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세
현장
이론
기타
 
지난호보기
월간지/단행물
구독신청
세미나신청
토요노동대학신청
1
정세와 노동 - < 정세 >
제목 이명박과 부시, 인권을 말하다
글쓴이 채만수 | 소장 E-mail send mail 번호 94
날짜 2008-09-10 조회수 3933 추천수 165
파일  1221042692_인권.hwp

  













이명박과 부시
















한미 정상회담의 위선의 메시지










지난 8월 7일 대부분 일간신문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은 “북 인권 개선돼야” 하는 식의 것이었다. 서로 다정히 껴안은 채 더 없이 만족하고, 더 없이 행복하다는 듯 환히 웃고 있는 부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커다란 천연색 사진이 그 곁을 장식하고 있었다. “북 인권 개선돼야”는, 말하자면, 취임 6개월이 채 못 되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간의 3번째 정상회담의 최대 메시지인 셈이다. 보도에 의하면, 실제로 두 정상 간의 공동성명은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대북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 내 인권 상황 개선의 의미 있는 전진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인간의 권리로서의 인권, 인간답게 살 권리로서의 인권, 그것이 침해되고 있고 유린되고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그러한 사실을 지적하고, 그 개선을 요구하고, 또 그 개선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뿐 아니라 그 자체 인권이요, 또 인간답게 사는 도리․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리․의무이기까지 한 “인권 개선의 요구”가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이명박과 부시의 입에서 나올 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명박과 부시의 이 발언을 보도하면서, 조․중․동 같은 극우신문에서 자유주의적인 매체들까지 하나 같이, “한미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도, 그에 대하여 있을지도 모르는 북의 ‘반응’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드러내놓고 지적하진 않고 있지만, “북 인권 개선돼야”라는 두 사람의 발언이 사실은 ‘인권의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음험한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인권 상황










우선, 저들이 한국과 미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 운운할 때, 그것은 한국과 미국의 인권 상황은 ‘적어도 대체로는’ 양호하다는 인식, 그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최근 이 명박 정권 하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치적 상황, 예컨대 집시법이 제멋대로 날뛰고 국가보안법이 다시 춤추고 있는 등의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려 든다면, 그것은 구차한 일이다. 아니, 차라리 한가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본질적인 인권인 생존권을 보자.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공적 의료보험의 부재 때문에 4,500만 명 이상이 터무니없이 비싼 민간의료보험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것이, 따라서 병이 나도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리고 대도시마다 홈리스 즉 노숙자가 득글거리지만 국가는 그들의 주거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의 전쟁을 위해서, 그리고 기타 지역의 주둔군․지배를 위해서 가히 천문학적 예산을 지출하고 있는 것이, 경제위기 하에 수많은 빈곤 가족들이 주택 차압으로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하고 있지만, 그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쫓아내고 있는 금융독점자본들을 위해서 국가가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인권 상황이다.





매사 미 독점자본의 행태를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따라가고 있는 한국의 인권 상황 역시 이보다 나을 리 물론 없다. 대도시의 철도역 등에 모여 밤을 보내는 수많은 노숙자들을 보노라면, 그 광경은 “인간의 목숨이란 이토록 모진 것이었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참상(慘狀) 바로 그 자체이다. 게다가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을, 수십만․수백만 명의 사람을 실업으로, 비정규직으로, 더 없는 빈곤으로, 노숙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자본과 국가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이다.





그런데도 부르주아 언론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그러한 참상은 인권과는 무관한 것인 양 그것을 ‘인권 문제’로서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명박․부시 대통령은, 그러한 참상에는 오불관언하며, “북 인권 개선돼야” 운운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다름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인권 상황이 바로 그러한 참상이기 때문에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과 독점자본가계급 간의 국내의 전선을 대북(對北) 전선으로 돌리기 위해서이다. “북 인권 개선돼야” 운운하는 저들의 발언은 사실은 북의 인권을 위한 발언이 아니라 저들이 벌이는 계급투쟁의 한 형태, 그 일환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대북 인식의 조건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그리고 부르주아 언론들은 “북 인권 개선돼야” 운운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북의 인권 상황이 어떠하며,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알 수조차 없는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인권 상황의 한 단면이다.





조․중․동 등의 극우․파쇼언론을 통한 부르주아지에 의한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 지배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 그 중에서도 특히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운운하고 있는 그 제7조를 생각해보라. 누구나 아는 것처럼 여기에서 말하는 “반국가단체”의 전형은 이북이다. 그리하여 거기, 즉 이북과 그곳의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운운하고 있는, 그 서슬이 시퍼런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일방적인 발언만을 할 자유, 일방적으로 비난․‘비판’만을 할 자유가 주어져 있을 뿐이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이렇게 일방적인 발언만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기초․전제가 되는 객관적인 정보가 차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러한 객관적인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서,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운운하는 파쇼악법에 의해서 이북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발언만을 강요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지역으로의 여행은 물론 그 지역 주민 등과의 ‘회합․통신’ 등까지도 철저히 금지․제한되어 있다. 그 역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운운하는 국가보안법 제6조 및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는” 운운하는 그 제8조에 의해서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행위들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이루어졌을 때에 처벌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간에 없는 사실도 날조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없는 내심(內心)을 날조하는 것쯤은 사실 일도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북의 실정(實情)을 제한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특별한 임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다름 아니라 대북공작 등의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인 터인데, 그런데 그들은 제한적이나마 개관적인 사실, 객관적인 정보에 접하더라도 바로 자신들의 그러한 업무의 특성 때문에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는 무척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남북 간의 진한 적대관계와 이에 따른 이러한 정치적 조건들 때문에 우리가 이북에 대해서 듣고 있는 정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모두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여과(濾過)되고, 발명된 것들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방적인 발언만 할 수 있고, 따라서 일방적인 발언, 여과되고 발명된 정보들만 들을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어떻게 그 대상, 즉 이북에 대한, 그 인권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가능하겠는가? 어떻게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비판다운 비판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도 극우언론, 극우 정치인들, 극우 이데올로그들뿐 아니라 ‘진보적’임을 자처하는 많은 정치인들, ‘학자들’, ‘활동가들’까지 북의 인권이 어떻고, 북의 체제의 성격이 어떻고 운운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이고, ‘(노동)운동권’ 일각의 모습이다.





하지만,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 지배를 훨씬 넘어서 국가보안법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건을 고려하면, 그러한 ‘진보적 인사들’, 그러한 ‘활동가들’이란 사실은 비판적 정신이 마비되어 노예근성에 찌들고 세상물정 모르는 어릿광대들이거나, 아니면 참으로 그 정체가 수상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북 인권 개선 돼야” 운운하는 발언이 한국이나 미국에 존재하는 인권 참상을 은폐하고, 대북 적대를 조장하기 위한 정치공작,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의 한 형태가 아니라 무언가 진정으로 인권을 위한 발언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먼저 폐지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노사과연>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93 이명박과 부시, 인권을 말하다[1] 채만수 | 소장 2008-09-10 3933 165


우 156-060)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435번지 진안상가 나동 2층 (신주소: 노량진로 22길 33) 
(전화) 02-790-1917 / (팩스) 02-790-1918 / (이메일) wissk@lodong.org
Copyright 2005~2023 노동사회과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