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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현장 >
제목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투쟁> 이제 다시 시작이다, 노동해방이여~
글쓴이 손미아∣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104
날짜 2009-02-25 조회수 4617 추천수 137
파일  1235487883_현대미포조선.hwp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투쟁
















1. 투쟁의 시작










용인기업 노동자 28명은 지난 2003년 하청업체가 폐업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원청인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6여 년간 복직투쟁을 벌여 왔었다. 지난 2008년 7월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대법원1)에 의해서 현대미포조선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았으나, 현대미포조선자본과 용인기업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2008년 11월 14일 이홍우동지는 현장탄압 중단과 용인기업 원직복직을 외치면서 4층 건물 아래로 투신했다. 현대미포조선노조는 이홍우조합원도 모르는 합의서를 사측과 만들어 빨리 이 사태를 종용하고자 가족과 투쟁주체와 접촉을 시도해 왔었다. 하지만 이홍우 조합원과 현장대책위는 현장탄압 중단없이 병원비 몇 푼으로 이 투쟁을 정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지난 2008년 12월 24일 새벽 6시 30분을 기해 이영도 민주노총 울산 전 수석부본부장과 김순진 현대미포조선 현장조직 ‘현장의소리’ 의장이 100m 높이의 현대중공업 굴뚝 고공농성을 감행함으로써, 사측의 탄압에 맞서 결연한 31일간의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드디어 2009년 1월 23일, 현대미포조선 자본이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인정함으로써 굴뚝에 올라갔었던 이영도, 김순진 동지의 구조작업이 진행되었다.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위한 6년간의 투쟁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2009년 2월 9일, 현대자본과 경찰은 이영도, 김순진 동지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울산 중부서 유치장에 수감하였다. 이는 현대미포조선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이 이제 시작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크고 작은 투쟁들 중의 하나에 불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필자도 울산에 내려가보기 전까지는 그들 투쟁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깨달았다. 거대한 공룡같은 현대미포조선 자본에 대항하여 고작 2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기는 목숨밖에 없었다. 그들은 목숨을 내건 투쟁을 했던 것이다. 이 글은 현대미포조선 자본에 당당히 투쟁으로 맞섰던 용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울산지역 활동가들 및 현장 노동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또 다시 시작해야할 투쟁의 승리를 다짐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다.















2. 하루투쟁기 2)










2009년 1월 17일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새벽 전철을 타고 영등포 민주노총사무실에 도착하니 7시 20분쯤 되었다. 아무도 와있지 않았다. 그래도 동지들이 이쪽으로 온다는 확신하에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유로왔다.





8시경에 연구소의 최상철 동지가 도착하고...... 몇몇 동지들을 기다려서 버스는 8시 30분경에 울산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에 탄 활동가들은 오늘 울산 집회에서 있을 “울산노동자대회”에 참가하고 굴뚝위에 올라가 있는 미포조선 노동자 2명에게 물품공급투쟁을 하기위해서이다. 기아자동차 화성동지들, 경기남부 동지들, 기륭전자 동지들, 하이텍 동지들 등 현장의 노동자들과 공대위에 속해있는 노동운동단체의 동지들이 모여서 버스 1대가 금새 만차가 되었다. 





토요일이라 길이 막혀 고속도로는 꽉 정체되었고, 지루한 버스 안에서 벗어난 것은 거의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였다. 집회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했고, 이제 막 행진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집회장에서 몇몇 동지들이 발언을 했지만, 모두들 마음은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이영도, 김순진동지에게 오늘 물품배급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현대미포조선의 탄압 때문에 4층에서 로프를 감고 투신했던 이홍우동지는 병원에 있고, 이홍우동지의 뜻을 좇아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내려오지 않겠다!’며 올라간 이영도, 김순진동지가 굴뚝위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집회는 짧게 짧게 진행되었다. 집회장에서 뿌려진 한 유인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악한 미포자본은 현대중공업 경비대와 동부경찰서의 보호아래 최소한의 인도적인 물품조차 못 올라가게 막고 있으며, 오히려 8일만에 5억 2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로 두 노동자의 목숨을 조롱하고 있다.”










약 1000여 명의 대오가 울산 현대백화점까지 도심지를 행진한 후, 백화점앞에서 김석진 [미포조선 현장투쟁대책위] 소집권자는 이후 투쟁을 계속해 나가고, 정몽준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을 계속하자는 애절한 호소를 하였다. 이날 거리행진은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 열사투쟁 이후 5년만에 동구에서 처음 벌어진 거리행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전해들었다.
























그림 1. 정몽준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을 계속하자는 애절한 호소를 하는 김석진 동지ㅡ2009년 1월 17일










현대백화점 앞에서 집회를 마친 이들은 삼삼오오 버스 몇 대에 나누어 타고, 미포조선 굴뚝으로 갔다. 100m 높이의 굴뚝 위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견디기 어려울 터인데도 두 동지들이 두 손을 활짝 펴고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사진 2. 굴뚝위에서 아래의 동지들을 환영하는 이영도, 김순진동지ㅡ2009년 1월 17일










우리가 타고 간 버스에는 간이용 사다리도 두 대 있었다. 굴뚝 위로 “물품공수투쟁“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굴뚝 아래에 몰려간 동지들이 물대포를 쏘며 저지하는 경찰병력을 막고 있는 사이에, 지상과 굴뚝까지 연결시킨 로프에 물품을 달아서 로프를 천천히 끌어올리게 하여 물품이 굴뚝위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었다. 오후 6시경 해도 지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가운데, 물대포를 맞으며 경찰들을 저지하는 것에 성공했고, 물품은 세차례나 무사히 굴뚝 위로 올려졌다. 한편의 영화같은 모습이 어둑어둑해진 하늘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로프를 통하여 올려졌던 물품들은 비가 올 것을 우려하여 텐트, 구급약, 식수 등이라고 한다. 한겨울에 텐트가 추위를 막을 수는 없으며, 며칠분의 물품이라 안심할 수는 없는 처지이긴 하나, 일단 물품을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며, 굴뚝 아래에서 투쟁을 마무리했다.














