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러지 말고 그냥 얘기 좀 해주세요”

“아... 네 곤란한 건 알겠지만 저희 팀이 활동하는 지향성의 문제이고 또 원칙이여서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네 말씀은 잘 알겠는데요... 참 곤란하네요... 그냥 말씀해주시면 편할 텐데...”

무슨 취조실 대화냐고? 아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노동예술단 선언’이 가끔 겪는 대화이다.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이 대화가 시작 될 때부터 일단 진땀부터 흘려야하고 사실... 짜증에 가까운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허긴 나보다 상대가 더 갑갑하고 스트레스 받겠지...

우리 ‘선언’은 노동자계급해방을 지향하며 활동하는 노동자계급 문화운동 단체이다. 주 활동은 노동자들의 현장 문화패 조직화와 교육, 그리고 투쟁하는 민중이 있는 곳에서 문선 공연 혹은 문화교육, 대동놀이 등을 진행하고 문예적 공연물을 연출 하는 것 등이다. 당연히 그에 따른 문예적 창작물을 계속적으로 생산해낸다.

그러다 보니 집회나 조합원 교육 등을 진행해야 하는 노동조합 간부들로부터 소위 ‘섭외’ 전화를 받는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내온 동지들과는 그런 일이 없는데 주로 우리에게 처음 연락하는 노동조합이나 단체 간부들은 대게 우리에게 ‘공연비가 얼마인지?’를 묻는다.

뭐... 심지어는 전화하자마자 대뜸 “선언 사장님이시죠?”라고 묻는 분들도 있다. 그리곤 다짜고짜 “모시려면 얼마 드려야 하나요?”라는 말을 이어 붙인다.

‘아... 또 시작이구나...’ 일단 심호흡부터 하고 이젠 거의 매뉴얼처럼 되어 있는 말을 꺼낸다.

“아 네. 저희는 노동 문화운동을 하는 단체여서 공연에 대한 비용 개념은 없는데요. 먼저 어디신지 그리고 무슨 일로 저희를 부르시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아... 그리고 저는 사장이 아닙니다요...”

“네?... 아, 아니요 저희 노조가 집행부 이취임식을 하려는데 일단 공연비가 얼마인지가 얘기되어야 결정을 할 수가 있어서요....”

십중팔구는 당황해하는 어투이다.

일단 이 이후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우리의 취지를 이해는 하는데 일단 노동조합에서 업무처리를 해야 하니 그냥 편하게 평소 받는 공연비를 말해달라는 쪽과 당최 우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않으려는 부류로... 그에 따라 대화 매뉴얼은 물론 달라진다.

“평소에 안 받거나 못 받는 곳도 많고요. 그리고 받는다 해도 우리를 부르시는 동지들의 조건에 따라 완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정말 드릴 말씀이 없어요.”

“네? 아 그럼... 제가 어떻게 조합에 보고를 합니까? 뭐 평균치라거나 기준 같은 거라도 있지 않아요?”

“저희가 문선 공연이나 교육을 가는 것은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는데 힘을 보탠다는 의미이지 상업적인 개념의 공연물을 제공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의미로 가는 게 아닙니다. 현장에서 재정 조건이 되는 동지들이 저희에게 주시는 건 단체 활동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생계, 활동비를 지원, 연대한다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우리 공연은 얼마짜리이니 얼마를 주셔야 한다는 개념을 두지 않는 것이 저희 팀의 원칙입니다.”

“아... 이거 참 그렇다고 저희 마음대로 책정할 수도 없잖아요.”

“동지들도 임투 하시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생계가 가능한 상식적인 비용이 어떻게 책정되어야 하는지 고민하실 거구요. 그에 따라서 또 조합의 재정능력에 따라서 책정해 주시면 돼요.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자리가 저희가 문선공연으로 함께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자리이냐 아니냐이겠지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얘기 한번 해보고 연락드릴게요.”

대게는 이렇게 대화가 정리된다. 조합이나 단체 실무자들을 곤란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냥 공연비나 강습비를 책정하고 편하게 얘기 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불편한 대화를 때마다 반복하며 고집을 피우는 것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게 아직은 그 고민의 결론이다.

12~3년 전에 노래 운동을 하던 선배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일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투쟁현장에서 노래하고 춤추잖아. 그러니 당연히 우리 역시 우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개런티로 요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하는 일을 스스로 부정하는 거잖아.”

