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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이론 >
제목 한국에서 신식민지주의의 발전
글쓴이 문영찬|편집위원 E-mail send mail 번호 220
날짜 2011-04-16 조회수 2138 추천수 110
파일  1302881590_신식.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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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현재 한-미 간에는 한-미 FTA협정이 의회 비준을 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는 최근에 특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이후로 한 달이 멀다하고 한-미 간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긴장을 격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주의의 문제를 해명하고 한국사회와 제국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긴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운동 현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매우 혼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90년대 반제투쟁을 소리 높여 외쳤던 NL파는 개량주의화되어 반제투쟁의 모습보다는 6.15선언의 실천이라는 협소한 형태로 오그라 들었고 사회주의 세력 간에는 한국사회는 이미 아제국주의라거나 아니면 정치, 군사적 예속성은 있으나 경제적 예속성은 없다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당면한 사회주의 변혁과 반제투쟁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것으로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적 성격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사회는 예속이 너무 심해서 예속성의 심화라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의 맹점은 신식민지주의를 고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인데 즉, 신식민지주의가 진화, 발전한다는 것을 놓치는 것이다.





한국의 변혁은 고립된 것이 아니다. 한국의 변혁을 세계체제와의 연관에서 파악하는 것은 변혁의 전망을 현실화시키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의 전제는 한국에서 제국주의와의 관계, 신식민지주의가 어떻게 변화, 발전하여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규정하고 있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한국사회 변혁의 국제적 성격을 전면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기초가 닦이는 것이다.





그러면 신식민지주의의 변화, 발전을 고찰하기 전에 신식민지주의가 과연 무엇인지를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확립하고 그를 기초로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변화, 발전해간 신식민지주의를 추적해 보자.















2. 신식민지론과 종속이론










한국사회에서 반제투쟁에 대한 인식은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적 성격을 해명함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세계를 중심부 자본주의와 주변부 자본주의로 이해하는 종속이론은 주변부 자본주의의 ‘저발전의 발전’을 주장하는데 이는 중심부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세력에게 착취, 수탈당하는 3세계의 현실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속이론은 3세계의 현실에 대한 스케치는 되지만 3세계의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은 못된다. 종속이론은 주변부가 중심부와 관계맺는 한 ‘저발전의 발전’은 피할 수 없고 따라서 주변부국가들은 중심부로부터의 분리를 통해서 자립경제를 꾀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종속이론이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는 것의 반증의 사례는 바로 한국 사회이다. 한국사회는 종속이론에 따른다면 전형적인 주변부 자본주의였는데 중심부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바로 제국주의와의 강도 높은 관계, 예속의 심화를 통해서 고도의 자본주의 발전을 이룬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사례만으로도 종속이론이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는 것은 해명된다.





사실 종속이론은 자립적 경제, 즉, 제국주의로부터 자립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보인다. 종속이론이 사회주의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있다. “그 결과 프랑크의 분석은 그가 분명하게 반대했었던 정치적 결론들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세계시장/국제분업으로의 편입이 자동적으로 저발전을 배태한다고 간주되어지는 한, 자본주의적 저발전의 논리적 해결책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경제자립정책이다.”1) 이러한 종속이론의 입장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종속이론에서는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성만 획득하는 것이 주요한 것이고 국내의 사회변혁의 문제는 뒤로 밀리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종속이론과 신식민지론의 중대한 차이가 발생한다. 즉, 종속이론은 제국주의의 지배가 일국 내의 계급구조를 통해서 관철된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신식민지론에서는 제국주의의 지배가 국내의 예속적 지배계급을 통해서 피지배계급에게 관철되기 때문에 반제투쟁과 국내의 변혁의 통일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데 종속이론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신식민지론의 이러한 관점은 신식민지적 조건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해명하게 한다. 즉, 과거의 구식민지와 달리 신식민지에서는 제국주의에 예속적인 국내의 지배계급의 존재가 필수적으로 되기 때문에 이들을 강화하기 위해서 제국주의는 신식민지의 자본주의 발전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종속이론이 사실상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부르주아지의 이론이라면 신식민지론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사회변혁이론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점을 기초로 먼저 신식민지주의가 무엇에 의해 규정되는가를 살펴 봄으로써 신식민지주의의 진화, 발전의 조건과 동력을 해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신식민지주의의 규정 요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식민지주의는 고정된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식민지주의를 규정하는 요소들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만물이 변화하듯이 제국주의 질서와 신식민지국가의 관계를 말하는 신식민지주의도 변화,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식민지주의는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에 대한 지배의 정책,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경제적 예속을 기초로 정치, 군사, 이데올로기 등 총체적인 지배-예속 관계가 바로 신식민지주의인 것이다.