그림 3. 로프를 타고 굴뚝위로 올라가는 물품ㅡ2009년 1월 17일














그림 4. 로프에 걸려서 굴뚝위로 올라가고 있는 물품ㅡ2009년 1월 17일





이번 투쟁에서 많은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 조돈희동지, 대우조선 신상기동지, 기아 화성 서종락, 김성락, 이재선동지, 동희오토 박태수동지, 현대자동차 이종호동지 등 여러 동지들......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울산동지들이 저녁식사를 사주었다. 그 자리에서 몇몇 울산동지들이 “내가 쏘겠소” “내가 쏘겠소” “2차는 내가 쏩니다”하면서 서로 쏘겠다고 하는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이도 있어보이고, 경험도 있어보이는 여러 연륜있는 노동자동지들이 서울에서 내려간 어린 후배동지들을 다독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울산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비록 12시를 훨씬 넘기고 새벽 2시를 넘겨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오늘 다녀온 모두의 마음엔 굴뚝 위에서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쉴 수 있는 두 동지를 생각하며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그림 5. 2009년 1월 행글라이더를 이용해서 물품을 전달할 때의 모습














그림 6. 2009년 1월 물품을 전달받고 기뻐하는 이영도, 김순진동지















3. 현대미포조선 자본가계급에 대항했던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필자는 이 글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옛날 파일폴더 속에서 마치 낡은 앨범같은 기록들, 즉 2003년에 용인기업이 폐쇄되고,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을 당시에 용인기업에 소속되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분들과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 문제에 대해 토론했던 기록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당시 필자와 여러 활동가분들 (공정옥, 이은숙, 고상백 등)과 함께 비정규직 관련 연구조사를 했던 것으로, 용인기업과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인터뷰의 일부를 여기에 인용한다. 















1) 현대미포조선 자본의 본질










현대미포조선은 1990년 선박건조사업에 진출한 이래, 1998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연간 70척 생산 체제를 구축,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조선소로 성장해가고 있다.3) 거기다가 2008년까지 ‘12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루어낸 대표적인 ‘노사화합 사업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현대미포조선자본이 승승장구 성장할 수 있었던 뒤에는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있었다. 현대자본은 지속적으로 조선업의 호황기에도 자연감소되는 정규직 인원을 비정규직인원으로 대체하여 왔고, 그 결과, 비정규직이 계속 증가하게 되어, 정규직 약 3000명, 비정규직 약 5000-6000명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두배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 측이 정규직 인원 대신 비정규직인원을 증가시켰던 노무관리는 2003년 그 당시에도 이미 용인기업에 소속되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을 상시적으로 계속적으로 활용을 하는 거지...... 왜냐하면 지금 정규직 채용을 안하고 있으니까...... 항상 물량이 증가하게 되면 정규직 인력을 고용하기 보다 그냥 비정규직 인원을 상시적으로 늘려가다가, 물량이 줄어들면 인원을 줄이고 뭐 그런 상태지 (용인기업노동자 C, 2003년 당시의 인터뷰내용).”










1998년 경제위기의 시기에도 조선업종은 호황이어서 현대미포조선은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특히 2003년이래 지극히 활황상태였으며, 근래에는 목포, 장승포 쪽에도 두개의 공장을 신설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 측은 용인기업 노동자들뿐 아니라, 여러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정규직으로 고용승계시켜주겠다”며 노동자들을 하청업체에 소속시켜 놓고서 20년 이상 원청인 현대미포조선과의 실질적인 임노동관계를 형성하였다. 이는 처음 입사했던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입사동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의 입사동기는 “곧 정규직으로 해주겠다” 또는 “정규직과 다름없다”라는 말을 믿고 왔다는 것이다.










“울산에 내려와서 중공업 직훈을 나와서 일을 못하고 있을 때, 형들이 그러면 때려치고 미포로 넘어오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용인기업인 줄 그것도 모르고...... 직영이랑 똑같다고 들어오라고 하더라고...... (용인기업노동자 C, 2003년).”










이렇게 해서 다른 정규직에 있다가 용인기업으로 들어온 노동자들도 있고, 또 다른 노동자들은 약 20년 전에 입사하여 입사 처음부터 2003년 해고될 때까지 계속 용인기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써 근무했었다. 그들의 입사년도는 1986, 1989, 1997년 등으로 대부분 장기근속년수를 가지고 있었다. 즉, 실제적으로는 비정규직이 아닌, 그러나 비정규직으로 불려지는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집어 삼켜 공룡같이 거대해진 현대미포조선의 노동탄압은 실로 엄청나다. 현장탄압 중단을 외쳤던 이홍우 조합원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알리고 싶었던 현대미포조선 사측의 억압과 탄압은 이러했다. “현장조직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회사에 찍혀 일하다 아파도 사내 물리치료실을 이용할 수 없고, 관리자의 감시감독으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용인기업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중식 선전전이 징계 사유가 되며, 남들은 현대그룹 정규직이라 하면 부러워할 지 모르나 잔업특근을 해야지만 생활임금을 벌 수 있는 임금체계에서 정취근무로 통제되고 있다 (울산노동뉴스)”.





