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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19)
글쓴이 하르팔 브라르 E-mail send mail 번호 227
날짜 2011-05-05 조회수 2022 추천수 102
파일  1304601861_번역.hwp

  













번역
















번역:편집부 















6부










집단화에 대하여




















(d) 공업화의 속도










공업의 특히 생산수단 생산의 발전의 속도가 쏘련에서 너무 빨랐다는 고발이 종종 스탈린과 쏘련공산당(볼)에게 퍼부어진다. 이러한 고발은 중국정책 연구그룹에 의해, 그들의 대개의 비겁하고, 모호하고, 둘러대는 방식의 그리고 무정형의 방식으로 위에서 인용된 언급들에서 또한 암시된다. 그리하여 이 고발의 타당성에 관한 문제가 떠오른다. 쏘련이 보다 늦은 속도로 혹은 스탈린이 물었듯이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업화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는가? “공업의 발전의 빠른 속도는 정치국과 인민위원회 인민위원들의 휴식이 없는 성격 탓인가?” 스탈린은 이리하여 이 문제에 대해 계속 나아간다:










“물론 아니다! 정치국과 인민위원회 인민위원들의 성원들은 차분하고 침착한 사람들이다. 추상적으로 말해서, 즉, 우리가 외부적 그리고 내부적 상황들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물론 보다 늦은 속도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요점은 첫째로, 우리는 외부적 그리고 내부적 상황을 무시할 수 없고 그리고 둘째로, 우리가 주위의 상황을 우리의 출발점으로서 삼는다면 우리 공업의 발전의 빠른 속도를 지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이라는 것이 인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스탈린 저작집, 11권, “나라의 공업화와 쏘련공산당(볼)에서 우익적 일탈”)










그리고는 스탈린은 쏘비에트에게 빠른 속도로 공업을 발전시킬 것을 요구했었던 외부적 그리고 내부적 조건들에 대한 검토로 넘어간다. 그는 이러한 빠른 속도를 지시하는 주요한 조건들로서 다음을 열거한다:










외부적 조건들










(i)볼세비키들은 독일, 영국 그리고 미국 등과 같은 당시의 선진적인 자본주의 나라들과 비교할 때 기술적으로 그리고 공업적으로 후진적이었던 나라에서 권력을 떠맡았다. 그러나 쏘련에서 정치체제―쏘비에트 체제―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체제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선진적인 정치 체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후진적인 공업 그리고 기술 사이의 모순이 있었다. 이 모순이 존재하는 한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모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이루어져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끝내기 위해 우리는 발전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선진적 기술을 따라잡고 능가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치적 체제를 수립한다는 의미에서 선진적인 자본주의 나라들을 따라잡고 능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이들 나라들을 또한 기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따라잡고 능가해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하든지 아니면 우리는 궁지에 몰릴 것이다.”










레닌 동지의 말로써 같은 것을 말하자면:










“혁명의 결과는 러시아의 정치체제가 몇 달만에 선진적 나라들의 그것을 따라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하지 않다. 전쟁은 무정하다. 그것은 무자비한 가혹함으로 대안을 제기한다: 멸망할 것인가 혹은 선진적인 나라들을 또한 경제적으로 따라잡고 능가할 것인가... 멸망할 것인가 혹은 전속력으로 질주할 것인가. 이것이 역사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ii) 공업의 발전의 빠른 속도가 없었다면, 방위를 위한 적절한 공업적 기초가 창출될 수 없었고 그리하여 쏘련의 독립은 유지될 수 없었다.





(iii) 공업의 발전의 빠른 속도의 문제는 쏘련이 독일처럼 높은 수준으로 발달된 공업과 기술을 갖고 있었다면, 그리고 동일한 예를 들자면 쏘련의 국가경제에서 공업의 상대적 중요성이 독일과 같은 수준이었다면, 실제로 그러했던 것처럼 첨예한 문제로 쏘련에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iv)쏘련은 자본주의의 포위라는 조건에서 세계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였다:










“공업의 발전의 빠른 속도의 문제는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유일한 나라가 아니라 그러한 나라들 중의 하나였다면, 우리나라에서만 아니라 말하자면 독일과 프랑스 처럼 다른 더 선진적인 나라들에서도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있었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첨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탈린, 앞의 책)










나아가:










“템포를 약간 늦추고, 운동을 억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가라고 이따금 질문이 제기된다. 아니다, 동지들,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템포는 감속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의 힘과 가능성의 한도 내에서 그것을 증대시켜야 한다. 이것은 쏘련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들에 의해 우리에게 지시되고 있다.”





