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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음악의 반란자 (14)
글쓴이 한스 아이슬러 E-mail send mail 번호 197
날짜 2010-11-09 조회수 2890 추천수 117
파일  1289270255_h.hwp

  













음악의 반란자
















번역: 최상철(편집위원)




















용광로의 음악





—쏘련에서의 유성영화 작업





1932















쏘련에서의 유성영화 작업은 내가 부딪친 가장 흥미로웠던 일 중 하나였다. 혁명적인 영화의 음악을 작곡할 때 작곡가는 새롭고 어려운 문제에 마주하게 되는데, 특히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청년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룬 영화일 때 그러하다.





유성영화 <꼼쏘몰(부제: 영웅들의 노래)>1)에는 세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새로운 공업도시 마그니또고르스끄2), 탄광지대인 꾸즈네츠끄 분지, 그리고 모스끄바와 레닌그라드의 공장들. 나는 배경지에 가보지 않고서는 음악을 쓸 수 없으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따라서 최초에는 작곡가라기보다는 “음악 기록자”로서 임했다. 테잎 녹음기3)를 들고 네델란드 감독 요리스 이벤스4)가 있던 마그니또고르스끄로 가서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성을 배웠다. 먼저, 용광로 건설 작업과 그것의 문제에 대해 알아야 했다. 다음에 소수민족 고유의 음악과 공장의 소음을 녹음해야 했다.





마그니또고르스끄는 내가 방문한 곳 중 가장 흥미로운 곳이었다. 이 도시는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었다. 도시가 생긴지 2년 반밖에 안 되었지만 27만5천명이 거주하였고, 이들은 거대한 제철 주조소를 건설하는 일에 전력하였다. 위대한 사업을 건설하는 데 모든 민족들이 실천적으로 참여하였다. 끼르끼즈인 옆에는 2년 전에 유목 사냥꾼이었던 독일인을 찾을 수 있다. 젊은 러시아인 건설 기술자 옆에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계급인 고도로 숙련된 미국인 전문가가 일하고 있다.





철을 주조하고 있는 귀를 멀게 하는 굉음을 마이크로 가장 잘 기록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커다란 용광로를 구석구석 누비는 것에 익숙치 않았기에, 그곳의 작업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리스 이벤스가 환상적인 열의와 꼼소몰 조직의 동지적인 도움은 주의를 끌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7일 간 익숙치 않은 기후에서 온 힘을 다해 750m5)가 넘는 공장 소음과 음악을 녹음했다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자랑스러운 것이다. 몇몇 까자끄 노인들의 노래를 녹음하는 것은 특히 흥분되는 것이었다. 내가 까자끄의 옛 민요를 추적하고 있을 때 까자끄인들은 인터내셔널가를 내게 까자끄어로 불러주길 원했다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었다. 제민족의 노동자들의 어마어마한 열의와 노동자의 의식 그리고 공산주의 당국자들의 의무감과 책임감은 나를 감격시켰다.





두 번째 작업은 모스끄바에서 했는데, 거기서 영화 음악을 작곡하여 메쥐라브뽐 영화 제작소6)에서 녹음하였다. 내가 처음 쓴 곳은 뜨레챠꼬프7) 동무와 함께 한 “꼼소몰 단원들의 마그니또고르스끄 발라드”였다. 가사는 매우 간단하다.










우랄, 우랄





자석 산 옆에 자리한 도시여.





여기 수많은 강철이 있네.





당은 말한다





우리에게 강철을 달라!





꼼소몰 단원들은 답한다:





계획이 세워졌다면





우리는 강철을 건낼 것이다!










영화에서 젊은 집단농장의 농민이 마그니또고르스끄로 와서 노동청에 보고한 후 경이에 차서 도시를 가로질러 그의 오두막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사건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관객에서 알리기 위해 장대한 관현악곡을 상연할 기회가 되었다. 마그니또그르스끄의 눈에 띄는 특징은 단지 용광로뿐만이 아니라 인민이 대초원을 변모시켜 거대한 공업단지가 되고 번갈아서 공업단지가 그 건설자들을 변모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전형의 인간이 이 과정에서 나타난다.





