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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현장 >
제목 “착한 기업, 사회적 기업”을 비판한다
글쓴이 이진수│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115
날짜 2009-09-18 조회수 2556 추천수 97
파일  1253201933_사회적.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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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이 요즘 대세이다. 버스 광고에도 나오고, 신해성인가 하는 가수가 로고송도 부른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폭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로 증대되고 있는 것 같다. 노동부에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적 기업 창출을 독려하고 있으며, NGO도 발벗고 이에 동조하고 있다. 기업들도 사회적 기업에 재정을 투입하고 있으며, 일부 모험심 있는 젊은이들도 소셜 벤처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 험난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여, 일부 과격한 단체들은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팔뚝질을 해대고 있지만, 이들과 반대로 국가․자본․NGO들은 사회적 기업을 둘러싸고 매우 평화롭게 서로 화합하며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사회적 기업은 어떤 마술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주의가 필요하다. 국가와 자본은 왜 사회적 기업을 그다지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동조하고 있는 NGO는 도대체 왜 그렇게 협력하고 있는가? 이에 미치는 사회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거칠게나마 살펴보도록 한다.

























1/ 사회적 기업의 사상 비판: 사회적 기업은 빈곤한 사람의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사회적 기업은 일반적으로 “착한 기업”으로 통한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만들고 이윤이 남으면 사회에 환원하고, 게다가 빈곤한 사람들을 고용한다고 하니, 이 각박한 자본주의에서 얼마나 착한 기업인가? 그러나 사실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상품을 만드는 기업은 자본주의에 존재하지 않고, 많은 기업들은 다양한 방면으로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으니, 사회적 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빈곤한 사람들의 고용”에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빈곤의 유무의 결정 중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고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고용’은 다양한 문제에 둘러싸여 있는데, 얼만큼 임금을 받느냐의 문제, 작업과정에서의 소외, 해고의 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용’ 문제는 사실 자본주의에서 반복되는 경제적 악순환, 이에 대한 계급적 역관계에 의해 거시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원론’적인 해법 말고, 소위 ‘대안’을 고민해온 역사가 있다. 바로 빈곤한 사람들끼리 고용 문제를 해결해보자라는 야심차지만 끊임없이 실패해왔기 때문에 공상적이라 비판받는 ‘협동조합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70년대부터 건설․봉제 등 빈곤한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직업군에서 자신들만의 협동조합을 꾸려 스스로 이윤을 창출해내는 빈민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실패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생산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워낙 작업들이 미숙했기 때문에 수주를 받기가 쉽지 않았고, 수주를 받더라도 작업속도가 느리거나 서툴러서 계약이 이어지지 않는 사건이 계속 벌어지자 곧 파산했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에야 오죽하랴.





어쨌든, 이들의 이러한 시도들은 사회적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실업문제가 광범위해지자, 그들의 협동조합식 운영을 제도화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제도화된 것은 바로 ‘자활’이다. ‘자활’ 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형성된 것으로, 노동력 기준이 수급권자 기준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방편’으로서 돈이 없거나 재산이 없는데 노동을 할 수 있다고 판정된 사람은 강제로 노동을 해야 수급권이 인정되게 되었는 데, 이때 ‘자활’제도가 탄생되었다. 보통 노동할 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사람은 동사무소에서 취로사업을 하게 되는데, ‘자활’제도는 이보다 노동강도가 조금 세고, 사회적으로 상품가치가 될 만한 일들이 주로 다루어진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활’제도를 통해 수급권자가 제도의 보호를 받지 않는 노동시장으로 진출할 것을 끊임없이 독려하였지만, 사실 이 효과는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반 시장에서의 노동권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급권으로 인한 다양한 지원(특히 의료혜택)이 매우 큰 편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서비스 제공 기관의 자발성을 강조해왔으며, 탈수급 비율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일자리 제도가 만들어졌으며, 그 결정체로 ‘사회적 기업’이 탄생한다. ‘사회적 기업’이 종래의 일자리 관련 사업과 비교해 가장 큰 특징은 어쨌든 2-3년 후엔 국가로부터 ‘재정적 자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민간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욕을 들어먹을 일도 없고, 그 잘되고 못되고의 책임도 NGO가 가져갈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부담이 없다.