“템포를 느슨하게 하는 것은 뒤처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뒤처지는 사람들은 패배할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패배를 거부한다! 구러시아의 역사의 하나의 특징은 그것의 후진성 때문에 그것이 당한 계속적인 패배였다. 몽골의 칸들에게 패배했다. 터어키의 통치자들에게 패배했다. 스웨덴의 봉건적 지주들에게 패배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향신들에게 패배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가들에게 패배했다. 일본의 귀족들에게 패배했다. 모두가 구러시아를 패배시켰는데―그 후진성 때문에, 군사적 후진성, 문화적 후진성, 정치적 후진성, 공업적 후진성, 농업적 후진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구러시아를 패배시켰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이 되었고 무사히 그렇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은 혁명전의 시인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당신은 가난하지만 풍족하고 강하지만 무력하다, 조국 러시아여.’ 그 신사들은 그 옛날 시인의 시와 매우 친숙했다. 그들은 구러시아를 패배시켰는데 ‘당신은 풍족하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누군가가 당신을 희생시켜 스스로를 부유하게 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패배시켰는데, ‘당신은 가난하고 무력하다’고 말하면서, 그리하여 당신은 패할 수 있고 아무 일없이 약탈될 수 있다. 이런 것이 착취자들의 법칙이다―후진적인 사람과 약자를 패배시키는 것. 그것이 자본주의의 정글의 법칙이다. 당신은 후진적이고, 당신은 약하다―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틀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패할 수 있고 노예화될 수 있다. 당신은 강하다―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올바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당신에 대해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더 이상 뒤쳐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1).”





“과거에 우리는 조국이 없었고 가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를 타도했고 권력은 우리의 손에, 인민의 손에 있고 우리는 조국을 갖고 있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독립을 유지할 것이다. 당신은 우리의 사회주의 조국이 패배하고 독립을 잃기를 원하는가? 당신이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가능한 가장 짧은 시간에 후진성에 종지부를 찍고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데에서 진정한 볼세비키적 템포를 발전시켜야 한다. 다른 어떤 길도 없다. 그것이 레닌이 10월 혁명의 전야에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이다: ‘ 멸망할 것인가 아니면 선진적인 자본주의 나라들을 따라잡고 능가할 것인가.’





“우리는 50년 혹은 백년을 선진적인 나라들로부터 뒤쳐졌다. 우리는 10년 안에 이러한 거리를 따라잡아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하든가 아니면 우리는 굴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쏘련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들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다른, 더욱 더 심각하고 더욱 더 중요한 의무들이 있다. 그것들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우리의 의무들이다. 그것들은 쏘련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들과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더 높이 둔다. 쏘련의 노동계급은 세계 노동계급의 부분이다. 우리는 쏘련의 노동계급의 노력들을 통해서만 승리를 달성한 것이 아니라 또한 세계의 노동계급의 지지 덕분으로 달성했다. 우리나라는 모든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충격여단이라고 말해진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의무들을 부과하는 것이다. 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는 우리를 지지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 지지를 받을 만 했는가? 우리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전투로 우리를 던진 최초의 사람들이었다는, 우리가 노동계급의 국가권력을 수립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는, 우리가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의해서이다. 성공적이라면, 전세계를 변혁하고 전체 노동계급을 자유롭게 할 대의에 우리가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무엇이 필요로 되는가? 우리의 후진성의 제거, 건설에 대한 높은 볼세비키적 템포의 발전. 우리는 이러한  길로 행진해나가야만 하는데 우리를 보고 있는 전세계의 노동계급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거기에서 당신은 나의 선진적 분견대, 나의 충격 여단, 나의 노동계급 국가권력, 나의 조국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대의, 우리의 대의에 기초하고 있고 그들은 잘 활동하고 있다. 자본가들에 맞선 그들을 지지하고 세계 혁명의 대의를 증진시키자. 우리는 세계의 노동계급의 희망들을 정당화해야만 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들을 충족시켜야만 하지 않는가?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를 완전히 불명예스럽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해야만 한다.” (저작집 13권, pp. 40-42)










스탈린에 대해 완전히 편견을 갖고 있는, 아이작 도이처는 스탈린에 대한 그의 전기에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쏘비에트의 승리를 기초했던 요인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인정해야만 했다:










“진실은 전쟁이 러시아에서 그리고 특히 그 동부 지방의 집중적인 공업화가 없었다면 승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많은 수의 농장들의 집단화가 없었다면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트랙터 혹은 다른 어떤 기계를 운전해본 적이 결코 없는 1930년의 농민은 현대전에서 거의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기계―트랙터 스테이션들을 가진 집단화된 농장은 기계화된 전쟁을 위한 농민들의 예비학교였다. 교육의 평균수준의 빠른 상승은 적군(Red Army)이 지적인 장교들과 병사들의 커다란 예비를 끌어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선진적인 나라들에 비해서 50년 혹은 백년이 뒤쳐졌다. 우리는 이러한 뒤처짐을 10년 안에 따라잡아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하던가 혹은 그들이 우리를 분쇄하든가’―그리하여 스탈린은 히틀러가 러시아를 정복하기 시작하기 정확히 10년 전에 말했다. 그의 말은, 그것들을 지금 회상해보면, 사람들에게 찬란하게 충족된 예언으로서, 가장 시의적절한 행동에의 요구로서 인상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물론, 몇 년만 러시아의 현대화에서 지체가 있었더라도 승리와 패배 사이에서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도이처, 《스탈린: 정치적 전기》, 런던, 펠리칸, 1966. p.535)










