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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채만수 동지의 “한국사회성격과 변혁전략 토론회 논평”에 대한 반비판
글쓴이 문영찬|편집위원 E-mail send mail 번호 205
날짜 2011-01-22 조회수 2381 추천수 153
파일  1295692610_2.hwp

  













채만수 동지의 “한국사회성격과 변혁전략 토론회 논평”에 대한 반비판











1. 한국사회 성격과 변혁전략에 대한 논쟁이 비록 제한된 범위 내에서이지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쏘련 붕괴후 무너진 운동이 소생하면서 다시 과학적인 변혁적 노선의 수립을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운동의 전진은 과학의 추구과정에서 비롯된다. 멀리 1980년대의 운동이 부활하고 급성장했던 것은 과학적 노선을 수립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반대로 1990년대 운동의 몰락은 과학적 노선의 실종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운동의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개량주의의 득세가 운동의 현실을 왜곡하고 노동자, 민중의 진출을 가로막더라도 운동에 왕도는 없다. 오직 과학적 노선을 수립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만이 운동의 일보일보의 전진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맑스-레닌주의 진영의 사회구성체 논쟁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 논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통해서 정치노선에서 과학적 노선을 정립하고 나아가 이를 조직노선으로까지 구체화하여 전위당 건설의 전망을 세우는 것으로까지 전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암초에 부딪히고 있는데 그것은 두가지 측면에서이다. 하나는 쏘련 붕괴 후에 제국주의 단일체제가 성립하여 세계사의 반동성이 강화되는 가운데 제국주의와 신식민지 민중 간에 지배-종속 관계가 재차 강화되는 현실을 외면하고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상에 도취되어 아예 한국자본주의의 종속성 혹은 신식민지성을 부인하는 견해가 하나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수용하더라도 그것의 참된 의미를 왜곡하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해 겉핥기식의 접근을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측면이다. 따라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본질적 의미를 복원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오늘날의 변화된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여 전략수립의 튼튼한 기초를 확보하고 운동의 과학성을 강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 채만수 동지의 토론회에 대한 논평은 신랄하다. “풍차로의 돌진”, “심각한 논리적 혼란”, “소부르주아 경제학” 등의 용어를 거침없이 구사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채동지의 논평은 전진적 측면과 후퇴적 측면이 다함께 있다. 전진적 측면은 먼저 논쟁의 쟁점을 정리하여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채동지는 반보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채동지는 후퇴적 측면도 동시에 갖고 있는데 그것은 논쟁의 참된 의미를 흐리고 대립이 “용어상의 대립”, “환상적 대립”이라고 하면서 전략상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차이를 혼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진적 측면과 후퇴적 측면이 있기에 채동지의 논의는 반보 이상을 전진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먼저 채동지가 “용어상의 대립”, “환상적 대립”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과연 그러한가를 살펴보자. 채동지는 노정협의 백철현 동지와 나와의 대립에서 신식민지의 문제, 혹은 반제의 문제에 대해 환상적인 대립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말싸움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채동지가 대립의 본질, 쟁점의 현실에 대해 매우 피상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대립의 현실에 뛰어들기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식민지성의 문제에서 노정협의 백동지와 나와의 대립의 핵심은 경제에서 종속성을 인정하는가 여부이다. 왜냐하면 백동지는 한국의 미제국주의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종속성은 인정하고 반제투쟁 또한 인정하지만 경제에서 종속성은 한사코 부인하면서 그 결과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성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전략상에서 중대한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백동지의 견해를 따른다면 반제투쟁의 과제는 미군이 철수하고 불평등 조약이 폐지되면 완수되는 것이다. 정치적, 군사적 문제만 해결되면 제국주의가 축출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국주의 문제에서 엄청난 편향이고 불철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경제적 측면에서 제국주의를 축출하는 문제가 간과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에서 종속성을 인정할 때 제국주의 축출은 경제에서의 혁명을 필요로 하는데 백동지는 이를 부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략상에서 특히 동맹군의 문제에서 하늘과 땅차이의 견해차가 있다는 것이다. 즉, 경제에서 종속성을 인정할 경우 제국주의 축출을 위해서는 경제에서의 혁명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에게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할 것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고 이는 사회주의 혁명에서 막대한 동맹군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백동지의 경우 이러한 동맹군을 상실하는 것을 전략으로 제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략상의 중대한 차이를 초래하는 것이 경제에서 종속성의 인정 여부인데 채동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차이가 단지 “용어상의 대립”, “환상적인 대립”이라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채동지의 접근은 피상적 접근이고 불철저한 접근에 그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그러면 채동지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본격적으로 비판해보자. 채동지의 논리는 나름대로 일관되어 있다. 한국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의 성립시기로부터 시작해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의 문제, 그리고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테제에 대한 부정까지 일정한 정합성을 갖는 논리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정한 논리의 일관성은 있지만 불행하게도 채동지의 이해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본질에 대해 들어가지 못하고 그 운동 메카니즘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하나 채동지의 견해를 확인하면서 그 문제점을 살펴보자.





