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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뜨로츠키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18)
글쓴이 하르팔 브라르 E-mail send mail 번호 223
날짜 2011-04-16 조회수 1917 추천수 86
파일  1302890915_tro.hwp

  

























번역:편집부 















6부










집단화에 대하여




















G. 집단화의 성공들










집단화가 당에 의해 시작되었을 때, 쿨락들과 전세계에 걸친 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당내의 기회주의적 부분들 또한 적대적으로 반응했다. ‘과학’적이라는 사람들도 집단화를 비판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국영농장과 집단농장들에 소비된 돈이 ‘허비된’ 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당에 의한 집단화의 이어지는 성공들은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결정들(쿨락에 반대하는 완전한 규모의 공세를위한 준비를 위한 국영농장과 집단농장들의 조직화에 관한)을 조소했던 사람들이 격렬하게 스스로를 조소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스탈린).





이미 1930년 2월까지 농민의 농장들의 50%가 집단화되었는데 그리하여 집단화의 5개년 계획의 목표를 100% 초과달성하였다.





1929년부터 1931년 사이의 약 3년간의 과정 동안 당은 200,000개의 집단농장들과 5,000개의 국영농장들의 조직에 성공했는데, 그곳에서 곡물이 재배되고 가축이 사육되었다. 4년의 과정 동안에 당은 동시에 수확면적을 21,000,000 헥타아르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최초의 5개년 계획 말에 당은 60% 이상의 농민의 농장들을 집단농장으로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는데 농민들에 의해 경작되는 총면적의 70% 이상을 포괄했다―그리하여 5개년 계획목표를 세배 넘게 초과달성했다.(표 1과 2를 보라)





최초의 5개년 계획의 말에 당은 또한 연간 시장용 곡물 12억~14억 푸드의 조달을 가능하게 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개별적 농민의 영농이 지배적인 시기에 조달되었던 5억~6억 푸드와 비교된다(표들을 보라).










<표 1>  집단화의 진전







































































 





1929





1930





1931





1932





1933





1934





1938





집단화된 가구의 비율(총가구와 비교하여)





3.9





23.6





52.7





61.5





65.0





71.4





93.5





집단화된 파종면적의 비율(총파종면적과 비교하여)





4.9





33.6





 





 





 





 87.4





 99.3







         





<표 2> 부문별에 따른 곡물수확 지역















































































































  부문들





1929





1930





 1931





 1932





 1933





 1938





1933년에 총면적에 대한 비율





1. 국영농장들





1.5





2.9





8.1





9.3





10.8





 





10.6





2. 집단농장들





3.4





29.7





61.0





69.1





75.0





92.0





73.9





3. 개인 농민 농장들





91.1





69.2





35.3





21.3





15.7





0.6





15.5





쏘련의 총 곡물수확 지역





96.0





101.8





104.4





99.7





101.5 





 





100.0







(단위: 백만 헥타아르)





(1934년 1월의 17차 당대회의 시기까지 국영농장들과 집단농장들은 합쳐서 쏘련에서 곡물재배면적의 84.5%를 통제했고 그리하여 쏘련에서 농업의 모든 분야에서 전체 농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력이 됐던 반면에 여전히 남아 있던 개인적 농민 농장들은 모두 전체 농민인구의 35%를 대표했고 단지 곡물수확면적의 15.5%만을 통제했다)





                    





 ----------------





집단화에 대한 당의 정책은 계급으로서 쿨락들을 뽑아버리는 데에서, 노동하는 농민층을 쿨락의 착취와 굴레로부터 해방하는 데에서, 그리고 쏘비에트 정권에게 농촌에서의 확고한 경경제적 기초, 대규모의 집단화된 농장의 기초를 제공하는 데에서 성공적이었다.










“당은 쏘련을 소농민적 영농의 나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적 농업의 나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스탈린, 저작집 13권, p.194)










당에 의해 성취된 이러한 성공들은 심지어 약간의 자본가들과 개량주의자들, 즉, 최소한 정직하고 진실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조차 인정되었다. 예를 들면 여기에 영국의 자본가이고 유나이티드 도미니언 트러스트의 의장이었던 깁슨 자비스 씨가 1932년 10월에 쓴 것이 있다.










“지금 나는 내가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볼세비키도 아니라는 것이 명확히 이해되기를 원한다. 나는 명백히 한 사람의 자본가이고 개인주의자이다. ... 러시아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반면에 우리의 공장들과 조선소들의 매우 많은 수는 놀고 있고 대략 3,000,000명의 우리 사람들이 절망적으로 일을 구하고 있다. 5개년 계획에 대해 농담들이 행해졌고 그것의 실패가 예언되었다. 여러분은 실제로 예견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5개년 계획 하에서 달성되었다는 것을 의문의 여지없이 알 수 있다. ... 내가 방문한 이 모든 공업 도시들에서새로운 도시가 성장하고 있는데, 나무들과 풀밭들에 의해 아름답게 꾸며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거리들, 가장 현대적인 유형의 가옥들, 학교들, 병원들, 노동자들의 클럽들과 노동하는 어머니들의 아이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필수적인 탁아소 혹은 육아실을 가진 명확한 계획에 입각한 도시이다. ... 러시아인들 혹은 그들의 계획들을 얕보지 마라. 그리고 쏘비에트 정부가 붕괴할 것이 틀림없다고 믿는 오류를 범하지 마라. ... 오늘날의 러시아는 영혼과 이상이 있는 나라이다. 러시아는 놀라운 활동의 나라이다. 나는 러시아의 목적이 건전하다고 믿는다. ... 그리고 아마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러시아에서 이 모든 젊은이들과 노동자들이 오늘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슬플 정도로 결여되고 있는 하나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희망이다! 쏘비에트의 농촌에서 안내하는 경계표는 더 이상 교회의 돔이 아니며 곡물 엘리베이터와 저장용 지하실이다. 집단농장들은 돼지우리들, 헛간들, 그리고 가옥들을 건설하고 있다. 전기가 마을에 들어오고 라디오와 신문들이 마을을 정복했다.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기계들을 작동시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젊은 농부들이 미국인들이 일찍이 보았던 것보다 더 크고 복잡한 농업 기계류를 만들고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기계의 정신’을 갖게 되고 러시아는 빠르게 나무의 세대로부터 철, 강철, 콘크리트 그리고 자동차들의 세대로 건너가고 있다.” (1932년 11월, 미국의 부르주아 잡지 ��더 네이션��으로부터, 스탈린, 저작집 13권, pp.169-170에서 인용됨).










이제 한 개량주의자의 의견을 보자. 다음은 영국의 ‘좌익’ 개량주의 잡지 ��포워드��에 의해 1932년 9월에 발표된 의견이다:










“누구도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양의 건설작업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공장들, 새로운 영화관들, 새로운 학교들, 새로운 클럽들, 새로운 주택들의 커다란 블록들, 모든 곳에 있는 새로운 빌딩들, 많은 것은 완성되었고 다른 것들은 골조인 상태이다. 이미 이루어졌고 그리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영국의 독자의 마음으로 옮기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믿기 위해서는 보아야만 한다. 우리의 전시의 노력들을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것과 비교한다면 벼룩에 물린 자리에 불과하다. 서구에서 가장 큰 호경기의 시기에조차, 오늘날의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열병 같은 건설 활동과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인정한다. 혹자는 2년 동안 러시아의 풍경에서 너무 많은 변화들을 보아서, 앞으로의 10년 후에 러시아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시도를 포기한다. ... 따라서 완고하게, 경멸적으로 러시아에 대해 거짓말하는 영국 언론의 환상적인 진실이 결핍된 이야기들을 여러분의 머리로부터 쫓아 버려라.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가장 사소한 이해도 없이, 중산계급의 시각들 통해 건방지게 러시아를 보고 있는 어설픈 지식인들에 의해 유포되고 있는 절반의 진실들과 오해들을 쫓아 버려라. ... 러시아는 일반적으로 말하여 근본적으로 건전한 노선들에 기초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있다. 이것을 하기 위해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고, 이전에 세계적으로 본 적이 없는 에너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고, 세계의 나머지로부터 고립된 광대하고 미발전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이러한 시도에서 초래되는 거대한 어려움들을 그들은 갖고 있다. 그러나 2년 후에 다시 그것을 본 후에 내가 갖고 있는 인상은 적대적인 자본주의 세계에 대해 도전하는 방식으로 굳건한 진보, 계획적인 창조, 건설을 하고 있는 나라의 그것이다.”