내부적 조건들










(i) 쏘비에트 농업의 후진성은 공업의 발전의 빠른 속도를 요구하였다. 그것이 없다면 쏘비에트 농업을 새로운 기술적 기초, 대규모 생산의 기초 위에 놓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ii) 공업에서 발전의 빠른 속도가 없었다면, 농민들의 소규모 상품 경제를 폐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을 것이고 “자본주의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 그리고 “내부적 적의 토대, 기초를” 침식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소농민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보다는 자본주의를 위한 보다 확실한 기초가 있다. ... 우리는 자본주의의 뿌리를 뽑아내지 못했고 그리고 우리는 내부적 적의 토대, 기초를 침식하지 못했다. 후자는 소규모 생산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것을 침식하는 유일한 하나의 길이 있는데, 즉, 농업을 포함한 나라의 경제를 새로운 기초, 현대의 대규모 생산의 기초 위에 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가 되는 것은 오직 전기(電氣)이다. 공산주의는 쏘비에트 권력 더하기 나라 전체의 전기화이다.”










나아가: 










“우리가 10-20년 내에 전기화를 한다면, 그러면 소규모 경작자의 개인주의, 그리고 그가 지방적으로 거래하는 자유는 조금도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전기화를 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로의 복귀는 어쨌든 불가피할 것이다.” (레닌, “물품세”)










그리고 더욱 더 나아가:










“10년 혹은 20년 동안 농민층과 올바른 관계들의 유지, 그러면 세계적 규모에서 승리는 보장된다(심지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들이 성장하고는 있지만, 지연되고 있을지라도), 그렇지 않으면 20-40년간의 백위대 테러리즘의 고통이다.”










(iii) 공업의 발전의 빠른 속도는, 농업을 새로운 기술적 기초, 대규모 생산의 기초 위에 놓는 그것의 능력과 더불어, 집단주의 노선을 따라 농민층의 개인주의적 전망을 재주조하기 위한 유일한 물질적 기초를 제공했다. 왜냐하면, 레닌이 말하기를:










“소규모 경작자의 재형성, 그의 전체 정신과 습관들의 재주조는 수세대에 걸치는 작업이다. ... 이 전체 정신은 말하자면, 물질적 토대에 의해서만, 기술적 수단에 의해서만, 농업에서 대규모로 트랙터들과 기계들을 도입함에 의해서만, 대규모의 전기화에 의해서만 건강한 노선들에 놓여질 수 있다. 그것이 소규모 경작자를 근본적으로 그리고 거대한 속도로 재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농민층과의 올바른 관계들”의 문제를 레닌이 이해한 방식이다. “농업을 포함한 나라의 경제를 새로운 기술적 기초, 현대적인 대규모 생산의 기술적 기초위에” 놓을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로의 복귀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중국정책 연구그룹에게는 농민층을 향한 위의 레닌주의적 정책의 추구가 그들이 주장하기에, “세계가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볼세비키 혁명의 타락에 대해 책임이 있는 주요한 오류들”의 하나였던 “농민층에 대한 잘못된 정책”의 추구를 의미한다. 말을 바꾸면, 농민층과 쏘련에서 공업화의 문제에 대한 볼세비키적, 레닌주의적 강령에 대한 볼세비키 당의 고수가 “볼세비키 혁명의 타락”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이론에 따르면, 레닌주의와 볼세비키들은 그들의 더 이상의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 레닌주의와 볼세비즘 자신들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같다! 이상하지 않는가, 동지들? 이러한 이상한 이론으로부터 우리는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직업적인 신사의 정치적 인상학과 유래들을 판단할 수 있다. 우리의 ‘맑스주의’적인 교수들이 “쏘련에서는 농민층―인민의 다수―이 음침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세력으로 남아 있다”고 용감하게 선언할 때, 그들은 스스로를 가장 부패하고 미친 듯한 반공산주의의 삼류 부르주아 문필가들로서, 그리고 정직함에 관하여 보면, 깁슨 자비스 씨와 같은 정직한 자본가의 수준에조차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로서 진정으로 폭로하는 것이다. 1932년에 연합 도미니언 트러스트의 의장이었던 자비스 씨는 당시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의 러시아는 영혼과 이상을 가진, ... 놀랄 만한 활동의 나라이다. ... 그리고 아마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에서 이 모든 젊은이들과 이들 노동자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너무나 슬프게 결여되어 있는 한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희망이다!”










