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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20)
글쓴이 하르팔 브라르 E-mail send mail 번호 229
날짜 2011-06-04 조회수 2160 추천수 94
파일  1307192559_7부.hwp

  













7부











7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 계급투쟁의 기제들에 대하여






























“우리가 만드는 모든 진보의 걸음마다 계급투쟁은 점점 더 조용해질 것이라는 취지의 썩은 이론을 분쇄하고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





                                             스탈린, 1937

























20장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 계급투쟁의 기제들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 계급투쟁의 기제들에 대한 스탈린의 글들에 대한 서문으로서 쓰여짐]










1956년에 쏘련공산당(볼)의 20차 대회 이후로, 수정주의는 쏘련에서 승리하였다. 많은 소위 반수정주의자들은 스탈린이 쏘련에서 수정주의의 승리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MF는 ≪계간 맑스-레닌주의자≫2호 p.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반스탈린 강령이 포괄적인 수정주의 강령의 채택에 지극히 중요했다는 것이 진실임에 반하여, 스탈린 사후에 수정주의가 단지 우세를 보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 ”










그들은 그를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들과 계급투쟁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국가의 문제에 대해 ‘오류에 찬’ 관점들을 지녔다고 비난한다. 좀 더 특수하게 보자면, 그들은 1936년에 계급들이 그 표현의 모든 의미에서 쏘련에서 제거되었다고 말했다고, “복고는 오직 외부의 개입에 의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에 대해서, 즉,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스탈린에 따르면, “내부의 계급투쟁은 1939년에 쏘련에서 종식되었다”는 것에 대해 그를 비난한다. 그들은 또한 그를 “맑스-레닌주의로부터 근본적으로 이탈하는” 국가의 문제에 대해 관점을 지녔다고 비난한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간결하게 스탈린에 대하여 붙여진 최고의 비난이다.





얼마 동안 이 비난은 느슨하게 그러나 일반적으로 단지 입에 의해 반수정주의 운동을 둘러싸고 퍼졌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소문에 의한 것인 한에서는,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왜냐하면, 누구도 그것을 말한 사람과 그리고 무엇이, 어디에서 언제 말해졌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를 반수정주의라고 부르는 그러나 일관되게 수정주의의 사상을 제기하는 한 조직이 이제까지 단지 사적으로, 입으로만, 소문의 형태로 회자되었던 대부분의 비난들을 글로써 제기했다. 이 조직은 영국 공산주의자 동맹(맑스-레닌주의자)(CFB)이라 불리운다. 그것의 이론적 잡지,≪계간 맑스-레닌주의자≫2호에서, 그것은 어떤 MF에 의해 쓰여진 글을 발간했다. 이 글은 대부분의―거의 모든―위에서 언급된 고발들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 동지에 대한 다른 비난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위의 비난과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필요에 따라, 이 MF라는 신사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조직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 각각의 개인과 조직으로서 그들이 시간을 허비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맑스-레닌주의자로서 가면을 쓰고, 맑스적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노동계급운동에서 사람들을 기만하고 오도하는 반수정주의 운동에서의 가장 위험한 반(半)멘세비키1), 반(半)뜨로츠키주의2) 조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그리고 세 번째의 비난들은 또한 CFB의 MF로부터 나온다. 두 번째의 비난은 쏘련에서 스탈린의 지도력의 기간 동안에, “민족주의적 타락”이 시작되었다는 것, 스탈린과 당은 국제주의적 관점을 잃었다는 것, 그들이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그 자체 목적으로 간주했다는 것, 쏘비에트 혁명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부분으로 고려하지 않고, 그들이 후자의 이익을 전자의 그것들에 종속시켰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비난은 스탈린의 시기 동안에, 당이 “점차적으로 대중들로부터 유리되게” 되었다는 것, “당과 국가의 타락”, 사회적 모순들에 대한 대처에서의 잘못, 부르주아지의 “완전한 통제”를 결과하는 “대중노선의 결여”가 있었다는 것이다. MF에 따르면, 이 세 번째의 “오류”는 처음의 두 개에 대해 책임이 있었다.





스탈린에 대한 네 번째의 비난은 핀스베리 공산주의자 연합(FCA)의 반수정주의자들로부터 나온다. FCA에 따르면, “쏘련이 타락했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은 “18차 당대회에서 표현되었고 이어서 당 규약에 쓰여진 쏘비에트 인텔리겐챠에 대한 스탈린과 즈다노프의 태도”였다.





스탈린에 대한 위의 다양한 비난들을 상술하자면, 그것들은 이제 하나하나 다루어질 것이다. 이들 언급들이 스탈린 동지의 글들의 현재의 모음집에 대한 서문으로서 간행된 것이라는 사실은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지칠 정도의 취급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따라서 언젠가 가까운 장래에 그 주제로 되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동안에, 위의 부르주아적인 스탈린에 대한 공격들에 대처하기 위해, 스탈린의 ‘오류들’의 창조자들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것이 언급되어야만 한다.




















21장





계급들과 계급투쟁










스탈린은 1936년에 쏘련 헌법초안에 대한 그의 연설에서 그 표현의 모든 의미에서 계급들이 이미 쏘련에서 종말에 도달했다고 말했는가?










아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스탈린 동지는 쏘련의 생활에서 1924년부터 1936년까지의 변화들을 여기에서 다루고 있다. 그는 1924년의 후진성과 그때와 1936년 사이에 달성된 사회주의적 전진 간을 비교하고 있다. 사회주의 공업, 농업의 집단화, 무역의 국가독점, 쿨락들과 자본가들의 제거에 의해 그 기간 동안에 기록된 전진을 다루면서, 스탈린 동지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렇게 국민경제의 모든 영역들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완전한 승리는 지금 하나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폐지되었고, 제거되었고 반면에 생산 도구들과 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는 우리 쏘비에트 사회의 흔들릴 수 없는 토대로서 수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쏘련의 국민경제의 영역에서 이 모든 변화들의 결과로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공황과 실업을 모르고, 그것은 빈곤과 파멸을 모르고,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시민들에게 번영하고 문화적인 생활로 이끄는 모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것이 주요하게, 1924년부터 1936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우리의 경제의 영역에서 발생한 변화들이다.”





“쏘련의 경제적 생활에서 이러한 변화들과 일치하여, 우리 사회의 계급 구조도 또한 변화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지주계급은 내전의 승리적인 결론의 결과로서 이미 제거되었다. 다른 착취계급들에 대해 말하면, 그들은 지주계급의 운명을 나누었다. 공업의 영역에서 자본가계급은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농업의 영역에서 쿨락 계급은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거래의 영역에서 상인들과 모리배들은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이렇게 모든 착취계급들은 지금 제거되었다.”





“노동 계급이 남아 있다.”





“농민 계급이 남아 있다.”





“인텔리겐챠가 남아 있다.”










위의 인용으로부터, 계급들의 제거에 대해 말할 때, 스탈린 동지는 여기에서 일반적인 계급들의 제거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계급들”의 제거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 완전히 명백하다. 스탈린 동지가 쏘련 헌법초안에 대해 연설했던 날인 1936년 11월 25일에 계급들은―착취계급들과 피착취계급들이 있다는 엄격히 경제적인 의미에서―쏘련에서 제거되었다는 것은 완벽히 진실이다. 자본가, 지주 그리고 쿨락 계급들이 제거되자마자, 계급들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스탈린 동지가 했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





그러나 스탈린 동지가 착취계급들과 피착취계급들이라는 위의 의미에서 계급들이 제거되었다고 우리의 관점에서는 올바르게 주장했기 때문에, 이것은 그가 그 표현의 모든 다른 의미에서 계급들이 또한 제거되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스탈린 동지는 쏘련에는 두 개의 계급들이 남아 있다고 매우 명확히 진술했다. 반복하자면, 그는 말했다:










“노동 계급이 남아 있다.”





“농민 계급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나아가, 1924년부터 1936년까지의 시기에 쏘련의 계급구조의 변화들의 중요성을 틀지우면서 스탈린 동지는 계속하여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쏘련의 계급구조에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그것들은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그리고 이들 계급들과 인텔리겐챠 사이의 분할선이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낡은 계급적 배타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들 사회적 그룹들 간의 거리가 견고하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로, 그것들은 이들 사회적 그룹들 간의 경제적 모순들이 약해지고 있고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들은 그들 사이의 정치적 모순들이 약해지고 있고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우 명확하게 보여진 대로, 스탈린 동지는 결코 계급들이 그 모든 표현의 의미에서 제거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더우기 그는 쏘련에서 모든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모순들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그것으로부터: 스탈린 동지는 착취계급들이 제거되었지만 여전히 쏘련에는 두 개의 계급들이 남아 있는데 노동계급과 농민층이며 “그들의 이해관계는―적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데―반대로 우호적이다.” 노동계급과 농민 간의 그리고 이 두 계급들과 인텔리겐챠 간의 분할 선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런 과정에 있었다. 남아 있는 계급들과 계층 간의 경제적 모순들은 아직 폐지되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폐지되고 있었다. 이들 사회적 그룹 간의 정치적 모순들은 아직 폐지되지 않았지만 이 모순들의 폐지로 향하는 길을 여행하고 있었다. 위의 진술들의 어느 것이 부정될 수 있는가? 아니다, 그것은 그럴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스탈린 동지가 말한 것은 1936년에는 쏘련에는 적대적 계급들이 전혀 없다는 것, 오직 두 개의 계급들, 노동계급과 농민층만이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는 적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반대로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헌법초안의 주요한 특수한 특징들을 다루면서, 스탈린 동지는 다음의 것을 말해야 했는데 그것은 지금 논의 중인 문제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










“부르주아 헌법들과 달리,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은 더 이상 사회에서 적대적인 계급들이 없다는, 사회가 두 개의 우호적인 계급들, 노동자들과 농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권력에 있는 것은 이들 계급, 노동하는 계급들이라는, 국가(독재)에 의한 사회의 지도는 노동계급, 가장 사회에서 선진적인 계급의 수중에 있다는, 헌법은 노동하는 인민에 의해 염원되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질서를 공고화하는 목적을 위해 필요로 된다는 사실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런 것이 새로운 헌법 초안의 세 번째의 특수한 특징이다.”










