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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현장 >
제목 철도노동자들의 투쟁과정과 현실에 대한 보고, 그리고 단상
글쓴이 김형균│철도노동자, 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112
날짜 2009-08-07 조회수 3026 추천수 150
파일  1249576018_철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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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어느 노동조합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철도노조도 중첩된 쟁점을 둘러싸고 노사(정) 간의 공방이 지속되어 왔다. 공사로의 전환 이전에는 주로 철도산업의 민영화 공세를 둘러싼 투쟁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철도산업의 공공성보다 수익(이윤추구)성 논리를 앞세운 저강도-상시구조조정 체제에 맞선 투쟁이 있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철도에서도 비정규직의 문제가 전면화 된 시기이기도 하다. 철도에서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반전의 계기를 잡지 못한 채 힘겨운 방어투쟁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 글은 철도현실에 대한 간략한 보고와 매시기 투쟁의 특성과 한계, 도출해야 할 유의미한 점을 소개하는 글이다. 주요시기에 정부와 철도당국이 철도노동자에게 가하는 공세의 성격과 대응양상에 대해 소박하게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철도노동자(노조)의 대응 과정에서의 특징적인 것을 약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현시기 철도노조가 처한 현실과 계획을 알아보고, 한발 전진을 위한 몇가지 문제의식을 제시할 것이다.










2. 쟁점의 성격변화와 대응과정










1) ’88년, ’94년 파업과 노조민주화 투쟁시기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여파는 철도에도 밀려와 ’88년 기관사 파업을 촉발시켰다. 자연발생적 투쟁의 한계를 절감한 철도 활동가들은 의식적 준비를 통해 ’94년 전지협 3사 공동파업을 만들어냈다. 당시의 파업투쟁은 전노협 등 민주노조운동이 총자본의 무자비한 공세를 받아 그 힘이 하향곡선을 그리던 엄혹한 시기(3당합당으로 정권을 잡은 김영삼정부 집권기)에 목적의식적으로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투쟁 이후 철도현장에서는 노조민주화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이 대중화되었다.





이후 투쟁주체들은 전국에 흩어져(비연고지 전출) 곳곳에서 철도노동자들을 각성시키고 민주노조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철도활동가들은 노민추를 구성하여 ’98년 조합비인상반대범대위 투쟁을 비롯하여 다양한 대중실천을 조직했다. 치열한 노조민주화투쟁은 2,000년 ‘민영화저지, 민주노조쟁취를 위한 공투본’ 투쟁을 통해 2001년 54년 역사의 어용철노를 조합원의 것으로 되돌렸다.





철도노동자들이 3중 간선제의 장막으로 둘러쳐진 어용노조의 아성을 무너뜨린 동력은 ’98년 경제위기와 연관이 있다. 경제위기는 김대중정부로 하여금 철도 민영화 계획을 들고 나오게 했던 것이다. ‘민영화=생존권 박탈’이라는 인식이 철도노동자들을 공투본 깃발 아래 하나로 단결시켰고, 민영화저지의 열망은 ‘민영화 정책을 합의해준 어용노조’를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했다. 생존권에 대한 위기의식이 결국 역동적이고 헌신적인 대중적 실천을 만들어 낸 사례이자 경험이다.










2) 민주철노의 철도민영화 저지투쟁 시기 










직선집행부는 2002년 2월 25일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해 발전노조, 가스노조와 함께 공동파업투쟁을 벌였다.(발전 38일, 철도 3일) 철도노조는 ‘막연한 문구의 합의서’를 들고 3일만에 조기 회군했다. 이로 인해 그 후과는 4월 30일 직대집행부로 하여금 노사평화선언을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했다.  이후 철도노조의 지도-집행력은 바닥에 떨어져 무기력해 졌으나, 그해 12월 수색지구(서울차량, 서울기관차, 경의일산선역지부 등)에서 진행한 현장투쟁(안전운행집중투쟁)이 승리하면서 무기력해진 철도노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3년 4월 20일 투쟁에서 단협을 체결하고 노정합의를 통해 ‘민영화 방침 폐기’를 확인했으나 공사로의 전환이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6월 28일, 정부는 노정합의에 반하는 철도구조개혁관련법(분할민영화가 가능한 철도사업법 등)을 국회에 상정하였고, 철도노조는 황급히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파업투쟁에서 3일만에 합의서 없이 복귀하게 되었고, 이어 70여명의 해고와 8,000여명에 대한 대량징계, 민형사상 고소고발과 손배ㆍ가압류 등 초유의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우여곡절 끝에 철도사유화 정책은 공사화라는 우회로를 걷게 되었고, 공사 전환에 따른 특단협 투쟁을 거치면서 2005년 철도는 공사로 전환되었다.