그 “다수”의 사람들이 “음침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세력으로 남아 있었던” 나라의 모습이 전혀 아니다.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반공산주의는 그들의 마법으로 불러내는 속임수와 부정직한 핑계들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문장에서 중국에 대해 퍼부은 ‘칭찬’에 의해 감춰지지 않는다: “... 중국에서는 그들의(농민들의) 혁명적 충동이 장악되었고, 이용되었고 강력한 사상적 세력으로 변혁되었다.”공산주의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부르주아 교수들에게 귀를 기울이면, 혹자는 공산주의와 집단주의의 방향으로 농민층을 전환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농민의 “혁명적 충동”을 여분의 효능있는 양의 사상과 결합시키는 것, 즉, 농민을 변혁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농민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농민의 마음과 그를 둘러싼 물질적 조건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러한 종류의 쓰레기는 현대의 부르주아 써클들에서 ‘하레크리쉬나이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나 철학에서는 그것은 ‘관념론’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정책 연구그룹으로부터 스탈린과 볼세비즘에 대한 부르주아 비판가들이 비록 위장되었지만, 그것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제공하고 있는 것은 순전한 관념론적 쓰레기이다. 중국의 농민층이 계속하여 변혁되고 있고 그러나 이것은 물질적 토대를 변혁함에 의해, 기술적 수단에 의해―그리고 물질적 변혁에도 불구하고가 아니고―달성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쏘비에트 농민층이 “침울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세력으로서 남아 있고”, 그들은 혁명에 대해 진심으로 찬성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음의 질문들에 답변하게 하자: 농민층의 마음을 진심으로 얻지 못했다면, 볼세비키들이 권력에 오른 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철저히 무장하여 내전과 간섭전쟁의 시기에 젊은 쏘비에트 공화국을 공격했던 러시아의 백위대들과 14개국의 제국주의 그리고 비제국주의적 나라들의 결합된 힘을 그들이 패배시킨 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쏘련이 이렇게 “침울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듯한 세력” 즉, 농민층을 가지고서, 사회주의 건설과 농업을 포함하여 나라의 전체 경제를 새로운 기술적 기초, 현대적인 대규모 생산의 기술적 기초 위에 놓는 과제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성취들을 한 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이 “침울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듯한 세력”이 열정을 갖고 집단화를 위한 운동에 결합한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런 “침울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듯한” 그리고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비참한 사람들이 나찌의 전쟁 기계를 패배시킨 것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 혹자는 그 주장의 터무니없이 반혁명적인 성격을 깨닫기 위해 이런 질문들을 하면 된다. 오직 뜨로츠키주의의 고수자들만이 쏘련이 가장 틀림없이 달성했던 승리들을, 동시에 농민층의 진심을 획득함이 없이, 그들을 “침울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세력”을 남아 있는 채로,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승인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그리고 최소한 정직한 사람은 누구나2), 논의 중에 있는 문제에 대한 스탈린 동지의 글들과 연설들과 익숙해진 후에는 우리의 부르주아 교수들에 의해 쓰여진 쓰레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





위의 것으로부터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신사들이 농민문제에 대한 레닌주의의 관점에 대해 혹은 쏘련에서의 공업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이 농민문제를 물질적 기초를 무시하는 관념적 방식으로 처리하고, 그들이 공업화의 문제를 쏘련에서 공업화의 외부적 그리고 내부적 조건들을 무시하는 추상적 방식으로 처리하고,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라 “농민철학자들”이고, 그들이 “농민층과 올바른 관계들”을 구성하는 것에 관한 한 가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들이 “농민층과 올바른 관계들”의 문제를, 농민들이 그들의 경작을 “새로운 기술적 기초, 현대적인 대규모의 생산의 기술적 기초 위에” 놓는 것을 돕는 문제로서 간주하는 대신에 그것을 단순히 농민을 “어르는” 것으로 축소하고 있고,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맑스-레닌주의와 공산주의에 관해 하나도 아는 것이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단지 완전한 혼란을 퍼뜨린 후에, 볼세비즘에 대한 특히 스탈린에 대한 우리의 비판가들은 계속하여 가장 들떠있을 뿐 아니라 전체 글에서 드물게 진심어린 언급들 중의 하나인 다음의 문장을 쓰고 있다. 여기에 그것이 있다:





“스탈린의 역할은” 그들은 쓴다.










“해명과 평가를 필요로 한다―많은 것들이 오해, 비진실 그리고 억측으로 가리어진 채로 있다. 어떤 맑스-레닌주의자도 충분한 진실이 이미 전달되었다고 느낄 수 없다.”