이리하여, 스탈린에 따르면, 쏘비에트 사회는 계급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적대적인 계급들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두 개의 우호적인 계급들, 노동계급과 농민층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국가(독재)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회에서 가장 선진적인 계급인 노동계급의 수중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스탈린에 따르면 계급들이 그 표현의 모든 의미에서 쏘련에서 제거되었다는 주장의 그릇됨을 보여준다. 만약에 스탈린이 그와 같은 어떤 것을 말했다면, 국가의 보전, 그리고 가장 선진적인 계급, 노동계급의 수중에 있는 국가에 의한 사회의 지도라는 것에 대해 그가 말하는 많은 지점들이 있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만약 이 계급이 그것과 비교되어 선진적 계급이라 불릴 수 있는 후진적 계급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장 선진적인 계급에 대해 말하는 것은 쓸모없기 때문이다. 쏘비에트 헌법초안과 스탈린은 두 개의 계급들이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했다. 





위에서 진술된 것이 스탈린 동지에 대해 그가 계급들이 그 모든 표현의 의미에서 폐지되었다고, 쏘련에는 더 이상 계급들이 없다고 믿었다고 비방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믿기에 불충분하다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그들의 방식들의 오류를 보는 것을 돕고 그들이 올바른 길에 도달하도록 돕는―만약 그것이 도대체 가능하다면―최후의 시도를 하겠다. 헌법초안 1조가 쏘비에트 사회의 계급구성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쏘비에트 국가에 대해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국가”로서 말한다. 이 조항에는 네 개의 수정들이 제출되었다. 하나의 수정은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국가”라는 단어 대신에 “노동 인민의 국가”라는 단어로 대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의 수정에 따르면,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국가”라는 단어는 “그리고 노동하는 인텔리겐챠”라는 단어들이 뒤이어야만 했다. 세 번째의 수정은 1조가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국가”를 언급하는 대신에, “쏘련의 영토에 거주하는 모든 인종과 민족들의 국가”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의 수정은 “농민들”이라는 단어 대신에 “집단적인 농부들” 혹은 “사회주의 농업의 근로자들”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스탈린 동지는 이 모든 수정들의 채택에 반대했다. 위의 네 개의 수정들에 반대하는 그의 주장들의 일부는 논쟁 중인 지점과 관련이 있는데 아래에서 재생되고 있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이 수정들에 반대하여 말해야만 했던 것의 일부가 있다:










“헌법 초안의 1조는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 그것은 쏘비에트 사회의 계급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 맑스주의자들이 헌법에서 우리 사회의 계급구성의 문제를 무시할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우리가 알듯이, 쏘비에트 사회는 두 개의 계급들, 노동자들과 농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헌법초안 1조가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에 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헌법 초안 1조는 우리 사회의 계급구성을 타당하게 반영하고 있다. ...”










그리고 나아가:










“‘농민’이라는 단어 대신에 ‘집단적인 농부’ 혹은 ‘사회주의 농업의 근로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그릇된 것일 것이다. 첫째로, 집단적인 농부들 이외에, 농민층 가운데에는 여전히 비집단적인 농부들이 100만 가구 넘게 있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 수정의 저자들은 책에서 그들을 삭제할 것을 제안하는가? 그것은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로, 농민들의 다수가 집단적인 영농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그들이 벌써 농민이기를 그만두었다는 것, 그들이 더 이상 그들의 개인적인 경제, 그들 사진의 가구들 등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로, ‘노동자’라는 단어 대신에 우리는 ‘사회주의 공업의 근로자’라는 단어를 써야만 할 것인데 그러나 그것을 수정의 저자들은 몇몇의 이유로 제안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노동계급과 농민 계급이 이미 우리 나라에서 사라졌는가?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들에 대해 확립된 이름들을 우리의 사전에서 삭제할 가치가 있는가? 명백하게도, 수정의 저자들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현재의 사회가 아니라 미래의 사회인데 그때는 계급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균질적인 공산주의 사회의 근로자들로 변혁되었을 때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명백하게 앞으로 달리고 있다. 그러나 헌법을 기초하는 데 있어서 혹자는 미래로부터 출발해서는 안 되고 현재로부터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헌법은 달려나가는 것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른 말로 하면, 계급들은 착취계급들이 사라져 버렸을지라도 제거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쏘비에트 사회는 착취계급들의 비존재,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비존재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공산주의의 낮은 국면에 여전히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공산주의의 높은 국면에 여전히 도달해야만 하는데, “그때는 계급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그때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균질적인 공산주의 사회의 근로자들로 변혁되었을 것이고” 그 사회에서는 각자로부터는 그의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그의 필요에 따라라는 공식이 지배적일 것이다.





혹자는 명백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에 위에서 언급된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관한 비방자들이 여전히 스탈린 동지에 반대하여 고집한다면, 만약에 비방자들이 위의 완강한 사실들에 주목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단지 유명한 러시아의 속담, ‘법칙들은 바보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로써 그들에게 단지 답해야만 할 것이다.















스탈린은 완전한 공산주의가 쏘련에서 건설되었다고 말했는가?










매우 풍부한 상상력(비료를 친 상상력이 더 좋은 표현일 것이다)을 가진 일부 비판가들은―그리하여 의미없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커다란 능력이 있는―스탈린에 따르면 착취계급들이 제거되었고 억압할 계급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하여 완전한 공산주의가 건설되었고 결과적으로 쏘련에서 국가의 존재를 위한 필요가 없었다고 계속하여 주장한다. 그러나 쏘련에서 국가는 여전히 존재했다. 이 모든 것의 순수한 결과는 이들 ‘비판가들’―부르주아 삼류작가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에 따르면, 스탈린이 ‘오류’를 범했고 그가 쏘비에트 사회가 계급없는 공산주의 사회의 최종적 목표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함에 있어서 그 싸구려 부르주아 삼류작가들은 비방과 왜곡에 대한 그들의 열정뿐만 아니라 그들의 직접적인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 ‘비판가들’에 따르면, 스탈린이 위의 망상의 오류를 범했다고 추정되는 헌법초안에 대한 바로 그 동일한 연설에서, 스탈린 동지는 쏘비에트 사회의 발전의 수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쏘비에트 사회는 주요하게는 이미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를 창출했는데 즉,  그것은 맑스주의자들이 다른 말로는 공산주의의 최초의, 혹은 낮은 국면이라 부르는 것을 발생시켰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요하게 공산주의의 첫 번째 국면, 사회주의를 성취했다. 공산주의의 이 국면의 근본적인 원칙은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각자로부터는 그의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그의 노동에 따라’라는 공식이다. 우리의 헌법이 이 사실, 사회주의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해야만 하는가? 의문의 여지없이 그래야만 한다. 그것은 그래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쏘련에서는 사회주의는 이미 달성되었고 획득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쏘비에트 사회는, 비록 그것이 미래에 공산주의의 보다 높은 국면을 성취하는 목표를 스스로 설정했을지라도, 그 지배적 원칙이 ‘각자로부터는 그의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그의 필요에 따라’라는 공식이 될 공산주의의 보다 높은 국면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의 헌법이 아직 존재하지 않고 여전히 도달되어야만 하는 공산주의의 높은 국면에 기초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것은 그럴 수 없는데 왜냐하면, 쏘련에서는 보다 높은 공산주의의 국면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미래에 실현되어야만 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래의 성취들의 강령 혹은 선언으로 변형되지 않으려면, 그것은 그럴 수 없다. 이런 것이 현재의 역사적 순간에 우리의 헌법의 한계들이다.”