위의 인용들은 집단화와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공격하고, 당시에 달성된 사회주의의 업적들을 인정하기 거부하는 뜨로츠키주의자들과 다른 ‘사회주의자들’이, 사실상 정직한 개량주의자들과 자비스 씨와 같은 정직하고 솔직한 자본가들보다도 더 나쁘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그것들은 뜨로츠키주의자들과 다른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집단화에 대한 비판가들이, 집단화 계획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에 무관하게 “사실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들의 의견들을 고집하는 중세의 화석들의 종족에 속하는 완강한 보수파”라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이런 것이 사회주의 건설의 성공들(사회주의적 산업화와 집단화)이고 노동자와 농민들의 물질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들에서 이어지는 개선이었는데 스탈린은 16차 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 이 모든 것은 건강하고 원기왕성한, 쏘비에트 나라의 힘을 적절한 수준으로 상승시킬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적들에 의한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목숨으로써 보호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새로운 세대를 육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계급의 노동과 삶의 조건들을 창출한다.” (저작집, 12권, p.307)










의심의 여지없이 노동자들의 물질적 조건들은 확실히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될 수 있듯이, 부르주아적인 완고한 보수파들(뜨로츠키주의자들과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하여), 이들 “중세적인 화석들”은 계속하여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물질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들에서 발생했던 어떠한 개선도 부정했고 여전히 부정하고 있다. 스탈린이 그것을 지적했듯이:










“이러한 성과(즉, 인민의 물질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들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조금의 의심이라도 갖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쏘비에트 정권의 공공연한 적들, 혹은 아마도, 아비시니아의 황제가 고등수학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민족들의 경제와 노동인민의 조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부르주아 언론의 확실한 대표들이다.” (저작집 13권, p.204) 










위에서 언급된 것의 관점에서 그리고 요약을 한다면, 집단화에 대한 당의 정책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성공을 성취했다는 것이 언급될 수 있다:





(a) 빈농 대중이 집단농장에 결합하는 것을 도왔고 그리하여 그들을 중농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그들의 물질적 불안정과 기아의 종식을 가져왔다(2,000만명 이상의 농민들이 빈궁과 파멸로부터 구조되었다).





(b) 농민층의 빈농과 쿨락들로의 분화에 종지부를 찍었다(1928년에 농민층 사이에서 분화는 점증하고 있었으나 집단화는 분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c) 쿨락들이라는 계급을 제거했고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농업에서 지배적이 되었다.





(d) 기계화된 대규모 집단영농을 통하여 농민층을 집단화의 정신으로―사회주의의 정신으로―재주조하기 위한 기초를 창출했다.





(e) 소규모 영농(이것은 자본주의를 발생시킨다)에 종지부를 찍고 그리하여 자본주의 복고의 위험을 감소시켰다.





(f) 농민층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도력을 공고화했고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강화시켰다.





(g) 쏘비에트 국가의 대규모의 식량곡물 조달을 가능하게 했는데(왜냐하면 오직 대규모의 사회주의적 영농만이 이 대규모의 시장용 잉여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도시의 노동계급과 적군(Red Army)을 기근과 기아의 망령으로부터 보호했다.





(h) 쏘련을 소농생산의 농업국으로부터 대규모의 사회주의적 공업과 대규모의 사회주의적 농업을 가진 공업국으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i) 농촌의 수백만 인민의 빈곤과 비참함에 종지부를 찍었는데 그들은 이제는 지금까지 알려진 적이 없는 물질적 조건들을 향유하고 있다.










스탈린 동지가 17차 당대회(1934년 1월)에 대한 그의 보고에서 16차 대회(1930년 6월) 이후의 시기를 회고하면서 그 이후 발생한 변화들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정당하다.





 





“이 시기 동안에 쏘련은 근본적으로 변혁되었고 후진성과 중세주의의 외피를 벗어던졌다. 소규모의 개인적 농업의 나라로부터 집단적인, 대규모의 기계화된 농업의 나라가 되었다. 무지하고, 문맹이고 문화적이지 못한 나라로부터 쏘련의 각 민족들의 언어로 가르치는 고등, 중등, 초등 학교들의 광범한 망으로 뒤덮인 읽고 쓸 수 있고 문화적인 나라로 되었다―혹은 되고 있다.” (17차 당대회에 대한 보고)










사회주의적 집단화(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산업화)의 장에서 쏘련의 모든 성공들은 분리된 하나의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모든 반혁명적인 사회민주주의적―뜨로츠키주의적 테제를 영원히 박살내었다. 농민층이 그 성격에서 반혁명적이라는, 그들의 사명은 쏘련에서 자본주의의 복고라는, 그리고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노동계급의 견고한 동맹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부르주아적-뜨로츠키주의적 테제를, 쏘련의 성공들은 산산히 부수었다. 쏘련의 성공들은 레닌주의의 올바름의, 사회주의가 분리된 단 하나의 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건설될 수 있다는 사실의, 농민층의 기본적 대중의 혁명적 성격의, 그리고 후자가 쏘비에트, 경제의 사회주의 체제 건설에서 성공적으로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의 웅변적인 증거이다.





어쨌든 위에서 언급된 것을 보면, 말할 필요도 없이, 사실이 전혀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중세의 화석의 종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 중 누가 고려 중에 있는 시기 동안에 볼세비키 당의 정책의 올바름을 의심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아니다. 그것의 올바름을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의 총노선의 올바름은 무엇에 의해 입증되는가?










“이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전선에서 우리의 성공들과 성취들에 의해 입증된다. 과거 시기 동안에 도시와 농촌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전선에서 당에 의해 획득된 결정적인 승리가 올바르지 못한 정책의 결과였다는 것은 사리가 맞지 않고 맞을 수도 없다. 오직 올바른 총노선만이 우리에게 이런 승리를 줄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계급 적들, 자본가들과 그들의 언론, 모든 종류들의 로마 교황과 주교들,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아브라모비치와 단(Dan) 유형의 ‘러시아’ 멘세비키들에 의해 최근에 제기된 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격앙된 울부짖음에 의해 증명된다. 자본가들과 그들의 종복들이 우리 당을 욕하고 있다―그것은 우리 당의 총노선이 올바르다는 표지이다(박수).”





