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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인도의 농업 문제들과 농민운동(1)
글쓴이 쉬브다스 고쉬 (Shibdas Ghosh) E-mail send mail 번호 231
날짜 2011-06-05 조회수 3068 추천수 93
파일  1307206431_인도.hwp

  













































번역: 제일호(회원)

























[역자주: 소개하는 글은 인도의 사회주의 단체인 SOCIALIST UNITY CENTRE OF INDIA(COMMUNIST)에서 발표한 글이다. 필자는 본 단체의 창립자이자 이론가인 SHIBDAS GHOSH이다. 원문은 http://www.suci-c.in/works3/agrarian/agrarian.htm 있다.





이번호에 1/3 조금 넘게 번역했는데, 남은 분량은 2회로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다. 각주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경우 원주이다.]















차례 




















1. 농민들 사이에서 회복된 베남토지(benam lands),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vested lands)와 경작이 가능하도록 만든 묵히고 있는 토지(fallow lands)의 분배는 농민운동의 주요한 과업이다.










2. 농민문제는 오로지 회복된 베남토지(benam lands),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와 경작이 가능하도록 만든 묵히고 있는 토지의 분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는 없다.










3. 오늘날 농촌의 삶의 기본문제는 방해받지 않는 산업화로 가는 길을 개방함으로서 모든 능력 있는 개인들을 위한 연중 고용 대책이다.










4.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질서는 국가가 방해받지 않는 산업화로 가는 길에 주요한 장애물의 구실을 한다.










5. 오늘날 우리나라의 농업혁명의 완수라는 과제는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과제와 얽혀져 있다.










6. 우리나라의 농업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이다. 















농업문제의 근본원인과 가난한 농민과 농업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문제를 분석하면서, 고쉬(Ghosh) 동지는 이 연설에서 인도와 같은 후진 국가에서 농업을 현대화ㆍ기계화시키고 대안적인 고용의 기회를 창조하는 것을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인 토지소유관계가 어떻게 막고 있는지에 대해 토론한다. 그런데 이것들 없이는 농업문제가 풀릴 수 없고 농촌의 향상이 성취될 수도 없다. 토론은 모든 인도의 끄리샥 오 께트마주르 상아산(All India Krishak O Khetmazur Sangathan)1)의 20번째 서벵갈 주회의(West Bengal State Conference)의 대표자들과 이루어졌다. 동시에 그는 인도의 자기색채를 가진 맑시스트 당들이 농민들의 모든 질병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서 그들 스스로가 제안한  토지개혁이 그러한 문제와 농민들의 비참한 궁핍들을 끝장낼 수 없다는 것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농민들의 나쁜 상황을 완화시키고 농민들 삶의 뜨거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반(反)자본주의 사회주의 혁명의 과업과 엮이어 있는지에 대하여 제기를 하였다. 그는 해방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진정으로 혁명적인 농민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방법을 계획하였다.




















동지들에게










여러분들은 3일간 계속된 끄리샥 오 께트마주르 연방(the Krishak O Khetmazur Federation)의 대표자 회의의 의회 회기에서 내가 이 결론에 대해 연설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신들은 여러 농촌마을, 여러 정치 분야, 이 비르붐(Birbhum)2) 지역의 여러 부분과 서벵갈의 다른 다양한 지역들의 대표자들로서 여기에 소집되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당신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인도 인구의 75%이상의 사람들이 농촌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농촌지역에 사는 이러한 수백만 명의 일반사람들은 많은 삶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선 내가 당신들에게 지적할 필요가 있는 주제들은 모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연중 내내 동안 일자리가 보장되는 문제가 오늘날 농촌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든 문제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중 내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법은 토지에서 농사를 짓게 하거나, 혹은 다른 종류의 일을 제공하는 것일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임금으로서 지불되는 최소한의 수입으로 그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쉬운 용어로 그것은 그들이 연중 내내 그들의 아이들을 먹여 살리며 병이 걸렸을 때 그들에게 약을 가져다주고, 적어도 오늘날 농촌에서의 삶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문제로서 이 두드러지는 것들 중에서 모두에게 주어져야만 하는 최소한의 교육을 그들에게 제공해주는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들은 다음을 알아야 한다. 공평한 분배의 원칙아래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들 사이에서 조테다르스(jotedars)가 쥐고 있는 베남(benam)3)토지의 회복, 묵히고 있는 토지를 경작가능하게 만드는 것과 정부의 소유로 되어있는 토지를 분배하는 이 모든 것은 의심할 바 없이 필수적이지만 주요한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가족의 유지를 위해 한 가족에게 할당될 필요가 있는 최소한의 토지의 양과 일 년 동안의 다른 필수적인 비용들을 고려해보면, 오늘날 인도의 농촌마을에 있는 전인구 사이의 분배를 위해 필요한 토지 분량은 많이 모자란다. 이것은 오늘날 농촌문제의 특징이 농촌의 대중들에게 오로지 토지를 분배하는 과업을 수행함으로서만이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농촌마을의 가난한 농민들의 빈곤을 끝장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들은 농민운동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이 사실을 특히 명심해야만 한다.















