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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이집트 인민들이 역사의 무대로 돌아오다
글쓴이 조이스 체디악 E-mail send mail 번호 210
날짜 2011-02-28 조회수 2591 추천수 135
파일  1298868220_번역_채주헌.hwp

  













번역











[역자주 : 원문은





http://www.workers.org/2011/us/egyptian_people_0217/ 있다.]















이집트 인민들이 역사의 무대로 다시 돌아왔다.





가장 서사시적인 순간, 부패한 무바라크 정권과 밀접하게 엮여 있는 자들을 제외한, 사실상 이집트의 모든 주민들이 호스니 무바라크와 그 도당들의 추방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민주주의 혁명으로 궐기하였다.





아랍 국가들의 중심인 이집트는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들은 전세계의 제국주의자들과 그 하수인들을 위축시켰고, 전세계의 노동자들과 피억압 인민들이 자신의 힘을 새롭게 자각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민의 힘이다. 8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집트는 아랍에서 가장 큰 노동계급과 군대를 갖고 있는 아랍 최대의 국가이다. 이집트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3개의 대륙 사이에 위치해 있다. 흔히 “이집트가 가면 아랍 세계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중동에서의 세력관계는 되돌이킬 수 없이 변화하였다. 이스라엘과의 대결로 인해 직접적으로 억압받아온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의 피억압 인민들은 이제 그들의 억압자에 대항하는 강력한 조력자를 얻게 되었다.















타흐릴 광장 전투로 투쟁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2월 3일, 빠르게 발전하는 이집트 혁명의 새롭고 더 심화된 국면으로 진입했다. 이틀간 비무장 저항자들은 타흐릴 광장에서 수천의 사복경찰과 정부가 고용한 깡패들과 싸웠으며 2월 3일 승리하였다.





��뉴욕타임스��조차도 2월 3일의 기사에서 이 투쟁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랍 세계의 미래는 산산조각난 질서에 대한 경멸과 폭동 사이에 위태롭게 서있다. 그 미래를 위한 위한 싸움이 카이로 도심지의 거리에서 벌어졌다. 격렬한 투쟁의 주간을 보내며, 시민권을 다시 움켜쥔 수만명의 시위대는 몽둥이와 사제폭탄, 돌팔매로 무장하고, 그들의 요구에 폭력으로 응답한 권위주의적 정부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다.





“아랍세계는 이 결정적 순간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저항과 탄압 중 어느 한 쪽이 승리할 것인가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 ‘반란’이나 ‘혁명’같은 단어들은 이미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규모만을 알려줄 뿐이다. 이집트에서의 투쟁은 변화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였고, 특유의 침체상태에 빠져 오랫동안 비틀거려 온 지역인 예멘, 요르단, 시리아, 그리고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잔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승리의 환호 속에서, 다음날 수많은 인파들이 타흐릴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저항자들에게 군대를 투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집트의 국방장관인 후세인 탄타위와 다른 육군 고위 장교들이 있었다. 군 지휘관들이 광장을 방문해야겠다고 느꼈다는 사실은 인민의 운동의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그리고 단지 그 뿐이다(군 지휘관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편집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봉기를 멈출 수 없다










펜타곤은 전세계에 700여개의 군기지, 지중해에 거대한 해군 함대, 세계를 여러 차례 파괴하기에 충분한 핵무기를 갖고 있었으나, 이집트 인민의 봉기를 막을 수 없었다.





가자 지구를 봉쇄하고, 팔레스티안 인민을 고문하고, 가자와 레바논에서 민간 사회기반시설을 파괴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쏟아져나오는 이집트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미국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취약성이 폭로되었고, 워싱턴은 이집트의 투쟁으로 인해 석유가 풍부한 이 지역에 대한 전략적 지배가 수포로 되돌아갈까 두려워하고 있다.