3) 공사전환 이후 :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 전면화










2005년 정부는 철도산업을 기반시설(시설공단)과 운영부문(철도공사)으로 분리하여 소유와 지배구조를 변경했다. 노동조합은 공무원법 적용에서 노동법 강제적용을 받게 되어 활동의 조건이 바뀌었다. 철도는 공사로 전환하자마자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자 했다. 본사를 시장별 사업부제로 재편하고 지사 간 경쟁체제로 전환했다. 인위적인 정원감축안을 수립하여 짜 맞추기식 감원(가능한 모든 업무에 대한 외주화 추진, 1인승무, 차장생략, 검수주기조정, 무인역, 업무통합과 폐지 등)을 진행하고 있다. 승무업무 외주화의 결과로 ‘KTX 승무업무 환원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직접고용쟁취투쟁) 투쟁’이 발생했고, 정규직을 감축한 그 자리에 기간제 노동자(직접고용 비정규직)들로 대체(약 3,000명)하여 이들의 정규직화 투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07년). 또한 현업(현장)에 대한 노동통제의 제도화를 위해 ERP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시에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성과급제, 연봉제 확대)했다. 이미 단체협약으로 확보되어 있는 노동자(조합)의 권리 축소를 기도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최종적으로 노조무력화이고 동시에 협조주의적인 노사관계 실현에 있다.





공사전환 이후의 투쟁을 되돌아보자. 2006년 3월 1일 파업(단협갱신과 현안 등)에 돌입하였으나 노사합의서 없이 복귀하여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차량직종의 완강한 작업거부투쟁으로 4월 1일 단협 및 노사합의서를 체결하게 되었다. 차량직종의 완강한 현장투쟁(작업거부투쟁)은 또다시 철도노조를 수렁에서 건지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한편, 3.1파업은 KTX 승무원(철도유통 소속, 간접고용비정규직)과 함께 시작한 파업이었는데 승무원들은 ’06년, ’07년, ’08년까지 투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줄이야! (현재는 법정투쟁 중). 





2007년은 모든 투쟁과제(부족인원 충원-구조조정저지, 직접고용 및 간접고용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원직복직, ERP 및 성과주의 인사제도 저지 등)를 모두 끌어안고 정면 돌파하려 한 치열한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끝내 화물연대와의 연대파업대오를 형성하지 못하여 지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총사퇴하고 말았다. 지도부의 투쟁의지는 확고하나 위력적인 파업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지도력의 한계를 경험한 과정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하여 KTX-새마을 승무원 투쟁을 매듭지으려 했는데 좌절되었고 화물연대와의 공동파업도 미리부터 준비되었으나 결정적인 시기에 철도에서 위력적인 파업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닥쳤다.





2008년, 고스란히 남아있던 제반 과제들은 새로 선출된 집행부의 과제로 이월되었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선출된 집행부는 승무원들의 투쟁에 대해 서둘러 정리시키는데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사실상 장기투쟁으로 인한 현실적인 어려움, 철도공사의 지속적인 분리선동, 일부 노조간부(지부장 등)들의 노골적인 비정규직투쟁에 대한 불만 유포, 앞의 부류에 영향을 받은 일부 정규직 이기주의 등이 작동하는 조건에서 집행부는 비정규직 투쟁에 휘말리지 않고 싶어 했다. 결국 승무원투쟁은 법정투쟁으로 전환되어 대중투쟁은 마무리되었고 재판결과만 남겨두게 되었다. ’08년 집행부는 이월된 과제와 관련하여 철도공사를 상대로 투쟁하고 교섭하였으나 아무것도 확보하지 못한 채 ‘이상한’ (잠정)합의서를 도출하여 확대쟁대위회의(지부장 이상)에 부쳤으나 부결되었고 결국 총사퇴하게 되었다. 확대쟁대위 회의에 잠정합의안을 부쳐 부결된 사례는 이때가 처음이다.