명백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혹자는 맑스-레닌주의자임을 멈추지 않고서도 국가가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착취계급들이 폐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제 그 질문이 떠오른다: 착취계급들이 제거되었고 쿨락들이 공개적인 전장에서 패배했고, 그리고 공산주의의 낮은 국면 즉, 사회주의가 ‘각자로부터는 그의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그의 노동에 따라’라는 그것의 공식과 더불어 달성되자마자, 이러한 환경들 속에서 스탈린이 그가 실제로 했듯이, 계급들이 종지부를 찍었고 억누를 계급들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했는가? 우리는 스탈린 동지가 계급들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한 것은 매우 합당했다고 믿는다. 계급들은 쏘련에서 그 표현의 경제적 의미에서, 착취자들도 없고 피착취자들도 없었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서, 그것의 “정치적 우월성”을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빼앗기” 위해서 이미 사용했고 “생산력의 총체를” 물론 매우 빠르게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계급이 없는, 착취계급들과 피착취계급들이라는 의미에서 계급들이 없는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혹자가 맑스-레닌주의자로서, 우리가 위에서 방금 말하고 있던 의미에서 계급들이 없는 국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 혹자는 틀림없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CFB의 MF, 조지 톰슨 교수3)같은 부르주아 ‘비판가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다, 혹자는 위의 의미에서 계급들이 없는 국가에 대해 틀림없이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착취계급들이 없는 국가에 대해 혹자가 말할 수 없다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맑스-레닌주의에 의해(불쌍한 맑스! 불쌍한 레닌!)그들이 옳다는 것을 단언하고 있고 그들이 더 나은 대의의 가치가 있는 열정으로 입증하려고 시작했던 것, 즉, 스탈린이 그의 1936년 헌법초안에 관한 연설에서뿐만 아니라 18차 대회에 대한 그의 연설에서 착취계급들이 쏘련에서 제거되었다고 말했을 때 반맑스주의적이고 반레닌주의적인 헛소리를 입밖에 내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악의적인 즐거움으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사소한’ 난관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비판가들’, MF뿐만 아니라 저명한 톰슨 교수는 하찮은 것을 간과했다, 즉, 레닌이 ‘레닌주의자들’인 MF들, 톰슨들 그리고 세계의 다른 부르주아적인 크레틴환자들(당신들의 용서를 구한다, ‘맑스주의자들’이여)이 하는 것과 달리 생각했다는 것이다. V.I.(레닌―역자)가 국가는 계급들이 없는 상당한 기간의 시기 동안에 존재할 것이라고 틀림없이 판단했다는 것은 그에 의한 그 주제에 대한 다음의 취급으로부터 완전히 명확해진다. 그의 책 ≪국가와 혁명≫ 5장에서 레닌은 “국가의 사멸의 경제적 기초”를 논의한다. “맑스에 의한 그 문제의 제기” 그리고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를 다루면서, 레닌은 계속하여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국면”의 문제를 다룬다. 공산주의 사회의 이 첫 번째 국면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산수단들은 더 이상 개인들의 사적인 소유가 아니다. 생산수단들은 전체 사회에 속한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의 일정한 부분을 수행하고 그가 이러이러한 양의 노동을 했다는 취지의 증명서를 사회로부터 받는다. 그리고 이 증명서로써 그는 소비물품들의 공공 저장소로부터 생산물들의 상응하는 양을 받는다. 공공의 기금으로 가는 노동의 양에 대한 공제가 이루어진 후에 모든 노동자는 그리하여 사회로부터 그가 사회에 준 만큼을 받는다.”





“‘평등’이 명백하게 우월적으로 지배적이다.”










그러나 “평등한 권리”는 여기에서 여전히 “부르주아적 권리”인데 그것은 아직 그것의 전체로써 폐지되지 않았고 그리하여 불평등이 여전히 우세하다.





레닌은 계속한다:










“맑스가 말하기를 ‘평등한 권리’를 우리는 물론 여기에서 갖고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부르주아적 권리’인데 그것은 모든 권리들처럼 불평등을 전제한다. 모든 권리는 사실상 같지 않은, 서로 간에 평등하지 않은 상이한 사람들에 대한 평등한 조치의 적용이다. 그것이 ‘평등한 권리’가 실제로는 평등의 위반이고 부정의인 이유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은 사회적 노동을 수행하고서 사회적 생산물의 평등한 몫을 받는다(위에서 언급된 공제를 한 후에).”





“그러나 사람들은 똑같지 않다. 한 사람은 강하고 다른 사람은 약하고 한 사람은 결혼했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고 한 사람은 아이들이 많고 다른 사람은 적고 등등. 그리고 맑스가 끌어내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 평등한 노동의 수행 그리고 사회적 소비기금에서 평등한 몫으로써, 혹자는 사실상 다른 사람보다 더 받을 것이고 혹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부유할 것이고 등등. 이 모든 결함들을 피하기 위해서 권리는 평등함 대신에 불평등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의 첫 번째 국면은 아직 정의와 평등을 산출할 수 없다. 상이함들, 그리고 부정의한 상이함들이 부에서 여전히 존재할 것인데 그러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는 불가능하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생산수단, 공장들, 기계들, 토지 등을 사적 소유로서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등’과 ‘정의’에 대한 라살레의 소부르주아적이고 혼란된 미사여구들을 분쇄하면서, 맑스는 공산주의 사회의 발전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처음에는 단지 개인들에 의해 장악되었던 생산수단이라는 ‘부정의’를 폐지하는 것이 강제되고 그리고 그것은 수행된 노동의 양에 따른(필요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소비물품들의 분배에서 존재하는 다른 부정의를 한번에 제거할 수 없다.”





“부르주아 교수들과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의’ 투간을 포함하는 저열한 경제학자들은 항상적으로 사회주의들에 대해 사람들의 불평등을 잊고 있다고 그리고 이 불평등을 제거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힐난한다. 이러한 힐난은 부르주아 관념론자 신사들의 극단적인 무지를 우리가 보듯이, 단지 입증할 뿐이다.”





“맑스는 사람들의 불가피한 불평등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생산수단의 사회전체의 공동 소유로의 단순한 전환은(일반적으로 ‘사회주의’라고 불린다) 생산물들이 ‘수행된 노동의 양에 따라’ 분배되는 한 계속하여 지배적이 될 분배의 결함들과 ‘부르주아 권리’의 불평등을 제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있다. 계속하여 맑스는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함들은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오래 끄는 탄생의 진통 후에 막 출현했을 때인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국면에서는 불가피하다. 권리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와 그것에 의해 조건지워지는 문화적 발전보다 결코 더 높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국면(대개 사회주의로 불린다)에서는 ‘부르주아적 권리’는 그것의 전체로서 폐지되지 않고 단지 부분적으로, 단지 그때까지 달성된 경제적 혁명에 비례하여 즉, 단지 생산수단의 측면에서만 그러하다. ‘부르주아적 권리’는 그것들을 개인들의 사적 소유로 인정한다. 사회주의는 그것들을 공동의 소유로 변환시킨다. 그 정도까지-그리고 그 정도만이- ‘부르주아적 권리’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의 다른 부분이 관계되는 한 계속하여 존재한다. 그것은 생산물들의 분배와 사회의 성원들 사이에서 노동의 할당에서 규제자(결정하는 요인)의 능력으로써 계속하여 존재한다. 사회주의 원칙, 즉,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미 실현되어 있다. 다른 사회주의 원칙인 ‘노동의 평등한 양에 대한 생산물들의 평등한 양’은 또한 이미 실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공산주의가 아니고 그것은 아직 ‘부르주아적 권리’를 폐지하지 않는데 그것은 노동의 불평등한(실제적으로 불평등한) 양에 대한 보답으로 불평등한 개인들에게 생산물의 평등한 양을 준다.”





“맑스가 말하기를 이것은 ‘결함’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공산주의의 첫 번째 국면에서는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상주의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나서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권리의 어떤 기준도 없이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을 배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그리고 물론 자본주의의 폐지가 즉각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위한 경제적 전제를 창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부르주아적 권리’라는 기준과 다른 어떤 기준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정도까지 그리하여 국가가 생산수단의 공적 소유를 보호하면서 노동에서 평등과 생산물의 분배에서 평등을 보호할 필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위의 주목할 만한 심오한 분석 후에, 그 거인, 레닌은 계속하여 앞서의 분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다음과 같은 결론들을 계속하여 말한다. 톰슨 교수, MF, 그리고 이와같은 노동계급운동에서의 부르주아적인 물장난하는 사람들은 이 결론들을 주의깊게 주목하고 이 심오한 결론들의 실제적 의미를 이해하는(즉, 만약에 그들이 도대체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면) 것이 좋을 것이다. 여기에 레닌의 이들 결론들이 있다:










“국가는 더 이상 어떤 자본가들도 없고, 어떤 계급들이 없고 그리고 결론적으로 어떤 계급도 억압당할 수 없는 한 사멸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아직 사멸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실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부르주아적 권리’에 대한 보호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완전히 소멸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공산주의가 필요하다.”