신식민지주의가 지배-예속 관계인만큼 그것의 변화의 일차적 요인은 제국주의 내부에 있다. 즉,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 제국주의 국가의 변화가 신식민지주의의 변화의 일차적 요인이다. 사실 제국주의 질서는 제국주의가 탄생한 이후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멀리는 20세기에 제국주의가 탄생한 후 격렬하게 운동을 했고 그 결과 제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이 발생했다. 2차 대전 후에는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가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해 왔다. 경제적으로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립과 붕괴, 70년대의 세계공황이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를 설명한다. 정치적으로는 구식민지를 대체한 신식민지의 성립으로 인한 변화가 주요하다. 때로는 원조 등의 평화적 정책, 때로는 한국과 베트남에서 보듯이 강제적인 군사개입 등 다양한 정책을 구사한 것이다. 이렇듯 신식민지주의의 변화의 일차적 요인은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 자체에 있다.





둘째로 신식민지주의 변화의 주요한 요인은 신식민지국가의 자본주의의 발전에 달려 있다. 신식민지가 구식민지와 달리 자본주의의 발전의 길이 열려 있는만큼 신식민지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이다. 이는 종속이론의 ‘저발전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반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신식민지에서의 자본주의 이러한 발전의 가능성은 세계적 차원에서 신식민지국가들 간의 분화를 야기할 수도 있고 또 이는 NICS와 여타 3세계 신식민지 국가의 분화가 실제로 야기된 것에서 확인된다. 이는 제국주의 입장에서 보면 신식민지국가의 중층계열화로서 세계적 차원에서 제국주의 질서의 강화이기도 하다.





셋째로 주요한 것은 제국주의의 지배와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해 야기되는 신식민지국가 내부에서의 계급투쟁의 발전이다. 실제로 세계에서 대표적인 신식민지국가인 한국사회의 발전은 주기적으로 격렬한 계급투쟁의 발전을 수반했다. 이러한 계급투쟁의 발전으로 인해 제국주의의 입장에서도 지배정책의 변화를 강제당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87년의 6월항쟁 때 전두환의 무력진압을 저지하고 개량정책으로 전환을 미제국주의가 강제했던 것이 그러하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반미운동을 고려하여 군사작전권을 한국 측에 이양하려 하는 것도 이러한 점을 말한다.





이와 같이 신식민지주의는 일차적으로 제국주의 자체의 조건에 의해 그리고 신식민지국가의 자본주의 발전과 계급투쟁의 진전에 의해 규정되면서 변화, 발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질 때만 2011년 현재의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주의의 현 단계를 포착할 수 있고 이를 기초로 한국의 당면한 사회주의 변혁과 반제투쟁을 통일시키는 전략, 전술을 가져올 수 있다.















