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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기타 >
제목 <저자서문> “할매, 자랑할 기다!”
글쓴이 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몸짓 선언’, 자료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459
날짜 2012-04-26 조회수 2037 추천수 105
파일  1335441194_p.hwp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꼬맹이 시절











*1)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꼬맹이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의 일터에 함께 갔던 적이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물론 철 좀 들고 나서야 이해되고 재구성된 상황들이지만.





흔히들 몸빼 바지라고 부르는 걸 입고 머리에는 수건을 두른 할머니의 모습. 작은 건물을 짓는 공사 현장이었는데 시멘트를 바르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나가는 작업이 할머니가 하시던 일이다.





점심시간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난 그 공사장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라면을 먹고 있었고, 국물까지 쪽쪽 빨아 먹는 모습을 할머니도 역시 쭈그리고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할매는 와 안 묵노?”





“할매는 라면 싫어한다 아이가. 니 마이 무라”





그리곤 물을 한 대접 마시고 또 일을 하셨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할머니가 먹을 점심을 내가 빼앗아 먹은 셈이었고, 할머니는 그 물 한 대접으로 허기를 채운 채 다시 고된 공사장 일을 하셨던 게다.










내가 성인이 된 후에 할머니의 척추 뼈 중 하나가 아예 삭아 없어졌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그 굽은 등을 볼 때마다 왠지 그 날 내가 먹어버린 라면 한 그릇도 그 뼈를 삭아 없어지게 한 이유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렸었다.










그 날 일을 마친 할머니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서다 난 어느 한 장소에 꼿꼿이 서 버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문방구.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손엔 스프링 미사일이 탑재된 장난감 찦차 한 대가 들려 있었다. 그 찦차 하나엔 할머니가 쌓아올린 벽돌이 몇 개나 응고 되어 있었을까......









몇 해가 지나고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할머니와 함께 동네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낯이 익었다.





“어... 저거 할매가 만든 거 아이가?”





지금 본다면야 나즈막한 2층 정도의 건물이지만 당시 나로서는 무지하게 큰 건물이었던 동사무소 앞을 지날 때였다. 분명 저 쪽 어디께 계단에서 난 라면을 먹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건물 맞은 편 조그마한 문방구. 확실했다.





“맞재? 맞재? 할매가 만든 기재? 우와~~~”





그런데... 마치 보물섬이라도 찾은 듯 들떠 있던 나와 달리 할머니는 그 동사무소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굳은 얼굴로 오히려 내 손을 잡아채며 가던 걸음을 재촉하셨다.





“우와 내 아들(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저거 울 할매가 만든 기라고”





“으데...아들한테 말하지 마라!”





“와? 와 자랑하믄 안 되는데?”





“....... 그런 얘기 하는 거 창피한 기라...”





“........”










조금 철이 들고 나서야 그 때 할머니가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회에서는 공사판 막노동이 창피한 일로 여겨진다는 걸...










물론 난 여전히 억울했다. 그래도 자랑하고 싶었다. 저 건물 내 할머니가 만든 거라고.










다행인지 철이 좀 더 들고 나서는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자랑스러운 마음은 매우 정당한 것이었음을.





그 날 내가 맛있게 먹은 라면도, 나를 더 없이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 장난감 찦차도, 비바람 가리고 따뜻하게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집도, 건물도, 자동차도, 옷도, 신발도 모두 이 사회가 창피하라고 강요하는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내가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린 이유, 그리고 할머니가 끝내 자신의 노동을 창피하게 여기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진짜 옳음을 철저하게 은폐시켜야만, 따라서 당연히 거짓이 옳은 것이라고 말해야만 그들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자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이야기다. 그들은 노동하지 않는다. 노동의 반대편에 선 자들이 즉, 노동을 통해 진짜로 세상을 만드는 이들의 위에서 군림하며 빼앗고 있는 자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에, 그들의 지배가 정당하려면 어쩔 수 없이 노동은 창피해야 하는 것.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리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할머니는 눈을 감을 때까지 창피해하셨다.










이 서문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망설여진다. 도무지... 이런 글들을 세상에 ‘책’이라는 형태로 내놔도 되는 건지... 과잉으로 숨통 막히는 세상에 그저 과잉의 한 요소로 일조하는 꼴은 아닌지...





