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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한국 ‘사회성격’과 ‘변혁전략’ 토론회”에
글쓴이 채만수 | 소장 E-mail send mail 번호 203
날짜 2011-01-22 조회수 2164 추천수 145
파일  1295680178_dba1.hwp

  

























1)





서. 의의와 과제










구랍 4일에 열렸던 “한국 ‘사회성격’과 ‘변혁전략’ 토론회”는 토론회를 기획하면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충분히 올렸다고 생각된다. 드러난 이견과 쟁점에 대해 합의에 이르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이견과 쟁점을 드러냄으로써, 한국 사회의 구성 및 성격을 규명하고 그에 기초하여 그 변혁전략을 모색함에 있어서 논구되어야 할 문제의 일단을 명확히 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견과 쟁점은 주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현 단계와 변혁전략”(<<한국 ‘사회성격’과 ‘변혁전략’ 토론회 자료집>>(이하 <<자료집>>), pp. 7-15)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본 연구소의 문영찬 동지와 “한국자본주의 성립과 발전, 혁명의 문제”(<<자료집>>, pp. 16-34)란 제목으로 발제한 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의 백철현 동지 사이에 발생했다. 그리고 특히 중요한 이견은 한국 사회의 ‘종속성’ 혹은 ‘예속성’, 혹은 그 ‘신식민지성’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서, 즉 두 토론자 사이에 인식을 일견 같이 하는 부분과 서로 달리하는 부분에 관해서, 그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 우선 검토할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한 두 토론자의 규정과 그들이 제시하는 변혁의 과제 혹은 전략, 경로가 상호 조응하고 일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도 포함된다. 마지막으로는, 이 주제를 논할 때 그 논의의 완결성을 위해서 추가적으로 논의되(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에 대해서 언급하기로 한다.















1.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의 문제










서로 이견을 제출하면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종속성’ 혹은 ‘신식민지성’의 문제를 일단 차치하고 보면, 두 토론자는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를 모두 국가독점자본주의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일견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토론회에서는 시간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주요 쟁점으로 되지는 않았지만, 일견 동일해 보이는 그 인식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 우선, 백 동지는 1948년 이후 농지개혁을 통한 (반)봉건적 지주-소작관계의 해체를 통해서 한국 사회는 (자유경쟁적) 자본주의 사회구성으로 이행했고(<<자료집>> pp. 16-19), “한국에서 독점자본주의의 성립기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해서 대규모 생산기반이 다져졌던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자료집>>, p. 21)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는 “한국자본주의는 자유경쟁 자본주의 단계를 ‘비월’하여 곧바로 독점자본주의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자료집>>, p. 20)을 비판하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독점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이전 자유경쟁 단계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에 개입하여 국가자본주의적 발전을 하고 이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변화했다. 유럽에서는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결합한 금융독점체가 형성되었다면 한국에서는 국가권력이 은행을 장악하고 국유기업을 소유하기도 하면서 산업전반에 대한 지배와 개입을 강화하는 속에서 70년대 말이나 80년대 중공업을 중심으로 독점자본주의가 성립하게 되었다.





한국의 국가권력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산업에 대한 지배력과 일제가 남긴 귀속재산의 불하, 제국주의 원조, 차관으로 받은 자본특혜, 국가권력의 은행지배로 산업은행을 통한 특혜금융, 보호무역 강화와 산업과 과학기술육성, 농민수탈과 농촌으로부터 이주한 저임금 노동력 창출과 국가권력에 의한 노동쟁의의 무자비한 탄압 등으로 독점자본주의를 창출했다. 한국자본주의는 국가자본주의적 특성을 지닌 자유경쟁 단계를 압축적으로 거쳤던 것이다.





물론 50년대 말을 경과하면서 한국에서는 이른바 ‘재벌’이라는 독점자본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재벌이 형성되었다는 것과 독점자본이 전체 사회와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형성했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1960년대에 대기업은 제당, 방적, 비누, 고무신 등 소비재 산업을 중심으로 지배력을 강화해가고 있었으나 여전히 독점자본의 규모 자체도 작고 생산력 발전의 수준도 낮았을 뿐더러 금융과 산업 전반에 대한 지배력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또한 소수 산업을 제외하고 전체 산업에서는 여전히 수백, 수천의 산업이 경쟁하고 있었다. 더욱이 제철, 제강, 기계나 화학공업 등에서는 대규모 기계제 생산 자체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





... 한국에서 독점자본주의의 성립기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해서 대규모 생산기반이 다져졌던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이다. 독점자본주의의 성립은 독점자본이 국가를 실질적으로 종속시키고 독점자본이 전체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료집>>, pp. 20-21)










2) 이에 비해서 문 동지는, “경제적 측면에서는 귀속재산 불하, 농지개혁을 거치면서” 그 “운동을 시작”한 한국 자본주의를 처음부터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다만 “1980년대까지”를 그 “1단계”로, “1990년대, 2000년대”를 그 “2단계”로 파악하고 있다. (<<자료집>>, pp. 8-9 참조.) 한국 자본주의에 경쟁적 단계는 없었다는 것이다.





백 동지의 표현을 빌어 얘기하자면, “일부 재벌이 형성되었다는 것과 독점자본이 전체 사회와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형성했다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3) 이 두 견해와 관련하여 나는 기본적으로 백 동지의 견해에 동의한다. 백 동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물론 50년대 말을 경과하면서 한국에서는 이른바 ‘재벌’이라는 독점자본이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일부 재벌이 형성되었다는 것과 독점자본이 전체 사회와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형성했다는 것은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다만, 백 동지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로의 이행이 과연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을 가지고 있다. 혹시 그 시기가 1970년대 초는 아니었는지, 확정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보다 실증적인 연구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4) 한편, 두 동지가 이렇게 한국 자본주의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할 때, 설명되어야 하지만 설명되고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 왜 ‘국가’자본주의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무언가의 조건과 상황 때문에 불가피했고 불가피한 것인지, 아니면 국가에 의한 임의의 발전전략이었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는 1930년대 이후 자본주의 세계경제 전반(whole)을 위협하고 있는 전반적(general) 위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한국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하기 훨씬 이전부터, 즉 ‘자유경쟁적’ 단계였던 1950년대나 1960년대는 물론, 심지어는 아직 반봉건적 사회구성 속의 하나의 우끌라드로 존재하던 1930년대나 1940년대에도 그 자본주의는 국가자본주의일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 즉 전반적 위기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문제를 명확히 하는 것은, 오늘날 ‘맑스주의’, ‘꼬뮌주의’ 운운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생산의 이 전반적 위기와 그 때문에 불가피해진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뜨로츠끼주의자 등등 수많은 반쏘ㆍ반공주의자들과의 투쟁에서도 중요하다.















