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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국제주의로 일관한 ‘운동족’의 생애 [―故 타케이 데루오(武井昭夫) 선생의 생애와 교훈]
글쓴이 히로노 쇼지(廣野省三) <활동가집단 사상운동> 상임운영위원회 책임자 E-mail send mail 번호 201
날짜 2010-12-30 조회수 2120 추천수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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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와 교훈
















번역: 편집부




















[역자 주: 이 글은 일본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을 장기간 지도해온 고(故) 타케이 데루오(武井昭夫) 선생의 타계에 즈음하여 ��(노동자계급의 투쟁하는 지성을 만드는) 사회평론��(제163호, 2010년 가을)이 조직한 “특집II=동지 武井昭夫の仕事からなにを受けつぐか” 가운데 廣野省三 동지의 “國際主義を貫いた‘運動族’の生涯”를 초역(抄譯)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자 국제주의가 절실히 요구되는 현 정세에서 선생의 작업에서 그야말로 무엇을 배우고 계승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어주기 바란다. 참고로 각괄호([]) 속의 내용은 역자가 추가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근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평생의 과제로 삼고 제2차 대전 후 60년간 언제나 혁명운동의 제1선에 서온 타케이 데루오(武井昭夫) 동지가 9월 2일 서거했다. 타케이 동지는 이 잡지를 편집하는 오가와마치기획(小川町企劃)의 모체인 <활동가집단 사상운동>(1969년 창립)에 중심 멤버로서 참여하고, 출발 당시부터 조직ㆍ재정ㆍ편집 등의 실무의 중심에 서왔으며, 모임이 출발한 수년 후부터는 집단의 책임자를 맡아 세상을 떠나는 최후의 날까지 그 직을 수행해왔다. 향년 83세.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군국주의의 패배를 만18살의 구제(舊制) 고등학생으로서 맞은 타케이 선생은 자신의 전후(戰後)의 출발을, 후에 계속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쟁 중에 나는 군국주의에는 반대하고, 군인 특히 장교는 싫어, 기분상으로는 전쟁은 싫다고 했지만, 그러한 상태에서도 전국(戰局)이 긴박해져 가는 가운데 “본토 결전” 등의 말을 듣고 감정적으로 이상해져 갔습니다. 국가, 이것은 과학적으로 인식한 국가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의 집중적인 표현으로서의 ‘국가’=동포=향토라고 하는 이미지에 지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국가가 바야흐로 존망의 위기에 서 있다”는데 “전쟁 아니, 군인이 싫습니까” 하고 자문하면 괴로웠던 것입니다. ... ‘국민국가’라는 관점에 사로잡혀 국민과 국가를 별개로 생각하지 못하고, 하물며 개인을 독립시키지 못했습니다. “절대로 국가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듣지 않는다, 죽어도 듣지 않는다”는 의식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근대 내셔날리즘의 강력한 압력인 것입니다. 거기를 논리적으로 돌파하지 않으면, 군국주의나 파시즘의 근원에 있는 내셔날리즘과 싸울 수 없습니다. 부르주아 국가가 우리에게 대하여 지배적으로 되는 최후의 결정적 수단은 이 ‘국민국가’론의 내셔날리즘입니다.





대전 후에 내가 더듬어온 사고(思考)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국민이라든가 시민이라는 단일한 존재는 이데올로기적인 의제(擬制[=허구])다라는 생각입니다. 진실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이 사회적 허위의식을 쫓아버리고, 국경을 넘어 연대해간다, 생명을 걸고 그것을 한다 ― 그것이 인터내셔날리즘이다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 심히 시행착오도 하면서, 자치회를 만든다든가, 노동자와의 협동 등을 하는 속에서 그러한 사고에 한 걸음씩 도달해 갔던 것입니다. ... (2001년 1월 27일, “전학련(全學連) 창설기의 운동, 그 경험과 사고(思考) ― 동경대 마사(馬舍) ‘끽연실’에서의 강연과 문답”)










타케이 선생은 전쟁 후 60수년간을 통해서 전시하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엄한 자기비판과, 무자각의 범죄성을 추구하는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고, 학생운동, 정치운동, 문학ㆍ예술운동의 그때그때의 현장에서 ‘운동족’의 일원으로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사상과 실천을 관철했다.





그 활동은, 고교 재학 중에 일본공산당에 참가, 1947년 동경대학에 입학한 해에 문학회에 가입, 동경대 재학 중인 48년에는 전학련(全學連) 결성에 분주, 초대 위원장으로서 반전ㆍ평화운동, 학생의 권리옹호 등의 대중운동에 헌신했다. 1950년 일본공산당이 분열했을 때에는 이 당의 통일위원회(속칭 꾸제파)에 속해 제명당했다. 같은 해 가을 레드퍼지[빨갱이 숙청] 반대투쟁을 지도하여 퇴학처분을 당했다. 그 동안 레드퍼지의 광풍(狂風)은 전국의 모든 분야에서 불었는데, 타케이 지도 하의 제1차 전학련은 미군 점령 하에서, 또한 한국전쟁 하에서, 사력을 다한 연대적인 전국적인 총투쟁과 데모로 유일하게 이 공격을 저지했던 것이다.