이홍우동지를 비롯한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비대해진 현대자본가계급을 향해 온 몸을 던져서 대항했던 것이다. 도대체 용인기업이란 사내하청업체의 정체는 무엇이었는가? 이제 노동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현대미포조선의 “내주”하청업체인 “용인기업”에서 2003년 이래 무슨 일이 있었는가?










2) 현대미포조선의 “내주”하청업체인 용인기업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① 용인기업 사업주, “내주” 하청업체로써의 형식적인 사업주의 역할










용인기업은 현대미포조선의 사내하청업체였다. 노동자들은 용인기업을 “내주업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자들이 형식적으로는 용인기업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현대미포조선의 노무관리와 현장통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노동자들은 2003년 당시에 인터뷰에서 용인기업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현대미포조선자본의 통제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자본과 노동자들 사이에 형식적으로 끼어들어 있는 용인기업하청업체는 형식적인 사업주로서밖에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업체소장이라는 사람은 민법이라든가 상법상의 법률을 피해가기 위한 형식적인 사업주지 실질적인 권한은 전부 원청에 있죠 (용인기업노동자 A).”










“업무수행과정에서 갈등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 그냥 따라야 되니까, 하라는 데로 원청의 계획대로 따라야 되는데 원청의 계획에 안 따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계약해지랑 마찬가지에요. 이거는...... 일방적이지......(용인기업노동자 C)“










하청업체인 용인기업은 일의 성격 면에서 볼 때, 원청의 모든 지시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하청업체인 것이지, 내용적으로는 원청에 속한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하도급 업체의 독립성이 없이 원청에서 일방적 지시에 의해 작업이 이뤄지거든요. 선박수리의 특성상 아주 구체적으로 작업지시를 하고 거기에 따라야 하지, 업체소장이 독립적으로 작업지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죠. 작업장소가 같고, 같은 공정안에서 선후공정을 맡기 때문에 회사에서 당연히 관리를 해야되고, 그렇게 해왔다고 말할 수 있죠 (용인기업노동자 B).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업무지시나 업무감독은 어떤 비정규직은 독자적으로 작업계획을 수립하고 공정에 맞추는 게 아니라 원청의 공정 시스템에 따라가는 즉, 원청에서 공정계획을 세우면 하청근로자들은 거기에 맞춰서 일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공정을 늦추고 땡기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작업지시나 관리는 실제적으로 원청에서 다하지. 노동시간도 어떻게 보면 하청업체에서 자체 내에서 결정하는 거 보다는 원청의 공정에 따라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공정에 맞추려면 직접적으로 뭐 ‘몇 시까지 해라’는 지시는 안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에서 작업지시하고 다 하는 거랑 마찬가지라......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는 거......(용인기업노동자 F)"










② 용인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시간, 노동강도










㉠ 임금










용인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저임금구조는 그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을 해야 직영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따라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임금은 물론 차이가 있죠. 저의 입장에서는 더 많이 일해야 그 수준이 올라가거든요......(용인기업노동자 A)”










“특근도 남보다 더하고 심지어 내가 이틀 철야를 해봤다고... 자지않고...... 현장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사람이 이틀 철야를 한다는 것은...... 보통 그거해서는 안 되거든...... 물로 돈에 욕심도 있겠지만 책임감........ 일을 빨리 완성을 해야겠다는 그런 게 앞섰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남아야겠다. 그러면서 안전을 등한시 하는 게 있지 (용인기업노동자 C)”.










㉡ 노동일의 연장과 노동강도강화










조선업종은 1998년 경제위기 이후에도 호황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호황이 노동자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밤낮없는 노동일의 연장과 노동강도강화였다.










“IMF 이후로 물량이 많이 들어올 때, 인원은 한정이 되있는데 거기에 맞추려 하다보니깐 작업강도는 이루 말로 못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하다가 다 못해서 외주 직원을 불러다 쓰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도 계속 철야로 들어가고, 갑자기 순식간에 많을 때는 밤낮으로 처리해야 하고, 없을 때는 또 거기에 맞춰서 해야 하고, 사람이 패턴을 맞출 수가 없는 거죠..”  (용인기업노동자 A)"










우선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보자. 노동시간도 회사의 공사일정에 따라서 정해진다.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회사 (원청)가 ‘잔업을 해야되겠다’, ‘공정이 바쁘다’ 그러면 그 공정에 맞춰가는 거니깐... 우리 노동자들이 (조절)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되죠. 원청이 일방적으로 그 공사기준에 맞추려고 하다보니깐 거절도 못하고 그냥...... 회사의 의지에 따라 다르죠 (용인기업노동자 A)“










현재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원하는 노동시간이 짧은 것이 아니다. 저임금이다보니, 장시간 노동을 해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머리 속에는 ‘노동시간이 줄어들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아예 없을 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어떤 노동자들은 인터뷰에서 법정노동시간인 8시간에다가 잔업 2시간을 추가한 하루 10시간의 노동시간을 자신의 적정노동시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노동부에서 정하는 기본 8시간 고거를 맞춰가지고, 내가 약간의 2~3시간의 연장하는 시간이 인체적으로 딱 맞는 시간인데...... (용인기업노동자 A)”










그러나, 문제는, 하루 10시간도 모자라,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하루 10시간 보다 더 긴 노동을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현재까지도 하루 10시간이상의 노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은 거의 절대적으로 임금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여진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임금인상투쟁이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의 방침에 의해 우리 비정규직같은 도급업체에서는 그걸 거역을 못 해요. 잔업을 하든 신체조건 이상의 오버페이스를 가게끔 되있거든요. 사람이 한정된 인원 속에서 그걸 과도하게 업무를 처리하려고 하다보니 지시가 내려오고 무언의 압력이 있으니까 안전을 등한시하고 내 신체를 소홀히 하는 건 사실이거든요. (용인기업노동자 B)"










"요즘 같아선 내가 좀 ‘나는 퇴근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다음에 재제조치가 없어야 하는데, 기본 법적 근무시간은 일하고 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력을 넣고 해서, 다음에 그런 조건이 됐을 때는 몸이 피로해서 쉬고 싶어도 못 쉰다는 얘기지. 압력이 들어가고 찍히고, 고과제도에 반영되니까...... (용인기업노동자 B)"










또한 2003년 당시에 용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당시에 원청인 현대미포조선이 하청업체에게 요구했던 노동강도가 너무 심해서, 하청업체가 살아남기 힘들 정도였다는 것을 아래와 같이 토로하고 있다.