이 글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곳에서 스탈린에 대해 중국정책 연구그룹이 말하는 것의 관점에서, “많은 것(스탈린의 역할에 대한)이 오해, 비진실 그리고 억측인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은 최소한 그들에게 놀라움으로서 다가오지 않는다. 스탈린의 역할에 대해 “해명과 평가”에 공헌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서, 그들은, 더구나 “오해, 비진실 그리고 억측에 의해” 모든 것을 가리는 잘 훈련되고 잘 존경받는 부르주아적 방법을 이용하여 볼세비즘에 대한, 그리고 스탈린에 대한, 쏘련공산당(볼)에 대한,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성취들에 대한―간단히 말해서 위대한 10월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비방이라는 방탕에 빠져 있었다. “어떤 맑스-레닌주의자도” “충분한 진실”은 물론이고 단 하나의 진실도 볼세비즘과 스탈린에 관해 중국정책 연구그룹에 의해 “이미 전해졌다고 느낄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혼란을 더했을 뿐이고 그들은 부르주아-뜨로츠키주의-수정주의 써클들에서 스탈린의 역할을 둘러싸고 있는 “오해, 비진실 그리고 억측”의 가리개를 강화했고 그 가리개는 이들 써클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방사되고 있다. 그러나 마오쩌둥 동지가 말하듯이 “나쁜 것은 좋은 것으로 전환될 수 있다.”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철저히 뜨로츠키주의적인 글은 이 조직의 부르주아적-뜨로츠키주의적-수정주의적 성격을 폭로하는 수단으로서 좋게 이용되는 것으로 전환될 수 있고 전환되어야만 한다. 이 신사들은, 진실로, 스탈린의 역할에 대한 단 하나의 진실도 전하지 않았고 그러나 이것과 다른 유사한 글들을 씀에 의해서,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 자신에 대한 “충분한 진실”을, 즉, 그들이 노동계급운동에서 부르주아적-뜨로츠키주의적-수정주의적 전설들의 행상인들이라는 것을 전했다. 왜냐하면 “오해, 비진실 그리고 억측에 의해” 스탈린의 역할을 가리웠던 사람들은 단지 제국주의적(그리고 비제국주의적) 부르주아지, 수정주의자들 그리고 뜨로츠키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맑스-레닌주의자들에게는 스탈린의 역할은 신비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고 명확함이 분명한데, 즉, 레닌 사후에 그는 레닌의 명령을 수행했다는 것, 그는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지도했고, 쏘련에서 내부적(자본가-뜨로츠키주의자-부하린주의자) 그리고 외부적(제국주의 부르주아지) 적들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방어했고, 이들 모든 과제들을 명예롭게 완수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의 역할이 “오해, 비진실 그리고 억측에 의해 가리워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입맛을 다시며 부르주아적인 “오해, 비진실 그리고 억측”의 이러한 이미 존재하는 무더기에 더 많은 것을 보탠 사람은 중국정책 연구그룹에 있는 부르주아 코흘리개들 뿐이다. 만약에 중국정책 연구그룹이 스탈린의 역할을 해명하는 데에 진정성이 있다면 그러면 그것은 신화적인 스탈린이 아니라 쏘련의 실제적 역사, 현실의 요시프 스탈린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 잘 알아야만 한다. 그들이 이것을 했을 때만이 그들은 스탈린에 대해 글을 쓰는 어떤 시도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러한 과제가 그들의 수준을 넘는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그 주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야만 한다. 그것은 최소한 단지 그들의 “오해, 비진실 그리고 억측” 때문에 존재하는 스탈린의 역할에 관한 혼란의 그 부분을 감소시키는 잇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신사들의 반볼세비즘과 반맑스-레닌주의의 하나의 독특한 특징 즉, 이 신사들의 반볼세비즘은 중국, 중국공산당 그리고 마오쩌둥 동지에 대한 ‘지지’와 ‘칭찬’이라는 그들의 큰 목소리의 선언들을 항상 수반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왜 그러한가? 왜 이 부르주아는 이러한 경로를 채택하는가? 그들은 하나의 돌로 두 마리의 새를 죽이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로를 채택한다. 첫째로, 쏘비에트 농민층에 대한 관심이라는 부정직한 가림막 하에서, 그들은 농업문제―농민층과 집단화의 문제―에 대한 쏘련공산당(볼)의 레닌주의적 노선을 탄핵하고 불신하게 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고 둘째로, 중국과 쏘련 사이에, 마오쩌뚱 동지와 스탈린 동지 사이에,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상이함이라는 이야기로써 혁명가들 중에서 숙맥들을 붙잡고, 그리고 그들을 레닌주의로부터 떼어놓음에 의해 그들을 완전히 혼란시키기 위해서이다.





운동하는 우리 동지들 중의 어떤 부분이 이러한 부정직한 속임수에 어찌 반응할 것인가? 이 부르주아 협잡꾼에게서 가면을 찢어버리는 대신에, 그들이 사기를 친다고 죄를 밝히는 것 대신에, 그들은 미끼를 삼키고, 덫으로 걸어들어가서, 그리고 스스로에게 반스탈린주의적 그리고 따라서 반레닌주의적 입장을 채택하도록 허용한다. 이 동지들은 사실이 이와 같기 때문에 동시에 레닌을 공격하지 않고서는 스탈린을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스탈린은 그의 생애를 통하여 레닌주의를 가장 충실하게 고수했고, 견고하게 레닌주의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군가 스탈린을 공격하면서 여전히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 혹은 마오쩌뚱 동지의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중국을 ‘칭찬하는’ 사람이 모두 맑스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 선언이 중국을 ‘칭찬하는’ 이 사람들의 일부는 철두철미 반맑스주의자이고 그리하여 게다가 반중국적이다. 예를 들면 여기에,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지도적 관점들의 하나인 조안 로빈슨 교수가 과학적 사회주의의 천재적 설립자인 칼 맑스에 대해 해야만 했던 놀랍도록 즐거운 언급들 중에서 임의로 선택한 알랑거리는 말이 있다. 그녀의 책 《맑스의 경제학에 대한 에세이》(이것은 맑스의 경제학에 반대하는 에세이라고 제목이 더 올바르게 붙여져야 할 것이다)의 제 2판 서문에서, 로빈슨 여사는 맑스를 “사고의 형이상학적인 습관들”이라고 고발하고 있다. 그녀는 쓰고 있다:










“대학교수들(academics)은 맑스를 이해하는 체조차 하지 못했다. 편견은 별도로 하고, 의미의 의미를 조사하도록 양육된 세대에게는 낯설은, 그의 사고의 19세기적인 형이상학적인 습관에 의해 그들에 대해 하나의 장벽이 창출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맑스의 개념들을 한 대학교수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은 형이상학이 그 스스로를 위하여 귀중한 공공연한 맑스주의자들을 난처하게 하고 화나게 했다.” (p. vii)










전체 맑스주의 경제과학의 초석이면서 세계를 혁명했던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해 동(東)앙글리아의 소택지(즉, 캠브리지 대학교) 출신의 교수는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










“가치 개념은 나에게는, 그 자체로는 활동상의 의미를 매우 결여했지만,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주장이 독창적인 사고에 영감을 어떻게 주는가에 대한 놀랄 만한 사례인 것 같다.” (앞의 책, p. xi)





"맑스의 가치 이론은 많은 혼동을 야기했고 많은 논쟁을 발생시켰다. 우리가 《자본론》 제 1권의 단순한 교조주의로부터 제 3권의 뒤얽힌 정식화로까지 맑스 자신의 지성의 어려운 투쟁을 따라가면 그것은 틀림없이 당혹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3권의 견해로부터 출발하면, 여행은 훨씬 덜 힘들다.“ (앞의 책, p.17)










맑스주의를 맬더스주의로 대체하려는 쓸데없는 그녀의 완고한 시도에서, 그녀는 다음을 말하고 있다:










“고용과 임금들. 유효 수요(‘케인즈주의적인’이라고 종종 불린다)의 실패로 인한 실업은 자본주의 경제에 의해 제공되는 일자리의 숫자보다 이용할 수 있는 노동의 공급이 더 빠르게 성장할 때 발생하는 비고용(종종 ‘맑스주의적인’이라고 불린다)과는 구별되어야만 한다. 맑스는 노동의 공급을 농민들과 숙련공 경제의 파멸에 의해 배양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맬더스의 반동적인 견해와 싸우려는 그의 바람에서, 그는 인구의 빠른 성장이 노동계급의 이해들에 유해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것은 그의 이론과 불일치하는 하나의 탈선이다.” (앞의 책, p. xiv)










그녀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자본주의는 비참함의 원인이 더 이상 아니며 지금부터 계속하여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과잉인구이지 자본주의가 아니다:










“ ... 착취는 더 이상 비참함을 증가시키는 원인으로서 대표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공업의 노동계급을 혁명적 세력으로서보다 보수적인 세력으로서 만드는 세계에서의 특권적 지위를 제공한다. 비참함은 확실히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용가능한 노동력이 착취가 그것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자의 궤도 바깥에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기타 등등. 이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맑스 경제학에 대한 로빈슨의 왜곡들과 직접적인 거짓말들―간단히 말하면, 맑스주의에 대한 공격―이 나타난다. 그리고 여전히 로빈슨 교수는 ‘맑스주의자’이다! 이들과 같은 친구들과 함께하면 맑스는 확실히 어떤 적들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맑스―변증법적 그리고 역사적 유물론의 가장 위대한 거장―를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습관들”이라고 그리고 “단순한 교조주의”라고 고발할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은 맑스주의의 노동가치론을 “활동상의 의미를 매우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서 탄핵하는 사람들, 그들이 불쌍하고 늙은 스탈린에 대해 무슨 고발을 날릴 수 없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중국의 진정한 친구로서 신뢰받을 수 있는가? 그들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조안 로빈슨 같은 일반적인 부르주아 교수를 본받아서 의식없이 스탈린을 공격하기 시작한 운동에서의 동지들이 여전히 있다.





운동에서 우리의 동지들은 또한 부르주아 교수들이 맑스-레닌주의를 강등시키고 얕잡아 보려는 그들의 노력 속에서 자주 마오쩌뚱 동지의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것이 마오쩌둥 동지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혀 그 반대이다. 누군가 마오쩌뚱 동지가 스탈린의 생전에 볼세비즘에 대해, 스탈린에 대해 그리고 쏘련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로 하여금 중국정책 연구그룹에 의해 생산된 <브로드쉬트>같은 부르주아적인 한담의 칼럼들에 의존하는 것보다 차라리 마오쩌뚱 동지의 선집들을 읽게 하자. 여기에 마오쩌뚱 동지로부터의 몇몇의 인용들이 있다:










