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ㆍ폭등, 붕괴, 허탈, 충격, 공포,...’

최근 연일 신문 일면을 장식하는 단어들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왜 우리는 이러한 시련을 겪고 있는가. 사태의 발단은 미국의 써브프라임 모기지부실이라는 주택금융의 문제이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공황을 국내의 상황에 대비하여 개념적으로 이해해보면 개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수년 동안 전국적으로 건축붐이 이어졌고 여기저기 아파트가 지어졌다. 결국 현재 팔리지 않은 아파트가 25만 채 정도 된다고 한다. 한 채에 2억원으로 계산하면 50조원이 묶여있는 셈이다. 아파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고 아파트에 딸린 상가, 단독주택, 다가구 등에서 팔리지 않은 액수를 합친다면 훨씬 커질 것이다. 건설업체의 연쇄부도는 이미 진행 중이다.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는 결국 아파트 25만 채를 투매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아파트가격, 주택가격을 떨어뜨릴 것이다. 주택가격의 하락이 시작되면 주택소유자들도 집을 팔려고 나설 것이다. 집을 이른바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사람들과 빚을 많이 내어 집을 사서 이자부담이 큰 사람들이 먼저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이 무척 많기 때문에 집값 하락은 속도가 붙을 것이다. 9월 현재 가계부채는 660조원, 가구당 4000만원에 달하고 이중 절반인 330조원이 주택관련 부채이다.     

은행의 문제를 보자. 먼저 건설업체의 부도로 빌려주었던 돈을 받지 못하고 그만큼 부실해 질 것이다. 또한 ‘투자목적’으로 집을 샀지만 집값하락으로 ‘투자’에 실패한 사람들, 과중한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연체율이 상승하고 개인 파산이 나고 부도가 발생하면 또 그만큼 부실해진다. 부실해진 은행은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율을 올리게 된다. 그러면 집값은 더욱 떨어지고 건설업체와 개인은 빚을 갚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 주택투매와 주택가격하락, 기업과 개인의 부도(파산), 은행의 부실화(파산), 이자율 상승이라는 악순환이 진행된다.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 문제의 근원은 팔리지 않은 주택, 즉 주택의 과잉생산이다. 그러면 무엇이 주택의 과잉생산을 초래했는가? 먼저 거대한 생산력이다. 팔리기만 한다면 온 국토를 아파트 숲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만큼 건설인력과 각종 중장비ㆍ건설기계(그리고 필요하다면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는 남아돈다. 과잉생산의 다른 이유는 노동대중의 빈곤이다. 가난해서 주택을 살 수가 없고, 그래서 팔리지 못한 주택이 바로 과잉생산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착취하여 거대한 생산력을 자본의 생산력으로, 자본가계급의 소유로 만들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회구성원의 가장 큰 부분인 노동자계급은 빈곤하여 상품을 구매할 수 없다.

자본의 생산력은 거대해지는 만큼, 노동자계급은 그만큼 빈곤해진다. 이것이 과잉생산으로 표현된다. 이는 비단 주택건설부문만의 일이 아니다. 농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자동차, 전자제품, 철강, 조선 등등), 그리고 국내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자본주의에 고유한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전세계적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은 생산과 소비의 모순을 극대화시킨다. 건설업에 자본을 대부해주어 생산을 더욱 자극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계(소비자)에 대부를 해주어 소비를 더욱 축소시킨다. 가계는 원금에 이자를 더해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1억짜리 집을 1억에 빚을 내어 샀고, 이자율이 10%라고 하자. 그리고 1년 후 원금과 이자를 갚는다면 그 집을 1억 1천만 원에 산 것으로 된다. 1천만 원 만큼 소비가 줄어들게 된다.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하다. 최근 수년의 국내 현실을 보면 분명히 집이 많이 팔리고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330조원에 이르는 은행빚 때문이라고. 그러나 그 집들은 완전히 팔린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팔린 것이다. 빚 더하기 이자 액수 만큼, 그 집은 사실상 팔린 것이 아니다. 빚을 갚지 못하여 집이 은행으로 넘어갈 때 이것이 증명된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했던 ‘미분양아파트가 25만 채’라는 것은 외양일 뿐이다. 330조원 만큼의 주택(1채 가격이 2억이라면 165만 채)이 사실상 “미분양”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주택건설부문만이 아니라 전산업에서 과잉생산으로 폭발하여, 기업과 가계가 빚을 더 이상 갚지 못할 때 은행의 부실과 파산, 금융경색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고통과 공포의 원인은 과잉생산이다. 이윤을 위해 생산을 극대화시켜 세상을 상품으로 범람시키지만, 동시에 이윤을 위해 임금을 최소로 줄여서 소비는 최소화시키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피땀의 결과이며 착취의 결과인 거대한 생산력을 바로 자본가 계급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 노동이, 그러나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정세> “대공황과 혹세무민지설들”에서는 주로 부르주아언론에 나타나는 공황에 대한 각종 미신들을 비판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대공황에 대한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분석을 앞으로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세계대공황이 전개되면서 자본주의의 권위는 추락하고 있고 상식은 의심받고 있다. 혼돈 속에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색이 차츰 힘을 얻을 것이다.

<이론>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의 쟁점들”, <기획번역>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2)”, “1930년대 쏘비에트공화국에서의 계급투쟁(3)”이 노동자계급이 반공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가을이 깊어간다. 이번달 시는 가을맞이 서정시로 골라 보았다. 투쟁의 산이 높으면 감성의 골이 깊은가 보다. 

2008년 10월 17일

편집출판위원장 권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