2. 한국 사회의 예속성(종속성) 혹은 신식민지성의 문제










토론회에서 두 토론자가 날카롭게 대립했던 쟁점들은, 주지하는 것처럼, 주로 이 문제를 둘러싸고서였다. “한국 사회는 신식민지다!” “아니다!”





그런데, 대립적 논의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실질적인 대립과 환상적인 대립이 혼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강한 어조로 한국 사회 혹은 한국 자본주의가 ‘신식민지(적)’이라고 주장하는 문 동지나, 그것을 부정하는 백 동지나 모두가 한국 사회의 종속성을 (강하게) 인정하고, 따라서 반제투쟁의 필요성 또한 (역시 강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혹은 그러한 점에서는, 두 토론자 간의 대립은 다분히 ‘용어’의 대립이고, 따라서 환상적인 대립이다.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성을 거부”하면서도 “실천적으로” “한국에서 반제의 과제는” 일본에서보다 “더욱더 중요하게 제기되는 과제”(<<자료집>>, p. 30)라고 주장하는 백 동지는 예컨대 이렇게 얘기한다.










한국처럼 미군이 전국적으로 주요 도시에 군사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수만의 미군이 존재하는 국가, 더욱이 반공산주의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한미동맹이 강화되며 제국주의 군사책동이 강화되는 한국에서 반제의 과제는 더욱더 중요하게 제기되는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레닌의 말처럼, 한국의 변혁에 있어서 핵심 과제는 실질적인 한국의 지배자들인 국내 독점자본과 군사력을 가지고 국내 독점자본을 보호하는 국내 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제국주의 세계지배 체제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국내의 독점자본과의 모순을 타도하는 투쟁을 중심에 세우면서 한미동맹을 고리로 한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영향을 강화하고 있고, 제국주의 책동을 강화하는 미제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한미FTA반대투쟁에 있어서도 제국주의와 손잡고 국내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는 국내 독점자본을 주요하게 타격해야 한다.





반제의 과제는 NL진영처럼, 계급투쟁과 분리하면서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모순의 모순의 발현의 한 형태로 간주해야 한다. 한국사회 변혁에서 반제의 과제는 주한미군철수, 한미군사 동맹의 폐기, 이와 연동되는 미핵우산 철폐 등으로 정식화할 수 있는데 한국사회 변혁에서 계급모순의 척결과 반제의 과제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미제는 한국사회에서 변혁이 일어나면 자국민의 보호와 한미군사 동맹을 이유로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과 개입을 시도할 것이다. 만약 한국사회 변혁과정에서 미제가 직접적인 군사책동으로 반동적 공세를 강화한다면 반제의 과제는 NL진영에서 말하는 것처럼, 반제 직접투쟁의 과제가 떠오르게 될 것이다. (<<자료집>>, p. 30.)










여기에는 우선, “반제의 과제”를 “계급투쟁과 분리하면서 제기하는” “NL진영”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점에서는 백 동지와 문 동지 두 토론자 사이에 사실은 어떤 실질적인 차이도 없다. 문 동지 역시 “NL파의 다수”를 비판하여 예컨대 이렇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자본주의가 신식민지적 조건 속에서 고도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들은 미제국주의의 한국 사회에 대한 지배력의 관철만을 주목하고 한국 사회가 예속독점자본의 지배하에 자본주의 발전을 이루어 계급대립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 이들에게는 반제가 주요한 것인데 노동자계급은 단지 반제투쟁의 전위로서만 위치지워지고 있다. 즉,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계급적 이익, 즉, 노동해방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자료집>>, p. 12.)










백 동지는 위에서, “한국에서 반제의 과제는” 일본에서보다도 “더욱더 중요하게 제기되는 과제”라고 확인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얘기한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레닌의 말처럼, 한국의 변혁에 있어서 핵심 과제는 실질적인 한국의 지배자들인 국내 독점자본과 군사력을 가지고 국내 독점자본을 보호하는 국내 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제국주의 세계지배 체제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이 점 또한 문 동지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 동지 역시 이렇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 식민지시대의: 인용자] 매판자본은 제국주의에 전적으로 예속되어 독자적 계급으로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예속독점자본은 신식민지적 조건에서 미제에 예속되어 있으나 자신의 국가권력을 창출하는 계급이고 한국사회의 현실적 지배계급이다.





한국사회가 신식민지라는 조건에서 반제투쟁은 과거 식민지시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제국주의를 축출하는 길은 한국사회의 현실적 지배계급인 예속독점자본과 그것의 국가권력을 분쇄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자료집>>, p. 12.)










더구나 ‘신식민지성’을 강하게 부인하는 백 동지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상황 속에서는 “반제의 과제는 NL진영에서 말하는 것처럼, 반제 직접투쟁의 과제가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 동지 역시 같은 전망일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이상의 대립은 분명 환상적 대립, 용어를 둘러싼 대립일 뿐이다. 그리고 그 해결의 실마리는 백 동지가 인용하고 있는 레닌의 글 속에 사실상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국가 종속의 수많은 과도적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식민지 소유국과 식민지국이라는 두 개의 주요집단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교적, 금융적 종속의 그물에 갇혀 있는 다양한 형태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의 전형이다. (레닌, ≪제국주의론≫, 백산서당, p. 118.)










