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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저렴한 임금으로 피폭 노동을 하고 있는 일본 노동자들
글쓴이 번역: 임덕영 (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232
날짜 2011-07-15 조회수 3030 추천수 121
파일  1310734863_a.hwp

  













저렴한 임금으로





















[역자 주 : 이 글들은 일본 언론매체를 번역한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및 핵발전소 문제로 인해 일본 사회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피폭 노동자 문제가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되고 있는데, 그동안 핵발전소는 저임금 노동자들로 인해 운전되고 있었음이 폭로되고 있다. 핵발전소는 결국 노동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착취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장 1>은 6월 4일 개최된 한 심포지움의 발표글 ≪거기서 일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원전의 피폭노동의 실태>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현장 2>는 르뽀 형식으로 일본의 대표적 요세바(寄せ場)지역 중 하나인 가마가사키의 한 노동자의 체험이다. 그리고 <참고자료>는 번역자가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이다.]




















<현장 1> 일당 9000엔.





왜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의 임금은 저렴한가?










기사: Business Media 誠 6월 14일 자




















원전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높지 않다. 지진재해 전, 하로워크1)에 나온 구인표에는 “일당 9,000-11,000엔”이라고 적혀 있었다. 피폭 위험성이 있는 데도 왜 원전 노동자의 임금은 낮은 것일까. ≪주간동양경제≫의 현역기자가 그 이유를 밝혔다.





지금도 심각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선량이 높은 환경에서 원전 복구나 쓰레기 철거 등을 위해 도쿄전력의 사원과 하청 노동자의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사고 후 하로 워크의 웹 사이트2)에 “후쿠시마 제1원전 아르바이트 모집”이 게재되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원자력 발전의 청소, 복구 공사 보조” “방호복과 보호구 등을 주고 1일 3시간 정도의 작업” “임금은 일당 1만엔(3일 3만엔) ”





그렇다면 사고 전에는 임금이 얼마나 지불되고 있었던 것일까.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취재를 계속해온 ≪주간동양경제≫의 카자마 나오키(風間直樹)기자가 몇 겹이나 걸쳐있는 하청구조를 밝혔다.




















하청노동의 구조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 지방의 하로워크에는 이러한 “구인”이 나와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작업 내용은 원자력 발전소내의 정기검사․기계․전기․단금 용접 및 비계작업”










일급은 9,000엔~1만 1,000엔. 원전 노동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절대 높지 않다. 오히려 “저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원전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 구인란을 보면 “학력불문, 연령불문, 응모자격불문, 기술경험 불문”으로 모두 “불문”이라 쓰여 있다. 확실히 “몸뚱이 하나로 원전에 와라”라는 느낌의 내용이다. 또 사고 후에, 다른 원전 구인을 봐도 내용은 거의 다르지 않다.





많은 관계자들은 “원전은 하청 회사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다. 원전에서 전력회사 사원과 하청 노동자의 비율은 어떨까? 2009년도 데이터(원자력안전․보안원)에 의하면 일본 상업용 원전 노동자 가운데 전력회사 사원은 약 1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비해 하청 노동자는 7만 5,000명. 원전에서는 하청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도 도쿄전력 사원이 1,100명 정도인 것에 비해 하청노동자는 9,000명을 넘고 있었다.















위장도급이 계속된 이유










하청노동의 구조를 보면 먼저 도쿄전력 밑에 원청회사가 있다. 이 원청회사를 보면 도쿄증권 일부 상장 기업이 즐비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전에 노동자를 보내는 것은 1차-8차 하청회사이다. 구인표에 게재되어 있는 회사를 조사해보면 대부분이 사원 수 명의 영세기업이다. 원전에서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능력이 있지 않은 극히 보통의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취지를 해나가자 “역시로군”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었다. 원래 전력회사라는 것은 공공적인 색이 강하기 때문에 법 준수와 관련 시끄럽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도쿄 전력 밑에는 8차 하청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도쿄 전력이 하고 있는 것은 위장 도급(계약상은 업무 하청이지만 실제로는 인력파견인 상태)이며, 거의 위법행위에 가까운 것이었다.