“그것은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익숙해진 뜨로츠키주의의 운명에 의해 입증된다. 뜨로츠키 진영의 그 신사들은 쏘비에트 정권의 ‘타락’에 대해, ‘테르미도르’에 대해, 뜨로츠키주의의 ‘불가피한 승리’에 대해 그리고 기타 등등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무엇이 발생했는가? 발생한 것은 뜨로츠키주의의 붕괴와 종말이었다. 알려진 대로, 뜨로츠키주의자들의 한 부분은 뜨로츠키주의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그리고 그것의 대표들의 수많은 선언들에서 당이 올바랐다는 것을 인정했고 뜨로츠키주의의 반혁명적 성격을 승인했다. 뜨로츠키주의자들의 또 하나의 부분은 실제로 전형적인 소부르주아적 반혁명분자들로 타락해갔고 실제적으로 쏘련공산당(볼)에 관한 문제들에서 자본주의 언론들의 정보국이 되었다. 그러나 ‘타락할’ 운명이었던(혹은 ‘이미 타락한’) 쏘비에트 정권은 계속하여 번영하고 있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고 성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중추와 그들의 소부르주아적 아첨꾼들을 분쇄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익숙해진 우익 일탈자들의 운명에 의해 입증된다. 그들은 당의 노선이 ‘치명적’이라는 것에 대해, 쏘련에서 ‘있을 수 있는 재난’에 대해, 당과 그 지도부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 그리고 기타 등등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무엇이 실제로 발생했는가? 실제로 일어난 것은 당이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들에서 거인 같은 성공들을 달성했던 반면에 나라를 ‘구하기’를 원하고 그렇지만 나중에 그들이 틀렸다고 인정했던 우익 일탈자들의 그룹은 지금은 고립되어 있다.”





“그것은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증가하는 혁명적 활동들에 의해, 그 막대함이 우리나라의 친구들과 적들 양자를 놀라게 하는 노동자들과 집단농장 농부들의 광대한 대중들에 의한 당의 정책에 대한 능동적 지원에 의해 입증된다. 그것은 모든 상점과 공장들에서 당에 결합하려는 노동자들로부터의 신청, 15차와 16차 대회 사이에 600,000명의 당원 수의 증가, 그리고 올해 1/4분기에만 당에 합류한 200,000명의 새로운 당원들이라는, 당에서 자신감의 증가의 이런 표지들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러하다. 이 모든 것은 노동인민의 광대한 대중들이 우리 당의 정책이 올바르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지지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당의 총노선이 유일하게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은 인정되어야만 한다.” (저작집, 12권, pp.352-4)










그러면 위의 서술은 쏘련에서 집단화의 중요성과 그것의 성공의 세계사적인 의미에 대한, 그리고 집단화에 대한 레닌주의적 노선으로부터 ‘좌익적’(뜨로츠키주의) 그리고 우익적(부하린주의) 일탈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이다. 쏘련에서 집단화의 문제의 국제적 의미는 그것에게 우리가 집단화의 문제에 대한, 현재의 저작집1)에서 영국에서 처음으로 발간된, 스탈린 동지의 가장 찬란한 기고들에 대한 서문을 통해서 위의 언급들을 서술할 실천적 필요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집단화에 관한 스탈린 동지의 거의 모든 글들과 연설들을 포함하는 현재의 책의 발간은 중요한데, 그것이 집단화의 문제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맑스-레닌주의적 선언들을 포함하고 있고, 그리하여 매우 종종―우리가 부끄럽게도―일반적인 부르주아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심지어 스스로를 반수정주의자들 혹은 공산주의자들이라 부르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퍼지고 있는, 그리고 우리의 경험 없고 종종 거의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는 젊은 동지들의 머리를 쓰레기로 채우는 다양한 부르주아적 이론들과 비방들을 근절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이론들은, 오래전에 근절되고 버려져야만 했었는데,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것들에 대한 가차없는 투쟁의 중요성이 나오는데 왜냐하면 오직 이러한 부르주아적 이론들과 비방들에 대한 가차없는 투쟁에서만이 농업 문제2)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 학생들 사이에서의 이론적 사고가 발전하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장





중국정책 연구그룹에 대한 비판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레닌주의를 침식하기 위한 시도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정책 연구그룹(CPSG)이라는 상표 하에, 부르주아적 상품들을 강요하는 직업적 패거리들에 의한, 농민층과 집단화에 대한 볼세비키당의 맑스-레닌주의적 노선에 반대하는 그리고 스탈린에 반대하는, 널리 퍼진 비방들에 대해 약간의 언급이 없이 이 서문을 결론짓는 것은 올바르지 못할 것이다. 이 그룹은 ��브로드쉬트��라는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이 그룹의 정치적 인상은 그것의 지도적 관점들이 다음과 같은 부르주아 교수들: 조셉 니드햄 박사 FRS, 시릴 어포드 교수 FRS, 조안 로빈슨 교수와 조지 톰슨 교수를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판단될 수도 있다. 이 그룹은 또한 중화인민공화국과 그리고 공산주의의 대의와 우호를 가장하는 부르주아적이고 반중국적이며 그리고 반공산주의적인 협회인 앵글로-차이니즈 이해 협회(SACU)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브로드쉬트��의 1974년 11월호(11권, 11호)에서 CPSG의 교수 신사들은 우리에게 러시아의 10월 혁명과 중국혁명 간의 분석적 비교를 취지로 하는 “두 혁명의 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내왔다. 이 기사는 부르주아 교수의 써클에 전형적인 방식으로 용감하지만 무지한 주장으로 가득 차있는데, 스탈린과 그가 이끄는 쏘련공산당(볼)에 대한 무례한 공격들이 함께 있다. 그것은 어떠한 맑스-레닌주의적인 분석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그것은 분석에 대한 냉소이다. 그것이 스탈린 동지와 그의 시대의 쏘련공산당에 대해 포함하고 있는 101가지의 공격은 여기에서 우리와 모두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3). 여기에서 제기하는데 우리의 흥미가 끌리는 유일한 호는 농민층에 대한 쏘련공산당과 스탈린의 정책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농민층의 역할을 다루는 이 기사에서 완전히 그 부분을 인용한다면, 독자가 우리에 대해 참아주고 그것을 교란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을 희망한다. 이 긴 인용은 (a)독자들이 그 기사의 철저히 반공산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인 타락한 내용들과 그것의 저자들의 정치학의 수단들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b) 독자들이 이들 부정직한 사기꾼들의 교활한 방법들에 대해, 맑스-레닌주의와 기회주의의 경계를 말살하려 시도하는 그들의 손의 솜씨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함인데―그렇게 쉽게, 잘 훈련된 부르주아적인 풍자의 방법을 통해, 그들은 역사적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리고 맑스-레닌주의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다-, (c) 독자들이 스탈린 동지와 마오 동지 사이에,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 사이를 이간시키기 위해 선을 긋는, 이들 부르주아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절망적인 시도들을 충분히 인식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마지막으로 (d) 왜곡의 혐의와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한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농민층의 역할”










“시작부터 하나의 주요한 측면에서 두 혁명들은 분기했다. 두 나라에서 농민들은 인민의 다수를 점했다―중국에서는 80%이상이었다. 농민문제의 취급은 두 나라들에서 결정적인 정치적 요소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짜르 러시아에서 농민들은 억압을 받고 있어서 부르주아지를 위한 예비군을 형성했다. 봉건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강력한 러시아 정교에 의해 마취되어,  레닌에 의해 지도되는 볼세비키들의 주도권에 도전하고 시험했던 멘세비키들과 그들의 소부르주아적 동맹들과 함께 반복하여 줄을 섰던 농민당에게 그들은 지지를 보냈다. 1917년 이후의 기간 동안에, 노선과 정책을 둘러싼 투쟁들에서, 농민당의 지도자들은 반맑스주의자들과 수정주의자들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유지했다.”