“국가 종속의 수많은 과도적 형태를 만들어낸다”!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교적, 금융적 종속의 그물에 갇혀 있는 다양한 형태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의 전형이다”!





그렇다. 신식민지란, 본래적 식민지, 혹은 구식민지와 구별되는 ―그리고 이는 문 동지도 명확히 하고 있다― “국가 종속의 수많은 과도적 형태” 중의 하나, “다양한 형태의 종속국들” 중의 하나이다!





미제는, 백 동지의 말대로, “한미동맹을 고리로 한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영향을 강화하고 있고, 제국주의 책동을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 독점자본은 미 제국주의의 하위 동맹세력이고 “제국주의와 손잡고 국내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는”(<<자료집>>, p. 30) 세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를 ‘종속(적)’이라고 부르던, ‘예속(적)’이라고 부르던, 혹은 ‘신식민지(적)’라고 부르던, 그 명명(命名)이 본질을 바꾸지 않는다.










2) 한편, 한국의 신식민지성 혹은 그 예속성을 강조하고, 그것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문 동지는 그 예속성 혹은 신식민지성과 그것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기초” 혹은 “원인”을 “한국자본주의의 낮은 생산력”에서 찾고 있다. 과연 타당한가?





그의 논의를 추적해보자










분단국가가 성립하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고착된 한국의 반공체제는 경제적 측면에서는 귀속재산 불하, 농지개혁을 거치면서 예속적 자본주의의 운동을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은 예속적 자본가 계급을 육성하였는데 이는 제국주의 자본이 전일적으로 지배했던 일제하의 구식민지와 달리 대한민국의 국가가 예속자본가라는 계급적 기반을 가진 국가로 탄생하고 작동한다는 것으로서 신식민지하의 자본주의 발전의 구조를 형성한 것이었다. (<<자료집>>, p. 8)










한국의 “계급적 기반”은 “예속적 자본가 계급”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예속’이나 ‘종속’, ‘신식민지’ 등 어떻게 부르든, 여기까지는 상호 간에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두 토론자 간에 실질적 인식의 차이는 없다. 그런데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예속적인 자본주의가 불가피했던 것은 제국주의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생산력을 기반으로 자본축적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은 낮은 생산력에 의해 기초지워졌던 것이다. (<<자료집>>, p. 8)










이러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축적 구조를 정리하면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으로 인해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한국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을 전제로 수출주도의 자본축적을 한다는 것이었다. (<<자료집>>, p. 9., 강조는 인용자.)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은 낮은 생산력에 의해 기초지워졌...다.”! ― 이렇게 되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낮은 생산력’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속성을 극복하는 길이 된다. 혹은 ‘낮은 생산력’이 극복되면 예속성이 극복되는 것으로 된다. ‘낮은 생산력’을 극복한다는 것, 혹은 그것이 극복된다는 것은 예속의 기초 혹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 혹은 그 원인이 제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동지의 논의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들어보자.










한국자본주의는 90년대 들어서서 이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을 기초지웠던 낮은 생산력이라는 특징을 많이 극복했다는 [것이: 인용자] 그 중의 하나이다. (<<자료집>>, p. 9.)










이렇게 그는 “[19]90년대 들어서서”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을 기초지웠던 낮은 생산력이라는 특징을 많이 극복했다”고 명확히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속성도,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많이 극복했다”라고 얘기해야 하는 것이, 다시 말하지만,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요청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논의는 전혀 달리 전개된다.





한국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예속성을 기초지웠던 낮은 생산력이라는 특징이 많이 극복되었음에도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한국자본주의의 특징이 여전”(<<자료집>>, p. 10)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운동을 규정하는 예속독점자본들의 축적 구조가 전혀 침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제국주의 자본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통해 제국주의와 예속적 동맹을 하고 이를 기초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 민중에 대한 수탈을 통하여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축적 구조가 변경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력의 수준은 높아졌음에도 축적구조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1단계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자료집>>, p. 10.)










단적으로 말하면, 심한 논리적 혼란을 겪고 있다. 문 동지의 주장대로 만일 ‘낮은 생산력이 예속성의 기초이고, 원인’이라면, 그 “예속독점자본들의” 이른바 “축적구조” 역시 그 “낮은 생산력”을 기초ㆍ원인으로 하여 형성된 ‘예속적 축적구조’이다. 왜냐하면,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로 귀결되는 그 ‘축적구조’는 ‘낮은 생산력’이 아닌 ‘고도의 생산력’에 기초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형성되지 않았을 ‘축적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예속성과 그 ‘(예속적) 축적구조’는 사실은 동일한 원인에 의해서, 혹은 동일한 기초 위에서 형성된 동일한 것에 대한 다른 표현, 혹은 동일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파악한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따라서 낮은 생산력이 극복되는 만큼, 적어도 근사(近似)한 정도로는, 그 ‘예속적 축적구조’, 혹은 그 “예속독점자본들의 축적 구조” 역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 논리적인 요청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예속독점자본들의 축적 구조가 전혀 침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속이 심화’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예속성이 침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속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은 사족 같지만, 앞에서 인용했던 한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다. 다름 아니라 이 문장이다.










이러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축적 구조를 정리하면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으로 인해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한국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을 전제로 수출주도의 자본축적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문 동지의 ‘심한 논리적 혼란’의 일단을 보여주는 비문(非文)이다. 이 문장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으로가 삭제되거나 “제국주의에 예속되었고, 또 그 때문에”로 되어야 하고,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을 전제로”는 적어도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을 기초로”로 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는가?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에 기반한 예속독점자본들은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 농민에 대한 저곡가 등 민중에 대한 수탈을 기초로 수출품의 가격을 낮추어 가격경쟁력을 실현하여 수출주도의 경제를 형성하였다. (<<자료집>>, p. 8.)










3) 그런데, 그의 논의는 다음과 같이 흥미 있게 전개된다.