1952년에 학생운동을 떠난 후에는 신일본문학회(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서기장, 하나다 기요테루(花田淸輝) 편집장) 상근편집위원이 되어 문예비평 활동을 시작한다. 1954년 하나다(花田) 편집장 해임사건에 항의하여 사임했다. 1955년 일본공산당 제6회 전국협의회에 의해 제명이 취소되어 당에 복귀하고, 도쿄도(東京都)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서 상근자가 된다. 평화대책ㆍ국제부, 청년학생대책부 등을 담당하여 청년학생운동의 재건, 도쿄도교원노조의 근무평가반대투쟁이나 스나가와(砂川)기지 반대투쟁 등에 참가ㆍ지도하였다. 신일본문학회의 활동에도 복귀, 상임간사로 활동하였다.





1956년, 요시모토 타카아키(吉本隆明)와의 공저 ��문학자의 전쟁책임�� 간행. 1958년에는 요시모토ㆍ이노우에 미츠하루(井上光晴)ㆍ오쿠노 타게오(奧野健男) 등과 ��현대평론��을 창간. 공산주의자동맹(분트)의 창립에는 비판적으로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영향을 준다. 1961년, 당 중앙의 관료주의와 비민주적 운영을 비판하고 두 번째로 제명당한다. 이후 문학운동에 전심. 신일본문학회 사무국장, 편집장을 역임한다. 1969년,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의 재형성을 지향하는 운동단체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의 결성에 중심멤버로서 참가. 신문 ��사상운동��, 잡지 ��사회평론��을 중심으로 정치ㆍ사상ㆍ문화 전분야에 걸친 비평활동을 전개. 서거하는 날까지 우리 회[<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의 전국운영위원회 책임자로서 일했다.





타케이 선생의 활동은 학생운동, 정치운동, 문화예술운동(문학ㆍ영화ㆍ연극ㆍ미술ㆍ음악 등), 그리고 수많은 중요한 작품을 낳은 편집자로서의 작업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의 활동을 검증하고 계승하는 작업이 지금 우리 앞에 커다란 과제로 남겨져 있다. 이번 타케이 선생의 급작스러운 서거에 즈음하여 우리는 설령 그 작업의 일부이지만, 남겨진 글의 몇 개인가를 읽고, 사고하고, 실천하는 것이 타케이 선생의 유지(遺志)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 잡지에 이하 글의 재수록을 기획했다. ... [목록 생략]





... [목록의 각 글의 의의를 간단히 설명한 한 문단 생략]





이러한 글들 외에도 타케이 선생은 60여년의 정치ㆍ문화ㆍ사회운동 속에서 엄청난 수의 성과를 남기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타케이 선생의 작업 중에는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ㆍ연극 등을 비롯한 종합적인 예술운동에서의 하나다 키요테루(花田淸輝) 선생과의 공동작업, 오오니시 쿄진(大西巨人) 선생과의 ��신성희극(神聖喜劇)�� 완성을 위한 협력, 교육운동론의 전형(典型)을 창출한 우치다 요시히토(內田宜人) 선생의 ��어떤 근무평가반대투쟁사�� 집필에 대한 격려, 유치 아사오(湯地朝雄) 선생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혁명적 전통에서 배운다��에 대한 공감과 협동이 있고, 나아가서는 이번에 소개한 시인인 하마구치 쿠니오(濱口國雄) 씨를 비롯하여 요시다 깅이치(吉田欣一) 씨, 우에다 히사시(うえだひさし) 씨, 이나바 요시카즈(稻葉嘉和) 씨 등의 시작품의 소개와 단행본화에 대한 협력, 나아가 탄갱이나 국철(國鐵), 우편 그리고 해상 등의 노동자 문학ㆍ문화활동에 대한 조언과 협력, 출판활동에의 진력, 함께 학생운동을 한 기록영화 작가 추치모토 노리야키(土本典昭) 등의 미나마타병(水俣病)이나 아프가니스탄 문제에서의 작품제작에 대한 협동이나 ‘영화운동시사실’의 전개, 타카이와 진(高岩仁) 씨의 팔레스타인 영화 ��토지의 날(土地の日)�� 일본어판 제작과 상영 활동, ��배우지 못한 전쟁�� 씨리즈에 대한 협력, 또 연극운동이나 음악운동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국제연대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조선ㆍ한국, 대만 등의 활동가와 협력을 만들어내는 작업의 선두에 섰고, 쏘련, 쿠바, 베트남,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중요시 했으며, 칠레나 이란이나 남아프리카,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하는 중남미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의 활동, 그리고 최근의 그리스를 필두로 하는 유럽 인민의 투쟁에 대한 관심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안에도 자신이 일하는 출판ㆍ교정 노동자의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조합 만들기, 청년ㆍ학생, 여성운동에 대한 조언과 지도 등등 타케이 선생은 쉴 새 없이 상담에 나서 그들의 작업에 대한 협력을 계속했다.





