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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배고픔과 실업 - 튀지니 대중의 반란
글쓴이 아바요미 아지키웨이 E-mail send mail 번호 209
날짜 2011-02-28 조회수 2680 추천수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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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역자주: 이하는 미국 <노동자 세상당(Workers world party>의 기관지 󰡔노동자 세계(Worker's world)󰡕 2011년 1월 27일자 1면 머릿기사 “Hungry and jobless, Tunisian masses rebel”을 번역한 것이다. (홈페이지에는 현지 시각으로 2011년 1월 19일 오후 5:09에 등록되었다.) 번역은 초역 작업을 해주신 정상희 님의 도움을 받았다. 오역에 대한 책임은 번역자에게 있다. 아랍어 인명 표기는 검색을 통해 최대한 원어에 가깝게 표기하였다. 원문에는 아랍어 표기가 없지만 검색을 통해 추가하였다. 아랍어를 배운 적이 없기에 잘못된 점이 있을 것이다. 주석은 모두 역자에 의한 것이다. 튀니지와 북아프리카 상황에 대해 더 정보가 필요한 분들은 이들의 홈페이지(http://workers.org)에서 더 많은 기사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12월 중순부터 북아프리카 국가 튀니지에서 일어난 인민 봉기로 23년간 친서방 정부(Western-allied government)를 통치한 진 알 아비딘 빈 알리(زين العابدين بن علي, Zine El Abidine Ben Ali) 대통령이 1월 18일에 축출되었다. 빈 알리는 1월 14일 수만 명의 노동자, 청년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및 카르타고시(市)에 있는 내무부 및 여타 정부 기관을 공격하자 비행기로 도주하였다.





12월 17일 경찰에 침탈당한 한 노점상이 분신자결을 하자, 투쟁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최루탄 그리고 심지어 50에서 100명을 죽인 치안군의 발포에 도전하기 위해, 튀니지 각지 도시에서도 수 천, 수 만(thousands) 인민들이 억압적인 국가수반을 끌어내릴 때까지 집회를 이어갔다.





튀니지 인민들의 용기와 지속적인 투쟁의 첫 걸음으로 얻은 성취는 전세계적인 연대와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고물가와 실업에 타격을 받은 이웃 나라 알제리와 이집트에서의 저항에 불을 붙였다. 또한 1년 간의 파업과 저항으로도 노동자 계급의 권리를 빼앗는 “긴축” 정책을 중단시키지 못한 유럽에서도 튀니지를 주목하게 하였다.





애초에는 총리 무함마드 간누쉬(محمد الغنوشي‎, Mohammed Ghannouchi)가 빈 알리의 후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1월 15일 국회 의장(역자: 푸아드 메바자 فؤاد المبزع,‎ Fouad Mebazaa)이 천사십만 인구 국가의 전임 수반을 대체했다. 같은 날 군대는 튀니스 인근 공항을 장악했고 거리에 대한 국가 통제(state control)를 복고(復古, restore)하기 위해 수도로 진입하였다.





몇몇 보도에 따르면, 빈 알리와 결탁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민병대가 인민들에게 발포하였고 정규군과 충돌했다. 인근 주민들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위 병력을 만들었다.















휘청거리는 새 정부










빈 알리의 입헌민주연합(الاتحاد الديمقراطي الوحدوي, RCD) 정당은 새로운 국가 지도부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기에 인민들은 즉각적으로 비판하고 항의하였다. 새 지도부는 1월 16일에 야당, 전문가집단, 노동조합의 임원들을 끌어들여 연립정부를 구성하겠다고 공표했다.





입헌민주연합은 온건한 야당에 연립정부 참여를 청했다. 민주진보당과 노동과 자유를 위한 민주 포럼이 그들이다. 1월 16일 알 자지라 기자 애이만 모혜딘(أيمن محيى الدين, Ayman Mohyeldin)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우리는 이번 연립정부가 야당의 3인을 포함할 것임을 안다. 이들은 기술관료(technocrats), 무소속 인사(independents) 그리고 경제학자와 튀니지 노조 인사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아직 결의하지 못했다.”