“중국에서는 당의 지도력에서 그의 이른 출현으로부터, 마오쩌뚱은 농민층의 획득을 그의 정책의 초점으로 삼았다. 수년 동안에 그는 당시에 도시들에 집중하자는 ‘좌익적’ 노선을 따르고 있던 당 지도부에 대립했던 소수파를 이끌었다. 그의 지도력이 인정된 것은 대장정 기간이던 1935년에서였다.”





“쏘련에서는 자본주의 열강들에 의한 간섭전쟁을 뒤따랐던 고되고 거친 기간들 동안에 쏘비에트 지도자들은 레닌의 지도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그들의 나라의 경제적 힘을 건설한다는 문제와 씨름했다. 적대적 세계에 의해 포위되어, 그들은 그밖의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켰던 중공업의 창출의 우위를 선택했다. 실천적으로 무(無)로부터 빠르게 창출될 필요가 있던 거대한 공업지대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필요한 축적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로 보였던 농민들이었기에 짐을 어깨에 짊어져야만 했던 것은 농민층이었다. 이 정책결정이, 누그러뜨려진 적이 없었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분투의 근원이었다―농민들은 결코 혁명을 진심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생활수준을 올리는 주요한 수단인 경공업은 결코 실행되지 않았고, 농민층과 노동계급 양자의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한 경공업의 적절한 역할은 허용되지 않았다.”





“1949년 이후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은 쏘비에트 지도자들과 중국의 지도부 내의 그들의 지지자들로부터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당을 전적으로 다른 길로 이끌었다. 그는 선언하기를 ‘농업은 근본이고 공업은 지도적 요인이다.’ 그리하여 농업의 발전이 우선적이 되었던 반면에 경공업은 모든 인민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소비재를 공급하고 중공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기금의 축적을 제공하기 위해 빠르게 확대되었다.”





“이리하여, 쏘련에서는 농민층―인민의 다수―이 음울한 마법에서 깨어난 세력으로 남아있었던 반면에 중국에서는 그들의 혁명적 충동이 장악되고, 이용되고, 강력한 사상적 힘으로 전화되었다.”





“역사는 레닌 이후 새로운 ‘쏘비에트 사람’을 쏘비에트 지도부가 산출하지 못한 것은 두 가지의 치명적 오류들, 즉, 농민층에 대한 잘못된 정책과 대중노선의 결여로부터 솟아난다고 판단할 것이다.”










책 한권이 이러한 고의적인 왜곡들, 위조들 그리고 거짓된 주장들에 대한 반박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틀림없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을 반박하는 것보다 부르주아지에 의해 고용된교수들이 부르주아지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현실에 있어서의 최소한의 기초도 없이 장황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보다 쉬울 것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여진 대로, 부르주아적 고용인들은 단 한 페이지에서 그렇게 많은 거짓말들과 왜곡들을 끌어들였고 그렇게 많은 혼란의 씨를 뿌려서 그것들을 반박하는 것은 책 한 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주제에 대한 이런 피곤하고 전체적인 취급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를 이 특별한 인용에 대한 간략한 언급으로 한정한다:





1. 위에서 인용된 바로 처음의 두 개의 문단에서, 마오쩌둥에 의해 지도되는 중국공산당은 “농민층의 획득을” 그것의 정책의 “초점으로” 삼았던 반면에, 러시아에서 볼세비키들은 단순히 농민층을 무시했다는 명확한 인상이 창출되고 있다. 볼세비즘의 역할을 모르고 레닌 동지만이 아니라 스탈린 동지의 장대하고 찬란하게 풍부한 글들을 마주친 적이 없는 사람은 볼세비키들이 농민층을 획득하기 위한 어떠한 강령도 없었고, 정책도 없었다고, 볼세비키들이 “농민층의 획득을” 그들의 정책의 “초점으로” 삼지 않았다고 믿게끔 인도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러면, 혹자는 박식한 교수들에게 물어도 용서받을 것인데, 한편으로 레닌주의와 다른 한편으로 뜨로츠키주의의 차이는 무엇이었는가? 그러면 볼세비키들이 농민층을 획득하기 위한 어떤 강령도 없었다면, 볼세비키들이 농민층이 압도적인 인구인 하나의 나라에서 어떻게 10월 혁명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고, 그것을 공고화하고, 그리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었는가? 그러면 10월 혁명의 성공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오직 ‘두개의’ 설명만이 있을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은 신의 섭리의 결과로서 발생한 기적이었거나 혹은 다른 요인들 중에서, 볼세비키들이 농민층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강령―농민층을 획득하기 위한 올바른 계획―을 가졌기 때문에 성공을 향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 설명은 물론 설명이 전혀 아니며 하나의 냉소일 뿐이다. 그것은 기적들, 신앙요법, 신의 섭리 그리고 처녀의 출산 등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의 부르주아 저자들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이러한 ‘설명’에 동의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자존심이 있는 맑스-레닌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설명으로서 주어진 이러한 마법을 받아들이도록 초대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의 설명이 맑스-레닌주의자가 고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진실은 볼세비키들이 농민층을 획득하는 올바른 정책을 가졌다는 것이다. 진실은 그들이 “농민층의 획득”을 그들의 정책의 “초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강령의 농업부문4) 혹은 일찍이 1905년에 간행되었던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혹은 레닌 동지의 다수의 다른 글들, 그리고 나중에 스탈린 동지의 것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절대적으로 명백할 것이다. 농민층에 대한 볼세비키들의 강령은 유일한 올바른 것이며, 그것은 모범적인 강령이어서 농민인구가 지배적인 모든 나라들에서 공산당과 노동자당들이 그때 이후로 그것을 적절한 약간의 수정을 거쳐 그들 자신의 것으로 채택했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도 예외는 아니었다5). 사정이 이러한데, 그러면 왜 우리의 부르주아 삼류작가들은 문제를 왜곡하고 사실들을 물구나무 세우는가? 그 대답은 그들이 사실들에 대한 고의적인 왜곡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거나 혹은 그들이 직접적으로 무지하다는 것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그들은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많은 해를 끼치는 것이다.





2. 위에서 인용된 처음의 두 개의 문단에서, 비록 암암리이기는 하지만, 볼세비키들이 농민층을 획득하기 위한 정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왜곡하면서 우리의 부르주아 저자들은 그들의 다음 문단에서, 정책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볼세비키들은 어쨌거나 “레닌의 지도력”이 존재하는 동안에 그럭저럭 잘 할 수 있었다고 계속하여 암시한다. 그리하여 “레닌의 지도력”이 농민층을 획득하는 명확한 전략에 대한 대체물이 된다. 이것은 물론 레닌에 대한 칭찬이다! 실천적으로 레닌에 대한 이러한 찬사는 레닌주의에 대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유다의 악명 높은 키스에 다름아니다. 아니다, 훌륭한 부르주아 교수들이여. 우리는 당신들의 레닌에 대한 ‘칭찬’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는 즉, 레닌주의를 강등시키고 침식하는 시도였다고 인정한다. 레닌은 가장 위대한 맑스주의자였다. 그는 맑시즘의 진정한 정신으로 구체적 현실을 분석하는 것을 그리고 맑시즘을 구체적 현실에 적용하는 것을 믿었다. 그는 농민문제와 같은 혁명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 전략을 갖는 것을 믿었다. 농민문제를 포함하여 어떤 문제에 대한 명확한 강령에 대한 대체물로 그의 “지도력”, 지위 등을 거론하며 이 거인, 즉 레닌의 덕을 제시하는 것은 우스운 엉터리 같은 이야기이고 저열할 뿐만 아니라 역겹고 더러운 거짓말이다. 볼세비키들은 “레닌의 지도력” 이상의 어떤 것을 갖고 있었는데 즉, 레닌주의 자체이다. 레닌의 서거 후에조차, “레닌의 지도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이후에조차 볼세비키당이 지금은 스탈린의 지도력 하에서 계속하여 농민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에서 레닌주의를 굳건하게 고수하였다. 레닌주의를 따라서 당은 진정으로 눈부시고 중대한 성공들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부르주아 저자들이 맑스주의자들인 체하면서 (a) 볼세비키들은 농민문제에 대한 어떠한 강령도 없었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은 “레닌의 지도력”이었고 그리고 (b) “지도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자마자 볼세비키들은 농민문제에서 그들을 인도할 강령도 없고 “지도력”도 없는 상태로 남았다는 것은 노골적인 거짓말이다.





