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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정세 >
제목 <신년사를 대신하여> 격동의 시대에서 격돌의 시대로
글쓴이 채만수 | 소장 E-mail send mail 번호 101
날짜 2009-01-20 조회수 4223 추천수 171
파일  1232460693_격동.hwp

  













격동의 2008년
















격동의 2008년










모순에 찬, 그것도 심화될 대로 심화되고, 격화될 때로 격화된 모순에 가득 찬 말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격동의 해’가 아닌 해가 있을 수 없겠지만, 지난 2008년은 참으로 말 그대로를 입증하고도 남는 격동의 한 해였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의 일이지만, 봄부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확대를 둘러싸고, 아니 사실은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의 ‘강부자’ 이익 위주의, 즉 독점자본을 위시한 소수 부유층 이익 위주의 정책 기조 전반을 둘러싸고, 이명박 정권 및 ‘조ㆍ중ㆍ동’ 등의 극우세력과 자유주의적 시민ㆍ민중 간에 ‘촛불시위’라는 일대 정치적 회전이 벌어졌다.





장기간의 소모적 투쟁에 지친 시민ㆍ민중 진영이 잠시 퇴각하여 극우와 국가의 산발적이면서도 집요한 공세에 수세를 취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결국은 다시 새로운 투쟁, 이제는 ‘촛불’이 아닌 다른 불을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투쟁, 이제는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투쟁을 예고하는 그런 수세일 터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전개되고 있는 경제위기, 즉 대공황이, 그리고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의 제반의 정책, 특히 그 대(對) 노동자ㆍ민중의 빈곤화ㆍ억압ㆍ기만정책이 그러한 투쟁을 강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는, 2007년 여름부터 발발하던 세계 대공황이 지난해 9월 들어서부터는 사실상 누구의 예상도 뛰어 넘어 극적인 양태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하여, “금년 하반기가 되면 한국이 어느 나라보다도 제일 먼저 위기를 벗어날 것”이라는 헛소리를 되뇌고 있는 모(某) 씨를 제외하면, 이제는 사실상 어느 누구도 이 대공황의 전도(前途)가 더욱 심각할 것임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 이명박 정부는 누구도 배반하지 않고, 극우ㆍ독점자본의 이해도, 노동자ㆍ민중의 예상도 배반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앞으로가 대격돌의 시대일 수밖에 없는 주요한 이유의 하나이다.















대공황의 역사적 의의










정세가 이렇게 전개되는 가운데 이미 우리는 이 지면을 위시하여 여러 기회에 이번 대공황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해왔다.





다시 요약하자면, 이렇다.





현 위기는 단순히 신자유주의적 금융규제완화가 유발한 ‘금융위기’가 아니다. 전형적으로 그것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기초한 사회적 무정부적 생산으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 계급적 적대에 기초한 생산으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으로서의 과잉생산의 위기이며, 이토록 거대한 폭발은 1930년대 대공황에나 비견될 수 있는 것이고, 어쩌면 그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한 그러할 가능성도 거의 보이지 않지만, 각국 정부의 대대적인 개입, 가히 천문학적인 ‘유동성’(=지불수단) 쏟아붓기로 설령 이번의 위기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사태의 성격상 그것은 위기의 종국적 파국을 잠시 유예하는 것일 뿐이어서, 하루살이 호황으로 끝날 수밖에 없으며, 현재 전개되고 있는 사태를, 그리고 그것이 제기하는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는 1930년대의 대공황이 이미 입증한 대로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1930년대의 대공황이 어떻게 귀결되었는지를, 즉 그것은, ‘뉴딜’이나 다른 무엇이 아니고, 오직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하는 대살육ㆍ대파괴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여야 하고, 거기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





결국, 21세기의 전반기(前半期)는 대대적인 사회혁명의 시대이든가, 아니면 인류를 사실상 절멸시키게 될 대전쟁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















파괴되고 있는 노동자ㆍ민중의 생존권










대공황, 그것이 이미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은 분명 그 초입단계이다.





그런데도 노동자ㆍ민중의 생존권 파괴는 이미 심각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소위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대표되는 기존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의한 비정규직의 확대ㆍ확산, 그들 노동자들의 생존권 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애써 믿고 싶어 했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조차 사실상 백척간두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본격화된 완성차 공장들의 조업단축ㆍ조업중단 등은 그러한 상황의 전개를 상징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물론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모든 산업부문에서, 혹은 극히 심각하게, 혹은 아직은 조금 덜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고,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다. 수많은 자본이, 기업이 파산해가고 있고, 파산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아니 그러하겠는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공황이 노동자ㆍ민중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는, 그리하여 그것이 앞으로 어떤 정치적ㆍ역사적 상황을 조성할 것인가는 자본주의 최강대국 미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이 보여주고 있고,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태의 직접적 방아쇠였던 소위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즉 이미 수백만이 주택을 압류당하여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고, 또 앞으로도 수백만이 그러한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1월 9일에 미국의 노동통계국은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52만4천 명이 일자리를 잃어 미국의 실업률이 16년만에 최고치인 7.2%에 달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받아서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1110만으로 증대하고 있는 실업자군(失業者軍)은 경기침체가 발발했던 1년 전에 비해 50% 가까이나 크다. ...