왜 도쿄 전력은 그러한 위법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지방에는 원전에 사람을 파견만 하는 영세기업이 매우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회사는 서로 일을 주고 받으며 그 지방에 돈을 유통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현재 공공사업은 줄어들고 있다. 또 이른바 "마루나게(丸投げ)3)"로 돈을 뽑아내는 것은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전력회사는 지방에 돈을 떨어뜨려 주는 얼마 안 되는 "고마운 분"이 되었던 것이다.





통상 원전 작업 현장을 관리하고 있는 것은 2, 3차 하청의 정사원이다. 2차 하청 정사원 20대 남성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원전에서 4, 5차 이하의 하청 노동자들과 일하고 있다. 특히 정기검사 시기에는 20-60대 노동자가 많이 오지만, 그들은 그 회사에 속해 있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등을 이야기했다. 4, 5차 이하의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들었더니 하로워크에 써져 있었던 숫자(9,000엔-1만 1,000엔)와 거의 비슷했다.





도쿄전력이 하고 있는 것은 위장도급에 해당함에 분명하지만 왜 그런 것이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행정이 적발할 수 없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노동기준감독서(약칭: 노기서)가 현장작업을 하고 있을 때 들어갈 때 불시 검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한다. 노기서의 검사는 엄격해서 갑자기 들이닥쳐 서류를 확인하고 노동자를 모아서 이야기를 듣거나 한다. 왜 불시검사를 하는가 하면 회사가 좋지 않은 것을 숨겨버리기 때문에.





하지만 원전 안은 위험하므로 예고 감사를 할 수 밖에 없다.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단속"을 하기 힘든 현장이므로 오랫동안 부정이 숨겨져 왔던 것이다.















원전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증명서가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7차, 8차 하청 노동자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전에서 일하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들었더니 하로워크 등에서 신청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향 선배나 아는 사람에게 소개를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어떤 남성은 "고향 선배가‘누구라도 할 수 있는 현금 작업이다.’라고 소개 받아 이끌려갔던 곳이 원전이었다."고 말하였다. 이 남성의 경우 채용 면접이나 건강진단도 없었고, 안전 교육은 첫날 보여준 비디오 뿐이다. 고용계약서도 없고, 사회보험도 미가입이다. 생각해보면 이 남성은 "원전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증명서가 없게" 되는 것이다.





원전에서는 "산재신청을 할 수 없게 하는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건설업에서는 곧잘 있는 이야기지만, 거기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면 발주자로부터 두 번 다시 일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건설업의 경우 그 수가 많기 때문에 다른 직장을 찾아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력업계에서는 발주자가 도쿄전력 뿐이다. 도쿄전력에 주목을 받게 되면, 그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따라서 다른 산업에 비해 "산재신청을 할 수 없게 하는 힘"이 강한 것이다. 원전은 엉성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산재처리는 2008년도까지 32년간 48건에 불과하다.





1988년 칸사이 전력의 다카하마(高浜) 원전에서 소년 3명이 노동자 평균 약 5배의 피폭량에 해당하는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었다. 원전(관리구역 내)에는 미성년자 노동이 금지되고 있지만 소년은 주민표가 위조되어 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 소년을 알선했던 것은 교토부 내의 폭력단원. 소년들은 4차 하청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폭력단에 3할 정도를 뜯기고 있었다.





30년 전에 비해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보도사진작가인 히구치 켄지(樋口健二)씨에 따르면 "15년 전, 도쿄전력은 한 명당 7만엔의 일당을 주었지만, 뜯기는 돈의 비율은 8할을 넘었다."고 말한다. 왜 임금 수준이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하청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하청이라는 것은 각 단계에서 돈이 빠져 나간다. 엄청나게 많은 하청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장 2> 속아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 시킴을 당했다.


