한 회기의 임기 동안 두 집행부가 무너지고 이어서 철도노조는 직무대행체제로 전환되어 재투쟁, 재교섭을 진행하고 차기 집행부 선출까지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는 17개 업무 외주화ㆍ효율화와 관련한 합의에 따라 외주화와 해당 비정규직의 정리해고를 인정한 합의가 서명된 것이다. 당시 직대집행부가 처한 한정된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그 결과는 계급적 노동운동을 고민하는 간부, 활동가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 공대위가 구성되어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투쟁이 전개되었다. 물론 직대위원장이었던 동지와 서울지방본부는 이 투쟁에 적극 결합했다.





한 임기 동안 두 번의 집행부가 투쟁에 실패하고 총사퇴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철도노조 지도력 복원을 위해 통합집행부 선출 논의가 모아지고, 이 과정에서 2009년 현재의 집행부가 출범하였다. 현재의 지도부를 중심으로 역시 이월된 과제(단협갱신, 해고자복직, 부족인력충원 등 현안문제 등)를 중심으로 상반기 투쟁을 마무리하고, 하반기 투쟁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4) 2009년 : 상반기 투쟁










이명박 정권 인수위 당시부터 공기업 민영화를 둘러싼 계획과 논의들이 화두가 되었다. 촛불정국을 경과하면서 민영화는 선진화라는 말로 변화되어 현장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다. 강경호 사장이 비리혐의로 연루되어 구속된 이후 철도에는 정서적으로도 도저히 수용이 안 되는 경찰청장 출신의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철도에 내려왔다. 경찰병력의 힘을 빌어 취임식을 한 허사장은 이명박정권의 공기업구조조정 계획의 추진과 철도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즉각적인 공세에 착수했다.





사장취임반대투쟁에 대해서는 대량의 고소고발을 단행하고 안전운행실천투쟁에 대해서는 직위해제와 징계로 화답했다. 철도에 대한 5,115명의 인력감축안(선진화계획!)을 이사회를 열어 일거에 통과시켰다. 또한 토목ㆍ건설자본의 배만 불리고 부실덩어리가 된 공항철도에 대한 인수방침을 확정했다. 지부장들에 대한 근태관리를 강도 높게 진행하면서 현장통제의 고삐를 죄었다. 안전문제가 제기된 경의선 개통저지투쟁에 대해서는 대규모 경찰병력을 투입해 122명의 조합원을 연행하는 등 강경일변도로 일관하고 있다.





철도노동조합 현 집행부는 3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철도공공성 강화 및 고용안정 쟁취, △구조조정 저지 및 노동조건 개선, △해고자 복직 및 정기단협 갱신, △비정규직 철폐, △완전한 노동3권 쟁취라는 5대 투쟁과제를 확정하였으나 철도공사의 일방적인 공세와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에 바빴으며 단체협약 등 현안문제 해결을 위해 6월에 집중투쟁을 전개했다. 그 과정을 간단히 보면, 3월초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공사사장으로 내정되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현수막 게출, 대시민 선전전, 출근저지 투쟁을 전개했으나 이후 교섭진행과 함께 흐지부지 되었다. 5,115명에 대한 인력감축안과 관련하여 이사회 저지 투쟁 등을 진행해야 했다. 철도공사는 현장에는 지부장들의 근태관리를 중심으로 현장통제를 계속하는 한편 고소고발과 징계를 너무 쉽게 뽑아 들었다. 5월, 철도공사는 일방적인 식당 외주화를 강행하는데 맞서 수색지구를 시작으로 오봉지구, 대전정비창 등에서 현장투쟁(안전운행실천투쟁)이 진행되었다. 이는 각 지구 천막농성으로 확산되었지만 해결되지 못했다. 6월초에는 7월 1일 시행예정인 광명셔틀과 경의선 차장 생략에 반대하는 전동열차 차장들의 투쟁이 진행되었으며, 경의선 개통과 관련하여 인력문제, 안전문제가 제기되어 개통저지 투쟁을 벌였다 (122명 연행).