그럼에도 주변 분들의 추천과 응원으로 조금 쑥스러운 용기를 내어본다.





살아 계셨을 때 하지 못 했던 말. 늦었지만 이제라도





“할머니... 절대 창피한 거 아니예요. 손자 말 믿으셔도 돼요 ^^”라고 말하고파서...










이 책은 ‘노동사회과학 연구소’가 내는 월간지 ≪정세와 노동≫에 2009년경부터 꾸준히 기고해 왔던 글들을 묶은 것이다. 언젠가 채만수 선생님에게 제대로(?) 붙잡혀 하룻밤을 거의 꼬박 감금(?)되었던 적이 있다. 나름 다년간 수련된 ‘탈출’ 스킬을 남부럽지 않게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





어쨌든 생전 처음 보는 몇 도인지도 모를 술을 목전에 들이대고 있었던 터라 살아남기(?) 위해선 선생님의 두 가지 협박(?) 중 적어도 하나에는 응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협박 1 : ≪정세와 노동≫에 정기적으로 글을 쓸 것.





협박 2 : 결혼 할 것.





비타협적 투쟁을 삶의 원칙으로 삼아 오고 있었지만 앞서도 말했듯 상대 나름... 결국 협박 1에 타협하고 일단 살아서 그 집을 걸어 나온 일이 계기가 되어 이렇게 책으로까지 묶어낼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그 날의 협박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월간지에 꾸준히 써오던 글이라 소위 한 물 간 이야기들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현실이 그 기간 동안 뭐 그닥 크게 달라졌으랴 싶어 일단은 용기를 낸다.










이 글들은 지난 기간 살며 활동하며 사람들과 얘기 나누고 싶었던 단상들을 기록한 그저 그런 글들이다. 그래서 그다지 꾸미지도 않았고 투박하고 거칠다. 그냥 앞에 앉아 대화 나누는 기분으로 썼고 그렇게 읽히기를 바라기에... 너무 투박해 사실... 문법에 안 맞는 표현, 구어체 등도 많고.. 말줄임표도 많다. 혹 그런 식의 말글살이가 말글을 오염시키는 거라 여기시는 이들이 있으시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의 글들은 기본적으로 자본과 국가권력을 향해 하는 말들이 아니다. 난 적들을 비판하거나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만큼 비위가 좋지 못하다. 하기에 이 글들은 대부분 우리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노동자 민중의 편에서 투쟁하자는 놈이 뭐 이렇게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애꿎은 우리에게만 떠들어 대냐? 아, 나쁜 놈들을 비판해야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도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이 책은 결코 혼자 쓴 것이 아니다. 매회 글을 쓸 때마다 초고를 가장 먼저 읽고 아낌 없이 조언을 해 준, 사실상 같이 쓴 거나 다름 없는 우리 노동예술단 선언의 정은진 동지, 든든한 응원자이자 조언자였던 김정희 동지, 서미영 동지, 백일자 동지, 김건태 동지 등 우리 선언 식구들.





단 한번도... 원고마감 시간 맞춘 적 없고 늘 새벽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퇴고 한번 못 한 채 휙~ 글 날려도 언제나 웃으며 받아줬던 ‘노사과연’ 최상철 동지. 매달 글 나올 때마다 의견 주셨던 모든 분들, 편집해준 김재훈 동지, 표지 디자인 해준 이규환 동지, 그리고 각주만으로 책 한권을 집필할 기세로 지금도 내 옆에서 각주 작업과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이상배 동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각주를 읽는 재미가 이 책 읽기의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으리라 감히 말씀드린다.










모쪼록 이 책이 지금 세상을 단 1mm라도 노동해방, 인간해방 세상 쪽으로 움직이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라며.










2012년 4월 17일










목숨을 잃은 쌍용자동차 22분 동지의 대한문 옆 분향소가 또다시 저 자본과 국가권력에 무참히 짓밟힌 날 밤에, 그리고 1년 전에 내 곁을 영원히 떠나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은 밤에... <노사과연>











* 편집자 주: 이글은 “노동예술단 선언 ‘몸짓 선언’”에서 활동하는 박현욱 동지의 삶과 투쟁의 글을 모은 책, ≪정말로 그들이 각성하길 바래?≫의 저자 서문이다. 책은 노사과연에서 출판하며, 4월말에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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