그러면 한국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도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과거와 동일한 축적구조를 유지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80년대에 추진되었던 민족민주 변혁이 유산되고 한국사회가 군사파시즘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이 혁명적 방식이 아니라 개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혁명의 유산, 개량에 의해 제국주의와 예속독점자본들의 이익은 전혀 침해되지 않았고 한국자본주의의 축적구조가 온존되었던 것이다. (<<자료집>>, p. 10.)










말하자면,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과거와 동일한 축적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낮은 생산력’이라는 경제적인 원인이 아니라, “민족민주 변혁이 유산되고 한국사회가 군사파시즘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이 혁명적 방식이 아니라 개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 원인 때문이다.





우리는 방금 앞에서 ‘예속성’과 그 ‘예속독점자본들의 축적구조’는 동일한 것에 대한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문 동지에 의하면, ‘예속적 축적구조’가 유지되는 원인은 정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속성이 유지되는 것도 사실은 ‘변혁의 유산’ 혹은 ‘혁명의 유산’이라는 정치적 원인 때문이다.





당연하다. 예속성, 종속성, 혹은 신식민지성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대신한 미 제국주의의 정치적ㆍ군사적 지배, 그 “제국주의와의 예속적 동맹”(<<자료집>>, p. 10)이 그 기초이고,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문 동지가,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은 낮은 생산력에 의해 기초지워졌다”고 얘기할 때, 그는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역사적 유물론의 명제를 기계적으로,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라는 전체성 속에서가 아니라 한 개별 사회에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문 동지가 “노정협은 정치적, 군사적 예속성은 인정하지만 경제적 예속성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절충주의이다”(<<자료집>>, p. 13)라고 얘기하는 것도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적, 군사적 예속성은 인정하지만 경제적 예속성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절충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 예속성’은 어떤 형태, 어떤 정도로든 경제적 예속성을 수반, 아니 강제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합의안이나 한미 FTA 합의안과 관련하여 한국의 노동자ㆍ민중의 요구와 저항에 대해서는 “한 점, 한 획도 바꿀 수 없다, 그것이 국제간의 협약이다”고 강변하던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가 있으면 서슴없이 도저히 점이나 획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 그 내용을 수정하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논리적 모순이 있다. “80년대에 추진되었던 민족민주 변혁이 유산되고 한국사회가 군사파시즘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이 혁명적 방식이 아니라 개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즉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한국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도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과거와 동일한 축적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문 동지의 이 발언은, 방금 지적한 것처럼, ‘낮은 생산력’이라는 경제적 요인이 아니라 사실은 정치적인 요인이 예속성 혹은 종속성을 규정하고 있다는, 부지불식간의 진실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발언 또한 그 자체로서 사실은 문 동지 자신이 강조하는 이른바 ‘(예속적) 축적구조’의 내용과는 충돌한다.





문 동지가 얘기하는 ‘(예속적) 축적구조’, 혹은 “한국자본주의의 본질적 구조”는 대략 이렇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시기에 형성된 한국의 지배계급은 예속독점자본들이었는데 이들의 축적을 보장하고 가속화하는 것이 한국자본주의의 본질적 구조였다.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에 기반한 예속독점자본들은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 농민에 대한 저곡가 등 민중에 대한 수탈을 기초로 수출품의 가격을 낮추어 가격경쟁력을 실현하여 수출주도의 경제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민중의 도전을 배제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파시즘을 필요로 하였고 그러한 상부구조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자료집>>, p. 8.)










그가 말하는 “한국자본주의의 본질적 구조”는, 경제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에 기반한 예속독점자본들은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 농민에 대한 저곡가 등 민중에 대한 수탈을 기초로 수출품의 가격을 낮추어 가격경쟁력을 실현하여 수출주도의 경제”이다. 그리고 그 ‘본질적 구조’는 정치적으로는 “민중의 도전을 배제하기 위해” 필요했던 “강력한 군사파시즘”, “그러한 상부구조”였다. 그리고 “그러한 상부구조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민중의 도전을 배제하기 위해”, 다시 말하면, “한국자본주의의 본질적”인 경제적 “구조”를 보증하기 위해 필요했던 “상부구조”, “강력한 군사파시즘”은, 비록 혁명적 방식으로는 아니었지만, “개량의 방식으로” 사라졌다. 문 동지 자신이 이렇게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축적 구조를 정리하면 제국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으로 인해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한국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을 전제로 수출주도의 자본축적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민중의 도전으로 한국사회의 상부구조였던 군사파시즘은 주기적으로 위기에 직면하는 양상을 보였고 끝내는 파시즘의 소멸을 가져왔던 것이다. (<<자료집>>, p. 9.)










여기에서 질문을 하자.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 즉 그가 말하는 ‘예속적 축적구조’ 때문에 “민중의 도전을 배제하기 위해” “필요로 하였”던 “강력한 군사파시즘”, “그러한 상부구조”가 “소멸”했는데, 그에 의해서 보장되던 바로 그 ‘(예속적) 축적구조’는 어떻게 지속되고 있단 말인가? 더구나 예속이 ‘심화’되면서!? 논리적 혼란이 아니고는 설명 불가능한 것 아닌가?










4) 다른 한편에서 백 동지는, “한국 사회의 신식민지성을 거부”하면서, 혹은 보다 정확하게는 한국 사회가 “신식민지 국가에서 제국주의 반열로 가는 과도기 위치에 있다”(<<자료집>>, p. 29)면서, 우선 ‘과도기’란 규정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과도기라는 것은 제국주의로의 발전을 향해 가고 있으나 여전히 신식민지적 측면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자료집>>, p. 29.)










여전히 신식민지적 측면이 남아 있다.” ― 이 말이 포함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언제였던 한국 사회가 한 때는 신식민지였다는 것이다. 그 ‘언제’란 물론 일제로부터의 ‘해방’ 후 어느 때이다.





그리고 이렇게 쓰고 있다.