1월 18일, 빈 알리가 불법화한(banned) 강경한 반대파의 정당들은 연합정부의 구성에서 배제되었다.





배제된 정당은 아래와 같다. 1953년 팔레스타인에서 결성된 범이슬람주의 조직으로 전역에 지부를 두고 있는 해방당(حِزْبُ التَحْرِير, Hizr ut-Tahrir). 튀니지 선거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는 또 다른 이슬람 정당 부흥당(النهضة, Hizb al-Nahda, Renaissance Party). 1986년 결성되어 학생운동을 통해 성장해 나간 좌파 조직 튀니지 노동자 공산당(حزب العمال الشيوعي التونسي‎, PCOT1)).





1월 14일 대중 봉기 중에 석방된 튀니지 노동자 공산당의 지도자 함마 하마미(حمّه الهمامي, Hamma Hammami)2)는 1월 17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전혀 민족적이지 못한 민족정부입니다. 모든 권위주의적 기관을 유지하여 구체제를 보존하려는 의도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들은 ‘우리는 RCD를 원치 않는다’는 새로운 구호로 거리에 나오고 있습니다.”





튀니지노총(UGTT)3)은 지난 20년간 집권 입헌민주연합당에 억눌려왔다. 그렇지만 지난 3년간 자주적인 노조활동이 생겼다. 특히 가프싸4) 탄광분지에서는 2008년 이래로 쟁의 행위가 일어났다.





1월 18일 입각을 수용했었던 튀니지노총 지도부 야당 인사 3인은 사퇴했다. 입헌민주연합당 지부였던 2명의 각료는 탈당했다.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군대와 치안군의 분열










튀니지 전역에 걸쳐 반란이 일어나자 추방된 빈 알리 대통령에 보다 충성스러운 것으로 보이는 치안군 지도부와 라히드 암마르(رشيد عمار‎, Rachid Ammar)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 간에 분열이 생겼다. 치안군 수뇌인 알리 쉐리아띠(علي شريعتي, Ali Seriati)는 1월 15일에 리비아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된 것으로 보도되었다.5)





다음날 카르타고 대통령궁 밖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였는데, 한 쪽은 여전히 빈 알리에게 충성하는 부대였고 반대편은 정규군이었다. 한 주 전에 빈 알리가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해임했던 내무부 장관 라핔 벨하이(رفيق بلحاج, Rafik Belhaj) 또한 구속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군대와 치안군 간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인민들은 국가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고 있다. 알 자지라의 특파원 제임스 베이(James Bay)는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우리는 보도블럭을 사이에 두고 집에서 만든 도끼와 쇠막대기 같은 무기를 지닌 대집단을 보고 있습니다.”















튀니지와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1월 17일, 시위대들은 빈 알리의 축출 이상의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청년과 노동자들의 요구는 완전고용과 세계 경제공황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 통제로 모아졌다. 런던 소재의 이코노미스트연구소(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편집장 아예샤 사다발라(Ayesha Sabavala)는 알자지라에 아래와 같이 말했다. “만약 임시정부가 빨리 실업을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항의는 더욱 더 많아질 것이다.”





