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전쟁

이명박은 올해 1월 대통령 신년국정연설에서 ‘비상경제정부체제’를 선언했다. 청와대 지하 벙커에 워룸(War Roomㆍ전시작전상황실)으로 불리는 비상경제상황실을 만들고, 비상경제대책회의를 11월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이 기구를 '전시 상황실'처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들은 전쟁을 지휘하는 전시상황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쟁이란 바로 노동자민중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전쟁이었다. 2월 용산에서 소상인들을 학살하고 평택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을 짓이겨 버린 것은 주요한 2개의 전투였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에 특징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자본과 정권의 공세는 보다 총체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변변한 저항도 못해보고 해고되었다. 임금은 명목적으로도 하락하였다. 거기에다 위기에 처한 자본을 살린다고 돈을 풀고, 수출독점자본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원화로 달러를 사들이면서 원화가치를 하락시켜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실질임금은 그만큼 더욱 하락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노동은 더 힘들어지고 노동시간은 늘어났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을 더 많이 착취하는 것으로도 자본은 만족하지 않는다. 미래의 노동까지도 자본을 살리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 정부와 가계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는 자본을 살리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세금(법인세)을 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정지출(이른바 “공적자금, 4대강 사업” 등등)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빚에 이자까지 더해진 금액을 노동자 민중이 앞으로 노동해서 갚아야 한다. 가계 또한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빚을 지는 이유는 임금이 비정상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즉 초과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현재의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 살 수가 없어서 미래의 노동력까지 담보로 잡히고 있다. 노동자들은 또 원금에 이자까지 부담하면서 본래의 착취에 화폐자본의 착취까지 감당해야 한다.

노동자의 고통과 절망은 “우리경제의 희망”

노동자들은 먹을 것¹⁾ 입을 것, 거주하는 집을 생산하고, 또 그것을 생산하는 기계와 공장을 생산한다. 노동자들이 사회의 모든 부를 생산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자신이 생산하는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은 자본가의 소유로써 자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것은 단지 사회적 부가 아니라 자신에게 적대적인 부, 즉 자본을 생산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고통과 절망을 생산한다. 자신의 쌓아올린 부가 거대해질수록 스스로는 초라해지고, 자신이 생산한 자본이 거대해질수록 자본의 독재는 강고해지고 노동자는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자본과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고통과 절망까지도 강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렇게 노동자군대의 규율을 잡은 독점자본은, 세계의 독점자본과의 경쟁, 즉 경제전쟁을 또한 성공적으로 치렀다. 올해 삼성 현대 엘지 등 몇몇 독점자본은 세계시장에서 선전했고 높은 이윤을 올렸다. 노동자들을 독점자본의 총알받이로 훌륭하게 동원한 것이다.

세계의 독점자본은 감동을 받았고 G20 정상회의라는 제국주의ㆍ독점자본의 정책협의회를 2010년 한국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또 이렇게 “경제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자, 세계적 투기자본이 몰려들어 주가와 부동산을 끌어올리고 있다.

자본가들과 소부르주아 상층 등 “가진 자”들의 지지를 회복한 이명박정부는 한층 여유를 부리며 무력만이 아니라 기만술을 가미하고 있다. 이른바 “중도 실용 친서민”정책이 그것이다. 축적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고통과 불만, 정권에 대한 적대를 완화시키고자 하는 연막술을 부리고 있다.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 독점자본

그러나 한국의 독점자본은 축배를 들고 흥청거릴 여유가 없다.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동업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독점자본들은 모두 서로를 거꾸러뜨리기 위해서 더 적은 임금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떤 독점자본이든지 승리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어제는 미국의 GM자동차자본, 오늘은 쌍용차자본이 희생되었고, 내일 또 누군가가 쓰러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독점자본은 공포에 질려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짠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생산자일 뿐 아니라 소비자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이 소비할 수 없어지는 만큼, 상품이 팔리지 않는 만큼, 시장은 좁아지고 자본의 생존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미래의 노동력을 담보로 삼아서, 즉 빚을 내서 자본을 운동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자본의 경쟁은 더 격화되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세계대공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발발한 세계대공황은 올해 들어 진전이 완화되고 있다. 세계각국의 정부가 거의 무제한으로 공급한 통화가 자본의 연쇄적 파산을 저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황이 극복된 것은 아니다. 공황이 해소되려면 그 원인인 과잉자본이 해소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부양책은 한편에서는 과잉자본을 유지시켜주면서, 한편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을 삭감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자본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동결삭감하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공황의 원인인 생산의 확장과 소비의 위축이라는 모순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순은 다시 폭발할 수밖에 없고 정부의 부양책은 점점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자본에게 맡길 수는 없다