“원청하고 하청하고의 작업강도의 차이인데, 내가 볼 때엔, 하청업체에 대해 인원을 줄이고... 이런 걸로 인해서 업체가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인원이 적어진다. (용인기업노동자 C)”










이러한 노동강도강화는 노동자들의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시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었다.










“직영업체보다 노동강도가 세니까 퇴근하고 여유생활이나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죠. 노동강도가 힘드니까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는 거죠 (용인기업노동자 B)."










③ 열악한 노동환경: 석면, 분진, 중량물, 소음, 무리한 작업, 인원감소










㉠ 석면폭로로 인한 중피종암, 폐암의 위험










현대미포조선의 하청업체였던 용인기업 하청업체에서 원청으로부터 용역받은 일은 기관실과 엔젠룸 등의 수리작업이었다. 2003년 당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 당시 기관, 선박 기관실의 보일러 쪽에서 일했죠. 말하자면 굴뚝 속 같아요. 지금은 워터드럼이라고 그 당시에는 마스크도 없이 그냥 햄머를 갖고 들어가서 녹제거 하고 그을음 제거하고 그런 열악함 속에서 했었죠 (용인기업노동자 A)”










저희가 주작업이 열교환기 C 밸브 같은 거...... 저희업체는 미포조선에서 특수성을 갖고 작업했다고 보면 돼요 (용인기업노동자 A).










조선업에서 선박의 엔진실과 기관실의 수리작업은 가장 유해물을 많이 취급하는 작업공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예전에 만들어진 선박의 엔진과 기관에는 화재손상을 최소화하기위해서 거의 대부분 석면포로 싸여져 있었다. 오래된 선박의 경우, 엔진과 기관을 수리하기위해서는 엔진과 기관을 감쌌던 석면포를 다시 뜯어내고 해체하거나 보수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석면에 노출되면 석면섬유 마셔 중피종암이나 폐암에 걸릴 위험이 있으며, 그 양에 비례하여 중피종암과 폐암 발생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저희작업은 다 들어가요. 복합적으로 하니깐, 가스도 많고 소음도 시운전 하면 굉장히 크고, 분진도 그렇고, 보온재 있지 않습니까? 석면...... 암발생 그런 게 있다고 그러네요. 그걸 등한시 했었어요. 처음에 초창기에는....... 유리가루라고 그러더라구요. 그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마스크도 안 쓰고 털어내고...... (용인기업노동자 E)“





  





“저희들이 주로 하는 일이 엔진룸 안에서 하기 때문에 가스를 많이 마신다고 봐야 되죠. 가스를 마시면 첫째 편도선이 오고, 으실으실하고 감기증세가 많이 나타난다고 봐야죠. 그래서 집에 오게 되면 잠을 일찍 청하는 경향이 많다고 봐야죠. 가스를 주로 많이 마시니까 엔진룸 안에서......저 같은 경우는 주로 가스만 조금 마시면 그런 영향이 바로바로 와요. 감기증세가 오고...... (용인기업 노동자 D)










조선업에서는 선박의 배관, 단열을 위한 취외, 제작, 취부작업과 선체의 제작 등에서 석면에 노출될수 있다 (예병진 등 2008). 특히 수리조선업은 선박의 수리 및 해체과정에서 방열, 단열재로 사용했던 석면의 제거, 교체작업을 통해서 석면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80년대 말 이후에는 선박을 건조하거나 수리할 때 석면의 사용이 감소되고 있어 노출량이 적을 수 있으나, 이미 오래전에 석면을 사용하여 건조된 배를 수리하는 경우에는 석면에 상당량 노출된다. 또한 선박의 기관 및 배관의 단열을 위해서 여전히 석면포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경남의 조선수리회사에서 조선수리를 하던 퇴직자들이 작업하였던 작업장에서 보일러 보온재 커버 교체 및 폐기관 수리작업과 발전기의 보온단열재 교체작업과 석면포 제거, 재단, 부착 작업부서에 대한 측정결과 평균 분진 노출농도는 33.792 mg/m3로 허용농도를 초과하였으며, 석면 노출농도 또한 1.423개/㏄로 허용농도를 초과하였다(윤동영 등, 2004). 따라서 이전의 작업환경이 더욱 더 열악하였다고 가정한다면 퇴직 근로자들은 아주 장기간 상당한 양의 석면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수리조선업의 경우 오래 전에 석면을 사용하여 건조된 배를 수리할 때 석면에 상당량 노출될 수 있고, 노출기간 역시 계속 길어질 수 있어 석면에 의한 건강장애는 더 증가할 수 있고 장기간에 걸쳐 발생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연구는 경남에 소재하는 수리조선업 내 석면을 취급하는 공정에 30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석면에 의한 직업성 폐암 증례와 (윤동영, 2004), 동일 수리조선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부 노동자의 단순흉부촬영과 고해상전산화단층촬영 소견에서 석면에 장기간 노출된 노동자에게서 석면 관련 흉막질환의 유병률이 높았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김기남, 2006).