1월 14일과 15일의 시위는 내무성과 다른 정부기관의 건물을 향하였다. 아직도 여당 입헌민주연합당이 지배하는 새로운 임시정부는 군과 경찰이 통제하는 국가를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계의 주요 관료들은 빈 알리처럼 일치하여 조직된 대중의 무력에 직면하여 다른 대안이 없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접한 알제리에서도 지난 12월부터 시위가 일어났다. 4명의 젊은 알제리인이 분신자살을 시도했고, 이집트에서도 한 명이, 모리타니에서도 또 한 명이 분신을 시도했다. 이러한 북아프리카에서 정세의 진전은 지난 수 년간 사실상 군사적, 경제적 개입을 단계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던 미국과 프랑스 양국의 제국주의에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튀니지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진전의 결과는 조직력의 수위와 노동자, 청년의 정치적 결단력에 달려 있다. 튀니지 대중들은 민족민주주의혁명을 반제국주의로 이어갈 수 있을까? 좌익들은 튀니지와 알제리에서의 반(anti)식민주의-신식민주의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여왔으며, 노동조합운동과 청년운동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워싱턴은 북아프리카를 소위 “테러와의 전쟁”의 타겟으로 설정했다. 북아프리카의 혁명적 진전은 새로운 군사개입을 가져올 수 있기에, 여기(미국)의 반제국주의자들과 반전 활동가들은 제국주의적 개입에 반대할 것이다. 이 지역에서의 혁명적 진전의 결과는 심화하는 전세계 경제공황에 대항하는 국제적 노동계급 투쟁의 전조가 될 것이다.





작년 유럽의 노동자들은 세계 경제공황의 심화와 결부된 긴축정책에 반발하는 대규모 집회와 총파업을 진행했다. 포르투갈, 이딸리아, 프랑스, 에스빠냐, 아일랜드에서 그리스까지 시위와 반란은 광범위하며 호전적으로 이어졌지만 노동자․청년의 행동은 정부를 퇴진시키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 긴축정책조차 중단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한 달 이상의 튀니지 사태의 진전은 세계자본주의 공황에 대항한 유럽 여느 나라의 시위와 반란보다 앞서 나간 것이다. 북아프리카 정세는 더욱 가혹하지만, 전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와 청년 또한 고실업과 생계비 상승을 겪고 있다.





노동자 또는 강건한 단호한 프롤레타리아가 개입한 진보적 세력의 연합에 의한 권력 쟁취 가능성은 국제적 함의를 지니며 정치 발전에 기념비적 성과로 될 것임이 증명될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 조직의 시위와 정치적 지도는 현재 세계 경제공황에 대한 국제 노동자계급의 총체적인 대응의 선례가 될 것이다.















역사의 교훈










레닌은 볼쉐비끼가 권력을 쟁취하기 전인 1917년 9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봉기(insurrection)가 성공하려면 음모나 정당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선도적 계급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요점입니다.”





레닌은 이어서 언급한다. “봉기는 인민의 혁명적 고조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요점입니다. 봉기는 성장하는 혁명의 역사적 전환점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때 인민의 선도적 대오가 봉기의 정점에 있을 것이며, 적의 대오는 동요할 것이며, 약하고, 열의가 없으며 우유부단한 혁명의 동지들은 강건해 질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요점입니다.”





그는 그리고 나서 이렇게 적었다. “이러한 봉기의 문제에 세 가지 조건을 내거는 것으로 맑스주의와 블랑키주의[소수 집단의 봉기에 초점을 둔 프랑스 혁명가 블랑키에서 유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봉기를 기술(art)로써 다루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맑스주의에 대한 배반이며 혁명에 대한 배반입니다.”(레닌, 「맑스주의와 봉기」) <노사과연>






1) 프랑스어 Parti Communiste des Ouvriers Tunisiens의 약자






2) 튀니지 노동자 공산당의 대변인. 1월 12일 기자들에게 튀니지의 투쟁에 대해 발언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으나 곧바로 풀려났다. 위키피디아에는 석방일자가 1월 15일로 되어 있다.






3) 프랑스어 Union Générale Tunisienne du Travail(튀니지 노동조합 총연맹)의 약자.






4) قفصة(Gafsa). 튀니지 중부에 위치한 9번 째 도시로 2008년도에도 빈 알리 체제에 대한 봉기가 일어났었다.






5) http://www.huffingtonpost.com/2011/01/16/ali-seriati-tunisia-presi_n_809695.html 








번역 최상철(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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