채동지는 한국에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시기를 1970년대 초반으로 잡고 있다. 이는 단지 실증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판단의 의미는 한국자본주의가 자유경쟁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고서 자본주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서 예속적 자본주의의 성립과 그 특수성,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의 운동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이다.





한국사회에서 예속적 자본주의의 성립은 1950년대이다. 귀속재산 불하, 농지개혁, 원조 등을 매개로 한국에서 예속자본가계급이 1950년대에 탄생하였고 이들이 이승만 정권의 계급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예속적 자본가 계급의 핵심은 재벌, 즉, 독점자본들이었다. 1950년대에 형성된 이들 재벌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지속적으로 자본을 축적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즉, 1950년대와 2010년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연속성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논리적으로 볼 때도 1950년대에 형성된 재벌은 이승만 정권이라는 자신의 국가권력을 창출하고 향유하였던 계급이다. 즉, 1950년대의 재벌, 예속적 독점자본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관철하였고 다른 모든 계급 위에 우뚝 선 계급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1950년대에 재벌, 즉, 독점자본은 한국사회의 명실상부한 지배계급이었고 한국자본주의의 운동은 이들을 중심으로 관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채동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안이하게도 한국자본주의가 자유경쟁 자본주의 단계를 거쳐서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했다는 도식적 접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채동지는 자신의 논리의 일관성으로 말미암아 낮은 생산력이라는 개념을 부인한다. 즉, 한국의 예속적 자본주의가 낮은 생산력에 기초하여 성립된 독점자본주의로 출발했다는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사회에서 예속적 자본주의 운동의 출발점인데 이 출발점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낮은 생산력이라는 개념에 기초하여 한국자본주의 현실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된 1950년대의 핵심적 의미는 예속자본가계급이 탄생했다는 것이고 이들은 낮은 생산력에도 불구하고 재벌이라는 독점자본을 창출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예속적 독점자본의 축적을 보장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이승만 정권이라는 상부구조가 반동성과 폭력성을 자신의 본질로 했다는 것이다. 이 점이 1950년대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운동과 계급적 대립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채동지는 낮은 생산력이라는 개념을 부인하고 자본주의 발전 자체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접근이고 실사구시의 접근이 아니다. 모순의 운동, 자본주의 발전 자체에서 변혁성이 주어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러한 모순의 운동이 한국사회에서는 1950년대에 낮은 생산력에 기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를 인식할 때만 이승만 정권의 반동성과 폭력성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4.19혁명을 채동지처럼 자본주의 발전이 가속화한 결과 일어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4.19혁명은 자본주의 발전 자체에서 주어진 변혁이라기 보다는 낮은 생산력에 기반한 예속독점자본의 축적구조라는 한국자본주의의 취약성이 폭발한 것이라고 파악할 때 보다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





채동지는 자신의 논리의 일관성을 위해 아예 낮은 생산력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독단이다. 생산력이라는 개념은 사적 유물론의 기본개념이다. 그리고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개념 또한 과학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당연히 생산력의 높고 낮음 또한 상대적 비교를 위해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에 입각하여 성립한 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은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전혀 문제될 수 없고 반대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이론화하는 개념이다.