... [정부가 발표한 숫자보다: 인용자] 수십만 명이나 더 많은 사람들이 12월에 전일제(全日制, full-time) 일거리를 찾았지만, 파트타임 일거리밖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 노동자까지를 포함하면, 이른바 총실업률은 11월의 12.6%에서 13.5%로 치솟았는데, 경기침체가 시작됐을 때 그것은 단지 8.7%였다. ...





거의 모든 산업에서 고용주들은 감원을 하고 있다. 단지 보건 및 교육 부문만이 12월에 그러한 추세를 거슬러 4만5천 명을 증원했다고 노동통계국은 보고했다.1)










부르주아 국가의 통계에 의하더라도, 미국의 실질적인 총실업률은 이미 13.5%로 치솟고 있으며, 더구나 그것도 지난해 10ㆍ11ㆍ12월에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같은 기사에 의하면, 연구ㆍ무역회사(research and trading firm)인 투자기술그룹(Investment Technology Group)의 수석경제학자 로버트 바버라(Robert J. Barbera)라는 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회사가 현금을 모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재고를 처리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보다시피 그것이 바로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이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모든 곳에서, 그러니까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이곳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사태이며, 앞으로 더욱 맹렬한 기세로 일어날 사태이다.2)





미국의 부시 정권도, 곧 출범할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도 일자리 창출을 떠들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본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 즉 대(對) 노동자 전쟁이다. 그리고 GM 등 소위 자동차 ‘빅3’의 파산위기를 기화로 실제로 “태프트-하틀리법(Taft-Hartley) 이래의 최대의 대(對) 노동자 공격”3)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공기업의 선진화”니, “구조조정”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격돌을 향하여










아니, 한나라당 이명박 정부의 대(對) 노동자ㆍ민중에 대한 공격은 “공기업의 선진화”니,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넘어 훨씬 더 전면적이다.





박정희ㆍ전두환 등 군사독재정권의 후계자답게 그들의 공격은, 경제적 영역, 직접적인 노-자 관계의 영역에서의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동안 노동자ㆍ민중이 쟁취해온 일체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권리들조차 노골적으로 부인하려 들고 있다. 역사교과서 수정 강요 파동이나 언론 관련법 및 국정원법, 최저임금법, 비정규직법 등의 개정ㆍ개악 시도 등등, 노동자ㆍ민중을 영원히 무권리한 착취의 대상으로 묶어둘 정치적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칭 뉴라이트 등의 극우의 준동이나 연말연초부터 여의도에서 극우 정치세력과 자유주의 정치세력 간에 벌어진 활극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어떤 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 ‘긴급조치’를 방불케 하는 ‘미네르바’ 구속 사건도 바로 이명박 정부의 그러한 파쇼 드라이브가 연출하고 있는 비극적인 코미디, 혹은 코미디 같은 비극의 한 장면이다.





이들 파쇼 드라이브를 통해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정부는, 그리고 ‘조ㆍ중ㆍ동’이나 뉴라이트 같은 극우세력들은 노동자ㆍ민중에게 투쟁하지 않고 격돌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쟁하지 않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최대의 것은 물론 노동자ㆍ민중의 생활 파탄 그 자체지만, 심심찮은 일화들을 통해서도 그들은 노동자ㆍ민중에게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예컨대, 방금 언급한 ‘미네르바’의 구속 사건도 바로 그러한 일화의 하나다. 생각해보라. 지금 촛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도 그를 구속할 수 있었겠는가?





예컨대,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도 그 하나다. 생각해보라. 노동자계급이 치열하게 투쟁했고,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어도 그를 구속할 수 있었겠는가?





보도에 의하면,4) 지난 1월 7일 노동부는 아주 흥미로운 발표를 한다. 지난해에 “임금교섭” “타결률이 상승하고 노사화합 선언 사업장이 늘었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노사관계가 안정적이었다는 의미”라고. 그리고 “외환위기 당시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양보교섭이 늘어나면서 임금인상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다름 아니라, “타결률이 상승하고 노사화합 선언 사업장이 늘(어) ... 전반적으로 노사관계가 안정적이었다”는 데에 대한 보상(報償)으로, 그리고 “올해도 양보교섭이 늘어나면서 임금인상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정부와 자본 측의 강한 자신감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은 관식(官食)을 들고 계셔야 하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민주노총이 영세기업 노동자들의,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들, 수십 미터 상공의 철탑ㆍ굴뚝 위에서의 투쟁들, 길거리 천막투쟁들을 사실상 오불관언하며 값싼 립써비스로만 ‘연대’한 보상으로 그렇게 안식을 취하고 계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자 등 일부 대기업 노조는, 그리고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상황을 투쟁으로 돌파하려는 각오를 다지는 대신에 ‘일자리 나누기’라는 허울 좋은 깃발을 내걸고 정부와 자본에 사실상 구걸하고 나서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자본의 프로젝트를 자신들의 어깨에 짊어지고, 아니 노동자 대중의 어깨에 짊어지게 하며 올해도 ‘양보교섭’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 그리고 ‘조ㆍ중ㆍ동’, 뉴라이트 등이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태도ㆍ정책들은, 물론 한편에서는 노동자ㆍ민중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공포에서 나오는 그것이지만, 동시에 바로 그렇게 “올해도 양보교섭이 늘어나면서 임금인상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만큼 노동자들이 무기력하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그것들일 것이다. 억누르면 된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그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맑스와 엥겔스가 다음과 같이 썼음을 상기하자.