자본가계급의 폭력에 굴복하여, 가망 없는 독점자본끼리의 싸움에 노동자들이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잘해야 일시적일 뿐인 승리를 위해서 정리해고와 과로사의 위협에 항상적으로 시달리며, 저임금에 시달리며 자신의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까지 자본에 바쳐야 한다. 오직 생존을 위해 생존해야 하고 자본을 위해 생존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마저도 오래갈 수는 없다. 무한경쟁을 운명으로 하는 자본에게는 승리는 우연이고 패배가 필연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자본에게 맡길 수는 없다. 노동계급이 사는 길은 자본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투쟁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자명하다.

그러나 쌍용차 투쟁에서 보이듯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고립되어 진압당하고 있다. 노동자 대중들은 여전히 숨죽이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자본 노동자와 중소자본노동자가 분열되어 있다.

노동자계급에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해방의 전망을 제시하고, 분열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계급으로 단결시키고, 정치ㆍ경제 투쟁을 지휘할 지도부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노동대중의 커다란 희생과 위대한 투쟁의 성과물인 두 지도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이미 오래전에 투쟁을 지도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 버렸다. 이명박이 노동자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 시기, 민주노총은 지난 7월에는 노동자의 선봉부대 쌍용차노동자들을 고립시켜 자본과 정권의 폭력에 제물로 바치더니, 최근에는 ‘노사정 6자대표자회의’에 참가하면서 노조전임자임금을 자본에 구걸할 정도로 타락해 버렸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김대중의 정치적 후계자임을 자처하기까지 할 정도로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꽁무니를 좇아가고 있다.

사실 이명박정부가 선전하고, 독점자본이 선전하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즉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노동자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노동자계급의 무기력이다. 그리고 또한 그 주요 이유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 적어도 아직 형식상의 지도부인 이들의 배신이다. 돌아보면 결정적인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2008년 “촛불정국”에서 소부르주아적 시민들의 투쟁으로 이명박정권이 빈사상태에 빠졌을 때, 용산에서 소상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전민중의 분노가 들끓었을 때, 한편으로는 노무현을 죽이면서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한편으로는 쌍용차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의 기운이 솟구쳐오를 때, 이러한 시기 때 만약 민주노총이 투쟁에 나섰다면 이명박을 퇴진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고, 적어도 지난 10여년간 지속되었던 수세국면을 공세국면으로 역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둑에서 악수(惡手)를 잘못 받으면 묘수가 되듯이, 이명박은 수차례나 무리수를 두었지만 민주노총이 방관하면서 위기를 넘기게 해주고 오히려 횡재를 안겨주었다.  

노동자계급은 해방자로 다시 서야

세계대공황이 벌써 1년을 경과하고 있다. 점차 한계에 달한 자본은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고, 고통을 참고 버티는 노동자민중들의 인내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조만간 투쟁은 폭발할 수밖에는 없다.

우리는 쌍용차투쟁에서 새로운 지도력과 새로운 운동의 맹아를 본다. 그들은 불과 천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정권과 자본에 당당하게 맞섰고, 총자본과 총노동의 전선을 세워냈다. 무려 77일간의 거대한 투쟁의 함성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자본과 정권은 폭력으로 투쟁을 파괴했고 사법부는 지금 그 투쟁의 흔적을 지우려 발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쓰러졌지만, 노동자대중에게 각인된 투혼은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국가의 범죄적 폭력에 대한 분노 또한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 경험으로부터 배워 더욱 단단하게 무장하고 제2, 제3의 쌍용차투쟁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자본은 투쟁을 강요하고 있다. 앉아서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투쟁의 성과들이 모아지고 축적되어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지도력과 운동이 세워질 것이고, 또 세워져야 한다. 선진적 노동자들은 목적의식적으로 그렇게 만들어가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해방자로 당당하게 다시 서서, 자본과의 전쟁을 선언할 그날을 향해 전진해자.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