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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인도 맑스주의 공산당 강령
글쓴이 번역: 제일호(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222
날짜 2011-04-16 조회수 2206 추천수 80
파일  1302890693_cpi(m).hwp

  













편집자 주
















[편집자 주: 2회에 걸쳐 인도 맑스주의 공산당(CPI(M))의 강령을 발췌 번역한다. 강령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I. 소개 (1964년 강령을 개정하는 이유)





II. 사회주의와 현세계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도 사회주의가 중요한 이유)





III. 독립과 그 후 (간력한 현대사)





IV. 외교 정책 (인도가 가야할 외교정책)





V. 국가 구성과 민주주의 (인도 사회구성체론과 전략, 전술 및 그에 대한 배경)





VI. 인민민주주의와 그 강령 (현단계 전술과 그 강령들)





VII. 인민 민주주의 전선의 건설 (통일전선 형성 문제)





VIII. 공산당의 건설 (당을 강화하는 문제)










상당히 긴 강령인데 이 중 3장, 5장, 6장, 7장을 번역하며 이번호에는 3장을 소개한다.





거대한 나라 인도에는 잘 알려진 4개의 공산당(CPI, CPI<M>, CPI<ML>, CPI<Maoist>) 외에도 수많은 사회주의 운동의 흐름이 있다. 따라서 간헐적으로 번역되는 글만으로 인도 사회주의 운동을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태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 번에 번역한 인도 맑스-레닌주의 공산당 강령과 비교해보면 인도의 공산당 운동과 각 당의 인도 사회 분석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소한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Ⅲ. 독립과 간략한 역사










3.1. 인도 인민의 광범위한 대중들은 자유를 위한 투쟁에 열정적으로 참여해 왔고 마침내 성공하였다. 그들은 애국심으로 불타올랐고 자유로운 인도와 인민들을 위한 새로운 삶을 기대하였다. 그들은 가난과 착취의 비참한 상황들이 끝장나기를 바랐다. 그들을 위한 독립은 토지, 음식, 공정한 임금, 주택, 교육, 의료 그리고 고용을 의미하였다.





자유는 카스트제도와 인종, 종교 공동체(힌두, 이슬람) 사이의 증오와 같은 사회적인 악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민주주의적 장치에 있어 문화적 요구들에 대한 만족을 의미하였다.





3.2. 독립을 위한 민족운동은 노동계급, 농민, 중산층 지식인, 여성, 학생, 젊은이들과 같은 다수대중의 참여로 성공을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를 이끌었던 대 부르주아들은 민주주의 혁명의 기본적인 과업을 완수하기를 거부하였다. 인도사회가 새로운 시대로 가는 길은 생산력의 발전에 족쇄가 되는 것들을 분쇄하는 데 있었다. 기생적인 지주계급은 제거 되어져야만 했고, 땅은 경작 농민과 가난한 농민들에게 분배 되어져야 했다. 외국 자본의 숨 막히는 지배로부터 벗어난 산업의 발전은 자급자족경제를 가진 발전된 산업 국가를 위한 기초를 다졌어야 했는데 그러하지를 못했다. 대부르주아 등은 민주주의 혁명 과업이 충족됨으로서 따르는 가능한 결과들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지주들과의 동맹에 선두를 섰고 제국주의와 타협을 하였다. 의회를 지배한 세력들의 정책들은 부르주아와 지주의 동맹을 철저히 반영하였다. 지난 몇 십년간 자본주의가 가는 길의 성격은 이러한 지배계급의 성격에 의해 결정되었다.





3.3. 인도는 국가의 전 방위적인 발전에 필요한 거대한 천연자원, 풍부한 경작 가능한 토지, 관개시설능력, 다양하고 거대한 곡물재배를 위한 다양한 지역에서의 좋은 환경, 풍부한 광물자원, 즉, 힘 있는 세대를 위한 거대한 잠재력을 부여 받았다. 인도의 거대한 노동력은 강해지고 있고 인도인들의 과학적, 기술적, 경험적, 지능적인 기술은 위대한 잠재력의 호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잠재력을 개발하기는커녕 국가권력을 장악한 대부르주아는 자기들의 별것 아닌 이득에 적합한 자본주의적 개발에 착수하였다.