이리하여 레닌이 공산주의의 첫 번째 국면이 달성된 후에도, “더 이상 자본가들이 없고, 더 이상 계급들이 없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억압할 어떤 계급도 없게” 될지라도, 국가는 계속하여 존재할 것이라는 견해를 굳게 지녔음은 완전히 명백하다. 톰슨 교수와 그에 동의하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말하게 하자: “여기에 착취 계급들이 제거되었다; 계급투쟁은 아마도 종식된 것이다.” 우리는 MF와 톰슨 교수가 ≪국가와 혁명≫의 그 내용에 대해 특히 113페이지에 나타나는 위의 결론들을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MF 스스로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인용하고 있고 그가 그의 글에서 사용하는 인용들 중의 하나는 위의 결론들과 불과 2페이지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가 113페이지까지 실제로 읽을 수 있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톰슨 교수에 대해 말하면, 그의 책 ≪맑스로부터 마오쩌뚱까지≫는 단지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그리고 마오로부터의 인용들의 모음으로써만 구성되어 있고 몇몇의 왜곡들이 산재해 있는데 이 왜곡들은 ‘혁명적 변증법’의 연구에 대한 그의 기여일 뿐인데, 우리는 그가 ‘레닌주의자’ 톰슨이 또한 레닌의 ≪국가와 혁명≫의 113페이지를 읽었다고 전제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그들 두 사람은 스탈린이 사실상 레닌의 발자국만을 따르고 있던 때에 스탈린을 레닌으로부터 이탈했다고 공격한다. 실제적으로 이들 용감한 친구들이 누군가를 계급들과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문제에 대해 ‘반맑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공격해야만 한다면, 그들은 그의 자국을 스탈린이 따르고 있던 레닌 동지 또한 마찬가지로 공격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당신들, ‘비판가들’ 신사양반들로부터 이러한 용기의 표현을 즐겁게 기대하고 있다!





이리하여 우리의 ‘비판가들’은―그들은 그들의 분석의 깊이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이 사용하는 미사여구의 마력(馬力)의 양 때문에 비판가들인데―레닌의 ≪국가와 혁명≫의 113페이지를 보지 않았거나 혹은 그들이 그것을 읽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 페이지에 나타난 것을 읽었고 이해했지만 고의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실제로는 레닌을 해하려고 하면서 그들의 타격을 스탈린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스탈린에 대한 ‘비판’이 타당하다면, 위에서 보였듯이, 이 동일한 ‘비판’은 레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게 된다. 이 사람들이 단지 스탈린의 적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레닌의 적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들이 단지 반스탈린주의자들인 것이 아니라 사실상 반레닌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명백히 볼 수 있다. 이것이 진실이고 어떤 미사여구의 마력도 이 진실을 제거할 수 없다.





이리하여 스탈린이 착취계급들이 제거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 자신이 레닌 동지의 매우 좋은 친구였다는 것이 입증된다. 이리하여 스탈린은 새로운 어떤 것을 전혀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레닌이 1917년 초에 말했던 것을 반복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스탈린은 레닌이 예견의 방식으로 말했던 것을 쏘련에서 하나의 사실로서의 수립을 단지 기록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세계의 톰슨들과 MF들이 스탈린이 계급들의 문제에 대해 반맑스적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공평하게 말하여 그들은 동일한 주장을 레닌 동지에 대하여 하여야 한다. 공평하게 말하여, 그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들의 문제에 대하여, 레닌은 스탈린처럼 ‘반맑스적’이었다고 말해야만 한다. 공평하게 말하여, 그들은 그들의 주장의 ‘논리’를 스탈린으로부터 레닌까지 그것의 적용에서 확장해야만 하는데,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이들 반레닌주의적인 스탈린의 ‘절멸자들’의 ‘논리적인’ 엉터리를 명백하게 뚫어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아마도 스탈린을 공격함에 있어서 톰슨들, MF들, 그리고 다른 구변이 좋은 이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은 간접적으로 그러나 의도적으로 그들의 타격을 레닌에게 향하고 있다. 그 경우에 그들은 왜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공개적인 인정을 하는 것을 막는가? 우리는 단지 그들로 하여금 레닌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막는 것은 레닌주의의 적들로서 탐지되지 않으려는 그들의 바람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레닌 동지의 이름에 의례적인 존경을 표하면서 레닌주의를 ‘절멸시키려는’ 더러운 작업을 수행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심지어 스스로를 레닌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레닌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실제로 ‘무릎 위에서의 반란’이다.





이리하여 이 사람들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들의 문제에 대해 레닌과 스탈린의 견해 사이에서 완전한 상호일치, 완전한 동의를 알지 못하든가, 혹은 그들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스탈린에 날리는 바로 동일한 비난을 레닌에게 날릴 용기와 정직성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더욱더 나쁜 것은, 그들이 매우 중요한 이론적 문제―세계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게 멀리 미치는 실천적 중요성을 가진 문제―에 대해 레닌주의를 공격하려는 형편없이 감춰진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뜨로츠키주의자들이 레닌주의를 공격하기를 원할 때마다(그리고 이것을 그들은 매일 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비겁함에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외교적 고려에서 즉, 반레닌주의적이고 반혁명적인 뜨로츠키주의자들로서 탐지되기를 바라지 않는 바람에서 ‘스탈린주의’를 공격하는―그리고 변함없이 레닌의 이름으로써―뜨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해 개척된 길을 그들이 따르고 있을 뿐이다.




















22장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강화










스탈린은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감퇴라는 이론을 고수했는가? 그는 “복고가 단지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을 했는가?





스탈린이 쏘련에서 적대적인 계급들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것이 그가 그리하여 계급투쟁 자체가 종식되었고 그때부터 쏘비에트에서는 인민들이 이미 얻은 성공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부르주아 비판가들에 따르면, 스탈린은 계급투쟁이 쏘련에서 종식되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주장하기를 스탈린은 쏘련에서 자본주의의 복고가 단지 쏘련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톰슨 교수는 헌법초안에 대한 스탈린의 연설로부터 다음의 발췌를 인용한다:










“지주계급은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내전에서 승리적인 결론의 결과로서 이미 제거되었다. 다른 착취계급들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들은 지주계급의 운명을 나누었다. 자본가계급은 공업의 영역에서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쿨락은 농업의 영역에서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이리하여, 착취계급들은 지금 제거되었다.”










그리고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은 사회에 더 이상 적대적인 계급들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톰슨은 스탈린에 대한 비판으로써 다음의 이상한 언급을 계속 한다:










“여기에서 착취계급들이 제거되었다. 아마도 계급투쟁은 종식된 것이다.”(p.131)










그것이 그러한가? 착취계급들의 제거가 위에서 말한 의미에서 계급투쟁의 제거와 같다고 생각되는가? 그것들이 같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스탈린 동지와 같은 맑스-레닌주의자들의 작업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톰슨 교수와 같은 부르주아 교수들의 작업이었다. 스탈린 동지는 쏘련에서 계급투쟁이 제거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가 말한 모든 것은 착취계급들이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착취계급들의 제거와 다른 한편으로 계급투쟁의 제거는 두 개의 상이한 것들이다. 전자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것들이 제거되었다는 것이 위에서 보여졌다. 후자에 관해서 말한다면 계급투쟁은 제거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격렬해졌다는 것이 곧 보여질 것이다. 이것이 스탈린의 견해였다는 것이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충분히 입증될 것이다.





CFB의 이론적 잡지인 MLQ에 글을 쓰고 있는 또 한 사람의 ‘비판가’ 즉, MF로 돌아가자면, MF는 스탈린 동지의 ≪레닌주의의 기초≫로부터 다음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의 수립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증하지 않는다. 그것의 권력을 공고화하고 그것의 뒤에서 농민층을 이끈 후에, 선진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를 위한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확보할 것임을 의미하는가 즉, 하나의 나라의 세력들로써 그것이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공고화하고 간섭에 반대하여 그 나라를 충분히 보증하는 것을 의미하는가인데 이것은 복고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아니다. 그것은 최소한 몇몇의 나라들에서 혁명의 승리를 요구한다. 따라서 한 나라에서 승리한 혁명의 필수적인 과제는 다른 나라들에서 혁명을 발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승리한 나라에서의 혁명은 그것을 독립적인 단위로 간주해서는 안되고 다른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촉진하는 지원군과 수단으로서 간주해야 한다.”










위의 글을 인용한 후에 MF는 언급한다:










“우리는 후에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가 무엇인지를 고찰하게 될 것이고 그것의 복고는 단지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스탈린의 가정에 관련시킬 것이다.”










오직 모든 부끄러움과 정직함의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들만이 스탈린 동지의 위의 언급들을 MF가 그것들을 번역한 방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오직 맑스-레닌주의와 절연한 사람들, 보통의 사람의 논리의 마지막 자취를 잃어버린 사람들, 맑스-레닌주의를 결코 사고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스탈린 동지의 위의 인용된 언급들을 MF에 의해 그것들에 주어지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스탈린 동지의 언급들로 돌아가자면, 위의 글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는 정확히 무엇인가? 스탈린 동지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스탈린 동지는 첫째로, 당시에 유일한 사회주의 나라인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둘째로, 쏘련에서 사회주의는 만약에 하나의 나라(쏘련)의 혁명이 “최소한 몇몇의 나라들에서” 승리한 혁명에 의해 결합되지 않는다면, 쏘련에서 사회주의는 공고화될 수 없고 사회주의의 그 나라는 간섭에 맞서 충분히 보증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스탈린 동지는 셋째로, 쏘련에 대한 성공적인 간섭은 단지 하나의 것을, 즉, 자본주의의 복고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간섭주의적인 부르주아 국가들은 다른 어떤 이해도 감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위의 모든 이유들 때문에, 만약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면, 쏘련에서 혁명은 스스로를 다른 나라들에서 혁명의 부분으로 간주해야만 하고, “다른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촉진하는 지원군과 수단으로서” 간주해야지 “독립적인 단위로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쏘련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필요했다. 홀로 남았지만 쏘련은 성공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었다. 쏘련이 홀로 남겨질 것이라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았다. 성공적인 간섭은 자본주의의 복고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리고 간섭에 반대하는 그리고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유일한 보증은 “최소한 몇몇의 나라들에서 혁명의 승리”였다.