이러한 정부에 발을 맞춘 것이, 과거 빈민운동에서 자립성을 강조해온 진영이다. 이들은 정부로부터도 독립적이며, 못사는 사람들끼리 기업을 한다는 것에 일단 환영을 했다. 단지 자신들의 머릿속에 있는 빈곤한 사람들의 공동체와 사회적 기업의 모순이 보여질 때마다, 세미나나 회의 자리에서 성토를 하긴 했지만, 공식적인 반대 문건이나 성명서조차 없었다. 어쨌건, 이들은 ‘정부의 힘’을 빌어 빈곤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기업으로 인한 일자리가 창출되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이 점에서 가장 중요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2-3년간의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제외하면 사회적 기업도 기업의 속성을 가진다는 점이며,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빈곤한 사람들을 추려서 기업을 꾸리며, 시설도 영세한데 어떻게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이 사회적 기업도 다른 기업도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또다시 반복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책임을 애매한 빈곤한 사람들과 NGO들이 뒤집어 쓴다는 데에 있다. 이 사람들은 어쨌든 사회적 기업에 참여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업이 잘 못 되어 망한다면 어디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또한 현재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노동자들의 노동실태조차도 매우 열악하기 짝이 없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기업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107만원 정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어느 누구도 문제제기 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당사자들도 침묵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라는 외관이 덧붙여져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저렴한 일자리 창출 정책과 맞물린 NGO들의 부화뇌동은 결국 수많은 빈곤층의 일자리 요구를 저렴한 단가로 낮추고 있는 것이다.















2/ 사회적 기업과 NGO 참여










한국 NGO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예전 NGO라 하면, 그야말로 대중단체로서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말 그대로 비영리기관이었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을 논외로 한다면, 어쨌든, 독립성은 유지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이들은 할 일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김대중 씨가 IMF를 경유하면서 부딪친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빈곤현상을 저렴한 비용으로 감소시켜내는 것이었다. 이때 NGO들은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함과 동시에, 실제로 그러한 빈곤현상을 감소시켜내기 위한 ‘사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즉, 빈곤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각종 센터를 만들어 사업비를 국가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같은 구호기관들로부터 받아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업비로 인해 그동안 빈곤에 시달렸던 NGO단체들은 급격히 외형적으로 커지기 시작하였고, 상근자나 실무자에 대한 처우도 어느 정도 향상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NGO단체들이 커지기 시작하자, 여러 전문인력들도 충원되고, 사업은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사업의 기술이 매우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각종 대학원에 NGO관련 학과들도 설립된다. 하지만 NGO 단체의 성격은 국가나 자본으로부터 적어도 외형적으로나마 유지되었던 독립성은 사라지고, 특정 사업의 전달체계자로서의 역할로 변모해가기 시작한다. 또한 다양한 NGO들이 더욱 많이 생겨 이들 간의 사업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지게 되었다. 갈수록 재정적 종속성은 심화되면서 특히 정권이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이 단체들의 독립성은 명백만 유지된다. 이제 사업비가 끊긴다면 문을 닫을 NGO들이 거의 대부분일 정도가 된 것이다. 특히 최근 친 노무현․김대중 계 NGO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보수 NGO에게 밀려나고 있는 데,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난다면, 실질적으로 NGO 간의 성향 구분조차 무의미해질 것이다. 이제 NGO들은 서비스 전달체계와 사업비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일보 직전에 다다른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이러한 서비스 전달체계를 직접 공공이 나서서 하기에는 비용과 효과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돈 줄을 틀어쥐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NGO를 육성할 것이며, 경쟁이 심화될수록 그 단가는 더욱 낮아지게 될 것이다. 어쨌든, NGO는 저렴한 비용으로 극단적인 빈곤을 완화시키고, 그 불만을 잠재우는 역할을 더욱 강도높게 진행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시기 주로 빈곤과 관련되어 지역운동을 하였던 NGO들은, 과거 자활이나 사회적 일자리와 같은 일자리 제공 서비스를 해왔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여기에 투입되는 돈들은 사실 너무 낭비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공공이 제공하는 일자리 사업에서 많은 사람들이 벗어나는 것을 바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NGO들은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 ‘독’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기술력이 부족하고,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기업’을 만들라니. 게다가 그 책임은 NGO에게 모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 기업을 만들지 못하는 NGO들에게는 아마 재정적인 불이익을 주는 등 다양한 방면의 압박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재정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마당에 이를 거부할 수도 없다. 어쨌든 일자리 관련한 모든 NGO들은 사회적 기업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은 2-3년 안에 재정적 자립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무한 경쟁 시대에 이들처럼 어리숙한 기업이 살아남을 리 없다. 이들은 정식 기업이 아닌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아마 지자체에 다른 업체를 쓰지 말고 사회적 기업을 고용해달라는 부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기업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일부 대기업에 제안을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핵심적인 상품이 될 것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인 자본주의에서 단지 착한 이미지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팔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들의 생명 연장은 대기업이나 지자체의 ‘변덕’에 종속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NGO에 돌아갈 것이다.