김기남 등 (2006)은 수리조선소에 근무한 후 퇴직한 노동자 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순흉부촬영에서 18명 중 12명(66.7%)에서 흉막병변이 발생했고, 고해상CT에서는 16명에서 흉막비후 (88.9%)가 관찰되었으며, 3명 (17.7%)에서 석면폐증의 초기증상이 보였다. 결론적으로 김기남 등 (2006)은 장기간 석면에 노출된 수리조선소 노동자들의 석면관련 흉막병변 유병률이 매우 높음을 보고하고 있다.





수리조선업에서 석면 노출과 관련된 국내의 또 하나의 연구에서는 수리조선 2개 사업장, 석면방직 2개 사업장, 브레이크 라이닝 제조 1개 사업장을 합하여 총 5개 사업장 139명을 대상으로 10년 이상 석면분진에 노출력이 있는 근로자의 흉부방사선검사에서 석면폐의증 5명(7%)과 석면폐 4명(3%)이 발견되었다. 특히 석면폐의증 또는 석면폐로 진단된 근로자 9명 중 6명이 수리조선소에 근무한 55명 중 발생한 것으로 다른 석면 취급 사업장의 근로자 84명 중 3명이 발생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수리조선소의 석면 노출에 대한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백도명 등 1995).





예병진 등 (2008)은 한 수리조선소에 현재 근무하고 있거나 퇴직한 근로자 중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단순흉부촬영을 받았던 근로자 1,701명(79.4%)을 대상으로 석면 노출 여부와 노출기간에 따른 흉막 비후의 유병률을 분석하였다. 흉막 비후 유병률은 석면 노출군에서 5.2%, 비노출군에서 3.1%를 보였으며(p<0.05), 특히 50대 이상에서 석면 노출군 17.6%, 비노출군 8.7%로 큰 차이를 보였다(p<0.05). 특히 예병진 등 (2008)의 연구에서는 20년 이상 석면에 노출된 근로자의 흉막 비후 위험도가 매우 높아진다는 보고를 하였다 (예병진 등, 2008).





외국의 연구를 보면, 외국의 경우 수리조선소를 대상으로 한 코호트 연구에서 석면을 직접 다루었던 직업군의 폐암으로 인한 표준화 사망비가 2.75로 높았으며 20년 이상의 잠복기를 가진 군에서 더 높게 나타난 결과가 있고 (Kurumatani 등 1999), 수리조선소에 대한 다른 코호트 연구에서는 직무에 따라 20개의 군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석면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배관공, 영선공, 단열재 수리 근로자의 폐암 또는 흉막암으로 인한 표준화사망비가 높게 나타났다 (Puntoni 등 2001).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볼 때 수리조선소에서 근무한 근로자는 향후 석면에 의한 건강장애가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면에 폭로되었을 가능성과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의 증가위험은 아마도 용인기업 하청 노동자들이 “고용투쟁”을 하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문제였을 것이다. 현대미포자본은 노동자의 생명을 급격하게 단축시키는 이러한 유해한 노동환경에서마저 일하는 것을 불사하겠다는 노동자들을 6년 동안이나 내쳤던 것이다. 앞으로 현대미포조선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항해서도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자의 생명은 노동운동의 생명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 중량물로 인한 근골격계질환 위험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작업을 위해 들고 날라야 하는 공구 등 중량물에 의한 육체적 하중으로근골격계질환 발생위험도 증가하고 있었다.










“공구나 도구들이 무게가 많이 나갑니다. 심지어 옛날에는 3톤짜리 챔그룸 현장에서 몇 십층 높은 곳에 밀고 올라가고 밀고 내려오고도 했어요. 그거는 지금도 안 바뀌고 있습니다. 또 절단기나 각종 호수를 들고 아침마다 계단으로 올라가요. 저희가 요청을 하죠. 크레인으로 요런걸 옮기게 해달라고...... 그거 개선이 안 돼요......회사에서는 대기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려고 하기 때문에...... 돈과 시간이 연관이 되는 건 아예 개선활동에서도 삭제가 되니깐요. 그래서 개선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용인기업 노동자 A)”




















㉡ 소음성 난청 위험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또한 소음성 난청의 위험에 폭로되어 있다.










“저 같은 경우는 한 16년 근무하다가 이제 해고가 됐는데, 초창기부터 사측은 산업안전이라든가 직업병에 대해서 신경을 안 썼죠. 보호구나 기본적인 헬맷은 사용하지만 사실 마스크나 귀마개 이런 거는 아예 지급도 안 됐었고, 사실 그로 인해서 청력이 상당히 저하가 되어있고 이명상태까지 와있어요 (용인기업 노동자 A).”










"저희반 23명이 난청 유소견자로 판정이 나 재검을 해마다 받거든요. 한반에 난청이 20~30명, 20명 이상이 난청이 나왔다는 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에요 (용인기업 노동자 E)."










㉣ 인원부족으로 인한 안전사고










현대 미포조선 하청 노동자들은 안전사고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필요한 인원보다 적은 인원으로 노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조건의 문제가 바로 노동자의 생명과 연결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건은 마치 생명의 선을 놓고 자본가계급과 줄다리기를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유지비를 갉아먹는 것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명의 선까지도 침범하고 있다.