국제위기감시기구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지역 사업책임자인 로버트 몰리에 따르면 “이집트와 미국의 관계에 대한 모든 가정은 며칠 사이에 완전히 뒤엎어졌다”고 한다. (NY Times, Feb. 2)





이집트의 저항은 이스라엘 정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군 장교들의 전략회의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인 에후드 바락은 미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와 상의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진보진영에서 빼내어 이스라엘과 미국 편에 서게 했던, 이집트와 맺었던 1979년의 조약이 무효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조약으로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더 강력하게 침략할 수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집트 내의 반대집단, 즉 가자의 하마스와 형제적 연대를 맺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을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의 의도










미국 제국주의는 이집트 혁명을 분쇄하려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대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이집트의) 군수뇌부와 아주 밀접한 유대를 맺고 있다. 사실 이집트군의 모든 참모부는 폭동이 시작되었을 때 펜타곤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고향으로 긴급히 되돌아갔다. 미국은 결국에는 무바라크를 사임시키고, 펜타곤이 훈련시키고 무장시켜 온 친제국주의적 이집트 군부와 협상하여 결국에는 선거를 조직하되, 동일한 옛 정책은 그대로 보존하려고 한다.





이 계획의 핵심 인물은 부통령으로 새로 임명된 오마르 술래이만이다. 그는 정보기관의 수장이자 고문기술자로 이집트에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미군은 비밀스럽게 전세계에서 이른바 “테러” 용의자들을 납치하여, 이집트의 비밀 감옥에 감금하고 고문하는 기구를 가지고 있는데, 술래이만은 이러한 작전의 CIA 교섭창구이기도 하다. 술래이만은 워싱톤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상황으로부터의 어떠한 변화도 워싱턴 측에게는 크나큰 모험이며, 바로 이것이 무바라크를 일찍 물러나게 한다는 요구로부터 한발 물러선 이유이다. 이집트 군부는 단일체가 아니며, ��뉴욕타임즈��의 2월 5일자 기사에 따르면 중간급 장교단의 대다수는 고위 장교의 부패와 특권에 분개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의 계급적 특성










다른 한편 이집트 군부는 인민들을 공격하고 있는 경찰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것은 국가의 무력수단이며, 그러한 무장집단의 존재 자체와 그것을 배치한다는 암묵적인 위협이야말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날그날 벌어지는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군대는 제국주의적 개입을 위한 거대한 군사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릿수로만 보자면 이집트는 미군보다도 두 배 많은 인원을 갖고 있다. 또한 경찰에게 명령을 내리는 무바라크 정부는 동시에 군대도 지휘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집트 군대는 억압받는 민족의 군대이지만, 진보적인 과거를 갖고 있다.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는 자유장교단 운동을 이끌어 영국의 꼭두각시인 파루크 왕을 물러나게 하고 권력을 획득하였다.





이집트 군대는 이스라엘에 맞선 4차례의 전쟁으로 명성을 얻었다. 또한 1981년 이집트의 안와르 엘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 그것을 실행한 것은 군부 내부의 세력이었다. 그 이유는 사다트가 서명한 이스라엘과의 1979년 협정에 대해 많은 이집트인들이 배신행위로 간주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집트 군대는 징병된 군대이며, 일반 사병들은 많은 이집트 가정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타흐릴 광장에 탱크가 진입했을 때, 시위자들은 군대를 환영하였다. 군대가 배치되자마자, 시위자들과 군인들 사이의 유대가 발생하였다. 일반 사병들뿐만 아니라 지휘관들도 시위자들을 환영하고 격려를 보냈다.





만약 군대가 인민에 맞서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많은 병사들이 인민의 편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경찰과 정권에 맞서는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CIA의 전 이집트 분석가였던 부르스 리델은 솔직한 평가를 내린다: “그들은 군중들에게 발포할 수 있었고, 다음날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리했다면 그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뉴욕 타임즈��, 1. 30)





군대의 하층 계급은 제각기 주둔지에 걸쳐져 있다. 이는 대단히 불안정하고 임시적인 상황이다.





선택지는 무엇인가?





군대는 더 민족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장교단 분파로 쪼개어질 수 있다. 일반 사병들이 탈영하여 저항하는 군중들 속으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군부가 현상태로 온전하게 유지된다면, 기회가 닿는 대로 봉기에 반대하여 그 힘을 사용하려는 이집트의 가장 반동적이고 친제국주의적인 세력의 명령을 받게 될 것이다.





시위자들은 2월 2일과 3일에 경찰깡패들이 시위자들을 공격하였을 때, 군대가 가만히 서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였다. 타흐릴 광장의 저항자들은 군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들과 대화하고, 꾸짖고, 가르치고 있다. <노사과연>










번역: 채주헌 (자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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