한국사회가 신식민지가 아니라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잉여가치의 주된 수취자가 국내 독점자본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경제적 관점에서 한국이 신식민지인가 아닌가의 논쟁에서 중요하다. 잉여가치의 직접적 수취자가 봉건 지주인가, 자본주의적 농업인 차지농업가가 잉여가치를 수취하고 그것의 일부를 지대 형태로 지주에게 지급하냐에 따라서 봉건제와 자본주의로 나누는 것에서 보듯, 국내 잉여의 주된 수취자가 누구냐에 따라 신식민지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자료집>>, p. 29)










여기에서 “한국사회가 신식민지가 아니라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잉여가치의 주된 수취자가 국내 독점자본이라는 점이다”라고 할 때, 즉 “주된 수취자가 국내 독점자본”이라고 할 때, 방점은 당연히, ‘독점’에 찍혀서 “주된 수취자가 독점자본”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 찍혀서 “주된 수취자가 국내 자본”이라는 식으로 될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신)식민지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맨 먼저 드는 의문은, 일제로부터 ‘해방’ 후 어느 때고, 한국 사회에서 그 ‘잉여가치의 주된 수취자가 국외 독점자본’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모르면 몰라도, 백 동지 역시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진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백 동지적 지표로는 한국 사회가 신식민지였던 때가 없었던 것으로 된다. 그런데도 그는 신식민지로부터 제국주의로의 과도기를 얘기하고 있고, “여전히 신식민지적 측면이 남아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명백히 논리적인 자가당착이다.





그런데 이 논리적인 자가당착을 잠깐 차치하고, 그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는 신식민지적 측면에 대해서 들어보면 이렇다.










우리는 한국사회가 신식민지가 아니라고 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적 유제는 여전히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료집>>, p. 29.)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적 유제는 여전히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측면”! ― 그렇다. 백 동지 역시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이라고 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적인 측면에서 신식민지성, 즉 예속성의 요체를 보고 있다. 비록 그 자신은 ‘유제’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 역시 신식민지 여부를 ‘잉여가치의 주된 수취자가 누구인가’에서, 즉 경제적 토대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문 동지와 대립하면서도 사실은 사실상 동일한 오류, 즉 한국 사회의 ‘예속성’, ‘종속성’, 혹은 ‘신식민지성’의 기초, 혹은 그 제1차적 규정성을, 제국주의에 의한 사실상의 정치적 지배와 군사적 지배에서가 아니라, 무언가 경제적 요인에서 찾으려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백 동지는, “잉여가치의 직접적 수취자가 봉건 지주인가, 자본주의적 농업인 차지농업가가 잉여가치를 수취하고 그것의 일부를 지대 형태로 지주에게 지급하냐에 따라서 봉건제와 자본주의로 나누는 것에서 보듯, 국내 잉여의 주된 수취자가 누구냐에 따라 신식민지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잉여가치의 ‘직접적 수취자’의 문제가 어떻게 해서 그 ‘주된 수취자’의 문제의 거울이 될 수 있는지, 혹은 경제제도(우끌라드) 혹은 생산관계의 성격의 문제가 어떻게 신식민지성의 여부를 판단하는 일종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5) 한편, 문 동지는 한국 자본주의의 신식민지성과 한국의 농업, 혹은 농민 문제를 이렇게 연관 짓고 있다.










이러한 대외적 조건의 변화[=개방압력: 인용자]는 국내의 계급구조를 바꾸고 있는데 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지기는커녕 농업 자체가 몰락하고 있고 그로 인해 농민의 절대 수가 감소하고 있다. (<<자료집>>, p. 9.)










신식민지주의의 완결판인 한-미 FTA는 한국자본주의와 미제와의 경제통합을 의미하고 이는 예속독점자본들의 축적의 확대를 위해 한국의 노동자와 민중 전체의 이익을 철저히 희생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농업은 전면적 몰락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자료집>>, p. 10.)










한국의 지배계급인 예속독점자본들에게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은 어떤 의미인가? 이들은 한국의 시장을 제국주의 자본에게 내주면서 특히 농업을 철저히 파탄시키면서 해외시장의 확대를 지향한다. ... (<<자료집>>, p. 11.)










농민들에게 예속성은 천근만근의 억압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신식민지적 성격으로 인해 강요되는 농업개방으로 인해 농업의 몰락이 강요되고 있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축적 구조자체가 농업의 몰락, 농민에 대한 억압인 것이다. 그로 인해 농업 생산력의 발전은 정체되어 있고 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대신에 농민들의 탈농이 지배적인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대다수의 농민은 반제투쟁에 직접적인 이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료집>>, p. 11.)










한편 전략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다. 왜냐하면 전략은 계급세력의 배치가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신식민지성을 부인하는 노정협의 PTR로는 농민의 변혁성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농업의 특수성은 신식민지 규정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문제, 이러한 보편적인 자본주의 발전법칙만을 생각한다면 한국농업에서 자본주의의 미발전, 그로 인한 농업노동자계급의 부재라는 한국농업의 특수성을 놓치기 때문이다. 한국농업의 특수성에서 농민의 변혁성이 주어지는데 노정협의 PTR로는 그것의 파악이 불가능한 것이고 따라서 전략으로서 심각한 결함을 갖는 것이다. (<<자료집>>, p. 13.)