더 들어가면, 여섯 번째 문단에서, 부르주아적인 ‘맑스주의자들’은 스탈린과 그가 지도하는 쏘련공산당에게 ‘절멸시키는’ 타격을 가한다:










“역사는, 레닌 이후에 ‘쏘비에트 사람’을 쏘비에트 지도부가 산출하지 못한 것은 두 가지 치명적인 요인들, 즉, 농민층에 대한 잘못된 정책 그리고 대중노선의 결여로부터 솟아난다는 것을 판단할 것이다.”










“대중노선의 결여”라는 혐의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을 여기에서 다루지 않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의 목적들을 위하여 직접적으로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하의 계급투쟁의 기제들에 관하여��6)라는 제목의 스탈린의 연설들의 모음집에 대한 우리의 서문에서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 서문에서 우리는 그의 책 ��맑스로부터 마오쩌뚱까지��에서 이 동일한 어리석은 고발에 대해 또한 견해를 표명했던 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지도적인 관점들의 하나인 G. 톰슨 교수를 다른 무엇보다도 반박했다.





“농민층에 대한 잘못된 정책”이라는 혐의에 관하여 우리는 이미 농민층에 대한 볼세비키 당의 정책이 타당하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반복하자면, 농민층에 대한 볼세비키 강령은 러시아 혁명의 발전에서 상이한 시기들에 조응하는 다음의 세 개의 구호로 요약될 수 있다. 러시아 인민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접근하고 있을 때, 즉각적인 과제가 짜르 전제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민주주의적 독재가 될 것이었던 임시 혁명정부의 수립이었던 시기에, 볼세비키의 구호는 전체 농민층과의 동맹의 그것이었다. 두 번째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가 10월 혁명에 접근하고 있을 때, 볼세비키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빈농과의 동맹, 중농을 중립화하고 쿨락들에 반대하여 싸울 것. 세 번째의 시기에, 내전과 간섭전쟁의 끝 무렵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공고화되었고 당이 직면하고 있던 과제가 사회주의의 건설이었던 시기에, 이 시기에 당의 구호는 중농층을 중립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더 이상 아니었다. 이제 구호는 중농과 협정에 도달하는 것이었고 반면에 한 순간도 쿨락에 대한 투쟁을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되었고 굳건하게 오직 빈농에 의지해야하는 것이었다. 쏘련에서 사회주의가 건설된 것은 이러한 구호를 실행에 옮김에 의해서였다. 볼세비키 당이 이러한 역사적 성취들을 한 것은 이러한 수단에 의해, 이러한 복잡하지만 과학적이고 명확히 작성된 강령을 따름에 의해서였다.





이러한 명확한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완전히 무시하고서, 우리의 ‘맑스주의’ 비판가들은 볼세비키 당이 “농민층에 대한 잘못된 정책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좋다, 신사분들: 여러분이 볼세비키 당이 “농민층에 대한 잘못된 정책”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할 때 당신들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당신들은 너무 위트가 약해서 당신들이 부하린주의 정책(쿨락들을 포함하여 전체 농민층과의 동맹의) 혹은 뜨로츠키주의 정책(농민층과의 동맹의 부정, 심지어 빈농과 중농층조차도)이 올바르다고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이 당신들이 올바르다고 믿는 것이라면(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당신들이 이러한 관점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입장을 공공연하게 말할 용기를 가져라. 당신들이 실제로 ‘반항해야’ 한다면, ‘무릎을 꿇고서 반항하지’ 마라.





그리고 이러한 반동적인 쓰레기들을 입밖으로 내고서는 당신들은 계속하여 중국을 쏘련과 비교하고 전자에 ‘칭찬들’을 퍼부었을 때, 당신들은 중국공산당이 쏘련에서 있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대립적인 노선을 따름에 의해 농민문제에 관해 성공들을 달성했다는 것을 단지 암시하고 있다(그리고 다시금 당신들은 이것을 깨닫기에는 너무 위트가 약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지 중국공산당이 농민문제에 대해 부하린주의 혹은 뜨로츠키주의를 따랐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신들의 주장들은 이렇게 논리적으로 엉터리인데, 신사분들, 볼세비키 당과 스탈린을 탄핵하고자 하는 당신들의 열정에서, 당신들은 사실상, 부하린주의적, 혹은 뜨로츠키주의적, 반볼세비키적 그리고 반스탈린주의적 입장들을 그들에게 돌림에 의해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 중국공산당 그리고 마오쩌둥 동지들을 탄핵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는 볼세비키 당과 스탈린 동지에게 감사의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운동에는 당신들이 잠시 동안 유혹할 수 있는 약간의 속이기 쉬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사분들이여, 운동에서 혁명적인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이미 당신들의 부르주아적 거짓말들을 밝혀내기 위해 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부르주아 야바위꾼들이여, 당신들이 폭로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3. 볼세비키 당이 농민층에 대한 어떤 정책도 없었다(혹은 잘못된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고발과 관련하여, 우리의 맑스주의자연하는 저자들은 볼세비키 당에 대한 그들의 고발에 대해 또 하나의 혐의를 추가하는데, 즉, 중공업이 농업의 희생으로 발전되었다는 것, 볼세비키 당은 “다른 모든 것이 그를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중공업 창출의 우선성을 선택7)”했다는 것, “농민층이 ... 거대한 공업지대에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필요한 축적을 산출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로서 보였기 때문에 짐을 어깨에 짊어져야만 한다 ...”는 것, 그리하여 쏘비에트 농민층이 볼세비키 치하에서 착취당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독자는 당이 농민층을 “군사적 봉건적” 착취에 종속시켰다는 부하린주의자의 고발과 이 혐의의 유사성을 주목할 것이다. 나아가 당의 산업화 정책은 농민층의 혁명으로부터의 소외를 결과한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투쟁”의 원인이었다고 주장된다. 이 고발의 공식이 철저히 기회주의적인 것일지라도, 그 철저하게 줏대없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정책 결정(중공업에 관하여)은, 일부는(이 ‘일부’라는 표현은 그들의 기회주의적 표현방식이다. 이 견해에 찬동하면서도 그렇게 말할 핵심을 지니지 못함을 뜻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결코 가라않은 적이 없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투쟁의 근원이었는데―농민들은 결코 혁명을 진심으로 찬동하지 않았다.”