채동지는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성의 경제적 기초를 파악하는 것을 사적 유물론을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채동지의 문제의식은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은 낮은 생산력에 의해 기초지워졌다’라는 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사적 유물론은 한 사회를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토대에 기초하여 국가, 이데올로기 등 상부구조를 종합적으로, 총체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예속성의 경제적 기초를 파악하려 노력한다는 것은 예속성에 대한 참다운 과학적 접근이 아닌가? 반대로 백동지처럼 정치적, 군사적 예속성은 인정하지만 경제적 예속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피상적 접근이고 사적 유물론에 불철저한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채동지는 예속성의 문제에 대한 사적 유물론적 접근에서 후퇴하고 있는 것인데 왜냐하면 예속성의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사적 유물론적 접근을 하게 되면 채동지가 한사코 부인하는 낮은 생산력이라는 범주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자본주의의 운동과 모순구조, 그리고 변화의 단계와 관련하여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우선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이 낮은 생산력에 의해 기초지워졌다는 것은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적 운동의 출발점을 규명하는 것이고 이후 한국자본주의 운동을 규정짓는 의미가 있다. 1980년대까지 한국자본주의는 낮은 생산력에 기초하여 예속독점자본들의 축적을 보장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동자, 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가혹한 수탈을 본질로 했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노동자, 민중의 도전을 배제하기 위해 파시즘이라는 반동적이고 폭력적인 상부구조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 일관되게 설명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바로 1980년대까지 한국사회의 현실적 모습이었던 것이다. 유신체제, 그리고 그것의 붕괴, 광주항쟁과 그것의 진압, 전두환 군사파쇼 등의 한국의 정치사는 낮은 생산력에 기초한 예속독점자본의 축적을 보장하는 것을 둘러싼 계급투쟁의 전개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1980년대까지 파시즘이라는 상부구조의 폭력성과 반동성은 바로 이 점에 기초했던 것이다.





그러나 낮은 생산력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즉,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것을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예속적 자본주의의 출발점은 낮은 생산력이라는 것이었지만 그에 기초하여 생산력 발전이 이루어져 일정한 질적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현실과 이론 중에 일차적인 것은 현실이다. 이론은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는 데 봉사하는 것이다. 이론적 도식에, 일반적 명제에 현실을 끼워맞추는 것은 독단이고 교조주의이다. 변화하는 현실을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이론의 목적이다.





신식민지주의가 구식민지와 다른 점은 예속적 자본주의이지만 자본주의의 발전 가능성이 구식민지에 비해 상당히 열려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서 한국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는 낮은 생산력에 기초하여 예속성을 조건으로 하였지만 지속적으로 자본축적을 강화해왔다. 그리하여 국제분업구조에서 한단계 상승을 하여 NIES라는 신흥공업국의 대열로 발돋움을 했다. 특히 결정적으로는 쏘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화로 인한 시장의 확대, 사회주의 운동의 붕괴를 조건으로 자본축적을 가속화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단계를 나눌 필요성이 생긴다.





