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간단한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한국 전쟁 이후 최초의 대중적 정치 동맹파업은?

구로동맹 파업.

딩동댕! 정답이다.

이 구로동맹파업 투쟁의 경험이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이끄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도 두말하면 입이 아픈 소리이다. 그런데 바로 그 구로동맹파업을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로 파견된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지지하고 연대투쟁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파독 선배 운동가 동지들은 스스로의 노동권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온 것은 물론이요, 한국의 반독재민주화투쟁과 민주노동운동에 대한 연대투쟁을 전개하였다. 베를린에서는 대대적인 가두투쟁을 전개하였고 ‘공장의 불빛’ 연극 공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로동맹파업과 한국 노동자의 현실을 알려냈다.¹⁾ 이러한 활동이 국제적인 연대와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70년대 파독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상징적인 구호는 다음과 같다. Wir sind keine Ware! 즉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 30년이 지난 한국의 현실은 그것보다도 참혹하고 가혹하다. 3D업종,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임금체불은 기본이다. 구타에 산업재해²⁾ 그리고 단속추방. 아시아 각국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노동을 해온 지 20년이 가까운 데도, 한국은 이주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외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없다, 단지 불법체류 외국인이 존재할 뿐이다. 불행하게도,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가 비로소 드러날 때는 그들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다. 작년 2월 여수화재 참사 때가 그렇고, 지난 1월 7일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투쟁은 역사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웅변하며 지속하고 있다. ’95년 명동성당 농성투쟁당시 네팔 산업연수생 동지들의 구호는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때리지 마세요³⁾'였다. 그 이후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한 대리적인 투쟁기를 거쳐 2001년 평등노조 이주지부의 설립, 마침내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조합(MTU)의 결성이 이뤄졌다.⁴⁾

표적 단속추방 숨가뿐 투쟁

지난해 11월 27일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은 아침 9시와 9시 반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 라쥬 부위원장, 마쑴 사무국장을 각각 집과 사무실에서 동시에 연행했다. 작업장, 숙소 등 동선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전날부터 잠복하면서⁵⁾ 비디오 카메라까지⁶⁾ 동원한 치밀하게 준비한 표적 단속이었다. 지난 8월부터 시작한 야만적인 집중단속의 절정판이었다. 잔혹한 인간사냥은 즉각적인 분노를 조직하게 하였다. 11월 29일 37개 단체를 주축으로 “야만적 강제추방 중단, 출입국관리법 개악저지, 이주노동조합 표적 탄압 분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결성하여 조직적인 대응을 모색하게 된다. 12월 5일 비대위는 한국기독교회관 농성투쟁에 돌입하며 그날 1시 서울 출입국관리소 앞 규탄집회를 열었다. 12월 9일 세계이주민의 날에 이주노동자를 탄압하는 한국정부를 규탄하며 출입국관리법 개악 저지를 결의하는 집회로 대중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이날 대학로에 모인 700여 명의 동지(단속에서두 불구하고 이주동지들이 200명이나 참가했다)들은 보호소에서 전화 연결을 통한 까지만 동지의 투쟁발언에 환호하였다. 보호소 전화연결을 통한 까지만 동지의 발언은 이주투쟁 역사에서 다섯 번째였다.⁷⁾  연대 단위들은 항의성명을 이어갔으며 또한 세계 각지에서 항의 성명이 이어졌다. 항의투쟁은 비단 서울 경기 지역뿐만 아니라 청주, 대구, 대전, 오산 그리고 홍콩, 캐나다, 네팔, 영국, 방글라데시에까지 이어졌다.⁸⁾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연대 투쟁은 지속되고 있고 동지들을 구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12월 11일 비대위 집행위 4차 회의 때 만약에 있을지 모를 3인 동지들의 조기 추방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보호소의 직급이 낮은 공무원의 발언이라 신뢰할 수 없고, 국가인권위원회의 표적단속 여부에 대한 조사가 있으니 법무부가 쉽게 조기 추방하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는 중대한 착오였다. 불과 이틀 후 12월 13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닷새 앞두고 법무부는 3인의 동지들을 본국으로 강제추방했다. 당시 추방을 저지하기 위해 정문을 지키고 있던 대오는 동지들을 태운 차량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저지했고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정문이 아니더라도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의지로 개구멍을 뚫고 동지들을 빼돌렸다. 사실을 확인한 순간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도 농성장을 사수하고 있고, 주말을 제외한 매 평일에는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제와 집회를 병행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주노조 지도부가 강제추방 당하고 살인적인 단속으로 인해 이주노조 조합원이 300에서 100으로 줄어드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토르나 동지를 이주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추대하며 투쟁의 구심점을 살리려고 필사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계레 신문�� 2007년 12월 18일자는 강제추방 직전, 까지만 동지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강제로 납치되듯, 아무도 모르게 14시간이 걸려 네팔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가게 돼서 미안합니다.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내가 범죄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네팔에서 한국으로 가는 이주노동자들을 교육하고,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알려줄 겁니다. 그렇게 연대하면 한국의 동지들을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까지만 동지는 ‘네팔에서 한국으로 가는 이주노동자들을 교육하고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알려줄’ 것이라는 약속을 훌륭히 지켜내고 있다. 네팔 노총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본 바로 지난 12월 18일 “안전한 고용과 적합한 노동”을 주제로 카트만두에서 열린 세계 이주민의 날 네팔 행사에서 까지만, 라주 동지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네팔의 동지들에게 알려내고 있다.⁹⁾