기사: 주간금요일 2011년 6월 17일자 (851호)




















“이거 내 일이기도 해”










4월 17일 오전 8시 반을 지나 오사카 가마가사키(니시나리구)에 있는 “아이링종합센터”3층에서 정보선전활동을 계속해온 가마가사키 지역종합노동조합의 이나가키 히로시 위원장에게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이 센터는 아이링 노동공공직업안정소(이하 아이링 직안)와 (재) 니시나리 노동복지센터(이하 니시나리 센터)가 있는 건물로 가마가사키 노동자들이 취업활동이나 정보수집을 하는 곳이다. 여기에서 매일 아침 거르지 않고 "일본에서 유일한 직업 소개 업무를 하지 않는 아이링 직안은 직업안정법 위반이다" 등을 주장하는 유인물을 뿌리고 연설하고 있는 이나가키씨에게 노동자가 말을 걸어오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이 날 말을 건 사람은 T 씨, 62세. 손에는 이나가키 씨의 활동 동료 자유노동자연합(마츠바라수 아키라 평의회 의장)의 기관지 ≪자유연합≫ 4월 26일 자가 있고, 가리킨 것은 “속여서 피폭노동시킨 취업알선자를 용서하지 말자!"라는 소제목. '가마가사키의 일용노동자가 후쿠시마 원전(생략)에서 노동하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볼일이 있었던 이나가키씨는 같은 건물에 있던 마츠바라씨에게 T씨를 데리고 가서 상담을 할 수 있게 의뢰하였다. 마츠바라씨는 한 경로로부터 T씨의 이야기를 들어 4월 2일 자의 기관지에 속보로 보도하였지만, 본인을 만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T 씨는 이나가키 씨와 마츠바라 씨, 양측의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게 되어, 변호사 상담이나 피폭의료에 대한 상세한 의사의 진단, 핫토리 료이치 중의원 의원(사민당)과의 사실 청취가 실현되었다. 영웅시되고 있지만 어두운 곳으로 숨겨지고 있는 교토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사고처리의 어이없는 실태의 사례로서 표면화되었다.















온나가와는 후쿠시마가 아니다










T 씨가 본의 아니게 후쿠시마 제1원전 안에서 일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니시나리 센터에 붙어져 있던 호쿠리쿠 공기(工機)(주) (기후현 오가키시)의 '구인표'를 본 T 씨는 3월 19일 그 센터의 창구에 신청을 했다. 내용은 '후쿠시마현 온나가와' '10톤 덤프 운전수''임금 12,000엔''숙박비 총액 2,000엔'4)'고용기간 30일' 등이었다.





신청을 할 때 T 씨가 창구 담당자에게 "온나가와는 후쿠시마현이 아니다"고 말했더니 소개표에, 2개소였던 '후쿠시마'의 글자 위에 수정 테이프을 붙이고 자필로 '미야기'라고 고쳐썼다. 고용통지서의 '취업장소'도 동일하게 고쳐졌다. 니시나리센터는 구인 중개만 하고 구인내용의 확인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때 T 씨는 미야기현 온나가와의 피해지역에서 뒷정리에 참여를 한다고 생각하였지 원전에서 일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니시나리센터의 담당자에게 지시받은 대로 T 씨는 건강진단서를 팩스로 호쿠리쿠 공기에 보냈더니 점심에 그 회사에서 유닉5)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왔다.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더니 "절차는 니시나리 센터에 보낼 것이니까"라면서 바로 출발할 것을 요청했다. 토요일 그 센터는 오후부터 휴무이므로 주소를 물었더니 가는 곳은 구인처인 호쿠리쿠 공기가 아닌 아이치현의 아이니시 시의 닛키건설(주)이었다.





오후 1시 넘어 자신의 경사륜차로 오사카를 출발, 오후 4시쯤 닛키건설에 도착. 새로운 작업복과 방한복을 넘겨받아 갈아입었다. "현장에 4톤 유닉을 가지고 갔다가 오라."는 말 뿐 원전 일이라는 것은 물론 작업내용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자신의 차와 화물을 그 곳에 둔 채 T 씨는 쉴 틈도 없이 4톤 차로 닛키건설의 선도 차량과 함께 출발했다. 차에는 '긴급'이라는 표가 있었으며 작업종료 후에는 들고 돌아오라고 지시가 내려졌다.