4. 한국에서 신식민지로의 재편










한반도의 분단과 대한민국의 성립, 그리고 신식민지로의 재편의 과정은 2차대전 후 세계질서의 변화, 제국주의의 지배정책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사회를 결정적으로 규정지은 것이 한국전쟁인데 당시 세계에서 내전을 겪은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의 중국이 2차대전 후 내전을 겪고 있었고 멀리 그리스와 터키가 사회주의 인민 세력과 제국주의 영향하의 세력과 내전을 겪었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벌어진 것이었고 직접적으로는 중국혁명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은 즉각 대만해협을 봉쇄했고 중국 측은 티벳으로 군대를 진주시켰다. 그리하여 한국전쟁은 냉전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지표였던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세를 기초로 한국사회의 신식민지로의 재편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국사회가 신식민지로 재편되는 것은 새로운 예속적인 지배계급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지주계급을 대신하여 예속적 자본가계급을 탄생시킨 것이 이승만 정권의 과제였고 이를 미국은 원조 등으로 뒷받침했다. 또한 일제가 남긴 막대한 귀속재산의 헐값 불하 및 농지개혁이 1950년대 신식민지로의 재편의 핵심이었다.





이 당시 첫걸음을 시작한 한국자본주의는 수입대체 공업화를 목표로 했다. 그리고 50년대 말에는 오늘날의 지배계급의 원형을 이루는 재벌이 탄생하여 지배계급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북의 영향을 받아 이승만 정권하에서 이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 시기의 신식민지주의는 이승만 정권을 매개로 미제가 한국 민중에 대한 폭력적 통치를 했다는 것이다. 반공이데올로기와 파시즘적 통치가 미제국주의가 한국의 지배계급에게 주문한 것이었다. 이러한 억압체제, 신식민지적 질서는 1950년대 말에 세계공황이 발생하자 민중의 도전을 받게 되었고 이는 4.19혁명으로 폭발했다. 한국의 신식민지적 질서가 최초로 부정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미제국주의는 박정희의 반혁명을 지원하는 것으로 답을 했다. 즉, 미제는 한국의 신식민지 질서를 폭력적으로 유지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는 4.19 이후 계급투쟁에서 드러난 민중의 역량이 아직 취약했다는 것을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제국주의의 힘이 막강했고 또 사회주의 진영과의 냉전에 의해 세계질서가 규정되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리하여 한국에서 신식민지주의는 한 차례의 민중의 도전을 넘기면서 새로운 진화의 길로 접어든다. 그 길은 한국에서 반동적 질서의 강화, 제국주의 질서에 예속의 강화, 한-미-일 동맹이라는 동아시아의 반동적 질서의 강화와 맞닿은 것이었다.















5. 한국자본주의의 국제분업질서로의 편입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










1960년대의 세계질서는 냉전을 축으로 하여 세계자본주의 진영이 장기호황을 누리던 시기이다. 50년대 말의 세계공황은 순조롭게 극복되고 60년대 일본과 서독이 전전의 경제적 상태를 회복하고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한편 미제국주의는 쏘련과의 군비경쟁에 몰입하고 한편으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제국주의는 한국에 대해 일본과의 동맹을 기초로 자본주의 발전을 꾀하게 하였다. 이러한 60년대의 신식민지주의는 이북과 중국, 쏘련이라는 사회주의진영의 발전에 대한 방파제를 구축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동맹의 구축이라는 제국주의질서의 강화를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미제의 요구에 충실히 응하여 민중들의 반일시위를 억압하면서 일제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60년대에 1차와 2차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된다. 1950년대의 신식민지자본주의는 이리하여 60년대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1960년대에 성립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는 50년대에 비해 경제에서 국가의 주도성의 전면화, 재벌이라 불리는 주요 독점자본의 발전, 일제와의 동맹관계 구축에서 보이듯 제국주의 질서에의 예속의 강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950년대까지의 수입대체공업화에서 방향전환을 하여 대외의존적인 수출지향 공업화로 변화한 것인데 이는 한국자본주의가 최초로 국제분업질서로 편입되는 길을 연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 쏘련 학자는 신식민지질서의 강화로 파악하였다. “외국자본의 대규모 반입이 수출경제부문의 성장에 주요한 물질적 기반이 되었던 한, 수출주도형의 발전은 객관적으로 보아 서구의 제국주의 그룹에 의한 남한의 신식민지적 종속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으로 귀착되었다.”2)





