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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현장 >
제목 세계장애인의 날 투쟁 -장애인 노동권을 향한 일보 전진
글쓴이 최상철|운영위원 E-mail send mail 번호 100
날짜 2008-12-18 조회수 3389 추천수 136
파일  1229597403_장애인.hwp

  



































장애인도 사람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한스 아이슬러가 공동작업으로 완성한 반파시즘 투쟁가 “통일전선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또, 인간은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그에겐 먹을 것을 주어야한다 진정으로. 부르주아는 스스로를 ‘인간’이라는 보편자의 지위에 올려놓고 무산계급을 인간에서 배제해 버린다. 인간에서 배제된 노동자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투쟁을 선언한다.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의 해결조차 삶을 건 투쟁을 전개하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없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구호는 파시즘이 발호하던 시기나 한국에서는 전태일 열사로 대변되는 민주노조 운동의 초창기에나 어울렸을 법하지만 아직도 절절한 구호로 살아있다.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 동지는 ‘하청노동자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셨고, 이주 노동자들은 아직도 ‘이주 노동자도 사람이다’고 절규하고 있고 폭력적인 단속에 죽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장애인도 배제된다. 비장애인만 인간일 뿐 장애인은 인간의 취급조차 받지 못하며 더욱더 비참하다. 심지어 인터넷 댓글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은 멸시의 의미를 담고 욕설과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수십년 세월을 골방에 갖혀, 시설에 쳐박혀’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왔고1), ‘노동으로 일어설 기회마저 빼앗긴’2) 채 살아왔다. 유엔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와 인권보장을 실현하기위한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인간에서 배제된 장애인 동지들이 ‘장애인도 사람이다’는 구호로 투쟁을 전개하였다.