1. 농민들 사이에서 베남(benam)토지.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와 경작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묵히고 있는 토지의 분배는 농민운동의 주요한 과업이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함으로서 내가 그 필요성을 무시하고 있거나 거대한 조테다르스(jotedars)4)혹은 이전의 제민다르스(zemindars)5)의 점유아래서 불법적으로 유지되어온 최고한도를 넘어서는 모든 베남(benam)토지들을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들 사이에서 회복하는 것과 분배하는 것, 혹은 정부의 소유로 정해져 있었지만 정부 관리들의 묵과 속에서―사기를 통해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은―다른 사람들에 의해 전유되어 왔었던 모든 토지들을 할당할 것을 요구하는 농민운동의 한 가지 과제에 영향을 주는 것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와 베남(benam)토지를 회복하는 것, 묵히고 있는 토지를 경작가능하게 만드는 것과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들 사이에서 이 토지를 분배하는 것은 당신들의 농민운동의 정말로 주요한 과업이다. 내가 단지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비록 당신들이 모든 회복된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 베남(benam)토지를 회복하는 것과 경작하기에 알맞은 모든 묵히고 있는 토지를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들에게 할당을 하더라도, 농민가계를 위한 목표들을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토지를 그들 대부분에게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십 년 동안 인도의 모든 회의에서 그것을 계산해보았을 때 한 농가가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토지, 즉 경제적 재산은 지금 12비그하스(bighas)6)로 산정이 된다. 지금까지 계속 상승하고 있는 물가수준을 고려하면 수치는 15비그하스(bighas)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심지어 나는 이것을 제쳐놓겠다. 모든 베남(benam)토지는 회복되고, 모든 묵히고 있는 토지를 경작가능하게 만들고, 이것들과 함께 모든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가 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함으로서 모든 이용 가능한 토지와 농촌경제에 종사하는 인구들, 즉 계산에 포함된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의 숫자를 고려해볼 때, 나의 추정치로는 오늘날 이 토지의 크기가 재산을 경제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인도인구의 절반의 각 가정에 7에서 9비그하스(bighas)를 할당하는 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은 다른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은 어떠한 토지의 수취인도 결코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이 모든 토지를 할당한 후에조차도 농촌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연중 내내 실업의 상태로 남아 있거나 직업 없이 살아갈 것이다. 당신들이 그들에게 토지를 줄 수도 없었고, 그들은 일자리를 얻지도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들이 농촌마을에서 직업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들은 가정을 떠나야만 한다. 어쨌든 도시로 이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농촌마을의 사람들은 임금노동자로서 일자리를 찾으러 도시로 떼 지어 몰려가고 있다. 도시에서 역시 그들은 빈민으로 되어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짐꾼으로 일하기도 하는데 그 일로 생계를 벌 수는 없다. 혹은 어떤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서 길거리로 내몰려 살아간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농촌고향으로 돌아가고 농촌의 실업자나 반(半)실업자의 지위보다는 올라간다. 그러므로 토지를 분배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농민들을 구할 수가 없다.















2. 농민문제는 오로지 회복된 베남(benam)토지,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와 경작이 가능하도록 만든 묵히고 있는 토지의 분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는 없다.










또 다른 각도에서 문제들을 조사하는 것은 농민들 사이에서 토지를 분배함으로서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들의 문제가 풀릴 수가 없다는 것을 당신들이 이해하도록 도와 줄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내가 일찍이 그것을 지적한 것처럼, 토지분배의 과업을 실행하는 것은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들에게 토지를 이용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토지를 얻은 사람들은 그 토지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각 가정과 사회구성원의 수는 계속 증가를 하고 있지만 토지는 그 크기가 커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토지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한다. 토지생산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이용 가능한 토지에도 한계가 있다. 반면에 각 가정의 구성원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당신이 농민이고 9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이것을 가지고 당신의 가계를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다섯 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고 가정해보자. 혹은 당신이 정부가 지시한 기준을 따라서 세 명의 아이들을 가졌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당신의 토지를 세 명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라. 만약 그 아이들 중의 하나 혹은 둘이 여자라면 심지어 그때조차도 당신은 당신의 토지를 세 명의 아이들에게 평등하게 나누어 주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인도에서는 아들과 딸이 부모의 재산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한 상태처럼 오랜 관습의 무게에 짓눌린 많은 가정의 여성들은 그들의 요구를 주장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깨달음이 그들에게 여명을 밝힐 때 여성들은 자기들의 마땅히 지불받아야 할 몫을 요구할 것이다. 어쨌든 3명 사이에 동등하게 나누어진 9(bighas)의 토지는 각각의 몫으로 3(bighas)의 토지로 나누어진다. 시간이 지나 세 명의 아이들이 결혼을 하여 각각 세 명의 아이들을 가진다면 각각의 몫은 1비그하(bigha)의 토지가 될 것이다. 한 가족에게 그 가족이 1비그하(bigha)의 토지를 소유하느냐 소유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거의 차이가 없다.