3.4. 독립 후에 제국주의와의 갈등과 충돌 과정에서 부르주아의 양면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국가의 주도권을 장악한 대부르주아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특별한 유형을 채택하였다. 그들은 제국주의와 타협을 하였고 지주들과 동맹을 유지하였다. 그들은 한손으로는 인민들을 공격함으로서 자기들의 위치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이용하였고, 다른 한손으로는 압력, 거래와 타협을 통해 제국주의, 지주들과 함께 갈등과 모순을 해결하려고 노력함으로서 자기들의 위치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이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외국 독점 자본과의 강력한 연대에 착수하였고 지주들과 권력을 나누어 가지기도 하였다. 자유화라는 이름으로 대부르주아는 외국 자본에 경제를 개방하고 국제금융자본과의 강력한 연대에 착수하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 그들이 바로 전체적으로 공공의 영역과 경제를 사유화시키려는 요구 뒤에 숨어있는 원동력이다.





3.5. 독립 후에 몇 년 간은 서양 세계와의 공정한 무역을 하는 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인도의 부르주아는 원조를 위해 쏘련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들은 국가가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자본주의 건설의 길을 채택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위치를 강화시켜줄 유용한 거래대상으로서―제국주의와 사회주의― 두 체제의 존재를 이용하기 시작했었다. 경제계획은 자본주의적인 길의 부분으로서 호소되어졌다. 예산과 일반적인 경제정책은 협소한 착취계급층을 옹호하는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채택이 되었다. 사적인 영역은 중공업과 사회간접자본 같은 거대한 사업들을 위해 요구되는 자원들을 제공할 위치에 있지 못했으므로 중공업과 사회간접자본은 공공의 영역에서 개발되었다. 그 결과 이러한 공공사업의 건설은 경제를 산업화시키는 데 그리고 제국주의 독점자본에 대한 비굴한 의존을 극복하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다.





3.6. 부르주아지의 손안에서 국가권력이 지지를 받는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 계획은 정부 정책의 제한아래 이용 가능한 자원을 더 시기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을 촉진함으로서 정확한 속도조절과 방향성을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에 제공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계획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산업의 확산, 특히 국가/공공의 영역에 있는 중공업이나 기계-건설 산업의 건설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취는 사회주의 국가들, 주로 쏘련의 꾸준한 원조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국유화의 영역은 은행, 보험과 같은 금융 영역과 석유, 석탄산업의 국유화로 확장이 되었다.





3.7. 어중간한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정책수단들이 산업화를 위해 채택되었다. 소규모산업을 보호하고 우리시장에 들어온 외국의 생산물과 자본의 목록에 대한 새 특허 규약을 채택, 조사하고 개발하는 데 강조점을 두었었다. 인도에서 널리 퍼져있는 상황 하에 이 모든 수단들은 어느 정도는 제국주의에 대한 비굴한 의존과 경제적 퇴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3.8. 공공영역의 발전과 제한된 계획을 통한 국가의 간섭은 둘 다 나란히, 잇따른 정부들에 의해 추구된 정책들이 부의 집중을 증대시키고 독점자본의 빠른 성장을 가져왔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대부르주아의 지도하에 국유화 그 자체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공공금융 기구로부터의 대출의 태반은 대부르주아에 몰려있었다. 잇따른 정부들의 예산과 조세정책은 협소한 부르주아-지주계급 층들에게 인민의 자산이 옮겨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탈세가 거대한 검은 돈을 낳게 되었고, 자본의 사적인 축적을 촉진시키는 방법이 되기도 했었다.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데 재원을 마련한다는 이름아래 일반민중, 노동자, 농민 그리고 중산층은 끝도 없는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토지개혁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내시장은 한계를 보였었고, 국내 산업은 외국자본에 대한 의존 없이는 성장하고 확대될 수 없었다. 거대한 내․외적인 차관이 이러한 국가자본주의 양식에 자본을 조달하였다. 독점자본의 성장과 증가하고 있는 외국 금융자본의 침투는 국가자본주의의 뚜렷한 특징이 되었다.





3.9. 50년대부터 지배계급에 의해 채택된 특별한 자본주의적 발전은 위기가 가속화되어 난국에 빠지기에 이르렀다. 국내 부르주아의 지주와의 타협은 농민의 구매능력이 충분히 성장할 수 없도록 하여 국내시장이 더 확대 될 수 없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내․외적인 차관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함으로서 국가의 지출과 재정적자 양쪽에 있어서 심각한 위기상황을 초래하였다. 재정위기는 마침내 부르주아 의회 정부로 하여금 IMF의 관리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인도의 대부르주아는 경제를 개방하고 외국 금융자본과의 협력을 증대시킴으로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노력하였다.