그러면 스탈린의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오직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복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데도 없다.





이 ‘가정’은 MF의 상상력의 순전한 날조라는 것이 명백하다. 스탈린은 간섭이, 성공적이라면,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의 복고를 의미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정확하다. MF는 이 언급을 왜곡하고 스탈린을 “오직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복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의 혐의로 비난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고 스탈린이 말한 적이 없는 어떤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쏘련에서 수정주의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분석으로서 제기되어 있다! MF에 의해 그의 ‘분석’에서 사용된 직접적인 부르주아적 속임수의 종류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다.





더 이상 나아가기 전에, 한 가지 지점, 즉, “오직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복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스탈린의 가정”에 대한 MF의 왜곡은 위에서 보여진 대로, 1924년 4월 초에 스베르들로프 대학에서 행한 스탈린의 강연의 모음인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로부터 고의적인 오역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이 날짜는 매우 중요하다. MF가 하듯이, 스탈린 동지의 1924년 연설에 기초해서, 스탈린에 따르면 “복고는 오직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스탈린에 따르면, 내부의 계급투쟁은 1924년에 종식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MF가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난은 그의 글을 통하여 심홍색의 실과 같이 내달린다. ≪레닌주의의 기초≫로부터 인용에 기초하여 “복고는 오직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를 스탈린에게 돌리고서는, MF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탈린의 입장은 일찍이 1915년에 레닌에 의해 표명된 견해들과 일치한다.” 오직 하나의 결론만이 MF의 이 언급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데 즉, 1915년에 일찍이 “복고는 오직 외부의 간섭으로부터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레닌의 “가정”이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이상한가!





MF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스탈린 동지에 반대하는 이 동일한 비난을 16페이지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










“이것[MF에 의해 인용된 쏘련공산당(볼)의 18차 대회에 대한 스탈린 동지의 연설의 부분]으로부터 내부의 계급투쟁은 1939년에 쏘련에서 종식되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1939년이라는 해는 독자들이 MF가 오직 1939년부터만 스탈린을 “복고가 오직 외부의 간섭으로부터만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의 혐의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하여 군사적 책략의 방식으로 덤으로 추가된 것이다. 사실상, 위에서 보여진 대로 MF의 비난은 1924년부터이다. 그 비난은 어떤 경우에도 근거가 없는 것이고 1924년부터 1939년까지의 기간은 다루지 않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여기에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문제(그리고 그것의 강화)와 관련되는 이 시기로부터의 약간의 사실들이 있다.





MF와 그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듯이, 스탈린이 1924년에 “내부의 계급투쟁은 쏘련에서 종식되었다”고 그리고 “복고는 오직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러면 그의 부르주아 경향들―그것들이 우세한 것이 허용되었다면, 자본주의의 복고를 초래했을 경향들―에 대한, 부하린주의와 뜨로츠키주의에 대한 투쟁은 완전히 설명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뜨로츠키주의와 부하린주의에 대한 스탈린의 투쟁은 오직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강화라는 이론을 스탈린이 고수했다는 기초 위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사실들은 무엇인가? 사실들은 스탈린이 뜨로츠키주의의 ‘좌익’적 기회주의 조류에 반대하는 무자비한 투쟁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뜨로츠키주의가 볼세비키 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승리했다면, 결과는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의 복고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뜨로츠키주의에 대한 우리의 팜플렛4)에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스탈린은 또한 부하린주의의 우익 기회주의 조류에 반대하는 격렬하고 무자비한 투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당을 지도했다. 부하린주의가 볼세비키 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그것의 투쟁에서 승리했다면, 결과는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의 복고였을 것이다.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이 잠잠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부하린주의는 자본가들의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성장”이라는 이론을 제기했다. 부하린의 이론은 쏘련에서 자본주의의 복고의 옹호에 대한 위장되고 매우 복잡한 형태였다.





스탈린은 부하린의 쿨락 이론에 반대하는 격렬한 투쟁을 수행했다. 여기에 부하린주의에 반대하는 그의 끈질기고, 격렬하고, 일관되고 그리고 무자비한 투쟁에서 스탈린 동지의 연설들로부터의 약간의 인용들이 있다―스탈린이 “복고는 오직 외부의 간섭으로부터만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주장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는 확고하게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강화라는 맑스-레닌주의적 이론을 고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용들:










“우리 당에서 우익적 일탈의 승리는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거대한 강화를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강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약화와 자본주의의 복고의 기회를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당에서 우익적 일탈의 승리는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의 복고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의 발전을 의미할 것이다.” (전집, 11권, p.235)










아직 그의 감각들과 갈라지지 않은 사람이 위의 언급들을 스탈린이 “복고는 오직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주장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이러한 결론을 조금이라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끌어낼 수 없다. MF가 그런 결론을 끌어낸다면, 그의 머리가 수술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스탈린의 위의 언급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쏘련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강화를 통해서 복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우익적 일탈의 승리가 불가피하게 초래했을 지점이다.





더구나, 쏘련공산당(볼)에서 우익적 일탈을 ‘좌익’적(뜨로츠키주의적) 일탈과 비교하면서 그리고 이 두 일탈들이 비록 상이한 방향들에서이지만, 동일한 결과 즉, 자본주의의 복고를 초래했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스탈린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당에서 우익의, 솔직하게 기회주의적인, 일탈의 위험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그것이 우리의 적들의 힘을, 자본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에. 그것은 자본주의의 복고의 위험을 보지 않는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 계급투쟁의 기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양보들에 기꺼이 동의하려 하며, 우리의 공업의 발전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요구하고, 도시와 농촌에서 자본주의 요소들에 대한 양보를 요구하고, 집단농장들과 국영농장들의 문제가 배후로 밀려날 것을 요구하고, 외국무역의 독점이 느슨해질 것을 요구한다, 등등.”





“우리 당에서 우익적 일탈의 승리는 자본주의의 세력들을 해방할 것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입장들을 침식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의 복고의 기회들을 증가시킬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 당에서 ‘좌익’적 (뜨로츠키주의적) 일탈의 위험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그것이 우리의 적들의 힘을, 자본주의의 힘을 과대평가하지만 우리 나라의 노력들에 의해 사회주의를 건설할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것은 절망에 항복하고 있고 우리 당에서 테르미도르 반동에 관한 수다를 위안삼아야만 한다.”





“‘우리가 소농의 나라에 살고 있는 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보다는 자본주의를 위한 보다 확실한 경제적 기초가 있다’는 레닌의 말들로부터, ‘좌익’적 일탈은 쏘련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우리는 농민층과 더불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동맹이라는 사상은 폐물이 된 사상이라는, 만약에 서구에서 승리한 혁명이 우리르 도우러 오지 않는다면 쏘련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무너지거나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만약에 우리가 농민층과의 분열이라는 비용을 치르는 한이 있을지라도, 초공업화의 환상적인 계획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대의는 파멸할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는 그릇된 결론을 끌어낸다.”





“그리하여 ‘좌익’적 일탈의 정책에서 모험주의가 나온다. 그리하여 그것의 정책의 영역에서 ‘초인적인’ 도약들이 나온다.”





“우리 당에서 ‘좌익’적 일탈의 승리는 노동계급의 농민적 토대로부터 분리를, 노동계급의 전위를 노동계급 대중들의 나머지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그리고 결과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트의 패배와 자본주의의 복고를 위한 조건들을 촉진시키는 것을 초래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이들 두 위험들, ‘좌익’적 및 우익적, 레닌주의 노선으로부터 이들 두 일탈들, 우익 및 ‘좌익’적 일탈들은 비록 상이한 방향으로부터일지라도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다.”(전집 11권, pp.240-241)










위로부터 스탈린이 자본주의의 복고는 또한 부하린주의 혹은 뜨로츠키주의의 승리를 통해서도 즉, 외국의 간섭없이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확고히 가졌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는가? 그것은 완벽하게 명백하다. 그러면, “복고가 오직 외부의 간섭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스탈린의 가정”은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나아가:










스탈린: “지금까지 우리 맑스-레닌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자본가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계급 사이에서 화해할 수 없는 이해들의 적대관계가 있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맑스주의 계급투쟁 이론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부하린의 자본가들의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성장 이론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거꾸로 되는 것이고 착취자들과 피착취자들 간의 계급적 이해들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관계는 사라지고, 착취자들은 사회주의로 성장해 간다.”





로짙: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인정된다.”