둘째, 가난한 농민의 경우에는 1(bigha)의 토지수단을 가지는 것은 거의 유용성이 없다. 모든 가족들에게 3비그하스(bighas)의 토지가 할당된다고 하더라도 그 토지는 실제적으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왜냐하면 설령 가난한 농민이 그만큼의 토지를 할당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는 그 토지를 그 다음 해에 어쩔 수 없이 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3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가지고는 가계를 꾸려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는 단순히 그 토지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 결과 그 토지는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을 가진 구매자에게 팔리게 될 것이다. 정말로 이런 방식으로 대부분의 농민과 하층 중농들은 그들의 토지를 빼앗겨왔다. 20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을 때, 어떻게 이 농민들과 하층 중농들이 소유하였던 토지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났는가를 생각해보라. 당신들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벵갈(Bengal)에서 50년의 기근(the famine of fifty)7)동안 가난한 하층 중농들이 많은 토지를 팔아야만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당시에는 조테다르스(jotedare)와 대부업자들은 그들을 속이기 위하여 가난에 찌든 농민들의 극단적인 궁핍을 이용하였다. 또 다시 농민들은 대부금을 갚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시급한 필수품이 필요할 때나 혹은 감금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나 혹은 가족의 경조사 때의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그들의 토지를 저당잡힘으로서 버티어 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토지를 되찾을 수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토지를 빼앗겨버렸다. 그러므로 농민들이 2에서 3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이 처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해보라. 역시 농민들과 농업노동자들이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배경을 파기할 수 있겠는가? 소작농이 그가 할당받았을 2,3,6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가족의 능력있는 아들들이 대안적인 고용이 되지 못하고 그의 아들들이 버는 돈의 저축을 가지고 그가 가진 땅에 더 많은 땅을 더할 수가 없고 적절히 농사를 유지할 수도 없다면, 그는 다시 필수품, 질병, 경조사가 생길 경우 어쩔 수 없이 토지를 저당 잡히거나 팔고 이전과 똑같이 소작농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와 같은 후진국가에서의 자본주의 농촌경제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따라서 농업노동자와 소작농의 지위는 성장률에 따라 그날그날 부풀려지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가 가난한 농민들이 토지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법제화함으로서 해결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가난한 농민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주지도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체제에서 토지의 판매에 대한 그러한 합법적인 장애는 농업의 생산 그 자체를 방해할 것이라는 것이다. 2~3비그하스(bighas)의 토지는 가족을 위한 경제적인 재산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즉 최소생활비를 위한 적절한 재산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적절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때때로 그는 토지를 경작하지 않고 내버려둘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결과적으로 국가에서 식량위기가 발생할 것이고 농업생산은 퇴보할 것이다. 그리고 식량생산의 퇴보의 효과는 전(全)국가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자본주의경제에서 경제 그 자체를 위하여 토지를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을 막는 법은 실행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국가들의 예를 따라서 개인에 의한 토지의 구매가 현재의 환경에서는 금지되고 대신에 국가가 이 토지들을 구매해야만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국가가 이 토지를 구매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정부는 그러한 경우에는 토지를 경작하기 위하여 국가의 농업을 책임져야만 한다. 국가의 선도아래 우리나라의 농업에 기계화가 소개되어진다면 실업의 상태로 던져지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대안적인 고용을 제공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인도와 같은 후진자본주의 국가의 정부가 이 모든 토지를 구매하여 이 토지를 경작하기 위해서 대규모 국가농장들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도시 지역은 이미 실업자와 반실업자 군으로 꽉 차있는 중이며 그들의 증가비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서 농업을 기계화하려는 어떤 시도, 즉 트랙터-기계들을 가지고 농업을 현대화하려는 시도는 농촌마을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한방에 실업자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농업에서 실업의 상태로 던져진 수백만의 사람에 더해진 수십만의 도시 실업자들은 이 자본주의가 붕괴의 순간이 되도록 짓누르는 상황을 만들 것이다. 이미 첨예화되고 훨씬 더 악화되고 있는 실업문제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체의 생존을 위한 과업을 책임질 수가 없다. 현대의 트랙터-기계들이 아마 이 토지에서 어쨌든 살아가는 반쯤은 죽은 영혼 같은 농촌마을의 수천 명의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들이 착 달라붙어 삶을 유지하는 이 토지에 소개가 된다면 그들은 모두 잉여노동자가 될 것이다. 농사를 짓는데 트랙터-기계들의 도입이 시작되기 전에 실업이 계속 급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농민들이 제조소나 공장에 고용될 수가 없다. 심지어 상황이 산업에 고용된 사람들조차 삭감되고 있거나 해고되고 있고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는 나라의 농촌에서는 고용의 기회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농촌출신의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트랙터-기계들을 가진 농업의 현대화를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진다면 어쨌든 자본주의는 결코 그 존재를 유지할 수가 없다. 이것은 지배하고 있는 부르주아들이 이 죽어가는 반동적인 자본주의체제의 목숨의 임대를 가능한 한 길게 늘이고자, 녹색혁명, 일본식 경작방법, 대만식 경작방법, 기적의 볍씨, 기타 등등과 같은 수많은 완화제들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획들을 가지고 아주 많은 다양한 시도들이 소량의 땅에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곡물들을 재배할 수 있느냐와 얼마나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는지의 마술이 작용하도록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매년 수천만 루피(Crores of rufee)의 크로레8)가 이 모든 것을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트랙터-기계들을 가진 대규모 농장이나 국가농장을 위한 계획을 따라잡겠다는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므로 현상을 유지하려는 자본주의경제질서와 자본주의국가 때문에 이 길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반쯤 성숙한 농업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문제는 필수적으로 반(反 )자본주의 사회주의혁명의 달성이라는 과업과 섞이어 엮어져 있다.










이 토론에서 당신들은 농촌마을의 가난한 농민가족들의 각각의 능력있는 개인들을 위해 고용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단지 토지를 분배함으로서 농촌의 삶의 고통이 끝날 수도 없고 농민들이 생존할 수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토지의 할당에 의해서이든지 혹은 다른 수단들에 의해서이든지 간에, 고용을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 농촌의 삶이 직면하고 있는 기본문제이다. 농촌마을의 모든 개인들이 충분한 임금을 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연중 내내 고용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그들의 궁핍함이 현재의 차원에까지 도달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몇몇의 영역에서 현재의 부르주아정부에 의해 규정된 산업노동자들의 최소임금은 사회적인 정의의 원칙 위에 고정되지 않았었다. 그런 식으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규정된 임금은 오늘날의 치솟는 물가수준을 고려하여 더 높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것조차도 내버려두자. 2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가지지 못한 가족의 모든 능력있는 개인들에게 250에서 300루피(rufees)의 월급이 연중 내내 주어진다면 그들의 고통이 그렇게 아주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와는 달리 심지어 12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가지고 있지만 8명에서 10명의 자녀들을 가지고 있으며 대안적인 일자리가 없는 가계는 연중 내내 2평방미터의 곡물가루로 해결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의료 혹은 교육을 위한 비용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역시 내가 일찍 강조하였다시피 베남(benam)에 속하거나 혹은 적절히 할당되지 못한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이거나 혹은 묵히고 있는 토지이면서 경작가능하지 않게 되어있는 모든 토지들을 회복하거나 분배하기 위한 운동을 당신들이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시 내가 농민운동의 현 단계에서 그것의 중요성을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비록 조금일지라도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슬픔과 고통을 경감시키고 농촌사람들의 구매력을 향상시킬 때 이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의 관점은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3. 오늘날 농촌의 삶의 기본문제는 방해받지 않는 산업화로 가는 길을 개방함으로서 모든 능력있는 개인들을 위한 연중 고용 대책이다.










