가능하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노맹에 대한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평가는 사노맹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 나아가 앞으로 사회주의 전위조직운동을 꿈꾸는 사람들의 몫이다. 이 글은 단지 지금의 상황에서 취약해져 있는 전위주의를 복원하고 전위노선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과거의 모든 혁명과 달리 의식적인 혁명이고 사회주의 건설은 자본주의의 무정부성과 달리 의식적으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많이 취약해져 있지만 전위조직운동의 부활은 역사의 필연이다. 사노맹이 40년의 단절을 뚫고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제기했다는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건설될 전위조직운동은 사노맹의 경험을 흡수하고 지금의 정세와 계급적 지형, 그리고 세계사의 조건에 맞는 보다 고도의 운동을 체현할 것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