스탈린: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계급투쟁의 가장 첨예한 형태이다.” (전집 12권, p.32)










계속하여 스탈린은 질문했다:










“격렬한 계급투쟁없이 자본가들이 내쫓기고 자본주의의 뿌리가 파괴될 수 있는가?”










그는 대답했다:










“아니다, 그것들은 그럴 수 없다.” (앞의 책, p.34)





“자본가들이 사회주의로 성장해 간다는 이론과 실천이 지배적이라면 계급들이 폐지될 수 있는가? 아니다, 그것들은 그럴 수 없다. 이러한 이론과 실천은 계급들을 배양하고 영구화하기만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이론은 계급투쟁의 맑스주의 이론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앞의 책, pp. 34-35)





“쿨락들의 사회주의로의 성장이라는 부하린의 이론과 격렬한 계급투쟁으로서 독재라는 레닌의 이론 사이에 공통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명백하게, 그것들 사이에는 공통된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부하린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 계급들의 폐지가 발생하기 위하여 계급투쟁이 사라지고 종식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레닌은 반대로, 계급들은 완강한 계급투쟁의 수단을 통해서만 폐지될 수 있고 그것들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이전보다 더욱 더 격렬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앞의 책, p.35)










우익적 일탈―부하린주의―에 대한 투쟁이 진지하게 시작되기 전에조차 스탈린은 사회주의의 전체적 전진은 격렬한 계급투쟁을 통해서 나아간다고 언급한 경우가 있었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의 자본주의적 적들을 짓눌러버리고 있는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죽어가는 계급들의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쏘련공산당(볼)의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의 1928년 7월 9일자의 연설에서 말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










“우리는 종종 공업의 영역에서 경제의 사회주의적 형태들을 증진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주의로의 우리의 전진에 의해, 우리가 아마도 그것을 주목하지 않은 채 수십 만 명의 소규모 그리고 중규모의 자본주의적 수공업자들을 짓누르고 있고 파멸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파멸한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저항을 조직하려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될 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우리는 종종 농촌에서 쿨락들의 착취적 경향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들이 무겁게 과세되어야 하고 토지를 임대하는 권리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쿨락들은 쏘비에트들의 선거에서 투표할 권리를 허용받아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기타 등등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점차적으로 농촌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억누르고 짓눌러버리고 있고 때로는 그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쿨락들이 이에 대해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고 쏘비에트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여 빈농들 혹은 중농들의 부분을 조직하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되어야 하는가? 물론 아니다.”





“우리의 전체적인 앞으로의 운동, 사회주의 건설의 영역에서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는 우리의 모든 성공이 우리나라에서 계급투쟁의 표현이고 결과라는 것이 명백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가 더 전진할수록,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저항은 더 커질 것이고 계급투쟁은 더 첨예화될 것이라는 점이 따라나오는데, 반면에 그 힘이 견고하게 증가될 쏘비에트 정부는 이들 요소들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노동계급의 적들을 동원해제하는 정책을, 마지막으로, 착취자들의 저항을 분쇄하고, 그리하여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주요 대중의 가일층의 전진을 위한 기초를 창출하는 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사회주의적 형태들이 발전할 것이고, 노동계급의 적들을 짓눌러 버리고 반면에 우리의 적들은 조용하게 침묵하고 우리의 전진에 길을 내줄 것이라고, 그리고 나서 ‘예상하지 않게’ 모든 사회적 그룹들이 예외없이, 쿨락들과 빈농들 양자가,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양자가, 투쟁 혹은 동요없이 사회주의 사회의 무릎 위에 있는 자신들을 ‘갑자기’ 그리고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발견할 때까지 우리는 다시 전진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다시 퇴각할 것이라고는 상상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수하게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조건들에서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수 없다.”





“죽어가는 계급이 저항을 조직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입장들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은 있어본 적이 없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동계급이 투쟁 혹은 동요없이 계급사회에서 사회주의로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은 있어본 적이 없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대로 사회주의로의 전진은 착취적 요소들이 그 전진에 저항하는 것을 야기할 것이고 착취자들의 저항은 계급투쟁의 불가피한 첨예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노동계급이 계급투쟁은 제 2차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안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전집 11권, pp.179-180)










이미 다루어진 왜곡들에 만족하지 않고, MF는 계속하여 스탈린이 “내부의 계급투쟁은 1939년에 쏘련에서 종식되었다”고 믿었다는 그의 주장의 ‘증거’로서 쏘련공산당(볼)의 18차 대회에 대한 스탈린의 보고로부터 다음의 글들을 인용한다.










“두 번째 국면은 도시와 농촌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제거로부터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완전한 승리와 신헌법의 채택에 이르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주요한 과제는 온 나라에 걸쳐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수립하고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마지막 찌꺼기들을 제거하고 문화혁명을 일으키고 나라의 방위를 위해 철저히 현대적인 군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주의 국가의 기능들은 그에 따라 변했다. 나라 내부에서 군사적 억압의 기능은 멈추었고 죽어 없어졌는데 왜냐하면, 착취가 폐지되었고 남아 있는 더 이상의 착취자들이 없었고 그리고 그리하여 억압해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억압의 기능에 대신해서 국가는 인민의 재산에 대한 도둑들 그리고 좀도둑들로부터 사회주의 재산을 보호하는 기능을 획득했다. 외국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방위하는 기능은 완전하게 남아 있다. 결론적으로 적군(赤軍)과 해군은 또한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외국의 첩보기관들에 의해 우리나라로 보내지는 첩자들, 암살자들 그리고 파괴자들에 대한 탐지와 처벌을 위해 불가피한 형벌기관들과 정보기관들도 남아 있다. 국가기관들에 의한 경제적 조직화와 문화적 교육의 기능은 또한 남아 있는데 완전하게 발전되었다. 이제 나라 내부에서 우리 국가의 주요한 과제는 평화적인 경제적 조직화와 문화적 교육의 사업이다. 우리의 군대, 형벌기관, 그리고 정보기관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들의 경계는 더 이상 나라의 내부에 향해있지 않고 외부에, 외부의 적들에 맞서는 것이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에서 선례가 없는 그리고 첫 번째 국면의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형태와 기능들에서 상당히 다른 사회주의 국가를 가지고 있다.”










스탈린의 연설로부터 위의 인용으로부터 MF는 결론짓는다:










“이것으로부터 내부의 계급투쟁은 1939년에 쏘련에서 종식되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우리의 견해로는 MF에 의해 끌어내어진 것과 같은 이러한 결론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 다음의 지점들은 스탈린 동지의 위의 인용된 언급들에서 포함되어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적절하다:





첫째로, 스탈린 동지가 그의 언급들을 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착취계급들이 이미 폐지됨에 따라 쏘비에트 국가를 “오래된 박물관”으로 추방하는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당에 일정하게 있었다. 스탈린은 그의 답변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유지할 필요성을 강조함에 의해 이러한 요구들의 오류에 찬 성격을 보여주는 데 주요하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계급투쟁의 가장 첨예한 형태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새로운 조건들에서 계급투쟁의 계속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구 사회의 세력들과 전통들에 반대하는, 외부의 자본주의적 적들에 반대하는, 편히 있는 착취계급들의 찌꺼기들에 반대하는, 아직 제거되지 않은 상품생산의 토양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새로운 부르주아지의 새싹들에 반대하는―유혈의 그리고 무혈의, 폭력적인 그리고 평화적인, 군사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교육적인 그리고 행정적인―완강한 투쟁이다.” (코민테른의 강령으로부터)










그러면, MF가 하듯이, “이것으로부터 내부의 계급투쟁은 1939년에 쏘련에서 종식되었다는 것이 떠오른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계급투쟁의 가장 첨예한 형태”―가 이미 1939년에 필요없어지고 낡아빠지게 되었다고 일찍이 주장했는가? 그는 상품생산의 토양이 1939년에 이미 쏘련에서 제거되었다고 말했는가? 아니다, 그는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쏘련공산당(볼)의 18차 대회에 대한 그의 연설에서 1939년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유지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상품생산의 제거에 관하여 말한다면―이것은 1952년에조차 달성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1939년에는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혹자는 MF와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입증되었던 이 ‘발견’을 하기 위해 스탈린 동지의 팜플렛 ≪쏘련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문제들≫을 읽기만 하면된다.





스탈린은 레닌의 글들에 대한 기회주의적 왜곡들에 맞서서, 한번 더 말했다:










“그러나 레닌을 전체로서 취하기를 바라지 않고 부분으로 취하는 것은 레닌을 오해하는 것이다.” (전집 11권, p.171)










이제 다음이 추가되어야 한다: 스탈린을 전체로서 취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부분으로 취하는 것은 스탈린을 오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고백이 스탈린의 글들의 조각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맥락 밖에서 인용하고, 이러한 연계를 승인하지 않는 다양한 조각들을 연계시키고, 그리고 절충주의적인 쓰레기를 제안하는 것인데 MF와 그와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스탈린을 전체로서 취하기를 바라지 않고 부분으로서 취하는데 왜냐하면 바로 그들은 그를 왜곡하기를―그에 대해 거짓으로 전하기를―원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부정직한 그릇된 설명을 그들은 ≪쏘련에서 수정주의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분석’의 이름으로 운동에 제기한다!





