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환 동지의 편지

노사과연 동지들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서울구치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손승환이라고 합니다. 보내주신 ≪정세와 노동≫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신경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정권의 탄압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렸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했던 새로운 연대와 그 연대들이 보여주었던 희망에 환희의 눈물도 함께 흘렸던 201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는 오늘, 내일, 모레, 한해의 마지막 날, 새해의 첫날이 별로 다르지는 않지만 2011년을 보내며 저 자신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아쉬웠던 순간들, 안타까운 순간들이 특히 가슴 한켠을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순간들이 저의 나태함 때문은 아니었는지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이러한 반성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2012년에 당장 무엇을 할 수는 없지만 나가서 새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항상 투쟁의 현장에서 인사드리곤 했는데 이렇게 편지로 인사를 드리려고 하니 쑥스럽네요.

2012년 희망을 많은 동지들께 전하시고 건강 잘 챙기면서 활동하시기 바라겠습니다.

2011. 12. 31.

손승환 드림.

이병진 최상철 서신 교환

날씨가 춥습니다. 감옥에서 세 번째 겨울을 보냅니다. 감옥의 첫 겨울, 차가운 나무 마루바닥 좁은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가슴으로 흐느껴 울었답니다.

이제는 차츰 요령도 생기고 몸도 적응을 하여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발마사지를 하며 동상을 예방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참고 인내해야 하는 줄 알고 지내다가 그만 동상이 걸렸습니다. 올해는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속노동자 후원회에서 보내준 털버선을 신고 지냅니다. 밖의 동지들의 따스한 온기를 느낍니다.

최 동지께서도 놀라셨겠지만 어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 소식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 어쩌나 가슴을 졸였는데 오늘 도착한 신문들과 방송 뉴스를 보니 다행히 주변국들이 차분히 대처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이북의 안정을 위해서 적극 나서고 미국도 정세가 긴장되지 않게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북과 미국이 대화 국면으로 방향을 잡고 3차 북-미 회담을 조율하던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자기 영면하여 애석합니다. 이북 인민들이 신뢰하는 영도자의 결단력으로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남과 북의 대립과 긴장이 해소되고 동북아시아의 첨예한 대립과 예기치 못한 전쟁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그럴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미국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당황하였으리라 봅니다. 미국은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핵정상회담에서 어떻게든 이북의 핵문제를 정리해야 할 상황에서 3차 북·미 회담이 보류되어 여러 가지 전략적 고민들을 하겠지요.

저의 주관적 판단입니다만, 이북의 신세대 지도자와 후견 세력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북이 대미 관계 개선에 노력했던 이유는 남쪽과의 관계까지 고려한 측면이 있었는데 신세대 지도자는 남쪽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일보다는 이북의 경제적 자립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와 경제협력에 힘을 넣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합니다. 대남 관계에도 소극적이겠지요. 이는 남쪽의 청년들이 통일문제에 무관심하고 경제적 측면에서 오히려 분단을 선호하는 태도와 비슷한 일입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민족의 동질성이 점점 사라지고 남과 북의 적대적 관계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들은 분단을 고정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북은 신세대 지도자와 함께 매우 과감하게 그들의 길을 가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북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아니 알려고 했다가는 국가보안법의 철퇴에 맞아 죽거나 감옥에 갇히지요. 그저 이북은 우리를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되고 오직 그런 확신을 가져야지만 현재의 이남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이북에 직접 가서 현실을 보고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는 이북의 동포들을 잘 알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가 흘러서 제 생각이 옳았는지 또는 틀렸는지 밝혀지겠지만, 우리가 국가보안법의 좁은 틀에 갖혀 이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이해하면 오해와 불신이 해결될 텐데……

이북을 적으로 전제하는 국가보안법에 갇힌 시각으로만 이북을 보면, 그들은 우리를 핵과 군사력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판단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북을 같은 민족 그리고 UN에 가입한 국가로 인정하고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북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니까 무슨 사건이 생기면 서로 불안해 하고 긴장하게 됩니다.

이병진 동지에게 보낸 전자 서신

안녕하세요 이병진 동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데 이번에는 동상에 안 걸리고 잘 견뎌내고 계신지요? 저번에 보내드린 책자는 무사히 잘 도착했는지 궁금합니다.