3.10. 자기들의 허약한 자본 기반 때문에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일찌감치 선호했었던 대부르주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충분한 자본을 축적하였고 발전과 함몰을 도운 국가 위에서 스스로를 살찌우게 하였다. 80년대 중반 경, 대부르주아는 국가를 위해 예약된 핵심영역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였고, 외국자본과의 협력 속에서 공공의 영역을 차지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 나갈 준비를 하였다. 자본주의의 길을 후원한 국가에서의 위기에 의해 동반된 이것은 자유화를 위한 내부적인 기초를 형성하였다. 외부적으로 쏘련의 붕괴는 정책에서의 이동과정과 IMF의 수용 그리고 세계은행의 지배를 가속화 시켰다.





3.11. 경제의 개방과 자유화에 대한 압력은 라지브 간디(Rajiv Ghandhi)체제 동안인 80년대 중반부터 경제정책의 변동을 불러왔다. 수입자유화와 늘어나는 단기 차관은 거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였다. 변화된 국제환경과 함께 이것은 1991년 부르주아 의회 정부가 구조 조정된 차관을 얻기 위해 IMF-세계은행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자유화정책은 힘을 얻었을 때 인도인민당(BJP1))에 의해 더 멀리 나가도록 추동되었다. 1991년 이래로 잇따른 정부에 의해 추구된 자유화와 구조조정 정책은 외국자본에 경제를 개방하도록 하였으며 공공영역과 수입자유화를 무장 해제시켜 버리는 과정을 초래하였다. 국가/공공영역을 위해 오랫동안 예약되어 있던 사업의 영역은 외국과 인도의 독점자본에 개방되어져 버렸다. 공공영역을 해산시키기 위해 공공영역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사적인 독점자본들에게 싼값으로 공공영역의 부분을 팔아 넘겼다. 수입관세를 줄임으로서 국산제품이 외국제품으로 대체되었고, 공장은 대규모로 폐업되었고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국제금융자본은 금융영역을 개방하라는 혹독한 압력을 가해 왔다. 은행부분의 사유화 과정과 보험영역의 개방이 우선 시작되었다. 1994년 GATT에 대한 승인은 인도가 WTO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특허법(Patents Act)에서의 변화와 서비스영역의 개방은 제국주의 자본을 위한 봉사를 하였다. 이 모든 진행들은 경제주권이 쇠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3.12. 자유화와 사유화는 대부르주아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대부르주아의 순위는 새로운 기업 가문의 목록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정상권 22개 독점 자본의 재산은 1957년 312.63 크로(crores) 루피(Rs)에서 1997년에는 500배나 증가된 1,58,004.72 크로(crores) 루피(Rs)까지 치솟았다. 자유화 아래, 거대기업 가문과 돈 많은 계층에게 소득세를 줄여주고 부유세와 같은 다른 세금들을 줄여줌으로서 주요 이권들이 그들에게 넘어가도록 하였다. 그러한 정책은 돈 많은 계층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사치품 소비시장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제품은 외국자본과의 협력 하에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혹은 수입이 되고 있다. 외국자본의 무차별적인 진입은 국내산업의 필수적인 영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은 인도의 회사들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대 부르주아의 부분이 아닌 어떤 부분은 외국자본과의 협력에 대한 의지를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중소부르주아의 많은 부분들이 자유화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3.13. 자유화기간 동안 국내외적인 부채의 증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세입의 지출 중 많은 부분이  오로지 이자를 갚는 데 사용되어지고 있다. 개발활동과 가난을 완화시키는 계획들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투자와 지출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중이다. 자유화 아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지역적인 불평등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심지어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기아선상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농촌지역에서 심하다. 계속되고 있는 필수품 가격의 상승, 특히 식품가격의 상승은 공공복지 부분의 삭감이라는 배경 속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심하게 타격하고 있다. 교육, 의료, 고용, 복지와 같은 사회적 영역의 지출을 줄이는 것은 노동자들에는 재앙과 같은 것이다.