이리하여 1960년대에 지금까지도 한국자본주의의 축적구조를 이루는 틀을 규정짓는 작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자본주의의 축적구조의 구축작업은 민중투쟁을 진압하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일회담 반대시위, 3선개헌 반대시위 등을 짓누르면서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나라당의 반동부르주아지가 박정희를 추앙하고 그 딸인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 후보 일순위로 꼽히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한국자본주의의 원형을 창출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 말은 제국주의 질서, 세계자본주의진영이 격동을 향해 나아가던 시기였다. 2차 대전 후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여 성립한 브레튼우즈 체제가 한계를 맞고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60년대에 달러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금투기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닉슨의 달러의 금태환 정지 선언을 불러왔고 브레튼우즈 체제는 종말을 맞이하였다. 여기에 더해 석유공황이 발발하자 자본주의 세계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절체절명의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70년대에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가 발생했다. 한편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패배는 미제국주의의 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인데 이러한 위기가 70년대의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를 야기했던 것이다.





이 시기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요인은 세계사회주의 진영에서의 변화이다. 제국주의가 70년대에 위기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의 발발로 귀결된 것이 아니라 쏘련의 붕괴, 중국의 자본주의화로 귀결된 것은 사회주의 진영 자체의 문제 때문이다. 중-쏘 논쟁으로 표출되었던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 그리고 후르시쵸프의 수정주의의 등장은 사회주의 세력의 약화를 가져왔는데 바로 이 점이 70년대에 제국주의 진영이 신자유주의라는 공세적 방향전환을 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제국주의 진영이 70년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20세기 사회주의와의 쟁투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의 중요한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 혁명이었다. 60년대에 급격히 발전하고 있었던 전자산업은 ME혁명(극소전자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데 이와 같은 첨단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제국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진영의 도전에 대응하면서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고 제국주의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여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생산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것인데 ‘한 사회는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한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맑스의 언급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진영은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라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쏘련과 중국에 대한 유화정책을 펴고 이간질을 하여 중-쏘의 대립을 되돌이키기 어렵게 했다. 특히 중국과 미국의 수교는 이러한 변화의 핵이었다. 이렇듯 70년대의 한국에서의 신식민지주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진영의 약화와 분열, 미-중 수교,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패배, 이에 대응한 한-미-일 동맹의 구축, 이북의 강화 등을 조건으로 보아야 한다.















6. 70년대 세계공황과 한국자본주의의 재편










이와 같이 70년대의 신식민지주의는 제국주의진영의 위기 상황이 반영되었다. 전후 장기호황을 마감하고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하고 공황과 스태그플레이션이 발발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유신체제로 전환하였다. 유신체제는 한국의 지배계급이 분단체제를 고수하고 반공체제를 강화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는 미제국주의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제와 한국의 지배계급은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외에는 대안이 없었고 이는 70년대의 수출드라이브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는 한편으로 위기의 시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위기에 대응하는 재편의 시기였다. 상부구조에서 나찌를 능가하는 파시즘 체제를 구축하면서 경제에서 세계자본주의 질서의 재편에 대응하는 한국자본주의의 재편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석유위기를 겪으면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재래식 중화학 공업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자신들은 첨단산업을 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박정희 정권은 70년대에 철강, 석유, 조선, 기계 등의 재래식 중화학 공업을 이전받아 경제구조를 경공업중심에서 중화학공업중심으로 재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편은 수출을 목표로 한 것이어서 국내산업연관이 부실했고 그에 따라 1979년 재차 석유위기와 공황이 닥치자 한국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했고 정권 자체가 무너졌던 것이다.