편지로 전하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전자 서신으로 보냅니다. 전자서신은 검열이 더욱 용이하지만 어차피 편지내용은 공개하고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전주교도소 측에서 늦게 전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월혁명회> 사무처장님께서 급히 전해달라고 하신 내용입니다. 출장을 가셔야 하는 관계로 직접 일을 처리할 시간이 없으시다고 합니다. ≪사월혁명회보≫ 마감이 있는 관계로 이번 호에는 이병진 동지의 글을 게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음호에 글을 써주셔야 합니다. 419 혁명일 전에 회보가 나와야 하기에 3월말까지 작성해주십사 하는 내용입니다. 분량은 A4로 5~7장 정도로 변화된 정세에 맞추어 써달라고 하십니다.

전주교도소에 수성펜이 반입이 안 된다는 황당한 규정을 들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규정으로 수용자들을 규제하는 전주교도소의 지침이 바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편지 다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또 뵙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최상철 동지께

새해 첫 인사를 드립니다. 최상철 동지가 그립습니다. 새해를 맞아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군요. 그런 날이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편지가 뜸했지요. 3년째 감옥생활을 뒤돌아 보고 인도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쟁의 강박 관념 속에서 불안하게 지내면서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자기 검열에 갇혀 솔직한 말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막상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을 살게 되니, 별일도 아닌 것을 뭐가 그리 무서워 기죽으며 살았을까 후회됩니다. 이제 더 이상 떨어질 지옥도 없고 빼앗길 것도 없으니 당당히 살자. 나의 자존감과 삶을 위해서 적들의 폭력에 맞서 싸우자. 그런 결심으로 2012년부터는 과학적 사상과 이론으로 중무장하여 전쟁에서의 생존력을 키우려고 합니다.

최동지의 ≪찬양고무가≫ 잘 들었습니다. 요즘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마구 잡아 가두기 때문에 최동지의 ≪찬양고무가≫를 웃음으로만 넘길 수 없군요.

지난 주에 오산대 교수님들이 오셨습니다.

“이 교수! 정말 북에서 보낸 간첩이야?”

“학과장님은 그 말을 믿으세요? 언론에서 부풀리고 과장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던 저를 교수님도 옆에서 지켜보셨잖아요. 그게 저의 진실입니다.”

“그렇지. 너무 믿기지가 않아. 이 문제는 꼭 극복되어야 해”

2년이 넘었는데도 충격과 혼란에 빠져 마음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음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바로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하다하시면서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는 듯 면회시간이 끝났는데도 한참을 서 계시며 떠나지 못하셨습니다.

아마 저를 알고 계시는 대부분의 분들이 면회오신 교수님들의 생각과 비슷하시겠지요. 저도 그런 분들께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고 싶은데 우리 사회의 반북 이데올로기가 너무나 깊고 이명박 정권에서 더욱 악화되어서 저 또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씀드리고 설명하면 언젠가는 진정성을 이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제 사건을 이해하려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남북관계 변화과정과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대북정책이 적대적으로 바뀐 배경을 알아야 됩니다. 공소장에 나온 단편적인 사건들의 나열은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시각을 반영한 것에 불과합니다.

정말 공정한 재판이라면, 진실을 밝히려 한다면 국가정보원이 저의 상부선이라고 특정한 리진우씨가 진짜 공작원인지, 만약에 정말 맞다면 이북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리진우씨와 만나서 나눈 대화들은 정세 토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수사과정에서 오판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수사기관을 신뢰했고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했다는 점입니다. 국가정보원이 어떤 곳인지 이해가 부족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들어 변했을 거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순진했는가 ‘바보’였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다.

나를 제보한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어보아도 가르쳐 주지도 않고 수사기록에 인도의 ‘익명인’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인도 유학시절부터 자세히 파악하고 관리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GPS 좌표는 차량용 네비게이션과 인도 농촌지역 현지 조사용으로 이용하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수원 비행장과 예비군 훈련부대가 문제였는데 일상생활에서 위치 확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임의로 제출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더니 국가정보원에서는 별 문제 삼지 않았는데 검찰조사에서 추가하여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입니다.