3.14. 노동자 계급은 태어나 자본가들과 정부에 의해 부과된 무거운 짐의 맹공을 받아왔다. 이미 상승하고 있는 물가 때문에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오르지를 않는다. 풍토병이 되어가고 있는 산업영역에서의 위기와 함께 노동자들은 폐업과 인원감축이라는 무차별 공격에 직면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되어있는 노동법은 결함이 있고 심지어 강제력도 없다 ; 고용주에 의한 불법은 일상적이다. 비밀투표에 의한 노동조합의 승인과 단체협약에 대한 권리는 거부되고 있다. 자유화와 사유화라는 공격은 다수의 노동자들을 어떠한 사회적인 안전망 없이 범법자로 만들어 그들을 나락에 빠지게 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규제완화가 자유화 정책의 부분으로서 요구되고 있다. 오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획득한 혜택과 권리는 축소되고 있다. 평생직장이 계약직이나 혹은 일용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여성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있고 첫 번째 삭감대상이다. 아동노동은 증가하고 있고 일하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가장 열악한 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직화된 영역의 밖에서는 노동법으로부터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정부에 의해 책정된 최저임금조차도 박탈당하고 있다. 조직화되지 못한 아주 많은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처한 곤경은 고역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때로는 사회적인 안전망도 없는 위험스런 상황에서 적은 급여를 받고 장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다. 부르주아, 하청업자, 그리고 다국적 기업을 위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노동계급의 끊임없는 노동과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이다.





3.15. 토지 균등분할 문제는 인도 민중들에게 계속적으로 가장 중대한 국가적인 과제이다. 지주제도, 대부업자들의 착취, 카스트 제도, 농촌에서의 성적억압의 철폐를 목표로 하는 급진적이고 철저한 토지분배에 관한 개혁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것의 해결책은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인도에서의 부르주아-지주 지배의 파산은 실패를 선언할 만큼 명백한 것이며 하물며 진보적이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할 토지문제를 풀 수도 없다.





3.16. 독립 후에 지주제의 철폐 대신에, 의회의 지배자들은 반(半)봉건적 지주제가 자본주의적 지주제로 이행하는 토지정책을 채택하였으며 부유한 농민층을 발전시키는 토지정책을 채택하였다. 오래된 합법적인 지주제의 철폐를 위한 입법안들은 지주들에게 커다란 보상을 해주는 것과 지주들이 계속해서 대토지를 소유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자가 경작이라는 구실아래 토지를 다시 회복할 권리를 위해 제공된 차지법의 이행은 수백만 명의 차지인들을 쫓아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토지상한제는 충분한 허점을 제공하여 지주들의 많은 재산을 온전히 유지시켜주었다. 농업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은 수백만 에이커의 잉여 토지를 차지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분배도 받지 못하였다. 부르주아 의회의 당들이 했었던 기록은 농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에 대한 터무니없는 배신행위 중의 하나이다. 현존하는 법 하에서의 토지개혁은 오로지 인도 맑스주의 공산당(CPI(M))에 의해 지도되는 좌파정부가 있는 서 벵갈(West Bengal), 께랄라(Kerala)와 트리푸라(Tripura)같은 곳에서나 이행되어져 왔었다.





3.17. 부르주아의회 정부와 그들의 후임자들의 농업정책은 투자와 정부대부기금의 할당이 지주와 부유한 농민들이 혜택을 보도록 설계되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은 은행과 협동조합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60년대 후반부터 기술의 적용, 높은 수확을 보장하는 새롭고 다양한 밀과 쌀의 종자를 소개하는 것, 그리고 화학비료의 투입은 곡물과 다른 비(非)곡물의 생산성을 높였다. 농업에서의 이러한 성장은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을 수반하였다. 인도가 많은 곡물을 생산하였고 식량의 자급자족 달성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박탈당하고 배고픔과 영향실조라는 희생자 상태를 유지하였다.





3.18. 농업의 생산관계에 있어서, 주요 흐름은 농촌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이었다. ; 농촌에서 일하는 대중들의 많은 부분이 프롤레타리아화 하는 것과 농촌인구의 비율 만큼 농업노동자의 숫자를 크게 늘리는 것 ; 농민의 차별을 가속화시키는 것 ; 시장을 위한 생산;: 전통적인 임차권을 가진 세입자들을 무단 방출시키는 것 ; 그리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규모로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기초를 놓는 것과 동시에 농업에서 자본의 재투자 수준을 높이고 농촌의 부자들 특히 지주들의 농업과 관계된 활동의 수준을 높이는 것.