20일 오전 6시가 지나 배가 고팠던 T 씨는 "아침은 어떻게 먹습니까"라고 닛키건설에서 동행한 사람에게 물었다. 일급에서 식사비 1,000엔이 제해진 계약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돌아가도 된다구" 라는 냉정하고 냉담한 말이었다. 자신의 차는 닛키건설에 있는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 화가 났다.















'안전교육'도 없다.










오전 8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대책거점이 된 J 빌리지(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 나라하마치)에 도착했지만 그때에도 설마 원전 사고처리작업을 시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원전 일이라는 것은 알게 된 것은 도쿄전력 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방호복과 방호 마스크를 쓰는 방법을 배울 때였다. 단지 거기에 있을 때에도 T 씨는 누구한테도 방사선 관리구역 내의 작업이라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사전 설명은 고사하고 필요한 '안전교육'도 일절 받은 적이 없었다. 약속이 다르지 않냐고 니시나리 센터에 전화를 하여 확인했지만 연휴여서 21일까지 휴무. 닛키건설의 차량도 돌아가 버렸다.





방호복과 방호마스크를 쓰고 쉴 새도 없이 그 날 오후부터 제1원전구내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방사선 계측기는 가지고 있지 않은 채였다. 타고 온 4톤 트럭을 5호기 남쪽의 구내도로에 붙였더니 차례차례 탱크로리 차가 온다. 그 급수구에 유닉을 조작하고 크레인에 호수를 삽입, 설치하고 '3호 순수(純水)탱크'로 물을 옮겼다. 탱크에 올라가 작업을 한 적도 있었다. 작업은 2인 1조로 하루 2교대. T씨의 작업상대는 아키다(秋田)에서, 또 한조는 2인 모두 홋카이도에서 왔다고 이야기했다. 3월 20일부터 4월 4일까지 2일 간의 휴일을 제외 합계 14일간 1일 3.5시간, 5시간으로 합계 66.5시간 노동하였다.





23일이 되어 겨우 방호복의 안에 계측기를 장착하고 그 날 작업을 끝내고 J 빌리지에 돌아올 시점에서 담당자가 계측기 체크를 하게 되었다. T 씨는 담당자가 소리내어 읽은 숫자를 기억하고 손에 들고 있던 봉투의 뒷면에 매일 기록 보관하였다. 이것에는 전지가 떨어진 23일을 포함하여 11일간의 누적 외부피폭선량이 1.298 밀리베르트. 이것만으로는 일반인의 연간피폭한도 1밀리베르트를 넘는 것이다. 계측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첫 3일간과 전지가 떨어진 것을 고려하면 2 밀리베르트에 가까운 누적 외부피폭량이 추측된다. 내부 피폭량은 측정하지 않는다.6)





그러던 와중 24일 오전에 니시나리 센터 담당자와 전화가 되어 T 씨는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하게 되었다. 니시나리 센터의 소개표나 고용통지서 내용하고 다르다."라고 항의했다. 니시나리 센터를 통해 같은 시기에 한 명이 더 호쿠리쿠 공기에 고용되었지만, 원전 내에서는 일하지 않고 있다. 그와는 여관(오노시)에서 함께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왜 자기만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납득할 수 없었다.





같은 날 오후 호쿠리쿠 공기에서 '가까운 다른 현장을 찾고 있다'는 답변이 있었다. 그때부터 12일이었던 4월 5일이 되어 원전 밖의 작업으로 바뀔 수 있었다지만, T 씨에게는 적극적으로 찾고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하복부에 수포가










건강상태는 어떠했을까? 3월 14일과 4월 22일 전리방사선장애방지규칙에 의한 건강진단을 받고 개인표를 받았다.





의사의 소견란에는 모든 것에 '이상없음' '취로 가능'이지만 3월에는 백혈구수 8170개로 매우 높았으며 4월에는 4810개였다7). 자각증상은 두통이나 피로감이 있으며 코를 풀 때 황색 농 같은 콧물이 나올 때도 있었다.





걱정이 되는 것은 하복부에 생긴 6밀리 정도의 수포다. 몸이 익숙해지기 전 5일 정도는 소변을 참지 못하고 "서서 눌 수"밖에 없었다. 방호복 앞의 지퍼를 내리고 고무장갑을 위에 덮은 군용장갑을 빼서 하복부를 잡고 용변을 보았다. 수포는 잡은 부분에 생겼고 지금은 하얗게 흔적이 남아 있다.