그래서 의심할 바 없이 회복된 베남(benam)토지의 분배,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의 동등한 분배와 이전에는 묵히고 있던 경작 가능한 토지의 적절한 할당은 농민운동의 중요한 문제이지만 농민운동의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의 정황에서 농민운동의 핵심적인 문제는 농촌마을의 잉여인구와 농촌의 실업이나 반(半)실업인구에게 고용을 제공하기 위하여, 농업의 현대화와 기계화를 통하여 농업경제를 발전시키고 나란히 산업화로 가는 길을 개방하는 것이다. 즉 회복된 베남(benam)토지와 경작 가능하게 된 묵히고 있었던 토지의 공정하고 적절한 할당과 소유권이 정해진 토지의 동등한 재분배의 프로그램을 추구하여, 농업노동자, 소작농과 가난한 농민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토지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토지를 할당받을 수 없었던 농촌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용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문제이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농촌마을의 모든 능력있는 개인들에게 고용을 제공하느냐? 와 누가 제공을 할 것인가?이다. 그러한 종류의 고용을 창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적인 산업화로 길을 여는 것이다. 공장과 제조소가 건설되고 산업발전이 지체없이 계속된다면, 즉 완전한 규모의 산업화로 가는 길을 개방한다면, 그때 기계화와 산업화를 위해 농업경제에서 역시 여러 시도들이 함께 계속될 것이다. 농촌경제에서 부수적이고 보조적인 산업들은 농업생산성이 빠르게 성장하는 농촌지역에서 발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농업의 현대화와 과학적인 발전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싹텄던 산업에서는, 다른 농민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토지를 할당하여 토지가 없어진 사람들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산업의 발전이 이웃도시지역에서 이루어진다면 여전히 실업의 상태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흡수될 것이다. 상황이 진전됨과 함께 어떤 가족들의 능력 있는 개인들이 실업의 상태로 남는 경우는 없었다. 모두가 흡수되었다. 그러한 경우에 한 가족이 얼마 만큼의 토지를 소유하였든지 간에, 그들은 그 토지를 경작할 것이고 그 토지의 경작을 통해서 어떤 필수품들이든지 간에 모두 채워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경작에 종사하고 있지 않는 가족의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들을 가지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모든 수입과 함께, 농업은 발전할 것이고 기계화와 산업화는 가능하게 될 것이며 농업생산성은 증대할 것이다. 그리고 농촌마을의 모습은 급속히 변할 것이다. 전기가 농촌마을로 들어올 것이고, 길이 건설될 것이며 병원과 학교가 설립될 것이다. 스포츠와 게임을 위한 설비도 갖추어질 것이고 문화적인 행사들이 개최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인식되어지면 농촌마을의 현재의 모습―소위 말해 뱀과 개구리들이 득실거리고 유령의 출몰지 같은―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때 농촌마을은 사람들의 거주지로서 적합하게 될 것이다. 농촌과 도시의 너무나도 큰 차이는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농촌마을이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도록 하기위한, 농업의 기계화와 현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농촌마을의 향상을 위해서, 당신들은 농촌산업의 발전과 능력있는 모든 사람들을 고용하는 대책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당신들은 이 문제의 해결책이 인도자본주의국가와 자본주의경제로부터 냉혹하게 발생하는 위기에 대한 해결책과 얽히고설킬 정도로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당신들이 현재의 자본주의국가와 자본주의경제를 제거함으로서 사회주의국가와 사회주의경제를 건설하지 못하면, 단지 당신들이 현재의 토지분배의 프로그램에 영향을 준다고 해서 이 나라의 방해받지 않는 산업발전의 길을 열수는 없다. 그리고 당신들이 이것을 실행할 수 없다면 농촌마을의 모든 능력있는 사람들에게 고용대책을 만들어 줄 수도 없고, 그들의 가난과 고통은 제거될 수도 없다. 그리고 농촌마을의 현재의 상황이 향상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 수도 없다.















4.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질서는 국가가 방해받지 않는 산업화로 가는 길에 주요한 장애물의 구실을 한다.










인도의 생산체계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위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즉 생산이 여기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농업에서든지 공업에서든지 최대의 이윤을 벌어들이는 동기를 가진 사적소유의 통제 아래 생산이 발생한다. 이 문제9)는 공업생산에서의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문제는 농업에서는 덜 심각하다. 당신들이 알다시피 사적소유자들이 최대이윤의 기초위에서 제조소와 공장의 모든 공업생산품의 가격을 결정하고, 사적소유자들은 이런 물건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때만이 시장에서 이러한 제품들을 판매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선 우리나라의 전체인구 중에서 농촌지역에서 땅에 밀착되어 살아가는 인구가 75%~80%이기 때문에 인도의 모든 농촌인구의 51%~55%의 사람들이 소작농이거나 농업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대충 줄잡은 평가이다. 실제로는 그 수치는 훨씬 높다. 그들 중의 대다수는 연중 내내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는 실업자와 반(半)실업자들이다. 게다가 가난한 농민들, 즉 2~3비그하스(bighas)에서 6~7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가진 사람들은 15%이다. 뿐만 아니라 6~7비그하스(bighas)에서 15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가진 중하층농민들은 역시 15%내외다. 그것은 바로 농촌인구의 85%의 사람들이 연중 내내 일자리가 없는 프롤레타리아에서 반(半)프롤레타리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루에 두 끼의 충분한 식사도 차릴 수가 없다. 이러한 농촌인구의 85%는 거의 0의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 혹은 우리는 그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여성들에게는 약간의 누더기들, 입기에는 가장 낡은 것, 옷을 사기 위해서나 두 번의 빠듯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즉 단지 이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위하여 그들은 힘을 써버리고 있다. 어떻게 그들이 그들에게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한 공산품들을 구매할 여유가 생기도록 할 수 있을까? 어디에 그들의 구매력이 있을까?