둘째로, 쏘비에트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성을 강조함에 있어서, 스탈린 동지는 그 발전에서 국면들을 특징지우고, 쏘련에서 계급투쟁의 형태에서 변화를 특징지었다. 쏘련공산당(볼)의 18차 대회에 대한 스탈린의 연설로부터 위의 인용된 언급들이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우리의 직업적인 거짓 선전자인 MF가 왜곡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 언급들이다. 그의 이들 언급들에서 스탈린 동지는 단지 쏘련의 외부적 및 내부적 입장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표현하는 것 이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시에 쏘련에 대한 주요한 위험은 외부, 즉, 파시스트 독일로부터 온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반면에 내부적으로는 쏘비에트 노동계급은 일시적으로 이전의 착취계급들의 찌꺼기들에 대한 그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사실상 일시적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내부적 즉, 쏘련에서 계급투쟁의 감퇴를 초래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이 쏘련의 외부적―국제적―정세에 적용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사실상 계급투쟁의 열병같은 강화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스탈린은 외부적 계급투쟁을 강조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정당한데, 그 강조는 그 환경에서, 내부적 계급투쟁의 비용을 치르고 만들어졌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것은 내부적 계급투쟁의 비용을 치르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스탈린은, 당시에 지배적인 조건들에서, 외부적 계급투쟁에 대처하는 길은, 쏘련 측에서의 군사적 준비였고 반면에 내부적으로 그것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쏘비에트 정권의 적들―첩자들, 암살자들, 파괴자들 등―에 대한 체포, 재판 그리고 처벌이었다는 것을 주장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올바랐다. 스탈린은 강조점을 내부적 계급투쟁으로부터 외부적 계급투쟁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물론 실수를 범했을 것이다.





스탈린이 계급투쟁의 형태에서 발생한 변화들을 강조했다는 것 때문에, 이것이 그가 그리하여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감퇴의 이론을 제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확실히 그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의 18차 대회에 대한 그의 연설 전체에서 혹은 그밖의 어디에서도 스탈린은 사회주의의 조건들 하에서, 즉,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조건들 하에서, 계급투쟁이 감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정확히 정반대이다. 스탈린은 다시 또 다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조건들 하에서 계급투쟁의 강화의 맑스-레닌주의 이론을 강조했다. 이 투쟁의 형태들은 변화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투쟁은 이 독재의 역사적 시기 전체 동안에 남아 있는다. 여기에, 예를 들면, 1937년에―1936년 헌법의 채택 즉, 18차 대회에 대한 스탈린의 연설에서 고찰되고 있는 시기의 불과 몇 개월 후에―스탈린이 말한 것이 있다:










“우리가 만드는 진보의 모든 걸음마다 계급투쟁이 더욱 더 죽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성장에 비례하여 계급의 적이 더욱 더 길들여질 것이라는 취지의 썩은 이론을 분쇄하고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썩은 이론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이론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인민을 안심시켜 잠들게 하고, 그것은 그들을 덫으로 인도하고 반면에 계급의 적에게 쏘비에트 권력에 대한 투쟁을 위해 결집될 가능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의 진보가 더 클수록, 우리의 성공이 더 클수록, 분쇄당한 착취계급들의 찌꺼기들은 더 분격하게 될 것이고, 더 빨리 그들은 투쟁의 더 첨예한 형태들에 호소할 것이고, 그들은 쏘비에트 국가에게 더욱 더 많은 상처를 줄 것이고, 그들은 파멸당한 자의 마지막 호소로서 투쟁의 가장 절망적인 수단을 더욱 더 붙잡을 것이다.”





“우리는 쏘련에서 뿌리뽑힌 계급들의 찌꺼기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쏘련 국경 너머에 우리의 적들로부터 직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계급투쟁의 영역이 쏘련의 전선에 의해 경계지워질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한쪽 끝은 쏘련 내에서 작동하지만, 그것의 다른 끝은 우리 주위의 부르주아 국가들로 뻗어간다. 뿌리뽑힌 계급들의 찌꺼기들은 이것을 모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하여 그들의 절망적인 돌격을 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이 레닌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명심해야만 하고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당사업에서 결함들과 뜨로츠키주의자와 다른 이중 거래자들을 청산하기 위한 조치들에 관하여”)










그리고 나아가:










“뜨로츠키주의자들이 더 이상 예비가 없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그들의 마지막 기간요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다섯 번째의 썩은 이론을 분쇄하고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동지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 이론은 오직 천진난만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창출될 수 있다. 왜냐하면 뜨로츠키주의 파괴자들은 그들의 예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엇보다도 쏘련에서 뿌리뽑힌 착취계급들의 찌꺼기들에 놓여 있다. 그것들은 쏘련에 적대적인 쏘련의 경계 너머에 있는 수많은 그룹들과 조직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책)










이제 장님조차도 스탈린이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계속과 강화의 이론을 확고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론은 쏘련공산당에 의해 스탈린 시기 내내, 즉, 1937년 이전과 이후에 실천으로 옮겨졌다. 1937-38년에 그것은 우익들과 뜨로츠키주의자들의 블록에 반대하여 실행되었다. 그것은 대략 1920년대, 1930년대 그리고 1940년대에 다시 진술되었고 그리고 그것은 계속하여 스탈린 사후까지 쏘련공산당(볼)의 기본적 입장이 되었다. 오직 20차 당대회에서만 현대의 후르시쵸프 수정주의자들이 “진보의 모든 발걸음마다... 계급투쟁이 잠잠해질 수밖에 없다는...썩은 이론”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쏘비에트 인민을 안심시켜서 잠들게 하고, 그들을 덫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 썩은 그리고 위험한 이론을 필요로 했고 반면에 그들 자신은 쏘련에서 자본주의를 복고하는 일을 진척시키고 있었다.





이리하여 스탈린이 쏘련 내에서 계급투쟁이 종식되었다는 견해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완벽히 명백하다. 반대로 그는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의 강화라는 맑스-레닌주의 이론을 확고하게 고수했다. 더욱이 그는 쏘련 내에서 계급투쟁의 관계에 대한 그리고 쏘련을 “둘러싼 부르주아 국가들로의 이 투쟁의 확장”에 대한, 내부적 및 외부적 계급투쟁에 대한 심오한 이해가 있었다. 그는 계급투쟁의 영역은 경계들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이해했다. 그가 말하기를 “계급투쟁의 영역이 쏘련의 전선에 의해 경계지워진다고 가정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착취계급들의 찌꺼기들은 이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착취계급들의 찌꺼기들이 계급투쟁은 경계들을 가지지 않는다는 위대한 진실을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CFB의 어떤 추레한 맑스주의자 즉, MF는 완전히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는 스탈린에 대해 내부적 및 외부적 정세에서의 실제적인 변화에 따라서 강조점을 내부로부터 외부의 계급투쟁으로 옮겼다는 것에 대해 공격하려 하는가? 이 세계의 MF들은 빈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포위가 얼마나 “불쾌한 현상”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MF는, 비록 일시적이지만 1939년에 쏘련에서 계급투쟁의 실제적인 감퇴에도 불구하고 스탈린과 쏘비에트 정부 그리고 당이 계급투쟁의 불길을 부채질 해야만 했다고―계급투쟁을 짜내야 한다고―생각하는가? 좋다! 쏘비에트, 당 그리고 정부 혹은 스탈린은 이런 정책을 추구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계급투쟁의 불길을 부채질하는 것은 그들의 정책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의 정책은 결코 계급투쟁을 부채질하는 정책으로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왜? 왜냐하면 계급투쟁을 부채질하는 것은 내전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권력에 있는 한,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권력을 공고화하고 핵심의 위치들이 노동계급의 수중에 있는 한, 계급투쟁이 내전의 형태들을 띠는 것은 우리의 이익에 맞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계급투쟁이 폐지되었다거나 혹은 그것이 더 첨예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하물며 계급투쟁이 우리의 전진에서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아니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전집 11권, p.178)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은 당과 정부에 의한 계급투쟁의 부채질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발전의 객관적인 법칙 때문에 강화되는 것이다. 모든 사회주의의 전진은 착취계급들-내부적 외부적 양자-을 희생하고서 달성되는 것이고 이것은 그들의 절망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공개적 전투에서 착취계급들의 패배 후에, 일시적인 휴식이 획득될 수 있고 계급투쟁이 내부적으로 혹은 외부적으로 일시적으로 잠잠해질 수 있다는 것은 똑같이 진실이다. 간섭주의자들의 패배 후에, 쏘련은 외부적인 계급투쟁에 관한 한 일시적인 휴식기를 얻었지만 그러나 내부적 계급투쟁은, 다시 한번 강조점이 국내와 해외의 계급투쟁에서의 실제적 변화들 때문에 외부적 계급투쟁으로 이동했던 1939년까지는 더욱 더 격렬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부적 계급투쟁이 1939년에 쏘련에서 종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간섭주의자들의 패배가 외부적 계급투쟁의 종식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MF는 그의 비방들이 답변되지 않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한다. 스탈린의 글들은, 고찰 중인 시기의 역사는 물론이고, MF의 비방들을 반박하기에 충분한 것 이상이다. 그리하여 추정되기를, 이러한 종류의 고려에 의해 인도되어, MF는 이어지는 MLQ(4호)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쏘련에서 수정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1917년에 수립된 노동자들의 권력이 어떻게 그리고 왜 타도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계급없는 사회로의 이행의 시기가 세계사적 의미에서 그리고 각각의 특수한 나라의 경우에서 강렬한 계급투쟁의 시기라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이해도 가능하지 않다. 첨예한 계급적 갈등을 포함하는 이행의 시기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성격은 레닌에 의해―특수하게는 카우츠키와 그의 논쟁에서―강조되었다. ‘사회주의의 수립’―이행기적 사회와 구별되는 완전한 체제로서 사회주의의―이라는 사상은 1930년대 초부터 광범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고5) 그리고 비록 두 개의 개념들 간에는 명시적인 괴리(disjuncture라고 원문에는 되어 있으나 disjunction의 오기로 보아 해석함)6)가 없었을지라도 쏘비에트 사회의 객관적인 현실은 스탈린에 의해 혼동되고 contractory(원문그대로―모순된 contradictory의 잘못된 서술로 보임―역자) 방식으로 이론화되었다.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그가 계급들의 존재와 계급들 간에 계급적 모순(contraction―contradiction의 오기로 보아 해석함―역자)7)들을 인정했는가 여부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스탈린과 쏘비에트 지도부에 의해 추구된 정책들이 일관되게 계급의 적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 지도부에 의해 추구된 프롤레타리아 정책인가 여부이다. 우리는 계급적 권력의 현실들로부터 분리된 정책의 문제들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레닌의 죽음과 스탈린의 죽음 간에는 쏘련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권력이 얼마나 실제적이었는가?”8)