볼세비키 당에 반대하는 위의 반혁명적인 고발들―그것들의 기원을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그들과 카데츠에게 돌릴 수 있는 고발들―을 덮기 위하여 우리의 부르주아적 협잡꾼들은 중국을 쏘련과 맞세우고 마오쩌뚱 동지를 레닌 동지와 스탈린 동지와 맞세우는 그들의 독특한 부정직한 속임수를 사용한다:





“중국에서”, 그들은 주장한다, “1949년 이후로 마오쩌뚱은 쏘비에트 지도자들과 중국 지도부내에서 그들의 지지자들로부터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상이한 길로 그의 당을 이끌었다. ‘농업’은, 그는 선언했다, ‘근본이고, 지도적 요인이 되는 산업이다’ ...”





여기에 이들 반혁명적 주장들에 관한 간략한 언급이 있다:










(a) 중공업





볼세비키 당이 중공업의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올바르지 못했는가? 아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렇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중공업의 발전에 대한, 특히 기계제작 공업에 대한  강조가 없었다면 쏘련을 중세의 외피로부터 끌어내어 20세기의 현대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중공업의 발전이 없었다면 쏘련은 완전히 독립적인 나라로서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제국주의의 경제적 공갈에 종속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중공업의 토대가 없었다면 쏘련은 국제적 제국주의의 군사적 공격에 맞선 방위산업의 건설과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국경을 수호하는 데 있어서 결코 성공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쏘비에트 군사력과 인민이 파시즘이라는 어두운 세력들을 굴복시키는 데에 중공업의 주목할 만한 공헌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네 번째 이유는 쏘비에트 중공업의 발전이 없었다면 심지어 쏘비에트 농업조차도 그렇게 많이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8). 집단농장들이 건전한 기초 위에서 발전될 수 있기 전에, 쏘비에트 공업은 다른 무엇보다도 국영농장들과 집단농장들에게 필수적인 기계류와 기술적 그리고 과학적 도움을 제공해야 하는 위치에 있어야만 했다. 마지막 이유는 중공업의 발전이 없다면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에 철에 기초하는 끈을, 개인주의적 농민층을 집단화의 길을 따라―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길―가는 기초를 놓고 전망의 재주조를 촉진하는 유일한 끈을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의 저자들은 완전한 불합리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1949년 이후로 마오쩌뚱은 그의 당을 쏘비에트 지도자들로부터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상이한 길로 이끌었다 ... ‘농업’은, 그는 선언했다, ‘근본이고 중공업은 지도적 요인이다’...”라고 그들이 말할 때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비방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당의 노선에 대한 “쏘비에트 지도자들”로부터의 어떠한 반대가 있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중국정책 연구그룹에 의해 대표되는 유형의 부르주아 본부로부터 때때로 발산되는 주장들과는 별도로, 이것에 대한 가장 사소한 증거도 없다. 둘째로, 중국공산당은 고려 중인 문제에 관해 볼세비키 당이 따랐던 길과 “완전히 상이한”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상이한 길을 따르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의 위트가 약한 부르주아 저자들이 “농업이 근본이고 공업은 지도적 요인이다”라는 마오쩌뚱 동지의 말을 승인하면서 인용할 때조차 인정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공업의 건설에 우선점을 두는 것, 특히 기계제작 공업에 대한 강조와 함께 중공업에 우선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오지 이러한 공업만이 “지도적 요인”이 될 수 있고 오직 이러한 공업만이 공업과 농업의 발전에서 “지도”할 수 있고 나라를 발전과 번영의 길로 끌고 갈 수 있다. 오지 이러한 공업만이 나라를 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이러한 공업만이 집단주의와 공산주의의 노선들을 따르는 농민층의 전망을 재주조하고 계급들의 폐지의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끈―동맹―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농민들의 전망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그리고 그들을 획득하는 것에 대한 다른 어떤 사상들도 농민철학자연하고 이론화하는 것에 대한 시도들일 뿐이고 맑스-레닌주의와 어떤 공통점도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저자들이 마오쩌둥 동지를 승인과 함께 인용할 때, 그들은 그것을 깨달음이 없이 그들 스스로에 반대하여 그리고 볼세비키 당과 혹은 스탈린 동지에 대한 반대없이 그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부르주아 비판가들은 스탈린 동지를 공격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우리는 기회주의자들이 혁명가들에 의해 얼굴을 철썩 맞고 있는 장관을 앞서 목격했다. 우리는 이전에 기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공개적으로 철썩 때리는 진정으로 놀라운 장관을 목격한 적이 없는데 이 때문에 우리의 저자들은 칭찬과 감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





우리의 저자들이 쏘련이 했으면 하는 것은 국제적 독점자본주의가 쏘련이 했으면 하는 것과, 즉, 그것의 중공업을 발전시키지 않고 후진적인 채로 남아 있고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군사력이 약하고, 그리고 시간의 경과 속에서 ‘쏘비에트’ 부르주아지(즉, 쿨락들)와 국제적인 자본주의의 결합된 힘에 의해 전복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위로부터의 똑같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쏘련이 나라 내부의 자본주의적 세력들을 극복함에 의해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그것이 없다면 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달성할 수 없었던 사회주의 건설에 우선을 두지 않았다면 20차 당대회 오래 전에 자본주의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시작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저자들이 누구의 편인가는 완전히 명백하다.










(b) 농민층과 내부적 축적





우리의 저자들에 의하면 “농민층이, 실천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빠르게 창출될 필요가 있었던 거대한 공업적 토대에 재정을 조달하기 위한 필수적 축적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로 보였기 때문에, 그들의 어깨에 짐을 짊어져야만 했던 것은 농민층이었다. 이 정책 결정은, 일부는(악명 높은 ‘일부’는 저자들 스스로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말할 것인데, 결코 가라않은 적이 없었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투쟁의 근원이었다―농민층은 혁명에 진심으로 동의한 적이 결코 없었다.”





토를 달자면:





첫째로, 농민층이 필요한 축적을 산출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로 “보였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진실은 필요한 축적을 할 수 있었고 실제로 했던 두 개의 주요한 근원 즉, 노동계급과 농민층이 있었다는 것이다. 스탈린이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공업화는 주요하게, 다른 나라들을 강탈함에 의해서, 식민지와 패전국가들을 강탈함에 의해서, 혹은 외국으로부터 풍부하고 다소간 노예화시키는 대부들의 도움에 의해 대개 영향을 받았다.” (저작집, 11권, p.165)










그리고 나아가:










“우리 나라가 자본주의 나라들과 다른 하나의 측면은 그것은 식민지적 강탈 혹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수탈에 종사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길은 우리에게 제외되어 있다.”





“그러나 외국으로부터 노예화시키는 대부를 우리나라는 가져서도 안 되고 원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길은 또한 우리에게 닫혀 있다.”





