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을 멀게 했다. 장님으로 만들었다.

동양인 특유의 치켜 올라간 그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기에.

— 그에게는 낮도 밤과 같으리라 —

대령은 가장 큰 소리로 웃었다.

암살자는 달러 지폐를 한 웅큼 집어올렸다.

그리고는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걷어올렸다.

소년이 두리번거리며 팔을 휘젓는 광경을

생생하게 바라보기 위해서.

1945년 5월

나는 꽤 빨리 증오와 작별했었다.

모든 것을 기억 저편에 묻어 두고,

공포와 분노와 굴욕의 시간을 떠나왔었다.

오늘 나는 또다시 증오에 길들여진다.

지금도 앞으로도 증오의 불꽃이 필요하리니.

나는 증오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당신 —

부끄러운 어릿광대 대령에게도 감사한다.

해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1925 — )는 현대 폴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쉼보르스카가 1949년부터 1955년 사이에 내놓은 두 권의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와 ��나에게 던지는 질문��(1954)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이 시는 “어릿광대 대령”으로 상징되는 미국과 “달러 지폐”로 상징되는 그들의 제국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연대의식이 흐르고 있다. 1945년 5월, 제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나치 독일로부터 조국을 되찾으며 시인은 증오를 지워버렸다. 한국이 겪는 수난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들인다. 가슴에 타오르는 “증오의 불꽃”에 감사하고, 그 증오를 야기한 “암살자”에게도 감사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는 불의와 폭력에 맞서 계속해서 분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발현인 것이다.

출처: 최성은의 논문, ��폴란드 사회주의리얼리즘 시(時)에 나타난 한국전쟁��에서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