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이른 아침, 노무현 전대통령이 수십 미터 바위 낭떠러지로의 투신자살이라고 하는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형태로 생을 마감했다. 누군가 인터넷에도 쓴 것처럼, 누가 그를 그렇게 죽게 만들었는가는 사실상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기에 출세가 보장된 순탄한 길을 마다하고 고비고비 승부를 걸어온 그의 ‘특이한’ 정치적 역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노 전대통령을 일컬어 불세출의 정치 승부사라고 했고, 또 스스로 그렇게 자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그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이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정세를 뒤흔들고 있다. 그 파급력 혹은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좌파 정권”, “좌빨” 등으로 몰아세우는 극우세력의 극한적인 적대에서부터 ‘노사모’와 같은 열렬한 지지ㆍ환호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 혹은 정치적 호오(好惡)는, 주지하는 것처럼, 가히 극과 극이다. 그리고 이 극과 극의 호오야말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치적인 원인이고, 그의 정치적 영욕(榮辱)의, 나아가 그의 죽음으로 요동치는 정세의 타력(惰力, momentum)이다. (물론, 그의 죽음을 맞아 전두환이 지껄였다는 “꿋꿋함” 탓도 있어서 노 전대통령과 같이 충격적이고 비극적으로 삶을 정리하고 있진 않지만, 그 ‘평가’ 혹은 호오가 극과 극인 인물은 노 전대통령만은 아니다. 저들이 말하는 ‘좌파’로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그렇고, 극우 혹은 ―황석영 씨의 표현을 빌면― ‘중도ㆍ실용’으로는 전두환 전대통령이나 이명박 현대통령도 그렇다. 아니, 어쩌면 역대 대통령 모두에 대한 정치적 평가 혹은 호오가 그렇다.)

그런데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에 대한 정치적 평가 혹은 호오가 아무리 극과 극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은 모두가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 대립과 투쟁은 무엇보다도 몰계급적인, 그러나 사실은 부르주아적인 ‘민주주의’의 문제로서, 혹은 이른바 ‘민주 대(對) 반민주’로서 나타나고 있고, 기껏해야 소부르주아적 관점을 반영한 ‘진보 대 보수’로서 나타나고 있다. 혹은, 지역주의로, 혹은 “심정민주주의”(강준만)나 “욱 민주주의”(강준만)로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다시, 극과 극을 달리는 그(들)에 대한 정치적 평가 혹은 호오가 ‘사실은 모두가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의 그것’이라고 해서,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이해의 대립ㆍ충돌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극과 극을 달리는 그(들)에 대한 정치적 평가 혹은 호오, 즉 그들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ㆍ투쟁은 물론 부르주아지 내부의, 그리고 넓게는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 내부의 분파적 이해의 대립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해방을 갈망하지만 압도적인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의 영향력 때문에 자신의 계급적 처지와 해방의 길을 자신의 언어로 인식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광범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가 거기에 왜곡된 형태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문제ㆍ이해야말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해가는 소부르주아 하층의 그것이야말로 사실은 이 극과 극의 대립의 기초ㆍ중핵을 이루는 것인데, 이해 당사자들의 이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명확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떠난 노 전대통령을 향해 수감 중인 이광재 의원은 “꼭 좋은 나라 가셔야 합니다. 이젠 ‘따뜻한 나라’에 가세요. 이젠 ‘경계인’을 감싸주는 나라에 가세요. 이젠 ‘주변인’이 서럽지 않은 나라에 가세요” 하고 편지를 쓰고 있고,¹⁾ 노 전대통령의 죽음을 가리켜��한겨레(21)��는 “주류의 타살”²⁾이라고 쓰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경계인”이나 “주변인”, “비주류”가 아니다. 그들은 엄연히 이 사회의 주류인 부르주아지의 일원이고 그 정치적 대표자들이다. 그(들)이 만일 “경계인”이나 “주변인”, “비주류”라면, 그것은, 예컨대 ‘한겨레’나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이 이미 주류언론 내의 비주류인 것처럼, 주류 내부에서의 그것일 뿐이다. 이는 사실은 재임 중에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자신(의 정권)의 정책노선을 “좌파 신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 좌파의 그것임을, 즉 독점부르주아지 좌파의 그것임을 천명함으로써 명확히 한 대로이다.

구태여 “경계인”이나 “주변인”, “비주류” 등의 용어를 구사하자면, 노동자ㆍ민중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몰락해가는 소부르주아지 하층이야말로 이 사회의 “경계인”, “주변인”, “비주류”이다.

노무현 정권이 만일 이 사회의 주류, 즉 부르주아지, 그것도 독점부르주아지(의 비주류)의 정권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한나라당과의 연정(聯政)을 꾀했겠는가? 왜 “참여정부는 규제완화와 개방을 통한 성장정책을 적극 추진”했겠으며, “법인세율을 낮추고, 수도권 규제 및 환경규제를 완화”했겠으며, (노동자ㆍ민중의 치열한: 인용자)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이는 등 동시다발적인 자유무역협정도 추진”³⁾했겠는가? 노무현 전대통령과 그 정권을 “(이 사회의) 비주류”라고 규정하는 ‘한겨레’가 바로 그렇게 자신의 규정과 모순되게 보도하고 있지 않은가? 좀 더 인용하자.

