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티비를 통해 여러 생물연구실험기관들이 동물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인류의 질병퇴치와 과학발전을 위해 희생된 실험동물들의 죽음을 존중하며 그에 대한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위령제를 지낸다고 한다.

물론 그 위령제를 지내고는 또다시 죽음을 전제로 한 동물실험을 계속한다. 위령제의 대상이 되는 동물들이 ‘존중받아 마땅한 죽음’을 당하는 셈이고 그 죽음을 ‘존중’하는 이들이 바로 그 동물들을 죽이는 이들이다.

존중... ‘높이어 귀하게 여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달리 말하면 말 한마디 하는 데는 돈 한 푼 들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교양있으신(?) 분들은 ‘존경하는 누구누구’라는 말을 잘도 입에 달고 살더라.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뭔 말 시작하려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부터 찾고 분명히 국회에서 서로 혈전을 불사하던 이들이 티비 토론회 나와서는 서로 ‘존경하는 000의원님께서는...’ 어쩌고 하는 말로 존중의 마음을 아낌없이 표하시더구만.

그 존경하는 국민들을 너무 존중해서 한겨울에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지 말고 어여들 집에 들어가시라고 물대포도 종종 쏴주시고 그래도 말 안 들어먹으면 민중의 지팡이들 시켜 ‘존중’의 지팡이질도 때때로 해주시고 말이지...

흠...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 존경 내지는 존중 할 수 없는 사이들인데 뭐... 까짓 거 말 내뱉는 데 돈 안 든다고 제법 ‘고가’일 만한 말들 쏟아내시는 데는 전혀 아낌들이 없으시다.

이렇게 ‘존중’이 넘쳐나는 사회인데도 여전히 ‘우리를 존중하라’고 목놓아 외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며칠 전 쌍용자동차 앞에서도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노동 존중 세상’을 부르짖는 노동운동의 지도자분들을 볼 수 있었다. 강력한 투쟁으로 ‘노동이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들자고 힘차게 강변하신다. 언제부턴가 참 많이 듣게 되는 저 말 ‘노동 존중 세상’.

확실히 이 땅엔 존중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참 많다. 새해 첫 날부터 휴대폰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는 노동이 존중받고 있을 리 없고, 심야에는 잠을 자고 싶다는 요구가 깡패와 총동원된 국가권력의 무차별한 살인폭력으로 짓밟히는 상황에서의 노동이 존중되고 있을 리 없다. 그런데....

난 그분들이 처절하게 외치는 ‘노동 존중’이라는 말이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라고 시작하는 대통령의 말보다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저들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뭐? 난 이미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데. 더 이상 어쩌라구?”

실제로 그들은 그 신성불가침 ‘헌법’에 무려 노동의 3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은 뭉칠 권리, 뭉친 힘으로 협상을 요구할 권리, 그 협상에서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뭉쳐서 행동할 권리를 오로지 ‘노동’에게만 부여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서운 권리인가?... 그 무시무시한 권리를 오롯이 ‘노동’에만 부여하고 있는데 당최 뭘 더 존중하라는 거냐고 그들은 항변할 거다.

실제로 웬만한 노조 행사에 초대 받은 사장이나 사측 관리자들이 축사를 하면서도 하나같이 ‘존경하는 000위원장님과 조합원 여러분’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길거리만 돌아다녀 봐도 소위 ‘산업역군’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하는 국가기관에 의한 선전문구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쨌든 저들은 존중하고 우린 존중받지 못하는 이런 일이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닐 텐데...어째서 그전까진 들어보지 못하던 이 ‘노동 존중’이라는 말을 최근 들어 부쩍 듣게 되는 걸까? 아마도 노동운동이 이렇게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채 밀리고 있는 이유가 그 지향점을 잃어서라는 말들이 많으니까 애써 그 지향점을 찾아내신 모양이다. ‘노동 존중 세상’으로...

아직도 선연한, 피글씨로 써내려갔던 ‘노동해방’ 세상은 아무래도 지향점으로 다시 삼긴 좀 그랬던 모양인지 노동해방이란 구호가 사라진 자리에 ‘노동 존중’이라는 구호를 곱게 모셔 놓았다.

기본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숱한 노동이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며 그 구호를 절절하게 마음에 품은 많은 동지들의 순수한 의지를 왜곡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노동 존중을 애써 선동하는 소위 노동운동 지도부의 의도를 그렇게 순수하게만 볼 순 없는 노릇이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한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 도덕 교과서가 정의롭지 못하게 쓰여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 노동이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면 역시나 노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정의가 서 있지 못해서가 아니다. 눈만 뜨면 들려오는 숱한 전쟁과 살육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위대한 가르침이 존재하지 않아서 혹은 인류가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아서 벌어진다고 혹시나 생각들 하시고 계신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겐 조직화도, 전술도, 투쟁도 다 필요 없다. 오직 그 모든 정력을 총동원해서 ‘아직 모르시나 본데 노동은 존중되어야 하는 거예요~~’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게 훨씬 빠를 일이다.