세계 장애인의 날 1박 2일 투쟁










12월 2일 세종문화회관 앞에 부산에서 대구에서 여수에서 강원에서, 전국에서 모인 장애인들이 모였다. 집회는 천막야학 투쟁을 마치고 혜화동에 사무실을 얻어 입주한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선생님 박경석 동지의 사회로 또 수화 동시통역으로 진행되었다. 수화 혹은 수어(手語)는 하나의 언어로조차 인정받고 있지 못하지만 청각장애인과 말을 못하는 장애인에게는 구화(口話)가 대신할 수 없는 의사소통 수단이며 언어이다. 집회 중간 몸짓으로 내게 시간을 묻는 장애인에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며 소통을 했는데 내가 수화를 알았다면 더 깊은 의사소통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치열한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인 활동보조인 예산 등 장애인 관련 예산이, 이명박 정권들어 삭감될 위기에 있었고,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은 개악될 위기에 놓여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장애인 수용시설을 운영하면서 공금을 횡령하고 장애인 부부에게는 낙태를 종용하던 파렴치한 김양원 같은 인물이 국가인권위원으로 앉았다. 여느 때도 그랬지만 집회 분위기는 더욱 비장하였다. 참석자들은 각각 한 면에는 ‘근조 세계장애인의 날’, 다른 면에는 ‘장애인 노동권 보장하라’, ‘반인권위원 국가인권위원 김양원은 퇴진하라’, ‘장애인연급법 제정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몸피켓을 입었다. 대오 맨 앞에는 휠체어에 탄 8인의 중증장애인 동지들이 구호 ‘장애인도 인간이다’는 8자구호를 한 글자씩 검은 판넬에 새겨 몸에 걸었다. 그 형상은 마치 전근대 사회에서 죄인들에게 채우던 칼을 연상케 하였다. 8인의 동지들은 한 명씩 자신들이 경험했던 차별에 대해서 발언하였다. 그 중 두 개만 소개하면, 한 여성동지는 자신도 자기의 이름을 쓰는 법을 알고 싶고 또 숫자를 계산하는 법도 알고 싶었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발언하였다. 또 한 남성 동지는 자신도 부모님에게 명절에 양말이라도 사드리고 싶었지만 노동에서 배제되었기에 불가능하다며 노동권을 주장하였다. 이어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명애 동지의 발언이 있었다. 50대 중반에 백발이 성성한 이 장애여성 동지는 경찰이 차벽으로 집회를 차단해 버린 것에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대구 사투리로 발언을 이어가면서 자신은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며 ‘무식’이 폭발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겠다며 일갈하였다. 자신은 머리가 하얗게 돼서 이제야 이렇게 나섰지만 앞으로의 세대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외쳤다. 휠체어를 탄 8인의 중증장애인 동지의 앞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언사를 담은 플래카드를 휠체어가 찢으면서 지나가는 퍼포먼스를 했다. 플래카드에는 ‘장애인이 배워서 뭐해’, ‘사랑도 하지 마라’는 각종 차별의 언어가 담겨있었고 휠체어가 플래카드를 반으로 가르고 지나가면서 지금까지 받은 차별을 떨쳐 일어서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세종문화회관 앞 집회를 마치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여의도까지 행진하려 하였다. 여의도에서는 장애인활동보조예산, 장애인노동권, 장애인연금쟁취공동행동의 천막 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전동ㆍ수동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집고 또 다른 동지들은 걸어서 여의도 국회까지 향하려 하였다. 행진은 ‘경찰차’와 직업경찰 중대 및 의무경찰 중대의 ‘친절한’ 호위와 함께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오는 차도 행진을 허가하지 않은 경찰이 임의로 정한 인도라는 선에 갖혀있지 않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날 무렵 전동휠체어를 중심으로한 일부 대오가 차도로 기습적으로 진출하였고 그때부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차도로 때로는 인도로 행진을 이어갔다. 장애인 동지들에게는 차도로 진출한다는 것은 경찰 공권력을 넘어선다는 표상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인도는 도로 턱, 경사, 요철, 어느 하나 휠체어가 이동하기에 적합한 것이 없다. 좁은 차도로 진출이 성공해도 1차선을 넘기 위해 경찰에 몸을 던지고 차벽과 병력에 막혀 다시 인도로 내몰려도 서대문-충정로를 거쳐 아현으로 행진은 지속되었다. 행진은 오후 3시경 시작했지만 아현동 가구거리를 지날 때는 벌써 5시였다. 이때부터 경찰의 행진 방해는 노골적이었는데 일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경찰에 의해 오도 가도 못한 상황이 되었는데 일부 차량은 경적을 울리며 짜증을 내기도 하였고 일부는 욕하는 시민도 있었다. 클론3)의 “소외된 외침”의 가사가 딱 맞는 상황이었다. “평생을 이렇게들 살아왔는데/ 30분 늦으니까 욕을 하는 사람들/서럽게 차별받고 살아가는데/ 돈 몇 푼 던져주며 혀를 차는 사람들”. 일몰시간이 다가오고 어김없이 경찰의 경고방송이 이어졌다. 아현산업정보학교를 우측에 끼고 집회대오 왼쪽에는 경찰차벽에 앞뒤로는 경찰병력에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경찰의 물리력에 가로막혀 여의도에서 예정되었던 문화제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경찰은 지하철로 이동하겠다는 휠체어에 탄 장애인들을 5분에 한 명 씩 내보내주는 만행을 저질렀다. 1박 2일 투쟁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어갔지만 투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12월 3일에는 곳곳에서 투쟁이 이어졌다. 오전 11시 여의도 대하 빌딩 앞에서는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최저임금개악반대 집회가 있었고, 한나라 당사 앞에서는 장애인 대오가 중심이 되어 2009복지예산삭감저지를위한공동행동 주최의 결의대회가 열렸다. 오후 2시 서울역부근 숙대입구역 방향 도로 육교에 ‘열사의 뜻 이어받아 장애이동권 쟁취하자’는 플래카드와 쇠사슬에 묶인 수동 휠체어를 내걸고 30분간 8차선 도로를 기습점거하였다. 육교는 차량과 비장애인 중심의 시설로, 단 몇 센티미터의 보도 턱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도움을 받지않고 스스로 이동할 수 없다. 장애인부모연대 출범식 이후에 행진은 종로3가-청계천-을지로에서 국가인권위원회로 향했고 그 과정에서 8인이 경찰버스에 구금되었으며 장애아동을 포함한 일부 참가자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5시 30분에는 국가인권위 옥상에 ‘반인권 인권위원 김양원은 즉각 사퇴하라는’ 검은 플래카드가 걸렸다. 장애인부모연대 출범식 행진대오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도착하자 국가 인권위원회 옥상 점거 동지들과 함께 문화제를 열어 1박2일 투쟁을 마무리하였다. 















장애인 노동권을 향하여










금번 세계장애인의 날 투쟁은 장애인 노동권의 요구가 전면에 내걸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장애인 노동권의 요구는 이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미 1986년 장애인문제연구회 울림터는 장애인 문제의 핵심은 노동으로부터의 차별이며,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착취 질서를 폐지하고 구조를 변혁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였다.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장애인 고용촉진법 제정의 요구가 모아지고, 그 해 대선에서는 부르주아 후보자들도 이를 대선의 주요한 정책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8-1991년 투쟁의 성과로 고용촉진법이 제정되나 당시의 고용촉진법은 장애인에 대한 복지, 재활적 관점에서 한계적인 것이었다. 그마저도 2%의 의무고용율을 1%로 하향하려는 저들의 개악 움직임에 맞서야 했고 2% 의무고용은 지켜냈으나 이를 따르지 않는 기업은 부담금만 내면 되는 선에서 후퇴된 개악안이 들어섰다. 1998-2000년에는 장애인 실업자 운동, 장애인노동조합 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며 장애인 노동권의 문제는 확장되었다. 이후 장애인노동조합 오픈에스이지부의 투쟁이 전개되면서 투쟁은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다.4) 오픈에스이(주)는 2001년 초에 설립된 회사로 사장을 위시한 경영층도 대부분 장애인이다.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텔레마케터 사업을 병행하는 오픈에스이(주)의 사장 최민은 그 유명한 1980년대 CA의 이론가 최민이다. 변절한 운동가가 얼마나 반동적으로 되는가는 최민의 경우에서 똑똑히 볼 수 있다. 장애인 현장노동자는 전원비정규직이고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며 엄격한 노무관리를 견디다 못해 퇴사한다. 당시 장애인 노동자들은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동조합(현재는 사무연대노조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산하에서 2002년 2월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당시 근골격계 투쟁을 전개하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장애인 노동권 쟁취 투쟁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투쟁은 패배하였고 현재까지 장애인 노동자 주체의 직접적인 조직화를 통한 투쟁은 소강상태이다. 그럼에도 장애인 콜택시 노동자들의 투쟁5) 등 장애인 운동과 노동운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은 이어지고 있다.





