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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음악의 반란자(15)
글쓴이 한스 아이슬러 E-mail send mail 번호 207
날짜 2011-01-22 조회수 2550 추천수 134
파일  1295693444_4.hwp

  













번역
















번역: 최상철(편집위원) 




















지멘 환상곡















[역자주: 본문은 매카씨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조를 받았던 아이슬러가 쓴 변론문이다. 아이슬러가 매카씨즘의 희생자가 된 배경에는 가슴 아픈 가족사가 있다. 변절한 공산주의자이자 아이슬러 형제의 누이인 루트 피셔가 허스트 재단의 언론매체 ��저널 아메리카(Jouranl America)��에 작성한 칼럼 「코민테른의 미국 요원(The Comintern’s American Agent)」에 아이슬러 형제들을 할리우드에 공산주의를 가져온 이들로 고발하면서 비롯한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 잡지인 ��온라인 월간 영화음악(Film Score Monthly Online)��  2009년 4월에 실린 짐 로크너의 「붉은 작곡가 의장: 한스 아이슬러(Red Composer-In-Chief: Hanns Eisler)」를 읽으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http://www.filmscoreclicktrack.com/2009/06/red-composer-in-chief-hanns-eisler/





한국어로 된 자료는 ��음악의 혁명 혁명의 음악��을 참고하라.





지멘(G-men)은 정부 인사(Goverment men)의 약자이며 속어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요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술문의 제목 지멘 환상곡(Fantasia in G-men)은 지멘을 음계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사장조 환상곡(Fantasia in G)과 유사하게 보이는데 이를 통해 풍자적인 효과를 극대하였다. 제목 번역에 고민이 있었는데 이메일로 힌트를 주신 이경분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 청문회는 사악하면서도 우스꽝스럽습니다. 이 위원회1)는 내가 하려 하는 증언이나 할 수 있는 증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나에 관해 공식적인 중요성이 있는 것은 작곡가로서의 내 명망입니다. 내 평판이 국제적이긴 합니다만, 그 사실이 내 음악활동을 반미적인 것으로 이끌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이 위원회가 내게 적격인 유일한 분야인 음악에 관한 주제를 강의하도록 허락한다면 기뻤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와 현악 4중주의 기교적인 발전이나 푸가에 대해 분석하는 것과 같은 것을 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깊은 문화적인 관심사를 논하기 위해 나를 부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반대로 순전히 언론을 통해 나를 헐뜯고, 전국적으로 예술가들을 위협하여 이로 말미암아 이 위원회의 정치적 이념에 따르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를 불렀습니다. 지난 5월 할리우드의 소위원회에 갔었는데 당신들은 내게 증언을 하라고 두 번째로 불렀군요.





당신들은 우쭐대면서 내게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합당한 논점이 아닙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 나라에서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935년 초에 로드 말리(Lord Marley)2)가 위원장으로 있는 영국 상원의원의 위원회의 보호 하에 독일 반나치 망명자의 자녀들을 위한 모금을 하기 위해 미국에 왔습니다. 공연과 강연을 위한 여행을 두세 달 동안 하였지요.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음악 문화 파괴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강연은 독일어로 진행했고 청중에게 통역되었죠.





1935년 가을에 뉴욕 신사회과학대학(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의 음악교수직을 수락하기 위해 미국에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음악 작곡이론과 대위법을 가르쳤습니다. 이무렵에는 내가 작곡한 뮤지컬 <어머니>가 브로드웨이에서 연출되고 있었죠. 1936년 초에 영국 국제 영화기업3)이 제작한 <팔리아치(Pagliacci)>의 음악감독을 하고 작곡을 하기 위해 미국을 떠났습니다. 1938년이 되자 신사회과학대학에서의 강의를 재개했습니다.





1939년 5월에 국립 음악학교의 초빙교수가 되기 위해 멕시코 씨티로 갔습니다. 1939년 9월 경 다시 신사회과학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당시에 뉴욕 만국박람회4)를 위한 영화 음악을 작곡을 했습니다.





1940년 10월에 음악 교수자격으로 비할당비자(non-quota visa) 이민을 미국에서 허락받았습니다. 그 무렵에 록펠러 재단이 신사회과학대학의 현대 음악과 영화와의 관련성에 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내게 2만 달러를 보조금으로 주었습니다. 그 연구 결과물은 최근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나의 책 ��영화음악 작곡(Composing for the films)��에 드러납니다. 만약 이 위원회가 예술가로서의 나의 신념과 원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위원회 성원들 각자가 이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최근 5년간 할리우드에 거주했고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None But the Lonely Heart)>, <교수형 집행인도 죽는다(Hangmen Also Die)>5), <스패니쉬 메인(Spanish Main)6)>, <해변의 여인(Woman on the Beach)>, <잘 기억하노라(So well remembered)>와 같은 작품을 포함해 8개의 영화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남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단기 음악교수로 부임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기간 중에 나는 여러 관현악단을 위한 교향악과, 실내악 그리고 성악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최근에 연주된 내 작품은 <목관 5중주>, <피아노를 위한 3번 소나타>,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알토, 2대의 클라리넷,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칸타타>, <관현악을 위한 작은 교향곡> 등을 작곡했습니다.7) 많은 내 작품들이 녹음되었죠. 신사여러분 이것들이 미국에서의 내 활동이며 이것들이 위원회가 “반미국적”이라 간주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나는 정치 활동에 간여하지도 정당원이지도 않았습니다. 위원회는 조사와 이전의 공청회를 통해 나에 관한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러한 환상적인 탄압에 복종해야 합니까? 왜 위원회는 1년이 넘게 나를 헐뜯으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합니까? 왜 생계를 위한 활동을 어렵게 합니까? 왜 위원회는 내가 프랑스에서 제작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의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국무부가 위법적인 조치로 위협하도록 유도했습니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흠모하며 변호하고 계속해서 변호할 게르하르트 아이슬러의 동생이기 때문입니다. 위원회는 형제애가 반미국적이라고 믿습니까? 보다 중요한 것은 위원회는 나를 탄압하여 자신들이 여러 쓸데없는 이유로 싫어하는 미국의 다른 예술가들을 협박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위원회는 이 나라의 모든 자유롭고, 진보적이며 사회의식적인 예술가를 몰아내고, 그들의 작품을 반헌법적이며 광분한 정치 검열기관에 복속시키길 원합니다. 이 위원회가 무엇이 미국적인 예술이고 반미국적인 예술인지 심판한다면 미국 예술이 어떻게 될지 끔찍하군요.