1990년대 이후의 한국자본주의의 운동은 1980년대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떠오르는 신흥공업국이고 상부구조 또한 파시즘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을 하고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차지하는 지위 또한 상승을 한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계급대립구도 또한 본질적으로 변화하여 파시즘을 내세웠던 반동부르주아지 대 한국민중의 대립이 주요모순이 더 이상 아니라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포함하는 자본가계급 전체 대 노동자 민중의 대립으로 전화하여 변혁의 단계가 반제 반파쇼의 민족민주 변혁에서 사회주의 변혁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계급대립구도의 변화의 핵심은 중소자본을 대표했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으로 포섭되어 집권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자본주의의 변화는 당연히 생산력의 변화도 포함하는데 1980년대까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를 설명했던 낮은 생산력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이후의 현실에는 맞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이론을 개조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문제로 남는 것은 그러면 낮은 생산력이라는 범주가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에 기초하여 성립했던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테제는 어떻게 되는가이다.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테제의 문제의식은 한국사회의 예속성의 경제적 기초를 발견하고 이를 이론화하고 한국사회의 예속적 자본주의의 운동의 경향에 기초하여 상부구조까지 포함하는 사회구성체 전체를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채동지는 예속성의 문제를 정치적, 군사적 예속성으로 말미암아 경제적 예속성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것은 충분하지 못한 설명이다. 채동지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더라도 채동지의 논리와 반대로 경제적 예속성을 기초로 정치적, 군사적 예속성을 해명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할 때 한국의 사회구성체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획득되는 것이다. 낮은 생산력이라는 것은 1980년대까지 한국자본주의를 설명하는 유효한 인식틀이었다. 그러나 낮은 생산력이라는 개념이 90년대 이후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개념 자체가 폐기될 수 없는 것처럼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테제 또한 변화한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테제는 한국자본주의의 축적구조를 설명하는 틀이었다. 자본의 재생산과정의 예속성으로 말미암아 축적이 진전될수록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자본주의의 재생산과정의 예속성을 기초지운 것은 낮은 생산력이었다. 따라서 낮은 생산력이 더 이상 변화한 현실을 설명하지 못할 때 그러면 재생산과정의 예속성이 사라졌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재생산과정의 예속성은 자본, 기술, 시장의 면에서 주어진다. 따라서 이는 실제적 경향의 확인의 문제이다. 자본의 면에서 예속성은 2단계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되었다. 과거의 상품시장개방에서 자본시장 개방으로 개방의 폭이 확대되어 온 것이다. 과거 자본에서의 예속성은 외채라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한국의 주요 예속독점자본에 대한 제국주의 자본의 주식보유의 확대, 주요 은행 등의 장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즉, 경제의 관제고지인 금융이 제국주의 자본에 장악되어 있는 상태이고 주요 독점자본에 대한 제국주의 외국자본의 주식보유도 거의 50%에 달한다. 이렇듯 자본의 면에서 예속성은 심화되는 경향을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97년의 IMF 구제금융이었다. 97년의 IMF는 한국자본주의가 취약성을 많이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일거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확인시켜준 사례이다. 한편 재생산과정의 예속성의 또 하나의 측면인 기술의 면을 본다면 주요한 것은 자본재의 수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을 의미하는 자본재의 수입의 증가는 한국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켜서 일부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고도의 기술력을 실현하고 있지만 한국자본주의 전체적으로는 기술적 종속이 상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재생산과정의 예속성의 지표가 되는 시장의 면을 본다면 내수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해외시장에의 의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미국시장의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 등 다른 나라의 시장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것은 해외시장에의 의존이라는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와 같이 1990년대 이후 한국자본주의는 낮은 생산력이라는 특징은 많이 극복했지만 자본, 시장, 기술의 면에서 종속성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국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질서에 더욱 깊숙이 종속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축적을 고도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와 같이 낮은 생산력이라는 특징을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80년대까지의 민족민주변혁이 유산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이 개량의 방식으로 이루어져 예속독점자본들의 축적구조가 전혀 침해되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한국자본주의의 축적구조가 온존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더 논의를 진전시킨다면 미제와 한국의 예속적 독점자본의 관계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지배계급인 예속독점자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자신들의 생존의 조건으로 한다. 이들의 상호관계를 볼 때 과거에는 미제국주의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었다면 한국자본주의가 성장한 지금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한국의 지배계급의 능동성이 커지고 있다. 즉, 예속독점자본들의 미제와의 동맹은 예속적 동맹이면서 능동적 예속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능동성의 강화가 자주성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속성의 고도화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반제의 문제, 미제국주의 축출의 문제는 단지 정치적,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고 제국주의 축출과 사회주의 변혁의 통일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민족적 과제를 포함하는 사회주의 변혁이라는 당면 변혁의 성격의 과학적 토대가 확보되는 것이다.