“배의 높이가 50 몇 미터 되지 않습니까? 거기 가서 일하려면 실질적으로 인원이 4~5명이 붙어야 되요. 맨 위에 안전조치, 위에서 공구를 내려줄 사람, 뭐 이렇게 작업줄을 내려줄 사람, 중간에 연결해주는 사람 등등. 그래야 일이 좀 약간의 여유를 갖고, 그 열악한 여름에 땀을 흘리면 교대를 해서 할 수 있는데...... 그 좁은 장소에 들어가면서 딱 둘이 들어가서 일하려니깐 참 힘든 거죠. 혹시 일하다 뭐 가지러 가면 올라가서 또 가져오고 또 갖고 내려가고...... 안전에 생각할 여유가 없는 거죠 (용인기업 노동자 E).“










"정규직의 경우 아주 어려운 작업일 때는 4~5명 정도가 같이 해요. 그런데 비정규직에서 도급자 (하청업주)가 중간에 있을 때는 그 도급자가 인제 자기 이득을 남겨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인원을 줄입니다. 직영과의 인원에 비해서...... 그러니깐 아무래도 열악한 곳에 작업을 하면서도 그 인원과 같이 해야 할 인원인데 심지어 4~5명이 작업을 해야하는 데, 단 둘이서만 작업을 하니까...... 비정규직은 직영 두 명이 하는 몫을 해야 하거든요. 안전에 모든 신경을 써야하고......(용인기업 노동자 E)“ 










“그런 쪽에 하소연을 하고 싶어도 인간적으로 어려운 작업일 때는 인원을 더 요구하려고 해도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비정규직의 아픔으로 인내하는 수밖에 없죠 (용인기업 노동자 A).”










㉤ 무리한 작업으로 인한 안전사고, 근골격계질환 증대










용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필요한 인력보다 적은 인원으로 무리하게 속도를 내서 일을 하게 됨으로써, 근골격계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요통환자가 상당히 많았는데 무리한 동작이라든가 중량물 운반 기계로 운반을 해야하는 데도 업무량에도 쫒기다 보니깐 무리하게 하는 경우가 많거든 (용인기업 노동자 C). ”










④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산재의 원인과 산재신청이 불가능하고 산재승인이 안 되는 문제










ㅡ산재의 원인










신성환 등 (2008)은 부산지역 조선업 협력업체 64개 사업장의 노동자 1674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부산지역 조선업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관련요인에 관한 조사’에서 노동시간이 길고, 수면시간이 부족하고 높은 피로도에 있는 상태에서, 산재가 더 많이 발생함을 보고하였다. 특히, 이 연구에서 노동시간과 산재와의 연관성을 보면, 주당 48시간 이하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 비해 주당 56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자들에서 재해발생이 1.5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 노동시간이 긴 군에서 산업재해 발생이 더 많음을 보고하였다. 실제로 2006년 우리나라 제조업의 주당 평균 작업시간은 42.5시간으로 조사되었고, 이 연구에서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작업시간은 52시간으로 조사되어 조선업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평균 9.5시간 이상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는 과도한 작업시간이 산업재해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기존의 연구와도 일치했다 (Vegso 등 2007).










한편, 조선업 하청업체에서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취부작업에서 가장 많았는데, “취부 작업은 용접 공정 이전에 설계도면대로 철판을 배열하는 과정으로, 중량물 이동이 많고 크레인 작업 도중의 충돌 등에 쉽게 노출되어 산업 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했다 (신성환 등, 2008).





지금까지 연구결과에서 보듯이 조선업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의 주요 원인은 장시간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로 인한 피로도, 중량물 등에 의한 것으로 보여진다.










ㅡ산재신청이 불가능하고 산재승인이 안 되는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기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적용되는 작업 중에 발생하는 사고에 의한 산재신청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라울 정도이다.










“저 같은 경우에는 한 십몇 년 전에 왼쪽 손가락이 구부러졌는데, 그 당시에는 회사에는 말도 못하고, 회사 앞에 있는 의원에 가서 치료만 받고 그 다음날 바로 출근해서 붕대 감고 사무실에 빗자루 들고 있다가 이거 좀 나으면 현장에 나가고 했지. 지금 세월이 흘러보니까 손가락이 구부러져 가지고 완전 굳어버렸지...... 펴지지가 않지...... 그 당시에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그래야 하는데 의원에서 그냥 꿰매고, 그러니깐 뼈에 이상이 있었는지 몰랐지... 인제 뭐 이래도 회사에 말 한마디 못 합니다. 답답할 노릇이죠 (용인기업 노동자 F).”










"산재를 내려고 하면 그냥 그만두라고 그런 말까지 하니깐 감히 누가 아파도 참고 있는 거지. 1톤짜리가 떨어졌어. 손으로 흔들다가 넷째 마디가 빠졌다고.. 근데 산재요양신청서를 총무과에 냈더니 ‘아니 왜 이걸 밖에 내냐?’ 하고는 안전과에 연락해서 ‘이 사람까지 해주면 큰일난다’고 해서...... 그래서 나는 3년이 지났는데 계속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지 (용인기업 노동자 C)."










“내가 회사에서 다쳐서 요추추간판탈출증으로 치료를 받는 도중인데, 물론 산재는 더군다나 인정을 안 해줬고.. 치료받는 도중에도 ‘빨리 회사에 들어와서 일해라’라고 종용했죠. 산재도 인정 안 해주고 치료할 시간도 안 주고...... 그 부분에 내가 상당히 마찰을 많이 빚은 것 같아요. 6개월 정도 회사 측과 마찰이 있었는데 총 치료를 1년 정도 받았는데 6개월 정도 회사와 계속 싸웠던 것 같아요. 나는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 회사 측은 ‘빨리 복직해라 아니면 사표를 내든지’...... 이런 억압이 상당히 많죠 (용인기업 노동자 D).”










산재를 처리하고 나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요통환자 생긴다고 정식적으로 산재처리를 해서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별적으로 치료하고 또 불합리한 게 있고 그렇게 하고나면 분명히 또 불이익을 받아요. 회사복직하면 작업부주의로 징계를 내린다고 회사에서...... 이런저런 압력 때문에 산재처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용인기업 노동자 G).”