그 때는 길게 얘기할 상황도 아니고 해서 그냥 듣고 말았다.

뭐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그 선배의 말이 딱히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억압받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 현장에 언제나 힘을 북돋는 노래와 춤으로 함께 하는 문화일꾼들이 있다. 많게는 하루에도 3~4회씩 주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춘다. 투쟁현장의 마이크, 엠프 시스템이 노래 부르기에 좋은 조건일 리도 만무하려니와 대개의 민중가요나 선동춤은 투쟁에 힘을 보태야하는 성격상 얌전히 부를만한 노래, 설렁설렁 출 만한 춤들도 못 된다.

한 여름 낮 30도가 넘는 온도에서도 한겨울 새벽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현장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당연히 립씽크 따위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속된 말로 목과 몸이 너덜너덜 걸레가 된다.

그리곤 소위 목관리든 컨디션 관리든 해 줄 누구 따윈 없다. 함께 악쓰고 구호 외치고 함께 싸우고... 그런 민중문화일꾼들은 대개 극심한 불안정 노동에,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언젠가 어느 동지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다.

“야 니네 몸짓선언 그 금액에 불렀냐(‘초청했나’의 뜻−편집자)? 흐흐흐 우린 얼마얼마(밝히지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싼 금액)에 불렀는데 하하하”

어느 노동조합 간부들이 이런 대화들을 하더란다.

우리 팀의 한 동지가 모 산별노조의 문화담당자와 현장 문화패와 함께 만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 그 산별노조 문화담당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단다.

“우리노조 집회는 다 내가 연출한다. 우리가 (민중가수)000도 사고 ㅁㅁㅁ도 산다.”

뭐... 역시나 그들이 잘못됐다고도 틀렸다고도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분명히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현장에서 문예일꾼으로 투쟁하는 동지들과 노동조합 혹은 단체와의 관계가 소위 ‘갑을 관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그런데 재미있는 건 정말 ‘갑을 관계’라면 끝까지 그러던가... 조합 돈 쓰기 좀 갑갑한 집회 같은 곳에선 또 종종 이들은 동지적 관계, 연대를 내세워 소위 ‘무료공연’을 당연시 한다.

하기에 아까 그 선배의 말이 틀렸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거다.

하지만 여전히... 그러하기에 더욱더 우린 그들을 불편하게 혹은 귀찮게 하는 따라서 나도 스트레스 받는 그 대화를 계속 할 수밖에 없다.

맑스도 그런 류의 말을 했었다.

이미 계급지배의 역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사회를 끝내는 책무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새 세상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는 없다고. 이미 계급 지배라는 사회적 관계에서 살아온 때가 묻은 소위 낡은 인간들이니까...

파업을 ‘노동자의 학교’라고 하는 이유는 그를 통해 계급적대관계를 확인하고 투쟁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의미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신을 통제하던 권력이 사라진 소위 해방구에서 공동체와 자치권력을 익히고 연습하기 때문이다. 계급지배의 권력관계가 사라진 새 세상을 미리 경험하며 훈련하는 과정이라는 거지.

아직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하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삶을 자본주의적 시스템으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상품이라는 세포로 이루어졌으며 시장을 떠나선 단 하루도 생존을 영위할 수 없는 이 시스템.

운동을 한다 함은 그 시스템 하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시스템을 끊임없이 지양해내려는 움직임일 게다.

세계해방이라는 노동자 민중 투쟁의 과제. 그 기본은 당연히 임노동관계의 철폐를 향해 나가는 것. 하기에 그러려는 주체들조차 누군가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사고 파는 데에 익숙해지게 놔둬선 안 될 노릇 아닌가. 물론 나 스스로도 그렇고...

어찌 보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공연을 하고 강습이나 교육을 하고 다니는 것보다 이 지긋지긋한 대화를 끊임없이 해나가는 과정이 더 본연의 운동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실 그 때 그 노래운동을 하던 선배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선배. 우리를 부르는 사람들이 다들 이미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 같은 문화활동가들이 별로 필요 없는 세상 아닐까요?”

음... 물론 소위 공연비를 책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때문에 문화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노동자 민중. 당연히 그 소외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노동자 문화운동의 정체일진데 노동자문화에서 마저 그들이 돈 때문에 소외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존재의 의미 자체가 없는 노릇 아닌가.

