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친구여, 슬퍼 마라,

내 영원히

그대들 마음에 살아 있으니.

그대들 가운데 누군가가 죽었다,

일본 점령지 감옥에서,

그는 사무치는 원한을 품은 채,

그대들을 영원히 기억해야만 한다.

그대들이 돌아오면, 흙 속에서

그의 상처 입은 육신을 파내어,

승리의 환호로

그의 영혼을 달래준 후,

그의 백골을 산봉우리에 놓고,

햇볕을 쬐여 주고, 회오리바람에 씻겨 주게.

어둡고 축축한 토옥(土獄)에서

이것만이 그의 유일한 단꿈이었을 테니.

1942년 4월 27일

<해설>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시기 홍콩에서 머물던 시인은 다른 문인들과 항일 운동을 전개하는 문화 사업에 참여하였고, 그런 와중에 일본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 시는 그 때의 자신의 심정을 진실하게 쓴 것으로, 당시 자신의 처지가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할 만큼 절박하고 애통함을 암시하였지만, 이 시에 드러난 전반적인 분위기는 감옥에서 겪는 고문이나 열악한 생활 환경, 혹은 전쟁의 공포나 전쟁이 남긴 허무보다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하는 신념과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대망서 시선, 이경하, 2004, 문이재. pp. 13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