본격적인 총력투쟁의 일환으로 6월, 1차 단체행동으로 투쟁조끼 착용 및 사복근무(교번)ㆍ등벽보 부착(차량, 시설, 전기분야) 등의 조합원 공동행동이 진행되었고, 2차(6/15~19)로 중앙과 지방본부 간부들이 거점별로 파견되어 현장투쟁을 독려하는 가운데 주요 거점별 천막투쟁ㆍ중식집회 등이 진행, 6월 23일 중식집회를 시작으로 안전운행투쟁ㆍ규정 지키기ㆍ임시검수 거부ㆍ총회투쟁ㆍ휴일근로거부 투쟁 등을 배치하여 진행했다. 안전운행 투쟁은 철도공사의 적극적인 대응(1,500명 파견, 열차반복사용, 운휴 등)으로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한편 철도해고동지(철해투)들은 대전 본사 앞 농성투쟁(6/22~7/9)을 진행했으나 해고자복직에 대한 의사가 없음만을 확인했다. 이 외에 고 박종태 열사 투쟁, 비정규직법 ․ 최저임금법 ․ 언론미디어법 등 이명박정권 하의 여러 쟁점에도 집회투쟁 결합방식으로 참여했다.










5) 하반기 투쟁 기조와 대략의 일정










철도노조는 이월된 해고자복직투쟁을 비롯한 현안문제와 단체협약 투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투쟁했으나 부득이 하반기 임금협약투쟁과 묶어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철도노조는 지난 7월 15일 전국확대쟁의대책위회의를 열고 하반기 투쟁 계획을 수립했다. 기본적인 투쟁기조를 살펴보면, “△‘공공부문 죽이기’, 제2의 철도민영화정책―인력감축과 구조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철도 선진화 정책―에 맞서 완강하게 투쟁을 전개한다. △투쟁조직화를 위해 중앙-지본-지부-의 유기적 소통체계를 확보하고 교육, 선전의 강화를 통해 조합원 단결력과 투쟁력을 고양시킨다. △하반기 임단협을 통합하여 완강한 교섭과 투쟁을 전개하고,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해 마무리 한다. △ 공공부문 구조조정 및 노조탄압 분쇄,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해 투쟁하는 단위와 실질적인 연대투쟁을 전개한다.”





투쟁목표(과제)로 제시된 내용은 “△인력감축, 구조조정뿐인 철도선진화 계획 분쇄 및 철도공공성 강화, △해고자 복직 합의 이행, △단체협약 개악, 성과주의 임금체계로의 개악 분쇄, 70억 손배, 고소고발, 징계 등 노조탄압분쇄 및 노동기본권 사수, △사회(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예산 확보 등 사회 연대투쟁 강화”이다.





투쟁일정은 7,8월 각 단위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임금요구안관련)세부안을 확정하고, 9월부터 임단협 교섭과 투쟁을 시작하여 10월에 집중하는 흐름이다.















3. 제반 제약조건을 뛰어 넘기 위하여










1) 도약을 가로막는 장해물들










소유를 전환하는 민영화 공세와 달리 저강도 구조조정전략에 대한 대응은 매우 까다롭다. 비정규직문제는 구조조정의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오늘날 (자주적)민주노조를 가르는 기준선이 곧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실천적 태도라는 점이다. 이는 지도부의 막연한 인식으로는 제대로 대응할 수도 없고 끈질긴 투쟁을 조직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지만 노자 간에 주요한 쟁점이다. 이 문제는 철도 공공성 강화투쟁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현장투쟁으로 저지선을 치고 쟁점화 시켜 즉각적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일상적 구조조정은 사전 계획단계에서 저지하기 위한 거대한 투쟁이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실행단계에서 현장단위(직종)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면 결국 관철되고 묻혀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의 적자논리, 거짓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깨부수지 않으면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당하고 위축된다. 공공기업이 공적서비스를 더 많이 생산, 유통할 수 있도록 정부와 자본은 투자책임을 다해야 하고, 적정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건설부채, 차량도입부채 등을 철도운영 부문에 전가해 놓고 허구적인 적자논리를 앞세워 구조조정을 지속해 왔다. 조합원은 논리적 정당성을 움켜쥐어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더불어 정부의 적자논리, 수익성 논리를 깨부수어야 할 것이다.