까지만, 라주 동지의 본국 이송 이후 네팔에서의 지대한 관심과 활발한 투쟁에 비해 마쑴 동지의 방글라데시의 경우 상대적으로 미약해 보인다. 그것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자국 노동자들의 해외수출에 발목 잡힐까 두려워 한국정부의 탄압 요청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며,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이주투쟁에 대한 대응은 1960-70년대 파독 간호사ㆍ광부 투쟁에 회유하고 압박하던 한국 정부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그럼에도 지난 12월 마쑴 사무국장, 아누아르 이주노조 전위원장을 비롯해 약 60명이 한국 대사관 앞에서 규탄집회 진행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정부의 소수민족 좀마족 탄압에 대해 좀마족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그 실상을 알려내고 있다. 또한 한국 내 방글라데시 공동체는 특유의 결속력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탄압은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

노동‘탄압’부는 이주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 발악하고 있다. 작년 1월 고등법원의 ‘노동조합설립신고서반려처분취소’ 판결에도 불복하고 있다. 현재 이주노동조합 설립신고 문제는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법무부는 더하다. 차별금지법이 국회 상정을 위해 법제처로 이관되던 중 최초의 차별항목 중에서 성적지향, 학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상황 등의 7개 조항을 삭제하였다. 이상의 7개 조항은 한국사회에서 인권침해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항목이며 특히, 출신국가와 언어를 삭제한 것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겠다는 노골적인 저의를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출입국관리법 개악시도를 보면 점입가경이다.

1. 외국인 차별적 불심검문의 법제화

2. 영장 없는 사업장 조사의 법제화

3. 통제절차 없는 무기한 장기 구금 방치

4. 현대판 노예제도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의 명문화

5. 난민의 기본적 권리 방치한 채 각하ㆍ취소사유만 신설한 개정안

6. 원칙 없이 모호한 강제퇴거 대상자의 범위

7. ‘보호’조항 하나로 집행되는 절차 없는 강제수용¹⁰⁾

지문날인도 모자라서 홍체 검사까지 동원하려는 내용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해외 자본가들에 대한 입국 절차는 상당히 간소화하려는 것이 출입국관리법 개악의 실체이다.

한국의 자본과 정권은 이주민에게 불법체류자의 낙인을 찍고 적정량의 상대적 과잉인구를 위해 인간사냥과 추방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의 투쟁이 보다 높은 수위의 투쟁으로 전개되지 못하게 하고 기본적인 인권 옹호에만 머무르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주노조는 탄압하며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떡고물을 던지며 분할 회유하고 있다. 30억에 이르는 예산을 외국인 지원단체에게 던져주며 어떻게든 이주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갖고 단결하는 것을 막고자하고 있다.¹¹⁾