“맑시즘을 연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주요한 자료로서 <쏘련공산당(볼세비키들)의 역사, 단기과정>3)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것은 지난 백년의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가장 좋은 종합이고 요약이며, 이론과 실천의 통일의 모범이고 지금까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포괄적인 모범이다. 우리가 레닌과 스탈린이 맑시즘의 보편적 진리를 쏘비에트 혁명의 구체적 실천과 어떻게 통일시켰는가 그리고 그리하여 맑시즘을 어떻게 발전시켰는가를 볼 때, 우리는 우리가 중국에서 어떻게 작업을 해야만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학습을 개혁하자”. (1941) 선집 3권, p. 24)










마오쩌뚱 동지가 레닌과 스탈린이 “맑시즘의 보편적 진리를 쏘비에트 혁명의 구체적 실천”과 통일시키고 그리하여 맑시즘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여기에서 말하는 반면에, 우리의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저명한 부르주아 교수들은 쏘련공산당(볼)이 농민층에 대해 올바른 정책을 가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마오쩌뚱 동지는 쏘련, 쏘련공산당(볼) 그리고 레닌과 스탈린에 대해 중국의 동지들이 어떻게 중국에서 작업해야 하는지에 관한 길을 지시하는 것으로서 사례로 드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교수 친구들은 마오쩌뚱 동지가 쏘련에서 따랐던 농민층의 문제에 관한 것과 완전히 상이한 정책을, 그리고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쏘련으로부터의 큰 반대에도 불구하고 따랐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가 쓰여지는 방식이다. 이것이 쏘련에서 수정주의의 발전에 관한 ‘비판적 분석’이 부르주아 써클들에서 행해지는 방식이다. 쏘련에서 수정주의의 기원과 성장은 설명되어야만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하나는 확실하다. 즉, 이러한 분석을 행하는 방식은 부르주아 교수들이 하고 있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마오쩌뚱은 다른 곳에서 말한다:










“이 이론(즉, 변증법적 그리고 역사적 유물론)은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가일층 발전되었다.” (“모순에 대하여”)










그리고 나아가:










“스탈린의 분석은 우리에게 모순의 특수성과 보편성 그리고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모범을 제공하고 있다.” (앞의 책)










이 모든 것은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또 다른 지도적 관점인 조지 톰슨 교수가 마오쩌뚱의 이름으로, 스탈린에 대해 변증법 그리고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발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쏘련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들 하에서조차, 노동자들과 농민들 사이에 차이가 있고 이 차이는 하나의 모순인데, 비록 노동과 자본의 모순과는 다르지만, 그리고 그것은 적대관계로 강화되지 않을 것이고 계급투쟁의 형태를 띠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에서 확고한 동맹을 수립했고 점차적으로 사회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전진의 과정에서 이 모순을 해결하고 있다.” (마오쩌둥, 앞의 책) 










마오쩌둥 동지는 쏘비에트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에 “확고한 동맹”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부르주아 교수들은, 쏘비에트 농민층을 “혁명을 진심으로 지지한 적이 없는” “침울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듯한 세력”으로 말하고 있다. 마오쩌뚱 동지는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과 “사회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전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스탈린에 대한 부르주아 비판가들은 “이 정책 결정”(즉, 공업화)을 “결코 잠잠해진 적이 없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투쟁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오쩌둥 동지는 농민층에 대한 쏘비에트 정책에 대해 승인하는 방식으로―그것과의 “확고한 동맹”의 정책―말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부르주아적인 스탈린 말살자들은 마치 마오쩌뚱 동지와 중국공산당의 농민층에 대한 노선이 쏘련에서 따랐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말하고 있다4).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탈린은 중국 인민의 해방의 대의의 진정한 친구이다. 불화의 씨를 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어떠한 거짓말과 중상들도 스탈린에 대한 중국 인민의 충심의 애정과 존경 그리고 쏘련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우정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스탈린의 60회 생일을 맞아 1939년 12월 20일에 마오쩌뚱 동지가 행한 연설로부터, 마오쩌뚱 선집 2권으로부터 재생됨).










운동하는 동지들은, 중국정책 연구그룹을 포함하는 다양한 부르주아 본부들에서, 스탈린과 마오쩌뚱 사이에, 10월 혁명과 중국혁명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거짓말과 중상들을 이용하는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는 때에 마오쩌뚱 동지의 마지막으로 인용된 것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제 마오쩌뚱 동지로부터의 위의 인용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아마도 스탈린에 대해 어느것도 모르고 뿐만 아니라 마오쩌뚱 동지와 중국공산당의 글들과 정치적 입장에 대해 한 가지도 모르는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신사분들에 의해 행해지는 주장들의 어리석음을 기이하게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탈린 동지의 글들에 대한 현재의 모음집의 간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는 칼 맑스로부터의 다음의 글을 인용하고 싶다:










“하나의 민족은 다른 민족들로부터 배울 수 있고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의 사회가 그것의 운동의 자연적 법칙들의 발견―그리고 현대 사회의 운동의 경제적 법칙을 드러내는 것이 이 작업의 궁극적 목적인데―을 위한 올바른 진로를 가고 있을 때조차, 그것은 용감한 도약에 의해 명백해질 수 없고, 또한 그것의 정상적인 발전의 이어지는 국면들에 의해 제공되는 장애물들을 법률의 제정에 의해 제거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진통을 단축시키고 감소시킬 수 있다.” (맑스, 《자본론》 1권의 1판에 대한 저자의 서문).