국가권력은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을 봉쇄하기 위해 필수공익사업장이니 필수유지업무지정이니 하며 단체행동권(파업권)을 제약하고, 불법파업이란 이름으로 천문학적 민사상 손배(70억)로 덧씌워 놓고 있다. 노동자의 기본권에 속하는 파업권이 철도에서 단 한번도 인정된 바 없다. 파업을 하면 즉시 불법딱지가 나붙고 민사상 손해배상, 형사상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해고를 포함한 중징계로 줄줄이 엮어 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력적인 연대 총파업을 통해 일거에 날려버려야 하지 않을까? 과잉생산의 위기가 깊어가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 살려야할 철도노동조합의 유의미한 자산들










철도노조는 매시기 주요한 의사결정에서 중상집회의-의장단회의-중앙위원회뿐만 아니라 ‘전국지부장회의(확대쟁대위)’ 논의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즉, 140명에 달하는 지부장까지는 철도노동조합에 있어서 직접민주주의가 관철되는 구조라는 말이다. 이는 의사결정과 집행의 통일 정도를 결정하며 철도노조가 조합원의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매시기 투쟁에서 조합원들의 단결ㆍ투쟁력은 대개 그 지부 집행부의 성격과 지도력에 많이 좌우된다. 지구단위의 현장투쟁 성사여부도 당해지부장의 관점과 활동능력에 따라 규정된다. 따라서 조합원의 정신무장과 단결력, 투쟁력을 질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핵심고리가 곧 지부단위 지도력에 대한 사업이고 또한 지구단위의 독자적인 현장투쟁능력 배가 사업이 될 것이다.





철도는 중앙의 투쟁지침만이 아니라 현장 지부단위의 현장투쟁이 철도노조 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2002년 2.25파업 이후 직대집행부에 의해 노사평화선언이 이루어지고 헤매고 있을 때 수색지구의 현장투쟁은 철도노조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었다. 3.1파업 이후 합의서 한장 없이 복귀했을 때 차량지부의 작업거부 투쟁이 공사를 압박하여 노사합의를 이끌어 내는 주요한 힘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모두 열거할 수 없으나 이러한 현장투쟁의 사례는 무수히 많이 있다. 현장투쟁은 그 성격상 당해 소속의 조합원들이 의사결정과 집행에 참여해서 실천하는 투쟁이므로 조합원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철도노조의 자산을 살리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구단위, 직종단위의 투쟁을 견결하게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일상적 구조조정저지 투쟁이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계급적 단결이든, 정치파업이든 중앙의 투쟁명령이 작동할 수 있는, 위력적인 전술운용이 가능한 토대가 될 것이다. 










3) 장점을 살려 장애물을 극복하자!










’90년대 초반부터 이미 경제적 요구(임금투쟁)조차 총자본과의 투쟁을 상정하지 않으면 단 한발도 나갈 수 없는 정세로 변한 바 있다. 임금가이드라인 설정, 총액임금제 등등 총자본은 계급적으로 단결하여 노동자들의 모든 경제투쟁조차 개별자본가가 아니라 총자본과 대면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장기투쟁을 이루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모두 자본가들의 계급적 단결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계급적 단결을 이루지 못한 채 각개약진 하는 양상 때문에, 투쟁을 시작은 하지만 장기화되고 승리하기 힘든 투쟁이 되고 있다.





철도의 대부분의 투쟁쟁점이 모두 국가권력을 포함한 총자본을 대상으로 벌여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다. 너무나 정당한 요구들을 내걸고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어 투쟁을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소박한 경제선동만으로는 철도노동자의 끈질긴 투쟁을 담보할 수 있는 내적 힘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공공부문(철도)에 가하는 구조조정프로그램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자본가 정부의 적자논리를 포함한 거짓 선동에 맞서 정면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는 철도만의 문제로 국한하는 순간 한발도 나아갈 수 없다. 오늘날 공공부문 구조조정(선진화?) 공세가 철도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쟁할 수 있는 사업장과의 주도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연대투쟁을 기획하고 조직해야 할 것이다.





- 아무리 투쟁요구가 정당하고 압도적 논리적 우위를 점한다 해도 조합원의 확고한 정신무장과 단결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물리력을 형성할 수 없다. 따라서 의사결정과 집행의 통일의 담지자들, 특히 현장지도력이라 할 수 있는 지부장들의 동의와 확고한 정신무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지부지도력이 곧 조합원 대중의 것이 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 지구별 활동의 편차는 있지만 모범적인 활동사례를 일반화하여 지구별 현장활동, 현장투쟁을 상승시켜내는 사업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끈질기고 치열한 현장투쟁 조건을 형성하여 전술운용의 토대를 강화해 가야 할 것이고 완강한 투쟁거점을 넓혀가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안전운행실천투쟁 전술이 예전처럼 타격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공사의 대응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안전운행투쟁이 이루어지는 곳이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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