3.19. 농업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이 명백히 인도의 주요한 흐름이라면 농업의 생산관계가 보다 넓은 지역과 보다 좁은 지역 사이의 차이에 의해 두드러질 것이며 생산과 교환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에 의해 두드러질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농업에서 자본주의가 진행되어 왔었던 지역들도 있고 상업적 농업과 화폐의 거래가 농촌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지역들도 있다 : 지주와 소작의 낡은 양식, 노동력 제공의 고대적 양식, 그리고 예속과 굴레가 농업생산관계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들도 있다. 인도 전역에서 카스트에 의한 계급분할, 카스트의 억압, 최악의 성적억압, 사용주와 상인자본이 저지르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는 계속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인도 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낡은 양식의 단호한 파괴에 기초를 두지 않고 전(前)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늪과 사회적 조직이 겹쳐 있다는 것이다. “현대화”라는 발전이 계속 남아있는 고대의 잔재들을 없애버리지 못하고 있다. ; 인도는 자본주의가 무수한 방식으로 농업과 농촌사회에 침투하고 있는 법칙의 거대하면서도 살아있는 예이다.





3.20. 독립 후 지난 50년간 부르주아-지주 농업정책 때문에 농민의 70%는 가난한 농민과 이익이 되는 자산이 부족한 농업노동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의 낮은 수입과 비참한 삶의 환경은 다수 대중의 가난이라는 특성을 나타낸다. 인도에서의 농촌 빈곤의 엄청난 규모는 전 세계 국가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국가가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인도의 농촌에 사는 2억 8천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독립 후 50년간 빈곤선상 아래에 있어왔다. 그러나 가난은 많은 요인들을 가지고 있다. 가난은 수입부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다수 대중들에게 가난은 가난 그 자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명백히 보여준다.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은 토지와 다른 생산수단으로의 접근을 거의 혹은 아예 할 수가 없다. 토지의 집중과 소유의 불평등은 큰 변화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과 비슷하게 농촌부자들의 손 안에 관개시설자원이 집중됨도 수반되고 있다. 농민과 농업노동자들은 합리적인 이자율로 은행에 접근할 수도 없고, 고리대금의 이자율로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낮은 임금과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은 두드러진 특징이다. 농업노동자들이 이용 가능한 평균노동일수는 1년에 180일 이하이다. 농촌 인구의 50% 이상이 영양부족상태이며 농촌의 식자율은 엄청날  정도로 낮다.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은 마실 물도 없고 의료시설도 없는 열악한 주택의 비위생적인 환경 아래 살아가고 있다.





3.21. 대부분의 농촌지역에서는 농촌의 부자들을 구성하는 지주-부농-하청업자-대상인들의 강력한 결합체가 부상되었다. 좌파가 장악한 주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빤쨔야띠 라즈(panchayati raj) 기구들, 협동조합, 농촌은행, 신용기관들을 지배하고 있고, 부르주아-지주 당들이 농촌을 이끌고 있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영역들에 의해 끌어내어진 잉여가치는 돈의 대여, 투기활동, 부동산개발에 투입되고 있다. 농촌의 지배계급은 지지를 얻기 위하여 카스트제도를 이용하고 있고, 가난한 농촌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테러와 같은 폭력의 힘을 빌리고 있다. 심지어 의회의 공표가 있은 후 50년이 지나서조차 지주들의 반대 때문에 어떤 정부도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법률을 채택하지 않고 있으며 농업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과 삶의 여건을 향상시키지 않고 있다.





3.22. 농촌경제의 빠른 상업화와 함께 곡물과 농산물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을 하였다. 농업생산 위에 군림하는 독점유통회사의 지배는 굳어져 버렸다. 자유화와 함께 그들의 통솔 하에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세계시장을 움직이는 다국적기업은 농산물의 가격에 대하여 더 크고 직접적인 통제를 하고 있다. 불공평한 교환과 극단적인 가격의 변동을 통한 농민에 대한 착취의 강화는 변치 않는 특징이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농산품의 판매자로서뿐만 아니라 공업제품의 구매자로서 돈을 빼앗기고 있다.