두 번째, 현재의 경제체제에서 모든 필수품들의 상승된 가격수준을 고려해볼 때 도시지역의 제조소와 공장에서 일하며 월말에 월급을 받는 모든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그들이 이전에 벌었던 것과 비교를 해보면 너무나도 낮았다. 물론 수치에 있어, 즉 돈에 있어 그들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올랐다. 그러나 상대적인 물가수준을 고려해보았을 때, 사람이 그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귀를 닫지 않거나 혹은 약간의 숨은 동기와 기득권의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실질임금이 많이 낮아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하루에 1루피의 벌이를 가지고 절실한 물건들을 조달하는지를 비교해보았을 때, 그는 오늘 그의 임금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 기분이 좋아졌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적절한 생활을 하기 위한 모든 필수품들의 가격을 고려해서 노동자의 최소임금을 계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불되는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헐벗은 상태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며, 가진 자들의 기계 바퀴를 헐떡거리며 돌릴 정도의 수준에 고정되어 있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결핵과 접촉하는 악취가 나는 빈민가에서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겨우 살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가 가장 빠듯한 필수품을 겨우 충족할 수 있는 최저임금이 그의 임금으로서 포함된다. 반면에 심지어 일반적인 가계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필수품들의 가격과의 조화 속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어졌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서 국가는 건설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국가에서 노동에 대한 임금이 고정된 이 기준을 따르는 국가는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상황은 더 나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제조소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민의 대다수는 필수적인 공업생산품을 구매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는 도시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는, 교육을 받거나 중간정도의 교육을 받은 수백만의 사람들은 전혀 구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연히 이런 상황 속에서 대다수는 구매력이 부족하고, 그들이 거의 가지지 못한 구매력이 계속 하강을 하든지 간에 시장은 산업의 소유자들을 위해 아주 많이 압박을 받고 있다. 매일 이 시장은 더욱 더 압박을 받고 있다. 우선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전세계자본주의체제와 더불어, 전세계사회주의 체제와 전세계사회주의 시장이 출현했기 때문에, 오래된 전통적인 전세계자본주의 시장은 엄청날 정도로 압박을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국가들이 그 나라들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를 함으로서 착취를 했던, 예들 들어, 인도와 같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신생독립국들은 전세계자본주의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로서 나타났다. 이러한 국가들의 출현과 함께, 나중에 이 국가들은 이 국가들의 경제를 개조하였다.  그리고 이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제국주의의 사슬과 식민지의 노예화로부터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던 전세계자본주의 시장은 더 큰 압박의 고통을 받고 있다. 이것은 차례로 전세계자본주의 시장의 위기를 더욱 더 악화시키고 있다.










세 번째, 전세계자본주의 시장이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빠져들었던 위기의 성격과 특징은 이전의 모든 위기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여러 기간에 나타났던 모든 위기에서는 전세계자본주의 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누렸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의 성격은 과거의 안정성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기는 하루가 다르게 아니 시간이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세계가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의 통제 아래 있는 동안에 조차, 시장을 움켜쥐려는 노력 속에서, 그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두 번의 세계대전 못지않은 싸움을 그 국가들이 벌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극단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전세계자본주의시장의 현재 상황에서, 상황이 인도와 같은 후진 자본주의국가의 산업소유자가 그들의 의지대로 선진자본주의국가들과 경쟁을 하며 그들의 공산품을 팔수가 없다는 것이다.















5. 오늘날 우리나라의 농업혁명의 완수라는 과제는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과제와 얽혀져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이 전세계자본주의시장의 상황이기 때문에 인도의 자본가들은 그들이 만든 생산품을 팔 수 있는 작은 시장조차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계속해서 생산을 증가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전에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 시장의 부재가 그 국가의 인민들이 구매의 어떤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혹은 그들이 구매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나라의 가난한 농민들이 입고 있는 유형의 옷들을 보자. 그들은 좋은 옷을 입고 싶지 않겠는가? 그들은 그들의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옷을 입히기를 원치 않는가? 주위의 누군가가 라소골라스(rasogollas)10)를 먹고 있을 때 가난한 농민 자신도 라소골라스(rasogollas)를 먹고 싶지 않겠는가? 그들은 그들의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무엇으로 그렇게 할까? 그들이 가진 수단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무능력의 비통함을 털어버리기 위하여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신에게 빌며 신의 의지에 그것을 맡기거나 혹은 의미없는 위조통화에서 위로를 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아이들에게 한 덩어리의 설탕이나 혹은 10구르(gur)11)를 줌으로서 아이들을 만족시키려 노력한다. 어떻게 그들이 좋은 재화를 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어떻게 국내의 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산업의 발전이 방해받지 않고 진행될 수 있을까? 어떻게 새로운 산업이 부각될 수 있을까? 그와는 반대로 새로운 산업의 부각이 될 수 없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현재 자본주의경제체제 위기 아래에서의 시장의 위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현존하는 제조소와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후진 국가들을 위해서는 새로운 동기부여를 가지고 산업화를 실행시킬 필요성이 있었던 반면에, 그것은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의 기초 위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벌어들이는 동기를 가진 국가들에서의 지배적인 생산체제이다. 한마디로 오늘날 방해받지 않는 산업의 발전에 주요 장애물로서 서 있는 지배적인 자본주의체제. 그러므로 이 장애물이 제거될 수 없다면 우리는 방해받지 않는 산업의 문을 열 수가 없다. 그리고 이 과업이 완수되지 못하는 한 우리는 현대화, 기계화된 농업과 연중 내내 전(全) 농촌 인구에게 고용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농업혁명의 절반의 과업도 완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농촌의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고 방해받지 않는 산업의 발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의 경제체제, 즉 자본주의경제체제, 한마디로 최대의 이윤을 버는 생산관계를 가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진행되는 체제를 끝장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국가와 자본주의정부를 제거하기 위해서 노동자와 농민의 지배가 수립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경제체제를 대신하여 사회주의체제가 수립되어져야 한다. 즉 한마디로 이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신들은 반자본주의 사회주의혁명을 조직해야만 한다. 그러나 맑스-레닌주의를 주장하는 당들 중에서 사실 우리당 인도사회주의연합중심(SUCI)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으로 반자본주의혁명을 지지하는 정당은 없다. 물론 인도공산당(맑스주의  파)(CPI(M))뿐만 아니라 인도공산당(CPI)도 공개적으로 반자본주의혁명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인도의 착취당하는 대중들, 즉 노동자, 농민과 하층중산층 대중들의 주요투쟁은 독점자본과 봉건제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인도와 같은 자본주의국가에서의 반독점과 반봉건 투쟁이 진정한 의미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도록 하자.










명심하자. 전체적으로 이 착취가 유래한 곳은 바로 자본주의체제이다. 반면에 전체적으로 자본주의국가와 자본주의질서를 전복하는 것을 주장하는 대신에, 전체적으로 한줌의 독점자본가에게 이 자본주의적인 계급착취의 부담을 지우고 있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착취의 성격 그 자체를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독점자본주의는 단지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반자본주의혁명의 강령을 가지지 못하고 독점자본과 싸우는 그들 모두의 과업이 텅 빈 구호 속으로 줄어든다면 그것은 날조된 구호이다.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12) 역시 독점자본에 반대하는 연설을 한다. 짜뜨라 빠리샤드(The Chhatra Parishad)13)와 청년 의회(The Youth Congress)14)도 역시 독점자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은 역시 전체적으로 몇 안 되는 독점자본가들의 어깨 위에 모든 부르주아의 부도덕함이라는 부담을 옮겨 놓음으로서, 전체적으로 대중의 분노로부터 부르주아 계급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인민민주주의 이름에서든 혹은 민족민주주의의 이름에서든지 간에, 몇몇의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자본가 계급을 보호하는 데 몰두한다면 맑시즘의 깃발을 날리는 것과 한줌의 독점자본가에게 부르주아계급의 착취라는 부담을 옮겨놓는 그들의 진정한 동기는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와 같음에 틀림없다.