맑스가 말했듯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고 여전히 그렇다. 현 시기 노동운동의 지향점을 ‘노동 존중 세상’이라고 생각해내셨다면 참으로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그 얘기 이미 수천년 전에 부처님도 하셨고 예수님도 하신 지나치게 한 물 간 이야기다. ‘물욕을 버리고 무소유의 마음을 가지라’는 수천 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어떤 현대 이론보다 급진적인 공산주의적 사상이며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지금 당신들이 외치고 있는 노동 존중의 구호를 가장 급진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지금의 한국 땅 노동운동 지도자들보다 훨씬 영향력 있고 훨씬 유명하신 분들이 이미 그토록 오래 전에 절절하게 이 가르침을 설파하셨는데도 여전히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노동을 존중하라는 절규가 모자라서, 그 가르침과 그 당위가 부족해서 아직도 계급투쟁의 역사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 그래서 여전히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고 자본가도 알고 새누리당도 알고 민주통합당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노동운동이 지향해야할 세상으로 삼으신 건가?

앞서 말한 쌍용자동차 3차 포위의 날에 들은 노동 존중 세상의 외침도, 그러하기에 그 말의 무게와 상관없이 씁쓸한 헛 웃음만 남기게 된 것일 테다. 어느 자본가가 노동을 존중하지 않아서 정리해고 했다고 하는가? 그들의 속내와는 상관없이 그들도 노동을 존중하기에 피눈물을 머금고 정리해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차가 안 팔리고 공장이 어려우니, 이러다간 그 공장의 모든 노동자가 다 죽을 수밖에 없으니, 노동을 존중하여 전체 노동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부의 노동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동물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 죽음으로 세상을 발전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니 그 존중해마지 않는 죽음을 행하는 것처럼... 존중받을 노동의 생존을 위해 정리해고 당하는 노동자는 순교자가 되고 그 숭고함은 더욱더 철저히 존경, 존중 받게 될 터...

중, 고등학생 시절 이유도 모른 채 허벅지 살이 터지도록 선생님들로부터 매를 맞았다. 그 선생님들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존중해서, 나를 위해서 때린다고 했었다. 매 맞는 아내들이 대개 그걸 감수하면서도 함께 사는 이유가 때리긴 하지만 남편이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라거나 때릴 때 빼고는 너무나 잘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야기들 티비에서 참 많이도 봤다. 노동자를 존중해서, 노동자를 사랑해서, 회사가 살아야 그 존중하고 사랑하는 노동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두들겨 패고 정리해고 하고 비정규직화 해서라도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저들 자본가들의 말과 도무지 무엇이 다른가...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혹은 당위적인 말로 세상이 바뀔 거였으면 인류는 아주 오래 전에 누구도 누구를 착취하지 않는 무계급 사회를 만들었을 거다. 굳이 물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명제를 말하지 않더라도 존중이니 사랑이니 하는 그 훌륭하고 소중한 ‘관념적 언어’가 현 사회에서의 계급 착취 구조를 해결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과학적 사상으로 지배와 피지배라는 사회적 관계를 해명해내고 또한 해결해내려 하지 않고선 자본가에게 초등학교 도덕교과서를 내밀면서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런 과학적 분석이 인류역사 속에서 아직 없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에겐 200여년 전에 확립된 노동자계급으로서의 과학적 사상이 있고 가까이는 한국적 상황에서 부족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과학적으로 지향점을 밝혀 놓은 ‘노동해방’이라는 지향점이 엄연히 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지배계급이 이윤을 획득하는 임⋅노동관계로 이루어진 체제라는 것이 분석되어 있으며, 그런 한 결코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 존중’은 있을 수 없거나 많이 봐줘서 시혜의 마음으로 존중해 준다 해봤자 착취질서의 하위개념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과학이다.

노동이 진정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은 노동력이 상품으로 사고 팔리는 이 임노동관계로서의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와 지향점을 명확히 제시할 때만이 오로지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열린다.

하기에 체제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어떤 담론도 포기한 채 외치는 ‘노동 존중’은 자족이거나, 사기이거나, 무지이거나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셋 중 어느 것도 노동자계급에게 이롭지 못하다. 앞서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노동 존중’은 본 의미를 떠나서 사실은 진정한 노동자계급 해방을 포기하고 부르주아 착취질서에 노동운동을 종속시켜놓고선 짐짓 그렇지 않은 듯 포장하려는 이들의 저의로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선 왜 굳이 다시 과학에서 공상으로 후퇴하려 한단 말인가...

만약에 그런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도 부처님도 해결하지 못했던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키워드를 19세기 말엽에 제시한 엥겔스라는 사람의 말을 절절한 심정으로 전한다.

다시 ‘공상에서 과학으로!’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