이상의 서술들과 관련해서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문 동지가 ‘농업의 몰락’과 ‘농민의 몰락’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음에는 그 몰락의 기본적 원인을 ‘개방 압력’이나 ‘농업 개방’, ‘한미 FTA’ 등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예속성’ 혹은 ‘신식민지적 성격’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는 그 몰락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를, (필시 그 역시 예속성 때문이라고 암시하고 있는) “농업 생산력의 발전”의 “정체”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선, 몰락하고 있는 것은 농업이 아니라 소농,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소농민이다. 이는 결코 말꼬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니다. 문 동지가 “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지기는커녕 농업 자체가 몰락” 운운할 때, 그야말로 그는 소농의 몰락이 아니라 “농업 자체”의 몰락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만일 그의 주장대로 농업이 몰락해왔다면, 한국의 들녘은 그 태반이 황무지화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 수십 년간 소농의 대량 몰락으로 농업인구가 불과 기백만으로 줄었지만, 들녘은 여전히 그 대부분이 꾸준히 경작되고 있다. 즉, 농업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즉 이 경우는 신식민지적 농산물 시장 개장이나 미 잉여농산물 등을 이용한 저곡가 정책은 물론 소농 몰락의 주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그 몰락의 기본적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 그 몰락을 가속화해왔고, 가속화하고 있는 주요 원인이다. 맑스주의 농업경제학을 아는 사람에게는, 예속적 농산물 시장의 개방이나 국가의 ‘저곡가 정책’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하에서 농민적 분할지 소유, 즉 소농의 몰락이 필연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문 동지가 말하는 예속성은 단지 그 몰락을 가속시킨 요인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본주의 하에서 소농의 몰락이 필연적인 이유의 하나는, 문 동지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농업에서의 노동생산력의 정체가 아니라, 그 정반대로 그 비약적인 발전이다. 그리고 한국의 농업사도 그 예외가 아니다. 이를 빼놓고는, 엄청난 이농ㆍ탈농, 즉 농업 노동력의 엄청난 감소에도 불구하고 농업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절대 설명될 수 없다.





예속성 혹은 (신)식민지성을 얘기할 수 없거나, 얘기하기 어려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도 (농업이 아니라) 소농은 몰락했다.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농업의 생산력과 소농적 생산관계의 모순 때문이다.





한편, 그가 “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지기는커녕 농업 자체가 몰락” 운운하면서,










한국농업의 특수성은 신식민지 규정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문제, 이러한 보편적인 자본주의 발전법칙만을 생각한다면 한국농업에서 자본주의의 미발전, 그로 인한 농업노동자계급의 부재라는 한국농업의 특수성을 놓치기 때문이다.










라고 얘기할 때, 그가 ‘한국농업의 특수성’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특수성을 “농업에서 자본주의의 미발전, 그로 인한 농업노동자계급의 부재”로 규정하면서, 그 주요 원인 혹은 최대의 원인을 “신식민지 규정”에서 찾는 것은 빗나간 것이다. “한국농업에서 자본주의의 미발전, 그로 인한 농업노동자계급의 부재”라는 사태에 예속성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러한 사태는, 그 보다는, 그야말로 한국 농업에 특수한 사정 혹은 요인과 현시기 자본주의 발전이 농업에 미치고 있는 ‘특수한’, 혹은 사실은 보편적인 요인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선, 농지의 대규모 소유는 자본주의적 농업경영의 전제이다. 토지소유자와 농업자본가(=차지경영자)가 별개의 인격인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농업경영이든, 과도형태(Übergangsform)의 하나로서 농업자본가가 토지소유자를 겸하는 지주경영(Gutswirtschaft)이든, 대토지소유는 농업의 자본주의적 경영의 전제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대 농업사에서는 이 농지의 대규모 소유를 방해하는 특수한 경제적, 법률적 사정이 강하게 작용해왔다. 짧은 기간에 대대적으로, 혹은 ‘압축적으로’ 이루어진 농민층 분해의 특수성과 대규모 농지 소유를 금지한 법률적 제한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농민층의 분해는 그야말로 짧은 기간에 대대적으로, 혹은 ‘압축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원인으로는, 물론 문 동지가 얘기하는 “신식민지 규정”, 즉 정부의 저곡가 정책과 농업개방도 크게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농에 고유한 몰락 원인들이 작용했던 것이고, 특히, 문 동지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농업 생산력의 급속한 증대가 작용했다. 이 농업노동 생산력의 급격한 증대로 농촌 내부에 과잉인구가 대대적으로 발생하면서 1960년대 후반 이후 대대적인 이농과 탈농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이농과 탈농, 소농의 대대적인 몰락은 동시에 농지소유에 대한 소농민의 집착과 어울리면서 대부분의 경우 이농ㆍ탈농자 가족의 일부, 특히 노령층이 농지의 소유자로 재농(在農)하는 형태로, 즉 대토지 소유를, 따라서 농업의 자본주의화를 방해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아직도 양대 명절 때마다 겪는 ‘귀성, 귀경 전쟁’은 농민층 분해의 이러한 특수성의 한 표현이다.





원칙적으로 농업 경영자만이 농지를 소유하게 하고, 또 그 규모를 제한하고 있는, 농지소유에 관한 법률적 제한이 농지의 대규모 소유, 따라서 농업의 자본주의화를 방해해온 데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한편, 농업 생산력과의 관련에서는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농업이 미발전한 데에는, 이 역시 문 동지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농업 생산력의 정체가 아니라 그 비약적 발전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량의 농업노동자의 존재 없이도 상당 정도 대규모의 경작을 가능하게 하는 농업의 기계화, 즉 농업 노동의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화가 ‘상대적, 부분적으로’ 지체되고 있는 일부 부문, 예컨대 남새 재배 같은 부문―이 경우에도 경운, 파종, 시비 등은 대부분 기계화되어 있다―을 제외하면, 농업 생산에서의 기계화, 그것도 대규모 기계화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농업노동자계급의 부재”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 동지가 한국 농업의 특수성으로서 전혀 주목조차 하지 않고 있는, 그야말로 한국 농업의 특수성이 있다. 다름 아니라 일반적으로 ‘위탁영농’, 혹은 ‘위탁경작’이라고 부르는, 정말로 독특한 농업경영 형태가 그것이다. 대규모 농업기계를 보유한 개인이나 ‘영농조합’, ‘영농회사’가 소토지 소유 ‘농민’ 등의 경지를 ‘위탁경작’하는, 새로운 영농형태인데, 이는 농지의 대규모 소유가 저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의 기계화가, 따라서 농업 생산력의 거대한 증대가 전개되고 있는 한국적인 특수한 경작형태이다.