여기에서 여러분은 그 문제의 철저하게 기회주의적인 정식화-모든 것에 대해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 저자에게 어떤 특수한 견해를 분명히 하지 않게 하고, 그에게 어떤 가능한 어려움들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는 묘책을 위한 일정한 여지를 남겨두는 ‘잇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정식화-를 가지고 있다. MF는 많은 것을 말하면서 여전히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사람과 같다. 한편으로, 그는 말한다, 위의 단락에서, 쏘련에서 수정주의의 승리에 대한 이해는 “만약에 계급없는 사회로의 이행의 시기가... 강렬한 계급투쟁의 시기라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전혀 불가능하다면서, 다른 한편으로 같은 단락에서 두 문장 밑으로 내려가면, 동일한 MF는 말한다: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그가(즉, 스탈린) 계급들의 존재와 계급들 사이의 모순들을 인정했는가 여부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다(여기에서 MF가 ‘계급투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피하기 위해 얼마나 절망적으로 시도하고 있는가를 주목하라)....” 우리는 계급들과 “계급들 사이의 모순들”의 문제에 실제로 관심이 없는가 MF씨? 그러면 당신 자신의 규정에 따르면, “(수정주의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계급없는 사회로의 이행의 시기가 ... 강렬한 계급투쟁의 시기라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고 할 때, “쏘련에서 수정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MLQ의 2호에서 그의 비방들을 퍼뜨리고서는, MF, 뜨로츠키주의자는 전형적인 뜨로츠키적 방식으로 종종걸음을 쳐서 MLQ 4호에서 강조점을 계급들과 계급투쟁으로부터 스탈린과 쏘련공산당(볼)의 정책들이 “일관되게 프롤레타리아적인 혁명적인 정책들”인지의 여부로 옮긴다. 그것이 당신을 위한 ‘변증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MF와 다른 기회주의자들이, 그들의 변화하는 기회주의적 필요에 따라,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그들이 채택하는 입장들에서 끊임없이 이동해야만(ever-shifty) 한다는 점에서 친숙한 ‘변증법’의 유일한 적용이다. 이 기회주의자들의 이 ‘변증법적’ 곡예의 광경은 물론 매우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근거하는 완전한 혼동은 결코 그가, 그에게 특징적인 용감한 무지로써 “쏘비에트 사회의 객관적인 현실은 스탈린에 의해 혼동되고 모순된 방식으로 이론화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재미있지 않는가? 우리는 독자로 하여금 MF와 스탈린 중에서 누가 “혼동되고 모순적인 방식으로” “객관적 현실”을 이론화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게 할 것이다.





철저하게 도피적이고 산만한―그리고 철저하게 기회주의적인―MF의 위의 정식화의 방식은 기회주의자 일반에 대한 레닌의 규정을 기억나게 한다. 이 규정은 그것의 일반적 중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MF에게 완벽히 들어맞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하다. 여기에 레닌 동지가 기회주의의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의 특수한 특징들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우리가 기회주의와 싸우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모든 면에서 즉, 그것의 무정형성, 산만함, 도피성에서 현대의(그리고 이것은 우리 시대에도 꼭 진실이다) 기회주의의 전체에 특징적인 특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기회주의자는 그의 성격 자체에 의해, 하나의 쟁점을 결정적으로 정식화하기를 언제나 회피하고, 그는 중간의 길을 추구하며, 그는 두 개의 상호간에 배타적인 관점 사이에서 뱀처럼 헤어나오고, 두쪽 모두에 ‘동의’하려고 그리고 그의 의견의 차이를 사소한 수정들, 의심들, 올바르지만 순진한 제안들, 그리고 기타 등등으로 감소시키려고 시도한다.”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










거기에서 여러분은 쟁점들의 명백하고 명확한 정식화를 두려워하는 기회주의자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왜냐하면 명백함과 명확함은 기회주의자에게는 그리고 그의 기회주의에게는 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불명확함, 산만함 그리고 도피성은 바로 기회주의의 화려한 성장을 위한 토양과 기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회주의의 내용에 반대하여 싸울 뿐만 아니라 그의 기회주의가 취하는 외양, 즉, 그것의 산만함, 도피성, 그리고 무정형성이라는 형식에 반대하여 싸우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의 의무이다. 우리는 불일치들, 쟁점들 그리고 원칙의 지점들의 명확하고 명백한 정식화를 계속하여 주장해야만 한다. 오직 이러한 주장만이 혼란의 근절과 쟁점들의 명확화라는 그것의 과제에서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노사과연>















번역:편집부 






1) 멘세비키들은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운동에서 소부르주아적 경향이었는데 그들은 혁명적인 볼세비즘-레닌주의를 반대했다. 그들은 맑시즘을 반대하고 수정했고 그것에게서 혁명적 본질을 말살했다.





2) 이따금 CFB출신의 사람들이 뜨로츠키주의에 대한 말의 전투를 수행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뜨로츠키주의자임을 전혀 막지 못했다. 이 서문이 보여주는 대로, 스탈린에 대한 CFB의 모든 공격들은 뜨로츠키주의의 무기고로부터 임대되어 수행되었다.





3) 조지 톰슨 교수의 공격들은 집단화에 대한 스탈린의 저작들에 대한 서문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어졌다. 그것은 이 책에서 일찍이 재현되어 있다.





4) 이 책에서 서문 다음에 바로 나오는 일련의 ≪혁명적 레닌주의에 반대하는 반혁명적인 뜨로츠키주의의 투쟁에 관한 약간의 문제들≫을 보라.





5) 이 비방은 결코 MF가 MLQ2에서 스탈린이 “한 나라에서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고 말하는 것을 막지 목했다. 그것은 어느쪽을 말하는가, MF씨? 스탈린이 쏘비에트 사회가 공산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즉, 그 경우에는 하나의 이행기적 사회―이행의 상태에 있는―였다는 것이라고 믿었거나 혹은 그가 그것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었다고 즉, 그것은 “사회주의의 수립”―“이행기적 사회로부터 구별되는 완전한 체제”―이었다고 믿었다는 것인가?





6) 이 영어 사전은 이 단어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단지 MF씨가 맑시즘을 확장하고 발전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영어를 확장하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7) MF와 같이 우리는 전혀 스탈린이 계급 ‘contractions'을 이 표현의 모든 의미에서 인정했는가의 여부를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MF가 계급적 모순들(contradictions)을 말하려고 의도한다면, 이것들을 스탈린 동지는 위에서 보여진 대로 확실히 인정했다.





8) 한편으로 레닌의 죽음과 스탈린의 죽음 사이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10월 혁명과 레닌의 죽음 사이에 쏘련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권력이 덜 실제적이었는가 여부에 관해, 우리는 고려중에 있는 시기의 역사에 관해 조금이라도 상상력이 있다면 MF보다 더 무지할 수는 없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단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권력은 이전보다 착취계급들의 제거 후에 더 크다고 그리고 이 제거는 “레닌의 죽음과 스탈린의 죽음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우리의 이해이다. 이제 MF조차도, 공정하게 말한다면,  2 더하기 2는 4라고 제기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즉, 노동계급의 정치적 권력은 레닌의 죽음과 스탈린의 죽음 사이에서 더욱 실제적인 것이 되었다고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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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20) 하르팔 브라르 2011-06-04 2160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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