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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기타 >
제목 독자편지
글쓴이 이병진, 최상철 E-mail send mail 번호 460
날짜 2012-04-26 조회수 2555 추천수 97
파일  1335441365_l.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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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마당 : 독자편지





이병진 최상철 편지



















최상철 동지의 편지를 읽으면서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내려놓았습니다.





속이 상해서입니다. 알몸 검신을 당한 사실이 공개된 데에 대한 수치심 때문입니다. 작년에 당한 일을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한 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한편으로 왜 나는 그때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을까 라는 후회와 창피함 때문에 숨기려했던 것이지요. 그때 제가 절망한 이유는 가족 만남을 미끼로 뒤에서는 홀랑 옷을 벗기는 폭력과 이중성에 기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고는 그 즉시 뒤돌아서 옷을 벗기지만 저항하면 다시는 가족의 만남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지시에 따릅니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지를 스스로 내리고 보여줘야 하는 비애와 좌절감을 이루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악몽을 또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싫고 괴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치부라고 생각했던 알몸 검신이 알려지게 되어 좀 막막했지요. 마음을 추슬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답장이 늦어졌습니다.





지금은 차분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공안 담당이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길래, 지난 일이고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갖고 박해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고 이해했으니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은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규정을 내세워 강제로 옷을 벗기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이 알려진 데 대해서 전주교도소는 저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오늘 공안 담당에게 어떤 계획이나 문제를 제기하려는 의도를 갖고 알리지는 않았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와 직원분들과 관계는 좋습니다. 그러나 감옥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힘이 강제하는 폭력과 감시 때문에 늘 긴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움직이고 작동시키는 체제에 대한 불신이 큽니다. 최상철 동지의 가슴 따듯한 위로가 저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군요. 고맙습니다.





저도 김혁 동지로부터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 된 분의 자살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혁 동지는 함께 마지막까지 투쟁하신 분의 자살 소식에 무척 슬퍼하십니다. 분향소를 설치하려고 하자 이를 가로막고 경찰들과 격한 몸싸움을 서너 시간 이상하고 겨우 분향소를 차릴 수 있었다니 분통이 터집니다. 정리해고 당하고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자살을 했겠습니까. 그런 분의 영혼을 위로는 못할망정 전투 경찰을 동원해 영정 사진을 빼앗고 분향소를 마구 유린한 것은 경찰이 분명히 잘못한  일입니다.





지난 편지에 이북의 인공위성 발사와 관련된 내용을 보냈는데 <범민련>에서 참고 자료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 글을 읽고 <부산화물연대>의 정창화 동지가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정창화 동지의 아드님이 과학 영재인데(중2) 저의 주장이 오류라고 합니다. 과학영재 아드님은 “고체 연료에서 액체 연료로 발전한 것이고 고체 연료는 나도 만들 수 있다. 산소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분사식 액체 연료를 (어쩌고 저쩌고)... ” 설명해 주었는데 정창화 동지께서 이해하지 못하셨데요. 저도 로켓 과학기술 지식이 짧아서 제가 틀렸을 수 있기 때문에 최상철 동지께서 기회가 되면 정확하게 확인해 주세요.





제가 이북 사람들과 우주 과학 기술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정확히 기억하는 대목이 액체 연료개발까지는 성공했는데 고체 연료 개발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여 착각을 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렇게 우리나라 과학영재들의 과학지식 수준이 높습니다. 참 대견합니다.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수준이 높다면 로켓을 러시아에서 사다 위성을 쏘아 올릴 것이 아니라 직접 제작하여 쏘아 올리면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미국이 반대하여 러시아에서 로켓을 사다가 쏘아 올리는 것이라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로켓을 사다 쏘아 올리면 인공위성이고 자체 개발한 로켓을 쏘아 올리면 탄도미사일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우리나라 과학영재 학생들의 수준에서 이론적으로 로켓을 쏘아올릴 수 있다면 우리도 우주발사체를 개발하여 쏘아 올리면 되지 이북이 쏘아 올렸다고 탄도 미사일이라고 악선전을 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군요.