둘째, 이 두 당의 봉건제 반대투쟁을 위한 구호는 텅 빈 구호와 다름없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얼마나 후진적이든지 간에, 자본주의적인 착취는 주요한 특징이고, 농업경제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질러지는 착취도 자본가들이 저지르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농업경제를 분석해 보면 명확하다. 단지 논쟁을 위해서 우리가 잠시 동안 이 당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농업경제에서 봉건적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레닌주의(Leninism)를 배우는 모든 학생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나라의 민족부르주아들이 국가권력을 강탈하는 순간 바로 인도는 부르주아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업경제에서 봉건제가 계속되고 있든 계속되고 있지 않든지 간에 혁명의 주요대상은 부르주아국가를 전복시키는 것이 된다.















6. 우리나라의 농업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농업경제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보도록 하자. 앞서의 토론으로부터 우리나라 농촌인구의 대략 85%의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토지를 상실하거나 혹은 점차적으로 토지를 상실한 프롤레타리아나 반(半)프롤레타리아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다소 잘사는 중간층 농민들, 즉 대략 10%~11%를 차지하고 있는 15~60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더했을 때 남아있는 5%~6%의 농촌인구의 손에 우리나라 전체 토지의 55%~60%가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한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토지의 대부분이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며, 반면에 다른 측면에서는 농촌인구의 대부분, 즉 85%가 농촌프롤레타리나 반(半)프롤레타리아의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는 특징을 지운다.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에 대한 소량의 지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자본주의경제의 냉혹한 법칙을 따르는 것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두 번째, 그것은 당신들에게 저질러지는 착취와 억압의 근본원인은 바로 자본주의경제체제와 인도라는 자본주의국가라는 것을 당신들은 깨달아야만 하고 계속해서 명심해야만 한다. 도시의 공장에서든지, 혹은 농촌의 토지에서든지 간에, 생산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기초 위에서 어디에서나 실행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도시지역의 공장에서 생산의 기초로서 생산관계의 특징이 소유자-임금노동자라는 것을 쉽게 이해한다. 역시 우리나라의 농촌 지역에서도 이 생산관계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소유자-임금노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국인 인도에서는 농촌지역의 소유자-임금노동자 관계의 형태는 사람들의 특이함, 지역과 종교의 특성에 달려있으며 이곳저곳에서 모두 다르다. 반면에 현재의 모든 곳에서 그것의 기본적인 특징은 소유자-임금노동자의 관계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노동자들은 월급을 받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노동자들은 일급을 받는다. 몇몇 지역에서는 농업노동자들이 심지어 각각 1~3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임금노동자들이다. 그들 중의 몇몇은 부분적으로 돈이나 음식으로 지불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돈으로 된 임금을 대신하여 곡물을 몫으로 받는다. 이 나라에서 우리는 이것을 노동자의 몫-소작농유형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그들 중의 몇몇은 1~2비그하스(bighas)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오늘날 후진자본주의경제에서는 인민들의 지역과 특이함의 특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은 똑같은 소유자-임금노동자의 형식과는 단지 다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토지에서 임금노동자로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의 사이클 속에서 소유자-임금노동자의 바로 이 관계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고 불리어진다.