70년대 한국에서 신식민지주의를 정리하면 사회주의에 대한 방어를 목표로 예속적인 한-미-일 동맹 체제를 강화하면서 국내적으로는 파시즘의 강화, 민주주의의 말살을 정치적 조건으로 하면서 국제분업질서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면서 수출의존의 경제를 정착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7. 80년대의 외채위기와 예속의 심화










한편 미제국주의의 주요 다국적 기업들은 60년대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을 수출하고 자회사를 설립했다면 70년대에는 아시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의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에 자본을 수출하고 전자산업 등에 하청구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미국자본의 진출, 그리고 더불어 일본자본의 동아시아로의 진출이 80년대에 신식민지국가들에서 NICS라 불리는 나라들이 분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80년대의 한국자본주의가 70년대의 한국자본주의와 다른 것은 70년대가 수출의존형 경제를 정착시켰다면 80년대는 그러한 수출의존형 경제가 성장하여 NICS로 도약하여 신식민지국가 중에서 신흥공업국이라 불리는 대열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80년대의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을 규정했던 세계질서,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80년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정책은 70년대의 공황에 의해 규정되었다. 70년대 공황으로 인해 발생한 축적체제의 위기를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로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후기형태로서 전후 복지체제를 마감하여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군수산업을 발전시켜 자본축적의 공간을 여는 반동적인 정책인데 이러한 정책은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맞물려서 세계적 영향력을 획득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고금리 정책을 택했고 이는 3세계에서 외채위기를 불러온다. 더불어 미국의 경우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가 고금리로 인해 폭증한다. 이러한 고금리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자낳는 자본이 산업자본의 힘을 압도하기 때문인데 70년대 이후 세계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부패하고 기생적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자본주의는 이러한 세계경제와 연동되어 돌아갔는데 수출의존도가 높고 그에 따라 수출을 위해 수입을 늘려야 하는 한국자본주의에서 외채가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고금리로 인해 더욱 영향을 받았는데 80년대 중반 한국의 외채규모는 세계 4위에 이르렀다. 그런데 85년 플라자 합의로 인한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라는 3저를 조건으로 한국의 수출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이로 인해 외채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한국자본주의는 NICS로 비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NICS로의 비약에 대해 NICS형 종속이라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 “법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발전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70년대 이후 아시아 NICS의 구조가 내재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 서술한 바와 같이 I 부문의 노동수단은 물론 II 부문의 노동수단까지도 국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노동대상까지도 국외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 노동대상의 자부문 투입비율의 크기와 노동수단의 국외의존(NICS형 종속). 이것들이 한국자본주의의 외생적 순환구조의 수입면에서 특징이다.”3) 여기서 서술되고 있는 NICS형 종속이라는 것은 한국자본주의의 근래의 경제구조에 대한 한 일본학자의 진단이다. 즉, 수출의존도가 높고 수출을 위해서 수입을 늘려야 하고 주요 노동수단이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가리켜 자본주의는 발전하고 있지만 예속적 발전이라는 점에서 NICS형 종속이라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최근의 발전의 모습에 대한 비교적 근접한 진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80년대의 시기 한국에서 신식민지주의는 더욱 고도화된다. 80년 광주에서의 무력진압을 용인했던 미제국주의는 87년 항쟁에 대해 양보, 개량정책의 실시를 주문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에서 사회주의세력의 힘이 약했고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주의진영이 몰락하고 있던 상황 때문이다. 이러한 양보, 개량화의 정책을 통해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진영이 추진했던 민족민주변혁이 유산되고 한국의 예속적 독점자본이라는 지배계급의 지위가 안정됨에 따라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주의도 이후 안정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제국주의적 지배의 평화로운 보장, 혹은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유연한 지배, 경제적으로는 예속의 심화가 이후 한국에서 신식민지주의의 주요한 양상이 된 것이다.