<사월혁명회>에서 제 원고를 잘 받아 게재까지 해 주신다니 기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인데 민폐끼치지 말아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 번역도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동북아 평화번영 프로젝트 문≫에서 번역 글을 퍼갔다니 보람을 느낍니다. 더욱 정성껏 번역하겠습니다. 최상철 동지께서 꼼꼼히 번역글을 수정 검토해 주셔서 가능한 일입니다.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시아 리얼리즘≫ 자료집과 Marxist Cultural Movement in India 2, 3 권도 잘 받았습니다. 인도에서 문화예술 운동 분야는 저도 처음이어서 흥미 있을 것 같군요.





오수영 동지의 페이스북에 실린 “재능지부 투쟁 1500일, 우린 반드시 승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를 읽으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하나. 11명의 해고자의 전원 복직과 노동조합 인정을 거부하는 재능교육 자본가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쏟아 붙습니다.





“빼앗겨버린 노동조합의 이름을 다시 찾고 싶은 사람, 거대한 자본의 무차별 공격에 망가져 버린 생을 복수”하겠다는 오수영 동지! 용기 잃지 마세요.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병진





2012년 4월 16일




















익일 오전으로 급히 보내는 편지입니다. 정상적으로 도착한다면 19일 내일 오전에 전주교도소에 편지가 도착합니다. 문제가 없다면 내일(19일) 오후에는 받아보실 수 있겠죠. 적어도 20일 오전에는...










20일 3시 장소변경 접견. 그 이전 2시에 동지의 알몸 검신 문제로 간단한 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합니다.










동지와 충분히 소통하고 일을 진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또 동지의 지난 아픈 일이 들추어지는 것이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임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교도소 측의 회유와 압박에 2중 3중으로 고통스러우시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과거의 일이라고 덮어놓고 잘해보자는 소측의 의도대로 따르면 ‘재발 방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전부를 걸고 싸우지 않으면 하나도 지키지 못합니다. 동지께 너무나도 잔인한 요청을 드리게 됩니다만, 최소한 교도소의 공개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지가 준비가 되신다면 한상렬 목사님처럼 재판을 청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동지께 달린 부분입니다. 참고로 한 목사님은 서울 구치소 수감 당시 계속 되는 감시를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재판을 청구하셨습니다.















만천(滿天)의 눈










신현칠1)










하늘을 덮고 무량한 눈발이 어지러운





억겁 전의 그 광경을 이 눈(眼)이 지켜본다





지금은 예 있는 나도야 그 눈 속에 묻힌다.










신현칠, ≪옥중시조집 필부의 상≫, 개마서원, 2002. p. 95.










4월 18일















무척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며칠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반가운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도 못했네요. 짧은 시간 내에 동지의 입장을 듣는 데도 시간이 모자라더군요. 최고의 대화 기술은 경청인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접견 시에 동지를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게 한 동안 편지가 오지 않아 결국 ≪정세와 노동≫ 4월호에는 동지의 편지가 실리지 못했기에 걱정했었습니다. 다른 동지를 통해 전해 듣기로 심적으로 상당히 예민해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뵈니까 아직도 여러 복잡한 심경과 감정의 기저에 있는 울분이 교차함을 확인하였지만, 핵심이 되는 부분에서 냉정한 판단을 유지하고 계신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됩니다.





동지의 4월 16일자 편지를 4월 18일에 받았습니다. 접견과 기자회견을 불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급하게 카페에 편지를 올리고 좀 더 세심하게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 대책 모임 성원들에게 다 읽어보라고 연락을 돌렸습니다. 공통적인 의견은 알몸 검신 문제는 이미 동지에 대한 사적인 것을 넘어 국가의 폭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쌍용자동차에서의 22번째 죽음 때문에 면회를 못 가시는 김혁 동지의 개인적인 의견을 여쭈어보았는데 “내게 편지를 보낸 것은 외부에 알리라고 그렇게 한 것이니, 걱정 말고 세게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전주교도소가 정신 차린다”라고 분명하게 입장을 말씀하셨습니다.