(노무현 정권의 그러한) 적극적인 수출지원 정책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2002년 1626억 달러에서 2007년 3705억 달러로 5년 만에 갑절 넘게 늘었다. 수출기업들의 실적 호전은 정부 출범 초 600대에 머물던 코스피지수를 2007년10월 2000까지 끌어올린 힘이 됐다. 경제성장률도 임기 말엔 5%를 회복했고,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정착됐으며, 원화가치가 회복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 노동자ㆍ민중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아니, 노동자ㆍ민중의 빈곤은 더욱 광범해지고 더욱 심화된 위에서 부르주아지 상층에의 부의 집중만을 의미하는 ‘평균’일 뿐이다. 그리하여��한겨레��조차 이렇게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빈곤층이 늘고 양극화가 심화하는 흐름은 이어졌다.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는 계속 줄고, 서비스업의 저임금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가계 소득이 중위소득의 50%를 밑도는 계층의 비율을 뜻하는 상대적 빈곤율은 2003년 12.1%(비농가 2인 이상가구)에서 2007년 13.4%로 올라갔다.⁵⁾

그러나��한겨레��가 노 정권 하에서의 노동자ㆍ민중의 상태에 대해서 대략이나마 진실의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거꾸로, 현 정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상기되어야 할 것을 은폐하고 있다. 우선, 앞에서 본 것처럼,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이는 등” 운운하고 있는 것처럼 그 반발이 노동자ㆍ민중의 그것임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눙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저들 독점자본의 선전을 받아 “비정규직 보호법을 도입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 차별을 고치려는 시도를 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⁶⁾ 운운하면서,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 사실은 ‘비정규직 확산법’에 반대하고, 비정규직 철폐에 반대하는 등의 투쟁을 수행하면서 이명박 정권 하에서와 마찬가지로 노 정권 하에서 20여 명의 노동자ㆍ민중이 자결하거나 타살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들 ‘민주ㆍ개혁 세력’이 그들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냉담했던가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하고 있다.⁷⁾

그런데도 ‘민주ㆍ개혁 세력’이니 ‘참여정부’니 하는 등의 환상 속에서, 민주노동당 등은 물론, 조직 노동자의 주력군, 민주노총은 투쟁력을 잃어가고, 독점부르주아지 내부의 권력암투에 불과했고 권력을 강화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승부수의 소산이었던 소위 ‘탄핵정국’에서는 전투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투신자살로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 오늘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지도부는 물론 민주노총의 지도부도 “대정부 투쟁을 보류”하고 멀리 김해까지 “조문 행렬에 동참”⁸⁾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노무현 정권이야말로 (그리고 역시 김대중 정권이야말로) ‘국민화합’ㆍ‘국민통합’에 가장 능한 정권, 따라서 한국의 독점부르주아지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정권이었다.

그러나 독점부르주아지의 극우적 분파는, 한편에서는 노동자ㆍ민중에 대한, 특히 그간 수십 년 동안 저질러온 극악한 악업에서 오는 본능적 공포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주요 이권적 자리에서의 최근의 ‘좌파’ 쫓아내기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눈앞의 탐욕 때문에, 노 정권 등이야말로 최량의 부르주아 정권인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생사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가히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그러나 다시 노동자ㆍ민중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르주아지의 압도적인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때문에 자신을 대자적(對自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독점부르주아지 좌파, 혹은 ‘좌파 신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병사(兵士)가 되어 대리전을 치루고 있다. 그러한 한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는, 극우 이명박 정권을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시 한 번 노련하게 노동자ㆍ민중을 농락하고 있다. 노동자ㆍ민중은 다시 한 번 그에게, ‘좌파 신자유주의’ 세력에 당하고 있다. “바보 노무현” 운운하며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바람을 잡고 있는 중에 말이다.

노동자계급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점, 즉 독점자본의 이해에 봉사하고 있는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 앞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이 농락당하고 있는 점은 현재의 노무현 투신정국과 2004년의 노무현 탄핵정국의 기본적 공통점이다.

그러나 현 정국은 물론 당시의 탄핵정국과 확연히 다른 측면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이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더 이상 권력의 담당자가 아니라는 점이며, 따라서 현재의 정국은 필경 권력의 강화로 귀결되기보다는 그 결정적 불안정화의 출발점,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의 결정적 불안정화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불안정화는 현정세의 직접적 연장선상에서든, 차기선거를 통해서든 권력이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게 넘어가더라도 그 권력이 쉽사리 안정ㆍ강화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물론 정세의 추이에 따라서는 새로운 ‘소부르주아 영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저들 소위 ‘민주ㆍ개혁 세력’의 현재의 구성과 조건으로 봐서는 더 이상 김대중ㆍ노무현이라는 양웅(兩雄)을 대체할 어떤 카리스마적 인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은 그 세력의 결속력의 해체 내지는 이완과 그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노동자계급 및 소부르주아 하층의 분리가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정치 주체의 형성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노사과연>

8) www.pressian.com. 2009.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