역시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당신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농촌경제에서의 생산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기초 위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그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경제법칙은 자본가-임금노동자 생산관계에 기초를 둠으로, 자본은 자본의 투자에 의해 성장을 한다. 그것이 토지, 혹은 공업에서의 투자이든지 간에, 자본을 투자함으로서 생산을 통해 자본을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자본가들은 자본을 투자하고 제조소와 공장에서 재화를 생산한다. 시장에서 상품을 판매함으로서 그들은 투자된 자본을 초과하는 양의 이윤을 산출해낸다.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자로부터 충분한 임금을 박탈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함으로서 이윤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소위 자본주의이다. 이제 우리 농촌경제의 특징을 살펴보자. 봉건제에서 토지의 소유자들은 그들의 소비를 위해 생산을 하는 것처럼, 다른 생필품들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지역시장의 법칙에 따라 지역시장에서 그들의 생산품의 부분을 팔 것이라는 것은 바로 오늘날 농촌경제의 특징이다. 그렇지 않다면 토지의 소유자들이 국가시장의 요구들에 대한 눈을 가지고 토지에서 생산을 하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농촌마을의 농업생산물의 가격은 각 지역시장의 법칙이라는 견지에서 고정된 것일까? 혹은 오늘날의 농업상품이 국가시장의 상품으로 바뀐 것일까? 라디오를 켜보라. 그러면 당신들은 오늘날 모든 생산품들이 공유시장에 의해 통제되고 있고, 반면에 시장과 주식이 교환되고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토지소유자들은 그들이 정한 고정된 가격에 따라 그들의 생산품을 팔고 있고, 그들은 그것에 의해 그들의 자본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역시 토지는 공장이 그러한 것처럼 자본투자의 수단과 도구로 바뀐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토지에서 자본의 투자를 통해 자본이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본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일찌감치 그것을 지적하였다. 토지에서 투자를 통한 토지소유자들에 의한 농업상품의 생산을, 그것의 형태가 지역과 사람들의 특성과 특이함에 의존하는 것이든지 간에, 소유자-임금노동자의 관계 위에서,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위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몇 안 되는 사람의 수중에 대부분의 토지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특징짓는다. 그리고 농촌마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와 반(半)프롤레타리아의 수준으로 계속 떨어지는 것, 토지가 자본투자의 수단으로 바뀌는 것, 소유자-임금노동자 관계의 기초 위에서 발생하는 농업생산, 무엇보다도 농업생산품이 국가시장의 상품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모든 것들은 인도의 농업경제가 전체적으로 자본주의경제임을 증명하고 있다. 인도의 자본주의가 아무리 후진적이고 개발도상에 있다고 해도, 문화적 삶과 농촌에서 인간관계의 관습이나 행동양식에 봉건적인 것이 남아있는 것은 제외한다면, 토지관계나 농업에서의 생산관계에서 봉건적인 관계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지역과 사람들의 특이함과 특성의 차이로 나타나는 형태가 무엇이든지 간에, 자본주의적인 농업생산관계가 발생을 하였고, 농업상품에 있어 무역과 상업이 자본주의국가시장의 법칙에 따라 역시 운영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농업이 트랙터-기계들을 가지고 실행되지 않았거나, 혹은 인도의 문화적 삶과 농촌관계에서 낡은 봉건적 관습과 습관의 잔존물이 있다는 배경 위에서, 우리나라의 농업경제가 자본주의경제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시대에 후진국가의 농업경제로 침투하는가에 대한 전적인 무지를 과시한다. 18세기에 자본주의가 진보적이었을 때 세계의 혁명은 자본주의 혁명의 무대였다.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종교, 다른 한편으로는 봉건제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을 통하여 큰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와는 달리 광대한 규모의 생산과 산업화의 혁명적인 변환은 자본주의 그 자체의 기초 위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공업화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원료의 공급을 위해 트랙터-기계들을 가지고 농업으로 침투하였고 공업으로의 흡수를 위해 농촌사람들의 대다수를 잉여노동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시대에 자본주의는 반동적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세 번째로 심각한 세계시장의 위기에 빠져있다. 그래서 새로운 산업들이 생겨나 고용을 창출하면, 기존의 산업은 축소되거나 폐업하게 된다. 시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업문제의 더 심한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논리로 인해 트랙터-기계들을 통한 농업의 현대화와 기계화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자본주의 그 자체의 이윤논리 때문에 자본가들이 트랙터-기계들을 가지고 농업을 현대화하는 것을 계속 진행시킬 수 없다는 배경 하에서, 어떻든지 간에 우리나라의 농업경제가 자본주의경제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이 후진적이고 개발도상중인 경제로 침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봉건적인 관계를 깨부수는 것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실업문제가 이 질서를 붕괴시키거나, 현존하는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혁명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위하여, 자본주의는 농촌사람들의 대다수를 토지에 묶어 놓으려는 노력에 몰두하고 있다. 농촌마을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단 한방에 실업의 상태로 던져진다면 이 거대한 실업자군은 도시와 농촌마을에서 폭발할 것이고 어떤 국가장치의 종류도 그 상황을 구제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이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는 산업화에 도움이 되는 농업체제의 완전한 현대화와 기계화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자본주의는 헐벗고 반(半)기아상태인 국가에서 농촌의 경제에 인민들의 다수를 묶어놓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의회의 토지개혁프로그램, 지배부르주아의 대행기관, 토지개혁의 문제에 대한 민족민주주의혁명과 인민민주주의혁명의 신봉자들의 접근과 프로그램은 단지 이 음모의 계시일 뿐이다.










두 번째, 이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한 이후로 국제적인 수준의 부르주아들이 극단적으로 반동적으로 되었던 시기에, 이 자본주의가 종교와 봉건제와의 타협 속에서 성장을 하였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는 후진국가가 되었고 관습과 습관에 남아있는 봉건적 잔존물은 마치 금속에 섞여있는 불순물처럼 농업생산의 과정에서 기초적인 자본주의관계와 착취의 혼합물처럼 존속한다. 이러한 경우에 누구에게 일격을 가할까? 봉건제의 잔존물 혹은 자본주의 둘 중에서 어떤 것이 착취의 근본원인일까? 이러한 환경에서는 부르주아에 반대하여 채택한 수사가 무엇이든지 간에,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을 지지하는 대신에 후진국가에서의 자본주의적 착취에 남아있는 혼합물로서 봉건적인 잔여들을 존속시키는 모든 것에 일격을 가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착취 그 자체에 대하여 변명을 하고 있다. 당신들은 이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당신들은 노동자, 농민과 하층중산층들의 혁명적인 투쟁에 대한 주적은 우리나라의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부르주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그것에 의해 참된 진실을 숨기고 주적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이 문제를 넘어서는 혼란을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이 일을 잘못 이끌려고 노력하며, 사소한 문제들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들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맑스-레닌주의자라고 주장할 때조차도 실질적으로 인민을 타락시키고 있다. 그래서 모든 각도에서 보면 농민들 삶의 세 가지 문제 중에서 한 가지는 매일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잉여인구, 토지를 할당 받을 수 없는 사람들과 회복된 토지의 분배 후에 잉여인구가 될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적절한 고용대책과 관계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농업의 현대화나 기계화와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기본문제의 해결책은 산업혁명의 문제와 산업이 방해받지 않는 발전으로 문을 개방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단지 우리들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의 생산과 이윤동기로부터 자유로울 때, 반자본주의혁명의 힘을 가지고 자본주의국가와 자본주의경제체제를 전복시킬 때, 우리들의 산업의 방해받지 않는 발전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맑스-레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한 당이 역시 채택해왔었던 내용과 당의 토지개혁정책의 기본적이고 유일한 강령으로서 경작자들에게 말해왔었던 내용을 누설한다면, 여러 상황과 여러 접근 속에서, 그들이 농촌 사람들의 대다수가 원시적인 비(非)문명화된 사람들의 반(半)기아와 반(半)빈곤 상태인 3비그하스(bighas), 혹은  1과1/2비그하스(bighas)에 묶여지도록 노력하는 것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명의 임차를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자본가들의 정치적인 대행자들의 유일한 과업일 수가 있다. 이것은 분명 맑스-레닌주의자들의 과업이 아니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은 농업의 발전을 원하였다. 그들은 농업의 현대화와 기계화를 지지하였다. 그들은 그 일 때문에 전체적으로 죽어가는 체제를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자본주의는 주된 장애물로서 이러한 파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굴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자본주의를 제거하였다. 동시에 그들은 토지를 경작자들에게라는 구호의 목소리를 냈고, 농업에서의 과학적인 방법들을 위한 목소리를 부각시켰다. 정말로 트랙터-기계들의 소개는 실업을 계속 악화시킬 것이므로, 내가 이 맑스-레닌주의자들의 트랙터-기계들의 소개를 요구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나는 이 당들의 몇몇 강령 속에서, 농민운동의 관점으로 트랙터-기계들의 소개를 거부하고, 봉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혁명전선과 함께 트랙터-기계들을 거부하는 이 운동을 연합하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라는 것은 발견하였다. 자기모순(self-contradiction)15)이 아닌가! 나는 그 운동의 머리와 꼬리를 만들 수는 없다. 왜 봉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투쟁과 함께 반(反)트랙터-기계들 운동에 연합을 할까? 농촌경제에서 봉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가는 것은 바로 트랙터-기계들의 소개이다. 그것은 일어나는 일이다. 트랙터-기계들의 소개는 봉건제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는가? 보라. 이것이 트랙터-기계들을 반대하는 부르주아의 정책과 같은 정책-계획이며 실업의 공격에 반대하여 자본주의를 방어하려는 부르주아정책이나 부르주아토지개혁정책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보라. 말해보라. 농민운동과정 중에 트랙터-기계들이 소개된 결과로서 농민들이 실업자가 된 상황에서, 그 특별한 움직임에 반대하는 운동에서 그들을 규합하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인민들이 트랙터-기계들의 소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을 할 것이다. 사실은 농민들은 트랙터-기계들의 소개를 찬성한다. 그렇지 않다면 농촌경제의 향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어떻게 농촌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농업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의 비통을 끝낼 수 있을까? 어떻게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을 열어젖힐 수 있을까? 어떻게 농업상품의 생산이나 혹은 공업을 위한 원재료들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의 식량문제는 해결될까?