근데 어찌 된 일인지 심지어 ‘선언 비싸서 우리 노조는 못 부른다’는 말이 종종 들려오기도 한다. 한번도 공연비를 책정한 적 없는데 당최 누구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온 건 진...나도 모르겄다.

아무튼... 앞서 말한 그 선배는 노래를 접었었다. 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최근에 ‘대한민국 대표 진보언론’이라고 자처하는 ‘민중의 소리’라는 곳—스스로들은 자신들과는 관계 없고 민중의 소리 안에 있는 노동방송국 ‘미디어 보프’라는 곳에서 한 것이라고 말하지만—에서 모 노동조합의 음반제작 사업을 했다고 한다. 수많은 민중가수들이 만들고 부른 민중가요 44곡을 짜깁기 하여 제작을 했다는데... 아 물론 당연히 돈을 받고 제작한 것인데 문제는 그 노래의 창작자나 가수들과는 일절 상의가 없었다는 거다. 그 안엔 우리 노동예술단 선언의 음원도 들어가 있다. 지적재산권 따위에 반대하는 민중가수들이 저작권을 걸었을 리도 없고 그래서인지 그들은 창작자들, 가수들과는 상의도 없이 그냥 알아서들 노래 모아다 제작을 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 해당 창작자, 가수들이 문제제기를 했으나 납득할 만한 대답이 안 와 결국 공개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는 상황까지 갔다.

얼마 전 수많은 민중가요의 창작자인 김호철 선배와 대화를 나누다 그런 대화를 했었다.

“야~ 형 노래들 다 저작권 걸었으면 지금쯤 건물 몇 채 올렸겠는데요. 집회 때 파업가 안 부르는 경우 거의 없는데 말이죠. 하하하”그 선배와 대화를 나눈 곳은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그 선배의 집에서였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목디스크로 고통에 일그러지는 그 선배와 마주 앉아 실내에서도 두툼한 외투 입고 나누는 그 대화가 좀 서글프기도 했다.

우리 선언은 공연이나 강습조차 상품개념으로 삼지 않아 개런티라는 것도 만들지 않고 있는데 당연히 창작물에 대한 ‘지적재산권’으로서의 ‘저작권’ 따위 생각하고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우린 창작물에 대해 까다로운 편이다. 오래 전부터 많은 동지들이 그런 말을 한다.

“선언 동지들 춤 동영상 만들어서 팔면 대박일 텐데요. 같이 한번 합시다”

춤 동영상을 만들어 팔긴커녕 아는 동지들에겐 웬만하면 동영상 찍은 거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판이다. 소위 ‘카피 레프트’ 정신에 상당히 위배되는 짓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그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은 ‘재산권’으로서의 ‘저작권’이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양심권 즉 ‘창작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창작물은 대부분 그 목적이 ‘선동’에 있다. 선동... 한자말로 그대로 풀면 ‘움직임을 부추긴다’라는 의미... 하기에 우리 창작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주목적이고 당연히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싸우라고 부추겨서 정말 그 부추김에 싸우러 나갔다가 다칠 수도 감옥에 갈 수도... 더 심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 창작물이 그 뜻과 맞지 않게 쓰인다면, 예를 들어 어용들의 거짓선동이나 그들의 어용 짓거리를 가리기 위한 현란한 쑈로 쓰인다거나 한다면 그것은 창작자로서의 내 양심이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 오래 사랑받고 있는 민중가요 ‘불나비’란 노래 가사에 이런 말이 있다.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 테야”

수많은 민중문예일꾼들은 이미 가시밭길일 줄 알고 이 길에 들어섰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게다. 적들이 놓아둔 가시밭길이라면 사뿐히 즈려밟아 줄 마음가짐 정도는 기본인 이들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발바닥에 난 상처들을 소위 동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서 얻는 경우가 더 많다...앞으로도 아예 없을 수는 없을 게다. 그게 없는 세상이라면 앞서도 말했 듯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미 필요 없을 테니...

또 전화가 오고 또 똑같은 대화가 오갈 수도 있을 게다. 짜증나지만 기쁜 맘으로 난 그 싸움에 임할 테다.

추신... 집회 때 우리 선언 소개하시는 집회 사회자 동지들 제발 “민중의 투쟁에 언제나 함께 하는 선언”이라고 소개하지 말아 주십사... 우린 우리가 민중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 한번도 없으니...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