현대판 노예제인 산업연수생제도,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막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고용허가제, 출입국관리법 개악시도, 살인적인 인간사냥이 이주노동자를 억누르고 있다. 그러나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투쟁으로 이겨내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한국인 노동자 동지들의 계급적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95년 명동성당 투쟁으로부터 10년이 넘게 이주노동자 동지들은 때로는 목숨을 바쳐가며, 또 강제추방으로 송환되면서도 조직적인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는 소수의 헌신적인 싸움 이상으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없다. 지난 11월 3일 민주노총서울본부 강당에서 열린 “파독 광부, 간호사 한국방문 환영회”에서 선배 동지들은 자신들이 독일 땅에서 독일 산별노조에 가입하며 독일 노동자 계급운동과 함께 투쟁했던 것을 회상하며,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과 낙후된 상황을 아쉬워하였다. 2007년에도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절 투쟁을 제 때 하지 못하고, 일요일인 4월 29일에 진행해야 했다.¹²⁾ 지난 1월 8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이주노조 농성장 방문 시에 민주노총 내 이주노조 전담자를 배치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에 대해 “제안을 해 보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한 것은 현재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¹³⁾ 과거의 운동 경험에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우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도태와 패배 뿐이다!

2007년 12월 14일 출입국 관리법 개악저지 긴급토론회에서 이주노조위원장 직무대행 토르나 동지의 발언을 인용해본다. “...(이주노조는) 어려움에 있긴 하지만 이주노조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진보단체나 민주노총을 비롯해서 한국의 열악한 비정규직 그리고 한미FTA, 전쟁반대 운동에도 관심있게 함께 했습니다. ... 이주문제뿐 아니라 한국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아주 밑바닥에서 고생하시는 분들하고 함께 가야만이 해결할 수 있고...”¹⁴⁾ 바로 그것이다. 한국 노동자가 먼저 계급적으로 연대해야 할 그 투쟁을 이주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전개하고 있다. 올해 7월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 비정규직법이 확대 적용된다. 벌써부터 해고바람이 불고 있으며 노동부의 자료에 근거한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비율은 40.8%¹⁵⁾밖에 되지 않는다. 예상할 수 있는 자본의 대응은 명확하다. 비정규직 해고, 외주ㆍ용역화. 예고되고 있는 경제 공황과 함께 자본과 노동의 또 다른 전면전의 신호탄은 벌써 올랐다. 비정규직 철폐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라는 공동의 요구를 걸고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작은 희망의 불씨도 있다. 소규모 투쟁 사업장들이지만 이주노동자의 투쟁에 비정규직 동지들이 연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경제 위기의 시대가 온다고 해서 항상 진보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님을 세계 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바로 10년 전 한국의 “IMF 외환위기”때 직접 체험한 바 있다. 제대로 된 투쟁의 구심점을 세우지 못한다면 자본의 위기가 온다한들 반격의 기회로 전화시켜 낼 수 없다. 더구나 한국 노동자들 일부에 존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뺐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오도된 분노로 바뀐다면 그 귀결은 바로 끔찍한 파시즘일 것이다. 파시즘은 자본의 가장 악랄한 독재이며, 소수자에 대해 배척과 폭력으로 노동계급을 호도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까지만 동지가 보호소에서 인용한 바 있는 네팔 속담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시간은 언제나 함께하지만 기다리지는 않는다.'¹⁶⁾ <노사과연>

노동자 계급의 국제주의적 단결은

이주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다

최상철 ｜ 운영위원

5) 2007년 12월 5일 기자회견 자료집 ��이주노조 3인지도부 석방과 이주노동자 운동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p. 6 자료집은 비대위 카페(http://cafe.naver.com/freemigrants)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6) 정필, ｢출입국, 이주노조에 또 “표적 단속”했나 ―까지만 위원장 비롯해 지도부 3명 동시에 잡혀가｣ 인터넷참세상,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5087

7) 변정필, ｢세계이주민의 날 “거꾸로 가는 한국정부”비난 ―전날 단속에도 200여명 이주노동자 집회에 참가해｣, 인터넷참세상,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5314

9) http://www.gefont.org/summary.asp?flag=3&cid=445

10) 2007년 12월 18일, ｢이주노조 지도부 강제출국 규탄, 단속추방 저지, 출입국관리법 개악 중단 노동, 사회, 시민단체 공동기자회견｣ 자료집 pp. 6-8. 자료집은 비대위 카페(http://cafe.naver.com/freemigrants)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11) 변정필, ｢이주 노동자, 민주노총의 갈 길을 묻다 ―"이주노동자들만의 노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인터넷 참세상,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5875

12) 부깽, ｢노동절에 쉬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집회 ― 117주년 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대회｣, 일다로, http://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7043000001&art_menu=1&art_sub=3

14) 아래의 사이트에서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다. http://migrantsinkorea.net/?document_srl=12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