또한 2000년 봄에는 많은 협력자들을 모아 정치ㆍ경제 과정과 문화ㆍ예술 과정을 설치하고(또한 그것을 횡단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계급적 재건을 위한 노조활동가와, 그와 함께 싸우는 문화ㆍ예술활동의 새로운 담당자가 함께 배우고 협동의 길을 탐구하는 종합적인 운동가 육성을 목적으로 한 HOWS(本鄕(혼코)문화포럼 워커스 스쿨)의 창립의 선두에 섰다.





타케이 선생은 자신의 작업을, “전쟁 후의 학생운동 속에서 출발한 나는 그 후의 정치운동ㆍ문학운동 속에서도 단지 한 길로, 운동 속에서 운동에 필요하다고 본 것만을 써왔다. 모든 것을 직설적으로, 시평풍(時評風)으로 써왔다. 만일 이 책을 읽는 예전부터의 독자가 있다면, 이것을 오늘날의 우리의 문학―말의 본래의 의미에서의 ‘문학’―이라고 간주해주신다면 나의 행복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50-60년대의 문예평론을, 내가 사상론ㆍ정치론이라고 간주되는 것을 환영할지언정 기피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武井昭夫政治評論集 ��세계와 일본―또 하나의 시각�� 1983년 간행 “서문”에서)라고 규정해왔는데, 이러한 태도는 평생 변하지 않았다.





타케이 선생의 운동에 대한 자세는 곤란에 부딪쳐도 언제나 전진하고, 설령 소수일지라도 “우리야말로 정통파”라고 하는 자부로 관철되어 있었다. 그것은 때로 우리 자신의 운동 내부에 대한 엄혹한 비판이기도 했지만....





그의 사상과 활동을 계승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입으로 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실현시키는 것은 비상히 곤란한 일이다. 그것을 정말로 우리 자신의 과제로 삼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활동의 방식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말하자면 재출발의 각오로 맹렬하게 공부하고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말기적 증상과, 그것을 극복해야 할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역량의 약체화라는 현실은 새삼 이것을 우리에게 들이대고 있다.





타케이 선생 류(流)라고 한다면, 설령 일시적으로 주위로부터 고립되더라도 지배계급이 내걸어대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그것을 선도하는 매스컴에 의한 포퓰리즘 = ‘개혁’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지옥으로의 길’을 준엄하게 거부하는 강인한 정신과 이론을 체득(體得)한 인민이야말로,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다.





타케이 선생은 최후의 작업이 된, 7월 30일-8월 2일에 개최된 <HOWS 2010년 여름 쎄미나>에서의 구라타 데츠야(鎌田哲哉) 씨(��重力�� 편집회의)와의 대담(��주간 독서인�� 8월 27일호)의 끝에서 “내 머리 속에서는 ��新編 創造運動의 論理��라고 하는 책으로서 정리하는 것이 하나. 그리고 ��狀況論集�� 시기에 쓴 문화문제에 관한 원고들을 책으로 내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전후(戰後)의 현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문화운동, 문학운동에 관한 실제의 다큐먼트와, 거기에 있었던 논리의 비판적 검토, 나아가 그러한 운동에 대하여 내가 제기하려고 생각했던 것을 주제로, 현장의 노동자나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1960년대와 70년대를 중심으로, 몇몇 좌담형식의 토론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전개해온 논의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서 출판해두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작업을 하나라도 완성시키는 것. 그리고 눈앞에 있는, 타케이 선생이 남긴 최근 30년의 상황에 대한 발언 ��武井昭夫狀況論集�� 전체 4권, ��‘개혁’ 환상과의 대결��, ��계속 투쟁하는 것의 의미��, ��사회주의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 ��원칙이야말로 새롭다��로부터 타케이 선생의 에너지와 논리를 계승하고, 우리 자신의 투쟁의 피와 몸으로 삼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근대를 어떻게 전체적으로 극복할 것인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의 심화와 그에 대응하는 자민-공명당 정권으로부터 민주당 중심 정권으로의 이행 속에서 일본의 노동자계급ㆍ인민의 대다수는 또 다시 부르주아 지배계급이 불러대는 내셔날리즘=‘국익론’의 대합창에 취해 있다. “곤란한, 곤란한, 곤란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운동족’ 타케이 선생의 투쟁에서 배우고, 시선을 높이고, 대열을 정비하여 전진하자.










* 단행본 일람





  ... [생략]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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