“그러면 무엇이 남아 있는가? 오직 하나의 것 그리고 그것은 공업을 ...내부적 축적들의 도움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앞의 책, p.166)





“그러나 이러한 축적들의 주요한 원천은 무엇인가? ... 두 개의 원천들이 있다: 첫째로, 가치를 창조하고 우리의 공업을 전진시키는 노동계급, 두 번째는 농민층이다.” (앞의 책, p.167)










농민층은 국가에 대개의 세금들을 지불함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공업제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들을 지불함에 의해서, 그리고 농업생산물에 대해 낮은 가격으로 지불받음에 의해서 내부적인 축적에 공헌했다. 이것은 당시의 쏘련의 환경 하에서 불가피했다. 그러나 쏘비에트 농민층이 이 짐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가 혹은 참을 수 없는 짐이었는가 그리고 노동계급에 의해 농민층이 착취당하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쏘비에트 농민층이 이 짐을 완벽하게 질 수 있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없이 진실이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한 것이 있다:










“농민들은 이 짐을 질 수 있는가? 그들은 의문의 여지없이 그러하다: 첫째로, 이 짐은 해가 갈수록 가벼워질 것이기 때문에, 둘째로, 이 추가적인 세금은, 농민층의 대중들이 빈곤과 착취에 저주받은 자본주의 발전의 조건하에서가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에 의한 농민층의 착취가 전혀 없는 그리고 농민층의 생활수준이 견고하게 상승하고 있는 쏘비에트 조건들 하에서 징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책, pp. 168-9)





(c) 경공업과 중공업 사이의 관계





“경공업은”, 우리의 반동적이고 무지한 저자들은 주장한다, “결코 실행된 적이 없고 농민층과 노동계급의 짐을 더는 데 그것이 적절한 공헌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실제적인 역사 대신에 그 자신의 역사를 창조하려는 데 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쏘련의 실제적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조잡한 숙독을 하기만 해도 쏘련이 농민층의 개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에 기초한 끈을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에 수립함에 의해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경제정책(NEP)의 최초의 단계는 그 끈의 이 측면에 대한 강조에 의해 특징지어지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거래를 재생시키기 위한, 개인적 농민 농장을 두발로 세우고 그것을 강화하기 위한, 도시들이 필요한 농산물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당시에, 즉, 도시와 농촌 사이에 거래를 재생시키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공업을 부흥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농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했던 때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차례 지적되었듯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노동계급과 쏘비에트 농민층 사이의 끈은 농민층의 개인적 필요물들을 만족시키는 것에 배타적으로 기초할 수 없었다. 쏘련이 농민층의 전망을 재주조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금속에 기초해야만 했다. 물론 부하린주의 기회주의자들은 중국정책 연구그룹이 하듯이, 경공업이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끈을 수립하는 것의 수단으로서 배타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옹호했다. 여기에 스탈린 동지가 부하린주의자들에게 대답한 것이 있다―중국정책 연구그룹의 부하린주의적 헛소리를 반박하기에 충분한 것 이상인 답변.










“두번째 질문은 중농과의 끈의 문제에 관련된다―끈의 목적들과 그것을 실행하는 수단의 문제.”





“그것은 일부 동지들이 도시와 농촌 사이의,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주요 대중 사이의 끈은 배타적으로, 직물들에, 농민층의 개인적 필요물들을 만족시키는 것에 기초한다고 말하는 것으로부터 따라 나온다. 이것은 진실인가? 동지들, 그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물론, 직물에 대한 농민들의 개인적 필요물을 만족시키는 것은 거대한 중요성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조건들에서 농민층과의 끈을 수립하기 시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 직물에 기초한 끈이 문제의 시작이고 끝이라고, 농민들의 개인적 필요물들을 만족시키는 것에 기초한 끈이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경제적 동맹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혹은 주요한 토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장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도시와 농촌 사이의 끈은 농민들의 개인적 필요물들을 만족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직물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물들의 생산자로서 농민들의 경제적인 필요물들을 만족시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농민들에게 주는 것은 면직물만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모든 종류의 기계들, 씨앗들, 쟁기들, 비료들 등을 주는데 그것들은 농민의 농장의 전진과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하여 가장 심대한 중요성이 있다.”





“그리하여, 끈은 직물에만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금속에도 기초하고 있다. 이것이 없다면, 농민층과의 끈은 불안정할 것이다.”





“어떠한 방식에서 직물에 기초한 끈과 금속에 기초한 끈이 다른 것인가? 직물에 기초한 끈은 농민 농장의 생산의 측면에 대해 상대적으로 작은 정도만 영향을 주거나 아니면 영향을 줌이 없이 농민들의 개인적 필요물들에 관련되지만, 반면에, 금속에 기초한 끈은 주요하게 농민 농장의 생산의 측면에 관계되고, 그것을 개선하고, 그것을 기계화하고, 그것을 더 수지맞게 하고, 분산된 그리고 소규모의 농민 농장들을 대규모의 사회적으로 수행되는 농장으로 통합하는 길을 닦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우선적으로 차이점이 존재한다.”





“끈의 목적이 계급들을 보전하는 것, 특히 농민계급을 보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동지들,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끈의 목적이 전혀 아니다. 끈의 목적은 우리의 전체 발전의 지도자인 노동계급에게 농민층을 더 가깝게 데려가는 것, 동맹에서 지도적 세력인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 집단주의 노선을 따라 점차적으로 농민층, 그것의 정신 그리고 그것의 생산을 재주조하는 것, 그리고 이리하여 계급들의 폐지를 위한 조건들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끈의 목적은 계급들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폐지하는 것이다. 직물에 기초한 끈은 농민 농장의 생산의 측면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고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말하면 집단주의 노선을 따르는 농민층의 재주조를 그리고 계급들의 폐지를 결과하지 않는 반면에, 금속에 기초한 끈은 반대로 우선적으로 농민농장의 생산의 측면에, 그것의 기계화와 그것의 집단화에 영향을 주고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농민층의 점차적인 재주조를, 농민계급을 포함한 계급들의 점차적인 제거를 결과한다.”





“일반적으로, 농민들, 그의 정신, 그의 생산이, 그의 정신을 노동계급의 그것에 더 가깝게 가져가는 노선을 따라, 생산의 사회주의적 원칙의 노선들을 따라 어떻게 재주조되고, 재형성되는가? 이것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첫째로 그것은 농민 대중들 사이에서 집단주의를 위한 가장 광범한 선동을 요구한다.”





“두번째로, 그것은 상호협동적인 공동체적 생활을 심는 것 그리고 수백만의 농민농장들에게 우리의 상호협동적인 공급과 시장 조직들의 더 폭넓은 확장을 요구한다. 만약에 우리의 협동조합들의 광범한 발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의 시기에 농민들 사이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집단농장 운동의 방향으로 진행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급과 시장 협동조합들의 발전은 우리의 조건들에서 집단농장으로 건너가기 위해 농민들을 준비시키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농민층을 재주조하기에 충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농민층을 사회주의 노선들에 따라 재주조하기 위한 주요한 힘은 농업에서 새로운 기술적 수단, 농업의 기계화, 집단적인 농민 노동 그리고 나라의 전기화에 있다.”





“여기에 레닌이 언급되었고 농민 농장과의 끈에 관한 단락이 그의 저작들로부터 인용되었다. 그러나 레닌을 전체로서 취하기를 바라는 것 없이 레닌을 부분적으로 취하는 것은, 레닌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레닌은 직물상품들에 기초한 농민층과의 끈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것들과 나란히 그는 농민층과의 끈은 또한 금속에, 농민에게 기계들을 제공하는 것에, 나라의 전기화에, 즉, 농민 농장을 집단주의 노선에서 재형성하고 재주조하는 것을 촉진하는 모든 것들에 기초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레닌으로부터 다음의 인용을 들어보시오.”





“‘소규모 근로자의 재형성, 그의 전체적인 정신과 습관들의 재주조는 몇 세대에 걸치는 작업이다. 소규모 근로자에 관해 말한다면, 말하자면, 오직 물질적 토대에 의해서만, 기술적 수단에 의해서만, 농업에 대규모로 트랙터들과 기계들을 도입함에 의해서만, 대규모로 전기화함에 의해서만 이 문제는 풀릴 수 있고 그의 전체적인 정신은 건강한 노선에 따를 수 있다. 그것은 소규모 근로자를 근본적으로 그리고 거대한 속도로 재형성할 것이다.’” (26권, p. 239)





“매우 명백하게도, 만약에 직물에 기초한 그 끈이 금속에 기초한 끈에 의해 보충되지 않는다면, 노동계급과 농민층 사이의 동맹은 견고하게 지속될 수 없고, 농민층을 점차적으로 재주조한다는, 그들을 노동계급에게 더 가깝게 데려간다는, 그리고 그들을 집단주의 노선들에 놓는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것이 레닌 동지가 그 끈을 이해한 방식이다.”