수사 검사는 제가 북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을 가지고 “조선로동당 장학금”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제가 미국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면 문제가 안 되었을 거에요. 문제는 이북에서 받았다는 것인데. 북쪽 분들은 나의 인도 연구에 대해서 진정성을 갖고 도와주었습니다. 같은 민족의 동포애로서 지지해 주고 외로운 길을 걷는 나를 이해하였습니다. 마음의 상처와 자존심 때문에 돈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보수 언론에는 엄청나게 받은 것으로 과장되어 있습니다. 공소장에도 나오지 않는 사실인데도 보수 언론들이 입에 거품 물고 거짓을 떠드는 일입니다. 국정원이나 검찰에서 그런 사실을 퍼뜨렸기 때문에 보수언론들이 확대하고 과장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년 전 저는 무방비 상태에서 승냥이들의 먹이감이 되어 살점이 갈기갈기 물어뜯기고 찢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광기에 죽음과 절망의 공포에 떨며 철철 피를 흘리며 독방에 갇혀 짐승 취급 받으며 목숨만 유지하는 상황이었죠. 그때 저는 우리 사회의 광기와 죽음의 공포를 보았습니다.

1993년 평양에서 사람들이 핵전쟁의 공포에 떨며 “굶어 죽으나 전쟁하다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 가지다. 그렇다면 전쟁하다 죽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우리 국가는 적대적이지 않은데 이북 동포들이 너무 과민 반응하지 않는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를 묶어 놓고 핏발서린 시뻘건 눈으로 나의 살을 물어 뜯는 우리 사회의 광기 어린 폭력 앞에 절망과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게 진실이고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누가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 똑똑히 목격하였습니다. 민족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항일 무장투쟁을 하고 미제국주의 핵 전쟁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북 동포들과 친일과 친미 사대주의에 빠져 오직 자신과 그 친족들의 이익을 위해 민족의 이익과 자주성은 헌신짝 버리듯하고 미제국주의 앞잡이를 자임하는 수구 지배 보수 세력들 가운데 누가 역사(歷史) 앞에 정의(正義)로운 자들입니까?

솔직히 무엇이 진실인지 알면서도 교수가 되고 그 직을 유지하기 위해 “제도개혁”에 맴돌던 제 자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은 시뻘건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양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습니다. 순진하게 형식적 대의 민주주의 환상에 속아 넘어가 목숨을 빼앗기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고통 속에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인 변화와 혁명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감옥이 나를 혁명가로 단련시키고 있습니다.

병진 올림.

2012년 1월 17일

환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은 이병진 동지께.

지인 한 명이 제가 쓰는 편지의 수위를 놓고 걱정스런 조언을 하더군요. 문제되는 것은 아닌지 하면서 말이죠. 그분에게 저는 지금 쓰고 있는 내용도 자기검열을 거쳐서 나온 것이고 더 이상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면 저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다하지는 못해도 우의(愚意)적인 방식으로만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지금 정도 수준의 불완전한 표현의 자유조차 선배들이 흘린 피를 통해 얻어낸 것인데 여기에 안주하고만 있다가는 그조차도 지켜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혀 걱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적당한 걱정은 출렁이는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짐 같은 것이겠지요.