이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는 실패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원 반미활동 조사 위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출처: Fantasia in G-men(지멘 환상곡), New Masses(신대중), 뉴욕, 1947년 10월 14일.





아이슬러 전집(EGW) Ⅲ/Ⅰ, pp. 521-523.










이 진술서는 타게부흐8), 비엔나, 1947년 11월 14일자에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신대중��지에는 아래와 같은 소개문이 있다.










“그리고 이제 한스 아이슬러! 하원 반미활동 조사 위원회는 위대한 반파시즘 작곡가를 게르하르트 아이슬러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수개월 동안 들볶은 후에 법무부에 탄압을 마무리하기를 요청했다. 법무부는 열심히 협력하여 위원회 의장 존 파넬 토마스(J. Parnell Thomas)9)의 칭찬을 받았고 아이슬러와 그 배우자를 국외추방 소송을 위해 체포하였다. 얼마나 기괴한 역설인가. 민주 독일10)을 위한 투쟁을 하기 위해 고국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게르하르트 아이슬러는 미국의 감옥행을 강요받았다. 그의 작품으로 문화가 풍부하게 된 미국에 남길 원하는 아이슬러는 독일로 추방되어야 한다니!”





“자신의 신념이 무엇이든 간에 권리장전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미국인들이라면 검찰 총장 톰 클라크11)에게 아이슬러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청할 때이다. 반미 위원회의 할리우드 취조가 워싱턴에서 10월 20일에 재개되는 것에 맞서 저항이 울려 퍼지도록 하자.”





“우리는 자신의 공청회에서 낭독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반미 위원회에 대한 한스 아이슬러의 도전적인 진술을 게재한다.”










아이슬러의 심문은 1947년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워싱턴 D.C.에서 진행되었다. 진술은 문서로 남겨졌지만 낭독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으며 그의 호소는 기각되었다. <노사과연>






1) 미국 하원 반미활동 조사 위원회(House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 1938년 구성되었고, 1969년 하원 내무 안전 위원회(House Committee on Internal Security)로 이름이 변경되어 1975년 폐지될 때까지 존재하였다. 할리우드 인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취조한 것으로 악명 높은데 찰리 채플린과 한스 아이슬러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희생자였다.






2) (1884-1952) 해군 출신으로 영국 노동당 원내수석 총무였다.






3) British International Pictures. 현재는 Associated British Picture Corporation.






4) 원주: 1939년 여름 뉴욕 만국박함회에서 미국 석유업의 홍보를 위한 인형 만화 영화 <피트 롤럼과 그의 사촌들(Pete Roleum and His Cousins)>을 말한다. 한스 아이슬러가 작곡자, 조셉 로셉이 영화감독이었다. 이는 한스 아이슬러의 영화산업으로의 돌진을 뜻했다.





역자주: 피트 롤럼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석유공업을 나타내는 Pet-Roleum을 변형한 것이다. 망명자 아이슬러는 영화음악 제작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많은 진보적이며 변혁적인 작품의 음악도 담당했지만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받고 또 대자본을 위한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던 것은 망명자로서의 생계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할지라도 과오로 봐야할 것이다.






5) 체코의 반파시즘 투쟁을 소재로 한 상업 영화.






6) 에스빠냐 제국이 아메리카 침략으로 획득한 에스빠냐령으로 플로리다, 멕시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북안을 포괄한다.






7) 미국에서 연주된 작품으로 아이슬러가 언급한 곡들 중 일부는 보다 일찍 작곡한 것이다. Divertimento für Bläserquintett(목관 5중주를 위한 희유곡—역자: 희유곡은 18세기 오스트리아에서 유행한 귀족들을 위한 가벼운 실내악에서 유래한다.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는 기분전환을 뜻한다.), 1923, Kleine Sinfonie(작은 교향곡), 1932, Kammerkantaten für Gesang, zwei Klarinetten, Viola und Violoncello(알토, 2대의 클라리넷,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실내악 칸타타) 그리고 Sonate für Violine und Klavier(Die Reise sonate)(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여행 소나타), 1937.






8) Tagebuch. ‘일기’라는 뜻으로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발행되던 일간지로 보인다.






9) (1895-1970) 미 공화당 의원이었이며 주식중개인이기도 했다. 유명한 반공인사로 1947년에서 48년까지 하원 반미활동 조사 위원회 의장이었다.






10) 동독(독일 민주공화국)을 가리킨다.






11) Tom C. Clark (1899-1977) 1945년 트루먼이 임명한 검찰총장. 훗날 트루먼을 이를 ‘가장 큰 실수’였다며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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