3.23. 국가가 후원하는 자본주의 발전의 극단적인 피로 뒤에 이어진 자유화 정책들은 20세기의 마지막 10년간 농업과 농촌개발정책이 위험하면서도 반동적인 방향전환을 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농업관개시설, 다른 사회간접자본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 가난한 농촌가정을 가장 심하게 강타한 공식적인 영역으로부터의 신용은 가파르게 감소를 해왔었다. 농촌의 고용과 빈곤의 완화를 위한 계획은 축소되었다. 수출지향의 농업으로 밀어부친 농업은 제국주의 나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토지이용과 곡물유형을 변화시키고 말았다. 식량생산에서 곡물생산의 중요성을 깎아 내리고, 인도의 자급자족의 토대를 침식하는 것은 식량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다. WTO체제하에서 농부들의 삶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농산품의 수입에 대한 모든 양적인 제한조치들은 제거되어 버렸다. 국가가 정한 토지상한제를 희석화시키려는 압력과 인도의 대부르주아와 외국농업사업체에게 토지를 임차하라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WTO와 다국적기업은 종자, 낙농업 그리고 다른 영역 등의 농업생산영역으로 침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농업에서의 연구, 조사와 확대체계를 후원하였던 국가는 약해지고 있는 중이다.





3.24. 국가의 후원아래 이루어진 농업의 자본주의적인 발전은 지주, 자본가적인 농부, 부유한 농민을 구성하는 농촌 부자들과 주로 농업노동자들, 가난한 농민과 숙련된 농부로 이루어진 농민들 다수 대중과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 동맹을 급격히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농업에서의 자유화 바로 다음 이어진 정책은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무거운 짐을 부가시켜왔다. 그것은 바로 다수 대중의 가난에 책임을 져야하는 착취질서라는 것이다. 토지의 독점을 깨부수지 않고, 가난한 농민과 농업노동자들의 부채와 같은 무거운 짐을 끝장내지 않고는 인도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위한 기초가 마련될 수는 없다.





3.25. 인도 지배계급들이 채택한 세계화와 자유화를 추동한 제국주의는 인도의 모든 영역에서 제국주의를 강화시켜나가고 있다. 다국적기업과 제국주의의 금융자본에 대한 경제의 개방은 인도사회의 모든 영역에서의 영향력과 침투를 위한 전초단계였다. 관료제, 교육제도, 대중매체와 문화영역은 제국주의의 침투에 종속되고 있는 중이다.





3.26. 사회주의가 몰락한 결과로서 변화된 역학관계와 함께 원리주의자들, 국수주의에 기초한 반동주의자들과 인종주의자들이 역시 인도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지배력과 영향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인도의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의 성장을 이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통제를 받는 강력한 국제적인 대중매체의 성장은 제국주의가 사회적, 문화적 삶에 직접 개입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다국적 대중매체를 통한 소비자보호주의와 이기적이고 퇴폐적인 가치들의 공급이 우리 사회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다. 대부르주아와 다른 상업적인 세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인도의 대중매체는 똑같은 가치들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건강하고 민주적이며 영속적인 가치들의 개발은 그런 퇴행의 흐름과 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3,27. 1950년에 채택된 인도 공화국의 헌법은 국가가 신봉하는 직접적인 원칙체계들을 규정했었다. 이것들이 규정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모든 시민들을 위한 적절한 생계수단의 보장과 노동할 권리 ; 부의 집중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경제체계, 자유에 대한 조항과 아이들에 대한 의무교육 ; 노동자들이 살아가기에 충분한 임금과 남녀 모두에게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적용.





그러나 이러한 원칙들이 공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헌법에 정한 규범과 부르주아 지배자들의 일상적 행위 사이의 너무나도 명백한 불일치는 독립 후에 이루어진 부르주아-지주의 지배체제에 대한 신랄한 고발인 것이다. <노사과연>






1)편집자주: 인도인민당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인도인민당(바라티야 자나타 당<Bharatiya Janata Party>, 혹은 BJP라고 그냥 불리기도 함)는 1980년에 세워진 인도의 정당 중 하나로, 다수당 중의 하나이다. 인도인민당은, 자신의 당이 인도의 힌두 다수의 사회 종교적 문화적 가치, 보수주의, 그리고 국가 안보를 옹호하는 대변자라고 주장한다. 주로, 도시 지역 중산층, 사업가나 상인 계층, 그리고 종교 사회적 보수 계층을 지지층으로 가지고 있다. 인도인민당의 주변에는 여러 가지 힌두 민족주의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상 빠리바르(Sangh Parivar)라고 불린다. 그중 라쉬트리야 스와얌세박 상(Rashtriya Swayamsevak Sangh, RSS로 불림)이 가장 큰 조직이다. 인민당이라고 불리더라도 이 정당은 이념적으로는 좌파 정당이 아니라 우파 민족주의 정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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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인도 맑스주의 공산당 강령 번역: 제일호(회원) 2011-04-16 2206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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