⑤ 고통의 전가: 원청노동자의 고통을 하청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현대미포자본가계급










용인기업 하청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또 하나의 굴욕은 자본가계급이 원청노동자들의 고통을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부분이었다. 현대미포조선은 원청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분에 대한 자본의 손실4)을 만회하기 위해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임금을 깎거나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하청업체 사업주는 중간착취자로써의 역할만을 할 뿐이므로, 하청업체 사업주들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많이 갈취해갈수록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세어질 수 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임금보전이 안 되어 노동강도강화로써 만회하려고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미포조선 자본가계급에 의해서 노동자들 끼리의 갈등이 깊어지고, 서로 사분오열되는 양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작업량이 굳이 많아졌다 이러기 보다는 도급하고 원청의 이해관계인데 어차피 직영근로자들의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힘으로 임금 상승이 자꾸 된단 말입니다. 그러면 직영근로자들 임금 상승분을 도급업체로 넘겨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서 도급계약단가를 낮춘다든가 작업의 인원을 자꾸 줄인다든가, 일방적으로 이렇게 해가지고 계속 누적되어 오는 거죠. ‘언제부터 노동강도가 세졌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이 생기고 직영근로자의 임금이 상승하는 만큼 비정규직의 노동강도는 세지는 거지 (용인기업 노동자 C)”










“도급이라는 것은 중간업자가 중간에서 그 이득금을 챙기기 때문에, 중간에서 업자가 임금을 남겨먹으니까, 비정규직들한테는 노동강도강화 밖에 더 나올게 없어. 중간에 착취하는 사람이 없이 임금이 그대로 전해지고 노동시간도 그대로 하면 여유가 있을 텐데...... 이게 대한민국이야, 이런 중간업자가 앉아서 그대로 먹으니까......(용인기업 노동자 C).






























3) 용인기업 폐업의 근본적인 이유










용인기업에 들어온 노동자들은 그 당시 현대미포조선과 별 다른 게 없으니 들어오라는 주변 형님들의 권유에 의해 들어왔다고 했었다. 2003년 1월 31일 원청업체인 미포조선이 선박수리에서 건조로 업종을 변경하면서 일감이 없어진 용인기업을 폐업하면서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었다. 2003년 당시 해고당했던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엔진 과정의 지식을 얻어서 노하우를 짜서 20년 이상을 이끌어 오다보니까 회사의 필요성에 의해 있다가, 월남쪽으로 회사의 수리사업이 이전해 가고, 여기 수리사업을 종결짓는 과정에 우리를 해체하려고 하는 그런 계획을 회사에서 세운 것 같아......(용인기업 노동자 H)”










“저희가 20년 이상을 근무하지 않았습니까? 묵묵히 일해왔던 건 사실 아닙니까? 원청직원보다 더 노력을 했었고 원청직원이 안 하는걸 우리가 찾아서 그렇게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속관계가 이렇게 오래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업체를 해체하려고 겨울 동안 30개월 동안 일을 한번도 안 시키고 스스로 굴복하게끔 압력도 넣었었고......(용인기업 노동자 D)”










“원청은 비정규직을 언제든지 고용하고 언제든지 짜를 수 있거든요.. 편하게...... 열악한 조건은 비정규직이 감내하는 거죠. 그 (노동)조건에 맞추다 보니깐 말도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해온 거죠. 우리같은 경우는 그나마 내주로서 해가지고 이렇게 회사의 필요성 때문에 내주로서 지금까지 해왔죠. 우리가 필요성이 없었으면 벌써 우리가 짤려도 몇 년 후에 짤렸지. 그나마 20년이 넘도록 이렇게 한 거는 그만큼 원청에서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렇게 일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그 와중에 그나마 우리는 고용승계가 되리라는 희망으로, 업체장이 스스로 물러날 때는 고용승계가 되리라는 한 가지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었는데 결과적으로 회사에서는 우리를 도태시키려고 계획을 세웠고 ‘우리가 따르지 않는다’ 그래가지고 물량을 줄이고 그래도 보고 주던 임금도 안 주고 가택시켰어요 (용인기업 노동자 B).“





4)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골은 자본가계급이 만든 것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골은 자본가계급이 만든 것이다. 2003년 당시 아래의 인터뷰에서 한 용인기업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함께 노동조합원이 되는 것을 무척 어려운 과제로 여기고 있었다.










“지금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을 조합원화 시킨다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문젠데, 왜냐하면 노동조합에서도 상당히 꺼려하는 거라고. 지금 비정규직이 하는 작업이 직영 근로자들이 하기 싫은 작업, 지저분한 작업, 기피하는 작업을 비정규직이 맡아서 한다고. 그런데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아마 근로조건개선이라든가 이런부분을 많이 요구를 할 거라고. 그렇게 되면 자기들도 손해를 상당히 많이 보지. 왜냐하면 자기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비정규직으로 충당을 해놓았는데, 조합원을 시키면 자기들이 언젠가 또 그 일을 해야하고, 예를 들면 우리들도 하기 힘든 일을 많이 했으니깐 ‘이제 당신들이 해라, 순번제로 하자’ 든가 이런 식으로 요구를 하면 자기들이 불리한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아......(용인기업 노동자 C)“










이제 점점 정규직 인원이 전체 현대미포조선의 1/3도 안 되게 그 비중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과 분열은 바로 자본가계급이 원하는 바인 것이다. 용인기업 비정규직의 이야기는 바로 나의 것일 수 밖에 없다.