그러나 채동지는 정치적, 군사적 예속에 의해 경제적 예속성이 주어진다고 설명하는데 그치고 있어서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적 운동의 구조를 밝히고 있지 못하고 한국에서 예속성의 진화와 변화를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 이 점은 중요한데 신식민지주의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자본주의와 미제의 관계는 일정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면서 고도화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4. 농업문제에 대하여. 채동지가 역점을 두어서 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농업문제에 대한 견해이다. 채동지는 농업의 몰락과 농민의 몰락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으로 접근을 시작하고 있다. 이는 타당한 접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채동지는 소농의 몰락이라는 자본주의의 발전법칙을 강조하는 데 그치고 있고 한국농업의 현실에 대해서는 빗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농업의 몰락, 자본주의의 미발전 등을 말하는 것은 “소부르주아 농업경제학자들의 상투적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것”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채동지에게 묻고 싶다. 한국농업의 현실을 분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소농의 몰락이라는 자본주의의 발전법칙을 확인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농업, 농민의 현실을 파악하여 사회주의 변혁의 동맹군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함인가? 한국농업을 분석하는 이유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전법칙 하에서 농민의 현실을 파악하고 소농의 몰락이라는 보편적 현상을 넘어서 농업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가능성을 탐지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당연히 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닌가가 농업문제에 접근하는 열쇠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은 이루어지기는 커녕 농업 자체가 몰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채동지는 들판의 곡식을 보고 농업은 여전하다고 하고 있지만 식량자급율의 끊임없는 저하는 한국농업의 몰락을 웅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중요한데 한국농업에서 몰락하고 있는 것은 단지 소농이 아니다. 80년대에 농민의 혁명적 진출에 놀란 지배계급은 농업의 육성을 내세우고 수십조원을 투자하여 기업농, 대농을 육성하려 했지만 다 실패했고 당시 자금지원을 받았던 농민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몰락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한국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지속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계급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는데 왜냐하면 농업에서 자본주의의 미발전으로 말미암아 농업노동자계급이 창출이 안 되고 따라서 농업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경로는 중대한 수정을 받아야 하고 토지국유화 등 농업 강령이 수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채동지는 언급이 없고 몰락하고 있는 것은 농업이 아니라 소농이다라고 하는 것은 농업문제에 대한 태만한 접근이다. 채동지는 소농의 몰락 등 자본주의의 발전 법칙을 기본으로 하고 신식민지성은 단지 그것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는데 보편적 법칙과 특수성을 통일시켜서 파악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농업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일반적 법칙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미발전으로 인한 농업노동자계급의 부재, 시장개방으로 인한 농업의 몰락, 소농의 분해를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만이 올바른 농업강령의 작성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신식민지성을 부인하는 노정협의 PTR로는 농민의 변혁성을 파악할 수 없다”라는 나의 주장에 대한 채동지의 부인은 유효하지 않다.










5. 보편과 특수에 대하여. 채동지는 “종속성이 강화되느냐, 약화되느냐와는 무관하게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나의 주장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라 하고 있다. 채동지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이라는 조사라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채동지가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과도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그러한 주장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노정협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확인해보자. 노정협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한국자본주의는 종속의 심화나 종속의 약화에 따라서 위기가 심화되거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독점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때문에 위기가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변혁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노동자 정치신문�� 58호, 2009년 12월호). 나의 주장이 이러한 노정협의 진의를 왜곡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노정협은 종속문제가 현실 계급투쟁에서 갖는 의의를 철저히 부정하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보편적인 것에 의해 변혁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내가 풍차를 향해 돌진한 것인가, 아니면 채동지가 풍차를 향해 돌진한 것인가? 노정협이 이렇게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철학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편과 특수, (개별)의 상호관계라는 변증법의 범주를 왜곡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동지는 보편은 주요한 것이고 특수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보편은 지배적인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백동지의 변증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채동지는 이러한 백동지의 오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러한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내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보편과 특수의 문제는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에서도 중요한 범주였는데 지금도 이 범주에 대한 논쟁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구성체적 접근은 자본주의라는 보편적 접근을 넘어서서 한국사회의 발전법칙의 특수성을 해명하는 것이고 따라서 보편과 특수를 통일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한국사회의 발전법칙이 제출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6. 지금의 사회구성체 논쟁은 무너졌던 과학적 노선을 복원하고 2010년 지금의 현실에 맞추어서 노선을 개조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구성체 논쟁과 변혁전략의 수립을 통일시키는 것은 단지 멋진 논리의 구사, 지식의 과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투명한 인식과 그에 기초하여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길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첫째, 원칙을 복원하는 것, 둘째, 변화한 현실에 맞게 현실의 변화를 담는 이론을 구체화하는 것, 셋째, 하나의 정치노선으로 발전시켜서 맑스-레닌주의가 사상적 조류에서 정치적 조류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하는 것, 넷째, 정치노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노선으로까지 구체화하여 전위당 건설의 전망을 세우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운동의 발전은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치열한 과학적 탐구와 창조적 고민을 결합시켜서 과학적 노선을 세우는 일보전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때 운동은 서서히 전진하고 역사의 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위적 운동, 맑스-레닌주의 운동은 사상의 통일에 기초할 때 굳건하게 전진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상적 통일을 위해서는 먼저 서로의 차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차이를 명확히 하는 것을 기초로 사상적 통일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 기울여질 때 전위당의 전망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 과제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노동자 한국의 농업은 쟁기질에서 분명 벗어나 있습니다. 2011-01-23 2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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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 채만수 동지의 “한국사회성격과 변혁전략 토론회 논평...[1] 문영찬|편집위원 2011-01-22 2381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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