도쿄전력이 공표한 데이터의 수가 적어서 T 씨가 있었던 장소의 방사선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후쿠시마 제1서베이 맵'의 3월 29일 오전 8시 15분―9시 10분 측정치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매시간 0.15밀리베르트이다. 그렇게 강한 방사선이 하복부에 닿았거나 고무장갑에 오염물질이 묻었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T씨는 방사선 관리수첩8)을 가지고 있지 않다. 칸사이 노동자안전센터의 니시노 마사노부 사무국장은 "긴급사태여서 수첩없이 현장에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피폭기록은 남아 있기 마련. 문제는 방사선관리구역에서 일한다는 위험성을 주지(周知) 받지 못해서 장래에 (몸에) 무언가 있어도 본인이 알지 못하면 대처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T 씨의 대리인을 맡고 있는 오오카와 가즈오(칸사이 변호사회)는 "노동조건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과 위험한 방사선관리구역 내에서 작업시켰다는 두 가지의 권리침해를 당했으므로, 가장 먼저 이에 대한 구제를 해 나간다. 단지 호쿠리쿠 공기나 닛키건설이 잘못했다는 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다. 원래 아이링 직업안정소가 직업소개를 하지 않고 노동조건명시의 의무를 기본으로 하는 법령을 형해화시키고 있으며, 국가의 책임이 크다. 도쿄전력이나 원청 기업은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소에는 6명이 변호사단을 결성, 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핫토리 의원은 "방사선 계측기를 지참시키지 않고 단화로 오염수 가운데에 들여보내 피폭되는 등 도쿄전력의 사고처리현장의 엉터리 관리실태가 잇달아 명확하게 밝혀지고 있지만 T 씨의 건은 그 상징이다. 국가의 노동행정의 존재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며 5월 15일 외무위원회에서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였다.





해당 호쿠리크 공기는 본지의 취재에 대해서 "깊게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는 말 뿐, "(왜 그러한 것이 있었는 지) 지금도 확실한 원인은 본인 자신도 잘 모르는 것이 현 상태"(사카모토 마사유키 대표이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닛키건설의 대리인은 "닛키건설은 모집의 경위는 모른다.""당초는 (원전 이외의) 물 배송에 종사시킬 예정이었으며, 원전에 들어가는 것은 예정에 있지 않았다.""(허위 노동조건 제시에 대해서는) 닛키건설이 직접 모집한 것이 아니며 하청에 고용된 것. 하청 작업원을 종사시킨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배려가 부족했었다." 등이 담긴 팩스 문서가 도착했다. T 씨가 왜 원전에서 사고처리를 담당하게 되었을까, 두 회사의 회답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T씨를 후쿠시마 원전에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킨 것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5월 12일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T 씨는 '주의 깊게 상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되었다. 8월 재검사 예정이지만 이미 예전과 같은 평온한 날로 돌아갈 수 없다.





"속아서 원전에 이끌려가 일 시킴을 당했다. 너무하다."라는 T씨의 생각은 더해갈 뿐이다.





<참고자료 1>





히구치 켄지 씨는 현재에도 왕성하게 핵발전소 노동자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으며 아래의 책은 1981년에 발행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피폭자들"이다. 樋口健二를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관련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방영된 것인데, 일본어를 알지 못하는 독자들도 영어 자막과 영상을 참고하여 보면 대강의 내용은 이해가 될 것이다.