3/ 사회적 기업에 대기업은 왜 참여하는가?










사회적 기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일단 자본과 기술이 핵심이다. 이런 면에서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기업으로서 매우 절박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은 어떤 집단인가? 이들은 돈이 안 되는 곳에는 일원 한푼도 제공할 의사가 없는, 삭막한 집단이다. 이들이 사회적 기업을 육성한다거나 지원하는 데에는 그만큼 이유가 있다. 최근 대기업들은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심포지움에 나와서 사회적 기업이야 말로 대기업이 적극 추진해야 할 사회공헌 사업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즉, CF 효과로서 사회적 기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도시락 배달 사업이나 집수리 사업 등을 펼치고 있는 대기업들은 꽤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러한 사업들을 펼친다. 의류 대기업은 재고물량을 불우한 이웃에게 나눠줌으로써 세제혜택도 받고 칭찬도 듣는다. 각종 자원봉사 조직을 만듦으로써 애사심도 강화시키고, 홍보도 하며 아름다운 CF에 출현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결코 성과가 남지 않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렇다 하더라도, 갈수록 이러한 작업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세밀해지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노조에게 이러한 행사를 제안하기도 한다. 너네들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밥그릇만 챙기려 들지!





이러한 대기업 중 이러한 의미있는 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을 만든 곳도 있다. 처음에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다가 나중에는 독립을 시킨다. 그러나 명목상 독립이지 실제로는 그러한 대기업의 홍보를 하는 종속적인 업체이다. 당연히 이러한 업체는 대기업의 하청업체나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사회적 기업에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약간 행운일 수 있는 것이, 다른 사회적 기업보다 노동조건이 나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대기업 노동자에 비한다면, 엄청난 박봉임에는 분명하다. 때로는 대기업은 기왕 운영 중인 사회적 기업에 후원을 하면서 운영권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사회적 기업 운영자는 약간 서운할 수도 있는데, 자신들이 해놓은 일은 고작해야 대기업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회적 기업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대기업에게 “광을 파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기업들은 빈곤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 것도 빼놓지 않고 광고한다. 어쩌면 이 곳에서 일하는 사회적 기업 노동자들은 홍보부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기업일수록 노동자탄압이 극심하며, 사회적 기업의 저렴한 노동자들은 고용하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하는 기업이다.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줄이고 더 고용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효과가 클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사회적 기업을 통해 고용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4/ 사회적 기업은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어쨌든 국가가 부자이든지, 빈곤해지든지 간에 국민은 가난해져왔다. 어느덧  비정규직 문제는 늘상 있는 문제로 익숙해져가고 있고, 진보진영에서의 빈곤에 대한 대처는 ‘정책’에 대한 고민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아닌 것은 확실히 아닌 것이다. 빈곤은 그러한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빈곤문제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 자체가 허구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노동자대중의 빈곤을 양산함으로써만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일부 선량한 사람들의 시도가 사회적 기업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들은 이미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꺽여버렸으며, 그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속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공상적인 시도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오히려 사회적 기업은 극빈한 사람들에 대한 저렴한 일자리 대책으로서, 또는 대기업의 홍보 수단으로서 전락하고 있으며, 이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실패한 시도들이다.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 사회적 기업과 같은 영세하지만 착한 사람들의 모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기업이 하는 일은 대체로 사회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다만,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판매하는 계급협조적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며, 이들의 임금은 그러한 기능의 가치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때로는 이들이 하는 일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진정으로 쓸모 있는 일이라 인정될 수도 있다. 최근 간병인 서비스와 같은 높은 기술이 필요치 않지만 고도의 정성과 감정노동이 필요한, 지독히도 사회적으로 가치절하된 서비스노동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들의 사회적 기능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임금을 낮추는 일반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대안을 묻는다면, 부끄럽지만, 대안은 없다라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은, 비정규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최하 밑바닥의 노동자들의 문제는 이 NGO들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절대 이들의 고용문제는 한걸음도 진전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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