독자는, 희망하건대, 이 긴 인용을 용서할 것이다. 중국정책 연구그룹과 같은 다양한 부르주아적인 조직들이 다양한 ‘좌익’적 복장 하에, 노동계급운동에서 사람들의 머리를 그것으로써 채우려 하는 반동적인 쓰레기를 폭로하기 위하여 그것은 필요했다. 영국에서 노동계급운동이 다소간 이론적으로 무지할 뿐 아니라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 누구나에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진실이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지하기 때문에 이 반동적인 쓰레기를 폭로하는 것이 더욱 더 필요하다. 스탈린 동지의 위의 인용된 언급으로부터 한 가지는 확실한데 즉, 그것은 쏘련이 경공업을 발전시킬 것인지 아닌지, 그것이 경공업을 “실행에 옮길지” 허용해야 하는지 마는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고 그것은 차라리 쏘련이 경공업을 배타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혹은 심지어 그것의 공업을 경공업에 강조를 두고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쏘련은 광범위한 경공업을 발전시켰다9),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계급과 농민층 양자의 개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중국정책 연구그룹은 30년대에 쏘비에트 인민이 강철을 먹고 살거나 금속들, 수력발전소 등을 먹고살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다, 사실은 노동계급과 농민층의 생활 수준들이 그 기간 동안에 견고하게 상승했고 이것은 오직 중공업에 더하여 경공업이 또한 광범위한 규모로 발전되었을 때에만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공업의 발전에 더하여, 쏘련은 중공업을 건설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우선을 두었고 특히 그것의 기계제작 부분에 우선을 두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쏘련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국제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결합된 힘에 맞선 사회주의 조국의 방어에서, 그리고 파시즘을 패배시키고 인류를 파시스트 무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에서, 진정으로 거대하고 거의 기적 같은 성취들을 결코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쏘련 측에서의 영광스런 성취들은―그것은 동시에 국제 노동계급운동의 영광스러운 성취들이다―중국정책 연구그룹의 일반적인 부르주아지를 포함하는 일반적인 부르주아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성취들은 이 사람들에 의해 매우 많이 증오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싫어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정치적, 사상적, 문화적 그리고 군사적 전선에서 쏘련의 영광스러운 승리들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전진에, 세계 부르주아지의 최종적인 패배에 산정할 수 없는 공헌을 했다. 그들은 공산주의 운동에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남겼고 그것들은 중국정책 연구그룹에 의해 대표되는 유형의 부르주아 저술가들과 코흘리개들의 저열한 헐뜯음에 의해 결코 지워질 수 없다. <노사과연>






1) 집단화에 대한 스탈린의 글들의 모음은 여기에서 재현되지 않는다. 같은 것의 사본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E.J. Rule, c/o 14 Featherstone Road, Southall,Middx UB25AA로부터 그것을 확보할 수 있다.






2) 어떤 동지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농장으로 가득 차 있는 유럽의 조건들에서 집단화에 대한 문제에 대해 자세히 논하는 것이 어떤 중요성과 필요가 있는가? 왜 이런 문제에 대해 시간을 낭비하는가?





   이러한 접근은 틀렸는데 첫째로 서유럽에서조차 집단화의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고 우리에게 부적절하다고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개인적 소규모 농민 농장의 제거의 과정이 그렇게 멀리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적 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집단화의 문제들과 농민층에 대한 태도는 사활적인 중요성이 있다. 세계 인구의 거의 2/3가 농업이 지배적인 나라들에서 살고 있다. 이들 나라들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형성, 그것의 공고화,  사회주의 건설 그리고 공산주의로의 전진을 위하여 농민층을 획득하는 명확한 강령을 가져야만 한다. 이 점에 관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일반적 문제의 한 부분일 뿐인 집단화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된다. 영국의 우리들에게, 집단화의 문제에서 맑스-레닌주의를 성공적으로 적용한 혹은 적용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의 우리 동지들과 우리의 굳건한 연대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데 왜냐하면 그들의 성공들은 우리의 성공을 그만큼 더 가깝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모든 문제들에서 특히 그중에서도 집단화의 문제에 대해 뜨로츠키주의의 직접적인 반혁명적인 가르침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이유이다. 






3) 이들 공격들의 대부분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하의 계급투쟁의 기제들>이라는 제목하에 발행된 스탈린의 연설들의 모음집에 대한 나의 서문에서 다루어졌다. 이 책의 다른 곳에서 발행된 그 서문은 스탈린과 쏘련공산당에 대한 톰슨 교수의 유사한 공격들에 대해 특별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4) 그 농업부분은 레닌이 기초하였다.






5) 예를 들면 ��베이징 리뷰�� 1975년 22호 ‘부르주아 우익을 제한하기 위한 사상적 무기’를 보라.






6) 이 서문은 이 책의 다른 곳에서 발행되었다.






7) 볼세비키 당은 ‘선택’하지 않았다. 이 ‘선택’은 10월 혁명의 외부적 그리고 내부적 조건들에 의해 부과되었다. “러시아의 구제는 농민들의 농장들에서 좋은 수확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그것은 충분하지 않다―그리고 농민층에게 소비재를 제공하는 경공업의 좋은 조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그것은 또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중공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을 좋은 조건에 놓는 것은 많은 기간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중공업을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것을 부흥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공업도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독립적인 나라로서는 다함께 파멸할 것이다.” (레닌)






8) “공업은 농업을 포함한 우리의 전체 국가경제의 주요한 토대이다라고, 그것은 우리의 후진적인 그리고 분산된 농업체제를 집단화의 기초 위에서 재건하는 것에 대한 열쇠이다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그것은 완전히 진실이다. 그러한 입장으로부터 우리는 한 순간도 후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업이 주요한 토대인 반면에 농업이 공업의 생산물을 흡수하는 시장으로서 그리고  원료들과 식량의 공급자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가경제의 필요를 위한 기계류를 수입하기 위해 필수적인 수출품들의 원천으로서 공업의 발전을 위한 기초를 구성한다는 것을 또한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공업을 위한 농업적 토대를 제공함이 없이, 농업을 재건하고 그것을 공업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 없이 농업을 완전히 기술적인 후진성의 상태로 남겨둔 채로 공업을 전진시킬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리하여 농업에 대해 새로운 기술적 기초 위에서 그것의 재건을 촉진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최대한의 생산의 도구들과 수단들을 공급하는 과제가 나온다. 그러나 이 과제의 달성을 위해서 우리의 공업의 발전의 빠른 속도가 필수적이다.” (스탈린, “나라의 공업화와 쏘련공산당(볼)에서 우익적 일탈”, 1928년 11월 19일,. 쏘련공산당(볼)의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행한 연설, 저작집 11권)






9) 다음은 1913-1937년 사이에 대규모 공업의 생산에 관한 수치이다. 단위는 10억 루블이고 1926/7년의 고정가격이다.











































































  년도





   생산재





  소비재





 1913





   4.7





   6.3





 1917





   3.7





   3.2





 1920





   0.9





   0.8





 1928





   7.8





   9.0





 1932





   21.7





   17.2





 1937





   53.3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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