모스끄바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서 기술 요원과 음악가의 모범적인 규율과, 그들의 과업에 대한 계급의식적인 열성에 인상을 받았다.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고 있는 새로운 전형의 인간을 감지할 수 있다. 요리스 이벤스의 부대(unit)는 돌격여단(Udarniki-Brigade)8)라는 영예를 얻었다. 나는 이 영화가 독일에서 우리의 투쟁에서도 주요한 무기가 될 것이며, 아마도 혁명적인 영화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출처: Hochofen-Musik(용광로의 음악), Illustrierte Rote Post9), Berlin, 1932년 4월 No. 15. <노사과연>











1) 원주: 1932년 5월 아이슬러는 두 번째로 쏘련을 여행한다. 그리고 영화 <꼼쏘몰(영웅들의 노래)>에서 요리스 이벤스와 공동작업을 시작한다. 





역자: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기에 본문에만 의존해 번역한다.






2) 원주: 1차 5개년 계획 우랄 남부의 자석산 기슭에 있는 드넓은 노천 탄광이 개시했다. 고품질 철광석이 발견되었다. 사회주의 도시 마그니또고르스끄가 야금 주조단지 주변에서 건설되었다. 주조에 필요한 석탄과 코크스가 “꾸즈바스(꾸즈네츠끄 분지)”에서 났다.






3) 1979년에야 상용화된 일본 쏘니사의 워크맨 같은 휴대용 테이프 녹음기를 상상하면 안 된다. 이 당시에는 프리츠 플로이머(Fritz Pfleumer)가 1928년에 자기테이프를 발명했고 아이슬러 역시 이를 이용한 녹음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때에는 아직 오픈 릴(open reel) 테잎이 발명되기도 전이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녹음장비를 휴대하는 것이 무거웠기에 상당히 불편한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녹음한 자료는 편집이 가능했고 아이슬러는 이를 다양하게 활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4) Joris Ivens. [1898-1989]. 네델란드어 v는 영어 v와 f의 중간 정도로 발음한다. 공산주의자였으며 중국 홍군의 투쟁을 다룬 영화 <4억>을 비롯한 작품에서 아이슬러 함께 작업하였다.






5) 당시 녹음한 자기 테이프의 길이가 750m였다는 뜻이다.






6)  Межрабпомфильм. 1948년부터는 막심 고리끼 영화제작소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영화화한 뿌도쁘낀의 <어머니(Мать)>도 1926년 이곳에서 제작되었다.






7) 원주: 세르게이 뜨레챠꼬프 [1892-1937](영어판 선집에는 1939년에 죽은 것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작가, 1931년 베를린 방문 당시 아이슬러와 알게 되었다. 이 둘은 모두 모스끄바 볼쇼이 극장의 오페라의 제목인 마그니뜨나야(Магнитная)를 완성할 작정이었다.





역주: 뜨레챠꼬프는 좌익예술전선(레프)의 편집인이기도 했다. 브레히트와 아이슬러와 교류하면서 서로 간에 많은 영감을 주고 받았다. 그는 쏘련에서 숙청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억울한 희생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잘못을 범했는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






8) 원주: Udarnik(Ударник)는 열성적인 노동자를 가리키는 러시아 용어다. 아이슬러는 이 무렵에 <우다르니끼 캐논>을 작곡하였다.





역주: Ударник(우다르니끄)는 그 외에도 타악기 연주자. 돌격대원과 같은 뜻이 있다.






9) 당시 노동자들을 위한 도판이 있는 주간 신문. ‘붉은(Rote)’이라는 단어에서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노사과연 끼릴 문자 에러는 정정했습니다. 파일 올렸구요. 2010-11-09 11:38:18
보스코프스키 문자오류 해결 즉시 첨부파일도 함께 등재요... 2010-11-09 00: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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