≪정세와 노동≫ 4월호 발송작업을 하는 중에도 동지가 받아보신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바로 그날 보냈고 그날 오후 늦게는 <사월혁명회>의 419 기념 행사에도 지각 참석 하였습니다. ≪사월혁명회보≫를 받아보고 동지께서 심혈을 기울여 쓰신 글도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지의 글 본문의 주석에 서신 밀봉과 검열 문제 등이 적혀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아마 18일에 동지께서 <구속노동자후원회> 이광열 사무국장님에게 전화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도 그날 이광열 동지로부터 전화가 왔던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광열 동지께서 이 부분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국가폭력이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4월 19일 《오마이 뉴스》에 4월 18일자로 기사가 벌써 올라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도자료”를 미리 배포했기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만 저도 약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전주교도소 측에서 미리 사전계획을 알게 되면 장소변경 접견이나 소장 면담, 기자회견 등에서 어떤 방해를 받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상당히 예민해졌습니다.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엠바고 요청을 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까지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4월 19일에는 민가협에서 하는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에서 제가 이 문제로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탑골 공원으로 가는 중에 전주 쪽 정보과 형사 이 아무개씨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 30명 오시냐, 협조할 것은 없냐’ 이런 걸 묻기에 ‘사찰하는 거냐, 협조 사항없다. 그날 어차피 보게 될 텐데 통화는 이정도로 하자’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또 발언이 끝나자 민가협 집회를 담당하는 종로서 정보과 경찰이 기자회견문을 볼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걸어왔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경찰이라고 먼저 명확히 밝히지 않아 기자회견문을 자칫하면 경찰에게 보여줄 뻔 했지만 이내 수상한 분위기에 경찰 관계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기자회견에 여러 곳에서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도자료”와 “기자회견문”이 민감한 내용임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하고 나가게 된 것에는 전주교도소 측에 가장 우선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구속노동자후원회>에서 초안을 작성한 “<석방 추진 모임>이 전주교도소에 보내는 공문”을 4월 11일 경에 내용증명으로 발송했는데 4월 20일 기자회견을 할 때까지 전주교도소 측으로부터 공문에 대한 정확한 답신이 없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모든 사실을 전주교도소가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했습니다. 또 김혁 동지에게 보내온 이병진 동지의 편지의 표현을 보면 그렇게 판단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습니다. 오류에 대해서는 <석방 추진 모임>에서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4월 20일 기자회견은 제가 사회를 보았습니다. <구속노동자후원회>에서 차량과 플래카드 피켓을 준비하시느라 고생이 무척 많았습니다. 장창원 동지께서 인간 이병진과 이병진 동지를 간첩으로 모는 것의 부당함에 대한 발언으로 기자회견을 여는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다음에 <구속노동자후원회> 이광열 사무국장님께서 알몸 검신의 부당함에 대해서 조목조목 발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발언은 전주 이석영 교수님께서 하셨는데 이 모든 일의 원인에 미제국주의가 있고 국가보안법이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자 회견문은 김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대표를 맡고 계신 이봉원 목사님께서 낭독하셨습니다. 이후 기자 질문이 있었습니다. 질문 중에 이후의 대응에 대한 것에는 이병진 동지와 보조를 맞추어 진행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4월 20일 동지를 만난 이후에 있었던 소장 면담 결과 말씀드립니다. 소장 면담을 위해 면회에 오셨던 동지들이 또 인원제한 때문에 미처 면회에 같이 못 하셨던 동지들이 교도소 본관 건물 문 앞으로 같이 갔습니다. 전주교도소 담당 직원들은 소장실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사랑방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해서 한동안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소장이 면담을 하겠다는 정확한 답변이 없을 시에는 자리를 뜰 수 없다는 입장을 모두가 같이 전했습니다. 결국 소장과는 소장실이 아닌 직원사랑방에서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총책임자인 소장과의 면담을 원한 것이었는데 관련 교도소 직원들이 모두 다 들어오더군요.