쏘련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많은 긍정적인 것이 있다. 이 책을 간행하는 우리의 목적은 중국정책 연구그룹과 같은 종류의 다른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유형의 스탈린과 쏘련공산당에 대한 공격의 뜨로츠키주의적-부하린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 스탈린 동지의 지도력 하에서 농업문제에 대한 쏘련 공산당의 레닌주의적 노선을 노동계급운동에게 알리는 것, 그리고 뜨로츠키주의, 수정주의 그리고 개량주의 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형태들에 반대하는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각 민족은 자신의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전진에서 특수한 문제에 직면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10월 혁명의 긍정적 경험으로부터, 쏘련의 집단화로부터 그리고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로부터 배움에 의해, “진통을 단축하고 감소시킬 수 있다” (6부 끝) <노사과연>






1) 부르주아 저술가들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스탈린의 민족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결여를 강조하려는 목적을 위하여 이 점에 대한 이 인용을 대개 찢어내고 그리하여 그것을 맥락으로부터 찢어버린다. 이러한 매우 영리하지 못한 협잡을 폭로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인용을 전체적으로 재생하면 된다.





2) 그것은 중국정책 연구그룹 출신의 우리의 ‘맑스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발견으로서 다가올 수 있지만, 영국과 같은 제국주의 나라에서 1948년경 발행된 공인된 부르주아적인 <어린이 대백과>조차도 다음과 같은 쏘비에트 생활에 관한 잘 알려진 진실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












“제 2차 계획은 제 1차보다 더욱 더 인상적이었지만 그러나 덜 엄격한 목표를 가졌다. 인민의 복지는 배가되었고 집단농장 농부들은 유복하게 되었다. ... 식량과 ‘물건들’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증가되었다. 거칠게 말하면, 러시아는 자신의 1932년 산출고를 배가할 것을 목표로 했다. ... 새로운 병원들, 휴게소들, 학교들, 탁아소들, 목욕탕들, 독서실들, 클럽하우스들, 스포츠 구장들, 그리고 기타 등등이 수에 있어서 증가했다. 고기, 우유, 계란, 지방, 설탕, 의류, 그리고 구두의 소비가 배 이상이 되었다. ... 오늘날 노동자들은 기계를 실업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해방자로서 보는데 왜냐하면, 기계들이 더욱 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함에 따라 인민은 소비할 더욱 많은 재화와 높은 임금들, 더 좋은 노동조건들, 더 짧은 노동일 등으로 보답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정치적 자유는, 우리의 단어의 의미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하건대 그는 이전에 가졌던 적이 없는 어떤 것을 그렇게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많은 것을 의미하는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자유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동등하다고 생각할 자유가 있다. 공동체에 대한 공헌만이 사회적 위치를 결정한다. 그가 일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다면 그는 연금을 받는다. 그가 아프다면 그는 돌보아진다. 그의 어린이들은 그들이 17세가 될 때까지 국가에 의해 교육받는다. ... 그들의 나라에 대한 이러한 진정어린 애정은 나찌의 무리가 ...1941년에 그들의 나라를 침략했을 때 도시사람과 농민들 모두 포함하여 모든 러시아인들에게 타고난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것의 군대는 죽을 때까지 싸웠고 공장 노동자들은 휴식없이 노동했고 그리고 농민들은 전진하는 나찌에게 가치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하에서 자유의 결여에 대한 그리고 특별하게는 자유의 결여에 대한 러시아 인민의 ‘사랑’에 대한 대개의 비방들을 제쳐놓으면, 위의 인용된 단락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논의 중인 시기 동안에 쏘비에트 인민의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복지에 대한 진실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들은 쏘비에트 인민의 열정과 기쁨 그리고 사회주의의 땅에 대한 그리고 레닌과 스탈린의 당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진정으로 반영하는데, 그것은 쏘비에트 농민층이 “침울하고, 마법에서 깨어난 듯한 세력”이라는 것에 관한 우리의 ‘맑스주의자들’의 주장과 총체적으로 모순된다.





3) <쏘련공산당(볼세비키들)의 역사-단기 과정>은 스탈린동지에 의해 쓰여졌고 그의 전집 중의 한 권이다.





4) 중국정책 연구그룹과 그것과 같은 종류에 의한 스탈린에 반대하는 그리고 그가 지도하는 쏘련공산당(볼)에 반대하여 퍼진 비방들이 단지 비방들일 뿐이라는  사실에 대한 더 이상의 증거는 <반대파에 대하여>라는 스탈린 동지의 글들에 대한 외국어출판사(북경)에 의한 1970년대 중반경의 발행인데, 그것들 모두는  중국정책 연구그룹에 반대하는 주장들과 극히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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