헤겔은 어딘가에서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모든 사건과 인물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첨부하는 것을 잊었다. 즉,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에는 광대극(Farce)으로 나타난다는 것을.5)










그렇다. 전에도, ‘박정희 시대’를 재현하려던 전두환 정권이 그렇게 “불쾌한 광대극으로” 끝난 것 이상으로 이명박 정권이 다시 재현하려는 ‘박정희ㆍ전두환 시대’는 “불쾌한 광대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지만,6) 마찬가지로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그리고 최근 몇 년간과 같은 노동자계급의 무기력을, ‘양보교섭’을 재현해보려는 자본의 기대ㆍ공작도 “불쾌한 광대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 자신이 그러한 무기력이 어떻게 보상되는지를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기가 외환위기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고,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고,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국가와 자본의 공세, 즉 투쟁의 강요가 더욱 거칠어질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이번엔 전 세계 노동자계급 모두의 문제로, 즉 모두의 투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귀족화한 조합관료들이 벌이는 ‘양보교섭’이란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양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가진 자, 기득권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밖에 없는 무산자들이 할 수 있는 노름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양보? 그것은 굴복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지금 투쟁을 강요당하고 있고, 그리하여 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대적으로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합 간부들이 끝내 타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들은 준엄한 청산의 대상이 될 뿐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전개되고 있는 엄중한 위기, 노동자 생존권의 심대한 파탄이 엄숙하게 예고하고 있는 바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대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투쟁의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전열 정비, 특히 자연발생적 투쟁에 의식성, 계획성을 부여하기 위한 선진 노동자들의 정치적 전열 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난 연말부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 침략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배후에는 미 제국주의가 있다.7) 또, 이라크 침략전쟁,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이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을 확대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소말리아와 콩고에서의 내전도 심상치 않다. 그 배후에도 물론 미 제국주의가, 제국주의 열강 간의 쟁탈전이 있다.8)





이들 전쟁 자체가 잔혹하게 벌어지고 있고,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반전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작은 불씨가 광야를 태울 수 있듯이, 이들 전쟁이 대공황을 맞아 자칫 대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면, 그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수만 리 너머의 일이라고 결코 오불관언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노사과연>






1) Louis Uchitelle, “Jobless Rate Hits 7.2%, a 16-Year High”, <www.nytimes.com>, January 10, 2009.






2) 모건스탠리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그린로(David Greenlaw)는 “대략 4월까지 지난 수개월 간의 규모로 일자리 소멸이 지속될 것”이며, “연말에 이르면 실업률[위에서 7.2%로 측정했던 기준에서의 그것: 인용자]이 9.5%에 이를 것”(“Another awful jobs report”, <www.economist.com>, Jan 9th 2009)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분명 크게 낙관적인 예측일 것이다.






3) Martha Grevatt, “Capitalist state wages war on UAW”, <www.workers.org>, Jan. 10, 2009.






4) 연합뉴스, “작년 노사관계 ‘안정적’이었다”, <news.chosun.com>, 2009. 1. 7.






5) K. 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MEW, Bd. 8, S. 115.; 엥겔스는 1851년 12월 3일에 맑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헤겔의 그 구절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한번은 위대한 비극으로, 두 번째는 불쾌한 광대극으로”(MEW, Bd. 27, S. 381)라고 표현하고 있다.






6) 채만수, “위기와 억압, 투쟁과 격동의 시대”, <<정세와 노동>> 제31호, p. 24.






7) Deirdre Griswold, “U.S. paved way for Israel's attack”, <www.workers.org>, Jan. 7, 2009 참조.






8) Abayomi Azikiwe, “The U.S. role in the wars in Congo and Somalia―Imperialist drive for economic domination fuels continental instability”, <www.workers.org>, Dec 22, 2008 참조.
















.. 2월호부터 연재되는 케인즈주의는 왜 인기가 있는가도 읽어보세요. 2009-02-24 21:54:09
ED7N0 지금의 위기기 단지 과잉생산의 위기라면, 공황 출현 +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케인즈주의적 개입을 통해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 같네요. 2009-02-16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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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신년사를 대신하여> 격동의 시대에서 격돌의 시대로[3] 채만수 | 소장 2009-01-20 4223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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