‘농업개방으로 인한 농업의 몰락’이라든가 ‘농업생산력의 정체’, ‘농업 자본주의의 미발전’ 운운은 현실에 기초한 과학이 아니라 소부르주아 농업경제학자들의 상투적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 동지는, “대다수의 농민은 반제투쟁에 직접적인 이해가 있다”고도 얘기하고 있고, “한국의 신식민지성을 부인하는 노정협의 PTR로는 농민의 변혁성을 파악할 수 없(다)”거나 “한국농업의 특수성에서 농민의 변혁성이 주어(진다)”고도 말하고 있다.





앞의 명제, 즉 “대다수의 농민은 반제투쟁에 직접적인 이해가 있다”는 명제는 참이다. 제국주의적 억압, 압력, 그 표현으로서의 예컨대 ‘농업개방’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농의 몰락을 재촉, 즉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의 명제, 즉 “한국의 신식민지성을 부인하는 노정협의 PTR로는 농민의 변혁성을 파악할 수 없(다)”거나 “한국농업의 특수성에서 농민의 변혁성이 주어(진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다. 신식민지성에서 오는 ‘가속’이 없더라도 자본주의 하에서는 소농은 필연적으로 몰락하는 것이고, 거기에 그들의 변혁성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6) 앞에서는 지나가는 말로 지적한 것이지만, 문 동지는 글의 곳곳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를 초래하고 있다며, “예속의 심화”, 혹은 “종속의 강화”를 얘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간단히 묻고 넘어가고 싶다. 한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순간부터 미 제국주의에 심히 예속 혹은 종속되어 있었다. 직접적 통치, 즉 본래적 식민지적 지배를 제외하고는 더할 나위 없이 예속 혹은 종속되어 있었다. 예컨대, 오늘날에는 ‘전시 작전지휘권’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의 작전지휘권 자체가 사실상 미군의 손아귀에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축적이 진전될수록 예속이 심화되고 있다니? 직접적 통치, 즉 식민지적 지배로의 이행 말고도 다르게 그 예속이 심화될 여지가 남아 있었던 것인가?





문 동지의 주관적 의도와 상관없이 문 동지가 얘기하는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테제는, 과거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서 일부에서 유행했던 ‘독점강화→종속심화’라는 테제의 실질적 반복, 옛 관성의 무비판적인 반복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맑스가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적 법칙”과 관련하여 명백히 하고 있는 것처럼, ‘축적의 진전’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 즉 ‘독점 강화’로 귀결되는 것이어서,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고 표현하든, ‘독점강화→종속심화’라고 표현하든, 결국은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7) 토론회에서는 시간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문 동지에 의해서 잠깐 언급되는 것으로 넘어갔고, 여기에서도 역시 시간 혹은 지면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문제 그것의 고도의 추상성에 비추어 섣불리 제기했다가는 불모의 논쟁의 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두 토론자의 발제문에서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이른바 ‘보편, 특수, 개별’의 문제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무척 무책임한 방식으로, 한 마디만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에 대한 백 동지의 이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그런데, 이 문제를 논하면서 문 동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렇게 변증법을 잘못 인식하고 있기에 노정협은 비약을 범한다. 즉, 종속성이 강화되느냐, 약화되느냐에 따라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따라 변혁의 가능성이 주어진다고 한다. 이것이 보편과 특수를 주요 및 부차와 혼동하는 것의 실천적 결과이다.





종속성이 강화되느냐, 약화되느냐는 한 사회의 지배구조와 자본주의 축적구조를 결정하는 범주인데 이것과 무관하게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만 중요하다는 것은 계급적 모순이 주요하고 현실적인 지배구조와 자본주의 축적구조는 부차적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현실적인 정치적 의미는 노동자가 자본가와 죽도록 싸우다 보면 언제가 혁명이 된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즉, 이는 전투적 조합주의를 이론화하는 것이다. (<<자료집>>, p. 13.)










역시 불모의 논쟁을 피하기 위해, 변증법이나 보편ㆍ특수, 주요ㆍ부차의 문제는 차치하기로 하자. 그러고서 얘기하자면, 우선 문 동지가, 노정협 혹은 백 동지가 “종속성이 강화되느냐, 약화되느냐”와는 “무관하게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백 동지가, “레닌의 제국주의 관점과 달리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세계 체제를 제국주의와 신식민지라는 두 체제로 분석하고 있다”(<<자료집>>, p. 29)고 말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풍차로의 돌진 아니겠는가?





그렇게 돌진하면서 문 동지가 또한 “이러한 주장의 현실적인 정치적 의미는 노동자가 자본가와 죽도록 싸우다 보면 언제가 혁명이 된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라며, “즉, 이는 전투적 조합주의를 이론화하는 것이다”이라고 말할 때, 이 역시 풍차에의 돌진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개념의 오용(誤用) 아닌가? 이렇게 사용될 때의 ‘조합주의’의 개념이 심히 궁금하다.










8) 문 동지는 또한 이른바 “민족자본”의 문제를 끄집어내, 예컨대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민족자본은 계급적으로 존재해왔다고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중소자본의 대부분이 예속독점자본에게 하청계열화되어 있다”, “즉, 중소자본의 민족적 성격을 지속적으로 탈각되었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따라서 중소자본들에게 반제투쟁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며,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과거 반파쇼투쟁 당시에는 중소자본의 대변자였으나”, 즉 “반제투쟁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지금,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2단계에서는 독점자본의 한 분파로 변신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중소자본들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 <<자료집>>, p. 11.)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민족자본은 계급적으로 존재해왔다”?―과연 역사적 사실일까? 아니면, 도그마일까?















3. 사회성격 규정과 제안된 전략 혹은 전략과제와의 호응, 일관성 문제










1) 문 동지는, 1980년대까지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제1단계”(<<자료집>>, p. 8)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자본주의 발전 자체가 가져오는 계급모순의 심화, 거기에 더해 신식민지적 조건에서 자본축적을 강행하는 한국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축적 구조가 가져오는 모순의 폭발로 인한 계급투쟁의 급속한 성장이 1980년대의 한국 사회를 규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모순에 대해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반제반파쇼의 민족민주변혁을 추진했었다. 이에 대해 미제와 한국의 지배계급은 개량의 정책을 펴서 민족민주혁명을 유산시키는 길을 택한다. (<<자료집>>, p. 9.)