8. 쏘련 붕괴 후 세계질서의 변화와 97년 외환위기










1990년대 한국자본주의는 NICS의 대열로 출발하여 이후 다시 한번 도약을 한다. 그것은 OECD가입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선진국의 문턱에서 한국자본주의는 97년 외환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97년 외환위기는 한국자본주의의 내적인 모순을 잘 드러낸다. 냉전구조의 해체와 사회주의 운동의 붕괴를 조건으로 한국자본주의는 고도의 축적을 실현했다. 수출주도의 경제라는 취약한 구조도 냉전의 종식과 자유무역의 확대라는 조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국은 외환자유화, OECD 가입 등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국제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크게 유입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부터이다. 그러나 거칠 것이 없던 한국자본주의는 97년에 외환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는 세계시장의 확대를 기대하고 투자에 여념이 없었던 예속 독점자본들이 일본의 엔화가 평가절하되고 수출이 악화되자 과잉생산의 위기에 내몰리고 내수가 악화되고 주요 독점자본이 무너지자 국가의 통제력이 상실되면서 금융위기의 형태로 일어났던 것이다. 80년대까지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와 비교할 때 90년대의 한국자본주의는 확실히 낮은 생산력을 많이 극복했고 고도의 기술력을 실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 형성된 축적구조가 여전히 한국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고 그 축적구조의 취약성이 90년대 또한 여전히 변함없었다는 것을 외환위기는 드러냈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을 규정했던 90년대의 세계질서는 냉전의 종식으로 압축된다. 제국주의 질서에 거칠 것이 없어진 것이다. 그에 따라 미제국주의는 90년대 초반 이라크를 침략했고 이후 유고슬라비아를 침략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정책을 취하면서 WTO를 결성했고 세계경제는 이른바 IT경제라는 신경제를 체현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가 빗장을 열어놓은 금융의 자유화에 따라 세계경제는 금융투기의 무대가 되었다. 94년도의 멕시코 경제위기는 금융투기세력이 일제히 빠져나가 발생한 것이었다. 97년 동아시아와 러시아 등의 외환위기도 그 기초에는 과잉생산 위기가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외환이 투기의 목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러한 외환투기는 변동환율제하에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러한 90년대의 한국에서 신식민지주의의 특징은 첫째 미제국주의의 지배의 안정화이다. 그에 따라 정치적으로 미제국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이 약해졌고 반대로 미제국주의의 패권을 말하는 세계화시대라는 담론이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둘째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군사적 갈등이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남북 간의 무력충돌도 없었고 미군이 한국군에 대해 행사하는 작전지휘권도 이양이 논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셋째 경제적 측면에서는 예속성이 강화되었다. 특히 97년 외환위기는 IMF의 정책이 한국을 지배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IMF의 정책은 미제의 금융자본의 이익을 철저히 관철시키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자본의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가 강화되었다.















9. 세계대공황과 신식민지주의의 현 단계










신식민지주의 즉, 미제국주의의 한국 지배와 관련되어 2000년대의 한국의 현실을 말하는 것은 김정일과 김대중의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던 것은 미제와 한국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통치가 안정화되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8,90년대 민중들의 반제투쟁과 자주화투쟁으로 인해 민족 간 단결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는 것 그리고 이북의 요구가 결합되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것이 한반도에서 2000년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면 제국주의 질서 차원에서 2000년대를 알리는 것은 뉴욕 무역센터 빌딩의 붕괴 사건이다. 이것은 미제국주의의 세계패권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중국의 부상이 2000년대 초반의 정세였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정상회담에 뒤이어 서해교전이 발생했고 이후 서해 NLL지역은 불안지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국군은 미제의 요구에 따라 해외에 파병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정세가 냉전 종식 후에 안정화되는 듯했다가 2000년대 들어 다시금 불안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제국주의 패권의 약화와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경향은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더욱 확인된다.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달러의 패권을 넘어서서 미제국주의 자체의 패권이 약화되고 중국의 부상이 뚜렷해지면서 동북아 정세는 극도의 불안정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대공황은 동북아의 불안정을 넘어서서 세계적 차원에서 지각변동을 불러오고 있다. 가장 극적인 것인 유럽의 재정위기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유럽연합체제의 균열 위기 그리고 중동에서의 민중혁명이다.





