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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정세 >
제목 과학적 전술을 수립하자!
글쓴이 문영찬|편집위원 E-mail send mail 번호 100
날짜 2008-12-18 조회수 3408 추천수 156
파일  1229597220_전술.hwp

  













과학적 전술을 수립하자





















머리말










대공황이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지난 1997년의 이른바 “IMF 경제위기”는 어린애 장난으로 보일 만큼 지금 전개되는 대공황은 그 폭과 깊이에서 좀처럼 비견될 수 있는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대공황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세계정세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렇게 정세의 불확실성은 심화되고 있고, 운동진영에게 과학적인 정세분석과 과학적인 전술수립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운동상황은 열악하다. 개량주의 세력이 운동 전반을 지배하고 있고 대중들은 고통 속에서 투쟁으로 나서고 있지만 좀처럼 그 투쟁은 승리하거나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쏘련 붕괴 이후 전망의 상실이라는 문제는 아직까지 명료하게 해결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투쟁으로 나서고 있는 대중에게 ‘우리의 전망은 이것이오!’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드문 실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운동 상황은 열악하지만 역사의 전개, 역사의 진전은 주체의 이러한 무능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냉정하게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객관적인 역사의 전개를 온 몸으로 껴안고 나아가 역동적으로 변화해가는 정세를 정확히 분석하고 주체역량에 맞는 전술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1. 촛불시위의 성과와 한계










올해 초의 촛불시위는 대중의 역동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된 대중들의 촛불시위는 대중들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원하고 이 사회에서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조직적 구심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대중들은 자발성만으로도 이명박 정권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줄 만큼 유감없이 반정부의식을 표출했고 나아가 미제국주의의 일방적 영향력 행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었다.





시청 앞을 꽉 메운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절실한 요구들을 보여주었고 서울 한복판은 대중들의 시위 물결로 넘실대었다. 이러한 촛불시위는 이명박으로 하여금 대중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했고 이는 갓 출범한 이명박 정권의 운신의 폭을 매우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1980년대 이후 민주투쟁의 흐름이 일단락되고 다시금 반동부르주아지가 권좌에 복귀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시위는 권력은 내주었지만 대중의 의식과 역동성은 살아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권은 대운하 계획을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후 이명박 정권의 행보는 대중의 눈치를 살피면서 야금야금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촛불시위에 대해 최대한 통제하면서 대중의 역동성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전술을 취했고 8월을 기점으로 촛불시위는 잦아들게 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권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면서 민중탄압의 행보를 취한다. 이렇게 유례없는 대중의 역동성이 드러났던 촛불시위가 가시적인 성과없이 잦아든 것은 촛불시위가 갖고 있었던 자체적인 한계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 촛불시위는 조직적 구심이 거의 없이 대중의 자발성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지도부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대중투쟁이 폭발적으로 전개될 것을 두려워하여 대중의 시위를 통제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쟁점이 광우병 쇠고기를 넘어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전반적인 투쟁으로 상승하는 모습이 나타나자 지도부의 역할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촛불시위는 투쟁에 있어서 올바른 지도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말하는 것이었지만 새로운 지도부는 좀처럼 구성되지 않았다. 광우병대책회의를 주도했던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의 연합은 시민운동세력과 민중운동진영의 우파의 연합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또한 촛불시위로 인해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전면적으로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물론 부분적으로 KBS투쟁과 결합하고 기륭투쟁과 결합하는 등 노동자계급은 촛불시위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하려 노력했지만 한계가 뚜렸했다. 그러나 기륭노동자의 투쟁, 이후 콜텍과 하이텍 등의 투쟁은 촛불시위의 좌초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 전선을 이어가는 하나의 고리가 되었다. 또한 촛불시위는 비폭력을 강조했는데 이는 민중투쟁의 확산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었다. 경찰폭력에 대한 대항폭력은 일정한 정당성을 갖는 것이었는데 시위를 순수한 의사전달로만 제한하려는 지도부와 일부세력의 시도가 극복되지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촛불시위의 한계로 인해 이명박 정권은 초기의 위기를 수습하고 자신의 정책을 강행할 수 있는 시간과 정치적 조건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륭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경찰특공대의 투입, 한미 FTA의 비준 강행 시도, 국가보안법의 부활 등 민중의 삶과 투쟁에 대한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촛불시위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지배계급과 전면적으로 싸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즉, 다만 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 그리고 민중 간에 이해관계의 격차, 그리고 적대성의 심화정도를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촛불시위는 앞으로 전개될 계급투쟁, 대격돌의 서막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적 투쟁으로 상승을 가로막지 않는 것,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계급적 이익에 기초하여 투쟁하는 것, 투쟁을 이끌 지도부를 올바로 구성하는 것, 개량주의와 선을 긋는 비타협적 노선을 확보하는 것 등 촛불시위의 한계를 극복한다면 다가오는 투쟁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승리로 될 수 있다.