그래서 진보의 요인을 위해서, 농업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을 끝장내기 위해서, 농촌의 삶의 어둠을 제거하기 위해서, 농업의 현대화와 기계화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이것이 자본주의체제에서는 달성될 수가 없다. 만약에 이것이 시도되어진다면, 농업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의 아주 거대한 영역이 단 한 번의 강타에 실업의 상태로 내던져질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계를 위한 작은 대책은 멈추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국가와 자본주의경제질서를 전복하고, 그것을 대신하여 사회주의국가와 사회주의경제체제가 정착되기 전에 이 과업에 손을 대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반면에 농업의 현대화와 기계화 없이는 현재의 농촌의 삶을 지배하는 어둠의 비통과 고통은 역시 제거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생존을 위하여, 그리고 농촌의 삶의 향상이라는 이득 속에서 농업노동자들, 소작농들, 가난한 농민들과 하층중농들은 모두 모일 것이고 반자본주의혁명을 완수한다는 과업에 종사하고 있는 산업프롤레타아와 다른 근로대중들과 함께 세력에 합류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를 대체할 준비가 되어있고 그들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때까지 트랙터-기계들의 소개문제에 대한 올바른 구호는 있어야 한다. : 우리에게 대안적인 고용을 보장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트랙터-기계들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농업노동자와 농민들은 농업의 현대화를 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확히 트랙터-기계들의 소개이다. 그리고 정확히 우리가 자본주의를 전복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이 산업의 방해받지 않는 발전을 보장할 것이기 때문에, 농업의 현대화와 기계화는 가능하게 될 것이고, 농촌의 삶의 전(全)방위적인 향상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농촌의 삶의 얼굴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이 토론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반쯤 무르익은 농업혁명을 완수하는 문제, 즉 농업생산의 증대와 현대화 그리고 토지에 사는 잉여인구에 대한 영구적인 고용을 제공하는 문제는 반자본주의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하는 문제와 깊이 뒤섞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실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반자본주의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하는 대신에, 민족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혁명의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과 선동적인 혁명구호를 가지고 농민들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현존하는 자본주의경제질서 안에서만 단지 개혁을 위한 비웃음거리 투쟁들을 상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러한 행위들로서 오로지 현재의 자본주의체제를 강화시키는 것을 간접적으로 돕고 있다. 그리고 그때까지 당신들이 혁명세력과 함께 이 자본주의경제질서를 전복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경찰, 군대, 사법부를 가지고 자본주의국가가 보호하고 계속 유지시켜주는 질서를 전복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당신들이 그것들을 대체하여 당신들만의 경찰, 군대, 법정과 사법부, 즉 당신들만의 국가를 설립하지 못한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필요와 조화를 이룬 산업화를 발생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신들은 농촌마을의 얼굴도 역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농민들의 삶의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은 진정으로 현재의 농민해방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문제이다. <노사과연>











1) 끄리샥 오 께트마주르 연방(the Krishak O Khetmazur Federation) ; KKMF조직은 나중에 이름을 All India Krishak O Khetmazur Sangathan(AIKKMS)으로 바꾸었다





2) 비르붐(Birbhum) ; 서벵갈(West Bengal)의 한 지역





3) 베남(benam) : 대토지 소유자들이 법률적인 조항을 기만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허구의 이름아래 그들에 의해 전유된 최고한도를 초과한 토지





4) 조테다르스(jotedars) ;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부유한 농민들. 농촌부르주아





5) 제민다르스(zemindars) ; 토착지주들은 이전의 영국식민정부에서 토지세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였다





6) 비그하스(bighas) : 1bigha는 대략 1에이커(acre)의 1/3과 같은 토지의 수치





7) 50년의 기근(the famine of fifty) ; 대기근이 벵갈에서 발생했을 때 벵갈 달력 1350년(1943 AD)에 대한 언급





8) 크로레(Crores) ; 1Crore는 천만





9) 편집자 주: 자본의 이윤논리와 인민의 구매력 부족.





10) 라소골라스(rasogollas) ; 벵갈 지방의 인기 있는 단 것





11) 구르(gur) ; 건조한 사탕수수 쥬스





12)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 ; 전(前)인도 수상





13) 짜뜨라 빠리샤드(The Chhatra Parishad) ; 의회의 학생조직





14) 청년 의회(The Youth Congress) ; 의회의 청년조직





15) 자기모순(self-contradiction) ; 이것은 농민전선의 과업을 CPI(M)(인도공산당(맑스주의파)에게 위임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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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9 인도의 농업 문제들과 농민운동(1) 쉬브다스 고쉬 (Shibdas Ghosh) 2011-06-05 3068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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