[참고] 樋口健二,『闇に消される原発被曝者』 三一書房、1981年5月의 책 표지







<참고자료 2>





원전 노동자 고용 싸이트 안내문





(출처:http://job.j-sen.jp/hellowork/job_3373229/)





이것은 고용 안내 싸이트에서 번역자가 직접 캡쳐한 것이다. 이 회사 이외에도 위의 고용 싸이트에서 원발(原発)을 입력하면 25건이 검색된다. 25건 모두가 원전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원전 지역민 대상의 복지 차원의 구인도 있음) 대부분 거푸집을 쌓거나 철거, 용접 보조 모집 내용이며, 번역한 싸이트의 월급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핵발전소에서 일한다는 것을 버젓이 내 걸고도 모집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현 일본 사회의 다양한 점을 시사하는 것 같다.

















































































































































모집직종





작업원(후쿠시마 제1, 2원전)





정리번호





(번역자 주: 생략)





업무내용





원자력발전소 내의 정기검사, 기계, 전기, 단금 용접 및 비계작업





고용형태





정사원이외





우편번호





(번역자 주: 생략)





근무지(주소)





후쿠시마현 후타마군 나라하마치 후쿠시마현 후타마군 오쿠마쵸





가장 가까운 역





미등록





근무시간





08:00-17:00





급여





일급: 9,000엔-11,000엔



 a. 기본급(월액평균) 또는 시간액 189,000엔 - 231,000엔



 b. 정액적으로 지불되는 수당



 a+b. 189,000엔-231,000엔



 c. 그 기타 수당 등 부기사항: 개근 수당 8,000엔





휴일 휴가





휴일: 토 일 공휴일



주휴: 매주



연간휴일: 113일





모집연령





불문





응모자격





불문





특징





학력불문/ 연령불문/ 통근수당 있음/



각종 보험 있음/ 마이카 통근 가능





스킬, 경험





불문





육아휴가취득실적





없음





통근수당





지급 없음





고용기간





고용기간 규정 있음(4개월 이상) 또는 12개월 계약 갱신 가능 유무 있음





구인조건에 관련된 특기사항





증원모집, 정사원등용 가능성 있음



임금마감은 말일, 지급은 다음달 말이 됩니다.





비고





 





 





 










1) 번역자 주: hallowork, 일본식 조어로 공공직업안내소





2) 참고자료 참고





3) 번역자 주: 공공기관이 자신의 일을 하청 주는 것





4) 원주 : 숙박 식사 등으로 일급에서 제해진다.





5) 원주 : 크레인을 장착한 트럭으로 (일본) 토목 건설업계에서는 일반명사화되어 있다.





6) 원주 : T 씨의 대리인 오오가와변호사가 닛키 건설에 방사선관리표의 개시 등을 요구하던 때에 6월 6일부로 동사의 대리인이 "도쿄전력으로부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내에 들어갔던 작업원에 대해 내부피폭검진실시의 통지가 있었습니다"라는 팩스문서가 도착했다. 6월 10일까지의 임의의 하루, 도쿄나 토치기에 집합해 나가타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자력 발전에서 검사, 교통비는 도쿄 전력 부담이라는 내용으로 T 씨는 10일 참가하였다.





7)편집자 주: 백혈구는 우리 몸에서 면역기능을 한다. 성인은 정상적으로 혈액 속에 5,000~1만 개/㎣의 백혈구를 가지고 있다. 백혈구는 주로 골수(전체 백혈구의 60%-70%)에서 만들어지는데, 하루에 100억개 정도가 만들어진다. 즉 세포의 분열이 왕성하고, 따라서 방사선의 피폭에 취약하다.





T씨의 경우 3월 20일부터 4월 4일까지 일하는 시기 동안, 백혈구가 3월에 8170개/㎣였던 것이 4월에는 4810개/㎣로 반으로 감소하고 있다. 방사선에 의해 골수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골수의 이러한 기능저하가 일시적인 것으로 회복이 될지, 그냥 그대로 일지, 아니면 더 악화가 될지는 미지수라 하겠다.      












8) 원주 : 방사선업무종사자의 피폭력 등의 일원관리를 목적으로 한 수첩으로 방사선종사자 중앙등록센터에 등록후 발행된다. 또 본지 6월 3일호 "관리수첩없이 현장작업시킨 도쿄전력" (마사노 아츠코씨 집필)에 의하면 동 센터에서 사고 후 방사선관리수첩을 발행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
















노사과연 사진은 첨부파일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2011-07-15 22: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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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 저렴한 임금으로 피폭 노동을 하고 있는 일본 노동자들...[1] 번역: 임덕영 (회원) 2011-07-15 3030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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