이러한 대공황의 양상 속에서 미국, 일본, 유럽의 경우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으나 한국의 경우 경제가 일견 안정된 모습이다. 이는 성장하고 있는 중국시장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유무역의 확대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가지 조건이 수출지향적인 한국의 축적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다. 그러나 향후 전개될 동아시아에서의 지각변동은 얼마든지 한국자본주의에 충격파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대공황의 상황에서 미제국주의와 한국과의 관계, 신식민지주의는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에서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남북 간의 대립이 동북아의 불안정 요소였다면 이제는 그에 비할 바 없이 중대한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도 그러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의 와중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한국과 미국의 연합 군사훈련이 한 달이 멀다하고 벌어지는 현실은 동북아의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다. 이는 거꾸로 동북아에서 미제국주의의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지배계급은 민족 간의 화해와 단결의 추구가 아니라 미제의 패권추구에 영합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미제의 의도에 따라 동북아에서 긴장 격화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긴장이 격화되고 군사훈련이 강행되는 것은 90년대의 신식민지주의의 안정화 추세와 달리 2000년대 특히 대공황 이후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평화시임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과시해야만 할 정도로 미제국주의는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국의 예속 독점자본이라는 지배계급은 미제로부터의 독립과 자주가 아니라 미제에 대한 예속의 강화를 추구한다. 최근 비준을 눈앞에 둔 한-미 FTA체결은 그러한 신식민지주의의 강화를 입증하는 것이다.















10. 결론










미제국주의의 한국지배는 분단과 전쟁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이제 대공황을 맞이하여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제의 한국지배는 주기적으로 민중들의 격심한 저항을 불러왔었다. 4.19혁명, 광주항쟁, 87년 6월항쟁, 91년 5월투쟁 등 민중투쟁들은 미제의 신식민지주의를 흔들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은 90년대 쏘련의 붕괴 후로 잦아들었다. 90년대 외환위기에서 미제는 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경제적 지배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미제의 신식민지주의는 안정화를 달성한 듯했다. 정치적, 군사적으로 평화로운 지배와 경제적 예속의 심화의 공존!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제를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단일체제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의 대공황은 미제의 지위를 격심하게 흔들고 있다. 한반도의 정세는 이제는 동북아 정세와 긴밀히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미제의 한국에 대한 신식민지주의에 대한 인식도 확장될 것이 요구된다. 동북아 정세 전체 속에서 차지하는 미제의 신식민지주의의 의미의 변화, 발전을 포착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미국과 일본의 동맹과 내부적 대립, 중국과 일본의 대립과 상호 의존, 그 속에서 한반도의 모순, 그리고 그 속에서 자본축적을 강행하는 한국의 예속독점자본가들의 전략 등이 신식민지주의를 고민하는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이제는 신식민지주의의 문제를 동아시아 변혁의 전망 속으로 가져가야 함을 말한다.





90년대의 반동의 시기가 미제의 신식민지주의의 안정화 시대였다면 2000년대의 대공황의 시기는 미제의 신식민지주의의 불안정화의 시대이고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동아시아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변혁전략이 제출되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말한다. 중동의 민중혁명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은 동아시아가 대공황의 방파제라면 향후 동아시아 노동자와 민중이 세계변혁의 견인차가 될 것도 예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대립물의 상호전화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한국 민중의 입장에서 신식민지주의의 문제는 사활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미제를 축출함이 없이는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민중의 해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축출과 사회주의 변혁의 통일적 파악을 통해 미완의 80년대 민족민주 변혁이 남긴 과제를 해결하고 착취와 억압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노사과연>











1) 로버트 브레너,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 『제 3세계 사회발전 논쟁』, 한울, 1986, p.183,






2) S.S 수슬리나, 『남한 경제론』, 솔밭, 1989, p.35






3) 와꾸이 히데유끼, 한국자본주의의 외생적 순환구조와 NICS형 종속, 『현대 제국주의와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태암, 1989, p.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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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 한국에서 신식민지주의의 발전 문영찬|편집위원 2011-04-16 2138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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