2. 대공황으로 인한 계급투쟁 조건의 변화










촛불은 잦아들었지만 대공황이라는 새로운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촛불이 자신의 행보를 민주주의 투쟁이라는 것에만 한정했다면 대공황에 기초한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질서 자체에 대한 투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황의 결과 지배계급은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근본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수 없고 투쟁을 이완시키는 개량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공황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미 전 세계로 확산되어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대공황의 발생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산출한 생산력을 관리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폭로하는 것이고, 이는 대중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이고,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사적 전유 사이의 모순을 온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거대한 생산력이 파괴되고 낭비될 수밖에 없는 현실, 수십만 채의 주택이 남아도는데 대중들은 집이 없어서 거리로 내몰려야 하는 현실, 그 와중에도 지배계급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공황의 영향으로 대중들은 철저하게 피폐화되어야 하는 현실, 현 체제가 노동자와 민중의 최소한의 생존조차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지는 현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의 총체적 현실은 대중들로 하여금 반자본주의 투쟁, 반체제적 투쟁으로 나서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건설한 이 사회의 생산력을 더 이상 자본가의 관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 스스로의 관리로 가져오는 투쟁에 나서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연합한 노동자와 민중의 손으로 직접 이 사회의 관리, 생산력의 관리를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안적 운동이 승리하기까지 현재의 대공황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은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를 본질로 하는 한국의 경제는 내수가 취약하고 상품의 가치실현을 해외에서 찾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라 해외시장의 급격한 축소는 한국의 자본가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GM대우가 휴업에 들어가고 있고 현대자동차도 조업을 단축하고 있다. 그리고 건설업은 대대적으로 파산으로 몰리고 있다. 그에 따라 곳곳에서 실업이 증가하고 있고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은 제일차적으로 해고를 당하고 있가. 머지않아 필연적으로 정규직도 해고로 내몰릴 것이다.





지난 1998년 “IMF 경제위기”이후 10여년간 한국의 노동운동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이는 전투적 노동운동의 기풍이 사라지고 운동을 개량주의 세력이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량주의 세력의 득세로 인해 노동자계급이 개량의 성과를 전혀 향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2차대전 후의 유럽의 경우 자본가계급이 일정하게 양보를 하여 노동자들이 개량의 실제적 성과를 누렸고 이를 토대로 계급타협이 이루어졌다면 현재의 한국의 상황은 개량이 없는 개량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개량주의의 취약성을 말하는 것이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에 따라 한국의 노동자계급의 전투성이 부활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의식적으로 개량없는 개량주의를 무력화시키고 노동운동에 사회주의적 전망을 부여하고 노동자계급의 사상적, 정치적 재건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대공황은 자본가계급에게서 계급투쟁을 무마할 수 있는 개량의 물적 토대를 빼앗고 있어서 객관적인 상황은 투쟁의 격돌이 불가피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지난 10년간의 투쟁의 위축, 사상의 와해를 극복하는 전기로 삼아야하고 나아가 다시금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대오를 구축하는 것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3. 정세분석의 기본틀










따라서 지금의 상황은 정세의 미묘한 변화를 정확히 분석하여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전술의 토대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세를 분석하는 기본 틀은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일정 정도 공유되고 있다. 즉, 경제적 토대의 변화, 경제적 대립투쟁의 정도, 정치적 대립투쟁의 정도가 그것이다. 이는 토대를 기초로 하고 그 위에 경제적 투쟁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대중의 역동성이 증대되는가, 나아가 이를 기초로 하여 권력에 대한 대중의 투쟁이 시작되고 있는지, 얼마나 증대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토대, 경제적 투쟁, 정치적 투쟁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정세분석을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할 것은 정세의 변화, 즉, 계급역관계의 변화의 핵심은 정치적 대립투쟁의 진전 정도라는 것이다. 토대가 아무리 흔들려도, 또 경제적인 생존권 투쟁이 아무리 전개되어 대중의 역동성이 고양되더라도 권력에 대한 정치적 대립투쟁이 없다면 지배계급은 흔들리지 않고 얼마든지 체제를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체제를 재편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세의 변화의 핵심고리는 권력에 대한 투쟁, 정치적 대립투쟁의 정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 정세를 보면 토대는 격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경제적 대립투쟁이 일정하게 불붙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투쟁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지배계급에 대한 적대의식이 점차로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10년간의 반동의 시기, 퇴조의 정세는 반전의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반전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반전되는 것은 대중들의 정권에 대한 투쟁, 권력에 대한 투쟁이 불붙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토대가 흔들리고 그에 따라 대중의 생존과 생활이 어려워지고 그리고 지배계급이 대중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해질 때 경제적 대립투쟁의 활성화, 나아가 정치적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4. 공황기 정세의 특수성