4. 결론을 대신하여










2003년 1월 31일 폐업조치당하고 해고되었던 용인기업 노동자들이 2009년 2월 9일 현대미포조선 정규직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을 받는데 6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로 인정받고 살기엔 그동안 우리가 흘린, 그리고 또 앞으로 흘릴 피눈물이 너무 끔직스럽다. 우리의 투쟁은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공룡같은 현대미포조선자본은 노동자들의 노동의 창조물이지만, 그것이 자본이기 때문에 자본가의 소유물로 노동자를 지배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노동의 성과가 거대해질수록 자신은 그만큼 초라해진다. 노동의 창조물을 노동자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물이 창조자(노동자)를 지배한다. 주객은 전도되고, 전도된 세상에 시야가 갇힌 노동자들은 급기야 착취를 당하기 위해서까지 투쟁하고 있다. 왜 그럴까? 자본의 크기가 그 생산력이 그 힘이 세계를 질식시킬 만큼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동해방의 조건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맑스는 말한다.  










“자본은 점점 더 사회적인 힘으로서 나타나는데, 이 사회적인 힘은 어느 특정의 개인의 노동이 창조할 수 있는 것과는 이미 어떠한 관련도 없다. 그러나 자본은 소외된 고립적인 사회적 힘으로 나타나며, 이 사회적 힘은 물(物)로서 그리고 이 물(物)을 통해 자본가가 행사하는 힘으로서 사회에 대립한다. 자본이 일반적 사회적 힘으로 발달되어 가는 것과, 이러한 사회적 생산조건들을 지배하는 개별 자본가들의 사적인 힘이 증대하여 가는 것 사이의 모순은 점점 더 첨예화되어 가는데, 그 반면에 이러한 첨예화는 이 모순의 해소를 또한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첨예화는 동시에 생산조건들을 일반적, 공동적, 사회적 조건들로 전환시키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5).”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이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단결하여 자본에 맞서 투쟁하고, 나아가 “생산조건들을 일반적, 공동적, 사회적 조건들로 전환시키는” 투쟁으로 나설 그날을 기대해본다.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노사과연>










<참고문헌>










1. 칼맑스. ��자본론��, 비봉출판사. 김수행역, 1990년도 인쇄판.










2. 예병진, 김정일, 이현재, 김기남, 이기남, 정갑열, 김준연, 윤성호. 수리조선업 근로자들의 단순흉부촬영에서 흉막 비후 유병률 - 석면 노출과 관련하여. 대한산업의학회지 2008;20(1):9-14










3. 김기남, 김정일, 이기남, 정갑열, 김준연. 석면에 장기간 노출된 퇴직한 수리조선업 근로자의 폐영상-단순흉부촬영 및 고해상전산화단층촬영 소견과 그 유병률-대한산업의학회지 2006;18(2):87-93










4. 백도명, 백남원, 최정근, 손미아, 임정기. 우리나라 일부 석면사업장의 석면폐 유병률. 대한산업의 학회지 1995;7(1):46-57.










5. 윤동영, 강진욱, 이현재, 김정일, 손지언, 정갑열, 김준연, 노미숙. 수리조선업 근로자의 석면에 의한 직업성 폐암 발생 증례. 대한산업의학회지 2004;16(4):499-507










6. 신성환, 김대환, 안진홍, 김휘동, 김정호, 강현만, 이종태. 부산지역 조선업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산업재해 관련요인. 대한산업의학회지 2008;20(1):15-24










7. Kurumatani N, Natori Y, Mizutani R, Kumagai S, Haruta M, Miura H, Yonemasu K. A historical cohort mortality study of workers exposed to asbestos in a refitting shipyard.





Ind Health 1999;37(1):9-17.










8. Puntoni R, Merlo F, Borsa L, Reggiardo G, Garrone E, Ceppi M. A historical cohort mortality study among shipyard workers in Genoa, Italy. Am J Ind Med 2001; 40(4):363-370.










9. Vegso S, Cantley L, Slade M, Taiwo O, Sircar K, Rabinowitz P, Fiellin M, Russi MB, Cullen MR. Extended work hours and risk of acute occupational injury: A casecrossover study of workers in manufacturing. Am J Ind Med 2007;50(8):597-603.






1) 대법원은 "용인기업은 형식적으로는 피고 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현대미포조선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현대미포조선이 직접 용인기업 30명을 채용한 것과 같은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결하며, 부산고법의 판결을 파기, 환송한 바 있다.






2) 이 글은 지난 2009년 1월 17일 현대 미포조선자본에 맞서 투신했던 용인기업 이홍우동지, 그의 뒤를 이어 현대중공업 굴뚝에 올라갔던 이영도 민주노총울산 전 수석부본부장과 김순진 현대미포조선 현장조직 현장의소리 의장의 투쟁을 지지하기위해 울산에서 열리는 지역투쟁에 참여했었던 소감을 적은 참가기이다.






3) “30여년 동안 쌓은 우수한 품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 후반 선박 건조 사업에 진출하여, 1997년 신조선 1호를 인도한 이래 중형선박 부문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계 중형선 시장을 선도하는 조선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특히, 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과 중형 컨테이너 운반선은 뛰어난 품질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정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었다. 이와 함께 자동차운반선, LP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도 진출해 수주잔량 기준 세계 4위의 조선소로 성장한 현대미포조선은 연간 70척 생산 체제를 구축,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조선소로 발전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 홈페이지 http://www.hmd.co.kr).






4) 자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착취해야할 잉여가치양이 줄어드는 것도 손실로 볼 뿐 아니라, 원료, 생산수단 등의 불변자본과 인건비와 같은 가변자본 비용이 추가되는 것도 손실로 본다.






5) ��자본론�� 제 3편 15장 3절 314페이지 11-22줄, 비봉출판사, 김수행역, 1990년판.
















노사과연 사진은 첨부파일을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2009-02-25 0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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