그간 이 땅을 둘러싼 정세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라면 북측 최고 지도부의 교체입니다. 그간 극우진영에서 소위 ‘북한 급변사태’ 운운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후를 무당처럼 예견해왔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이른바 ‘예방전쟁’ 전략의 일환으로 구체화된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으로의 격상 움직임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이른바 ‘급변사태’ 발생 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한다는 계획은 심각한 호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급변사태’라는 것은 선제 침공 전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의성을 내포한 규정이라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무당 식의 ‘급변사태’ 예언과는 다르게 북측 최고 지도부의 교체는 현재까지의 상황으로만 보면 커다란 혼란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세습’이라 부르든 ‘계승’이라 부르든 뭐라 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에는 합리성도 실리도 없음을 현실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소위 ‘핵문제’를 둘러싼 상황에도 미묘한 전기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점상을 철거하면서 요란을 떤 게 3월 26일~27일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회의에서 어떤 의제가 어떻게 논의되는지는 주의깊게 봐야할 것 같습니다. 힘이 되어서 회의 자체를 저지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저는 ‘북핵문제’라는 규정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는 미군을 통해 핵무기가 배치되었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드러났고 노태우 정권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에도 미국에 의한 핵우산이 제공되는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핵포기는 일방적인 요구에 불과합니다. 냉정한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핵없는 세상을 끊임없이 지향해야겠지만 실제로 그러한 세계에 도달하는 것을 가능케 하려면 현실적인 힘의 관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선핵포기’보다는 차라리 북미 양국간의 핵군축 협상을 바라는 게 현실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CPI의 당대회 자료집과 AITUC의 자료를 받아보신다면 연구소에서 입수한 인도 관련 원문은 동지께 전부 전달하는 것이 됩니다. 부디 동지께서 무사히 받아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지와 함께 남부디리파드의 “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를 조금씩 소개하면서 보니 인도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 것은 큰 수확인 것 같습니다. 일제에 강점당한 조선도 식민지 지배를 겪었고 또한 봉건 유제의 굴레에 2중으로 신음하던 사회였습니다. 그것이 불과 100년 전의 우리 역사입니다. 인도 독립투쟁사에도 조선독립투쟁사에도 세계사적 보편성이 있음을 동지의 번역 작업을 통해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편지에 인터넷 한 개인 블로그에 올라 온 글 중에 재미난 것이 있어 출력해서 첨부합니다. “장학생 박사 간첩사건에 대한 과대 부풀려진 발표의혹”이라는 글입니다. 이 글도 언론보도의 이면을 지적하는 수준이라 동지가 보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내용입니다만 이런 내용을 주장하는 네티즌도 있었다는 걸 알면 동지에게도 약간이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다가 2004년 6월 8일 전경련회관에서 “일어서는 두 거인 : 인도와 중국”이라는 내용의 행사 관련 자료를 찾게 되었습니다. 동지가 구속되기 전의 자료라 이미 보셨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혹시라도 감옥에서 작업에 도움이 되실까 싶어 역시 출력해서 동봉합니다.

추운 겨울이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옥의 추위를 알지 못합니다. 연구소도 그렇게 따뜻한 편이 아니어서 겨울나기를 위해서 옷을 여려 겹 껴입습니다만 상시적인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감방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요. 그나마 감옥 비슷한 경험을 한 거라면 폐쇄병동에 6주간 있었던 것이네요. 초봄인데도 쌀쌀했고 햇볕을 쪼이기 위해 창가에 좋은 자리를 잡아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곳도 그리 따뜻하지 않았는데 감옥이야 더 말할 것이 없겠지요. 

쌍용자동차 희망텐트 농성장에서 송경동 동지의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샀습니다. 시집을 읽으니 메말라가던 시적인 감수성이 다시금 깨어나는 것 같더군요. 그 중에서 시 하나를 골라 선사합니다. 부산에서 투옥생활을 하고 계신 송경동 동지에게 허락을 얻지는 못했지만 관대하게 이해해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계절하고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민족문제에 대한 과학적⋅계급적 이해를 고민하고 있는 동지에게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철회와 해고자 복직을 주장하기 위해서 19명이 죽어야 하고, 해고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 복구를 주장하기 위해서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노동자들은 1500일을 거리에서 보내야 하는 세상. 20년간 암약하던 반국가 조직이 왕재산이란 이름으로 뚝딱 건설되고, 인터넷에 올린 표현물을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바꿔내는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딛는 2012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2월 10일에 국가보안법 철폐 집회가 있다고 합니다. 석방추진 모임에서도 함께 참여할 예정이니 소식 다시 전하겠습니다.

그해 늦은 세 번의 장마

송경동

그해 늦은 세 번의 장마는 음울했다

벼락 맞은 나무처럼 쓰러져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수많은 이들이

눈물바람으로 남북을 오갔다

수천명의 목을 자른 한 자본가는 수천 마리 소떼를 몰고 가 영웅이 되었다 그때마다 거리에서 부딪쳤던

곤봉의 세월이 허리를 끊으며 떠오르곤 했다

3년째 천막농성을 하다 구속당한

전자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안부와 무관하게

양장 고운 ≪체 게바라 평전≫은 불티나게 팔렸다

8⋅15 사면복권증을 받아온 한 선배는 넌지시 매문을 물어왔다

“기획출판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데……”

이하는 병역 거부로 수감 중인 강의석 동지의 편지다. 원문에 있는 그림이 내용을 전달하고 있기에 편지를 스캔하여 공개한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