이러한 정세분석의 틀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과학적인 정세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서 더 구체화하여 공황기의 정세의 특수성을 해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초유의 세계대공황이 전개되고 있는 시기이고 정세의 변화에 대한 예측이 힘들어지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토대, 경제적 대립투쟁, 정치적 대립투쟁을 정세분석의 틀로 확인했지만 여기서는 그에 더하여 토대가 격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현 정세의 특징을 분석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이미 수천억 달러를 구제금융에 쏟아 붓고 있지만 미국의 민중을 위해 돈을 쏟아 붓는다는 소식은 없다. 오히려 미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실업의 공포에 떨고 있고 이는 소비의 극심한 위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이명박 정권은 은행에 대해 1000억 달러의 지급보증을 하고 건설사의 파산위기에 대해 채권단을 만들어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역시 실업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앞으로 실업이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이것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토대의 격심한 변화가 경제적 대립투쟁, 나아가 정치적 대립투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지배계급의 개량의 여지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의 민중투쟁이 승리하지 못했던 것은 운동의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1986년부터 88년까지의 유례없는 3저 호황으로 인해 자본가계급의 개량의 여지가 풍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당시와 달리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이러한 개량의 여지를 허용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에 따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일대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운동에서 국민파로 대표되는 개량주의 세력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고 사회주의적이고 변혁적인 세력의 성장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사회주의 진영이 쏘련 붕괴로 인한 혼란을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정세의 획기적인 변화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토대의 격심한 변화로 인해 정세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투쟁 대오를 가다듬고 대격돌을 준비해야 한다. 토대의 변화 자체만으로 정세가 고양기로 접어들지는 않는다. 투쟁이 정치적 투쟁으로 상승할 때만 비로소 정세는 고양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의 준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전술이다. 과학적 전술, 즉, 현 정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통일적인 정치적 입장이 마련될 때만 노동자계급은 투쟁의 성과를 개량주의 세력, 나아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게 헌납하지 않고 스스로의 성과로 온전히 할 수 있다.















5.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전술의 필요성










이렇게 정세의 기초를 이루는 토대가 격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의식적 전술수립의 필요성은 절박한 것이다. 이러한 토대의 요동이 경제적 대립투쟁을 불러오고 나아가 정치적 투쟁으로 상승하도록 전술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정세의 변동성이 커지는 시기에서 노동자계급의 전술적 목표는 무엇인가? 자본가계급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해고와 실업의 광풍이 예견되는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목표로 투쟁에 나서야 하는가? 노동자계급의 생존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지금의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에 절박한 것은 생존권의 사수이다. 해고와 실업에 대한 반대투쟁을 개별 단사를 넘어 전 계급적인 요구로 하면서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정세가 아직 고양기로 접어들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고립과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일차적 투쟁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존권 투쟁은 현재의 정세에서는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현재의 이명박 정권은 공황의 상황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할 능력도 의사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생존권 투쟁과 정치적 투쟁이 맞물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더구나 지배계급은 개량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억압일변도로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권력에 대한 대립투쟁으로 투쟁을 확대시킬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투쟁에 사회주의적 전망을 부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황이라는 거대한 압력을 극복하고, 자본가들이 파산하는 가운데 노동자계급의 투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이 있을 때만 대중은 개별자본가의 파산, 개별 자본가의 지불능력이라는 협소한 시야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통일적 대오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할 때 우리 노동자계급은 스스로 사회를 관리하고 생산력을 관리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투쟁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생존권을 사수하는 것을 기본축으로 하면서 그러한 투쟁이 정치적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견지하면서 투쟁대오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투쟁이 개량주의적 전망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노동운동을 지배하는 개량주의적 세력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을 꿈꾸지도 못한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이끌 어떠한 전망도 없고 단지 노동자계급이 좀 더 배부른 돼지, 임금노예상태로 머물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이들의 전망을 단호히 배격하고 분쇄해야 한다. 민주노총을 이끄는 국민파로 대표되는 개량주의자들의 정치적 조직적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고 대중 스스로 투쟁으로 나서도록 고무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운동진영 일각의 배신적인 노선,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연합노선을 분쇄해야 한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세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집권 시절 이들은 철저히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억압하고 무력화시키며 독점자본의 이익을 충실히 관철시켰다. 다시금 이들과 연합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무장해제시키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이들과 유사한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 세력과도 선을 확실하게 그어야 한다. 참여연대는 보다 좋은 자본주의, 선한 자본주의를 꿈꾸는 공상가들이며 실천적으로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자들이다. 이렇게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소부르주아 우파와 확실하게 선을 긋고 노동자계급은 농민, 소상인 등 소부르주아 좌파와 연합하여 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을 추진하고 이끌어나갈 노동자계급의 흔들리지 않는 정치적 대오를 건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개량주의 혹은 개량주의의 아류들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이끌 의사도 능력도 없다. 이들을 무력화시키고 개량주의가 아닌 전투적 노선, 나아가 사회주의적 전망 하의 투쟁을 전개할 때 노동자계급은 공황이라는 상황에서 자신의 투쟁을 건설하고 해방의 길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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