다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결론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소측에서도 당일 알몸 검신 과정에서 문제가 일부 있었다는 것, 그리고 향후 이렇게 하지 않고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하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 알몸 검신과 ‘수치심을 느끼지 아니하도록’이라는 형집행법 제93조 ②항에 위배되는 내용이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쪽에서는 수치심이 주관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자신의 변론을 펼쳤습니다. 이에 대해 저와 이광열 동지는 수치심이 주관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러한 수치심은 그러한 주관적인 판단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 이미 명확하게 이병진 동지가 수치심을 느낀다고 이런 검신은 그만해달라고 자신의 의사표명을 분명하게 표현한 순간에 주관적인 수치심이 객관적으로 표현된 것이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결국 이 부분, 적법성 여부와 수치심에 대한 부분에서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아마도 소측에서는 동지를 만났겠죠. 그리고 명확하지 않은 언어로 과거에는 이랬는데 앞으로는 잘해보자는 식으로 명확한 사과도 아닌 둘러서 표현하는 화법으로 대화를 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러 했다면 그것은 동지께서 바라시던 사과의 조건에 한참 모자라는 것이겠지요. 추측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정황상 그렇게 판단하게 됩니다. 정확하게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동지의 이후에 대한 판단은 어떤 것인지 답신이 와야만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위법성 여부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겠다는 동지의 뜻을 명확히 안 이상 기본적으로 동지에 대한 신뢰를 갖고 기다려야 하겠지요.





교도관 개개인의 징계를 원치 않는다는 동지의 입장 존중합니다. 그리고 <석방 추진 모임>도 동지의 의사가 그러하다면 더 이상 교도관의 징계를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 개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동지의 그러한 선의가 때로는 거대한 폭력을 가리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된다는 것입니다. 맑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장밋빛으로 묘사하지 않고 자본가를 자본의 인격적 담지자로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씀드립니다. 자본가 한 명 한 명을 인간적으로 보자면 호인들도 많겠지요.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은 대단히 유능하며 창의적인 인물이지요. 그러나... 그러나...





소장 면담 이후에 전북 버스 파업 저녁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식당에서 나온 텔레비전을 잠깐 보았는데. 전주 JTV에 기자회견 하는 내용이 보도되었더군요. 식사 중이라 집중해서 보진 못했지만 TV 뉴스에는 기자회견 초반부의 영상과 알몸 검신 논란이 있다는 내용이 보도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원래 전주 동지들과 1박으로 일정을 잡아서 충분히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 것인데 앞서 설명드린 긴박한 과정과 또 전주 지역 동지들의 바쁘신 일정으로 저녁 식사 후에 이석영 교수님을 자택에 모셔드리고 저는 장창원 동지와 함께 오산으로 향했으며 다른 동지들은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과 면회를 통해서 <전북인권교육센터>의 상담실장님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께서 큰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시기로 한 것은 큰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전주 지역뿐만 아니라 군산, 김제, 익산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도 기자회견에 함께 하고 동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로 하였던 것도요. 또 <전주 고백교회>와 <전주 평통사>에 <석방 추진 모임> 가입을 권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신을 얻었던 것도 성과입니다.





돌아오자마자 동지가 외부에 전하는 메시지를 카페에 올렸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잘못 기록하여 전달한 내용이 있을까봐 그 내용은 편지 말미에 첨부하겠습니다. 또 지금 옆에 장창원 동지가 계신데 장창원 동지께 따로 부탁하신 내용은 잘 추진해 주실 것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만 했는데 하나 기쁜 소식은 <민가협>에서 지난 회의부터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님께서 회의에 직접 참석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운동은 하나 하나의 씨앗으로 시작하여 어느새 나무가 되고 숲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동지께서 동지의 진정성을 알리고 외부와 소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신 결과입니다.





≪자주민보≫에서도 동지의 번역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에 연락을 미리 주었는데 동지께도 편지로 연락을 하라고 권말선 기자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동지께서도 허락할 것이라고요.





지금까지 교류하며 동지의 심성을 알고 또 내면의 굳은 심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동지를 지속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더디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지와 발맞추어 가길 희망합니다.





동지께 보내드릴 시를 고르고 시인의 약력을 검색해보니 공교롭게도 이 시인은 전직 교도관 출신이네요. 현재는 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를 맞고 계십니다. 연좌제라는 단어가 사전에서 사라지고 역사에나 등장하길 바랍니다.















그해 겨울










반상회 때 큰형은 고발을 당했다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마을 정화위원들은





큰형을 감옥에 쳐넣겠다 하고





유지들은 지구당 당원들과 합세하여





좌경이니 용공이니 급기야는 간첩이라고까지 하며





큰형을 들쑤시고 지서에 전화를 하고










어머니가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그해 겨울





선거바람이 드셀수록 마을엔 관광버스가 줄을 이었지만





대밭뒤 외진 우리집은 을씨년스러웠다.