2008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악시도가 드러나 다시금 장애인 노동권을 향한 주체들의 결집이 시작되었다. 개악안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의무고용과 관련한 쟁점이다. 법률 제27조 1항과 2항을 보자.










제 27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고용 의무)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장애인을 소속 공무원 정원의 100분의 3 이상 고용하여야 한다. <개정 2007.12.27>





② 각 시험 실시 기관(이하 "각급기관"이라 한다)의 장은 장애인이 신규채용 인원의 100분의 3(장애인 공무원의 수가 해당 정원의 100분의 3 미만이면 100분의 6) 이상 채용되도록 시험을 실시하여야 한다. 다만, 「교육공무원법」 제11조제1항에 따른 교사의 신규채용을 할 때에 장애인 응시 인원 또는 장애인 합격자의 수가 장애인 채용 예정 인원에 미치지 못하면 그 부족한 인원을 장애인이 아닌 자로 채용할 수 있다. <개정 2007.12.27>










여기서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는 장애인고용인원 산정시 2배 수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중증장애인 신규고용을 창출한다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것인데 이러한 개악안은 오히려 그간의 장애인 의무고용율 조차 실질적으로 낮추게 될 개악안인 것은 자명하다. 장애인 노동권을 지켜내기위한 주체들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의무고용율을 6%로 그리고 민간기업의 경우 3%로 인상하라고 요구안을 모아냈고 수세적으로 몰려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공세로 전환하기 위해 결지하고 있다.















차별과 착취없는 세계를 위해 함께 전진해야 한다.










12월 2일 집회에서 나온 유인물 중에는 “우리는 헌법의 개정을 요구한다”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어서 잠시 소개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5항.










신체장애자 및 질병ㆍ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베네주엘라 볼리바르 헌법 81조










장애나 건강 상의 특별한 요구를 가진 모든 국민은 자신의 능력을 완전하고 자주적으로 행사하며, 가족과 공동체 속에 어울려 살 권리가 있다. 국가는 가족ㆍ사회와 연계하여 그들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기회의 평등, 만족스러운 노동조건을 보장하며,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그들의 상황에 적합한 교육ㆍ훈련과 고용창출을 촉진한다. 청각장애인들은 베네주엘라 수화를 사용하여 의사를 표현하고 소통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비장애인들의 공식어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이미 연구소 기관지 ��정세와 노동�� 2006년 7․8월호의 채만수 소장의 글 “베네수엘라의 볼라바르 혁명 ―그 배경과 경과, 성격, 그리고 전망”6)을 통해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혁명은 그것이 21세기 사회주의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한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본 유인물이 재미있다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장애인의 해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국가의 전면적 개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면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차별과 착취없는 장애해방ㆍ노동해방의 길에 장애인운동과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결합하고 연대할 수 있길 바라며 연대투쟁 속에서 서로 배워가면서 해방을 그날을 앞당길 수 있길 바란다. <노사과연>











1)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 김종환, 김호철 작사/ 김호철 작곡






2) “장애해방가”, 김호철 작사․작곡






3)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클론은 상업적인 댄스음악을 하는 팀이지만, 이 곡은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자문을 받아 완성한 곡이다. 이 곡의 가사에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있으며 뮤직비디오에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이 효과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클론의 강원래의 음악 케이블 방송 Kmtv 인터뷰를 짧게 소개한다. “우리나라 많은 가수들이 장애인을 다룬 장애인을 위한 노래들을 만들었는데, 그 노래들은 ... 너무 함께 어울리자는 그런 식으로 또 사랑으로 우리는 해낼 수 있어 하는 그런 식이었는데, 뭘 고쳐달라는 내용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대로 우리는 살 수 없다. 뭔가 바꿔달라 그런 메시지가 담긴 노래입니다.






4) ��산별노조시대 장애인 노동자 조직화 방안 및 장애인 노동권 보장 방안 토론회��, 자료집 중, 김병태, “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위한 산별조직체계 구성과 운영방안, 산별노조의 역할”. pp. 26-29에서 요약.






5) 졸고이지만 ��정세와 노동��, 2008년 6월호, 최상철 “봉사원에서 노동자로 —장애인콜택시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6) 같은 글은 ��피억압의 정치학(하)��, 2008, 노사과연에도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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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세계장애인의 날 투쟁 -장애인 노동권을 향한 일보 전...[1] 최상철|운영위원 2008-12-18 3389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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