비록 ‘유산’되었지만, 당시의 전략적 과제, 혹은 그 목표는 “반제반파쇼의 민족민주변혁”, 혹은 “반제반파쇼의 민족민주혁명”이었다는 뜻이다.





‘반제’=‘민족 변혁’은 물론 ‘신식민지’ 규정과 호응하고 있다.





그런데, ‘반파쇼’=‘민주변혁’은 사회성격 규정의 무엇과 호응하는 것일까? 혹시 사회성격 규정에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있고, 전략적 과제 혹은 목표 규정에 미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당시의 한국자본주의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발전 자체가 가져오는 계급모순의 심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모순이 극히 심화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사회구성적, 혹은 생산관계상의 변혁의 내용, 성격은 당연히 사회주의로의 변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규정에서는 이것이 불분명하고, 오히려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변혁을 사실상 시사하고 있다. 즉, 사회성격에 대한 자신의 규정과 전략목표가 호응하고 있지 않다.





‘반파쇼 민주변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주요한, 핵심적 변혁 목표라면, 그의 사회성격 규정도 의당 ‘신식민지파쇼국가독점자본주의’로 되어야 할 것이다.










2) 백 동지는, 앞에서 본 것처럼, 현단계 한국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면서는 그 ‘신식민지성’ 혹은 ‘종속성’, 혹은 ‘예속성’을 극구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동시에 ‘반제투쟁’의 불가결성을 얘기하고 있다.





과연 그 성격 규정과 전략은 서로 호응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서로 호응하기 위해서는 ‘신식민지’든, ‘종속’으든, ‘예속’이든, 무언가 그 ‘반제투쟁’의 불가결성을 뒷받침하는 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4. 1980년대의 논쟁을 넘어서려면...










1980년대의 ‘한국 사회성격 논쟁’ 혹은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과 객랍 4일의 토론회를 대략 비교해보면, 그 논의 내용에서 물론 부분적으로 이론적 전진이 있다. 그간의 한국 사회 자체의 발전과 이론적 성과가 반영된 것일 터이다.










1) 그런데 우선, 사회 일각에서 ‘압축적 발전’이라고까지 표현되는, 한국 자본주의의 급격한 발전, 급격한 고도화를 설명하는 데에서 빠뜨려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주요 요인들 가운데, 반봉건적 토지소유를 사실상 일소한 농지개혁과 그 결과 필연적이면서도 부르주아 국가의 제반 정책과 그 국가의 예속성 등으로 가속도가 붙어 급격하게 전개된 농민층의 분해 이외에는 다른 요인들은 사실상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은 한계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농지개혁과 농민층 분해가 자본의 급격한 확대재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적 요소로서의 대량의 (저임) 노동력 공급을 가능하게 한 것이고, 이것이 지적된 반면, 역시 자본의 급속한 확대재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더구나 고도의 노동생산력을 가능하게 할 만큼 기술적으로 발달한 대규모의 생산수단, 특히 고정자본이나 이른바 사회간접자본의 공급을 가능하게 한 요인에 대해서는 사실상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생산수단, 특히 고정자본과 주요 원료는 특히 1980년대까지는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 서유럽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로부터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지불수단, 즉 외화, 구체적으로는 특히 미 달러와 엔화가 필요했다. 문제는 그 액수에서 한국의 상품 수출액을 훨씬, 엄청나게 능가한 이들 외화가 어떻게 조달되었는가이다.





그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대략 열거만 하면 다음과 같다.





(1) 미국의 세계 지배ㆍ경영 전략을 반영한 미국이나 IBRD 등 국제기구의 원조 및 공공차관. 미국의 강한 영향력 하에 타결된 대일 ‘청구권’ 자금도 이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2) 월남전 파병에 따른 달러 유입.





(3) 서독으로의 간호원 및 광부 수출에 따른 마르크, 달러 유입.





(4) ‘오일 쇼크’ 이후 중동 건설붐에 따른 건설 노동자 수출에 따른 달러 수입.





(5) 외국인 직접투자 및 상업차관.





...










2)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문 동지처럼 한국 자본주의 혹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 특수성으로서의 예속성과 관련 속에서 파악ㆍ해명하려는 접근도 물론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그 위기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속에서, 그리고 그것도 그 위기를 자본주의 세계시장과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고 해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황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의 논쟁 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파악과 해명은 많이 부족했다.





자본주의 세계시장과 관련한 이 공황론이 진지하게 전개되어야만, 한국 사회 위기의 구조적 분석을 넘어 그 운동ㆍ발전의 법칙에 대한 분석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3) 명색이 변혁전략의 과학화를 위한 토론이라고 하면서도, 주로 경제적 토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고, 변혁의 제1차적 대상 혹은 영역인 상부구조, 특히 국가의 구조와 정책 등에 대한 분석과 논의는 사실상 전혀 이루어지지 않거나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독점자본주의임을 강조하면서도 말이다!





독점자본과 그 국가의, 예속적 독점자본과 그 국가의, 특히 신자유주의적 그것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지배ㆍ관리정책에 대한 분석은 특히 중요하다.










4)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혁의 주체 분석, 계급 분석, 특히 노동자계급의 구성과 그 변화ㆍ발전ㆍ운동의 특징, 경향 등도 역시 사실상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본의 의식적이고 대량적인 이른바 노동유연화 정책에 따라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단과 계층화가, 그리고 그에 따른 분열과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지금 이 부분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논의가 그만큼 비실천적 공론(空論)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함을 의미할 것이다.










5) 이후 논의의 실천적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에 제기된 이견과 쟁점은 물론이고, 이상의 문제들에 대한 연구ㆍ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사과연>






* 이 글은 지난 1월 8일의 월례토론회에서 발표했던 글을 부분적으로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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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 “한국 ‘사회성격’과 ‘변혁전략’ 토론회”에 채만수 | 소장 2011-01-22 2164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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