농전 축산과를 졸업하고 지금





비육우며 젖소 따위를 기르다 실패를 거듭하였어도





외양간의 순한 늙다리 암소 같던 큰형이





반상회 때 무슨 말을 하였는지 잘은 모르지만





들리는 말로는 회관 문짝을 걷어차며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미국놈들 때문에 농사꾼만 골병든다고










뜨겁게 뜨겁게 선거바람은 부는데





좌경용공적 유언비어 유포혐의를 쓴 채





이 앙다물고 끌려간 큰형은





싸락눈이 쏟아지던 밤중에 절며 돌아왔다





창백한 얼굴, 희멀건 눈동자





온몸에 어룽진 핏멍울을 안고










잔기침으로 누워있던 큰형이 큰 병으로 접어들 무렵





일당을 받고 유세장을 돌던 선거가 끝났다





일당을 받고 유세장을 돌던 선거가 끝났다





마을을 온통 흔들어 놓던 선거바람이 멎었다





공술이 바닥나고 회관 앞마당 신명난 윷판도





시름시름 골목 돌담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골병든 몸에는 똥물이 좋다며 어머니는





똥물을 퍼나르고 큰 굿을 하고





대밭 뒤 외진 우리집은 돌아앉아 울었다










겨우내 지독한 가뭄이었다





건국 이후 최대의 역사적인 잔치라고 떠벌리던





선거 끝난 그해 그 지겨운 겨울





낫을 갈던 작은형이 끌려가고, 한 달을 넘게





지서 앞에 퍼지르고 앉았던 어머니가 끌려간





참혹한 겨울이었다.










출처: 김석봉, ≪이 세상은≫, 형평, 1990. pp. 12-14.










4월 23일




















접견 때 하고 싶은 이야기2)





2012. 4. 20










이병진










① 석방모임 감사 인사





② 정치적 입장. 나는 간첩이 아니다.





민족 성원으로 만났다.3)





③ 압박이 심했다. 그래서 선처를 바랐다.4)





④ 가족관계. 경찰의 가족회유.5)





⑤ 아이들 관계 회복하고 싶습니다.





⑥ 지지와 후원에 감사 인사드린다.





⑦ 알몸 검신 문제.





 ・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





 ・ 재판은 고민하고 석방모임에 따른다. (마음에 준비가 필요했다.)










알몸검신 대응은 대책위와 함께 결정하여 진행하겠습니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6) <노사과연>











1) 미리 알지 못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편지를 보내고 참석한 <사월혁명회> 419 행사장에서 비전향 장기수 신현칠 선생께서 17일 오후에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가 조의를 표한다.





2) 이병진 동지가 4월 20일 면회 시간에 전달하실 내용을 메모하셨던 것. “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 번역과 함께 편지에 동봉하셨고 4월 25일 도착하였다. 당일 면회내용은 <석방 추진 모임> 카페 (http://cafe.daum.net/freelbj/JbPl/11)에 정리하였다.





3) 보수 언론이 매도하는 ‘17년간 암약하던 고정간첩’이라는 표현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셨음. ‘자생적 간첩’도 아니고 민족의 성원으로서 북을 다녀왔을 뿐이라는 것.





4) 수사과정에서의 압박이 심했고 가족에게도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하여 수사과정과 재판대응에 철저하지 못 하였고 선처를 바랐다는 의미.





5) 경찰과 공안기관에서 연좌제를 들먹이며 가족을 압박하고 있음. 이 때문에 이병진 동지와 가족들이 크나 큰 고통을 겪고 계심.





6) 이병진 동지는 이 사건에 대해서 전주교도소 측의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청하고 있음. 재판이나 담당자 징계까지 가는 것은 현재로서는 원하지 않고 계심. 부당한 알몸 검신 문제의 본질에 있어 타협할 생각은 없으며, 이 문제에 있어 <석방 추진 모임>이 자신과 보조를 맞추어 진행해 가길 원하고 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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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7 독자편지 이병진, 최상철 2012-04-26 2555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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